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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 포토/내가 살아온 스토리텔링

까막 딱따구리 가지산

by 추홍희블로그 2015. 8. 26.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교과서에도 등장하는 유명한 시구절에서 시인은 꽃이 피려고 천둥이 치고 먹구름 아래 우는 고통의 의미를 말했겠지만, 나는 어머님께서 영원한 평화와 안녕을 얻기 위해서 간밤엔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이렇게 해석을 하고 싶다만시지탄나는 이 말의 의미를 어머님을 여의고 나서야 깨닫게 되었다그 동안 미신같은 생각이라고 거부했지만 난생처음으로 밤마다 내 몸에서 살이 빠져나가는 느낌을 받았고, 발바닥은 뜨거운 송곳이 찔려오듯 통증이 심했다.  그렇게 어머님께서 곧 돌아가실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내 머리를 천둥처럼 강타할 때면 나는 그 마음을 견디질 못하고 이겨보고자 산을 찾아 등산을 다녔다지나고 나서 후회만 막심하지만, 그 때 산으로 가서 마음을 달랠 것이 아니라, 병원에 계신 어머님의 얼굴을 찾아 뵙고 어머니의 발과 손을 마사지해 드렸어야 옳았던 것이다내게 보낸 하늘의 외침은 뚜렷하게 손으로 끄집어내서 감촉할 수 있을 것은 아니었고 따라서 모세와 선지자들이 하늘에서 들은 목소리만큼 뚜렷하게 글로써 표현할 수는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어머님께서 곧 돌아가실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그런 무언가 미신적인 것이 내 심장을 두들기곤 했다유독 밤마다 병원에 계신 어머님의 얼굴을 보고 싶어서 못 견딜 정도가 되었고, 또 사실 어머님 병세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어머님께서 얼마나 더 오래 사실 수 있는 건지 어머님께서 음식이라도 잘 드시고 있는지 살펴보고픈 내 마음 속의 충동이 강하게 일어난 적이 하루에도 수십 번이었다어머님께서 어제 밤은 어떻게 지냈는지 다음 날 아침 살펴보고픈 마음의 충동이 일어남은 매월 민방위 훈련의 방송처럼 잠깐 들리다가 그친 것이 아니라 소방서 구급차가 불난 화재건물에서의 그칠 줄 모르게 끊임없이 울려대는 비상 싸이렌 소리로 경고와도 같았다하지만, 난 어머님께서 무엇을 기뻐하는 지에 대해서 잘못 이해하고 착각해서, 어머님 생각보다는 내 생각을 먼저 한 결과 어머님의 병문안도 자주 하지 못했다.

 

어머님의 병세가 위중할수록, 어머님께서 얼마 오래 못 사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수록, 제가 어머님의 병문안을 자주 갔어야 했지만, 사실 저는 그것을 실행하지 못했다.  내가 생각을 잘못했고 또 죽음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  그 이유 하나는 나는 사람이 살만큼 살아서 죽을 때가 되면 죽는다는 엄연한 자연의 법칙인 어머님의 죽음을 어린아이가 투정을 부리듯 받아들일 수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또 내가 어머님 살아 생전에 어머님을 단 한번만이라도 기쁘게 해 드릴 일 하나라도 끝내어서 어머님의 눈도장을 받으려는 과욕을 부린 탓이었다.  엄마 젖 먹던 힘으로 마지막 피치를 올려서 어머님께서 기뻐하시는 모습을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에 밤새 일에 매달렸다.  어머님께서 얼마 오래 못 사실 것 같다는 무언가 미신적인 메시지가 그토록 제 머리 속으로 들려왔지만, 그럴수록 나는 항상 하늘의 메시지를 잘못 읽었던 것이다.  병원에라도 자주 들려야 되지 않겠느냐 하는 내 마음속에 들려오는 외침의 소리에도 불구하고 내가 생각을 잘못한 결과였다.  죽음은 언제 어디서 갑자기 닥칠지도 모른다는 가장 평범한 죽음에 대한 이해를 미처 헤아리지 못하고 짧은 내 혼자만의 생각에 매달려 거짓 희망에 내 자신을 속였던 것이다. 

 

그런데, 그런데 어머님께선 이 겨울을 넘기지 못하고 영원히 먼 길을 떠나고 말았으니, 내가 이제 산에 간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늦가을 야산에 올라 감나무 가지를 쳐다본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未覺池塘에春草夢인데 階前梧葉己秋聲이라, 연못에 봄풀이 꿈을 깨기도 전에 뜰 앞에 오동나무 잎이 벌써 가을 소리를 내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마지막 잎새마저 지고 동토가 되어 버렸는데 말이다.  세월도 어머님께서도 더 이상 기다려줄 수 없다는 것은 평범한 진리인데 내가 무엇이관대 시간의 잔인성을 극복할 수 있으리라 여겼단 말인가! 

 

지나고 나서 알게 되었지만, 어머님을 마지막으로 뵌 그날 병원을 나오면서, 뭔지 아픈 마음을 달랠 길 없어서, 여느 날 같으면 오후 늦은 시간 대에 큰 산을 올라 간다는 것은 생각하기 힘든데, 그날은 묘하게도 가지산을 찾았다.  해가 짧은 겨울, 마음으로는 땅거미가 곧 내릴 것 같은 오후 늦은 시각에 가지산을 올랐다.  얼마쯤 되었을까?  한 등성이를 돌았지만 정상은 아직 한참 멀었는데 그때 저쪽에서 갑자기 우당탕 나무 찍는 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심장병 있는 사람은, 자라보고 놀란 토끼 가슴처럼, 어디서 사슴이 갑자기 틔어 나온 것을 보고도 가슴이 철렁해진다고 말하는데, 사람 그림자 하나 없는 적막한 산 속을 걷다가 갑자기 난생처음 들어본 소리에 내 가슴은 흠칫 놀랄 수 밖에 없었다.  급히 하늘을 쳐다보니 그건 나뭇가지 위에서 새가 나무를 찍고 우는 소리였다.  사실 그 새와 그 소리는 난생처음 보고 든 것이었지만 그것이 딱따구리 새라는 것은 곧바로 짐작했다.  내가 딱따구리 소리라고 유추하는 것은 교과서를 통해서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광릉의 크낙새에 대한 관심도 있었지만, 새에 대한 관찰 실력이라곤 거의 없었다.  크낙새라는 새의 명칭은 새의 소리가 워낙 크니까 크낙새라는 새의 이름을 지었을 것 같은데 안타깝게도 크낙새는 현재 거의 멸종되어 광릉 숲에 가봐도 볼 수 없다고 한다. 

 

까막 딱따구리가 가지산에 둥지를 틀고 살아가는 것은 가지산은 활엽수림이 많기 때문인 것 같다.  까막 딱따구리가 사는 곳은 활엽수림이 무성하고 울창한 가지산 같은 깊은 곳이라고 한다.  가지산은 가을에 낙엽이 질 때면 정상에서 내려오는 산길에는 낙엽이 수풀 덤블처럼 쌓여 그 높이가 내 무릎까지 찰 정도로 낙엽이 많은 것을 볼 수 있는데 그만큼 가지산은 활엽수가 많은 산이다.  내가 찾은 그날은 활엽수들이 앙상한 가지만 남고 겨울나기에 들어간 시기였다. 그날 내가 만난 그 새가 까막 딱따구리 새라는 사실은 미리 알지 못했다.  나중에 책을 찾아보니 딱따구리는 삼각형의 뾰족한 부리로 크낙새처럼 나무를 잘 쪼고, 나무 가지를 좌우로 한번씩 쪼으면 도끼로 찍듯이 큰 나무 조각이 찍혀 떨어지며 나무를 쪼을 때마다 산이 울릴 정도로 둔탁한 소리를 낸다.  거구의 둔한 행동에 독특한 울음 소리로 소란을 피워 자신의 존재와 위치를 알려 주게 되어 쉽게 희생될 수 있다.  크게 파상비행을 하며 난다.”고 적혀 있다.

 

까막 딱따구리의 새소리는 “끼리리리리링, 끼리리리리링”, “스스르륵, 스스르륵이런 소리라고 하는데 그날 제가 들은 소리는 워낙 커서 딱 탁 따라라~~~~~~”이런 새소리 같았다.  내가 몸을 낮추고 숨어서 유심하게 살펴보지는 못했지만, 아마 나무를 쪼으고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 같다.  딱따구리가 몸의 반동을 이용해 뾰족한 부리로 쪼아대면 아무리 단단한 나무라도 마치 도끼로 팬 듯이쓰러뜨릴 정도이고, 그래서 딱따구리 구멍 뚫는 소리가 계곡을 따라 능선까지 이어지고, 절까지 이어져 스님들은 까막 딱따구리를 오탁조라고 부른다고 한다.

 

되돌이켜 생각해보니 난생처음 그 새 울음소리가 그토록 크게 울려온 까닭은 어머님께서 새를 통해서 마지막 외침을 전했던 것 같다.  대나무 죽비로 머리통을 내려치듯, 그날 딱따구리가 나무통을 두들겨 패며, 큰 소리로 외친 까닭은 네 이놈아~내가 이제 이 땅에서 살아 붙어 있는 날도 하루가 될지 일주일이 될지 모른다.  마지막 순간이라도 자주 찾아 오지!  그렇지 않고 도대체 어디에 가느냐~”라고 말하는 가슴 속에 피 멍 든 어머님의 목소리이었음이 틀림 없다.  그날 내가 난생처음 들어본 까막딱따구리 패대기 소리는 어머님의 야단치심이 아니었겠는가?  생전 처음 본 딱따구리가 그렇게 크게 외쳤음에도 불구하고, 어머님 살아 생전에 따뜻한 말 한 마디라도 자주 건네지 못했고 또 어머님께서 의식이 생생할 때 어머니 정말 죄송합니다, 저의 모든 잘못을 용서해 주세요!” 이렇게 마지막 용서의 말 한마디라도 건네며 용서를 구하지 못하고 임종의 순간을 맞이하고 말았다. 

 

어머니는 평생 동안 내게 단 한 번도 어떤 화를 낸 적이 없으셨고, 내게 무슨 야단을 친 적도 없으셨다.  어머니는 언제나 나를 지지하고, 항상 나의 안위를 걱정하고, 언제나 기도의 마음을 간직하였고 그것을 보여 주셨다.  그런데 나는 어머니의 한없는 사랑과 길러주신 은혜에 대한 빚과 의무를 그렇게 크게 졌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단 한번 조금씩이라도 갚아 드리지 못했고, 오히려 어머니에게 참을 수 없는 고통만을 안겨 드리고 말았다.  어머님에 대한 나의 불효와 그에 대한 회한이 커서 이제 내 눈물마저 메말라 버렸지만, 그래도 내가 무릎 끓고 밤새워 한없는 용서를 구해도 부족한 나인데, 내가 어머니 병상 앞에서 자비와 용서를 구하지 못한 것이다.  무언가 미신적인 것이 내 몸과 내 가슴과 내 심장과 내 오장육부와 내 발바닥을 두들겼지만, 어머님 살아 생전에 내 자신의 잘못에 대해 용서를 구하지 못했고, 따뜻한 말 한 마디라도 전해드리지 못한 나는 천하에 몹쓸 불효 자식으로 비난 받을 수 없고, 그래서 결코 씻을 수 없는 죄를 짓고 만 것이다.

 

그날 딱따구리의 울음소리는 어머니께서 어린 자식들 먹여 살리려고나무 등걸 부리로 찍고 구멍 내어 둥지 틀다가 힘들어서 우는 소리였다.  어릴 적 소쩍새의 울음소리는 자주 들었지만 지금껏 올빼미같이 생겼다는 소쩍새를 직접 눈으로 보지는 못했다.  어릴 적 한 밤 중엔 집 앞의 감나무 가지에 하얀 빨래가 널려 있는 것을 내 눈에는 여자 귀신으로 보여서 문밖에도 나가질 못했다.  소쩍새는 밤에 우는 새인데 내가 어떻게 무서워서 밤중에 새를 볼 수 없었다.  사실 적막한 저녁 시간대에 들려오는 소쩍새 소리는 때론 슬픈 느낌이 가중되어 무서운 소름이 끼쳐 오기도 했다.  어른들이 말하길 보릿고개 때 소쩍새 우는 소리에 가난의 설움이 더욱 북받쳐 오른다고 했는데, 지금은 그런 소쩍새 소리 한 번 듣지 못한다. 

 

까막 딱따구리는 몸통 몸의 색깔이 검은 색이지만 머리 위에는 붉은 색이 선연한 새이다.  내 마음속에 까막 딱따구리는 검은 망토에 선연한 붉은 피를 토하고 있었던 것이다.  가슴에서 뚝뚝 떨어지는 붉은 피에 나의 양심 또한 핏빛으로 물들고 말았다.  그날 딱따구리의 외침은 내 가슴을 후벼 팠고, 내 마음의 양심을 장작 패듯이 도려 내며 내 가슴을 쪼아댄 것이다.  우수의 남자 배호가 불렀던마지막 잎새라는 노래가 있었는데 그 가사 마디를 변형하여 내 마음을 대신한다.

 

참 푸르던 잎 유성처럼 낙엽지고

송백에 달빛도 비껴가는 휑한 고개

간재의 억새바람도 살며시 비껴가건만

그 얼마나 참았던 사무친 상처길레

장작패대기하는 까막딱따구리 머리위로

핏빛 자국 남기며 떨어지는 마지막 잎새

 

그날이 내가 어머님의 의식이 살아 있는 상태에서 마지막으로 어머님과 대화를 나눈 날이 되고 말았다.  까막 딱따구리가 그토록 장작 패대기치며 소리쳐 목놓아 울었어도 나는 새들의 마지막 외침의 의미를 미처 깨우치지 못했던 것이다.  만약 내가 새들의 메시지를 깨우쳤더라면 내가 즉시 되돌아서 어머님의 병실을 찾았을 텐데!  나의 무정과 무관심으로 인해서 나는 그러질 못했다.  시린 하늘이 노랗게 변해버린 그날, 까막 딱따구리가 내 가슴을 그토록 패대기했어도 어머님의 마음을 미처 헤아릴 줄 모른 나의 무지와 무정을 탓한다.  이제 자책감에 실어증에 걸려 할 말 마저 잃고 만 나날이지만 그래도 시 한 편은 읽을 수 있다.  까마귀새를 노래한 김현승 시인의내 마음은 마른 나뭇가지시 구절을 인용한다.  아마도 그날 어머니께서는 서쪽 하늘을 바라보면서 마지막을 예비하신 것이 아니었을까.

 

내 마음은 마른 나무가지

주여,

나의 육체는 이미 저물었나이다!

사라지는 먼뎃 종소리를 듣게 하소서.

마지막 남은 빛을 공중에 흩으시고

어둠 속에 나의 귀를 눈뜨게 하소서.

 

내 마음은 마른 나무가지

주여,

빛은 죽고 밤이 되었나이다!

당신께서 내게 남기신 이 모진 두 팔의 형상을 벌려

바람 속에 그러나 바람 속에 나의 간곡한 포옹을

두루 찾게 하소서.”

 

퀴블러-로스는 우울증 단계에 접어든 임종환자는 자신이 사랑하는 모든 것들을 잃어버린다는 상실감을 이겨내고 수용의 단계로 접어들기 위한 과정으로서의 예비적 애도반응에 빠져 드는데 이 경우에는 그저 말없이 조용히 손을 잡아주거나, 머리를 쓰다듬어 주거나 하면서 조용히 곁에 있어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만약 내가 퀴블러-로스의 죽음의 5단계 이론을 이해하였고, 또 죽음에 대한 사전 지식이라도 조금이라고 갖추고 있었다면 내가 그렇게 패닉 상태에 빠지게 되지는 않았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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