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문앞면제5행 秺侯 祭天之胤 투후 제천지윤
□□□□□□□□□□□□□□君靈源自敻継昌基於火官之后峻構方隆由是克□□枝載生英異秺侯祭天之胤傅七葉以□
국편위 번역: … 그 신령스러운 근원은 멀리서부터 내려와 화관지후(火官之后)에 창성한 터전을 이었고, 높이 세워져 바야흐로 융성하니, 이로부터 ▨지(▨
枝)가 영이함을 담아낼 수 있었다. 투후(秺侯) 제천지윤(祭天之胤)이 7대를 전하여 … 하였다.
추홍희 해석: (우리 신라 사람들은 삼황오제의 후손들이다). 까마득한 옛날까지 올라가서 조상의 뿌리를 찾으면, 창성한 왕업을 화관지후에게 이어받게 하고, (불의 임금님-화후는 요임금인데, 제곡 고신씨는) 요임금님에게 왕위를 물려 주었다.) 방정하고 드높은 구조물들을 건설하며 사방으로 반듯하게 뻗어 나갔다. 조상으로부터 복록을 이어받을 자격과 능력이 있는 황족의 후예로 태어난, 비범한 재주와 인덕을 갖춘 투후(秺侯)는 천자의 후예로서, 천자국에서 떨어져 나와 새로운 왕조를 부설했다.
5행 문장을 이해하기 쉽도록 4자 띄어쓰기로 재배열하면 다음과 같다.
□□□□□□□□□□□□□□君 靈源自敻 継昌基於 火官之后 峻構方隆 由是克□ □枝載生 英異 秺侯 祭天之胤 傅七葉以□
국편위는 화관이 누구를 구체적으로 지칭하는지, 투후가 구체적으로 누구를 지칭하는지를 설명해 내지 못했다.
傅(부) 傳(전)
傅七葉以□ 글자 판독-“傳”인가? “傅”인가?
<“傅七葉”(부칠엽)인가? “傳七葉”(전칠엽)인가? 육심원(陸心源)의 판독글자는 “傅七葉”(부칠엽)이다>
모신다는 부(傅)자와 전할 전(傅)자는 매우 혼동하기 쉬운 글자임을 중국인의 한자 훈독 책에서도 지적하고 있다는 사실을 참조하라. 여기서 글자판독은 “傅七葉”(부칠엽)이 정확한 판독이고, “傳七葉”(전칠엽)이란 판독은 오류이다. 국편위는 글자판독에서 오류를 범했다. 국편위가 판독한 “傳七葉以”이 아니라 육심원의 판독대로 “傅七葉以”이 타당하다. 만약 국편위 해석처럼, “傅七葉以” 구절을 ‘7대까지 전하다’의 의미로 새긴다면, 천자의 후손인데 어찌 단지 7대까지만 전해진단 말인가? 조선왕조도 30대가 넘고 신라 왕조는 56대까지였다. 이렇게 보면 천자의 후손임에도 7대까지 전해진다는 해석은 논리적으로 큰 결함을 가지고 있음을 바로 알 수 있다. 그런대도 왜 누구 하나 그것을 지적해 내지 못했는가? 논리적 사고 없이 그저 교과서를 줄줄이 외워서 사지선다형 고르기를 강요하는 교육방법론 때문이 아닐까? 교육자들은 국편위의 잘못된 번역을 그저 따라 읽고만 있으니 어찌 역사의 진실이 밝혀질 수가 있었겠는가?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해서 깨우치지 못하는 무지의 고통과 아픔을 더 이상 후손에게 강요해서는 아니 될 것이다. 식민지배를 받으며 가짜의 암흑의 역사 속에서 탈출하지 못한 플라톤의 동굴속에 얽매인 사람들의 족적이 슬프지 아니한가?
傅(부)
견훤(甄萱)에 의해서 옹립된 신라의 마지막 왕 경순왕의 휘가 傅(부)이었다-“敬順王諱傅”. 傅(부)는 師傅(사부), 傅國(부국)이란 말에서 알듯이 보필(輔弼) 보좌(輔佐)하다는 뜻의 글자이다. 傅(부)는 설문해자에서 재상(宰相), 수상(首相) 다른 사람을 보좌(輔佐)하는 의미 상(相)의 뜻으로 풀이했다. 좌전에 정장공이 왕을 보좌하다는 뜻으로 쓰인 “鄭伯傅王”(정백부왕)이 그 예이다. 한비자에 나오는 “毋爲虎傅翼. 飛人邑擇人而食之”(호랑이에게 날개를 달아주지 말라. 범이 날개를 달고 날 수 있게 되면 사람들이 사는 곳으로 날아와 사람들을 골라 잡아먹게 될 것이다) 구절에서 傅翼(부익)은 ‘날개를 달다’의 뜻이다. 장례식에 부의금을 전달하다에서의 부의 뜻이 賻(부)인데, 傅(부)는 賻(부)의 뜻을 갖고 있는 글자이다. 부의금이란 장례식 비용을 도와주는 것이니 ‘돕는다’는 도울 助(조)의 뜻이 들어있다. 또 傅(부)는 敷(부)의 가차자로 쓰였다. 한서 안사고는 “傅讀曰敷 敷布也”라고 주를 달았는데, 그와같이 傅(부)는 부(敷)로 읽고 그 뜻은 진열하다의 펼치다의 布(포)의 뜻이다. 흙펴기 흙깔기 바닥다지기의 뜻인 敷土(부토)를 傅土(부토)로 쓰기도 했다. 옆으로 늘어 펴듯이 부연(敷衍)설명하는 것, 부설(敷設)하다, 고수부지(高水敷地) 이런 말의 뜻에서 알다시피, 布列(포열)하고 옆으로 퍼져 나가다의 뜻이다. 상서하서(尚書夏書) 우공(禹貢)편에 “禹敷土 随山刊木 奠高山大川” (우부토 수산간목 전고산대천)의 구절이 나온다. 이 구절의 뜻은, 지역을 나눠서 나무들을 베어내고 개간해 나갔는데 이런 개척 과정에서 다치고 죽어간 사람들을 위해서 명산대천에 제사를 지냈다.
비문의 “傅七葉”(부칠엽)은 “7대를 전하여”의 뜻이 아니라, “敷七葉”(부칠엽)의 뜻으로 쓰였다. 그러므로 “傅七葉”(부칠엽)은 천자국을 떨어져 나와 새로운 “왕조를 부설했다”는 뜻이다. 傅(부)는 부착되다, 휴대하다, 영어로 bring의 뜻이 있는 글자이다. 따라서 “傅”(부)를 “敷”(부)로 쓰지 않고 “傅七葉”(부칠엽) 그대로 쓰더라도 칠묘에 부착되다, 새왕조를 가져오다, 새왕조의 날개를 달다, 칠대지묘를 돕다의 뜻이 되므로 “傅七葉”(부칠엽)은 국사위가 해석한 “7대를 전하여”의 뜻이 아니라, ‘분토해서 새 왕조를 열고 다졌다’는 의미이다.
천자칠묘(天子七廟)
“천자칠묘(天子七廟) 제후오묘” 예기의 규정(“三昭三穆 與大祖之廟而七”)이 존재한다. 天子七廟(천자칠묘)는 선조7대까지를 모신다는 의례를 말한다-“七代先祖奉供”(칠대선조봉공). 천자는 7대 선조까지 종묘 제사를 지내고 제후는 5대 조상까지 종묘에 모신다는 天子七廟 諸侯五廟(천자7묘 제후5묘) 규정은 예기 등 수많은 서적에 기재되어 있다. 尚書(상서), 咸有一德에서 “七世之廟 可以觀德”(칠세지묘 가이관덕)을 말하고 있다.
칠엽(七葉)
“七葉”(칠엽)은 칠세(七世), 칠대(七代)의 뜻이다. “周車騎將軍賀婁公神道碑”(주거기장군하루공신도비) 비문에서 “七葉佐漢”(칠엽좌한)의 문구가 등장하는데, 여기의 ‘佐’(좌)는 ‘보좌하다’는 뜻으로 쓰였고, 칠엽(七葉)은 칠대(七代)의 의미이다. “七葉”(칠엽)은 “七世之廟”(칠세지묘) 즉 “七廟”(칠묘)의 뜻과 같다. “七廟”(칠묘)는 王朝(왕조)의 뜻을 갖는 말이다. 7묘는 7대 선조를 모시는 사당 즉 종묘를 말하니 한나라 왕조를 비유한다. 가의의 과진론에서 “一夫作難而七廟堕 身死人手 爲天下笑者 何也”(한 사람이 난을 일으켜 7대 선조를 모시는 사당을 무너뜨리고 국왕은 타살되고 천하의 웃음거리가 되었는데 그것은 무엇 때문인가?)의 구절에서 칠묘(七廟)는 왕조의 뜻으로 쓰였다.
비문에서의 “七葉”(칠엽)은 王朝(왕조)의 뜻으로 쓰였다. 비문의 傅七葉(부칠엽)은 건릉 술성기에 나오는 칠묘지기(七廟之基)의 뜻으로 새기는 것이 옳다. 傅七葉(부칠엽)은 “새왕조의 기틀을 다졌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비문의 “傅七葉”(부칠엽)은 “7대를 전하여”의 뜻이 아니라, “敷七葉”(부칠엽)의 뜻으로 쓰여서, ‘천자국을 떨어져 나와 새로운 왕조를 부설했다’는 뜻이다.
秺侯祭天之胤 비문의 “傅七葉以□□□□” 결자부분은 삼국연의의 “立七廟以光祖宗”(립칠묘이광조종)의 표현의 내용으로 추측된다. 따라서 비문을 “秺侯祭天之胤傅七葉以(光祖宗)”으로 메꾸어서, ‘투후는 천자의 후예로서 새왕조의 기틀을 다졌다. 이리하여 선조를 빛나게 했다’는 뜻이 된다.
“부칠엽”에 대한 또다른 해석-태부칠엽귀신
문무왕릉비 비문 중 “투후 제천지윤 부칠엽” 해석을 “계림대보공”의 경주김씨 사당의 문중 역사기록에 맞는 내용으로 해석하자면 다음과 같다. “傅七葉”(부칠엽)-(현재까지 한국의 교과서내용이나 다수의 학자들의 견해에 따르는 “傳七葉”(전칠엽)이다. 하지만 문무왕릉비 실제 비문 글자를 검토하면 알 수 있듯이 “傅七葉”(부칠엽)으로써 새롭게 해석해야 옳다. 傅七葉”(부칠엽)의 뜻은 ‘국왕과 귀족 자제들을 교육한 스승, 사부(師傅), 태부(太傅)의 높은 벼슬을 지냈다’ 즉 ‘천자의 후손으로서 국왕의 스승인 태부라는 높은 벼슬을 지냈다”라는 의미로 해석이 가능하다. 부연설명하면 비문의 “傅”글자를 지금까지 학계나 교과서의 해석대로의 “傳” 글자가 아니다. 문무왕릉비 비문 원문 탁본에 따라서 판독한 중국의 당대 최고의 금석학자였던 유희애나 육심원 등의 판독에 따라서 “부칠엽”으로서 판독된다. 이 “傅七葉”(부칠엽)에서의 “傅”(부) 글자의 뜻은 사마천의 사기 상앙열전에 나오는 “傅師”(부사), “傅父”(부부)의 뜻 즉 국왕을 가르친 최고의 학자의 신분을 가르켰던 “師傅” (사부), “太傅”(태부)의 뜻으로 해석된다. 태부는 칠엽귀신(七葉貴臣)에 해당한다. “傅七葉”(부칠엽)은 태부 칠엽귀신 즉 태부라는 고관대작의 높은 벼슬을 지냈다.
칠엽귀신(七葉貴臣)
七葉(칠엽)은 문무왕릉비 비문속의 “부칠엽”과 같은 의미 즉 칠엽귀신(七葉貴臣), 칠엽중신(七葉重臣)의 뜻으로 쓰인 말이다. 시중은 국왕의 좌우 곁에 서서 왕명을 출납하는 왕의 신임을 받는 최측근으로서 비싼 담비가죽으로 된 초선(貂蟬)의 관을 머리에 쓰고 있어 그 신분을 쉽게 알 수 있는 고관대작의 위용을 뽐낸 사람이었다. 문무왕릉비문의 칠엽은 칠엽귀의 준말임을 알 수 있다. 傅(부)는 스승 부 한자로 태부, 또는 소부의 준말이다. 太傅(태부)나 소부는 태자(태자가 후에 제왕의 자리에 오르니 태부라고 말하면 국왕의 스승이 되는 셈이다)의 교육을 책임진 최고의 대신 최고의 귀족출신이 맡는 고관대작이다. 따라서 문무왕릉비 비문의 “傅七葉(부칠엽)은 태부칠엽귀의 준말임을 쉽게 알 수 있다. 문무왕릉비 비문의 글자 판독은 지금까지 해석한대로의 “전칠엽(傳七葉)”이 아니라 “傅七葉(부칠엽)”이다. 傳(전) 글자와 傅(부) 글자는 자세히 살피면 점 하나 차이가 있고 해서 구별이 가능한 글자이긴 하지만 중국인들 책에서도 서로 보기에 헷갈리기 쉽고 혼동하기 쉬운 한자에 속한다고 분류에 놓고 있는 한자이기에 언뜻 잘못 판독하면 그 전(傳)과 부(傅)를 한자 차이를 혼동하기 십상이다.
태부(太傅)
태부(太傅)는 관직명이다. 삼공(三公)의 위치에 있는 벼슬로서 황제를 보좌하는 임무를 맡았다. 또 미래의 권력 황태자를 교육하는 태자태부(太子太傅)로 익숙한 고관대작의 이른다. 태부는 국왕의 교육을 맡는 관리로서 대개 국왕과 같은 혈통의 종실출신이 맡는다. 태부는 그만큼 중요한 자리이기에 봉건왕조의 특성상 왕의 최고신임을 받고 있는 최측근이 대대로 맡은 고관대작이었다. 신라의 시조를 연결하는 문무왕릉비문의 구절속의 “傅七葉(부칠엽)”이 “태부칠엽귀”의 준말인 “傅七葉(부칠엽)”로 해석된다는 사실은 김해김씨의 김씨문중 족보에서 김씨시조를 “알지 대보공((閼智 大輔公)”으로 불러온 바 여기의 대보공(大輔公)이 국왕의 스승 태부를 뜻하는 말이라는 사실에 부합된다. 大輔(대보)는 천자를 보좌하는 대신(大臣) 즉 고관대작을 의미하는 단어이니 대보공은 태부의 벼슬을 지낸 사람임이 분명하다. 또 傅(부) 글자는 견훤(甄萱)에 의해서 옹립된 신라의 마지막 왕 경순왕의 휘가 傅(부)이었다. 삼국사기에 기록된 원문구절 “敬順王諱傅”을 보라. 傅(부)는 師傅(사부), 傅國(부국)이란 말에서 알듯이 보필(輔弼) 보좌(輔佐)하다는 뜻의 글자이다. 傅(부)는 설문해자에서 재상(宰相), 수상(首相) 다른 사람을 보좌(輔佐)하는 의미 상(相)의 뜻으로 풀이했다. 좌전에 정장공이 왕을 보좌하다는 뜻으로 쓰인 “鄭伯傅王”(정백부왕)이 그 예이다.
(三五之聖)君- 제곡 고신씨
□□□君의 결자 부분을 메꾸어 보자. 三五之聖君은 “삼황오제”와 같은 말이다. 아득한 우리 선조의 원류를 거슬려 찾아 올라가면 삼오지성군인 제곡 고신씨에 맞닿는다. 제곡 고신씨는 삼황오제 중 한 명이다. 중국인의 공통적인 조상의 원출은 황제 헌원씨로 모아지는데, 선사시대 먼 조상에 대한 고찰은 종교와 국가, 출신 씨족에 따라서 각기 약간씩 다르게 기술해 오고 있다. 사마천 또한 고대 기록을 모두 있는 그대로 믿을 수는 없다고 결론짓고 나름대로 신빙성있는 사료를 토대로 삼아서 선사시대의 역사를 종합 약술해 냈다. 먼 조상에 대한 계보와 그 내력에 대한 한 줄 요약은 삼국시대 위나라를 세운 조조의 동생 조식이 지은 짧은 한시가 잘 표현하고 있는데 조식의 한시를 참조해 보자.
祖自軒轅 玄囂之裔 生言其名 木德帝世 撫寧天地 神聖靈察 教弭四海 明並日月 (曹植, 帝嚳贊) |
조자헌원 현효지예 생언기명 목덕제세 무령천지 신성영찰 교미사해 명병일월 (조식, 제곡찬) |
제곡 다음에 왕위를 이어받은 사람이 도요 즉 요임금이다. 요임금을 이어받는 왕이 순임금이고 순임금을 이어받은 왕이 우임금이다. 우리 역사상 천하 태평성대를 구가한 황금시대 파라다이스 지상낙원을 건설한 천하명군이 다스리던 시대를 “요순우”시대라고 부른다. 황제나 염제나 전욱고양씨 제곡고신씨 시대는 시기가 너무 멀어서 직접적인 느낌이 떨어져 기억하기 힘든 역사 이전의 시대라고 치부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하나라 왕조를 건설한 우임금 시대는 고고학적으로 발굴된 유적이나 유물을 통해서 그 존재가 확인된 분명한 역사에 속한다. 요순우 시대를 전설적인 존재로 격하시키고 폄하시키고자하는 사람들의 의도를 파악할 필요가 있다. 요순우 시대는 고고학적으로도 밝혀지는 엄연한 역사적 사실로 존재했다. 삼황오제에 속하는 천하명군이 누구인지는 도교 또는 유교적 전통에 따라서 각기 조금씩 차이가 나긴 하지만 삼황오제에 전욱고양씨와 제곡고신씨가 들어간다는 사실은 모두가 인정한다. 전욱과 제곡 시대까지의 기록은 문학적인 기록으로는 수다하게 존재하고 또 사마천의 사기에서도 역사적 기록으로 남겨 놓고 있다. 그러므로 태평성대 황금시절의 존재를 무시하고 부정하려는 의도는 요순우 후손이 아닌 외국인 국외자 오랑캐들이 시도하는 역사적 반동이고 역사 파괴의 시도에 다름 아니다.
靈源自敻
靈源(영원)은 강의 발원지를 뜻하는 말이다. 물은 세상 만물의 근원이고, 더욱이 상선약수의 물의 노자 철학을 갈파하는 도교의 입장에서 물은 분명히 신령스러운 존재이니 강의 발원지를 영원(靈源)으로 표현한 것이다. 강의 물줄기를 따라 거슬러 올라 가다 보면 맨 처음 시작되는 발원지를 찾을 수 있는데, 예컨대 한강의 발원지는 태백산이다- 그렇게 강의 물줄기 찾듯이 조상의 뿌리를 찾아 올라가 보면 삼황오제인 제곡 고신씨에 맞닿는다. 제곡 고신씨의 출신은 수인씨와 마찬가지로 하남성 상구이다. 敻(형)은 멀리 먼 遠(원)이라는 뜻이므로, “靈源自敻”(영원자형)은 ‘까마득한 옛날까지 올라가서 조상의 뿌리를 찾으면’ 이런 의미가 된다. 그러므로 역사적인 기록을 찾아 올라가보면 우리 조상의 뿌리는 제곡고신씨가 된다는 조상의 뿌리를 밝혀주는 문장이다.
継昌基於
昌基(창기)는 昌盛基業(창성기업) 또는 基業(기업)을 昌隆(창륭)-창성하게 만든다는 뜻이니 창성한 왕업을 화관대제에게 이어받게 하고-継. 역사기록에 따르면, 제곡고신씨의 왕위를 물려 받은 사람이 요임금이다 (帝嚳繼位是爲帝堯).
火官之后 화관지후
火官之后(화관지후)는 국편위의 번역대로의 “화관의 후손”이라는 뜻이 아니라, 화관과 后(후)는 동일한 사람 즉 화관이고 그 불을 다스리는 최고의 왕이라는 뜻이다. 공영달 소에 “后”를 “君”으로 풀이했다: “后 君也 于此之時 君當翦財成就 天地之道”. 따라서 비문의 火官之后(화관지후)는 요임금을 지칭하는 말이다. 불을 다스린 임금은 역사적으로 堯(요)임금으로 알려져 있다. 堯(요) 한자 이름 자체가 ‘불’의 임금님이라는 뜻을 함의하고 있다. 화관지후는 ‘火官=后’이니 火官大帝(화관대제)하고 같은 말이다. 화관대제는 불을 다스리는 신으로 남방화신으로 섬긴다. 요임금의 堯(요)는 높을 요(嶢), 불타오를 요(燎), 불가마 요(窯), 빛날 요(耀) 등의 낱말과 모두 연결되는 말이다. 도교에서 삼관대제 또는 삼원대제는 요순우 세 임금을 각각 가르킨다. 삼원대제는 천관대제 지관대제 수관대제를 이르는 말인데 요순우 삼대제에게 제사를 드리는 절기를 삼원절이라고 한다. 삼원절은 상원절 중원절 하원절로 구분되고, 음력 정월15일, 7월 15일, 10월 15일이 각각 해당한다.
后(후)
后(후)는 왕 이외에 왕의 부인인 왕후, 황후의 뜻을 가진 글자이다. 后(후)는 제왕의 부인을 지칭하는 황후(皇后), 태후(太后)라는 말로 더 잘 알려진 글자이지만 사실 군주, 제왕을 가르키는 말로써 먼저 쓰였다. 先后(선후)하면 先王(선왕)을 말한다. 공영달은 “后”를 “君”으로 풀이했다. 后丞(후승)은 천자 황제를 보필하는 전후좌우의 신하 四隣(사린) 중의 하나이었다. 주나라의 선조가 黄帝之后(황제지후) 后稷(후직)이다. 후직은 天帝之子(천제지자)로서 그의 어머니가 姜嫄(강원)이고, 後(帝王)稷(穀物), 곡신, 농업신의 대표자이다. 社稷(사직)은 국가를 의미한다.
천상에 불타오르는 불의 모습
‘활활’ 불 타오르는 불(火)화의 모습이 새가 날개 타고 ‘훨훨’ 하늘로 올라가는 상과 같이 상상이 되지 않는가?
공군 날개 마크 형상화 불사조 실제 사진
이글이글 타오르는 횃불이 炎炎(염염), 熊熊(웅웅), 불곰 (rampant bear)의 형상과 같구나! 불사조, 피닉스, 불이 곧 날개라는 이야기를 이제 이해하지 않는가? 왜 불의 임금이 불 타오를 요(堯) 요임금님, 赤帝(적제), 帝堯(제요)가 별자리 남방주작 익수-즉 시방새, 날개, 처녀자리, 날개에서 빛나다는 뜻의 경성, 명성으로 불리우는지 그 의미가 이해된다. 왜 북두칠성의 국자가 있고 그 반대의 위치에 남두육성 국자가 또하나 있는가? 좌우의 날개로 새가 날듯이 득도하려면 즉 하늘에 오르려면 날개를 타고 날아 올라가야 한다. 날개는 양쪽이 있어야 제 기능을 발휘한다. 한쪽이 잘못되면 추락한다. 그런데 태양까지 날아갔던 이카루스가 떨어진 이유는 무엇이었던가? 모든 것은 음양으로 이루어 있고, 만물은 서로 짝을 짓고 있다. 우주만물의 이치가 그렇다면 인간사회 또한 마찬가지가 아니겠는가?
10월 상달
한나라 때는 국가의 공식적인 한 해의 시작은 10월부터 시작하였다. 10월을 상달이라고 말한 까닭은 일년의 시작이 10월달부터이고 한 해의 마지막 달이 9월이었기 때문이다. “10월 상달”이라고 말하는 그것이 가을 추수를 끝낸 후 한 해가 다시 시작하는 절후로 삼아 온 전통을 말해준다. 우리나라에서 조상에 대한 제사를 지내는 시제는 하원절인 10월달에 지냈다. 삼원절 중 상원절인 정월 대보름날에 벌이는 횃불놀이가 요임금 화관대제에 대한 제사를 지낸 상원절의 전통 풍습의 하나였다.
계 契
사기 오제본기 분류에 의하면 5대성군은, 黃帝(황제), 顓頊(전욱), 帝嚳(제곡), 唐堯(당요), 虞舜(우순)이다. 한반도의 조선과 진국과 신라는 중국 중원의 국가들과는 당요 요임금 이전 때부터 갈라져 나왔으므로 공통 시조는 제곡이 된다. 제곡의 여식 중에 간적(簡狄)이 있는데 간적이 낳은 자식이 契(설)[1]이고 계가 대우 치수 때 공을 세워 상나라에 봉해지니 이가 곧 상나라의 시조가 된다. 상나라의 수도가 바로 商丘(상구)이었다. 오늘날 하남성의 상구시가 위치한 곳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삶의 기초가 품앗이고, 상호간의 계약에 근거하여 화합하여 지상낙원을 건설했는데 이 사회계약의 기초가 바로 契(계)이며 모든 상거래의 기초 수단이 이 “契”이다. 계는 말로써 서로 믿음의 계약이고, 그런 계의 전통이 유구한 역사를 통해 오늘날까지 한국인의 심성과 전통에 가장 깊숙이 자리잡아 온 것이다. 상나라의 시조 “계”는 구체적 사람 이름임과 동시에 바로 사회계약의 기초인 계약의 계의 의미를 담고 있는 상징 비유법에 해당하기도 한다. 오늘날 자유민주주의 사회 제도는 존 로크가 설파한 “사회 계약설”에 기초하는데, 사람 사이에 “합의(consent)”와 “동의(agreement)”를 기초로 하는 “계약(covenant)” 사회가 서양 민주주의 제도의 정립 훨씬 이전에 우리나라 전통사회의 규범으로 자리잡고 있었다는 한국인의 훌륭한 역사를 분명하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
상나라 시조의 어머니 간적(簡狄)은 제곡고신씨가 죽어서 적산(狄山)에 묻혔으니 제곡의 정통성을 간직하고 있는 것으로 믿어왔다. 산해경에 따르면 제곡은 삽십세에 왕위에 올라 일백오세에 세상을 뜨니 70년을 제위했던 장수왕의 대명사이다. 제곡이 태어난 곳도 상구이이었으니 상구는 신라 왕조의 이전부터의 원 고향이 된다. 사마천의 사기에서 기자를 조선에 봉했다는 기자조선의 역사가 단순히 꾸며낸 것이 아님이 확인된다. 기자조선에 대해서는 율곡이이의 설명이 유효하다.
화관 화정 화후 화제 화관대제 화덕진군 화관지신(火官之神) 火官(화관)은 종교적으로는 화성(火星)에 대한 제사를 드리는 신전을 담당하고, 행정적으로 모든 불(火)과 관련한 행정을 담당하는 관리를 이르는 화정지관 (火政之官)이다. 火正(화정)과 화관(火官)은 같은 말이다. 한서 오행지에 이와 같이 설명하고 있다. “古之火正 謂火官也 掌祭火星 行火政”(漢書, 五行志上). 火神(화신)은 祝融氏(축융씨)이고 火帝(화제)는 염제(炎帝)라고 예기 월령가에는 기술하고 있다. 도교에서는 당요가 화제(火帝)에 해당한다. 축융씨는 제곡 때 火官을 지내고 죽어서 火神이 되었다고 하고, 국어(國語) 정어(鄭語)에 따르면 黎(려)를 화정으로 삼았다. “夫 黎 爲 高辛氏 火正 以淳耀敦大 天明地德 光照四海 故命之曰 祝融 其功大矣”. 축융은 이와 같은 한자의 훈 뜻과 같이 천지사방에 불을 훤히 밝히는 일에 대한 모든 것을 지칭하는 말이다. 후대로 내려오면 화덕진군 화덕성군으로도 불리운다. 여씨춘추에서 말하는 祝融神(축융신)에 대해 고유의 주해는 “祝融 顓頊氏后 老童之子 吳回也 爲 高辛氏 火正 死爲火官之神”으로 설명하였는데, 오회(吳回)는 곧 오나라의 시조에 해당한다. 위와같이 火星을 주관하는 火官, 火正에 대한 이해를 기초로 해석하면, 火后(화후)는 요임금이 해당한다. 요임금은 제곡고신씨의 왕위를 이어받은 사람(帝嚳繼位是爲帝堯)이다.
辰國(진국) & 辰星(진성)
火星을 다른 말로 商星(상성)이라고 하고, 또 상성은 다른 말로 辰星(진성)이라고 한다. 고대 한반도에 자리잡은 왕국 중 조선 이외에 “辰國”(진국)이 존재했다. 진국은 곧 상나라의 지파이었다. 화성을 전쟁의 상징으로 이해하면 외국 정벌을 뜻한다. 전쟁은 총이든 화포이든 봉수불이 오르듯 개자추가 타죽든 그렇게 위험한 불놀이이지 않는가? 商(상)나라는 말의 본뜻 그대로 무역 거래를 하였으니 그 성격상 외국으로 진출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고대에서 무역 거래를 군인들이 담당하였던 이유는 험난한 외국진출의 성격상 목숨을 담보로 하는 위험한 성격의 일이기 때문이었다. 오늘날에도 상선은 전쟁이 발발하면 곧바로 전선에 투입될 수 있도록 각국의 국법은 정해 놓고 있다. 상선에 타는 뱃사람들은 평소에는 민간인이지만 전쟁시에는 물자 수송 등 최전선에 투입되는 전투병이 된다.
오회(吳回)
오회(吳回)는 불을 다스리는 화신인 축융의 동생으로서 형인 축융의 화관의 지위를 이어받아–형제 상속인 바 이것은 형제간의 우의를 강조했던 당시의 시대적 이념이 표현된다- 불의 화신이 되었고, 육종을 아들로 두었으며, 육종(전욱의 현손이 된다)은 여섯 아들을 두었는데 곤오, 삼호, 팽조, 회인, 조안, 계련이었다. 이들은 춘추전국시대 위, 한, 초나라 지역에 살았고, 이들이 초나라를 건설한 직접적 조상이다. 이들은 이후 여러 성씨들의 시조가 되는데 초나라는 오씨가 조상인 셈이다. 昆吾(곤오)의 오는 옛날의 한자음으로 오나라 오(吳)와 같았기에 곤오가 오로 통했다. 사기의 저자 사마천 당시엔 천년 전의 시차가 났으니 사마천의 기록만이 정확한 설명이라고는 보기 어렵지만 대체적으로 신화전설이라고 치부되는 이야기들이 때론 역사유물의 발굴등으로 인해서 역사적인 기록으로 입증되는 바가 많으므로 사기의 기록을 전면 부정하기 어렵다. 사기의 초세가 기록에 따르면 이와 같다. 곤오는 도자기의 신으로 내려오는데, 진시황제의 능에서 발견된 ‘병마용’-그것에서 당시 도자기 예술의 뛰어난 기술과 미적 우수성을 볼 때 도예의 신이 한반도에서 추앙받는 까닭 또한 신라 고려 조선시대에까지 이어진 도예의 세계적 우수성이 그것을 웅변해 준다. 정유재란 때 일본의 가고시마 성주 시마즈가 납치해간 남원 강진의 도예공 심수관-일본에서는 이참판으로 불린다-이 어떤 연결점이 없이 우연적으로 발생한 것이 아니었다. 도예공은 혼을 다해 일을 하는 전문가 장인이고, 기술자들은 세계적 표준을 추구하며, 금은 세련뿐만 아니라 철을 제련하여 칼 등 무기를 뽑아내기에 무사들과 연결되고 또 신안 태안 등에서 좌초된 도자기 유물선에서 발견되듯이 배를 타고 무거운 물건을 실어 나르며 장사하는 무역인이기도 하다. 장사꾼은 거래시 신의에 바탕을 두며, 험난한 바닷길을 이용한 먼 거리 무역의 모험을 감행하는 개척자이기도 하다. 이런 측면에서 상인 정신은 무사 정신과 서로 통한다. 오나라를 멸망시킨 월나라 구천을 재상으로써 섬긴 범려가 상인의 화신으로 추앙받는 동시에 도자기 도예의 도공신으로 추앙받는 이유가 어렵지 않게 이해되리라.
峻構方隆
峻(준)은 험준(險峻)하다는 말처럼 산이 높이 우뚝 높이 솟은 것을 말하고, 構(구)는 땅에 솟은 구조물을 뜻하고, 方방은 사각형, 隆(륭)은 흥성(興盛)하고 높이 솟다-高起의 뜻이니, 峻構方隆(준구방륭)은 땅에다 건물 구조물을 건설해 냈다는 의미이다. 건릉 술성기에 “方隆七廟之基”의 표현이 나타나는데, 그것과 같은 ‘나라의 기틀을 다졌다’는 의미가 方隆(방륭)에 들어 있다.
도교에서 삼혼의 존재를 믿듯이, 기독교에서 삼위일체를 믿듯이, 사람의 혼에는 靈(성령)과 光(빛) 精(마음)이 들어 있다. 한 나라를 건설하려면 해와 달과 별의 정기를 받아야 가능할 큰 일일테고, 이는 하늘과 땅과 사람의 힘이 서로 합쳐져만 가능하다. 峻構(준구)는 締構(체구)와 같은 말로써 그 뜻은, 얽어 만들다, 틀을 짜다, 즉 현대 건축에서의 구조틀, 비대, 스캐폴딩을 말한다. 기틀을 짜다는 의미에서 결구(結構)와 비슷한 말이다. 結構(결구)는 일정한 형태로 얼개를 만들고 그에 따라 건축물을 짓는 그와 같이 건축물을 올리는 구조를 가리킨다. 사조(謝朓)의 싯구에 나오는 結構에 대해 이선은 “結連構架以成屋宇也”라고 주를 달았는데, 결구는 ‘얼개를 엮어서 집을 만드는 것’을 이른다.
태세 신앙
도교에서 땅의 신 지관대제로서 섬기는 임금님이 순임금이다. 고대 우리나라에서 지신 신앙의 내용의 한 단면을 여실히 보여 주는 예가 남포의 덕흥리 고분 벽화 묵서에서 보여주는 “태세 신앙”이다. 건축물을 올릴 때는 택일을 하였고 방위를 결정하였고, 길일 날짜를 택일해서 결정했으며 건물의 구조와 방향과 개시 일정의 결정은 신중에 신중을 기했다. 풍수 이론이 그것을 여실히 말해주듯이, 구조물을 파고 올릴 때는 건축물의 방향과 위치와 날짜를 매우 중요시했다. 건축 노동이라는 것이 기상여건과 주위 환경과 지반 여건에 직결된다는 점에서 매우 실용적이고 실제적인 근거가 충분했던 것이다. 집 하나 건축할 때도 상량문을 써놓고 영원하기를 기원했는데, 불국사의 석가탑을 해체 보수할 때 발견된 無垢淨光大陀羅尼經(무구정광대다라니경)과 묵서지편이 영원성을 기원하는 믿음이 없었다면 어찌 그런 것들이 먼 훗날까지 이어질 수 있었겠는가? 峻構方隆(준구방륭) 이 표현의 뜻은 ‘방정하고 드높은 구조물들을 건설해가며 사방으로 반듯하게 뻗어 나갔다’.
由是克▨ ▨枝載生
“由是克□□枝載生” 여기의 결자된 부분을 “由是克祚 天枝”으로 메꾸어 볼 수 있다. 天枝(천지)는 황족의 후예를 뜻하는 단어이고, 克祚(극조)는 선조로부터 복록을 능히 계승해 나갈 수 있다는 뜻의 단어이고, 由是(유시)는 이유(because of) 뜻의 단어이니, “由是克祚 天枝載生”(유시극조천지재생)의 구절은 ‘조상으로부터 복록(福祿)을 이어 받아나갈 능력이 있는 천자의 후손으로 태어났다’는 뜻이다. 고대사회에서 부모로부터 상속은 그만한 능력있는 자식이 물려받았다. 요순시대 이래 선양의 방식이 그것이고 이런 상속법은 인류가 존속되고 발전되기 위해서 필요하며 이는 경제학 이론으로도 입증된다. 天枝(천지)는 황족의 후예 (皇族后裔), 천자의 후손을 이른다. 이백의 화성사대종명의 “系 玄元之英. 茂列聖之天枝 生于公族 貴而秀出” (계 현원지영유 무열성지천지 생우공족 귀이수출)의 구절의 뜻이 그것이다.
克祚(극조)는 조상으로부터 복록을 이어 받을 자격과 능력이 있음을 비유하는 말 “能繼承祖輩的福祿”으로 중어사전은 풀이하고 있다. 진서(晉書) 완종(阮種)전의 “天聰明自我聰明 是以人主祖承天命 日愼一日也 故能應受多福而永世克祚”(천총명자아총명시이인주조승천명일신일일야)의 예문이 그것을 설명하고 있다.
克(극)은 ‘일본을 이기고 극복하자’는 구호를 쓸 때 극일(克日)이라고 쓰는데 이 극은 이기다, 전승(戰勝)의 뜻으로 일본에 빼앗긴 실지를 회복하는 克復(극복)의 의미이다. 제압하고 이겨내다의 의미로써 克服(극복), 克己奉公(극기봉공)이 쓰인다. 극기봉공은 자신의 이기적인 생각을 극복하고 공공의 이익에 봉사하는 것을 이르므로 멸사봉공(滅私奉公)의 뜻과 같다. 이와 같이 克(극)은 능히 해낼 수 있다는 것을 말하는데 미국의 국부로 유명한 프랭클린이 강조한 바대로 부의 원천은 근면검소함에 있다. 근면검소의 미덕을 극구강조한 사람은 당태종이었는데 그런 당부에 대해선 저자의 “역사 혁명” 책에서 설명하고 있는 당태종의 “제범”편을 참고하라. 근면검소와 같은 의미로 克勤克儉(극근극검)이 쓰인다. 이러한 의미의 克勤(극근)이 비문앞면 제7행의 “克勤開□” 문장에서 쓰이고 있다. 克勤開□은 ‘사람들은 농업 등 오로지 자기 맡은 바 일에 힘쓰게 되었고, 그리하여 나라를 새롭게 열어갈 수 있었다’는 의미이다. 조상으로부터 유산을 상속받기 위한 조건은 이렇듯 근면검소하고 능력있는 자식임을 요구했다. 克祚(극조)는 이러한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枝載生의 결자부분을 메꾸면, (天)枝載生이 되고 천지재생의 뜻은, ‘황족의 후예, 천자의 후손으로서 태어나다’.
天降金樻 천강금궤
삼국사기에서 논하길, “新羅古事云 天降金樻 故姓金氏 其言可恠而不可信 臣修史以其傳之舊 不得刪落其辭”, “신라 고사(古事)에는 ‘하늘이 금궤(金櫃)를 내려 보냈기에 성(姓)을 김씨(金氏)로 삼았다’고 하는데, 그 말이 괴이하여 믿을 수 없으나, 내가 역사를 편찬함에 있어서, 이 말이 전해 내려온 지 오래되니, 이를 없앨 수가 없었다.” (국편위 번역).
국편위는 天降金樻(천강금궤)를 천강 “금궤(金櫃)”라고 번역하였는데 삼국사기에 적힌 “金樻”(금궤)는 황금 나무가지를 말한다. 樻(궤)는 “柜”(거)와 같은 뜻의 글자로써 가구 궤짝을 의미하는 말이기도 하지만, 나무지팡이, 목다리, 버팀목, 환자의 다리를 대신해주는 목발을 뜻하는 말 즉 拐杖(궤장)을 의미한다.
신라인들이 어찌 하늘에서 내려왔겠는가? 중국의 땅에서 바다를 건너 한반도로 피난오거나 또는 금수강산 무릉도원이라는 전언을 들고 진시황제 때처럼 파견나온 전문가들이 귀국을 마다하고 자발적으로 이민을 결정했던 것이지, 따라서 국가체제도 중국에서 형제간 사이로 수립된 것이 아닌가? 이런 측면에서 진나라 당숙우의 역사처럼 桐葉封弟(동엽봉제)의 역사로써 이해하는 것이 합리적인 추론이다. 따라서 “金樻”(금궤)는 국편위가 번역한대로의 나무 궤짝의 금궤(金櫃)가 아니라 황금나뭇가지로 새기는 것이 합리적이다. 한반도의 사람들은 중국의 선조와 마찬가지로 같은 나뭇가지에서 갈라져 나온 지파 가운데 조상이 서로 같은 형제로서 다만 지역이 멀리 떨어져 있는 먼 동해 바다를 건너서 정착한 곳에 새로운 나라를 세웠기에 같은 형제국으로서 서로 우애좋게 평화를 추구하며 자립적으로 살아갔던 역사가 아니었겠는가?
桐葉封弟(동엽봉제)
사기 진세가(晉世家)편에 桐葉封弟(동엽봉제)의 고사성어의 의미가 전해진다. 유종원의 桐葉封弟辯(동엽봉제변) 한시를 인용하여 당숙우의 진나라 봉후의 역사를 살펴보자.
成王以桐葉(성왕이동엽) 與小弱弟戱曰以封汝(여소약제희왈이봉여) 周公入賀(주공입하) 王曰戱也(왕왈희야) 周公曰天子不可戱(주공왈천자불가희) 乃封小弱弟於唐(내봉소약제어당) |
성왕이 오동나무잎을 나이 어린 동생에게 주며 장난기로, ‘이것으로 너를 제후로 봉한다’라고 말했다. 주공이 들어와 축하를 드리니 왕이 ‘농담으로 한 말이었네’라고 답하였다. 주공이 ‘천자가 농담으로 희롱하면 옳지 않습니다’라고 반론하자 결국 어린 동생을 제후로 봉하고 땅을 떼어주고 자립하게 했다. |
… |
|
吾意周公輔成王(오의주공보성왕) 宜以道(의이도) 從容優樂(종용우락) 要歸之大中而已(요귀지대중이이) |
내 생각에는 주공이 성왕을 보필함에 있어서는 마땅이 바른 도로써 점잖고 부드러우며 여유있고 즐겁게 하여 위대한 황금시대로 되돌아가게 시도했을 것으로 판단된다. |
… |
|
急則敗矣(급칙패의) |
국정을 급하게 다그치듯 처리하면 결국 실패하기 마련이다. |
… |
|
是直小丈夫缺缺者之事(시직소장부결결자지사) 非周公所宜用(비주공소의용) 故不可信(고불가신) 或曰封唐叔(혹왈봉당숙) 史佚成之(사일성지) |
이러한 것은 바로 소인이 못되고 작은 꽤를 써서 하는 일이니 주공같은 현인이 썼을 리가 없다. 따라서 그런 것을 믿을 수 없다. 어떤 사람은 당숙우를 중원의 당국에 봉한 사실은 시대의 변천에 따라 역사를 윤색해서 일어난 일이라고도 말한다. |
英異 秺侯
載生의 재(載)는 안사고(顏師古)가 “載 始也”라고 주해하고 있는 바와 같이, 태어나 삶을 시작한다는 뜻이다. 英異(영이)는 “才智超群 神采絕俗”, “德才非凡的人”으로 사전은 풀이하고 있다. 양무제의 사남교대사조에서 “可班下遠近 博采英異”의 표현이 나온다. 英異(영이)는 풍채가 뛰어난 사람, 발군의 지혜와 재기를 가진 사람, 비범하게 재덕(才德)을 갖춘 사람을 뜻하는 단어이다. ‘타고난 호걸에다 글 쓰는 솜씨가 비범하다’ 뜻인 “天然俊杰 毫翰英異”(천연준걸 호한영이)의 예문이 그것을 보여준다. 毫翰(호한)은 붓글씨 毛筆(모필)을 말하니 문장력, 서법이 뛰어나다는 뜻이다. 여기서 載生英異(재생영이)는 天生神異(천생신이)라는 말과 같고, ‘영특하고 비범한 재덕을 갖고 태어났다’는 뜻이다. 한편 英異(영이)는 뒤따르는 구절인 .侯(투후)라는 인물을 꾸며주는 형용사로
쓰여서 才德 비범한 재주와 인덕을 갖춘, 秺侯(투후)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靈異(영이)는 神靈(신령)스럽다의 뜻이다. 사조(謝朓)의 싯구에 대해 이주한은 “靈異 靈仙也”, 영이(靈異)는 영선(靈仙)과 동의어로 주해했다. 또 영이(靈異)는 神奇怪異(신기괴이)의 약어로 신이(神異)스럽다는 뜻이다. 또 력도원의 수경주에 “表述靈異”(표술영이)의 구절에서와 같은 靈驗(영험)스럽다의 뜻이 있다. 또 靈異(영이)는 뛰어난 인재를 말하는 賢俊(현준), 奇才(기재)의 뜻이 있다. 유량은 “靈 英 .賢俊”으로 주했다. 영이(靈異)는 영재와 동의어이고, 그러므로 영이는 비범하게 지혜를 가진 聰慧(총혜)를 의미한다. 당태종의 晉祠銘(진사명)에 靈異(영이)의 뜻이 나온다: “猗歟勝地 偉哉靈異 日月有窮 英聲不. 天地可極 神威靡墜 萬代千齡 芳猷永嗣”.
秺侯 투후
秺侯(투후) 그는 누구인가? 秺侯祭天之胤(투후제천지윤). 우리 신라인은 투후 천자의 후손이다. 투후(秺侯)는 역사상 구체적으로 누구인가? “투후제천지윤” 책을 보라.
祭天之胤 제천지윤
祭天(제천)은 하늘에 제사를 드리는 祭祀天神(제사천신) 제천의식을 말한다. 공양전(公羊傳) “魯 郊何以非禮 天子祭天 諸侯祭土”의 기록에 대해 하휴의 주해는 “郊者 所以祭天也 天子所祭 莫重于郊”인데, 이 공양전을 참조하면 天子祭天(천자제천)이므로, 秺侯祭天之胤(투후제천지윤)은 천자의 후예인 투후라는 의미가 된다. 투후가 천자의 후예이면 당연히 신라인들은 모두 천자의 후손이 된다.
祭天之胤(제천지윤)은 天子之胤(천자지윤)과 같은 의미이다. 진자앙이 쓴 묘지명에 “雖存天子之胤 已類咸陽布衣 植德早夭(수존천자지윤 이류함야포의식덕조요)”의 구절이 나온다.
胤(윤)은 후사를 잇는다, 후대자손이라는 뜻의 단어이다.
秺侯=祭天之胤=新羅人之先祖 新羅人=天枝=皇族后裔 |
투후=천자후손=황족=신라시조 신라인=천손=황족 후예=황손 |
신라인의 먼 조상은 요임금에게 왕위를 물려준 제곡 고신씨이라는 사실, 가깝게는 황족의 후예인 투후(秺侯)라는 사실이다. 신라 건국이 한나라 때이고 투후는 황족이니 신라 김씨는 한나라 황실의 성씨인 유(劉)씨의 劉자에서 칼자루 변을 떼어낸 金씨라는 사실이 밝혀지는 것이 아닌가? 한나라 황실의 劉(유)씨에서 김씨가 파생되었다는 설은 우리나라에는 전하지 않고 주로 중국의 동해안가 지방에서 전해 내려오는 전설적인 이야기로 치부되어 왔다. 하지만 나는 여기서 신라 건국의 주체 세력은 한나라 특히 한무제의 유교통치이념에 대항하여 도교 통치 문화를 계승해 온 도교 중심 세력으로써 보다 직접적으로는 한나라의 5대 6대 황제인 효문제와 효경제의 후손임을 밝힌다.
5행 번역 요약
□□□□君- (三五之聖)君 |
(우리 신라 사람들은 삼황오제의 후손들이다). |
靈源自敻 | 까마득한 옛날까지 올라가서 조상의 뿌리를 찾으면 |
継昌基於 | 창성한 왕업을 (화관지후)에게 이어받게 하고 |
火官之后 | 불의 임금님-화후는 요임금을 말하는데, (제곡고신씨는) 요임금님에게 (왕위를 물려 주었다) |
峻構方隆 | 방정하고 드높은 구조물들을 건설하며 사방으로 반듯하게 뻗어 나갔다. |
由是克□- 由是克(祚) |
조상으로부터 복록을 이어 받을 자격과 능력이 있는 |
□枝載生- (天)枝載生 |
황족의 후예, 천자의 후손으로서 태어나 |
英異秺侯 | 비범한 재주와 인덕을 갖춘 투후(秺侯)는 |
祭天之胤 | 하늘에 제사를 드릴 자격이 있는 투후 황족의 후예로서 |
傅七葉以□ | 고관대신 태부를 지냈다 |
'저서-------- > 문무왕릉비문-투후 제천지윤-한국의기원원' 카테고리의 다른 글
17장 충신장 서두에 인용된 육가의 신어 (0) | 2022.01.03 |
---|---|
문무왕릉비 비문 원문 (0) | 2022.01.03 |
투후는 ?侯 (투후)인가? (0) | 2022.01.01 |
투후 김일제 (0) | 2022.01.01 |
12장 무고지화 (0) | 2022.01.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