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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문무왕릉비(文武王陵碑) 속의 “秺侯”(투후)가 누구인지에 대한 해답을 새롭고 획기적으로 제시한다. 신라 문무왕릉비(文武王陵碑) 비문 속에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가 말하지 않는 신라의 선조에 대한 내력이 새겨져 있다. 비문 앞면 제4행에서부터 제6행에 걸친 부분인데 그중에서도 가장 핵심적 문장이고 해석 다툼이 있는 부분은 제5행의 “秺侯祭天之胤傅七葉”(투후제천지윤부칠엽)이다.
“秺侯祭天之胤傳七葉”(투후제천지윤전칠엽)이라고 글자판독하여 여기의 투후는 한서(漢書) 김일제(金日磾)전에 기록되어 있는 한무제로부터 김씨성을 사성받은 김일제(金日磾)를 가르키고 따라서 김일제는 본시 흉노족 휴도왕(休屠王)의 태자 출신임으로 ‘신라인은 흉노족의 후예’가 된다는 가설[1]이 최근 기승을 부리고 있지만, 신라인의 조상에 대한 가장 결정적이고 독특한 이 문장은 아직까지 그 누구도 해석을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
백제 유민 흑치준 묘지명에도 “투후”가 등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투후 김일제” 주장에 대해서 학계에서는 적극적인 반론이 시도되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하지만 필자는 한서 유굴리전과 한서공신표에 기록되어 있는대로 투후는 “商丘成”(상구성)임을 최초로 제시하고 해설한다. 문무왕릉비문의 투후는 흉노족의 “투후 김일제”가 아니라 동이족 “투후 상구성”임을 문언해석적으로 입증하여 “신라는 흉노족의 후예”라는 가설을 역사학적으로 통박한다. 1716년에 나온 강희자전 옥편을 펼쳐보면 “【史記•年表】秺侯金日磾【前漢•功臣表】秺侯商丘成”-이렇게 “투후 김일제”와 “투후 상구성”이 동시에 기재되어 있다는 사실이 확인된다. 한어대사전에는 “투후 상구성”이라고 소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 연구계에서 지금까지 어느 누구도 투후 상구성에 대해서 탐구해내지 못했다. 필자는 문무왕릉비의 “투후”는 한서에 나타나는 투후 상구성임을 맨처음으로 제시하며 신라는 흉노족의 후예라는 가설을 여지없이 변파한다.
문무대왕릉비의 “투후”가 투후 김일제를 지칭하느냐 아니면 투후 상구성을 지칭하느냐를 두고서 누가 진실로 투후인지를 입증해 내는 그 임무는 순전히 역사가의 몫에 달려 있다. 이 일은 역사를 모르면 해낼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고, 사마천의 사기와 반고의 한서 그리고 진서와 남북사 자치통감까지 여러 사서들을 통합한 결론으로써 문무대왕릉비 비문의 “투후”는 “투후 상구성”을 지칭한다는 사실이 역사학적으로 도출되기 때문이다.
[1] 조갑제, 騎馬흉노국가 新羅 연구 내 몸속을 흐르는 흉노의 피, 월간조선(2004년 3월) <문무왕릉비의 비밀> - 제1편: 신라 김씨왕족은 흉노(匈奴)의 후손인가? 《KBS 역사추적》, 2008년 11월 22일 방송.
<문무왕릉비의 비밀> - 제2편: 왜 흉노(匈奴)의 후예라고 밝혔나? 《KBS 역사추적》, 2008년 11월 29일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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