20세기 전반 지식인의 세계를 주름잡은 학문풍토는 프로이드의 정신분석학이었다. 그러나 정신분석학은 20세기 후반들어 거의 잊혀지고 말았다.
정신분석학은 프로이드가 환자를 치료한 방법처럼 환자와 “대화”를 나누면서 숨어 있던(잠재된) 과거의 의식세계를 찾아내는 것이다. 과거의 경험은 정신충격을 받아서 숨어 잠복한 것으로 여긴 것이다. 그리하여 “대화”는 “치료”의 한 방법이 되기에 “talking cure”라고 하였다. 이렇게 프로이드의 정신분석학은 보이는 인간의 “뇌”를 탐구하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마음”을 탐구하는 것이었는데 20세기 후반 보이는 인간 뇌의 “호르몬”치료 방법이 주류를 이루면서 20세기 전반 세계를 풍미했던 정신분석학자 프로이드는 의학계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프로이드의 정신분석학의 문제점을 여지없이 깨부쉰 사람은 칼 포퍼이다. 칼 포퍼는 정신분석학이 객관적 검증능력이 없다고 공격했다. 이론을 과학적으로 정립하려면 “가정”이 되어야 하는데 정신분석학은 이것이 가능하지 않다고 본 것이다. 다시말해 정신분석학은 환자 자신의 주관적인 체험을 받아들인다. 즉 환자가 꾼 꿈이나 환상이나 과거의 어릴적 경험에 의존하게 되는데 이것은 경험적인 분석자료로는 적합지 않다는 것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외디푸스 억압”현상도 어느 누가 객관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라캉의 프로이드 공격은 내가 여기서 별도로 언급하지 않겠다. 그리고 인간 뇌의 화학적 분석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정신과 의사나 약사들은 다국적 제약기업의 “음모”로 볼 수 있다는 주장도 오늘은 생략한다.
한국의 안방 TV 불륜 드라마를 세계를 장악한 김수현 작가의 말 하나를 기억한다. 김수현 작가 자신이 말하길 “여자들은 버림받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고 했는데 그런 “유기의 두려움(fear of abandonment)”은 요사이 갑자기 나타난 현상이 아니다. 이전부터 있어왔던 정신질환의 하나이다.
현대는 우울증에 안 걸린 사람이 없을 정도가 되었다. 미국사람 중에 25%가 우울증 질환에 걸려있을 정도가 되었다.
또한 극도로 개인주의가 발전하여 남의 사생활은 별로 문제가 안될 것 같은 미국사회가 이제는 남의 사생활에 관심이 안두면 못살아갈 정도가 되고 말았다. 남의 눈치와 남이 이목이 두렵고 남들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고있는지에 지대한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던 “오만과 편견”의 소설가 제인 오스틴의 18세기 “시골(빌리지)” 커뮤니티 시절의 사고로 되돌아가는 것 같다. 남의 소문에 너무나 민감하게 된 것이 농촌빌리지에서 도시문명화된 현대의 아이러니가 아닐까?
넓은 정원에 수영장 딸린 집을 갖기 위해서 도심주변에서 “교외”로 따져나간 미국 영국등 선진국 도시사람들이 이제는 다시 교외에서 도심으로 이주하고 있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큰집이 더이상 필요없게 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넓은 집에 살면서 대부분 “개”를 키우는데 이제는 다시 도심 아파트를 선호하게 되면서 개보다는 고양이를 더 많이 키우게 되는 것이다. 한국에서 몇 년전에 "애완동물 개 키우기" 견공 붐이 일어났었는데 그건 잠깐 현상에 머물지 않을까 나는 예견했었다.
네트워크 현상으로 언제 어디서나 서로 연결될 수 있는 새로운 인터넷과 모발폰 세상이 되었지만 왜 우울증은 더 늘어나고 진정한 친구는 왜 그렇게 얻기가 힘들까?
정신분석학이 다시 나타난 것은 분명하다. 2008년 10월 발행된 미국 의학학회의 전문저널(“The Journal of the American Medical Association”)에서 정신분석학의 회귀를 분석하고 있는데 이를 보면 세상의 흐름을 조금 이해할 수 있다. “대화 치료”방법은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잘 믿지 않는다. 그러나 사람의 일은 자기가 말하지 않으면 알 수가 없다는 것은 믿지 않을 수 없다.
지금은 상담심리학자나 정신과치료가 붐을 이루고 있다. 마약범이나 성폭력범죄에서 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가정 폭력 범죄에서도 정신과 의사나 상담심리학자의 환자의 정신분석보고서를 필요로 하는 경우가 많다. 법으로 요구하기 때문에 변호사들은 이들의 필요성을 잘 알고 있다. 나는 솔직히 믿지 않는다. 정신과 의사의 의사로서의 자격과 인격성을 믿지 못해서가 아니다. 상담심리학의 학문적 근거를 원천적으로 부정해서도 아니다. 범죄자가 되고 나서 부터 변호과정에서 즉 변호사가 정신과 의사나 상담심리학자에게 견해를 부탁하는 것도 많다.
다시말해 국가가 정신병자를 양산해 내고 있는 체제를 바로 이해해야 현재 사회를 제대로 분석해 낼 수 있다.
자고이래로 창녀와 정신병자와 마약투약자들은 사회의 하류층으로 똑같이 취급하는 국가의 관리대상이다.
“푸코”가 정신병자를 국가가 어떻게 만들어 수용하는지를 잘 분석해 내었는데 그런 범죄자를 감형시켜 준다는 명목으로 국가가 형법 규정으로 정신분석보고서를 요구하고 있다는 것은 국가가 바로 정신병자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것에 다름아니다.
정신병력이 전과자 기록이나 마찬가지 취급을 받기 마련이다. 이런 현상을 누가 좋아하는가? 정신병자를 취급하며 잘 먹고 살아가는 검사나 변호사나 의사나 심리학자등 사회제도의 상층부를 장악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하류층이 정신병자의 태반을 차지하고 있다는 생각은 순진한 생각이다. 아무튼 다이애나 공주가 죽은 원인도 우울증이라고 하는데 우울증 등 정신병자는 상류층에 더 많다. 다만 상류층은 범죄자로 몰리지 않을 뿐이다. 상류층들은 정신과 의사를 찾아도 나오미 캠벌처럼 몰래 드가기 때문에 모두가 비밀로 취급되고 있을 뿐이다.
국가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정신병자를 양산해 내듯, 다국적기업이 돈을 벌기 위해서 정신병자를 양산해 내듯, 복잡한 현대사회가 발전할 수록 인간의 행복은 나아진 것이 없는 암울함을 보게 된다.
국가가 정신병자를 양산해 내는 학문적인 풍토는 현재 각광을 받고 있는 “신경 뇌”연구 분야의 흐름에서도 알수가 있다. “신경뇌” 연구의 개념을 궁극적으로 들어가보면 결국 인간은 태어날 때 뇌에 흠결이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고 결국 그것은 인간을 차별하고 격리하는 근거로서 작용하게 된다. 국가는 격리층이 없으면 일부러 만들어 내는 것이다. 경찰이 왜 있는가? 하류격리층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경찰등은 먹고 살아가기 힘들다. 그러나 경찰 제도가 등장하지 않아도 인간의 삶은 풍성했다. 경찰이 없어도 살인사건이 존재했고 이무리 경찰국가가 나타나도 살인사건은 없어지지 않는다.
" 뇌신경학" 은 좋게 말하면 톨스토이의 말과 같다: “행복한 가정들은 모두가 엇비슷하다. 불행한 가정들은 불행할 수 밖에 없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All happy families are like one another; each unhappy family is unhappy in its own way.)”
그러나 결국 사이코패스와 정상인의 뇌를 비교해 보면 사이코패스들은 윤리적인 판단을 내리는데 뇌기능에 원초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보는 연구결과나 19세기에 이탈리아나 독일에서 통하던 얼굴 모양만으로 살인자를 가려낼 수 있다는 이론과 흡사한 것이다. 결국 돌고돌아서 다시 19세기로 후퇴하고 마는 것이다.
형사법정을 가보면 이러한 골상학이 거의 통할 정도로 흉악 형사범죄자의 얼굴은 대개 부정적이다. 그러나 우리가 형사법정에 나타낸 범죄자의 외면을 보고서 예단하고 편견을 가진다면 법과 인간의 가치를 포기하는 것과 같다.
암튼 “뇌신경분석학”은 결국 인간의 합리성을 부정하는 근거로 작용하는데 “푸코”의 사회이론처럼 사회의 현재의 금권 자본주의 보수 체제를 유지하는 역활로 흘러가게 되어 버리는 것이다. 그렇기에 뇌신경 연구에 국가기관이 연구비를 크게 지원하고 있는 이유다.
나는 21세기 현 사회가 암울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음이 느껴진다. 정신분석학이 다시 도래한 사회현상과 또 국가가 양산해내는 정신병 사회체제의 이면을 제대로 파악하여 그 잘못을 바로잡아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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