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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glish BKS/왜 사마천은 위대한가?

왜 사마천은 내 인생 최고의 스승인가?

by 추홍희블로그 2018. 8. 23.

사마천의 역사인식은 자신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것임을 알 수 있는데, 사마천 자신의 삶은 뼈아픈 사정들로 흥건히 젖어 있다.  그는 모든 손님들의 청탁을 거절하고 오로지 한 마음 한 뜻으로 자신의 직책에 충실하면서 국왕의 신임을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그가 전투에서 패한 장수이었던 이릉을 위해 변호한 것도 국왕을 위로하려는 충정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선한 의도로 행한 행동에 대해서 상응한 보답은 커녕 오히려 반대로 궁형이라는 사람으로서 차마 감당하기 어려운 처참한 형벌을 당하고 말았다.  그 이후에도 사마천은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굴욕과 큰 고통을 겪게 되었다.  사마천은 그가 개인적으로 겪은 충격과 아픔에 역사적 진리에 대한 깊은 생각을 다시 하게 되었고, 선한 의도를 가진 착한 사람이 그에 걸맞게 응당한 높은 보상을 받는 반면 악한 사람은 벌을 받게 된다는 전통적인 믿음 체계인즉 인과응보론에 대해서 근본적인 회의와 의문을 품게 되었음은 어렵지 않게 이해된다.  (이 전까지 사마천의 생각은 사람의 의도에 따라서 결과도 함께 상응한다는 생각을 인과응보론을 견지했는 지에 대해서 나는 잘 모르겠다.)  


인과응보론은, 사마천이 말하는 내용과는 관계없이, 현실적으로 일어나는 경우가 드물고 다만 “그래야 됨”을 교훈적으로 가르치는 당위론을 말하는 “시적 정의 Poetic Justice”에 불과하거나, 또는 정신적 심리적 종교적인 주문에 해당할지 모른다.


고전적인 인과응보론을 오늘날 복잡한 학문체계로는 예컨대 철학적인 면이나 신학적인 면이나 우주과학론에서 면 이론적인 정치가 크게 부족하다는 것은 분명하다.  


사람은 정신적 존재이기 때문에 자신이 추구하는 의도가 중요하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세상에서 의도가 결과로써 항상 꼭 매치되는 것은 아니다.  제 아무리 의도가 고결하고 순수하다고 해도 결과는 다르게 나타나는 경우가 많으며, 또 원하지 않는 결과가 뒤따르기도 한다.  자연 법칙을 넘어서서 인간 세상은 이해 관계의 충돌이 끊임없이 일어나기도 하는 복잡한 세계에 속한다. 자기 뜻대로 의도한 바 대로 된다면 무슨 문제가 있겠는가?


어찌됐든, 선비는 결정적인 시기에 행동으로 직접 옮기기 위하여 도끼자루가 바늘이 되어 반짝반짝 빛나게 되도록 도를 닦아야 한다.  그래서 결정적인 기회에 올 때 큰 쓰임을 받기 위해서 최고의 수준으로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자신의 분야에서 최고의 지위에 오를 만큼 인정을 받지 못한다면 어찌 세상에 이름을 날릴 수가 있겠는가?  


‘사람은 태어나서 이름값을 한다’는 시정가의 말을 하는데, 자신의 분야에서 최고가 아니라면 함부로 그 이름을 드러날 수가 없을 것이다.  이를 역으로 말하면, 공자가 말한 것과 같이 실질이 없다면 이름을 남길 수가 없는 것이므로 역사에 이름을 남길 정도의 위인은 모두가 실질적인 내용이 풍부했던 사람들이다.  이는 노자의 ‘명부상부’라는 말과 같다.  


사마천이 자신의 역사 서술에서 최고의 지위에 오르지 못했다면 어찌 오늘날까지 그의 명성이 남을 수가 있겠는가?  이런 측면에서 오늘날의 노벨상의 가치가 존재하는 것 아닌가?  사람은 거짓을 배격하고 진실을 추구하며 최고의 이상적인 진리를 추구하고자 하는 태도와 방향을 본능적으로 갖고 있는 것 같고, 이것이 바로 인류 발전의 요체가 아닐까?  


사마천이 죽음으로써 진실을 전달하려는 사람이었음은 임소경에게 보내는 편지의 말미 구절에서도 분명하게 확인되는데 그 구절을 인용한다.  “死日 然後 是非乃定”.  “사일연후시비내정”의 구절의 뜻은 “죽은 후에나 옳고 그름이 가려질 것입니다.”


사마천이 백이숙제편에서 인용하고 설명한 “歲寒, 然後 知松柏之後彫也”이라는 구절의 공자의 말씀의 의미하고 바로 같다.  며칠 전 중국어 사전을 펼치다가 우연하게 “송백”이 “무덤”을 은유하는 말로도 쓰였음을 알게 되었다.  선덕여왕 왕릉이 그러하듯이, 왕릉 주위에 소나무나 잣나무를 심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뜻에서 “松柏”을 무덤으로 비유하는 은유적 표현이 이어져 온 것 같다.  따라서 이 공자의 歲寒然後 知松柏之後彫也의 말씀도 사마천의 死日然後 是非乃定이라는 뜻과 같이, 사람은 죽고 나서 오랜 세월이 흘러야 그의 진정한 가치가 드러난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고 나는 해석하고 싶다.


이 사마천의 이 구절로써 나는 지난 삼년 세월 동안 초막살이하며 고역의 시간을 보냈다.  비록 최고의 수준에는 오르지 못했음은 내 스스로 인정하는 바이고 또 비록 누추하고 비루한 몸이지만 이제 세상의 최고 위치에 있는 선배제현에게 무릎을 끓고 이 책을 바치고자 한다.  


최고를 지향하지 않으면 안되는 이유


사마천은 말했다.  사람으로 태어나서 역사상 이름을 남길려면 자신의 분야에서 최고의 실력을 갈고 닦아야 한다는 조건이 성취되어야 한다.  다음 이탤릭체 부분은 사마천의 백이숙제전을 한글로 번역한 나의 글이다.==>


역사 자료에 따르면 백이•숙제는 고죽국 왕의 두 아들이다. 왕은 아우인 숙제를 후계자로 세우려고 하였으나 왕이 세상을 뜨자 숙제는 왕좌를 형님인 백이에게 양보하려고 했다. 그러자 백이는 "동생이 왕위에 오르는 것은 국왕의 명령"이라며 외국으로 멀리 떠나 버렸다. 숙제 또한 왕위에 오르는 것을 내켜 하지 않아 숨어 버렸으므로 백성들은 중자를 새로운 왕으로 옹립했다. 


그 후 백이•숙제는 서백창이 노인을 배려하고 극진히 모신다는 말을 듣고 거기에 들어가려고 했는데 막상 이르고 보니 서백은 이미 죽고 그의 아들 무왕이 문왕이라 칭하고 은나라 주왕을 공격하고 있었다. 이 때 백이•숙제는 무왕의 말고삐를 붙들고 옳은 말을 아뢰었다. "아버지의 장례도 치르기 전에 전쟁을 하려고 하니 이 어찌 효 孝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신하의 몸으로 군주를 시해하려고 한다면, 그것을 어찌 인 仁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자 무왕의 좌우에 있는 신하들은 이 두 사람의 목을 즉시 쳐야 한다고 올렸으나 태공망이 “이들이야말로 의인 義人이다"라고 말하며 그들을 일으켜 세워 보냈다. 무왕이 은의 반란을 평정하자 백성들은 모두 그를 우러러보게 되었다. 하지만 백이 숙제는 이를 부끄럽게 여겨 주나라로부터 녹봉을 받는 것을 거부하고 수양산 산속으로 들어가 고사리를 캐 먹으며 연명하다가 결국 굶어 죽을 지경에 이르렀다. 그들은 이 때 다음과 같은 시를 지었다.


“오늘도 저기 서산에 올라/ 고사리를 캤네. / 폭력에 폭력으로 맞써고도 / 그것이 잘못된 것임을 모르는 무왕이여 / 신농, 순, 우 임금 시절의 황금기는/ 갑자기 사라졌네. / 이제 우린 어디로 가야 할꺼나? / 아아 가자, 죽음의 길로. /쇠잔한 나의 운명이여!” 


이런 유언 시를 남겨 놓고 이들 형제는 끝내 수양산에서 절명하고 말았다. 이런 사실로 보면 과연 두 사람의 마음 가운데 어떤 원한이 없었다고 볼 수 있을까?


누군(노자)가 말했다. "하늘의 길은 공평 무사하여 언제나 착한 사람의 편을 든다." 

(天道無親 常與善人, 도덕경 제79장,  Heaven’s Way favors none, but always sides with good persons.”)*  


하지만 백이•숙제 같은 사람을 착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 아닌가? 그들은 인과 덕을 쌓고 청렴 고결하게 살다가 스스로 단식을 단행하다가 끝내 죽음을 택했다. 또한 공자의 제자 칠십인 가운데 속하는 중니는 안연이 학문에 가장 제격인 인물이라고 추천하고 극구 칭찬해 마지 않았다. 그러나 안회는 가끔 쌀 뒤주가 비어 있었으며 지게미나 쌀겨도 배불리 먹지 못하다가 끝내 요절했다. 하늘이 착한 사람을 보답한다면 이런 사례는 도대체 어떻게 해석되는 것일까?


한편 도척은 날마다 죄없는 사람들을 죽이고 사람의 간을 꺼내 먹는 등 성격이 포악하고 행동이 방자하여 수천 명의 도적떼들을 모아 세상을 어지럽혔으나 천수를 다해 오래 살다가 죽었다. 하지만 그가 어떤 덕행을 쌓았기 때문에 천수를 누렸단 말인가?


이러한 것을 볼 때 비록 극명한 사례이긴 하지만 근세에 이르러서도 소행이 도 道를 벗어나 오로지 악행만을 저지르고도 죽을 때까지 편안하고 행복을 누리며, 부귀가 자손 대대로 끊이지 않는 경우가 많이 발견된다. 한편 이와 달리, 발언기회가 주어질 때만 골라서 마땅한 말을 사려서 발언하고, 항상 큰 길을 걸고, 공명 정대한 이유가 없으면 의분을 일으키지 않으며, 시종일관 근엄하고 강직하게 행동을 한 사람이 오히려 큰 재앙과 화를 입는 일이 부지기수로 많이 일어남을 볼 수 있다. 


따라서 나는 심각한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과연 하늘의 이치라는 것이 있기는 한 것인가? 아니면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인가? 


이에 대해 공자는 "도를 같이하지 않는 사람끼리는 서로 논의하지 않는다."라고 답을 주었다. 이 말은 곧 각자 자기 의사에 따르라는 뜻이다. 


공자는 또 다음의 말을 덧붙였다. "부귀라는 것이 뜻대로 얻어질 수 있는 것이라면 마부와 같은 천한 직업이라 할지라도 나는 사양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구해도 얻어지지 않는 것이라면 내가 바라는 대로 도를 행하고 덕을 쌓겠다." 


. "차가운 겨울철이 되어서야 소나무•잣나무는 언제나 푸르고 떨어져 죽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歲寒然後 知松柏之後彫也 

When the year become cold, then we know how the pine tree and the cypress are the last to lose their leaves.) 


이 말은 ‘세상이 오염되고 흐려져 혼란된 그 때에 청렴한 선비가 드러나게 된다’는 의미이다. 이것은 곧 세속 사람들이 부귀를 그렇게 중하게 여기는데 비해 청렴한 선비는 그 부귀를 가볍게 여기기 때문이 아닐까? 


군자는 세상을 떠난 후에도 이름이 칭송되지 못함을 부끄러이 여겨야 한다.  *(君子有名 必有其實 疾沒世而名不稱) 


가의*(200-168 B.C.)는 '탐욕이 큰 사람은 재물에 목숨을 걸고, 정의감이 넘치는 의사와 열사는 명예에 목숨을 걸고, 권세욕이 강한 사람은 그것에 끌려 죽고, 일반 평범한 사람은 목숨을 보존하기에 급급할 뿐이다'라고 말했다. 


같은 종류의 빛은 서로 비쳐주고, 같은 종류의 만물은 서로 구하고, 용은 구름 위로 솟구치고, 호랑이가 쏜살같이 지나가면 바람이 일어난다. 


성인이 한 번 나타나면 온 세상이 그를 우러러 보게 된다. 


(*즉 세상이치는 서로 감통하는 것이고, 또 한편으론 성인은 이 세상만물의 이치를 넘어서서 자기들만의 세계가 아니라 그것을 뛰어넘어 온 세상으로부터 높임을 받게 된다.) 


이와 같이, 백이•숙제가 현인이기는 하지만 공자의 칭송을 얻음으로써 그 이름이 더욱 더 드러났다. 안연은 평생 공부에 매진했지만 (그래서 비록 누가 추켜 세워주지 않아도 이름난 선비였지만) 최고의 지위에 있는 선배(즉 공자)를 뒤따름으로써 그의 명성이 더욱 크게 드러났다. 


빛이 들어오지 않는 토굴에 숨어 사는 무명의 선비가 조정의 부름을 받았을 때도 이와 같이 볼 수 있는 바, 만약 (행동이 요구될 시기에) 행동으로 옮기지 못한다면 이름을 남길 수가 없을 것이다. 만약 이 결정적인 기회에 결행의 용단을 놓쳐서 이름이 묻혀 버리고 칭송되지 못한다면 얼마나 애석한 일인가! 그렇지 않은가? 


비록 시골 벽촌의 출신이지만 행실을 갈고 닦아 이름을 떨치고자 할 때, 자신의 분야에서 최고의 자리에 오를만한 수준에 이르지 못했다면 어찌 그 이름과 행동을 후세에까지 남길 수가 있겠는가? 


- 사마천의 <사기> 중 “백이숙제전”-전문 번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