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과 언어
I. 들어가기
노래는 음악 예술이기에 가사가 꼭 필요한 것은 아니다. 중고등학교 때 자주 들었던 다니엘리 리까리의 스켓 송-“목소리를 위한 협주곡”으로 잘 알려진-그 얼마나 감미롭게 호소력이 크던가? 예술의 종류 중에 오로지 음악은 다른 매개 수단을 필요하지 않고 직접적으로 어필할 수 있다. 외국에 여행을 다니다 보면 만나게 되는 길거리에서 기타치고 하모니카 연주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매력적으로 다가오던가? 쇼펜하우어의 미학 이론[1]에 따르면, 베에토벤 같은 음악가가 가장 훌륭한 예술가이지 않을까? 오선지 하나만 있으면 모든 것을 직접적으로 전달할 수 있으니까? 물론 피아니스트나 바이올린 연주가가 필요하고 노래를 부를 오페라 보컬이 필요할 지 모르나 음악은 전달 상대방에게 다른 매개 수단을 요구하지 않고 사람의 마음과 가슴 속에 직접적으로 호소력을 전달할 수 있는 예술이다. 따라서 음악 예술에서 가사는 불필요한 “사족”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왜 내가 굳이 가사 번역을 필요성이 있겠는가?
하지만 나는 그것으로 인해 “목마와 숙녀” 박인환의 시 구절과 같이 “人生은 외롭지도 않고 그저 雜誌의 표지처럼 通俗하거늘”, 우리 인생의 통속성을 확인하려고 한 것이다. 우리 일상 생활에서 노래로 익숙한 가사의 말들을 얼마나 자주 쓰고 있는가? 아마도 그렇지 않다고 여길 사람이 더 많을 것 같다. 사람들은 저마다 인생에 대해서 잘 안다고 자만심이 꽤 높은 것 같다. 거리를 걷건 대포집에 들리건 산에 오르든 모두가 자신만만하게 인생에 대해서 소리 높여 이야기를 하는 모습을 보라. 그런데 삶이란 거기가 거기고, 뛰어보니 벼룩인데도.
또 다른 이유 하나는 내가 그 동안 세상을 멀리했다는 생각이 들고, 그래서 세상 계곡으로 내려가고 싶었다. 윌든 숲으로 들어간 소로우와는 반대방향으로 포구에 맞닿는 계곡의 입구에라도 내려가 커피 한잔을 나누고 싶은 마음이었다. 달리 얘기하면 지상에서 천상으로, 천상에서 지상으로, 이런 쌍방형의 의미를 찾아보려는 시도라고 말할 수 있다.
요즘은 유치원 때부터 영어를 배우는 세상에서 영어 노래 정도야 누군들 모를 수 있을까? 그런데 나는 그 동안 영어로 읽고 쓰며 머리 싸매고 살다 보니 골치도 아프고, 무엇보다 내 마음 깊은 속을 다 표현하지 못해서 항상 부족함을 느끼다가 그만 지치고 말았는데 내나라내말로 쓴다면 얼마나 잘 쓸 수가 있을까 하는 전환적인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것을 시험해 보고자 했다.
번역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사람들은 별로 잘 느끼지 못하는 것 같은데, 사실 외국어로 학문한 교육자라고 해도 정말 번역다운 번역을 해 본 사실이 있는지를 물어보면 생각보다 많지 않다. 직접 자신이 어떤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일은 외국어로 읽고 이해하고 가르치는 것과는 성격이 다르다. 내 생각으론 전문 번역은 매우 어렵다. 통역은 대개 깊이 파고들거나 리서치할 일이 없이 즉석에서 끝나 버리는 일의 성격임에 비추어 전문가 번역은 리서치가 필요하고 또 무엇보다 양 쪽의 영역 모두를 다 함께 알고 이해하고 있어야 가능한 일이기 때문에 외국어를 잘한다는 이유만으로는 좋은 번역을 해낼 수가 없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국가기관으로 외국어 번역 작업을 책임진 “사역원”을 두었고 거기에다 외국어 회화 교육에 중점을 “우어청 偶語廳”까지 설치하며 (한자로 짝우라는 말을 쓴 것은 외국어를 짝퉁언어로 이해했다는 뜻이니 새로운 창조가 아니라 모방하는 의미로써의 “짝퉁”이라는 말과 상통한다) 번역원과 통역원을 양성해 왔는데 무려 500년간이나 이어져 오던 이 국가기관에서 번역 작업이 미비했던 이유는 아마도 보통 사람들은 하루 일과가 끝나면 그것으로 일을 끝내 버리고 말지 보다 깊은 생각과 탐구를 파고 들려고 하려는 태도는 회피하는 경향 따라서 미래에 대한 관심을 둘 생각의 여유가 부족했기 때문인 것 같다. 전문가 번역은 일부 경제학 정도를 제외하고는 상대적으로 거의 없다. 번역은 사람들에게 가이드를 제공하고 또 한편으론 번역의 잘잘못에 그대로 비판을 받게 되는 즉 자기의 작업 결과가 고스란히 노출되는 일이기 때문에 책임질 일을 회피하는 한국인의 성격상 쉽지 않는 분야인 것 같다. 그러다 보니 판권 얻어 가지고 있는 출판사의 상업적인 번역에 주로 기댈 수 밖에 없는 영역으로 보이고 게다가 연구 실적에도 반영이 되지 않는 한국의 얕은 학문풍토이다 보니 “3D” 성격의 작업을 어느 누가 자발적으로 하려고 하겠는가? 그런데 킹제임스 성경 번역자는 자신들의 번역 작업을 하나님의 사명으로 이해했다.[2]
마찬가지로 나는 어려운 일이건 쉬운 일이건 어떤 하나를 하더라도 내가 하는 일은 하나님의 손끝을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이러한 두려운 마음을 나는 항상 갖고 있다. 나의 손은 사람들 영혼 위에 임재하신 크나큰 하나님의 선하신 손끝을 통해 완성된다는 것을 믿으며 나의 부족함과 세상을 향한 존중감을 항상 깨우치고 있다.
번역 Translation이란 무엇인가?
좋은 내용과 진실성을 지닌 책은 정보와 지식의 보고이자 마음의 양식이고 깨달음의 기쁨과 삶의 지침을 준다. 그런데 좋은 책이 다른 언어로 되어 있어서 보통사람들이 이해하는데 곤란함을 겪는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번역의 개념에 대해서는 킹제임스성경 번역자가 “독자에게 드리는 서문”에서 표현한 문장만큼 더 적절하게 비유할 수 있는 말은 찾아 보기 어려운 것 같다. “번역이란 햇빛이 들도록 창문을 여는 것이고, 알맹이를 먹기 위해 껍질을 까는 것이며, 지성소를 들여다보기 위해 휘장을 여는 것이며, 야곱이 라반의 양떼에게 물을 먹이기 위해서 우물가의 돌을 들어내 치워야 하듯이 사람들이 샘물을 길러 올릴 수 있도록 우물 덮개를 여는 것과 같다. 사실 보통 사람들에게 통용되는 일상언어로 된 번역이 없다면 배움이 부족한 사람들은 마치 샘이 깊은 야곱의 우물가에서 두레박이나 다른 떠올릴 수단이 없어 마냥 서 있는 어린아이와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3]
What is LOVE?
사람이 사랑 없이 살아 갈 수가 있을까? 어느 누구라도 사랑 없는 삶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사랑이 무엇인지를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사랑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많은 토론을 하였던 지혜로운 대철학자 플라톤도 사랑의 개념을 딱 부러지게 설명해 내지 못했다. 20세기 최고의 천재과학자로 칭송받았던 아인슈타인도 사랑의 개념을 확실하게 설명해 내지 못했다. 그렇다면 일개미물인 내가 어떻게 사랑에 대해서 논할 수 있겠는가? 즉시 핵심적 질문을 던지는 소크라테스나 예수의 방식대로 “What is love?”, 사랑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쓰기가 어렵다면 살짝 탐구 방법을 바꾸어서 사랑의 기술적 방법이 있는지를 생각해서, “사랑의 기술 The Art of Loving”이라는 에리히 프롬의 베스트 셀러 책부터 다시 읽어 보았다. 그러나 내 머리로는 사랑이 무엇인지는 차치하고 사랑의 기술에 대해서도 설명해 낼 실력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서 그간 틈틈이 쓰던 소설도 그만 두고 말았다.
만약 사랑을 수학방정식처럼 표현할 수 있다면 어떨까? 아무리 어려운 자연법칙도 아인슈타인의 에너지 공식(E = mc2)처럼 간단한 수학공식으로 표현될 수 있다는데 말이다. 따라서 사랑방정식이 존재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랑이 존재한다는 것과 그 사랑의 개념 공식을 설명한다는 것은 다른 얘기다. 어찌됐든 우리는 사랑 없이 살아갈 수 없으리라. 그렇다고 사랑과 반대되는 개념-예컨대 증오, 미움, 파괴 등-이 없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부정적인 개념의 존재는 극히 미미한 부분이라고 여긴다. 아마도 기껏 해 봐야 10% 정도 밖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이 세상이 비록 악하고 모진 사람들이 지배층의 최고 꼭대기에 올라가 있다고 하더라도 이 세상의 절대다수는 선하고 착하고 어진 본성을 가진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을 나는 믿는다.[4]
“사랑은 무엇인가?” 산 사람들이야 자기 의견이 각양각색일 것이다. 따라서 죽은 사람이 내린 답을 찾아본다면 독일 철학자 니이체의 묘비명이 잘 말해 주는 것 같다. 니이체의 묘비명은 고린도 전서 13장의 말씀을 인용한 것이다. “사랑은 영원하다 Love never fails”. 사랑의 노래 가사를 이렇게 모아 보니 니이체의 해답이 적용되는 것 같다. 사랑은 영원하다. LOVE NEVER FAILS. 오로지 사랑만이 전부라고. LOVE IS ALL.
이러한 생각의 바탕에서 [사랑 노래]의 제목을 알고 있다는 것만으로 의미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래란 시간이 지나면 제목을 기억하기도 쉽지 않고 해서 여기에 모은 노래는 노래 듣기를 위한 지시대명사라고 이해하면 좋을 듯 싶다. 요즈음은 유투브에서 노래 듣기도 그 종류가 너무 많아서 어떤 소스가 좋은 곳인지를 찾는 데에 불필요한 시간이 낭비되는 경우가 많은 것 또한 사실이다. 클릭 수대로 광고비를 받는 비즈니스 모델의 내재적인 불편함이기도 하겠지만 검색해서 노래 듣기도 이제는 생각보다 그리 쉽지 않다. 검색 속에서 또 검색의 기술이 필요로 하는 것 같다.
최소한, 누구에겐가는 효용이 있는 작업이다. 어려운 “3D”-빛나는 일도 아니고 어두운 구석에서 더디고 번거롭고 청소하는 일 같은 그래서 다들 회피하는- 번역 작업을 밤새워 할 때 밤하늘의 별을 쳐다볼 때의 기쁨과 같지 않을까?
"지구가 세상의 중심이 아니라, 매우 작은 행성 중 하나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 인간이 최고 중심에 있다는 착각은 더 이상 버틸 수 없습니다. 코페르니쿠스는 그의 업적과 그의 위대한 인간성을 통해서 사람은 진실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쳤습니다."[5] 밤 하늘의 별은 예수와 트폴레미, 아리스토텔레스, 코페르니쿠스, 갈릴레오, 뉴튼, 아인슈타인 등 위대한 천재들뿐 아니라 윤동주같은 보통사람들에게도 진실성 “man to be honest”을 가르쳤다.
WHAT IS LOVE?
<킴 카잘리 만화>에서 정의하는 것
그림엽서에 들어 있는 말은 상대성 이론으로써 사랑을 정의한 아인슈타인의 의견하고 같다. “만약 한 남자가 예쁜 여자와 한 시간을 함께 앉아 있다면, 그 한 시간은 일 분처럼 느껴질 것입니다. 하지만 같은 사람을 뜨거운 난로 위에 1분 동안 앉아 있으라고 하면 그 분은 1시간보다도 길게 느껴질 것입니다. 그게 상대성 이론입니다.”[6]
WHAT IS LOVE?
한 초등학생의 표현처럼, “함께 노래하고 춤을 추면 즐겁고”, 존 레논의 “오 마이 러브”의 가사처럼 “내 마음이 크게 열리고, 이 세상 모든 것이 또렷해진다”.
<혜련, 7살, 초등 2년 >
[1] Arthur Schopenhauer (1788-1860), according to Schopenhauer, tragedy. among various genres of arts, the highest form of art is music. While the other forms of art imitate Ideas, music imitates the Will itself. Therefore, Schopenhauer called music the unconscious metaphysics.
[2] “but having and using as great helps as were needful, and fearing no reproach for slowness, nor coveting praise for expedition, we have at length, through the good hand of the Lord upon us, brought the work to that pass that you see.” “The Translators to the Readers”, The Authorized or King James Version 1611.
[4] "Pure logical thinking cannot yield us any knowledge of the empir ical world; all knowledge of reality starts from experience and ends in it. Because Galileo saw this and particularly because he drummed it into the scientific world, he is the father of modern physics — indeed, of modern science altogether." - Albert Einstein (1879-1955).
[5] “Once it was recognised that the earth was not the center of the world, but only one of the smaller planets, the illusion of the central significance of man himself became untenable. Hence, Nicolaus Copernicus, through his work and the greatness of his personality, taught man to be honest.” (Albert Einstein, Message on the 410th Anniversary of the Death of Copernicus, 1953).
[6] 아인슈타인 대담에서 한 비유: "When a man sits with a pretty girl for an hour, it seems like a minute. But let him sit on a hot stove for a minute and it's longer than any hour. That's relativity.” Special Theory of Relativity explains that the speed of light is a constant and that at great speeds, time slows down (relatively speaking) and space becomes distorted. the speed of light is a constant and that at great speeds, time slows down (relatively speaking) and space becomes distorted.” 특수 상대성 이론: “우주의 모든 사물들에 대해 항상 동일한 속도 로 흐르는 하나의 시간, 즉 절대적인 시간이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속도로 운동하는 각각의 물체들은 저마다 다른 속도로 흐르는 시간을-즉 각각의 물체들은 각자에게만 고유하게 속하는 시간을-갖 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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