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구꽃 피는 마을은 어디나 고향 같다.
이러한 구절의 시조가 생각난다. “고향의 봄”.
왜 살구꽃 피는 마을은 어디나 고향같다고 느껴질까? “첫 인상이 중요하다”는 말이 있는데, 그와 같이 사람의 인식적 감각 기관은 처음 본 것이 인상적으로 기억에 남는 경향이 있다.
예술에 그런 이론을 적용한 평론가로 곰브리치의 견해가 있는데 그의 이론이 이와 상통한다.
곰브리치 Gombrich는 그의 책 “Art and illusion”에서 “One only admires what one has first learnt to see. 사람들은 자신이 처음으로 보게 된 것을 즐겨 따르는 경향이 크다”라는 견해를 펼치며 첫인상과 그 영향력에 대한 관계를 설명했다.
고향은 사람이 태어나서 자신이 첫 번째로 경험한 것의 모든 것이 아닌가?
고향이 정겨운 이유는 바로 이러한 인간의 인식론의 조건 때문이 아니겠는가?
사람이 태어날 때 첫 번째로 타치하고 경험하는 것이 엄마이기에 그 엄마를 그리워하는 것처럼.
버드나무 가지 새순- 유암화명 柳暗花明
개울가에 칭칭 늘어선 버드나무 가지에 푸른 새싹이 나오면서 목장의 둘레 벽 철사줄 망사처럼 보이는 것은 봄이 왔다는 정경을 묘사한다. 이렇듯 버드나무 가지에 푸른 새순이 돋는 모습을 봄의 전령사를 비유한다.
또 제비는 겨울엔 따뜻한 남쪽 나라 강남으로 갔다가 봄이 되면 되돌아오는 여름철새이기에 계절의 변화를 어김없이 알려주는 새소식의 전령사-그래서 우체국의 로고로 쓰인다-의 아이콘이다.
얼어붙은 동토에도 끝내 봄은 오고야 만다. 겨울 혹한을 어떻게 이겨내는가? 우리는 봄이 온다는 것을 알고서 겨울을 이겨낸다.. 작은 바람에도 흩날리는 개울가에 늘어선 버드나무 가지에도 혹한한설을 이겨내고 봄이 왔음을 알리는 새순이 돋아나는 시간 이 때는 봄이다. 봄은 희망이다.
버드나무 가지에 새싹이 돋아난다는 것의 한자 숙어로는 “유암화명 柳暗花明”이라는 표현이 있다. 혹한 겨울이 닥치면 산천초목 마저 모두 얼어붙고 죽을 것 같이 보였지만 막다른 그 골목길에도 살아날 통로는 열려져 있으며,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 것인지? 꽉 막힌 막다른 길에 부딪혔을 때 전혀 새로운 국면이 전개됨을 경험하지 않는가? 하나님은 마지막 순간에 개입한다. 고생 끝에 낙이 있고, 위기는 기회로 반전될 수 있다.
유약승강강 柔弱勝剛强
또 버드나무의 상징은 노자도덕경 제36장의 말씀인 유약승강강 柔弱勝剛强 즉 부드럽고 약한 것 같은 것이 강하고 딱딱한 것을 이긴다는 의미에 있다. 계절의 변화를 거슬리는 것은 자연의 질서에 부합하지 않는 거고, 농자천하지대본인 시대에선 죽음과도 같은 어리석은 짓이다. 즉 순천자존 역천자망 順天者存 逆天自亡, 천리에 순응하면 흥하고, 거역하면 망한다는 말과 통한다.
어유비정 연소비막 魚游沸鼎 燕巢飛幕
한편 전쟁론으로 이해해 본다면, 그것은 심각한 위험에 처해 있다는 비상한 위기 상황을 비유하는 말인 “어유비정 연소비막 魚游沸鼎 燕巢飛幕”이라는 표현과 연결시켜 볼 수 있다. 이 구절의 출전은 “장군이 지금 적에게 목을 내놓고 항복을 한다는 것은 마치 물고기가 끓는 가마솥 안에서 노니는 것과 같고, 제비가 바람에 날리는 장막 위에다 둥지를 트는 것과 같습니다 方當繫頸蠻邸 懸首藁街 而將軍 魚游於沸鼎之中 燕巢于飛幕之上 不亦惑乎”라는 구절이 나오는 양 梁 나라 구지 丘遲의 문장인 “여진백지서 與陳伯之書”에 근거한다. 물고기가 끓는 가마솥 안에서 노니는 것과, 제비가 바람에 날리는 장막 위에다 둥지를 트는 것은 곧 멸망한다는 의미이다. 물고기가 끓는 가마솥에서 헤엄쳐 보니 얼마나 더 살 것이며, 제비가 바람에 날리는 임시천막 위에서 둥지를 틀 경우 며칠을 더 갈 것인가? 이 비유에 담겨 있는 뜻은 항복하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지, 살아날 길이 아닌 것이라는 의미이다. 항복 대신 죽음으로써 끝까지 싸울 것을 천명하는 것을 촉구하는 뜻이다. 왜 결사항전하는가? 싸워 죽을 때, 그래야 후대가 다시 살아날 수 있을 것이 아닌가? 삶이 죽음인 것이고, 죽음이 삶이 된다.
위에서 살펴본 의미를 종합해 보면, 결국 새 순이 돋는 버드나무 아래 제비가 날고 있는 모습은 바라던 희망의 계절인 봄이 왔음을 상징하고 또 그 속에 숨어 있는 궁극적 의미는 “인생무상”이라는 뜻이 아닌가?
연년세세 화상사 세세년년 인부동 年年歲歲花相似, 歲歲年年人不同
봄꽃이 피어나고 새가 나는 모습의 시상을 품고 있는 당나라 초기 시인 유희이의 한시가 있는데, 아마도 이 한시가 인생무상의 의미를 절실하게 보여주는 것 같다. 유희이의 “백두음 白頭吟”에는 “연년세세 화상사 세세년년 인부동 年年歲歲花相似, 歲歲年年人不同”는 구절의 의미는 “꽃은 해마다 같은 모습인데, 사람은 해마다 (늙거나 죽어서) 다른 모습일세”라는 뜻이다. 이 구절은 “우헐장제 초색다 雨歇長堤草色多 …별루년년첨록파 別淚年年添綠波 봄 비 그친 간 강 언덕 위에는 푸른 새싹이 활짝 피어나는데 … 이별의 눈물이 해마다 푸른 물결에 더해지는 것을!”의 싯구절로 유명한 우리나라의 고려 시대 정지상의 “송군”의 한시에 맥이 닿아 있다. 정지상은 안타깝게도 김부식에게 의해 죽음을 당하고 말았다.
(여기서 하나만 추가 하자면, 우리나라의 백두산의 의미도 이러한 “白頭吟”의 도가적 의미가 들어 있는 산이름이다. 그런데 일본제국주의자들이 침입하면서 백두산의 의미를 폄하하였던 죄를 지었음을 여기서 언급만 하고 싶다.)
유희이 劉希夷 (651-679)의 “白頭吟”의 한시 전문을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白頭吟
洛陽城東桃李花,飛來飛去落誰家?
洛陽女兒顏色好,坐見落花長嘆息。
今年花落顏色改,明年花落復誰在?
已見松柏摧為薪,更聞桑田變滄海。
古人無復洛陽東,今人還對落花風。
年年歲歲花相似,歲歲年年人不同。
寄言全盛紅顏子,應憐半死白頭翁。
此翁白頭真可憐,伊昔紅顏美少年。
公子王孫芳樹下,清歌妙舞落花前。
光祿池台開錦繡,將軍閣裡畫神仙。
一朝臥病無相識,三春行樂在誰邊。
宛轉蛾眉能幾時,須如鶴髮亂如絲。
但看古來歌舞地,惟有黃昏鳥雀悲。
낙양성(중국의 주나라 때부터 당나라까지 수많은 왕조의 수도였다) 동쪽의 피어나는 살구꽃 배꽃이여,
이리 저리 흩날려 뉘집 뜰에 떨어지는가?
뒤뜰에 갇힌 낙양 처자 얼굴빛 불그스레 피어나는데,
앉아서 떨어지는 꽃 보며 깊은 한숨을 짓는다네.
올해 꽃이 지면 그녀의 얼굴빛도 바뀔텐데,
내년에 꽃 피면 어느 누가 다시 복구시킬텐가?
이미 소나무 잣나무가 꺾여 장작으로 타들어감을 보았고,
또 뽕나무 밭이 바다로 변했다는 말을 들은 지 오래 되었다네.
옛 사람은 죽어 낙양성 동쪽에서 다시금 볼 수 없고,
지금 사람들은 떨어지는 꽃에 부는 바람만 주목한다네.
연년세세 해는 오가도 꽃은 언제나 그 모습 그대로 인데,
연년세세 해마다 사람은 같은 모습이 아니라네.
불그스레 홍조빛 도는 한창 전성기 젊은이에게 말하노니
거의 죽은 거나 마찬가지인 이 백발 노인을 부디 가엾게 대해주오.
이 늙은이의 하얀 머리 참으로 애석하고 안타깝지 않은가?
저 옛날에는 이 몸도 불그스런 얼굴의 아름다운 미소년이었다오.
높은 양반가문과 왕후장상의 자제들과 아름다운 꽃나무 아래에서,
고운 노래 부르고 멋진 춤 추며 꽃이 지기 전 함께 놀았다네.
비단 옷 입은 문신 고관들과 연못과 누대를 누비고, 장군들과는 누각안에서 그림과 바둑 두며 한가히 즐겨 놀았네.
그러다 하루 아침에 병들어 눕자 서로 아는 이 없게 되었으니,
봄날 삼개월 동안 즐겼던 행락은 이제 어디에서 찾을 수 있겠는가?
아름드리 머리결 흩날리는 미인들은 얼마나 오래 갈까?
난 잠깐 사이에 머리결이 백발되어 실타래처럼 어지럽게 날린다오.
오로지 보이는 것은 옛부터 노래하고 춤추던 곳에,
황혼이 들면 작은 새들만이 서글프게 지저귄다는 것이네.
유희이의 이 “백두음” 당시를 영어 번역을 추가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Song for White Hair
East of the walls of Lo-yang
the flowers of peach and plum,
Flying here, flying away,
into whose yard falling now?
And the young girls of Lo-yang
grieve for their loveliness,
Walking they meet the fallen flowers
and sigh their long-drawn sighs.
This year as the flowers fall
their loveliness is changing.
Next year when the flowers bloom,
who will still be here?
For I have seen cypress and pine
smashed apart to kindling,
And heard that fields of mulberries
have changed into the sea.
Those of the past will never again
be east of Lo-yang’s walls,
But people today still must face
the winds that bring down flowers.
Every year, year after year,
the flowers are always alike ;
Year after year, every year,
the people are not the same.
I send these words to boys in their prime,
youths with glowing faces.
Have pity on one already dying,
A white-haired old man.
The white hair of the old man
is truly worthy your pity—
A while ago his face glowed too,
a handsome young man.
You princelings, young noblemen
beneath the flowering trees,
clearing singing, exquisite dancing
before the falling flowers,
The Chamberlain’s pool terrace,
patterned as rich brocade,
And tower and hall of General Liang
bear murals of the gods.
Then one morning lie down sick,
no one knows your name,
And the pleasures of the springtime
linger beside another.
Eyebrows gracefully curving—
how long can they endure?
In an instant crane-white hair,
tangled all like silk.
Look now to where from ancient days
were lands of song and dancing.
Now nothing more than the brown of dusk
and the lament of sparrows.
-Stephen Owen-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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