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지식 체계과 전승의 문제[1]
[1] 감포 앞바다 바위를 문무왕릉이라고 얘기하는 사람들의 근거는 어디에 의존하고 있는가? “문무왕릉비”이라고 분명하게 쓰인 비문의 명문이 엄연히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왜 무슨 저의로 역사에도 없는 감포 앞바다 바위를 두고서 혹세무민하며 문무왕해중릉으로 비정하고자 한단 말인가? 삼국사기에서 “羣臣以遺言 葬東海口大石上”이라고 기술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보라. 그러면 삼국사기에 기재된 내용은 믿고 문무왕릉의 비문 내용은 부정한단 말인가? 문무왕릉의 비문이 존재하는데 왜 그것을 부정한단 말인가? 그런 태도와 자세는 천번만번 부당하다. 그건 인류의 지식체계를 전면 부정하는 망발에 다름아니기 때문이다. 법원에서 판결을 잘못하면 재심이라는 절차가 있다. 하물며 역사학이라면? 역사에서 새로운 증거가 발견되면 역사 교과서라고 해도 그 잘못은 즉시 수정되어야 한다. 삼국사기는 최초로 편찬된 때가 1145년경으로 알려져 있는데 현존하는 삼국사기는 기껏해야 조선시대에 들어서서 1500년 이후에 발간된 중간본이 최고의 문서이다. 하지만 문무왕릉 비문은 682년에 세워졌다. 당시 국가의 법적 근거로써 세워진 정식 국가 행위에 해당한다. 따라서 문무왕릉의 비문은 진시황제 순수비처럼 법적 근거가 되는 제1차 사료인 반면 삼국사기는 직접 증거가 아닌 제2차적 사료 가치를 갖고 있을 뿐이다. 역사 교과서는 고고학적 또는 다른 과학적인 방법에 의해서 얼마든지 뒤집어지고 있지 있는가? 앞선 시기의 법적 증거가 발견되는 그 이후에 일어난 일은 즉시 수정되어야 한다. 삼국사기가 인류의 지식과 학문 체계를 송두리째 부정할 근거는 그 어떤 곳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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