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무왕릉비 (文武王陵碑) 비문뒷면 제20행 “분골경진” 해석
*필자 추홍희
추홍희는 고려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했다. 고려대학교 경영대학원에서 경영학석사학위를 취득했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서 UNSW 뉴사우스웨일즈대학교 로스쿨을 졸업하고, NSW 사법연수원을 수료하고, 호주 변호사가 되었다. UNSW 뉴사우스웨일즈대학교 로스쿨에서 법학석사학위를 취득하였다.
머리말
1. 문무왕릉비 비문 앞면 제3행 경진씨 해석
2. 문무왕릉비 비문 뒷면 제20행 분골경진 해석
▨命凝眞 貴道賤身 欽味釋▨ 葬以積薪 ▨▨▨▨ ▨▨▨滅 粉骨鯨津 嗣王允恭 因心孝友 冈▨▨▨
맺음말
영문초록
참고문헌
머리말
문무왕릉비 비문 뒷면 제20행에 나오는 “粉骨鯨津”(분골경진)을 국사편찬위원회는 “경진(鯨津)에 뼛가루를 날리셨네”라고 번역 해석하였다. 하지만 필자는 국사편찬위원회의 번역과 해석에 대하여 정면 반박하고 “粉骨鯨津”(분골경진)은 “나라를 위해 희생하고 헌신한 분골쇄신의 경진씨 즉 문무왕의 선대 태종무열왕”을 의미한다고 맨처음으로 제시한다.
문무왕릉비 비문 앞면 제3행의 “鯨津氏”(경진씨)는 문무왕의 선대왕 태종 무열왕 김춘추를 지칭한다. “鯨津氏”(경진씨)가 신라 제29대왕 태종 무열왕 김춘추를 지칭한다는 사실을 밝혀냄으로써 반만년 한국사의 최대의 미스터리가 풀리게 되었다. 비문 뒷면 제20행에 나오는 “粉骨鯨津”(분골경진)은 나라를 위해 “분골쇄신한 경진씨”라는 뜻이다. 粉骨鯨津(분골경진)은 국사편찬위원회의 해석대로의 “경진에 뼛가루를 날리셨네”라는 뜻이 아니다. “鯨津”(경진)은 ‘어느 바닷가 포구’를 말하는 지명이 아니다. “粉骨鯨津”(분골경진)의 粉骨(분골)은 삼국사기에서 기재하고 있는 “粉骨碎身”(분골쇄신)의 약자로써 “몸이 부셔지는 것도 마다하고 진심전력으로 온몸을 던져 헌신한 사람”을 지칭하는 비유적인 의미로 쓰였다.
문무왕릉비 비문뒷면 제20행의 구절에 대한 의미를 아래와 같이 자세하게 설명한다.
1. 문무대왕릉비 비문 앞면 제3행의 “派鯨津氏”(파경진씨) 해석
제3행 鯨津氏 경진씨
▨派鯨津氏
문무대왕릉비 비문 앞면 제3행의 “▨派鯨津氏”의 “鯨津氏”(경진씨)는 문무왕의 선대왕 즉 태종 무열왕 김춘추를 지칭한다. 경진씨는 헌원씨, 혁서씨, 신농씨, 이기씨, 중랑씨 (軒轅氏 赫胥氏 神農氏 伊耆氏 仲良氏) 등의 수다한 선인선현들의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고대 제왕 귀족 등 역사상 유명한 사람들을 가르킬 때 쓰는 경칭의 표현이다. 전국시대(BC 475-BC 221)에 쓰여진 竹書紀年(죽서기년)의 黃帝軒轅氏, 帝摯少昊氏, 帝顓頊高陽氏, 帝嚳高辛氏, 帝堯陶唐氏, 帝舜有虞氏, 帝禹夏后氏 등을 참조하라.
□□□□派鯨津氏에서 경진씨는 문무왕의 아버지인 태종무열왕 김춘추를 지칭한다. “□派鯨津氏映三山之闕”의 번역은, 先后(선후)가 경진씨를 파견하여 映三山之闕-삼면이 바다로 둘러 쌓인 한반도의 (국토방위상의) 결점을 반영하게 하였다.
□□□□□□□□□□□□□□派鯨津氏映三山之闕東拒開梧之境南鄰□桂之□□接黃龍駕朱蒙□□□□承白武仰□□
국편위 해석: … 경진씨(鯨津氏)를 파견하여, 삼산(三山)의 궐(闕)을 비추고, 동으로는 개오(開梧)의 지경을 막고, 남으로는 ▨계(▨桂)의 ▨과 이웃하고, (북으로는) 황룡을 맞아 주몽(朱蒙)을 태우고, … 백무(白武)를 이어 받아 …을 우러르며 …
추홍희 해석: 이에 경진씨를 파견하여 한반도의 약점을 조명하고 보고하게 하였다. 한반도는 동쪽으로는 개오라는 지역을 국경으로 하고 있고, 남쪽으로는 팔계 지방에 맞닿아 국경으로 삼고 있는데, 바다를 서로 접하고 있다. 하늘의 부름에 응한 천자가 여름철 붉은 서기를 타고 (준마처럼 빠르게 배를 달려) 내려오니 (전쟁을 불러온) 백호는 (자기죄상을 자백하고 두 손을 들어 하늘에 빌었다) (그리하여 세상에 평화가 찾아오고 도의의 정치를 펼치니 인재들이 사방에서 몰려들어 궁전안에는 봉황이 내리고 교외밖엔 기린이 뛰어 놀며 바다에는 청룡이 노닐었다).
제3행 문장을 이해의 편의를 위해서 띄어쓰기로 재배치하면 다음과 같다.
□□派鯨津氏 映三山之闕 東拒開梧之境 南鄰八(桂)之際(海)接 黃龍 駕朱蒙 (馳赤馬) (招)承白武 仰▨▨」
□派
“□派鯨津氏映三山之闕”의 “□□□派”파 앞의 결자를 메꾸어 본다면 글자 뜻 그대로 파견하다의 의미의 단어인 於是遣派(어시견파)가 적절하다. 오늘날 남한에서는 상호(相互)라고 쓰는데 북한에서는 호상(互相)이라고 쓰니 남북한간에 어감이 약간 달라진 측면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상호존중, 상호작용이라는 말의 의미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듯이, 오늘날에는 파견이라는 어순으로 익숙하지만 遣派(견파)의 어순으로 쓰더라도 같은 뜻이다. 한비자(韓非子) 팔경(八經)에서 “兵士約其軍吏 遣使約其行介”의 표현을 보라. 遣使(견사)는 派遣使者(파견사자)의 뜻인데, “견당사”의 말로 익숙한 표현이고, 使(사)는 派(파)의 뜻과 같은 ‘사람을 보내다, 파견하다의 뜻이다. 누가 경진씨를 파견했을까? 당연히 경신씨의 선왕 선후(先后)가 파견했다. 선덕여왕, 진덕여왕이 되겠다.
鯨津氏 경진씨
“鯨津氏”경진씨는 사람을 지칭하는 말이다. 경진씨는 헌원씨, 혁서씨, 신농씨, 이기씨, 중랑씨 (軒轅氏 赫胥氏 神農氏 伊耆氏 仲良氏) 등의 수다한 선인선현들의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고대 제왕 귀족 등 역사상 유명한 사람들을 가르킬 때 쓰는 경칭의 표현이다. 전국시대(BC 475-BC 221)에 쓰여진 竹書紀年(죽서기년)의 黃帝軒轅氏, 帝摯少昊氏, 帝顓頊高陽氏, 帝嚳高辛氏, 帝堯陶唐氏, 帝舜有虞氏, 帝禹夏后氏 등을 참조하라.
鯨津氏(경진씨)는 구체적으로 누구를 지칭하는가?
비문 전체의 문맥을 통해서 판단하면, 경진씨는 문무왕의 아버지인 김춘추 태종무열왕을 가르킨다.
돌아가신 선왕의 정식명칭을 비문 글자수에 한계가 있는 비석에다 그런 공식명칭을 쓰기 보다 또 그런 경칭은 역사상 유명 인물의 반열에 올려 놓는 경칭이라는 측면에서 보더라도 氏(씨) 글자를 생략하고서 鯨津(경진)으로만 쓴 것은 고대 당시에 허용되던 표현으로 이해된다.
비문 뒷면 제20행에 등장하는 粉骨鯨津(분골경진)은 나라를 위해 “분골쇄신한 경진씨”라는 뜻이다. 粉骨鯨津(분골경진)은 국편위의 해석대로의 “경진에 뼛가루를 날리셨네”라는 뜻이 아니다. 粉骨(분골)은 삼국사기에서 기재하고 있듯이 粉骨碎身(분골쇄신)의 약자로써 “몸이 부셔지는 것도 마다하고 진심전력으로 나라를 위해 온몸을 던져 헌신한 사람”을 지칭하는 비유적인 의미인 것이지, 경진에 뼈를 분(粉)하다의 개별축자적 낱말의 뜻으로 쪼개진 의미가 아니다.
삼국사기 “兄弟及兒 懷金拖紫 榮寵之極 夐古未有 粉身碎骨 望盡驅馳之用 肝腦塗原 仰報萬分之一”.
“저희 형제와 아들들이 금인(金印)을 품고 자주색 인끈을 달게 되어 영예와 은총의 지극함이 전에 없었던 것이라서 몸이 부스러지고 뼈가 잘게 부셔져도 모두 부리시는데 쓰임이 되기를 바랐으며, 간과 뇌를 들판에 발라서라도 은혜의 만 분의 일이라도 갚고자 하였습니다.” (국편위 번역).
제3행 요약
□□□□□□□□ | |
□□□□派鯨津氏 | (경진씨는 문무왕의 아버지인 태종무열왕 김춘추를 지칭한다.) 先后(선후)가 경진씨를 파견하여 |
映三山之闕 | 삼면이 바다로 둘러 쌓인 한반도의 (국토방위상의) 결점을 반영하게 하였다. |
東拒開梧之境 | 동쪽으로는 개오와 국경을 맞대고 있고, |
南鄰□桂之□- 南鄰(八)桂之(際) |
남쪽으로는 팔계와 국경을 접하고 있다. |
□接- (海)接 |
이 동쪽과 남쪽의 국경은 바다를 끼고 있다. |
黃龍駕朱蒙□□□- 黃龍駕朱蒙(驅百靈) |
천자의 해군 전함이 붉은 구름을 타고 새처럼 말처럼 쏜살같이 달려 오니 |
□承白武 (招)承白武 |
(전쟁을 불러온) 서방 백호는 (자기 죄상을 자백하고) |
仰□□□- 仰(人翻馬) /(仰叫皇穹) |
(두 손을 들고 항복하고 하늘에다 죄를 용서해 달라고 빌었다) (말들이 넘어지고 병졸들은 땅으로 떨어져 하늘을 쳐다보는 아수라장이 되고 크게 패했다.) |
□□□□□□□□ |
문무왕릉비 비문 뒷면 제20행 분골경진 해석
문무왕릉비 비문 뒷면 제20행 구절
▨命凝眞 貴道賤身 欽味釋▨ 葬以積薪 ▨▨▨▨ ▨▨▨滅 粉骨鯨津 嗣王允恭 因心孝友 冈▨▨▨
국편위는 제20행을 다음과 번역했다: … 참됨으로 응집하게 하시고, 도(道)는 귀하게 몸은 천하게 여기셨네. 부처의 가르침을 흠미하여, 장작을 쌓아 장사를 지내니… 경진(鯨津)에 뼛가루를 날리셨네. 대를 이은 임금은 진실로 공손하여, 마음에서 우러난 효성과 우애가 … (국사편찬위원회, 경주 문무왕릉비 (慶州 文武王陵碑) http://db.history.go.kr/id/gskh_005_0010_0020_0030).
필자는 국편위의 해석을 비판하고 문무왕릉비 비문 뒷면 제20행을 다음과 같이 해석 설명한다.
비문 뒷면 제20행 구절 번역 해석
▨命凝眞
凝眞
액체나 기체 같은 것이 엉기고, 엉겨 붙어 고체(固體)로 되다의 뜻 응고(凝固)되다, 응결(凝結)되다라는 뜻의 낱말이다. 이 엉겨붙다의 뜻을 가진 凝(응)자는 명령을 엄정 바르게 하다-使教令嚴整는 뜻을 비유적으로 이르기도 한다. 역경 화풍정에 “象曰 木上有火 鼎 君子以正位凝命”이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이에 대한 왕필의 주는 “凝者 嚴整之貌也 … 凝命者 以成教命之嚴也”으로 풀이하고, 凝(응)을 이루다-成(성)의 뜻으로 설명하고 있다. 象曰 木上有火 鼎 君子以正位凝命- 나무 위에 불이 있는 것이 정鼎-솥의 모양이니, 군자가 이를 본받아 자리를 바르게 하여 천명을 완수한다. 布嚴凝之命(포엄응지명), 종교를 통해 본다면, 하나님의 가르침 그것을 엄정하고 바르게 했다는 뜻이니, 천주교에서의 성인의 반열에 올랐다는 뜻에 가깝게 그런 의미로 새겨볼 수 있다.
凝자의 뜻 嚴寒(엄한)의 뜻으로 嚴凝(엄응)이라는 단어가 있다. 이와 비슷한 뜻으로 嚴命(엄명)이 있는데, 엄명은 아버지의 명령-父親 命令이라는 뜻이다. 엄명이 여기의 결자 부분을 메꿀 수 있는 적절한 단어가 아닐까? 분골쇄신한 아버지 김춘추 태종 무열왕이 미처 다하지 못한 삼국통일의 대업을 완수해내라는 것 그것이 엄명이라고 생각되지 않는가? 여기에서 유언을 받들다라는 의미가 분명하게 읽힌다. 따라서 “▨命凝眞”의 결자 부분의 글자를 “嚴命凝眞”(엄명응진)으로 메꿀 수 있는데, 이 구절의 뜻은 ‘아버지의 엄한 분부-엄명-유훈을 진실로 이루었도다’.
국편위는 “▨命凝眞”을 “참됨으로 응집하게 하시고”라고 번역하였는데, 이것은 주어 동사 목적어 부사 쓰임새의 문법을 무시한 잘못된 번역에 해당한다.
우리들의 동양화 미술 이론을 논할 때 진경 산수화라는 장르를 흔히 꺼내는데 이 때의 진경은 한자로 眞境진경 즉 절애 있는 곳, 선경(仙境)을 의미하는 말이다. 채근담에서 “風括浪靜中 見人生之眞境” 표현이 나타나는데, 여기의 진경은 삶의 진정한 경계를 의미한다. 유신의 보허사에 등장하는 “凝眞天地表 絕想寂寥前” 구절에서의 凝眞(응진)경이 큰 산의 벼랑 끝 절벽에 위치한 암자 그 앞에 펼쳐지는 무애의 절경을 의미한다.
貴道賤身
貴道賤身(귀도천신)은 문무왕릉 비문에 나타나는 표현이다. 貴道-도를 중시해서 賤身-몸까지를 바쳤다고 말했는데, 도道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귀도천신과 도의 개념정의에 대해 잠깐 소개하기로 한다.
貴(귀)는 귀하게 여기다 즉 중시(重視)하다의 뜻이고, 道는 종교적 의미에서의 도교 또는 일반적인 의미에서 도(道) 도리(道理)를 말하니, 重道(중도), 敬道(경도)와 같은 말이다. 貴道(귀도)는 중도, 경도의 의미 따라서 그가 배운 바를 尊重(존중)해서 그대로 실천했다는 뜻이 된다. 천신(賤身)은 자기 몸을 지칭하는 겸양의 표현이다. 따라서 천신은 獻身(헌신)하다 희생하다는 뜻이 포함된다. 따라서 貴道賤身(귀도천신)은 도리를 중시하고-重道, 그 가르침을 높게 받들고자-경도敬道, 자기 몸은 천히 여기셨구나!-賤身 이와 같이 해석된다.
좀더 부연하면, 사람의 목숨에도 귀천이 있는가? 命有貴賤(명유귀천). 만약 있다면, 귀하고 천한 것은 큰 차이가 있다는 걸까? 貴賤相懸(귀천상현). 그래서인가, 선왕인 부모님의 엄명을 진정으로 실천하고, 도리를 다하는 것을 목숨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고 자기 몸까지 기꺼이 던져 바쳤던 말인가? 사기 진세가에 나오는 “天子無戲言 言則史書之”(천자무희언언즉사서지)을 상기해 보자. 성인은 말이 곧 법이다. 한 번 내뱉은 말은 다시 주워 담을 수도 없는 것이고, 말이 곧 생명이니 자기가 한 말은 목숨을 걸고 지켜내는 것, 언행일치의 본보기가 아니겠는가?
그러면 여기서 도(道)는 ‘부모에게 효도하고 나라에 충성하는’ 그런 당연한 ‘도리(道理)’라는 그 정도의 의미로만 해석될까? 道(도)는 일반적인 의미로써 학술이나 종교적 사상 체계를 말하는데, 이런 뜻으로 우리들이 흔히 쓰는 도학(道學), 수도(修道)한다는 말이 있다. 철학 사상가로서의 도가(道家)라는 표현을 하는데 여기에는 노자, 장자가 대표적인 인물이고, 종교적으로는 도교(道教)라고 지칭한다. 유교에서 공자를 시조로 모시고, 도교는 노자를 시조로 모신다. 도교는 노자의 철학 사상에 기초를 두고 있다. 고구려 덕흥리 고분에서 보여지는 태세신앙은 도교 신앙에 속한다. 문무왕릉 비문의 귀도천신 이 구절 또한 도교와의 종교적 연관성 없이는 설명되기 힘들다. 장례식은 종교 문화와 가장 밀접한 관련성을 갖는데, 종교는 인간의 사후 문제를 다룬다는 측면에서 당연한 현상이다. 그러므로 여기서 貴道(귀도)는 도교의 종교철학적인 의미가 들어 있다고 해석하는 것이 마땅하다. 당태종 이세민의 유조에 들어 있는 구절인 道存物往(도존물왕)에서의 道(도)의 의미와 같은 맥락의 뜻을 갖고 있다.
道儒佛 도유불
625년 당나라 건국 시조 고조는 유불도 이 3교간에 우선 순위를 명확히 하고 도교를 국교로 선포했다. 고조는 당나라를 건국하면서 “三教之首 道居首”(삼교지수도거수)-도교를 으뜸 순서로 올려 놓고, 노자를 시조로 모시고 숭상하며 노자 사당을 건립하였다. “道先 儒次 佛末” 즉 ‘도교 제일, 유교 차선, 불교 말석’으로 말하며 도유불 종교간 지위와 순서를 명확하게 정한 당고조 이연의 종교 정책은, 도교파의 지원으로 현무지변에서 승리하고 후계자로 올라선 당태종의 국정철학으로 더욱 확고해졌다. 天子下詔曰 老教孔教 此土元基 釋教後興 宜崇客禮 今可 老先 次孔 末後釋宗 이 구절의 조문과 같이, “老先 次孔 末釋”(노선 차공 말석)으로 정하며 도유불의 종교적 지위 순서를 명확히 정한 당고조의 하조문 내용은 당 서명사 승 도의가 편찬한 “集古今佛道論衡”(집고금불도논형) 高祖幸國學當集三教問僧道是佛師事에 실려 있다. 주성명의 책(周誠明, “唐人生命思想之多元探討”, 元華文創股份有限公司, 2017, 399쪽)에서는 이 이외의 다른 소스까지 소개하고 있음을 참조하라.
欽味釋(軀) 葬以積薪
欽味釋▨
“出征執有罪 反釋奠于學 以訊馘告” (《禮記‧王制》).
“欽味釋▨”의 결자 부분을 국편위가 “欽味釋典”(흠미석전)으로 메꾼 것은 순전한 억측에 지나지 않는다. 금서룡이 불교적 해석에 기반하고 화장식으로 장례식으로 치룬 사실에 입각하여 “흠미”와 “장이적신”이라는 구절 사이에 “釋典(석전)”이란 말을 집어 넣고 해석하였다. “釋典”(석전)이란 佛經(불경)을 뜻한다. 국편위는 “欽味釋▨ 葬以積薪” 부분을 “부처의 가르침을 흠미하여, 장작을 쌓아 장사를 지내니”라고 번역했는데, 안타깝게도 이런 해석은 어떤 학문적인 증거에 입각한 것이 아니고, 이런 국편위 번역은 크게 잘못되었다. 문무왕 시대는 당나라에서 국교가 도교인 것과 마찬가지로 도교가 그 절정을 구가하던 시대였음을 상기하라. 문무왕릉비 비문 원문 자체에서 “歸道賤身”(귀도천신)이라는 표현이 분명하게 적혀있다는 역사적 팩트를 상기하라.
葬以積薪(장이적신)과 欽味(흠미)의 뜻을 보다 자세히 살펴보자.
화장식으로 장례를 치룬 것은 불교가 유입되기 이전 일찍이 도교에서 행해지던 장례풍습이었다.
欽味釋▨葬以積薪▨▨▨▨▨▨▨
欽味(흠미)는 欽敬玩味(흠경완미)의 줄임말이다. 欽敬(흠경)은 흠복하다 경복(敬服)하다 흠모하다 경모하다 欽佩尊敬(흠패존경)의 뜻이다.[1] 玩味는 뜻을 잘 생각해 보고, 깊이 새겨 보다, 음미하다의 ponder의 뜻이다. 미술품이나 화초들을 가꾸며 취미를 감상하다는 뜻으로 玩味(완미)를 쓴다. 그와 같이 어떤 뜻을 곰곰이 생각해 본다는 뜻이다. 欽味(흠미)가 쓰인 예문을 찾아보면 위서(魏書) 조유(趙柔)전의 “柔爲之注解 咸得理衷 爲當時俊僧所欽味焉” 구절이 발견된다. 欽味(흠미)를 사전에서 살펴보면, 欽敬玩味(흠경완미) 즉 영어로 admire의 뜻, 존경한다는 뜻이다. 옛날에 권위있는 사람들은 허리띠 패를 착용했는데, 그래서 권위 있고 존경받는 것을 欽佩敬重(흠패경중), 欽佩尊敬(흠패존경), 欽佩(흠패), 欽敬(흠경)이라고 말했다.
釋滯 석체
우리들이 곰곰이 생각해 본다는 경우는 것은 어떤 무언가가 명확하게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을 경우일 것이다. 목에 무언가가 걸쳐서 넘어가지 않고 소화가 안되는 경우 체했다는 표현을 쓰는데 뭔가 막혀 있는 것을 풀어내어 의문을 해소하는 것을 辯疑惑釋凝滯(변의혹석응체)라고 말한다. 깊은 의문을 푸는 것을 决疑釋滞(결의석체)라고 말한다. 갈홍(葛洪)의 抱樸子‧釋滯(포박자석체)편을 참조해 보자. 釋滯(석체)라는 단어의 뜻은 解疑釋滯(해의석체) 즉 解決 難疑 問題 어떤 풀리지 않고 꽉 막힌 문제를 해결해 내다의 뜻이다. 解釋難疑의 뜻인 釋疑(석의)와 비슷한 뜻이다. 진서(晉書)형법지의 “法欲必奉 故令主者守文 理有窮塞 故使大臣釋滯” 예가 그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장이적신의 내용이 전혀 풀리지 않는 내용의 문제인가? 유신의 애강남부에서 유신이 표현하듯 환군산은 사람의 정신과 몸의 관계를 땔나무와 불의 관계로 비유해서 설명해 냈고, 또 불교에서 신불멸론과 신멸론 사이에서 3세기경부터 열띤 논쟁이 일어났음을 참조해 보고 또 영광전부와 유신의 애강남부에서 언급한 “영광불멸”의 문제는 익히 이론적으로 설명이 잘 되어 있었던 영역에 해당한다.
釋(석) 글자는 解(해)의 解說(해설)의 뜻 즉 말로써 풀이하다 注釋(주석)하다는 의미의 낱말이다. 또 釋(석)은 석방하다의 낱말에서 알다시피 놓아주다의 뜻이 있다. 그래서 釋手(석수)는 손을 놓다-放手, 不釋(부석)은 놓지를 못하다 애도를 멈추지 못하다 letting go를 못하다 不能忘掉의 뜻이다. 초사 哀郢(애영)에 “心絓結而不解兮 思蹇產而不釋 마음의 울적함 풀리지 않고 생각은 막혀 잊지를 못하네”의 구절이 이와 같은 뜻이다.
또 釋(석) 글자는 석가를 뜻하니 석가모니를 釋氏(석씨)라고도 쓴다. 하지만 문무왕릉비문의 내용에서 불교의 개념은 전혀 등장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상기하라. 비문에서 “貴道賤身”(귀도천신)했다는 표현을 분명하게 썼지 않았는가? ‘도(道)의 가르침을 높이 귀하게 여겼고 자신의 몸은 천하게 여기셨네’라고 바로 앞 구절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석전(釋典)이 아니라 석전(釋奠)
만약 석전이라면 석전(釋典)이 아니라 석전(釋奠)일 것이다. 국편위는 “欽味釋典”으로 메꾸어서 “부처의 가르침을 흠미하여”로 번역하였다. 금서룡이 “欽味釋▨”을 “欽味釋典”(흠미석전)으로 메꾸었는데 한국사학계는 그대로 이어받아서 쓰고 있다. 하지만 석전과 같은 뜻인 공자의 제사를 모신다는 뜻으로 석전(奠)자가 원래의 비문 구절의 글자였을 것이다. “欽味釋奠”(흠미석전) 즉 공자를 존경하여 간단한 추모 비용을 동백나무잎에다 종이 지폐를 끼워 넣어서 예의를 표한 것이다.
귀도천신 바로 앞구절은 “▨命凝眞” 구절인데 이 결자부분은 “嚴命凝眞”(엄명응진)으로 메꾸어 본다면 ‘아버지의 엄명을 정말로 이루어냈도다!’의 뜻으로 번역해석된다. 이 “嚴命凝眞 貴道賤身”의 뜻은 달리 말하면 “生盡其孝 死盡其忠”으로 표현할 수 있다. 이 표현을 번역하면, ‘살아서는 부모에 대한 효도를 다했고 죽어서는 국가에 대한 충성을 완수했네’.
釋之
여기서 “欽味釋▨“에 들어갈 내용의 말은 “葬以積薪”과 그 후 결자부분의 “▨▨▨▨▨▨▨滅”의 내용을 곰곰이 잘 생각해본다는 의미의 말이 연결되어야 함을 알 수 있다. 이런 뜻의 글자가 바로 지시대명사 연결사 之(지)이다. 영어의 which, that의 기능의 ‘之’이다. 이런 역할 쓰임새의 之의 예문을 시경의 구절에서 찾아 보자.
“乃寢乃興 乃占我夢 吉夢維何 維熊維羆 維虺維蛇 大人占之 維熊維羆 男子之祥 維虺維蛇 女子之祥” (시경, 小雅 斯干).
잠자고 일어나 / 지난 밤 내 꿈을 점쳐보니 / 좋은 꿈 길몽이긴 한데 그게 무슨 뜻인지? / 흑곰 대웅이 나온 꿈이었네. / 살무사 뱀이 나온 꿈이었네. / 어르신께 점쳐달라고 하니 / 흑곰 대웅은 / 사내아이 태어날 징조이고 / 살무사 뱀 꿈은 / 딸아이 태어날 징조일세.
여기의 “大人占之”(대인점지) 표현이 그것이다. 간 밤에 꾼 꿈 그게 무슨 뜻인지 해몽하는 것을 “占之”(점지)라는 표현을 쓴 것이다. “釋之”는 “占之”하고 같은 뜻이므로, 시경 사간의 “대인점지 유웅유비”의 문장구조와 비문의 “흠미석지 장이적신”의 문장 구조는 동렬구조이다.
따라서 “釋▨“를 “釋之”로 연결하면 “欽味釋之“가 되어 “欽味釋之 葬以積薪”(흠미석지장이적신)의 구절로 메꾸어진다. 여기서 釋(석)은 풀이하다, 해석하다의 의미이지, 불경을 뜻하는 “釋典”(석전)의 뜻이 아니다. ‘장이적신이라는 그 뜻을 곰곰이 되새겨 생각하고 풀이해 보니’라는 의미가 된다. ‘나뭇단을 쌓고 불태워 화장식으로 장례식을 치르었다는 문무왕의 장례식의 의미를 곰곰이 생각해 보니’, “薪盡火傳 靈光不滅”의 뜻이 있지 않는가? “薪盡火傳”(신진화전)은 ‘땔나무의 형체가 사라지고 난 뒤에도 그 형체와는 다르게 다른 나무에 옮겨 붙어 불씨를 계속 이어간다’는 뜻이고, 이 말은 불이 그렇게 계속 이어지듯이 우리 사람들도 비록 몸은 없어 사라진다고 해도 정신과 마음은 다음 세대에게 계속 이어진다는 것, 또 불과 같이 사람의 정신 또한 영원하다는 뜻의 “靈光不滅”(영광불멸)의 뜻과 상통한다. 아! 참으로 문무대왕답도다!
정도자의 “신불멸론”
“釋之”라는 단어의 의미가 무엇인지 그것이 담긴 또 다른 예문 하나인 정도자의 “신불멸론” 중에 나오는 구절을 인용해 보자.
“有斯難也 形神有源 請為子循本而釋之 夫火因薪則有火 無薪則無火 薪雖所以生火 而非火之本 火本自在 因薪為用耳 若待薪然後有火 則燧人之前 其無火理乎 火本至陽 陽為火極 故薪是火所寄 非其本也 神形相資 亦猶此矣 相資相因 生塗所由耳 安在有形則神存 無形則神盡 其本惚恍不可言矣 請為吾子廣其類以明之 當薪之在水則火盡 出水則火生 一薪未改 而火前期 神不賴形又如茲矣 神不待形 可以悟乎”. (鄭道子, 神不滅論, 弘明集券五).
여기서 ‘釋之’(석지)라는 말 대신에 그것과 똑같은 의미의 다른 말을 쓴다면 “釋文”이 적절할 것 같다. ‘釋文’(석문)은 “經典釋文”(경전석문)이라는 표현에서 보듯이, 문자의 독음(讀音)과 뜻을 해석하다, 고문자(古文字)를 고증하여 그 잣구의 의미를 해석하다, 주석하다, 영어로 말하면 어노테이션(annotation)의 뜻이다. 그러므로 “장이적신”의 의미를 곰곰이 해석해 보니, “신진화전”, “영광불멸”이라는 뜻이 있지 않는가? 대대손손 영원히 남을 위대한 문무대왕이시여! 당신은 분골쇄신의 경진씨-태종 무열왕 김춘추를 이어받은 왕답게 정말 믿음직스럽고 공경스럽구나!
神不滅論(신불멸론) 대논쟁
왜 불교에서 “形神生滅論”(형신생멸론) 대논쟁이 벌어졌는가? 불교는 우리의 전통 종교가 아니라 인도 힌두교에서 파생되어 중국을 통해 우리나라로 유입되고 전래된 외래종교였다. 사마담의 논육가요지에 불교의 요지는 들어 있지 않다. 대개 변혁의 시기에 외래종교가 유입된다. 조선말기에 기독교가 유입된 것을 상기하라. 고대 그리스 철학자 헤라클리터스가 말한 것 같이 같은 강물에 두 번 다시 발을 담굴 수는 없는 법이고, 한 번 흘러간 물은 되돌아 오지 않는다-流水不歸(유수불귀). 정도자의 신불멸론과 환군산자의 新論形神(신론형신론)을 참조하라. 환군산자는 불교가 중국에 전래되기 이전의 사람이다.
薪盡火傳
薪盡火傳(신진화전)은 장자(莊子)의 養生主(양생주)에 나오는 柴雖燒盡 火種仍可留傳 구절의 설명대로 땔나무는 불이 다 타고나면 사라지지만 불은 영원히 전해진다는 뜻에서 불굴의 정신이 이어지는 인류의 전통, 스승에서 제자로 이어지는 영원한 인류의 지식 승계와 전통의 뜻을 함의하고 있다.
薪盡火傳(신진화전)을 사전에 찾아보면 薪火相傳과 같은 뜻으로 풀이하고 있다. 薪火(신화)는 횃불, 소나무 방울에 불씨가 남아 옮겨 붙는 관솔불, torch, 火炬(화거), 불을 뜻한다. 불씨는 다른 장작 나무가 다 타고나서도 그 장작나무 형체가 사라지고 난 뒤에도 그 형체와는 다르게 다른 나무에 옮겨붙어 불씨를 이어간다. 그래서 불씨는 대대상전(代代 相傳) 대대로 전해진다-代代流傳(대대유전). 사람은 몸체가 사라지고 난 뒤에도 그 자손과 후손을 통해서 상속되는데, 나무가 불을 이어가듯이 계속 살아 남는다는 비유인 것이다. 여기서 불에 타는 나무는 사람의 몸 형체이요, 불은 사람의 마음과 정신에 비유된다.
薪盡火傳(신진화전)의 출처는 指窮于爲薪 火傳也 不知其盡也 문장이 나오는 장자의 양생주이다. 火傳은 불씨가 꺼지고 나도 다시 살아나 이어지듯이 어떤 물건의 물질이나 정신의 정수가 대대로 이어진다-代代流傳(대대유전)의 뜻이다. 화전(火傳)은 양나라 왕승유의 예주묘지명의 구절에도 나타난다, “思魯連之辭賞 慕田疇之高蹈 而火傳川逝 長途已迫”. 여기의 川逝(천서)는 강물이 흐르듯, 세월이 흘러도의 뜻이다. 그러므로 指窮于爲薪火傳也不知其盡也 번역은, “불씨는 계속해서 이어진다. 기름을 붓고 땔감을 태우면 기름이 다 타더라도 불은 차례대로 옮겨져서 그 끝이 없이 계속 타오른다.”[2]
여기서 指(지) 글자를 기름 지방 뜻의 脂(지)를 가르키는 말이라고 의역하는 것이 장자의 구절 의미를 더 쉽게 이해하는 측면이 있어서 이와 같이 해석했는데, 指(지) 글자는 손가락이라는 뜻만 있는 것이 아니고 고대에서는 ‘旨’와 같은 의미를 가졌다. 그러므로 취지라는 말처럼 意義(의의),目的(목적)이라는 뜻을 가졌다는 점에 입각하여 장자의 구절은 땔나무가 다 타고나서도 불씨는 계속 이어진다는 결론을 알기 바란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爲薪(위신)은 여기서 爲(위) 글자는 取(취) 글자의 의미 즉 取柴薪(취시진)의 의미이므로, 窮於爲薪(궁어위신)은 땔나무가 다 타고 나더라도, 화전(火傳)은 대대로 이어진다는 뜻이다. 땔나무는 다 타버리고 난다 해도 불 자체는 그 땔나무가 있는 한 계속 옮겨 가는 거니, 어느 누가 그 끝을 알 수 없는 것이다-不知其盡也. 땔나무가 다 연소되더라도 다시 땔나무를 갖다 대면 불은 옮겨 붙는다. 불이 다른 곳으로 옮겨가서 다시 타듯이 사람의 삶 또한 다음 세대로 이어진다는 땔나무와 불과의 관계를 비유해서 우리 인류의 삶에서 비록 우리 몸뚱아리는 유한하고 흙으로 돌아가지만 인간 정신은 면면이 이어진다는 대대상전의 의미를 설명한 말로 이해된다.
穀神不死
穀神不死(곡신불사)는 당태종의 “溫泉銘”(온천명)에 등장한다. 薪盡火傳(신진화전)의 의미는 穀神不死(곡신불사)의 뜻과 그 맥을 같이한다. 곡신불사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간략히 설명한다.
노자 도덕경의 “谷神不死 是謂玄牝玄牝之門 是謂天地根 綿綿若存 用之不勤” 구절이 있는데, 이를 두고 많은 사람들이 각자 나름대로 해석을 하고 있다. “곡신불사”를 신이 죽지 않고 영원히 살고 있는 계곡”으로 해석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영원불멸의 계곡의 정신이 있다”고 해석하는 사람들도 있다. 어느 경우 등 해석 나름대로 의미가 통한다. 노자가 말한 본질적인 ‘여성성’의 의미를 이해한다면 말이다. 어찌됐든 영생불사의 그곳이 있다면 물과 불이 서로 만나는 지점 즉 확 트인 분기점이 그곳에 가깝다고 생각된다.
한편 ‘곡신불사’를 그러한 영원불멸의 정신이 있다는 정신의 의미를 가진 것으로 해석한다면, 천문이나 계곡이나 여성의 검은 그곳이나 그 같은 ‘수동성’이 신비스런 생명력을 이어가는 요체라고 보는 것이다. ‘요철’과 같은 두 가지 서로 반대되는 모습으로 모든 기구가 만들어 있음을 볼 때 이 세상은 절구와 절구통같이 어느 한 쪽만으로는 부족하고 서로 힘을 합쳐서 하나의 의미를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위에서 내려찍는 절구보다 그것을 받쳐주는 역할을 하는 절구통이 더 중요하다고 보더라도 절구통의 존재는 절구가 없으면 또한 의미가 없을 것이다.
겉으로 드러나기는 쉽지 않지만 승리에 꼭 필요한 것은 여성적인 자기 희생이라고 보는 것이다. 이렇게 밑받친다는 의미에서 자기 희생적인 뜻이 강조되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것은 이러한 우주만물이 움직이고 작동하는 기본적인 음양의 원리원칙을 기초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 세상을 이어가는 영원한 하나의 정신이 있다면 그것은 높은 곳 또는 깊숙한 곳 또는 낮은 곳으로 임하는 계곡과 같은 것인데, 이를 남녀간의 성질로 보면, 남성적인 공격성보다 여성적인 수동성이라고 본다. 부드러운 것이 강한 것을 이긴다고 보고서 항상 겸손의 자세를 강조하고 또 모든 것을 포용하는 관용의 정신을 강조한다. 노자가 강조한 여성적 가치 페미니즘의 가치를 국가통치 정치철학으로 전면에 내세운 나라는 중국의 당나라이었다. 모란꽃은 여성을 상징하는 꽃이다. 당나라는 모란꽃을 국가의 통치철학을 대표하는 국화로써 채택했다.
貴道賤身 欽味釋(軀/欽味釋縛/欽味釋奠) 葬以積薪
위에서 설명한대로, 釋滯(석체), 釋之(석지), 釋文(석문), 釋縛(석박), 釋奠(석전), 薪盡火傳(신진화전), 葬以積薪(장이적신), 神不滅論(신불멸론)에 대한 기초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貴道賤身 欽味釋(奠) 葬以積薪”에서의 결자 부분의 의미를 찾아낸다면, 欽味釋奠(흠미석전) 또는 欽味釋軀(흠미석구) 또는 欽味釋縛(흠미석박)의 표현이 도출된다. 장례식을 치를 때 영구를 극히 존중하고 마지막 예를 다해 표하는 그 모습을 상상하라. 천천히 운구를 옮기면서 최고의 예를 표하지 않는가? 그 때 존경하는 고인이 평소 행동과 남긴 말씀을 되새기지 않는가? 欽味(흠미)한다는 뜻이 그것이다. 그러면서 고인의 몸이 담긴 운구를 석방해서 나무 위에 놓고 불을 지펴 화장식을 치르었다는 사실을 말해 주는 표현으로써 釋軀(석구)가 어울린다. 釋軀(석구)와 같은 뜻의 단어로 捐軀(연구)가 있다. 捐軀(연구)는 국가를 위해서 기꺼이 생명까지를 포기하고 자신의 목숨을 희생하는 것 즉 舍棄身軀(사기신구), 爲國捐軀(위국연구)를 뜻한다. 欽味釋軀 葬以積薪(흠미석구 장이적신)은 소장으로 장례식을 거행하기 위해서 쌓은 나무 위에 관을 옮기고 화소장을 치르는 그 구체적인 장면 그리고 그에 대한 비유적인 의미를 말해준다.
釋軀
解釋(해석), 注釋(주석)하다의 뜻에서와 같이 해설하다의 뜻이 있고, 冰釋(빙석) 즉 얼음이 녹다는 뜻에서와 같이 解除(해제), 消散(소산)의 뜻이 있고, 범인을 保釋(보석) 허가하고 釋放(석방)하다에서와 같이 사면(赦免)하다, 놓아주다의 뜻이 있고, 춘추좌전의 “諸侯釋位 以間王政”(제후석위 이간왕정)-제후들이 자신의 지위를 버리고 왕정(王政)을 간섭하였다-구절의 뜻에서와 같이 放棄(방기)하다, 버리다, 舍去(사거)-놓고 가버리다의 뜻이 있고, 한서에서 자주 나오는 “釋服”(석복) 즉 옷을 벗는다-탈상하다-는 解脱(해탈)의 뜻이 있다.
釋軀(석구)는 ‘몸을 버리다’는 뜻이 되므로 석구는 捐軀(연구)라는 단어의 뜻과 같다. 捐(연)은 재단기금에 재산을 기부 출연하다의 뜻과 같이 자기의 귀중한 재화를 기꺼이 포기하고 희사하는 것을 뜻하는 낱말이다. 捐軀(연구)는 국가와 정의를 위해서 기꺼이 생명까지를 포기하고 자신의 목숨을 희생하는 것-舍棄身軀(사기신구), 爲國捐軀(위국연구)를 뜻한다. 그러므로 앞서의 문장에 나오는 귀도천신과 비슷한 뜻이다.
결론적으로 欽味釋軀(흠미석구)는 ‘국가를 위해 몸을 던진 문무왕의 희생 정신과 그의 유지를 받들고 그 깊은 의미를 곰곰이 되새기면서’의 뜻이 된다.
정림사 평백제비에서의 “捐軀殉國之志” (연구순국지지)의 구절이 바로 欽味釋軀(흠미석구)의 뜻을 모방한 표현이 된다.
“欽味釋▨ 葬以積薪”은 국편위의 번역대로의 “欽味釋典 葬以積薪” 흠미석전 장이적신의 문장이 아님은 이제 명백해졌다. 국편위는 “釋典”이라는 글자로 메꾸워서 “欽味釋典”(흠미석전)을 “부처의 가르침을 흠미하여”로 해석하였다. 하지만 당태종의 비문에서와 같이 부처가 아니라, 釋奠(석전)으로써 공자의 가르침을 의미할 것이다.
貴道賤身 欽味釋縛 葬以積薪
비문 뒷면 제20행의 “欽味釋▨ 葬以積薪”(흠미석▨ 장이적신) 부분을 “欽味釋典 葬以積薪”으로 해석해온 지금까지의 한국사학계의 결론을 적극적으로 반박하여, 나는 欽味釋▨ 부분을 欽味釋縛(흠미석박)으로 또는 欽味釋奠(흠미석전)으로 해석하고자 한다. “欽味釋▨ 葬以積薪”(흠미석▨ 장이적신)의 결자 부분을 欽味釋縛 葬以積薪(흠미석박 장이적신)으로 해석할 때 보다 완벽한 의미가 통한다.
“釋縛焚櫬”(석박분친)은 역사서에 그 사례가 많이 등장하는 성어이기도 하다.
한편 “欽味釋典”(흠미석전)으로 해석한 최초의 사람이 일제시대 식민사학을 개창한 경정제대 교수 금서룡이었다. 그의 육필원고를 보면 금서룡은 欽味釋▨ 결자부분을 “欽味釋典”(흠미석전)으로 창작하고 끼워 넣었다.
하지만 欽味釋典(흠미석전) 즉 “불경을 흠미해서 나뭇단을 쌓아올리고 화장을 했다”고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貴道賤身 欽味釋奠(귀도천신 흠미석전) 즉 귀도천신의 공자나 노자를 흠미해서 장이적신했다는 의미가 문무대왕의 죽음에 맞는 내용이 된다. 흠미석전은 춘추좌전의 역사서 기록-昭公四年: “成王克許 許僖公如是 王親釋其縛 受其璧 焚其櫬-을 토대로 해석된다.
문무대왕은 삼국을 통일한 선구자이고 전쟁포로들의 속박된 삶을 풀어준 성현이었다.
“欽味釋▨ 葬以積薪” 부분을 “부처의 가르침을 흠미하여, 장작을 쌓아 장사를 지내니”라고 번역한 국편위의 해석은 단어와 어구와 구절과 문장과 전체 비문과의 의미 연결상 전혀 맞지 않고 크게 잘못된 해석이다. 만약 欽味釋典(흠미석전)이라면 비문의 글자를 고의적으로 마멸시키는 비문에 대한 테러행위를 감행했을 이유가 따로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국편위는 비문 해석을 시도함에 있어서 마멸된 글자 한 글자를 메꾸더라도 그 글이 나타내는 단어와 구절과 문장과 전체 비문 내용과 연결지어서 부분과 전체적 의미가 서로 온전하게 연결되어 해석되어야 할 것이다. 공자의 서수획린의 의미를 각자 나름대로 해석한다고 해도 춘추의 역사와 공자의 삶 전체를 통해서 해석되어야 할 것이고, 문무대왕릉비 비문 원문이 마멸 훼손되고 사라진 이후의 “欽味釋▨” 문장은 그 정확한 글자가 이미 사라진 이상 ‘절필지운’으로 여겨져야 한다. “欽味釋▨”을 “欽味釋典”(흠미석전)이라고 해석한 금서룡과 그 아류들이 저지른 잘못은 즉시 수정되어야 한다.
靈光不滅 영광불멸
영광전(靈光殿)은 공자의 고향인 산동성 곡부에 세워진 사당인데, 한경제의 비 정희가 낳은 자식인 노공왕 유여(?-BC 128)가 이곳의 제후로 있던 시절에 중건했다. 경제와 정희 사이에 낳은 자식의 후손으로는 유명한 삼국지 시대 촉한을 세운 유비 황제가 있다. 유방의 아들인 한문제와 한경제는 한무제의 어머니 두태후처럼 도교를 신봉하고 도교의 정치철학으로 한나라의 기틀을 굳건히 다진 현왕이었다. 왕연수가 영광전부 魯靈光殿賦에서 다른 궁전들은 전란으로 인해 황폐화되었는데 오로지 영광전만이 살아 남은 이유를 서술했고, 여기에 皆見隳坏 而靈光巋然獨存(개견휴배 이영광규연독존) 표현이 있다. 隳坏휴배는 毀壞훼괴, 廢棄폐기의 뜻이고, 巋然규연은 홀로 우뚝 선 모양을 뜻하고, 靈光영광은 영광전의 이름 이외에 다른 뜻이 있는데, 신비한 광채, 왕이나 성현의 덕택, 인간의 선한 본성, 碩果僅存석과근존 즉 마지막까지 남아 있는 큰 열매 그리고 이에 비유적인 의미로 오래 남아 전하는 위대한 사람의 뜻이 있다. 靈光영광의 靈은 靈氣(영기) 즉 살아 있는 정기(精氣)를 내뿜는 것의 의미와 통한다. 또 忽瞟眇以響像 若鬼神之仿佛 (홀표묘이향상 약귀신지방불) 표현이 나오는데, 그렇게 신기하게 쌓은 사당의 의미가 구름 속에 숨은 달처럼 희미해서 정확한 의미를 알 수 없었고 또 마치 죽은 사람처럼 금방 귀신이라고 나올 것 같은 그렇게 숨어 있는 그 무언가에 홀린 듯하는 사람들이 느끼는 두려움과 경외감을 가지게 되었기 때문에 숱한 전란 속에도 파괴되지 않고 살아 남지 않았을까?
또 영광전부 마지막 연에서 ‘그 모습 정말 신기하지만 전각이 아직 세워지지 않았다’는 窮奇極妙 棟宇已來 未之有兮 표현이 나온다. 만약 화려한 전각들로 채웠으면 끝까지 살아 남을 수 있었을까? 갈홍(葛洪)의 포박자 君道(군도)에 “鑒章華之召災 悟阿房之速禍” 경계 글이 있고, 진자앙은 “昔日 章華宴 荊王樂荒淫”이라고 탄핵했는데, 역사를 통해 보면 그런 유추가 가능할 것 같다. 왜 영광전만이 홀로 살아 남았겠는가? 그 명당 묘지에서 오묘한 광채의 빛이 발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영광(靈光) 말이다. 영광전부에 “蔥翠紫蔚 礧碨朅瑋 含光晷兮” 구절이 있다. 蔚(울)은 文貌 즉 禮文儀節(예문의절)의 뜻이고, 이는 순자의 예론에 나오는 忠信愛敬之至矣 禮節文貌之盛矣 구절이 이 뜻이다. 礧硌(뢰락)은 곽박의 산해경주에서 大石(대석)이라고 풀이했고, 朅瑋(걸위)는 珍琦, 光晷(광귀)는 日光(일광)의 뜻이다. 따라서 이 총취자울 뢰락걸위 함광귀혜 구절의 뜻은, ‘푸르른 들판에 우뚝 솟은 저 촘촘히 돌로 쌓은 대의 모습 정말 진기하구나, 햇빛을 품고 있음이여.’
왕연수는 영광전부에서 숱한 전란 속에서 홀로 살아 남은 영광전처럼 한나라 황실이 영원무궁하기를 기원했다. 神之營之 瑞我漢室 永不朽兮 신이시여, 보살피소서! 상서로운 우리 한나라 황실이 영원무궁토록! 그런데 왕연수의 영광전부가 나오게 된 배경이 한나라의 멸망 시기가 가까이 왔음을 예언해 준 것인지는 몰라도 한나라는 이 영광전부가 나온 지 (왕연수는 165년 스무살 꽃다운 나이에 요절했다) 약 60년도 안되어서 조조의 위나라에 나라를 넘기고 말았다.
유신은 불후의 작품 애강남부에서 영광전부의 “靈光巋然獨存” 구절을 따와서 “靈光巍然”이라는 표현을 남겼다. 이 표현은 자신의 나라 양나라가 망하고 타국에 억류된 자신의 인생역정 속에서도 석탑같이 후세들에게 영원히 남아 전할 장엄한 인류 역사의 의미를 담아둔 말이었다. 왕연수의 巋然(규연)이나 유신의 巍然(외연)이나 ‘저 높이’라는 高大(고대)의 뜻으로 같은 의미의 단어이다.
유신의 삶은 비록 자신의 조상들처럼 전란의 풍진 속에 여러 곳을 옮겨야 했던 부평초 같은 삶이었다. 삼협의 방랑시인 詩聖(시성) 두보가 유신의 삶에 대해 “庾信平生最蕭瑟 暮年詩賦動江關”이라고 노래했다. 유신은 평생을 스산한 가을바람처럼 매우 쓸쓸한 삶을 보냈지만 그가 만년에 쓴 시와 글은 유유히 흐르는 양자강마저 울릴 정도이다. 오늘날 세계 최대의 삼협댐이 있는 곳 초사를 통해 우리들의 심금을 울려주는 굴원[3]과 송옥과 두보가 있는 형주 강릉의 그 곳, 청산은 의구하고 거대한 양자강의 강물은 구비구비 동쪽으로 유유히 흐르는데 부딪쳐 부서지는 큰 강물결에 씻겨 갔는지 옛 영웅들의 자취는 찾을 길이 없네.[4]
하지만 유신은 비록 자신의 후손들이 세상 부귀영화와 절연되고 또다시 삶의 나락으로 떨어진다 해도 영광(靈光) 즉 위대한 인물-꼭 유신의 가문 중의 큰 인물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은 계속 전해지리라. 여기서 영광은 큰 업적을 나타낸 큰 인물이라는 뜻 이외에 우리의 감정으로 이해한다면 우리 인류의 마음 속에 면면히 살아 전해져 온 고귀한 정신까지를 포함하고 있다. 영광 그 영원의 불빛은 꺼지지 않고 끝까지 계속 살아 남을 것이라는 역사와 민족과 인류의 존속에 대한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지칭한다. 그런 굳센 마음은 사마천이 비록 몸은 망가졌지만 끝내 살아남아 부친의 유언을 완수해 내고 불후의 작품을 남길 수 있었던 그의 위대한 정신의 힘과 같다. 여기서 영광(靈光)이라는 의미는, 사람은 형체와 정신 즉 몸뚱아리와 마음 body and soul이라고 볼 때, 비록 몸은 사라져도 그 마음과 정신이라는 신비스럽고 신령스러운 빛나는 광채, 영원한 별빛과 빛나는 인간의 선한 본성은 계속 살아 남아 전해질 것이라는 그 영원불멸성을 말해 준다.
또 우리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DNA같이 실체가 분명히 존재하는 그런 영광(靈光)이 존재하리라는 믿음이 있는데, 우리들의 현실적인 삶에서 살펴본다면 영광은 조상과 성현(聖賢)들이 전해준 덕택(德澤) 음덕을 뜻한다. 애강남부의 ‘靈光(영광)은 홀로 높이 남아 있으리라’는 표현에서 여기서 영광을 마지막 잎새나 큰 바위얼굴처럼 모든 산천초목이 변해도 끝내 변하지 않는 위대한 그것으로 해석한다면 물적으로는 화씨벽 수주보배나DNA같은 사리 엑기스가 되겠고 정신적으론 유심론 즉 사람의 몸은 죽어도 사람의 마음과 가슴과 정신과 혼백과 영혼은 영원히 살아 남으리라는 우리들의 전통적인 믿음을 웅변하는 표현으로 이해된다.
인간세상이 끊임없이 변해 왔지만 소크라테스 노자 석가 공맹 예수 같은 성인철현은 영원히 전하고 있지 않는가? 이같은 역사인식과 세계관을 바탕으로 나는 애강남부에서의 靈光巍然(영광외연) 구절을 문무왕릉 비문의 결자 부분을 메꾸어 주는 표현으로 도입하였다.
문무대왕은 장례식을 화장식으로 치르어 비록 자신의 몸은 사라지고 없어졌지만 그의 정신은 영원토록 살아 남아서 우리들 우리민족 우리국가를 무궁토록 보호하리라. 문무왕의 후세들을 위한 고귀한 사랑과 위대한 역사정신은 자손만대에까지 전해질 것이다. 문무왕이 달성한 삼국통일의 위대한 업적은 저 멀리 보이지 않는 곳까지 비추는 햇빛처럼 밤하늘에 빛나는 별빛처럼 영원무궁토록 빛나리라. 문무대왕의 위대한 통일정신은 어두운 밤을 밝혀주는 등대불처럼, 꺼지지 않는 불꽃Eternal Flame이 되어, 영원한 성화(聖火)로 타오르리라.
粉骨-粉骨碎身 분골쇄신
국편위가 “▨滅粉骨鯨津”을 “경진 鯨津에 뼛가루를 날리셨네”로 번역한 것은 큰 오류를 범한 잘못이 있다. “▨滅”은 “不滅”의 뜻을 가진 단어로써 이해된다. “▨滅”은 “不滅”의 뜻을 가진 단어가 결자부분을 메꾸는데 문맥상 어울린다. 銘(명) 부분은 글자수를 4자 쓰기로 맞추어서 그렇게 4자 띄어쓰기 해서 문맥상 의미가 완전히 연결되어야 올바른 번역과 해석이 도출될 수 있다. “▨滅”은 “滅粉骨鯨津”에 연결되는 5자의 의미가 아니라 그 앞의 “▨▨▨滅” 4자 띄어쓰기로 문맥상 의미가 서로 연결된다.
여기서 “粉骨”(분골)은 “粉骨碎身”(분골쇄신)의 약자이다. 조국을 위해서 몸 바쳐 희생한 높은 충성심을 보여준 경진씨를 이어받은 왕, 경진씨의 후계자로서 문무왕은 정말 믿음직스러웠다는 칭송의 표현인 것이다. 장례식 또한 용감하게 관습에 없던 전혀 새로운 형식으로 치르는 것 또 그에 관련된 “영광불멸”의 의미를 깊이 새겨볼 때 정말 경진씨 태종 무열왕을 이어받은 왕으로서 진실로 공경스럽구나! 그렇게 느끼는 경의의 표현인 것이다.
“粉骨鯨津嗣王允恭”(분골경진사왕윤공)의 구절에서 “粉骨”(분골)은 粉骨碎身(분골쇄신)의 의미, 粉身碎骨(분신쇄골)의 약자로 쓰였다. 분골(粉骨)은 ‘조국을 위해서 몸 바쳐 희생한 높은 충성심을 보인 사람을 지칭한다.
“粉骨”(분골)과 같은 의미로 쓰인 표현을 유신의 “애강남부”에서 찾아보자. “忠臣解骨 君子吞聲”, “荊山鵲飛而玉碎 隨岸蛇生而珠死”, “忠能死節”, “碎於長平之瓦” 이런 표현들이 나온다. 유신이 애강남부에서 쓴 단어 충신 해골 “解骨”, “玉碎”, “珠死 “, “瓦碎”라는 단어들은 모두 “분골”과 같은 “분골쇄신”의 죽음이란 뜻으로 국가에 대한 충성을 다해 죽었다는 비유적 표현인 것이다. 유신의 “소원부”에서 “不暴骨於龍門”이라고 표현하며 “暴骨”(폭골)이란 단어를 쓰고 있는데 이 또한 분골쇄신의 죽음을 뜻하는 말이다. 글은 소통하기 위해서 쓰여진다. 글이란 문맥상에서 그 의미가 찾아진다. 우리들은 죽음에 대한 직접적인 표현은 되도록 피하고 대신 완사적인 표현을 쓰는 것 아닌가? 인간은 존엄한 존재이므로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하기 위해서 그런 표현을 쓴다.
粉骨(분골)은 “粉身碎骨”의 준말 즉 목숨도 아끼지 않고 가벼이 여길 만큼 목숨 바쳐 헌신하다는 뜻-不惜生命이다. 남제서(南齊書) 왕승건(王僧虔)전에 “粉骨衛主 殊勛異績 已不能甄 常階舊途 復見侵抑” 구절이 보이고 자치통감 양무제 기사 중 “臣寧堪粉骨 報命讎門”이 나타나고, 또 소철의 편지 중에 “洗心改過 粉骨報效”의 표현이 나타나는데 분골은 모두 이와 같은 뜻이지, ‘뼛가루를 날린다’는 뜻이 결코 아니다. 粉(분)은 밀가루가 되듯이 분쇄(粉碎)하다의 뜻이니, 粉身碎骨(분신쇄골) 분골쇄신(粉骨碎身)은 몸이 가루가 되고 뼈가 깨어지도록 노력하다 또는 그와 같이 목숨을 걸고 충성을 다한다는 獻身(헌신)을 비유하는 의미가 있다.
삼국사기에 기재된 문무왕 671년 7월26일 기사[5] 가운데, “粉身碎骨 望盡驅馳之用 肝腦塗原 仰報萬分之一”(분신쇄골 망진구치지용 간뇌도원 앙보만분지일) 구절이 나온다: “몸이 부스러지고 뼈가 잘게 부셔져도 모두 부리시는데 쓰임이 되기를 바랐으며, 간과 뇌를 들판에 발라서라도 은혜의 만 분의 일이라도 갚고자 하였습니다” (번역문은 국편위).
肝腦塗原(간뇌도원)은 肝腦涂地(간뇌도지)와 같은 말으로써 아까운 죽음 惨死(참사)를 말한다. 간과 뇌 즉 해골이 들판에 너덜려져 있다는 뜻으로 사기 유경전에 나오는 문장인데, 죽음을 불사하며 희생을 감내하는 것을 말한다. 낱말 뜻 그대로 몸이 부스러지고 뼈가 잘게 부셔져도 좋다는 정도로 자신의 목숨을 희생할 각오를 다지며 전심전력을 다하는 마음가짐을 의미하는 粉身碎骨(분신쇄골)의 뜻과 같은 말이다. 粉身碎骨 望盡驅馳之用 肝腦塗原 仰報萬分之一, 분골쇄신-몸이 가루가 되고 뼈가 깨어지도록 그렇게 목숨 걸고 충성을 다하고, 구치지용-있는 힘을 다해 분주히 뛰어다니며 쓰여진 임무를 다하고, 간뇌도원-죽어 간과 뇌가 들판에 내버려지더라도 생명을 아끼지 않고, 받은 은혜의 만분의 하나라도 갚고자 하였다.
粉骨鯨津 嗣王允恭
“粉骨鯨津 嗣王允恭”의 구절을 번역한다면 ‘분골쇄신한 경진씨를 이어받은 왕으로서 진실로 믿을 만하고 공경을 받기에 마땅하다’는 의미이다. 왜 이렇게 믿음과 공경을 받기에 마땅한 사람이라고 여기게 되었는가? 그건 장이적신과 그 어떤 것-신진화전 영광불멸-의 깊은 뜻을 곰곰이 생각해 보니까, 문무대왕이 바로 그것에 어울리는 케이스라는 것을 느끼게 되어 아 정말 그렇구나! 하는 찬탄이 절로 나온다는 평가가 아니겠는가? 문무대왕 비록 그의 몸은 갔지만 그의 위대한 정신은 영원토록 이어질 것이라는 마땅한 선언인 것이다.
하늘의 도는 매우 넓으니 어찌 크지 않겠는가? 대화와 연설의 말 속에 오묘하고 심오한 뜻이 담겨 있으니, 이렇게 하여 모든 분쟁이나 어려움을 풀 수 있지 않을까! “天道恢恢 豈不大哉 談言微中 亦可以解紛”(史記, 滑稽列傳序).
금은 모래밭 속에 함께 섞여 있다. 나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인간세상에서 날카로움을 감추고 얽힌 실타래는 풀어가며 서로 화해하고 함께 살아가야 하지 않겠는가? 이러한 삶의 태도는 화광동진(和光同塵), 노자도덕경 제4장의 “解紛”(해분)의 의미를 깨우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粉骨鯨津
“粉骨鯨津”(분골경진)의 표현은 문무왕의 아버지 김춘추는 전쟁에서 기꺼이 몸바쳐 희생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분골쇄신의 경진씨’를 이어받은 왕-사왕(嗣王)으로서 문무왕은 允恭(윤공)하다 즉 진실로 믿음직스럽고 공경스럽다. 분골쇄신한 무열왕처럼 아버지 무열왕을 이어서 분골쇄신한 문무왕임을 의미한다.
鯨津(경진)은 유신 애강남부에서의 “大則有鯨有鯢 小則為梟為獍”(대즉유경유예 소즉위효위경) 구절의 의미를 참조하고, 고래 鯨(경)은 바닷물고기 중 가장 큰 물고기임을 볼 때 큰 고래 大鯨(대경)으로 바꾸어서 표현할 수 있다. 介鲸(개경)은 대경(大鯨)을 뜻하는 말이다. 당 유우석의 답조가에 “介鯨得性方逍遙 仰鼻噓吸揚朱翹”의 표현이 나오는데 개경은 대경과 같은 뜻이다. 또 동해상 큰 파도를 東海鯨波(동해경파)로 칭하는 것을 볼 때 鯨(경)은 큰 대자하고 같은 뜻으로 쓸 수 있다.
여기의 “粉骨鯨津”(분골경진)의 鯨津(경진)은 비문 앞면 3행의 “鯨津氏”(경진씨)를 지칭하는 사람이름에 해당한다.
비문앞면 제3행에서는 “鯨津氏”(경진씨)라고 호칭하며 氏(씨)라는 경칭을 붙였는데 비문뒷면 명 부분 이 구절에서는 氏(씨) 생략되었다. 그 이유는 명의 4자 글자 수를 맞추어야 하기 때문이다. “故孔氏之訓可資釋氏”라는 구절에서처럼 공자 석가를 공씨 석씨로 쓸 수 있다.
한편 사람을 지칭하는 명칭에 꼭 씨자의 경칭을 붙여 써야 하는 것은 아니다. 정도자의 신불멸론의 문장에서 “수인씨”를 씨자를 생략해서 “수인”으로 쓰고 있는 것처럼 가능하면 줄여서 써도 의미가 확연하게 통하는 경우 줄여서 쓴다. “若待薪然後有火 則燧人之前 其無火理乎”. 燧人氏(수인씨)는 인류 최초로 불을 발명하였다는 인류의 조상으로 혹자는 삼황의 위치에 놓고 추앙되는 그런 신격화된 인물에 속하는데, 때론 “燧人”(수인)으로 쓰고 있음을 참조하라. 幼學瓊林에서는 유소씨 수인씨 복희씨 성인 모두를 씨를 빼고 쓰고 있음이 발견된다. “有巢構木為巢 而民知居處 燧人鑽木取火 而民知飲食”. 한비자의 다음 예문에서도 씨를 빼고 줄여서 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有聖人作 鑽燧取火 以化腥躁 而民悦之 使王天下 號之曰燧人氏”. (한비자, 五蠹).
이와 같이 이해하면 비문뒷면 명 부분에서의 鯨津(경진)은 비문앞면 제3행의 “鯨津氏”(경진씨)를 지칭하는 인명으로 이해된다. 따라서 粉骨鯨津(분골경진)은 ‘분골쇄신의 경진씨’이라고 해석된다. 여기의 鯨津(경진)은 문무왕의 선왕인 태종무열왕 김춘추를 지칭하는 인명의 의미인 것이다.
“粉骨”(분골)은 粉身碎骨(분신쇄골)의 준말이다. 粉骨鯨津(분골경진)은 ‘목숨을 돌보지 않고 기꺼이 국가를 위해서 충성과 헌신을 다한 경진씨-태종무열왕 김춘추’ 이와 같이 번역된다. 그러므로 “粉骨鯨津”(분골경진)을 “경진(鯨津)에 뼛가루를 날리셨네”로 번역한 국편위의 해석은 크게 잘못된 번역임이 바로 확인된다.
嗣王允恭
嗣(사)는 繼承(계승)의 뜻이고, 后嗣(후사)라고 말하면 자손(子孫)를 뜻한다. 嗣王(사왕)은 선왕으로부터 왕위를 이어받은 선왕의 후계자 왕-繼位之王을 뜻한다. 공영달의 소에 “云嗣王某 言此王繼嗣前王而立也”으로 설명하고 있듯이, 새로이 건국한 왕이 아니라 전왕의 지위를 승계받은 왕-繼承王位을 말한다. 嗣子(사자)에 관한 묘지명의 일반적인 표현이 “嗚乎哀哉 某月 葬於某原 嗣子某官” 이런 양식으로 표현되는데 사람은 죽어도 자기를 이어받는 후손이 있기에 인류 문명은 영원이 이어가지 않는가?
상서 요전에 “允恭克讓”, 공자가어의 “昔 堯 治天下之位 猶允恭以持之 克讓以接下”, 한서 서전하(敘傳下)의 “太宗穆穆 允恭玄默”, 위지 견초전에 “曹公 允恭明哲 翼戴天子” 등의 예문이 보인다. 克讓(극양)은 자신을 억제하고 남에게 잘 양보하다-能謙讓의 뜻이다. 玄默(현묵)은 清靜無為, 無事의 뜻으로 설명된다. 允은 앞서의 윤무윤문의 뜻에서와 같이 신실(信實)하다, 마땅하다 公平得當의 뜻이고 允은 믿을 信(신)으로 풀이되고, 恭(공)은 恭敬하다 공손하다 정중하다의 뜻이니, 允恭은 信實(신실)하고 공경(肅敬)스럽다 마땅하다 恭勤(공근)의 뜻으로 해석된다.
嗣王允恭(사왕윤경)의 뜻은, 粉骨鯨津(분골경진)-분골쇄신한 경진씨-선왕인 태종무열왕(先王金春秋)을 지칭함-를 이어받은 왕으로서 신실하고 공경스럽다.
因心孝友
因心(인심)은 모전에서 因(인)을 親(친)으로 풀이하고 있고, 인심은 인애지심이 깊은 것 親善仁愛之心(친선인애지심)을 뜻한다. 仁愛(인애)는 사람이 어질고 자애롭다는 뜻이다. 구당서에 “當履運而承天 則因心而追往 此先王之明訓 聖人之茂典也” 구절이 나온다.
孝友(효우)는 우리들이 흔히 쓰는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제간에 우애가 있다’는 말의 한자 표현이다. 부모를 잘 모시고 받드는 것-事父母孝順, 그리고 형제 사이에 서로 사랑하고 우애가 깊은 것-兄弟友愛가 우리의 전통적 윤리관이었다. 모전에 “善父母為孝 善兄弟為友”의 구절, 당나라 한유가 쓴 묘지명에 “以聰明孝友為父母所偏愛”(이총명효우위부모소편애)의 구절이 보인다.
‘문무왕이 태종무열왕의 후계자로서 그 왕위를 이어받을 왕으로서 정말 믿음직스럽고 마땅히 공경받을 만하다’는 말을 바로 앞의 구절에서 표현했는데, 인심효우(因心孝友)는, 그런 국왕다운 국왕으로서의 문무왕의 사람됨과 그 근본은 과연 어디에서 나왔을까를 파고 들어가 본다면 그것은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제간에 우애가 깊었기 때문이라는 그 이유를 말한 표현이다.
孝友(효우)는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제간에 우애가 있다’는 말의 한자 표현이다. 부모를 잘 모시고 받드는 것을 事父母孝順(사부모효순)이라고 말하고, 형제 사이에 서로 사랑하고 우애가 깊은 것을 兄弟友愛(형제우애)라고 말하는데, 이 모토가 우리의 전통적 윤리관이었다.
문무왕은 삼국통일의 열매를 맺었던 전쟁시대의 영웅이었다. 전쟁은 누구라도 언제 어디서 죽을지 모를 죽음을 각오하고 살아가는 특수한 시간적 공간적 의미를 가진다. 전장터에 나서면 누가 언제 어디서 죽을지 아무도 몰랐다. 중세의 흑사병 전염병이 휩쓸 때처럼 말이다. 한편 죽음에 대한 깊은 이해는 역설적으로 삶에 대한 깊은 의미를 이해하게 만드는 기회를 제공한다. 따라서 죽음은 부활의 의미를 새기게 만든다. 재회와 부활에 대한 믿음, 미래에 대한 희망을 불러온다. 견우와 직녀의 재회의 만남이 부활과 미륵 신앙으로 직결되는 이유가 죽음과 삶의 동전의 양면 야누스적인 성격에서 나온다. 재회의 기쁨은 실재한다. 재회의 믿음이 있기에 삶의 의미를 찾으며 따라서 모든 난관을 극복할 수 있다는 삶의 투쟁과 삶의 희망이 솟아난다.
因心孝友 罔▨▨▨
허흥식은 제21행 마지막 罔▨이 글자를 “罔”(망)의 글자로 판독하였는데, 유희해를 비롯한 다수의 판독자는 “冈”(강) 글자로 판독하였다. 강(冈)글자는 산등성이 산마루의 山岡(산강)을 뜻하는 글자이다. 반면 罔(망)은 無, 没有, 없다는 뜻의 글자이다.
罔(망)은 고대에는 그물 어망(魚網)을 뜻하는 “网”자와 같은 뜻으로 쓰였고, 冈(강)자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을지 모른다. 여기서 허흥식의 판독을 따라서 罔(망) 글자로 판독하고, 그러면 우리들이 흔히 글의 마지막에 축복을 기원하는 마무리 표현으로써 “망극호천”이나 “만수무강”이라는 표현을 쓰는 경우가 흔함을 볼 때 이런 罔極(망극)의 뜻이 여기에 적절한 표현으로 추측할 수 있다. 罔極(망극)은 무궁무진(無窮無盡)하다는 뜻으로, 사마천의 사기 태사공자서에 “受命于穆清 澤流罔極”- 황제의 은택(恩澤)은 끝없이-罔極 흐르고 있다는 표현이 있고, 한서 동중서전의 “朕獲承至尊休德 傳之亡窮 而施之罔極”의 구절이 있는데 이 구절에 대한 안사고 주는 “罔亦無也 極 盡也”으로써 망극의 뜻으로 풀이하고 있다. 또 “망극”이란 말은 자식이 부모에 대한 끝없는 애사곡 父母(부모) 無窮哀思(무궁애사)를 표현하는 말이다. 송나라 왕우칭의 묘갈명에 “豈惜一言 不慰罔極之心乎”이 표현이 있다. 한편 망극은 옳지 않다는 不正(부정)의 뜻도 있는데 이 사례는 가의의 조굴원부(吊屈原賦)의 “遭世罔極兮 乃殞厥身”-굴원은 무도한 세상 부정한 세상을 만나 끝내 스스로 몸을 던져 운명했으니- 표현이 있다.
망친에 대한 애도의 표현을 담은 시경 蓼莪(료아)편에 다음의 구절이 나온다: “父兮生我 母兮鞠我…欲報之德 昊天罔極.” 鞠(국)은 키워주신 양육(養育)을 뜻한다. 이 구절의 의미는, ‘아버지 날 낳아주시고 어머니 날 길러 주셨네. 부모님의 은혜에 보답하는 도리가 저 높푸른 하늘에 끝없이 넘쳐 흐르리.’
또 망극(罔極)의 뜻이 이와 같으므로 “因心孝友冈▨▨▨“의 결자부분은, 송사 악지(樂志)에 나오는 “孝思罔極 丕佑無疆”의 구절의 의미대로, “罔極丕佑”으로 메꾸고 볼 수 있다.
여기의 孝思(효사)는 부모님에 대한 생각이 한없다는 효경부모, 효친지사(孝親之思)를 뜻하는 말이고, 丕佑비우는 크게 도와 주소서의 뜻이다. 그러므로 罔極丕佑(망극비우)는 ‘저 끝없는 하늘처럼 영원토록 후손들을 보살펴 주소서.’
하지만 유희해의 판독대로, “因心孝友冈▨▨▨“의 결자부분의 “冈”으로 글자 판독은 하는 경우를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冈▨▨▨-冈(金甌甌 永保)鴻名
문무왕이 태종무열왕의 왕위를 물려받고 위대한 영웅이 된 이유가 바로 “因心孝友”(인심효우)에 있다고 비문 찬자 김소경은 결론짓고 있다. 영웅적 인물인 문무대왕을 후손 만대가 잊지 말고 기억하고 자자손손 유전되어-流傳下去, 문무대왕의 큰 이름이 자손만대에까지, 높은 산의 바위처럼, 남산위의 소나무처럼, 영원히 알려지리라-永不磨滅, 이렇게 선언하고 또 그것을 부탁하는 문장으로써 결자부분의 의미를 새기는 것이 보다 합리적인 생각이다.
因心(인심)은 親善仁愛之心(친선인애지심)의 뜻 즉 仁愛(인애)와 같이 사람들을 사랑하는 어진 마음씨를 뜻하고, 孝友(효우)는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제간에 우애가 있다’는 뜻 즉 부모를 잘 모시고 받드는 것과 형제 사이에 서로 우애가 깊은 것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유희해의 판독대로 因心孝友冈▨▨▨이 보다 적절한 판독으로 보인다.
“冈”은 풍수지리학에서 갈라져 나온 가지 지맥의 支(지)를 뜻한다. 물길을 찾을 때 용맥을 찾아내는 것이 중요한 포인트이다. 백두대간(幹)에 수많은 지맥이 분파되는데 수많은 산등성이에서 평지로 내려오는 물길에 支龍(지룡)을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산맥의 지파의 의미는 인간사회에서의 의미로는 자손이 번창해서 성경의 아브라함의 축복대로 지구의 끝까지 자손이 뻗어나가 번창하기를 기원하는 것과 같다. 그렇게 많은 가지가 뻗어나가서 영웅적 인물 문무왕을 모든 세상이 알게 되기를 기원한다는 뜻이 들어 있는 문장으로 이해된다.
통일 왕국을 건설한 위대한 영웅적 인물 문무왕의 이름이 무궁토록 전해진다는 것은 국가가 존속되어야 하는 조건을 담보한다. 그러므로 이런 측면에서 국가가 계속 안정되고 계속 번창해 나가기를 기원하는 말인 “金甌”라는 단어를 생각해 낼 수 있다.
甌(구)는 작은 컵을 의미하는 글자이다. 金甌(금구)는 金屬酒器를 뜻하는 단어이고 또 비유적인 의미로는 국토, 國土完整(국토안정)의 뜻이 있는 단어이다. 남사 朱異(주이)전에 양무제가 한 말 “我國家猶若金甌 無一傷缺”이라는 구절이 등장하는데 여기의 금구는 국토가 견고 안정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금강석처럼 단단하고 금강석이 나오는 높고 깊은 산처럼 국가가 영원히 이어지리라는 믿음을 전하고 있는 말이다. 甌甌永固(구구영고)는 컵이 줄줄이 늘어선 모양처럼 영원하다는 뜻이다. 묘지 속에 금구를 넣어둔 것은 구구영고의 믿음과 소망의 뜻이 들어 있다.
嶔 뽀족이 솟은 탑처럼 높은 산을 嶔(금)이라고 말한다. 저 하늘높이 우뚝 솟은 바윗돌처럼 영원하여라의 뜻을 지닌 표현이 담겼다고 새긴다면 岡崟/(嶔)玉葉/(甌甌)의 글자 표현을 쓸 수 있다.
비문 제20행 번역 정리
이상과 같이 비문 제20행의 구절 표현 내용을 살펴본 바, 이 제20행의 구절은 4자 띄어쓰기 구조로 비문을 재정리하고 이 행의 구절을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命凝眞 貴道賤身 欽味釋(縛) 葬以積薪 (薪盡火傳/穀神不死 靈光不)滅[6] 粉骨鯨津 嗣王允恭 因心孝友 冈▨▨▨
(아버지의 엄한) 분부-엄명을 진실로 이루었네.
도를 중하게 여기고, 자기 몸은 천히 여기셨네.
(나라를 위해 희생한 그 뜻을 존경하고 해탈의 의미를 생각하며) 불을 태워 화장식으로 장례식을 치르었네
(나무는 타고 나서 재가 되어도 불은 다시 타오르듯이 인간의 정신은 자자손손 면면히 이어간다네. 신진화전처럼 곡신불사처럼 인간의 정신-(찬란한 금자탑)은 영원하다네.)
목숨을 돌보지 않고 기꺼이 몸바쳐 충성을 다한 분골쇄신의 경진씨-태종무열왕 김춘추-를 이어받은 왕으로서 정말 믿음직스럽고 공경스러웠네.
그것은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제간에 우애가 깊었던 까닭이리라.
(저 높은 산의 우뚝 솟은 바위처럼 영원무궁토록 문무왕의 그 큰 이름이 자손만대까지 전해지소서!)
이 구절을 4자 띄어쓰기 구조로 끊어서 번역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嚴)命凝眞 | 아버지의 엄한 분부-엄명-유훈을 진실로 이루었도다 |
貴道賤身 | 도를 중요하게 여기고, 그 가르침을 높게 받들어, 자기 몸은 천히 여기셨구나! |
欽味釋(縛) | 나라를 위해 희생한 그 뜻을 존경하고 해탈의 의미를 곰곰이 생각하며 |
葬以積薪 | 나뭇단을 쌓고 불을 태워 화장식으로 장례식을 치루었네 |
(薪盡火傳) (穀神不死) |
땔나무가 불타고 나서 그 형체가 사라진다 해도 불은 다른 나무에 옮겨 붙어 불씨를 계속 이어가듯이, 사람의 정신과 전통은 다음 세대에게 영원히 전해진다. 씨앗은 다시 되살아나니 영원하다네 |
(靈光不)滅 | (비록 몸은 사라진다고 해도) 신비스럽게 빛나는 정신과 마음은 꺼지지 않고 대대손손 영원히 이어지리라! 고귀한 정신이 스며들어 있는 뛰어난 예술은 결코 사라지지 않고 영원히 남으리라! |
粉骨鯨津 | 목숨바쳐 헌신하고 충성을 다한 분골쇄신의 경진씨(태종무열왕 김춘추) |
嗣王允恭 | 그 선왕 경진씨(태종무열왕)를 이어받은 왕으로서 정말 믿음직스럽고 공경스럽도다! |
因心孝友 | 그 까닭은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제간에 우애가 깊었기 때문이리라 |
冈(金玉葉甌甌 永保)鴻名 | 사랑과 형제애는 황금처럼 영원히 닳지 않고 단단하니, 자손만대까지, 문무대왕 그 큰 이름 영원히 빛나리라! |
與天長兮地久 | 끝없이 펼쳐지는 우주와 한없이 오래된 지구와 같이! |
나오기
문무왕릉비 비문앞면제3행의 “鯨津氏”(경진씨)는 문무왕의 선대왕 태종 무열왕 김춘추를 지칭한다. “鯨津氏”(경진씨)가 신라 제29대왕 태종 무열왕 김춘추를 지칭한다는 사실을 문언해석적으로 밝혀냄으로써 반만년 한국사의 최대의 미스터리가 풀리게 되었다. 비문 뒷면 제20행에 나오는 “粉骨鯨津”(분골경진)은 나라를 위해 자기 몸을 희생한 “분골쇄신의 경진씨”라는 뜻이다. 粉骨鯨津(분골경진)은 국사편찬위원회의 해석대로의 “경진에 뼛가루를 날리셨네”라는 뜻이 아니다.
“鯨津”(경진)은 ‘어느 바닷가 포구’를 말하는 지명이 아니라 경진씨를 지칭하는 인명이다. “粉骨鯨津”(분골경진)의 粉骨(분골)은 삼국사기에서 기재하고 있는 “粉骨碎身”(분골쇄신)의 약자로써 “몸이 부셔지는 것도 마다하고 진심전력으로 온몸을 던져 헌신한 사람”을 지칭하는 비유적인 의미로 쓰였다.
이러한 새로운 문언해석의 결과는 문무왕릉비가 건립된 682년 이후 그리고 약 1천1백년이 지난 시점인 1796년(정조 20년) 경주에서 문무왕릉비 비문 파편이 발견된 이후 어느 누구도 여지껏 탐구해내지 못했다.
문무왕릉비는 1796년 경주에서 문무왕릉비 비문 파편이 발견되기 전까지 역사상 실종된 상태였다. 문무왕릉비 비문을 새롭고 정확하게 해석해냄으로써 왜 그리고 어떻게 삼국사기와 삼국유사가 역사를 조작해냈는지 그 조작의 실체를 밝혀낼 수 있게 되었다. 삼국사기에 기재된 문무대왕의 유언 내용은 당태종의 유언을 표절하고 도용한 역사조작임을 입증해낸 필자의 책『역사 혁명: 문무대왕 유언 비밀 해제』을 참고하라. 저자는 지금까지 잘못된 번역과 해석이 게재된 국사 교과서의 내용 서술에 대해서 그것들이 즉시 수정되기를 담대하게 요구한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기재된 역사에 대해 정면 도전한 이 글이 한국사의 새로운 지평선을 열어주고 한국인의 선조와 한국사의 원류에 대한 고찰에서 새로운 전환점을 마련해 주는 획기적인 초석이 될 것을 기대한다.
참고 문헌
『三國史記』
『三國遺事』
『譯註 韓國古代金石文』 (1992).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데이터 베이스 http://db.history.go.kr/
『康熙字典』
李善, 『文選注』 (. https://ctext.org/wiki.pl?if=gb&res=150222)
『二十四史』-(史記, 漢書, 晉書), 中華書局, 1997)
劉喜海 『海東金石苑』 巻1-4 (二銘艸堂, 1853)
Kohn, 『Daoism Handbook』 (Brill Academic Pub, 2000)
추홍희, 『위대한 한국 문무대왕릉비 연구』 (이통장연합뉴스, 2020)
영문초록
It is suggested that “Mr Kyungjin”(鯨津氏) on the front of the inscription on the tombstone of King Moonmoo refers to King Moonmoo’s predecessor, King Taejong Mooyeol. By interpreting the fact that “鯨津氏” (Mr Kyungjin) refers to the 29th king of Silla, Kim Chun-chu, the greatest mystery in Korean history has been solved. “粉骨鯨津” in line 20 on the back of the inscription means Mr Kyungjin who has given a new shape by having sacrificed himself for the sake of the country. “粉骨鯨津”(Bungol Kyungjin) does not mean “after cremation it was scattered his ashes on the beach at Kyungjin” as interpreted by the National History Compilation Committee.
“鯨津” (Kyungjin) is not a place name referring to a port on a certain coast, but a name for Mr Kyungjin of the Kyungjin clan ie the King Taejong. 粉骨(Bungol) is an abbreviation for “粉骨碎身” (grinding of skeleton and shredding of body) described in the SamgukSagi. It is used in a figurative sense to refer to a “sacrificial person”.
This new interpretation of the inscription on the tombstone of King Moonmoo is that it has never been suggested before.
The tombstone of King Moonmoo was missing from history until fragments of the tomb of King Moonmoo were discovered in Kyungju in 1796. By interpreting the inscription on the tombstone of King Moonmoo in a new and accurate way, it became possible to reveal why and how SamgukSagi(三國史記) and SamgukYusa(三國遺事) manipulated history. Please refer to the author's book of 『History Revolution: Revealing the Secret of King Moonmoo's will and testament』which proved that the contents of King Moonmoo's will and testament recorded in the SamgukSagi were historical manipulations that were plagiarized from the last will of Emperor Taijong of Tang Dynasty. It is boldly demanded that the content and descriptions of the Korean history textbooks be revised immediately. It is expected that this paper, which challenges the history recorded in the SamgukSagi and the SamgukYusa, opens up a new horizon in Korean history and is a groundbreaking study that provides a new turning point in the study of the origins of Korean history.
주제어
鯨津, 경진씨, 귀도천신, 김춘추, 문무대왕, 문무왕릉비, 분골쇄신, 영광불멸
[1] 이백의 명당부에 “欽明”(흠명)이라는 말이 나타나는데 이에 대한 한글 주해를 참조하라, “欽明(흠명): 공경하는 마음으로 엄숙하게 살핀다. [王] 《상서⋅요전》에 “공경한 마음으로 살피고 지혜와 덕을 가졌다.”라고 했는데, 공안국전에 “‘흠’은 공경한다는 뜻이다.”라고 했고, 정현이 말하길, “공경하고 아끼는 것을 ‘흠’이라고 하고, 사방을 비추어 살피는 것을 ‘명’이라고 한다.”라고 했다.(《書⋅堯典》: “欽明文思.” 孔安國傳: “欽, 敬也.” 鄭玄云: “敬事節用謂之欽, 照臨四方謂之明.”)”, 예추이화, “李白 文 譯註” (서울대학교 대학원, 중어중문학과, 문학박사 학위논문), (2018), 102쪽.
[2][2] 사전에서의 영어 해석을 가져오면 다음과 같다. “As one piece of fuel is consumed, the flame passes to another.”
[3] 굴원의 초사 작품 속에서 느껴지는 문학과 역사와 우주천체물리학의 결합적 측면을 생각해 보라. 또 빌 게이츠가 주도하는 “Big History” 프로젝트를 생각해 보라.
[4] 楊慎《臨江仙》 滾滾長江東逝水浪花淘盡英雄(곤곤장강동서수랑화도진영웅).
[5] 三國史記 卷第七 新羅本紀 第七 文武王下十一年.
[6] 薪盡火傳 靈光不滅, 땔나무의 형체가 사라지고 난 뒤에도 불은 다른 나무에 옮겨 붙어 불씨를 계속 이어가 꺼지지 않고 영원히 전해지듯이, 비록 몸은 사라진다고 해도, 신비스럽게 빛나는 정신과 마음은 꺼지지 않고 대대손손 영원히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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