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여행 포토 essay/내가혼자여행하는이유

평생 바쁘게만 살아와 그 이름난 곳도 다녀보질 못했는데

by 추홍희블로그 2015. 8. 12.

소백산 산세들의 펼쳐짐에서 피어 오르는 아련한 그리움이 못견디게 그리운 청명한 가을날, 영주 부석사를 찾았다.  

최순우선생은 부석사 여행기에서 다음과 같이 표현하였다.    
 “소백산 기슭 부석사의 한낮, 스님도 마을 사람도 인기척도 끊어진 마당에는 오색 낙엽이 그림처럼 깔려 초겨울 안개비에 촉촉이 젖고 있다.  무량수전, 안양루, 조사당, 응향각 들이 마치도 그리움에 지친 듯 해쓱한 얼굴로 나를 반기고, 호젓하고도 스산스러운 희한한 아름다움은 말로 표현하기가 어렵다.  나는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기대 서서 사무치는 고마움으로 이 아름다움의 뜻을 몇 번이고 자문자답했다.”

 

영주 부석사 안양루는 진주 촉석루, 밀양 영남루에서 느끼는 장엄미하고는 약간 다른 면이 있습니다.  촉석루와 영남루는 강 위에 세운 누각인데 비해 영주 부석사는 강 위에 지은 누각이 아니라 소백산맥 산줄기 중턱에 자리 잡은 관계로 멀리 보이는 소백산 줄기들이 겹겹이 쌓여 서로를 휘감고 도는 산세가 펼치는 장관미가 지평선처럼 펼쳐짐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방랑시인 김삿갓(김립 金炳淵(1807-1863년))이 영주 부석사 안양루에 오른 감회를 적은 한시를 적어봅니다. 

 

평생 바쁘게만 살아와 그 이름난 곳도 다녀보질 못했는데 
하얀 세치머리 난 오늘에야 안양루에 올랐네!
강과 산들은 한 폭의 그림 같이 지평선으로 늘어서 있고
하늘과 땅은 물 위에 떠있는 부평초같이 밤낮으로 떠 있네!
바람과 먼지 같은 지나간 모든 일이 말을 타고 달려 온 듯한데
위대한 자연 속에 내 작은 한 몸은 오리 헤엄치듯 물 위에 떠돌고 있네!
100살까지 산다고 해도 이런 빼어난 경치를 언제 다시 몇 번이나 구경할 수 있을까?
아~지나간 시간들이 무정하네! 내 벌써 이렇게 나이 들었으니!


平生未暇踏名區(평생미가답명구) 
白首今登安養樓(백수금등안양루) 
江山似畵東南列(강산사화동남열) 
天地如萍日夜浮(천지여평일야부) 
風塵萬事忽忽馬(풍진만사홀홀마) 
宇宙一身泛泛鳧(우주일신범범부) 
百年幾得看勝景(백년기득간승경) 
歲月無情老丈夫(세월무정노장부)

 


불교에 지식이 있는 처사도 아닌 나는 화엄사상의 요체를 깊이 이해하기도 어렵고 의상대사와 신묘낭자 사이의 설화를 간직한 부석사의 뜬바위(부석)에 대한 전설이야기 등은 별로 와 닿지 않는다. 

 

하지만 멀리 소백산으로 펼쳐지는 겹겹의 산들 너머로 피어 오르는 회색빛의 연기에서 내 마음 속 깊이 쌓여 있는 그리움이 넘실대어 마음이 후벼파들고 다리는 휘어지며 몸은 자지러짐을 느끼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