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8 년 영국 소설가 DH 로렌스가 이탈리아 에서 발표한 (성장면 등 외설적 표현 등으로 음란물 금지 법 위반 우려에서 영국에서 출판 못하고. 물론 이탈리아에서 영어로 출판한 것은 그당시에도 해적판이 바로 영국에서 돌 수 있는 상황이었슴) '차탈레 부인'이야기 소설을 지금 읽어 보고 평가하면 누구라도 결코 음란물 이라고 보 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작품이 발표된 1928년의 당시의 기준으로 보면 지금의 '포르노' 수준 판정이 나지 않겠는가 한다. 하지만 영국 법정에서는 판매금지 처분을 받은 출판사 (펭귄) 가 법정소송에서 승소하여 문학성을 인정 받았다. 1959년에 출판된 미국에서도 배포가 금지되었지만 법정 소송을 통해 승리하고 6백만부 이상이 팔려나가 대성공을 거둔 책이다.
이런 '차탈레 부인'의 이야기 가 처음 영화화 한 해가 1955년 인데 영화도 음란물 판정으로 상영이 금지되었으나 대법원까지 가는 헌법소송을 통해 승리하여 '여성해방 운동' (여성 성 해방') 에 일조했다고 보는 차탈레 부인 이야기 인데 이 차탈레 부인에서 마지막 장면을 보면
주인공 3사람 모두가 각자 흩어진다. 1차대전 때 하반신 불수로 인해 성불구자가 된 돈 많은 귀족인 차탈레 부인의 남편은 계속 자기 대저책에 남아 살고 차탈래 부인은 대도시 런던으로 떠나고 차탈레 부인의 애인인 사냥지기는 차탈레 부인의 남편으로부터 해고 당한다. 차탈레 부인이 런던으로 떠난 것은 거기서 애인을 만나서 자유스럽게 (이혼은 거부당했지만 대도시에서의 익명성 으로 인해) 행복한 삶을 누릴 것으로 기대하고 런던으로 떠나나 차탈레 부인의 그런 기대가 이루어진다고 즉 애인이 차탈레 부인과 합친다는 결론은 소설에서 나오지 않기에 상상에 맡긴다.
반면 우리에게도 익숙하게 알려진 영화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 의 원작인 월로의 소설이 발표된 해가 1992년 이다 (메디슨 카운티 영화화는 1995년).
여기에서 결론은 차탈레 부인에서의 경유가 달리 끝 장면에 선택을 하는 사람은 '여자'에게 맡겨진다.
이혼하고 사랑하는 애인과 새삶을 합치느냐의 갈릴김에서 '여자'는 결국 happily ever after' 결론과는 반대로 헤어짐의 아픔의 정신적 고통을 간직하며 가정을 선택하는 것으로 결론을 유도한다.
'성적 해방'을 당성한 페미니스트 여성들이 행복의 추구하고는 달리 오히려 정신적 고통을 감당하는 '여성 성적 해방'의 아이러니적인 결론을 보여 주는데 이러한 여성 성적 해방의 아이러니 결론을 요즈음 실재적 데이타 실증적 분석 자료는 잘 카바 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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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나 소설에서 묘사하는 바람은
뜨거운 태양이 작열하는 여름날의 이태리 타스카니의 들판에서 목마름을 탄 장작
붉고 노란색의 들꽃이 푸른 동산과 어울려 그림같은 이태리의 마스코트 같은 타스카니 지방의 여름은 무척이나 강렬하다. 그곳엔 많은 작가들이 몰려들어 살고 있다. 이번 골든그로브 여우조연상을 받은 한국계 산드라 오 씨가 출연한 작품이 '타스카니의 태양 아래'가 이것을 그리고 있다.
중년의 사랑은 더운 한 여름철 근육에서 땀이 베어 나오듯이 그렇게 거부할 수 없는 자연의 바람인지 모른다. 땀이 스며나오듯 바람 한점 없이 무더운 한 여름날엔 시원한 한 줄기 소낙비를 필연으로 한다. 중년의 사랑은 시원한 통풍과도 같은 자유의 바람인지 모른다.
이글거리는 태양은 무성한 푸른 숲을 낳지만 그 푸른잎은 다시 소슬바람이 불어오는 가을이면 무성한 잎을 다시 떨구어낸다. 여름철 성장한 푸른 숲 무성한 순간이 지나면 가을낙엽으로 떨어지는 이게 자연의 질서이다. 사람의 바람도 나무가지에 이는 스쳐지나가는 바람과도 같은 질서의 바람인지 모른다.
그런 중년에 필연적으로 찾아오는 '바람'을 선택을 그린 영화가 '메디슨타운티의 다리' 이다. 성숙한 중년의 내면을 그려내는 메릴 스트립의 탄탄한 연기력이 아니었다면 타프가이 크린트 이스트우드 를 소화해 낼 수 없었을 것이다. 내면적 얼굴과 마음과 몸까지 표현해 내는 메릴 스트립만의 연기력이 없었다면 평범한 불륜 드라마가 되어버릴 영화가 아닐까 우려를 하는 주제이다.
그러기에 여자의 마음 깊숙히 숨어있는 본능적 욕망과 삶의 억제적 감정의 줄타기를 서정적으로 그리낸 영화 ‘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를 보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영화를 보고 난 후 다시 책을 사서 읽지 않으면 안될 정도로 내 눈을 사로잡았던 오랜 만의 명작을 만난 것이었다.
화면에 나오듯이
작은 차 하나가 꼬불진 시골길을 들어오며 억새풀이 흔들리듯이 자동차 바람에 먼지를 일으키며 들어온다.
트레일 화면에 뜨는 장면은 억새풀 갈대가 이는 시골길이다. 전인미답과 같은 메릴의 마음은 시골 냄세처럼 때묻지 않았다. 땀이 베어 나오는 무더운 날. 갈대가 바람에 흔들린다. 갈대는 사람의 원초적 감성을 자극한다. 김수영의 시 ‘풀’에서 풀처럼 눕는다 는 표현 으로 김수영의 시를 '사랑'(섹스) 로 재해석하는 어느 평자의 논거에 동의할 수 있다.
또 갈대는 풀에 불과하지만 갈대는 칼처럼 사람의 살을 베어나기도 한다.
팡세에서 파스칼이 말한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다’ 라는 경구와 신경림의 시 ‘갈대’가 그저 작은 바람에도 흔들리는 연약한 갈대이지만 바람이 없는 갈대에 직접 살을 갖다 대면 사람의 피를 흘리게 만드는 무서운 갈대가 되기도 한다. 아름다운 장미에 장미가시가 솟아있듯이 자유의 바람에도 잘못 불면 피를 흘려야 하기도 하는 갈대의 속성이다.
'디나 위싱턴'의 재즈노래가 감미롭게 흐르면서 나오는 메릴의 독백이 더욱 과거를 회상하게 만든다. 지난 한 여름의 뜨거웠던 정사는 사진보다 더 강렬하게 가슴 깊은 곳에 남아 있음을 독백하는 메릴 스트립의 허스키한 목소리가 더욱 영화를 보지 않을 수 없게 만들 것이다. 아무리 영화 선전 장면이라고 해도 헐리우드 영화 속성을 볼 때 흔치 않는 화면이다. 이태리에서 미국 농촌 심장부인 아이오와 시골농촌까지 이민와서 농사를 짓고 있지만 유럽의 꿈과 향수를 잊을 수 없듯이 유럽적인 영화라고 볼 수 있겠다.
"내 마음 깊숙한 곳에 남아 있는 ‘이미지’가 있다.
폭풍
전야 그 여름 날의 밤을 떠오르게 하는 강렬한 ‘이미지’는 내가 그남자를 처음으로 만났던 그때를 기억나게 한다. 그가 차를 멈추어 서며 로즈만 다리가 어느 방향이냐고 길을 물어 본 그 순간 ‘사랑’만이 아니면 어디에도 갈 수 없는 막다른 그 순간. ….
"There are images that lie in my heart. The images with power to recall a summer’s night, the stillness before the storm, reminding me the first time I ever saw him when he stopped and asked for direction to the Roseman Bridge, the moment when there was nowhere else to go except was love. "
2007.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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