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노블레스 오블리주-품성과 자질은 천성인가 교육되는가?-Nature vs Nurture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공직자의 “지위”에서 나오는가?
“법의 지배”가 통하지 않고 대신 “인치”가 통하는 대륙법 국가들의 법문화에서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현상 하나가 사람의 권위와 영향력이 공직의 직함에서 나온다고 여기는 사고방식인 것 같다. “소매에 완장을 차는 것”을 영어로 “getting some stripes on your sleeve”이라고 표현하는데, 우리나라 윤흥길의 소설 “완장”에서 졸지에 소매에 완장을 차는 순간 안하무인격으로 행동하는 권력의 속성을 그려내고 있는데, 이런 모습은 작은 권력의 영역에서 뿐만 아니라 일제시대, 한국동란, 권위주의 억압정권 시대에서 유별나게 나타나듯이 높은 권력의 세계에서도 통용되는 것 같다. 또 문화혁명기의 완장을 차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려대는 공산당 간부의 모습이나 히틀러의 나치 조직에서 소매에 완장을 차고 설쳐대는 전형적인 모습을 상기해 보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권력의 보편성이라고 여겨질 수 있다. 완장이 상징하는 것은 권력은 최고통치자에게서 나온다고 보는 권력을 “인치”로써 이해하기 때문일 것이다. “인치the rule of man”의 개념은 “법치 the rule of law”의 개념과는 반대되는데 이 두 개념이 대륙법국가와 영미판례법국가의 권력에 대한 이해 차이를 설명해 주는 것 같다.
영미국의 공직에 대한 인식과 대륙국가의 공직에 대한 인식의 차이
‘오얏밭에서는 갓끈도 매지 말라’는 이해관계 충돌 회피에 대한 속담이 잘 알려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나라에서는 전관예우 제도가 지금까지 큰 저항 없이 통용되어 왔을까? 더구나 우리나라는 영국처럼 공직자는 민간부분에서 임명되지 않고 평생직인 국가공무원제도를 두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공직자가 민간인이나 다른 외부조직으로부터 금전적인 이익을 받는 것을 당연시 여기는 문화를 형성해 왔을까?
프랑스와 대조적인 영국의 사례를 보자. 영국의 재판관은 민간인에서도 충원된다. 변호사중에서도 임시적으로 법관직을 수행하는 경우도 많다. 더구나 지역유지 민간인이 재판관을 맡는 제도를 공식적으로 유지해 내려오고 있다. 이를 “치안 판사” 등으로 번역하는 “매지스트레이트 Magistrate”, "저스티스 피스 Justice of the peace"가 그것이다. “매지스트레이트 Magistrate”, "JP”는 우리나라 같은 대륙법국가에서 시장 군수가 사법권까지 전권을 행사하던 것과 같은 지위와 권한이 비슷하지만 대륙법국가의 경우는 시장 군수가 주민에 의해서 선출된 것이 아니라 중앙 정부(왕)에서 임명 파견된 사실 그리고 영미법은 행정최고책임자의 결정 즉 매지스트레이트, JP의 행위는 최종적으로 “사법부 법원에서 다시 재심사 대상 judicial review“이 된다는 제도에서 가장 큰 차이가 난다. 우리나라 같은 대륙법국가에 시장군수의 결정이 법원의 재심사 대상이 되지 않는 사실에서 시장 군수(조선시대의 사또)의 결정은 독단적인 면이 있지만 이 경우 행정부내에서 지휘 명령 계통-시장 군수의 경우 도지사-중앙 행정부-에 따라서 재심사 대상이 된다는 종적 관리 측면을 고려한다면 전제적이고 독단적이라고 평가하기는 힘들 것이다. 영미법국가의 “매지스트레이트”, “JP”는 공무원이 아닌 일반 보통사람 “lay"으로서 “자발적으로 voluntary” 참여하고, “무보수”로 일한다. 영미국에서 공직은 고대그리스 민주정의 경우와 같이 기본적으로 공직은 “봉사” 개념으로 여겼다. JP는 자치 지역 공동체의 수준에서 운영되는 모델이고, 중앙정부 차원의 고등법원, 대법원의 업무는 정통 법관이 완전하게 관장하고 책임진다. “일반인 lay people"이란 말은 어떤 공식적인 지위를 갖지 않고 있는 보통사람, 교회의 예를 들자면 성직자가 아닌 “평신도”를 지칭하는 개념인데, 이런 보통사람들이 국가의 가장 공식적이고 가장 공정성을 요하는 법원의 재판관 업무를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대륙법 국가에서는 중앙정부가 공무원을 임명하고 공무원은 임명권자에게 충성의무를 부담하게 만듦으로써 정부가 공무원을 완전히 통제하는 직업공무원 제도가 전통적으로 유지되어 온 반면 영미국은 공무원 신분이 아닌 이들 민간인들이 어떻게 고도의 전문성과 공정성을 요하는 재판관으로 봉사하게 만들고 또 이들의 공정성과 신뢰성을 어떻게 담보할 수가 있었을까? 아마도 직업공무원 제도에 의존한 우리나라 같은 대륙법국가들의 법조문화에서는 상상도 하기 어려운 부분일 것 같다. 한편 변호사 제도가 없었던 대륙법 국가는 행정부 공무원에게 전적으로 의존할 수 밖에 없었지만 변호사 제도가 존재한 영미국은 대륙법국가의 국가 공무원의 역할이 이들 변호사들이 담당해 왔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미국 혁명으로 미국을 세운 국부들은 거의 다수가 변호사 출신이었다. 영미국인들은 지역공동체 일에 대해서 관심과 지식 등이 상대적으로 매우 높고 또 보통사람들의 지식 수준이 높다는 사실에서 대륙법국가들과 차이가 나는 것 같다. 다시 말해 대륙법국가에서 지식과 행정능력을 갖춘 사람은 소수의 직업공무원에 한정되지만 영미국에서는 보통사람들의 지식수준과 관심이 대륙법국가의 공무원 수준에 견줄 수 있을 정도로 높아 보인다.
영미국의 재판관 JP들은 “자발적으로 voluntary” 자원하고, 또 “무보수”로 일하기 때문에-(물론 영국과 미국의 법원 제도는 상당한 차이가 있을 정도로 각자 발전을 이룬 부분이 있기 때문에 직접적인 비교는 조금 어렵게 되었고 현재는 보수를 받고 직업 법관 즉 판사로 임명된다), 외부의 영향력에 이끌리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양심에 따를 수 있는 것 같다. 이런 민간 재판관에 봉사함으로써 이들이 기대하는 것은 오로지 자신의 양심과 그리고 사회로부터 존경 받는다는 사실 이외에 다른 어떤 무엇이 있다고 보여지지 않는다. 사람의 본성상 “돈과 권력”으로 자유로울 수 있는 요소가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홉스, 로크, 스미스 등의 법철학자의 의견을 참고하여 보면) “양심 (자기 스스로 최선과 최고성을 추구하고자 하는 인간 본성”과 “명예 (타인으로부터 존경과 인정을 받고자 하는 인간본성”일 것 같다.
누가 사회지도층의 행동을 감시하고 감독하는가?
영국은 프랑스나 우리나라와는 달리, 법원 인사에서도 민간과 공직자의 구분이 엄격하지 않고 언제든지 교류가 가능하다. 영국은 직업법관인 판사이건 무보수 재판관(JP)이든 민간인 변호사 중에서 임명되는 제도이기 때문이다. 정치 행정 공무원도 마찬가지로 총선에서 정권이 교체되면 그 다음날 승리한 정당에서 바로 정권을 인수하고 공무원이 바뀌어도 정부 조직은 아무런 동요없이 원활하게 돌아간다. 언제든지 정권을 운용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처럼 지방도시 시장 지사가 바뀌어도 정권인수위원회를 구성하면서 오랜 시간을 준비하고 보내는 경우는 상상하기 어렵다. 영국은 민간인이 공직자를 쉽게 맡는 제도인데 왜 우리나라의 “전관예우”같은 문제점이 나타나지 않고 있으며 그 이유는 무엇일까?
물론 깊이 따지고 들어가면 영미국의 “변호사”는 공식적으로 그리고 법적으로 “법원 공무원 officer of the court”의 지위를 갖고 있다. 영미국의 변호사는 변호사로서의 자격과 임명 자체가 대법원에 의해서 부여되고, 또 이러한 법적 지위에서 보면 법적으로는 “민간인”, “일반인 lay”의 신분이 아니다. 영미국의 변호사가 “법원의 공무원 officer of the court”이라고 말할 때 법원에서 일정 보수를 받고 일하는 “법원 직원”임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법원의 직원, 법관과 마찬가지로 “진실을 전달하고 진실을 추구할 직업적인 의무”를 부담하고 있다는 “법적 의미”에서 “법원 공무원”이라고 말하는 지위에서 나오는 의무를 의미한다. 영미국의 변호사는 “법원의 공무원”에 속하기 때문에 법원이 최종적으로 변호사의 행동을 감독하고 규율한다. 따라서 변호사 중에서 판검사가 임용되는 영미국의 법관 임명 제도를 우리나라의 “직업 공무원”제도의 시각에서 단순하게 평가하기란 쉽지 않다. 결국 영미국에서는 법원이 최종적으로 공직자의 행동과 업무 평가를 책임지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나라에서 나타나는 “전관예우”의 문제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한편 우리나라에서 변호사는 “법원 공무원”의 지위와 신분이 아님을 참고하기 바란다. 대륙법 국가는 행정부 우위 체제이어서 변호사를 규율하는 책임이 사법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에 대한 책임은 행정부 소속인 “법무부”가 관장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판검사가 “옷만 벗으면” 그 순간부터 “민간인”으로 취급되는데 이런 부분은 영미국에서 공직자의 책임을 다루는 법과는 큰 차이점을 보인다. (비리를 저지른 판검사도 “의원면직”만 되면 어떻게 더 이상 처벌할 수 없다는 그런 괴이한 공무원 특별 대우법이 통용되고 있다. 비리에 대한 책임 추궁이 공무원의 지위와 신분 여부하고 무슨 관련이 있다는 것인가? 이에 대해서는 영국의 헌법학의 대가 다이시의 견해로써 쉽게 반박할 수 있다.)
공직자의 자기 이익 추구 금지 원칙
이와 같이, “지위가 높으면 의무와 덕망도 높다”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개념이 여지없이 파괴되고 마는 우리나라의 “전관예우”의 문화의 헛점을 비교해서 짚어봤다. 영국에서 민간인이 법원의 재판관으로서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자격 기준을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 간단하게 열거하고자 한다. 노블레스 오블리주 개념을 형성하는 기준과 요소가 무엇인지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리라.
“공직자의 자기 이익 추구 금지 원칙: 공직자는 오로지 공익의 관점에서 공공의 이익 public interest을 위해서 업무를 수행해야 한다. 공직자는 자신이나 가족 친지에게 금전적인 이익이나 어떤 반대급부를 주고자 하는 목적에서 공직을 수행할 수 없다. 공직자애게 요구되는 높은 청렴도: 공직자는 공직을 수행하는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외부의 사람이나 다른 조직으로부터 어떠한 금전적인 이익이나 어떤 반대급부를 받아서는 아니 된다.”[1]
1. 훌륭한 인격과 성품을 갖추고, 사회에서 존경을 받으며, 진실성과 신뢰성이 확보되고, 가족이나 친지를 포함하여 공과 사적으로 어떤 이해 관계도 얽혀있지 않고 서로 충돌하는 일이 없어, 법원의 공정성을 실추할만한 어떤 의심이 들 수 없을 만큼 청렴성이 확실한 사람
2. 다른 관계자들과 의사 소통 능력이 뛰어나고, 독해력과 이해 판단력이 높고 사리 변별력이 특출하여 해당 사건을 증거와 법적 논박을 통하여 정확하게 처리할 수 있는 문제해결능력이 뛰어난 사람
3. 법질서 확립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지역사회 공동체의 사정과 기대수준에 정통하며, 사회의 배려가 필요한 약자 계층에 대한 이해력이 높은 사회 공감능력이 높은 사람
4. 일을 독단적으로 처리하지 않고 원만하게 처리할 수 있는 능력, 다른 사람의 주장과 비판을 귀담아 듣고 받아들일 줄 아는 공정성과 성숙한 판단력을 갖춘 사람
5. 편견과 선입관에 얽매이지 않고, 논리적인 사고력에 따라 양당사자의 주장을 이해하고,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는 뛰어난 판단능력을 가진 사람
6.필요할 때 언제든지 응할 수 있는 높은 헌신감을 갖춘 사람.[2]
타고난 신분과 공직으로 얻은 지위가 특권층을 형성하는가?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고귀하게 태어난 사람은 고귀하게 행동해야 한다. The nobly born must nobly do.”- 이렇게 번역하고 있다. 여기서 “고귀하게 태어난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은수저를 들고 태어난 귀족 신분을 갖춘 사람을 말한다. 우리말에서 “고귀하다”는 말은 인격의 높음을 의미하지만, 영어의 “noble”이란 정해진 계급사회에서 출생 때 신분이 이미 정해진 것을 뜻한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노블레스란 말에서 보여지다시피, 귀족 신분이 존재한 유럽과 같은 계급 사회를 전제하고 쓰는 말이다. 그런데 우리나라가 신분사회인가? 사회학적으로 구분될 수 있을 지 모르지만 법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법적으로 왕실과 귀족계층이 존재하는 대다수의 유럽국가하고는 달리 미국과 한국은 귀족계급이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사회학적으로 귀족층을 오늘날의 개념으로 구분한다면 돈과 권력과 소유한 사회 상류층에 속하는 특수층으로 동일시할 수 있을 것이다. 사농공상의 차별적 신분 사회였던 조선시대 양반사회에서 소득의 주 원천인 전답과 토지 그리고 노비를 소유한 양반지주 가문을 귀족층으로 구분할 것이고 그런 상류지배계층은 오늘날도 사회경제적으로 확연히 존재한다. 재벌 그룹과 그 가문이 거기에 속한다.
하지만 사회 지도층이 현실적으로 존재한다고 해서 “노블레스 오블리주”란 말을 “사회 지도층이 솔선수범해서 책임과 의무를 다해야 한다는 것”을 별도로 강조할 필요가 있을까? 의무가 있다는 것은 권리가 먼저 존재하고 그에 대응해서 나타나는 상응 개념이다. 만약 누구에게 의무를 부담하라고 말할 경우 그가 누리는 권리가 있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 권원이론entitlement theory을 살펴볼 필요도 없이, 천부인권론이나 “권리 없이 의무 없다”는 법언은 더 이상 반박하기 어려울 것이다. 권원 entitlement이란 정당한 자격을 가지는 것 즉 마땅한 자기소유권을 갖는 자격이 있다는 뜻이다. 또한 하늘이 있고 땅이 있다는 동양적 음양의 이치나, 동전의 양면과 야누스적 본성을 이해한다면 의무를 강조하는 곳에 권리가 숨어 있다는 것은 그리 어려운 분석 능력을 필요치 않을 것이다. 사회 지도층으로 올라가지 못한 다른 하위층 사람들은 지위와 부를 가지지 못해서 공직자를 접근할 여력 자체가 없으므로 부패와 타락이 원천적으로 차단되어 있다. 그러므로 의무를 말하기 전에 지도층이 누리는 권리, 특혜를 밝힌다면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할지 궁금하다. 순전한 추측으로 말하는 것이 허용된다면, 아마도 프랑스 혁명이 다시 일어날 상황이지 않을까? 이런 추측은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이 아니라, 사실 미국에서 제2혁명이 일어날 때가 된 것 같이 느끼는 사람들의 숫자가 우리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많다는 점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에서 “노블레스 오블리주”란 개념을 “사회 지도층이 솔선수범해서 책임과 의무를 다해야 한다는 것”으로 정하고 그것을 별도로 강조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문제의 초점은 지도층의 의무가 아니라, 부와 권력을 가진 지도층이 누리는 그들의 특권 privilege에 맞추어져야 할 것이다.
자유지상주의 libertarianism, 리버터리안libertarian
“자유지상주의”라고 번역되는 “리버터리안”의 입장은 중앙권력의 비대화를 경계하고 (국가권력이 비대해지면 상대적으로 개인의 권리가 축소되는 당연하다)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 개인시민사회의 역할을 강조하는 데 있다. 미국 혁명의 도화선이 되었던 홍차 무역 관세에 대한 역사적 사건을 소재로 정당의 명칭을 사용하고 있는 미국 극우보수정당 “티 파티”의 부상은 이런 측면에서 법찰학자 노직의 견해하고 연결된다. 미국에서 다시 혁명이 일어나야 할 때라고 여기는 사람들의 생각은 여론조사[3]로써 확인되고 따라서 그 실체가 분명함을 알 수 있다. 상황이라는 주장을 펼치고 있기도 하다. 아마도 이런 극보수우파의 시각을 가진 사람들을 리버터리언으로 부른데 이러한 견해가 일부층에게 상당한 호소력으로 받아들여지고 있기도 하다.
리버터리언의 시각에서 보지 않고 대신 영미국의 정치와 법제도 문화와 프랑스의 그것을 비교 분석하여 역사적 유명 인물로 남은 프랑스 판사 토크빌의 견해까지 올라가 보면 더욱 설득력이 큰 것 같다. 토크빌은 이렇게 말했다. “…행정부의 권한이 본질적으로 사법적인 영역으로 점차 확대되는 현상을 목도하고 있다. 권력의 융합이 법원쪽에서 이루어질 때는 용납할 수 없지만 행정부쪽에서 이루어진다면 하등 문제될 게 없다는 식의 관념이 횡행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식의 상황 전개는 결코 바람직스럽지 못하다. 왜냐하면 법원이 정부의 영역에 개입하는 것은 단지 업무의 원활한 수행을 방해할 뿐이지만 행정부의 사법 분야에 대한 개입은 시민을 타락시켜서 혁명가인 동시에 노예로 만들어 버리기 때문이다.”
토크빌이 우려한 대로 나타난 우리나라의 “검찰공화국”이라는 오명이 통용되는 현실을 직시한다면, 토크빌의 말을 빌려서 표현하여, 우리나라는 “행정부의 사법 분야에 대한 개입은 시민을 타락시켜서 혁명가인 동시에 노예로 만들어” 버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나라에는 “혁명가”의 존재는 보이지 않으니 거의 다수가 “노예로 만들어진” 상태라고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런 단적인 견해를 반박하고 부인할 사람은 과연 몇 명이나 될까? 만약 우리나라에서 혁명가적 생각이 적다면 아마도 그것은 모두가 노예 상태에 놓여 있기 때문이 아닐까? 물론 이런 지적은 토크빌의 현명한 분석에 동조하여 분석하면 그런 결과가 나온다는 것이지, 한국의 현실을 실증적으로 분석한 의견을 말하는 것은 아니므로 너무 비관적으로 해석할 필요는 없다고 말하겠다.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개념이 국방, 납세 의무, 법을 지킬 의무를 다해야 한다는 뜻이라면 사회지도층이 나서서 솔선수범해야 할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다. 왜냐면 책임과 의무는 사회지도층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국민 모두 누구나 의무를 다해야 되는 일반적인 개념이기 때문이다. 책임과 의무를 다해는 데에 있어서 차별이 있을 수가 없다. 만약 고귀하게 태어난 신분상의 귀족층만이 고귀한 행동을 해야 한다는 뜻이라면 반대로 신분이 미천하게 태어난 사람이라면 고귀한 행동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인가?
책임과 의무는 누구나 다해야 하는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개념에 해당되기에 이것을 가지고서 특별하게 구분하려는 태도는 잘못되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하나의 단적인 예를 들어보자. 부과된 세금 납부는 누구나 내야하고 부과된 병역 의무는 누구나 예외 없이 수행하는 일이다. 그런데 왜 병역과 납세 등 법을 지키는 일에 사회지도층이 솔선수범해야 된다는 것인가? 그런 의무는 누구나 예외 없이 똑같이 수행하는 일이므로 누가 앞장설 필요 자체가 없는 성격이다.
책임과 의무를 다해야 한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다같이 해당될 덕목이고, 어떤 예외적인 구별을 강조할 이유가 없다. 그런데 왜 굳이 의무 수행에 대한 솔선수범이라는 뜻으로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개념을 강조하는 것일까? 이것은 부와 권력을 독점한 사회 지도층 인사들의 특권과 특혜가 지나쳐서 “의무”를 강조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반동적 현상일까? 어차피 신분사회라면, 그나마 “떡고물”이나 챙기는 것이 보다 낫고, “시혜”와 은총을 기대하는 것이 보다 현실적으로 나은 대책이라는 보는 것일까?
다시 한번 짚고 넘어가자. 병역과 세금은 전국민이 부담한다. 마땅히 내야 할 세금인데 그런 세금을 자진해서 납부한다고 해서 그게 무슨 특별하게 덕망 있다고 칭송받을 덕목이란 말인가? 사람들은 세금을 만기에 내지 않으면 벌금을 물기 때문에 제때에 내는 것이다. 세금을 일찍 낸다고 해서 무슨 혜택이 주어지는 것도 아니다. 병역 의무는 국민 모두가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기 때문에 법에 따라서 병역 의무를 다하는 것이지, 사회지도층은 특별하게 취급되어서 그들이 병역의무를 이행하는 것을 특별하게 칭찬해야 한다는 별도의 덕목이 아니다. 이런 측면에서 우리나라에서 노블레스 오블리주 개념에 대한 이해가 잘못되어 있다는 느낌을 떨칠 수가 없다. 이에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개념을 보다 근본적으로 따져 들어가 보자.
[1] “Selflessness: Holders of public office should act solely in terms of the public interest. They should not do so in order to gain financial or other benefits for themselves, their family or their friends. Integrity: Holders of public office should not place themselves under any financial or other obligation to outside individuals or organisations that might influence them in the performance of their official duties.” http://www.judiciary.gov.uk/wp-content/uploads/2010/08/lord-chancellors-directions-advisory-committees-part1.pdf
[2]“Becoming a Magistrate in England and Wales” (2015.1.), https://www.gov.uk/government/uploads/system/uploads/attachment_data/file/391818/magistrate-application-form-guidance-notes.pdf.
[3]http://www.huffingtonpost.com/2013/05/02/poll-armed-revolution_n_320331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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