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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서--------/노블레스오블리주

왜 나는 책을 썼는가?-사마천

by 추홍희블로그 2017. 1. 23.


報任少卿書 -司馬遷-

임소경서-사마천

史公牛馬走

司馬遷再拜言少卿足下

태사

사마천이 삼가 임소경님 앞에게 엎드려 재배하고 말씀드립니다.

曩者辱賜書

敎以順於接物

推賢進士爲務

 

지난번 힘들게시리 서신을 보내주시면서,

사람들과 교제할 때 순리대로 하고,

세상에 내세울만한 훌륭한 선비를 찾아내 추천하라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意氣懃懃懇懇

若望僕不相師

而用流俗人之言

僕非敢如此也

 

뜻하는 말씀이 하도 간곡하게 다가와서

마치 제가 말씀대로 따르지 않기라도 바라는 듯 했습니다만,

세상 사람들이 쓰는 관용적인 표현을 빌어서 말씀드린다면,

제가 감히 그럴 사람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僕雖罷駑

亦嘗側聞長者之遺風矣

비록 제가 가진 재능은 부족하나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어르신들이 남긴 드높은 기상을 어렴풋이나마 듣는 바 있었습니다.

顧自以爲身殘處穢

動而見尤

欲益反損

是以獨鬱悒而與誰語

돌이켜 보면 저 자신 스스로 몸을 학대하고 더렵혀서,

일어서는 순간 허물이 드러나고,

이득되는 일을 하려고 하지만 그 반대로 손해만 보게 됩니다.

그리하여 혼자 깊은 수심에 잠길 뿐 누구에게 하소연이라도 할 수 있겠습니까?

諺曰

誰爲爲之

孰令聽之

속담에 이르기를,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이 없으면) 누구를 위해 일하고,

누가 내 말을 들어주겠는가?”라고 했습니다.

蓋鍾子期死

伯牙終身不復鼓琴

何則

자신을 진정으로 알아주던 친구 종자기가 죽자

백아는 죽을 때까지 두번 다시 거문고를 연주하지 않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士爲知己者用

女爲說己者容

사나이는 자기를 알아주는 친구를 위해 몸바치고,

여자는 자기를 예쁘다고 말해주는 사람을 위해 몸바칩니다.

若僕大質已虧缺矣

雖才懷隨和行若由夷

終不可以爲榮

適足以見笑而自點耳

저처럼 몸이 이지러지고 망가지게 되면,

비록 타고난 재능이 춘추 두 국보인 수후의 푸른 진주 보석과 화씨의 붉은 구슬 옥 보배처럼 빛난다 하더라도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화합하고 허유와 백이처럼 순수하게 행동해도,
결국 영예를 얻지도 못하고, 부족하여 남의 비웃음이나 사고 스스로 욕될 뿐입니다.

書辭宜答

즉시 서신에 답장을 드려야 함이 마땅했는데

會東從上來

又迫賤事

마침 국왕을 수행하여 동쪽에서 서쪽의 수도로 상경하게 되었고,

또 여러 잡다한 일을 처리해야 했습니다.

相見日淺

卒卒無須臾之閒

得竭志意

서로 만나 뵐 날도 일천했고,

매우 바빠

저의 생각과 의도한 바를 털어놓을 어떤 틈을 낼 수가 없습니다.

今少卿抱不測之罪

涉旬月

迫季冬

지금 당신께서 큰 죄를 품은 지

열 달이 지나 동짓달이

가까워졌습니다.

僕又薄從上雍

저는 또 국왕을 모시고 옛 수도 옹주로 올라가게 됩니다.

恐卒然不可爲諱

 

당신께서 혹시 죽음을 당하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갑자기 들었습니다.

是僕終已不得舒憤懣以曉左右

則長逝者魂魄

私恨無窮

請略陳固陋

 

그래서 저는 마침내 저의 마음속에 있는 분노와 번민을 불을 보듯 명확하게 털어놓지 못한다면,

저 세상으로 멀리 떠난 당신의 혼백이 사사로운 원한으로 영원히 머물 것 같아서, 부족한 저의 생각을 펼쳐 간단히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闕然久不報

幸勿爲過

 

오랫동안 끌어오다가 간략하나마 이제서야 답장하게 되었으니,

허물로 여기지 않으시면 다행이라 여깁니다.

僕聞之

脩身者

智之符也

愛施者

仁之端也

取與者

義之表也

恥辱者

勇之決也

立名者

行之極也

제가 들어 알고 있기로는,

도덕적 수련을 쌓는 것은

지혜를 쌓는 것이고,

베풀기를 좋아하는 것이

인간적인 행동의 시작이며,

주고 받는 것을 올바르게 하는 것이

사람이 다할 의무의 표현이고,

수치와 욕됨을 겪고 참을 때

용기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것이며,

세상에 이름을 남기는 것이

모든 행동의 발단이라는 것입니다.

士有此五者

然後可以託於世

而列於君子之林矣

사람은 이 다섯 가지를 갖추고,

그런 뒤에야 세상에 나설 수 있고,

군자들의 모임에 몸을 내밀 수 있다고 합니다.

故禍莫憯於欲利

悲莫痛於傷心

行莫醜於辱先

詬莫大於宮刑

그래서 숨은 이익을 탐하는 것보다 더 큰 재앙이 없고,

마음이 상한 것보다 더 큰 고통이 없으며,

조상을 욕되게 하는 것보다 더 추한 모습은 없으며,

궁형을 당하는 것보다 더 큰 치욕은 없습니다.

刑餘之人

無所比數

非一世也

所從來遠矣.

형을 받은 사람이

다른 사람들에 비교될 수 없는 까닭은

지금의 세상 뿐만이 아니라

먼 옛날부터 내려온 바 그대로입니다.

昔衛靈公與雍渠同載

孔子適陳

 

商鞅因景監見

趙良寒心

同子參乘

袁絲變色

전에 위나라 영공과 환관인 옹거가 같이 수레를 타자

공자께서 화가 나셔서 위나라를 떠나 진나라로 가셨습니다.

상앙이 환관인 경감의 소개로 진나라 효공을 만나자

조량이 상앙을 한심스럽게 생각했었습니다.

환관인 조담이 문제를 모시고 수레에 오르자

원사가 화가 나 안색이 변했습니다.

自古而恥之

夫以中才之人

事有關於宦豎

莫不傷氣

而況於慷慨之士乎

옛날부터 환관을 멸시 했었습니다.

보통 사람들도

모든 일에 환관이 연관되면

기가 상한다고 여기는데,

기개 있는 사람이야 어떻겠습니까?

如今朝廷雖乏人

奈何令刀鋸之餘

薦天下豪俊哉

지금 비록 조정에 인재가 모자라지만

궁형을 받은 제가 어떻게

천하의 호걸을 천거할 수 있겠습니까?

僕賴先人緖業

得待罪輦轂下

二十餘年矣

저는 조상님이 남기신 공로에 힘입어

무거운 임무인 국왕의 수행비서가 될 수 있었는데

어언 20여 년이 흘렀습니다.

所以自惟

 

저의 이런 삶의 과정속에서 저는 다음과 같은 것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上之

不能納忠效信

有奇策才力之譽

自結明主

 

위로는

충성과 신의를 다하고

훌륭한 정책을 올려 큰 재능과 힘이 있다는 명예를 얻었어도,

현명한 국왕과 밀접한 관계를 맺기란 어렵습니다.

次之

又不能拾遺補闕

招賢進能

顯巖穴之士

 

그 다음으로

결원이 생겨서 보충인원이 필요한 경우

어질고 추진력있고 능력 있는 사람을 추천하거나,

바위동굴에 숨어 은거하고 있는 재야인사를 천거하는 것도 어렵습니다.

外之

又不能備行伍

攻城野戰

有斬將搴旗之功

 

밖으로는

군의 대오와 행렬을 거느리고,

성을 공격하고 야전 전투를 벌여도,

적군의 장수의 목을 베거나 적기를 빼앗은 공로를 세우기란 무척 어렵습니다.

下之

不能積日累勞

取尊官厚祿

以爲宗族交遊光寵

 

아래로는

오랜 세월 업적을 쌓아서,

높은 관직에 오르고 후한 봉록을 받는다 해도, 그의 친척이나 친구들까지 영광스런 은혜를 받기란 무척 어렵습니다.

四者無一遂

苟合取容

無所短長之效

可見如此矣

이 네 가지 중에 한 가지도 해내지 못하고,

그저 시키는 일이나 허락한 일만 하고, 사고칠 일도 없는 곳의 저의 처지는
보시는 바와 같습니다.

嚮者

僕亦常廁下大夫之列

陪外廷末議

예전에

제가 하대부 대열에 끼여 있을 때

조종대신의 보좌진으로 말단에 참여하였는데,

不以此時引維綱

盡思慮

그땐 연결 끈을 이끌어내지 못하고,

생각도 깊이 다하지 못하였습니다.

今已虧形

爲掃除之隸

在闒茸之中

지금은 몸도 바르게 세우지 못하고

청소나 하는 노예처럼 일하여

피곤함이 겹겹으로 쌓여 있다고,

乃欲仰首伸眉

論列是非

그래서 고개를 들고 눈썹을 위로 펴고서

옳고 그름을 따지고 묻고자 할까요?

不亦輕朝廷

羞當世之士邪

그렇다면 이는 조정대신을 경시하고

당대의 유능한 선비들을 옳지 않다고 여기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嗟乎

嗟乎

아아,

아아,

如僕尙何言哉

尙何言哉

미천한 저같은 사람이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무슨 말을 할 수 있단 말입니까?

且事本末

未易明也

더욱이 일의 본말이란 것도

쉽게 밝혀지는 것이 아닙니다.

僕少貧不羈之材

長無鄕曲之譽

제가 젊었을 때는 가난하여 재능을 낭비할 정도로 많이 써댔습니다만,

장성해서도 시골구석의 어느 누가 알아주는 명예 하나 얻지 못했습니다.

主上幸以先人之故

使得奏薄伎

出入周衛之中

다행히 국왕께서 저의 선친과의 맺은 인연으로,

태사의 업무를 이어받게 하여

궁궐을 출입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僕以爲戴盆何以望天

故絶賓客之知

亡室家之業

저는 두 가지 일을 겸해서 수행할 수 없다고 여기고,

손님과의 왕래도 끊고,

집안 일도 잊고서,

日夜思竭其不肖之才力

務一心營職

以求親媚於主上

밤낮으로 불초한 재주이지만 있는 힘을 다해,

일심으로 직무에 힘써,

국왕을 진심으로 기쁘게 해 드리려고 노력했습니다.

而事乃有大謬不然者夫

그러나 일이 크게 잘못되어 그렇게 되지 못했습니다.

夫僕與李陵

俱居門下

素非能相善也

저와 이릉은

같은 동문이긴 했으나

평소 서로 왕래하는 관계는 아니었습니다.

趣舍異路

未嘗銜盃酒

接慇懃之餘懽

서로 각자의 길을 걸어

일찍이 함께 술을 터놓고 마시며

가벼운 기쁨을 나눠 본 적도 없습니다.

然僕觀其爲人

自守奇士

事親孝

與士信

臨財廉

取與義

分別有讓

恭儉下人

그러나 제가 보기에 이릉은 그의 사람됨을 보건데,

비범한 선비의 품위를 스스로 지키며,

부모에게 효도하고,

동료들과의 사귐에 신의가 있고,

재물에 대해서는 욕심이 없고,

주고받는 데 의로움이 있고,

시비를 논할 때는 겸손하였고,

아랫사람에게 공손히 대하고 허투루 하지 않았습니다.

常思奮不顧身

以徇國家之急

其素所蓄積也

 

항상 분발해 일을 하고, 나라가 급박한 위험에 처했을 때 자신을 돌보지 않고 몸바친 그것은 평소에 쌓은 바 그의 소신에서 나왔습니다.

僕以爲有國士之風

 

저는 그가 국가의 일을 담당할 만한 기풍을 갖춘 사람이라고 여겼습니다.

夫人臣出萬死不顧一生之計

赴 公家之難

斯以奇矣

무릇 한 사람이 뛰어난 신하가 되려면 오만가지 죽음을 무릅쓰고 필생의 책략을 내어,

국가가 어려움에 처하였을 때 뛰어들어, 그것을 물리칠 때,

비로소 그 비범함이 나타나는 법입니다.

今擧事一不當

而全軀保妻子之臣

隨而媒糱其短

지금은 일을 하다가 한 가지만 잘못되어도

자신과 처자만 보호하려는 신하들이

나타나 그 단점만을 들추고 부풀려 버립니다.

僕誠私心痛之

저는 정말 이런 일을 통탄스럽게 생각합니다.

且李陵提步卒不滿五千

深踐戎馬之地

足歷王庭

垂餌虎口

게다가 이릉은 오천 명도 안되는 군사를 거느리고,

적진 깊숙이 쳐들어가,

흉노의 수도 근처까지 갔으니,

이는 먹이를 호랑이 입에 드리낸 것과 같습니다.

橫挑彊胡

仰億萬之師

與單于連戰十有餘日

所殺過當

그렇지만 막강한 오랑캐에게 도전하여,

수십만 군사를 올려다보고,

흉노의 왕과 10여 일을 연이어 싸웠는데,

죽인 적군의 수가

죽은 아군의 수보다 훨씬 많았습니다.

虜救死扶傷不給

적군은 포로를 구하려오지도, 사망자와 부상자를 구하려 오지도 못했습니다.

旃裘之君長咸震怖

乃悉徵其左右賢王

擧引弓之人

一國共攻而圍之

흉노의 우두머리 왕이 매우 놀라,

가까운 주의 군사책임자를 급히 불러내,

화살쏘는 병사들을 일으켜,

거국적으로 함께 이릉을 공격하고 포위했습니다.

轉鬪千里

矢盡道窮

救兵不至

士卒死傷如積

아군은 천리 길을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싸우다,

화살도 다 떨어지고 막다른 길에 이르러,

구원병도 다 끊기고,

장교와 병졸이 죽어가고 다치는 수가 날로 쌓여가게 되었습니다.

然陵一呼勞

軍士無不起

躬自流涕

沬血飮泣

更張空弮

冒白刃

北嚮爭死敵者

그러나 이릉이 군사들을 큰 소리로 위무하자,

일어서지 않는 사람이 없었고,

절로 감격해 눈물을 흘렸습니다.

온 얼굴에 피눈물이 흘러내리고 그것을 다시며 울면서, 빈 활을 다시 늘어 잡고,

예리한 칼날도 무릅쓰고

북쪽을 향해 목숨을 걸고 적군에 맞서 싸웠습니다.

陵未沒時

使有來報

漢公卿王侯皆奉觴上壽

 

이릉이 전쟁에서 패배당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전령이 다녀와서 보고하자

한나라의 공경대신과 왕후들은 다함께 술잔을 들어 주상의 만수무강을 빌었습니다.

後數日

陵敗書聞

主上爲之食不甘味

聽朝不怡

며칠 후

이릉이 패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주상은 밥을 먹어도 밥맛을 느끼지도 못하고,

신하들과의 조회에 참석해도 기쁜 마음이 없었습니다.

大臣憂懼

不知所出

대신들도 걱정하고 두려워하여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僕竊不自料其卑賤

見主上慘愴怛悼

誠欲效其款款之愚

저는 자신이 비천하다는 것도 생각하지 못하고,

주상께서 몹시 슬퍼하고 비통해하고 참담해 하는 것을 보고서,

진실로 저의 작은 신실함을 나타내 보고자 하였습니다.

以爲李陵素與士大夫絶甘分少

能得人死力

이릉은 사대부들을 잘 대해 주어서,

다른 사람들로부터 사력을 다한 도움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雖古之名將不能過也

이런 점은 비록 옛날의 명장이라 할지라도 이릉보다 못합니다.

身雖陷敗

彼觀其意

且欲得其當而報於漢

비록 몸은 적에게 패해 사로잡히긴 했지만,

속뜻을 살펴 보건대,

적당한 기회를 기다렸다가 한나라에 보답을 하려고 있습니다.

事已無可奈何

其所嶊敗

功亦足以暴於天下矣

지나간 일은 어찌 돌이킬 수 없는 일이고, 그 패배가 크다 해도,

그가 (적을 무찌른) 공로 또한

세상에 나타내기에 충분합니다.

僕懷欲陳之而未有路

제가 이러한 생각을 품고 이야기하려고 했지만 나갈 길이 없었습니다.

適會召問

卽以此指推言陵之功

欲以廣主上之意

塞睚眦之辭

未能盡明

우연한 기회에 절 부르고 물어보시기에, 이러한 취지에서 이릉의 공로를 말씀드려,

주상의 뜻을 넓히고,

분노의 안색을 돌려 막으려고 했지만,

명확하게 설명을 다해 드릴 수가 없었습니다.

明主不曉

以爲僕沮貳師

而爲李陵遊說

遂下於理

현명한 주상께서도 저의 뜻을 분명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제가 이사 장군을 비방하고,

이릉을 위해서 나서서 변호한다고 여기어,

저의 죄를 물으라고 재판에 넘겨버렸습니다.

拳拳之忠

終不能自列

간절한 저의 충심을

끝내 스스로 밝힐 수가 없었습니다.

因爲誣上

卒從吏議

주상에게 무례하게 굴었다는 죄목으로

유죄 처분을 받게 되었습니다.

家貧貨賂不足以自贖

저의 집이 가난하여 돈 액수가 부족하여 스스로 속죄할 수도 없습니다.

交遊莫救

左右親近

不爲一言

평소 교제를 나눴던 사람들도 구해주려고 하지 않았고,

주위 측근에 있던 사람들도

일언반구 하나 거들지 않았습니다.

身非木石

獨與法吏爲伍

深幽囹圄之中

誰可告愬者

제가 목석도 아니고,

감옥의 형리와 함께 나란히,

깊은 어두움 속에서 영어의 몸으로 갇혀 있으니,

어느 누구에게 알리거나 이야기할 수 있겠습니까?

此眞少卿所親見

僕行事豈不然乎

이런 진실은 당신께서 친히 본 바 그대로이니,

저의 사정이 그렇지 않다고 말할 수 없겠지요?

李陵旣生降

隤其家聲

이릉이 살아서 적에게 항복하여

그 가문의 명성은 이미 사라졌습니다.

而僕又佴之蠶室

重爲天下觀笑

悲夫

悲夫

저도 궁형을 집행하는 밀실로 불려가

세상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고 말았습니다.

슬프고

슬픕니다.

事未易一二爲俗人言也

 

세상 사람들에게 사정을 일일이 설명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僕之先

非有剖符丹書之功

文史星歷

近乎卜祝之閒

저의 선친께서는

지방관으로 파견나갈 만큼의 큰 공을 쌓아 올리지는 못했습니다.

천문, 역사, 점성, 책력에 전문가였고,

(국가의 중요 대사를 맞이하여) 점복을 치고 (국가의 제사를 주재하고) 축문을 쓰는 그런 비슷한 일을 담당하였습니다.

固主上所戲弄

倡優所畜

流俗之所輕也

그런데 그런 업무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국왕들이 심심한 장난거리로 삼는 것으로 전락하여,

우리에 갇혀서 길러진 광대 정도로 여겨졌고,

그저 생각없이 흘러가는 세상 사람들에게는 경시되는 대상으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假令僕伏法受誅

若九牛亡一毛

與螻蟻何以異

而世又不與能死節者

特以爲智窮罪極

不能自免卒就死耳

만약 제가 법에 따라 사형을 당할지라도

아홉 마리의 소에서 털 하나 없애는 것과 같고,

미천한 땅개미가 죽는 것과 다를 바가 무엇이겠습니까?

더욱이 사람들은 저를 지조와 절개를 지키다 죽은 사람과 비교하지 않고

특이하게 상상도 못할 큰 죄를 지어서, 스스로 죄를 면하지도 못하고 죽음에 이르렀다고 여길 것입니다.

何也

素所自樹立使然也

왜 그렇겠습니까?

평소에 스스로 그렇게 여기도록 만들었던 어떤 바기 있기 때문입니다.

人固有一死

사람은 언젠가 한 번은 죽는데,

或重於太山

或輕於鴻毛

用之所趨異也

어떤 죽음은 태산보다 무겁게 여겨지고,

어떤 죽음은 기러기 털만큼 가볍게 취급됩니다.

이것은 죽는 방법이 서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太上不辱先

其次不辱身

가장 훌륭한 죽음은 선조를 욕되지 않게 하는 것이고

그 다음이 자신을 욕되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其次不辱理色

其次不辱辭令.

其次詘體受辱

其次易服受辱

其次關木索

被箠楚受辱

其次剔毛髮

嬰金鐵受辱

其次毁肌膚

斷肢體受辱

最下腐刑極矣

그 다음은 이치에 어긋나거나 얼굴을 욕되지 않게 하는 것이고

그 다음이 언사에 욕됨이 없게 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은 무릎을 끊기고 욕 당하는 것이고

그 다음이 죄수복을 입고 욕 당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이 죄인이 되어 형틀을 쓰고 밧줄로 묶여서

곤장을 맞으며 욕을 당하는 것이고

그 다음이 머리를 깎이고

목에 쇠사슬을 두르고 맞으며 욕을 당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이 살갗을 훼손당하고

몸을 잘리는 욕 당하는 것이고

가장 나쁜 것이 궁형을 받는 것입니다.

傳曰

刑不上大夫

此言士節不可不勉勵也

옛 책에 이르기를,

 대부에게는 형벌을 주지 않는다고 했는데,

이 말은 선비의 절개는 강제로 어찌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猛虎在深山

百獸震恐

及在檻穽之中

搖尾而求食

積威約之漸也

사나운 호랑이가 깊은 산에 있으면

모든 짐승이 두려워 떱니다.

하지만 호랑이가 우리에 같혀 있게 되면

꼬리나 흔들며 먹이를 구하게 되는데,

이것은 굴복 당해 호랑이의 위엄이 점점 줄어들었기 때문입니다.

故士有畵地爲牢

勢不可入

 

削木爲吏

議不可對

 

定計於鮮也

그래서 선비는 땅 위에다 선을 그어 감옥으로 삼아 몰아넣는다 해도

그 안으로 들어가지 않으며,

 

감옥의 형리가 사납게 굴고 갖은 모욕을 다해도

거기에 대꾸조차 하지 않는다고 하였는데

 

이것은 이미 계획된 바가 정해져 있기 때문입니다.

今交手足

受木索

暴肌膚

受榜箠

幽於圜牆之中

當此之時

見獄吏則頭槍地

視徒隸則正惕息

何者

저는 지금 손발이 묶이고

머리에는 형구를 쓰고

몸을 다 드러내고

채찍을 맞으며

감옥에 갇혀 있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때를 당하여,

감옥의 형리를 보면 머리를 조아리고,

교도관을 보면 놀래어 가슴이 뛰는데,

왜 그렇겠습니까?

積威約之勢也

及以至是

言不辱者

所謂强顔耳

曷足貴乎

오랫동안 감옥에 갇힌 처지 때문입니다.

이러한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욕당하는 것이 아니라고 하는 사람은

소위 얼굴이 두꺼운 사람일테니

어찌 귀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且西伯伯也

拘於羑里

李斯相也

具于五刑

淮陰王也

受械於陳

彭越張敖

南面稱孤

繫獄抵罪

絳侯誅諸呂

權傾五伯

囚於請室

魏其大將也

衣赭衣

關三木

季布爲朱家鉗奴

灌夫受辱於居室

문왕은 서백으로 복무할 때

감옥에 구금당했고,

이사는 재상을 지낼 때

오형이라는 극형을 당했습니다.

회음왕 한신은

군사작전 하던 중 형틀에 갇히게 되었고,

항우를 격파했던 팽월 그리고 황제의 사위였던 장오는

왕이 되려고 모반을 일으켰다가

감옥에 갇히고 그 죄과를 받게 되었습니다.

강후 주발은 유방 사후 최고권력을 거머쥐었던

여씨 일족을 평정하고 한나라 정통을 되찾으나

청실 감옥에 갇힌 죄수의 몸이 되었고,

위기제후 두영은 두태후의 도움으로 대장까지 올랐으나

죄수의 옷을 입고

목에는 삼목 형틀을 걸치게 되었습니다.

항우와 함께 거병했던 장군 계포는 머리를 깎이고 주씨가의 노예로 들어가야 했고,

권력자 두영의 친구이었던 관부는 감옥에 불려가 욕을 당했습니다.

此人皆身至王侯將相

聲聞鄰國

及罪至罔加

不能引決自裁

在塵埃之中

위와 같은 사람들은 각각 황제나 제후나 장군과 재상의 자리에 올라 그 명성을 외국에 까지 떨쳤던 사람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죄를 짓고 체포될 지경에 이르렀어도

스스로 알아서 미리 자결하지 못하고

밀가루 먼지 망태를 뒤집어 쓰고 구차하게 살았습니다.

古今一體

安在其不辱也

이러한 일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똑 같은 것이니,

어찌 욕되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由此言之

이로써 말하건대

勇怯

勢也

强弱

形也

용감한 것과 겁이 많은 것은

상황에 좌우되는 것이고,

강하고 약한 것은

조건에 달려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審矣

何足怪乎

살피건데

이것이 어찌 이상한 일이겠습니까?

夫人不能早自裁繩墨之外

以稍陵遲

至於鞭箠之間

乃欲引節

斯不亦遠乎

무릇 사람들은 스스로 법도를 미리 지켜내지 못하고,

작은 일 가지고 물고 늘어지며 태산처럼 쌓아 올리다가,

꼭 채찍을 맞게 될 정도에 이르러서야

절개를 지킨다고 죽겠다고 나서니

이것 역시 때늦은 것이 아니겠습니까?

古人所以重施刑於大夫者

殆爲此也

옛 사람들이 사대부에게 법을 적용할 때 무겁게 여겼던 까닭은

이러한 위험을 인식해서였을 것입니다.

夫人情莫不貪生惡死

念父母

顧妻子

至激於義理者不然

乃有所不得已也

무릇 사람들의 마음은 살고 싶어 하고 죽기를 꺼리며,

부모를 생각하고,

처자식을 되돌아보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의리에 죽고사는 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는 부득이한 바가 있기 때문입니다.

今僕不幸

早失父母

無兄弟之親

獨身孤立

지금 저는 매우 불행합니다.

부모님을 일찍 여의고,

친형제지간도 없으며,

홀로 되어 도와줄 사람도 없습니다.

少卿視僕於妻子何如哉

소경께서 보시기에 제가 처자 대하는 것이 어떠합니까?

且勇者不必死節

怯夫慕義

何處不勉焉

僕雖怯懦

欲苟活

亦頗識去就之分矣

또 용감한 사람만이 반드시 절개를 지켜 죽을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

유약한 사람도 능히 의를 사모하면

어찌 힘쓰지 못하겠습니까?

제가 비록 겁이 많아

구차하게 목숨을 유지하고자 하지만

또한 생사의 명분도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何至自沈溺縲紲之辱哉

且夫臧獲婢妾

由能引決

況僕之不得已乎

어찌 스스로 감옥 안에 갇혀 욕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노비나 시녀들도

능히 스스로 자결할 수 있는데

어찌 제가 할 수 없겠습니까?

所以隱忍苟活

幽於糞土之中而不辭者

恨私心有所不盡

鄙陋沒世

而文采不表於後世也

제가 욕됨을 참아가면서 구차스럽게 목숨을 부지하고,  

어두운 똥통 속에 빠졌어도 마다하지 않았던 까닭은

한스럽게도 저의 마음을 다 표현해 내지 못했기 때문이었고,

비루하게 죽으면

후세들에게서도 훌륭한 재능이 나타나지 않을까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古者

富貴而名摩滅

不可勝記

唯倜儻非常之人稱焉

예전에

높은 부를 축적한 귀족세문이면서도 이름을 내지 못한 인물이

수없이 많았던 반면

뜻이 크고 기개있는 비범한 인물만이 칭송을 받았습니다.

蓋文王拘而演周易

仲尼厄而作春秋

屈原放逐

乃賦離騷

在丘失明

厥有國語

孫子臏脚

兵法脩列

不韋遷蜀

世傳呂覽

韓非囚秦

說難孤憤

詩三百篇

大抵聖賢發憤之所爲作也

문왕은 구금되고 난 이후에야 주역을 풀이할 수 있었고,

공자는 곤궁하였을 때에 춘추를 저술하였습니다.

굴원은 머나먼 시골로 쫓겨나 축출당하고 나서

불멸의 저서인 이소부를 지었고,

좌구명은 눈이 멀고 나서

최고의 역사서인국어를 편찬했습니다.

손자는 다리를 잘려서 전쟁에도 나가지 못한 몸이 되서야

유명한 손자병법을 썼으며,

여불위가 촉나라로 쫓겨난 뒤에야

불멸의 역사서인여씨춘추가 세상에 전해지게 되었습니다.

한비자는 진나라에 죄수로 갇힌 뒤에야

유명한 세난편과 고분편을 지었고,

불멸의 시경” 300편도

대개 성현들께서 분노가 발분하여 지어진 시편입니다.

此人皆意有鬱結

不得通其道

故述往事

思來者

이러한 사람들은 뜻이 있었으나 그것이 막혀 답답하거나,

자기의 견해와 도리를 전할 방법이 없어서,

지나간 역사속의 사례를 들고 서술하여

후세사람들에게 생각을 하게 만들고자 하였습니다.

乃如左丘無目

孫子斷足

終不可用

退而論書策

以舒其憤思

垂空文以自見

좌구명은 눈이 멀고,

손자는 다리를 잃고,

결국 임용되지 못하자,

은퇴하여 책을 써서 전략을 논하고,

마음속의 울분과 생각을 담아내,

후세들이 이론속에서 스스로 발견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僕竊不遜

近自託於無能之辭

網羅天下放失舊聞

略考其行事

綜其終始

稽其成敗興壞之紀

요즈음 저는

표현력은 크게 모자라지만,

예로부터 세상에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들을 총망라하여, 그중에

간략하게 고증하고,

시작과 결말을 종합 정리하여,

성공과 실패와 흥망성쇠에 대한 역사적 법칙을 고찰하고자 했습니다.

上計軒轅

下至于玆

爲十表

本紀十二

書八章

世家三十

列傳七十

凡百三十篇

그리하여 위로는 헌원황제에서부터

아래로는 지금에 이르기까지

10

본기 12

8

세가 30

열전 70편 등

130편을 지어

亦欲以究天人之際

通古今之變

成一家之言

하늘의 도와 사람의 길에 있어서의 그 관계를 연구하고

고대로부터 오늘 날까지의 변화를 살펴

최고의 권위가 있는 책을 완성하고자 했습니다.

草創未就

會遭此禍

惜其不成

是以就極刑而無慍色

그러나 초고를 작성하기도 전에

이런 재난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이 일을 다 완성하지 못한 것을 애석하게 여기고,

비록 극형을 당했어도 얼굴에 분노를 띠지 않은 것은,

僕誠以著此書

제가 진실로 이 책을 저술하여,

藏諸名山

傳之其人

通邑大都

유명한 산 속에 깊이 간직해 두었다가,

뜻 깊은 사람들에게 전하여,

모든 고을과 도시에까지 알려지도록 원하기 때문입니다.

則僕償前辱之責

雖萬被戮

豈有悔哉

이렇게 되면, 제가 이전에 받은 욕됨을 참아낸 책망을 보상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비록 수만 번 죽임을 당해도

어찌 후회스러움이 있겠습니까?

然此可爲智者道

難爲俗人言也

하지만 슬기로운 사람에게는 도를 말하는 것이 가능하지만,

세속의 보통사람들에게는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且負下未易居

下流多謗議

하류들이 비방을 늘어놓고 물고 늘어질 때, 모욕을 참고 평정심을 유지하기란 어렵습니다.

僕以口語遇遭此禍

제가 말과 글로 인해서 이러한 화를 자초한 것입니다. 

重爲鄕里所戮笑

以汙辱先人

亦何面目復上父母丘墓乎

제가 사는 시골 사람들에까지 웃음거리가 되어 버리고 만다면,

조상을 욕되게 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면, 무슨 면목으로 부모님의 묘소 앞에 엎드릴 수 있겠습니까?

雖累百世

垢彌甚耳

수많은 세월이 흐른다 해도

때먼지만 더 가해질 뿐입니다.

是以腸一日而九迴

居則忽忽若有所亡

出則不知其所往

每念斯恥

하지만 이로 인하여 창자가 뒤틀린 적이 하루에 9백번도 넘고, 근심스런 마음이 하루에도 수백번 일어나고,

집에 홀로 있으면 정신이 몽롱하여 무엇인가 잃어버린 것 같으며,

집밖을 나서면 어디로 가야 할 지를 모를 정도가 되었습니다.

汗未嘗不發背沾衣也

매번 이러한 치욕을 생각할 때마다 등에서 식은 땀이 흘려내려 옷을 흥건히 적시고 맙니다.

身直爲閨閤之臣

寧得自引於深藏岩穴邪

긴 소매 옷을 입고 규방에 거처하는 환관의 신하가 되었으니,

어찌 스스로 깊은 바위 동굴 속에 숨어 은거 생활을 할 수 있겠습니까?

故且從俗浮沈

與時俯仰

以通其狂惑

그래서 잠시 세상의 부침과

시대에 따라 순종하고 머리를 숙이며,
광란과 혼란스러움이 그저 빠져나가기만을 기다릴 뿐입니다.

今少卿乃敎以推賢進士

無乃與僕私心刺謬乎

지금 소경께서 저에게 현명한 선비를 추천하라고 말씀하였는데,

이는 저의 개인적인 생각에 위배되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今雖欲自雕琢曼辭以自飾

無益於俗

不信

適足取辱耳

지금 비록 제가 미사여구를 써서 제 자신을 포장한다고 해도,

세상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고,

사람들도 믿지 않을테니,

부족해 스스로 부끄러움을 취할 뿐입니다.

要之

요약해서 말씀드리면,

死日然後是非乃定

(모든 사람은) 죽고 난 후에나 옳고 그름이 (그의 삶에 대한 평가가) 명확하게 가려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書不能悉意

글로써는 머리 속에 들어 있는 모든 생각을 짜내어 담아 내기 어렵습니다.

略陳固陋

부족함이 많은 저의 생각을 간략하게 적었습니다.

謹再拜

삼가 다시 절을 올립니다.

 

사마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