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위대한 환상 Grand Illusion”-자기 이익 추구 본성과 귀족 문화의 모순
“노블레스 오블리주 Noblesse oblige”는 로마 시대 라틴어 어휘인가?
왜 국가간 부족간에 성패가 나타나고 흥망성쇠의 역사가 나타나는가?-다윈의 자연도태설
다원은 인간은 민족적 단위로 살아가기에 도덕성이 우수한 민족이 살아남는다고 주장했다. 다윈이 말하기로, 성 도덕이 타락한 여자는 자녀를 출산하지 못하고, 성 윤리가 타락한 남자는 결혼은 못한다. 이런 인간들은 병에 걸리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런 다원의 견해를 일언지하에 무시될 수 없을 것이다. 건강을 제도적으로 챙겨주고 진수성찬의 음식을 먹었던 조선 왕들의 평균 수명이 상대적으로 크게 낮은 이유 하나를 성 도덕이 문란했기 때문이라고 보는 견해는 상당히 설득력이 있다. 다시 말하지만, 개인 도덕성의 타락은 개인 자신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다원이 주장한 바대로, 도덕성이 떨어지는 민족은 도덕성이 보다 우수한 민족에게 밀려나게 되고 결국 멸망하는 사실이 중요하게 파악되어야 한다. 사회의 건강성과 우수성은 개인 혼자만의 우월한 도덕성에서 찾아지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적으로 as a whole 으로 도덕성이 우수해야 의미가 있다는 점을 다원은 핵심적으로 지적해 내었다.
다윈의 “인간의 유래와 성 선택” 해당 구절을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높은 도덕성 수준이 같은 부족 내에서 한 개인이나 자손에게는 비교우위가 거의 무의미하지만, 높은 도덕성 수준을 고양하고 부유한 사람이 증가한 부족집단이 그렇지 못한 다른 부족집단에게 비교우위를 점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 높은 애국심, 충성심, 용기, 동정심을 갖고 있어서 다른 사람을 도울 자세가 되어 있고 또 공공의 선을 위해서 스스로를 희생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은 부족은 그렇지 못한 다른 부족과의 경쟁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바로 자연선택(도태)설이 적용된다고 볼 수 있다. 부족들간에는 하나의 부족이 다른 부족을 대체해나가는 과정이 진행되므로 이 과정에서 도덕성이 중요한 요인이 될 것이며 이에 높은 도덕성 수준과 부유한 사람들이 차지하는 수적 비중이 점차 늘어날 것이다.”
로마시대 때부터 강조해 온 개인의 도덕적 의무는 우리나라에서도 신라시대에서부터 있어 내려온 사회와 인간의 본성에 속하는 영역이어서 지구상 어떤 국가 어느 사회에 존재하는 보편적인 개념이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솔선수범의 의미를 갖는 측면에서) 국가간 또는 부족간의 사이에서 측정되는 상대적인 개념으로 판단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 노블레스 오블리주 같은 미덕은 절대적이고 일반적인 개념이 아니라, 특정 시대 특정 장소 특정 개인에게서 발견되고 확인되는 덕목이라는 점이다. 이런 개인적 덕목은 상대적으로 발견되고 확인되는 개념이므로 개인적 도덕 의무는 한국 대 일본, 한국 대 중국, 중국 대 일본, 남한 대 북한 이런 예처럼 외부 사회와의 비교에서 상대적으로 우수함이 증명되는 것이지, 자신이 속한 공동체 내부에서의 기준으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진실성, 성실성 등 이런 노블레스 오블리주로 통칭되는 개인적 미덕은 어떤 차별이 있을 수가 없고 사람인 이상 모두에게 요구되는 바람직한 덕목이다. 고귀한 개인의 도덕적 품성은 내부의 모든 사람에게서 나타나야 할 가치 덕목이지 어느 특수층의 전유물이 아닌 것이다.
아파트 건설 국토 계획을 입안하는 고위 공무원이 아파트 분양을 받으려고 위장전입을 했거나 혹은 자녀 교육 등을 이유로 위장 전입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사회지도층 인사들이 탈영(군대병역면제) 탈법 (자신과 자신의 가족을 위해서 위장 전입하고 아파트 땅 투기) 탈세하는 사례가 많이 나타나는 까닭은 무엇인가? 법률 위반의 경우 공무원 자신이 직접 당사자가 아니라 가족인 경우가 많은데, 본인이 아니어서 직접적인 법률 위반의 대상은 아니라는 변명과 항변을 듣곤 한다. 한편 어떤 경제학 교수가 노동자는 인센티브를 주어야 생산성이 높기 때문에 비정규직 제도를 주장하면서 정작 자신은 연구성과를 위해서 안정적인 정년교수제가 필요하다는 상호모순적인 논리를 전개하는 것은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탈법 위법 불법을 저질러도 걸리지만 않으면 된다는 사고방식이 만연된 사회에서는 윤리도덕적 규율의 효과를 크게 기대하기 어렵다. 여기 두 가지 질문의 성격은 서로 다르다. 전자는 법적 문제이고, 후자의 교수 경우는 학자의 연구 윤리의 영역에 속할 것이다. 물론 교수가 직업적으로 근무하는 대학 기관의 입장에서는 개인 도덕적 차원을 넘어서 기관의 문제 즉 법적 문제로 규율할 수 있는 법적 대상이 될 것이므로 법과 도덕은 사회적인 측면에서는 서로 혼합되고 맞물려 있다. 개인이 일단 사회에 편입된 순간 개인 도덕성 문제는 궁극적으로 사회 전체의 측면에서 평가되어야 할 문제이다. 이런 측면에서 노블레스 오블리주 개념을 동원하여 우리 사회에 널리 퍼져 있는 전관예우, 금품 수수, 병역기피, 탈세, 부정입학 등의 여러 사회문제들을 해결해 내기는 버거울 것이다.
노블레스 오블리주 개념을 공적 영역에서 적용할 경우 그것은 궁극적으로는 “인치”의 개념과 상통하게 된다. 하지만 앞에서 열거된 한국 사회에서의 문제점들은 인치로서 해결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 “법치”의 문제로써 해결되어야 하는 영역으로 보인다. 병역 기피 투기 탈세 등의 문제는 개인의 “도덕적 해이”의 차원이 아니라 “법치가 파괴된 법적 문제” 차원에서 접근해야 할 것이므로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개념을 동원하는 것은 해결책으로써 큰 효과가 없을 것이다. 법적 책임은 도덕적 책임과는 구별되고, 법적 책임은 국가 사회의 전체적인 문제에 해당한다. 당연하게, 누군가 법을 위반하였으면 법적 잣대에 따라 법적인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은 두말할 여지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별개의 도덕적 차원으로 환원한다는 것은 “인치”의 시도에 다름 아니고, 그것으로는 무너진 법치 국가의 근본적인 뼈대와 골격을 다시 세우고 굳건히 할 수 없을 것임은 분명하다.
모택동 아들의 한국전 참전 이야기를 노불레스 오블리주의 개념으로 적용하는 견해에 대해 프랑스 영화 한 편을 꺼내서 말하고 싶다.
영화 “위대한 환상 Grand Illusion”-극한적 자기 이익 추구와 귀족 문화의 모순
한 쪽은 전쟁 포로로 잡혔고 한 쪽은 그 포로를 수용소에 잡아 넣고 감시하는 적군과 아군의 상반된 관계에 놓여 있는 처지이지만 이들에게는 한 가지 공유하는 것이 바로 귀족출신이고 따라서 그런 상황에서도 서로에 대한 인간적인 존중감 그리고 예술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 귀족 문화를 공유한 이들이 과연 국가를 초월할 수 있을까? 프랑스 영화 “위대한 착각”에 대해서 몇 마디를 덧붙이고자 한다.
전쟁터-즉 자기 이익의 추구가 극단적으로 충돌하는 가장 극한적인 상황에서 과연 "우정 friendship과 문화 culture"라는 것이 존재하고 또 통용될 수 있을까? 내가 알 수 없는 영역이어서 이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는 영화를 꺼내서 한 마디 던지고 싶다.
마르크스는 전세계 노동자의 단결을 예견했었지만 마르크스의 그 같은 예견이 어리석었다는 결론으로 밝혀졌다. 그와 같이 전쟁터에서 즉 적과 대치하는 상황에서 "우정"과 "문화"가 존재할 것이라는 추측은 순진한 환상에 불과할까? 우정과 문화가 존재할 것이라는 생각은 인간의 이성에 대한 확신을 기반으로 한다. 그런데 전쟁이 인간의 합리적인 이성에서 나오는 것인가?
자기 생존-사적 개인 이익 추구가 서로 충돌하는 경우인데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극한적인 기아의 상황에 부딪히면 다른 사람의 살갗이라도 뜯어먹고 살아 나야 하는 것은 인간본능적 행동이라고 한다. 그리고 오로지 자기 이익을 얻기 위한 처절한 투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결정적인 순간에서는 거짓과 배신의 행동을 할 수 밖에 없고 또 그것이 용납된다고 말한다. 살아남는 것이 인간 본성인 이상 그것은 더 이상 도적적인 비난의 대상이 아닌 것이다.
전쟁에서 포로가 된 상황에서 만약 당사자가 귀족 문화를 공유하고 있다면 그것으로 인해서 적군과 아군 사이의 간격을 뛰어 넘을 수가 있을까? “칼레의 시민들”에서 칼레를 함락시킨 영국군은 식민지를 효과적으로 지배하기 위한 목적으로 기사계급 등 귀족 계급에게 사면령을 내릴 수 있었다. 당시 14세기 시대에는 민족국가의 개념이 형성되기 전이어서 있었고 왕조가 수시로 교체되는 상황에서 귀족계급의 충성도는 국가보다는 자신의 생존 전략에 의존하였다. 즉 상황에 따라 수시로 배반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러한 전쟁상황에서 귀족문화는 자기 이익의 추구에 있었지, 국가와 타인을 위해서 희생하여야 한다는 개념은 확립되지 않은 것 같다. 한편 강력한 민족국가가 형성된 이후 적군과 아군 사이에서 귀족간의 동료애로써 서로 존중해 주는 귀족적 행동이 국가간의 전쟁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을까? 유럽왕조에서 왕실간의 혼인동맹을 통하여 국가간의 이해관계를 해결해내지 못했다는 역사를 고려해 볼 때 귀족 계급의 문화를 공유한다고 해서 전쟁과 같은 극한 상황을 해결해 낼 수 없을 것이라고 유추할 수 있는데 이와 같은 결론은 2차 대전 결과가 분명하게 입증해 준다. 이런 측면에서 2차 대전 이전인 1937년 상영된 이 프랑스 영화 “위대한 환상 Grand Illusion”은 비현실적이고, 순진한 낭만주의적 환타지에 불과할 것으로 생각된다.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개념도 마찬가지로 한계가 큰 것으로 보인다. 이 영화의 줄거리는 대강 다음과 같다.
전쟁 영화는 대개 아군과 적군 사이에 서로 총을 쏘고 피 흘리며 죽어가는 전투장면이 등장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있을 지 모르나, 전쟁영화의 고전적인 명작으로 꼽히는 영화 “위대한 환상 La Grande Illusion”에는 그러한 전투 장면이 나오지 않는다. 불란서 공군비행사인 마르샬은 비번 중에 갑자기 적군 영토지역인 독일영공으로 침범하여 군사기밀을 공중 사진 촬영을 해 오라는 명령을 받게 된다. 직속상사인 보듀와 함께 마르샬은 첩보 비행기를 몰고 이륙한다. 그러나 독일군에게 비행기는 격추되고 그들은 전쟁 포로가 된다. 포로수용소에서 갇혀 지내면서 일상적인 포로 생활을 하게 되는데 수용소 땅굴을 파고 탈출을 감행하려다 탄로가 나서 수포로 돌아가기도 한다. 수용소에서 지내는 동안 독일군에게 점령당한 프랑스 한 도시가 다시 수복하였다는 신문기사를 보고서 동료 포로들과 프랑스 국가를 합창하는 난리를 치기고 한다. 포로수용소 규칙을 위반한 이런 일로 인해 마르샬은 독방에 감금된다. 더욱이 포로들은 험준한 산악의 천연의 요새 지역으로 소개된다. 이곳 포로수용소 소장은 마르샬의 정찰임무 비행기를 격추시킨 바로 그 사령관이다. 여러 번 탈출을 감행하다 실패한 마르샬 일행임을 보고받고 이들에게 이곳은 절대로 탈출할 수 없는 천혜의 요새지역이니 탈출은 꿈에도 생각하지 말라고 경고한다. 그러나 이들은 피리를 불며 독일군초병의 감시를 벗어나는 계획을 실천하는데 이때 피리를 불지 말라는 명령을 거부하는 바람에 마르샬의 상관인 보듀는 초병에게 총격을 받고 중상을 입게 되고 간호원이 보살피지만 결국 죽게 된다. 보듀가 희생하는 과정에서 마르샬과 동료 포로인 로전탈은 스위스와 독일 간의 국경을 넘어 스위스 농가로 잠입하여 탈출에 성공하게 된다. 이 농가에는 홀어머니와 그녀의 딸이 살고 있는데 이들 군인은 이 두 모녀와 함께 살며 숨어 지내게 된다. 마르샬은 그녀의 딸과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결국 독일군인들 포로들이 탈출하여 도망친 하얀 눈발자국의 동선을 따라서 뒤쫓아 수색해 오면서 발각되고 마는데 마지막 순간 독일군 포로 수용소의 장군은 사격을 중지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이리하여 탈출 포로들은 스위스 국경 쪽으로 무사히 달아난다. 하얀 눈으로 덥힌 알프스 산으로 탈출에 성공하게 되는 모습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다. 포로가 탈출할 수 있도록 사격중지 명령을 내린 배경에는 결정권자의 몸에 밴 귀족 문화의 작동인가? 아니면 인간애 humanism의 발로인가? 또 한편으로 포로수용소장으로써 국가에 대한 의무는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이 때 의무의 충돌은 사적 이익의 충돌이 결부되지 않았기 때문에 고귀하다고 결론을 내릴 수 있는가? 그렇다면 보다 큰 공익-국가적 이익-에 대한 침해는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우선 이 영화가 나온 해가 1937년임을 상기해야 한다. 영화 감독은 인상파 화가로 유명한 구스타브 르노와르의 아들인 쟝 르노와르 Jean Renoir이다. 르노와르 감독 자신이 일차 대전에 참가하여 총상을 입고서 다리를 절단하여야 했으나, 그의 어머니가 절대로 다리 절단수술만은 안된다고 반대하는 바람에 평생 동안 다리를 절뚝거려야 했다. 비행기 조종사로서 정찰 임무에 참가한 그의 직접적인 전쟁 경험에 기반하기도 하지만 영화 스토리는 포로수용소에서 8번이나 탈출에 성공한 불란서의 한 포로의 이야기에 바탕을 두고 있다. 전쟁 영화가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경우 대개 반전 색채를 띠게 되는데 그것은 전쟁에서 파괴되어가는 반문명의 사실이 확인되기 때문인 것 같다. 전쟁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이 영화도 전쟁의 의미를 회의하게 만드는 반전 드라마의 의미가 전달되고 있다. 1937년 베니스 비엔날레 에 출품되었으나 나치 독일의 괴벨스가 이탈리아 파쇼정권 뭇솔리니를 움직여서 대상을 받지 못하게 하였다고 한다. 괴벨스가 공공의 적 제1호로 평한 영화로써 나찌즘이 독일을 휩쓸고 있던 당시 유태인인 로젠탈을 영화 편집기술로 지워버리고 상영하였던 반면, 1939년 미국 상영에선 루즈벨트 대통령이 전국민에게 이 영화를 관람하라고 격려했던 영화이기도 하다.
1937년 촬영된 영화로서 이 시기에는 2차 대전이 발발할지 모른다는 전쟁의 위기감이 일고 있었으나 히틀러의 나치 독일이 1차 대전에 패배에 대한 보복 전쟁을 일으키지는 않으리라는 일종의 희망이 존재하였다는 사실을 반영하기도 한 것 같다. 그러나 히틀러의 선전영화가 전성기로 들어서고 있었고 또 히틀러의 나치체제 선전을 목적으로 한 영화 “의지의 승리”가 나온 시기가 1935년임을 볼 때 인간의 전쟁 회피에 대한 믿음이 얼마나 순진한 것인가를 여실히 보여주는 것 같다.
1차 대전을 배경으로 하는 이 “위대한 환상”은 전쟁 때면 더욱 생생해지는 계급간의 격차를 리얼하게 보여주는 영화인 것 같다. 비록 적군과 아군 사이라고 해도 그 같은 적대적인 전쟁 상황에서도 상대방에 대한 개인간의 “존중”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 고매한 인간성의 발로가 전개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다. 포로 수용소에 감금된 적군 포로이지만 독방에 감금된 마르샬에게 하모니카를 넣어 주는 독일군 병정, 음악과 예술은 아픔을 잊게 하고 마음을 달래 주며, 황폐한 전쟁 상황 중에서도 인간에게는 고상함이 존재하고 또 그것을 유지해 주는 역할을 한다. 적군의 지역에서 피신하고 있는 중에 맞이하는 크리스마스. 그런 상황에서도 축음기로 음악을 듣고 있는 동안은 전쟁의 아픔이 잠시라도 사라지는 것 같다. 자연은 어디서나 다 똑같이 저렇게 아름다운 것을 보니 “전쟁터를 만들어 낸 것은 인간이지 하나님(자연)이 결코 아닌 것이다.” 이 영화는 인간으로서 함께 공유하는 “인간 속의 유대감”의 존재를 확신시켜주려고 하는 것 같다. 하지만 군대는 장교와 사병으로 확연히 구분된 그렇게 분명한 계급 사회이고, 가장 적나라한 계급 사회이고 목적 달성을 위해 존재하는 조직이다. 마르샬은 말한다: “우리는 꼭 이 전쟁을 종식시켜야 한다. 비록 개 같은 전쟁이지만. 끝내고 싶지 않더라 해도.”
이 전쟁영화에서 보여주는 적군과 아군이라는 국가간의 구분보다 인간의 가치가 계층 차이에 의해 정해 진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한 것 같다. 포로수용소 소장인 독일군 장군은 살기등등한 점령군 사령관의 모습이 아니고, 귀족출신으로써 포로들을 인간적으로 대우하는 인간적인 면을 간직한 모습으로 그려진다. 그의 귀족 같은 우아한 면모와 공손한 태도는 적막한 깊은 산속 요새에 피어나는 한 떨기 꽃을 두고서 보듀와 나누는 대화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그 꽃은 우정과 상호 이해성에 대한 희망과 가능성을 상징하는 것 같다. 포로수용소 소장은 보듀가 그의 가슴에서 죽어가자 소장으로써 임무에 자괴감을 느낀다. 그러면서 총격을 가한 자신을 용서해 달라고 빈다. “내 병사들이 어리지는 않지만 그들은 단지 군인이었을 뿐입니다.” 이에 보듀는 이렇게 답한다, “내라도 그렇게 똑같이 행동했을 것입니다. 임무는 임무이니까요.” 보듀는 포로수용소 소장과 같은 귀족 출신이다. 그 또한 적군의 용기를 인정하며 절대로 악의적인 폭력성을 나타내지 않는다. 이들의 우정 관계는 성장하면서 형성된 사회 계급에 대한 이해성을 바탕으로 해서 쌓아졌던 것이다. 이 영화에서 각 인물들의 묘사는 사회적 계급에 따라 형성되고 있으나 연대성이나 일체감 또는 상호 이해성이 이루어진다는 생각이 깔려있다. 포로들이 공연을 준비하고 있는 동안 막사로 처들어온 독일군 병사들을 보고서 보듀가 하는 말은, “한 편은 어린아이들이 병정놀이를 하고, 다른 한 편의 군인은 어린아이들처럼 놀고 있네.” 물론 그를 움직이는 최고의 원칙은 “전쟁에선 감정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는 생각이다. 이 영화가 보여주려 했던 의도는 인간성, 포용성, 관대성이라는 이성적 보편성이 국가와 전쟁을 초월해 낼 수 있느냐였던 것 같다. 하지만 이에 대한 답은 2차대전의 결과가 분명하게 말해줄 것 같다. "위대한 환상"은 인간적인 상호존중과 인격적 진실성을 보여주지만 또한 전쟁의 참극으로 인해 지불해야 하는 크나큰 대가가 무엇인지도 함께 보여주는 것 같다.
“노블레스 오블리주 Noblesse oblige”는 로마 시대 라틴어 어휘인가?
“노블레스 오블리주 Noblesse oblige” 단어는 라틴어가 아니고, “프랑스어 격언 French maxim”으로써 문자 그대로의 뜻은 영어로 “nobility obligates” 번역된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프랑스 말”이고 또 그 말이 맨 처음 등장한 때가 1835년이라고 한다. 그런데 노블레스 오블리주 개념의 근거로써 로마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고, 또 혹자는 영국의 이튼 칼리지 출신의 전사자 수 비교치를 제시하는 등 개념을 혼동하는 논자들이 적지 않게 발견된다.
혹자는 시오노 나나미(“로마인 이야기” 저자로 잘 알려진)가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전통적 기원으로 로마의 역사를 내세운다고 말한다. 하지만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로마시대 의 공식언어인 라틴어가 아니라 프랑스 말이고 그것도 1837년에야 처음으로 등장하였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로마시대 로마인들이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말을 쓴 것이 아니었다. 로마인들이 그와 상응한 어떤 실체적 개념을 가지고 있었다면 그것을 먼저 제시하고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개념과 비교 분석하는 것이 역사 분석에 있어서 요구되는 기초적인 방법론일 것 같다.
특히 나나미가 로마의 발전 동력의 원천으로 지목하면서 “노블레스 오블리주” 개념을 적용하는 것은 마치 영미국의 “기사도 정신 Chivalry motto”으로 표현될 수 있고 또 우리나라의 “화랑도 정신”으로 등가 대체될 수 있을 것이다.. “기사도 정신”과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리더쉽의 개념으로써 기사도 정신과 상호 대체 개념이라고 본다면, 영국과 프랑스의 귀족층의 차이점은 찾기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로마시대와 신라시대는 거의 동렬상에 놓이게 된다. 그렇다면 나나미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설명은 마치 조선시대 “선비정신”을 논하면서 “선비 정신”은 “화랑 정신”과 동일하다는 결론을 제시한 것에 비유될 것 같다. 시대도 엄연하게 다르고 또 문무로 구분되는 신분 계급 질서도 전혀 상이한 선비와 화랑이 동일한 개념으로 도출되고 만다면 그 얼마나 허무한 방법론인가?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는 원천은 자신의 맡은 바 의무를 다하는 것에서 나올 것이고, 이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느 사회에서나 존재한 인간 공동체 사회의 기초 원칙에 해당한다. 잠시 예를 들어서 살펴보자.
신라의 발전을 “화랑도 정신”에서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면, 신라 시대에 “화랑도” 이념 추구가 실제로 존재했다는 사실과 그 이념을 구성하는 요소 (예컨대 세속오계 등)를 발견하고, 신라 발전에 미친 결과에 대한 원인관계와 상관관계를 분석 입증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한편 한국을 설명하면서 “선비정신” 그리고 일본을 설명하면서 “사무라이 정신”을 제시하는 것은 어렵지 않는 개념이고, 조선의 발전이 “선비 정신”에서 찾을 수 있다거나, 일본의 발전을 “사무라이 정신”에 기인한다고 설명하는 논자가 쉽게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이 “한강의 기적”을 이룬 것에 대해 “선비정신”을 내세운다거나, 일본이 명치유신 단행 이후 세계 제2의 경제대국으로 발전한 원인을 “사무라이 정신”에서 기초한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설득력을 얻기에는 부족하다는 견해에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로마제국의 성공의 원인으로써 예컨대 로마 군대의 우수한 군사력을 제시하는 것과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개념을 적용하는 것은 그 차원이 다르다는 점이다. 로마의 공화정 시대와 제정의 성립 이후 등의 로마 역사를 통괄하여 보자. 이 때 막강한 군사력의 기초는 군대 규율이 존중된 사실에서 나올 텐데, 군인은 귀족층만으로 구성되지 않았다. 군인의 구성은 귀족층뿐만이 아니라 평민층이 다수를 점했다.
먼 과거의 역사인 로마 제국의 사례를 들 필요도 없이 세계 우일 초강대국을 건설한 오늘날의 미국 “팍스 아메리카나”를 사례를 들어보자. 미국은 유럽국가하고는 달리 왕정이 아니고 따라서 귀족 신분이 존재하지도 않는다. 이민 신생사회인 미국에서는 최소한 법적이든 경제적이든 사회적이든 타고난 귀족은 없었다. 그런데도 미국이 세계 최고의 유일 강대국을 건설해 냈다. 이것이 과연 타고난 신분 계층이 의무를 솔선수범해서일까? 타고난 귀족 신분 자체가 없었다는 미국의 역사와 사정을 잊지 않는다면, 반박근거를 찾기 힘들 것이다. 누구나 자기 능력과 업적에 따라서 차별 없는 대우를 받는다는 평등의 원칙에 의해서 미국의 발전이 가능했다고 보는 것이 보다 옳은 견해임은 분명하다. 미국의 발전 과정을 근거로 볼 때,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개념을 로마 제국의 성공 요인으로 제시한 시오노 나나미의 설명은 한계가 있다고 보여진다.
로마 제국은 “정복 국가”이었다는 점 (따라서 군사력의 중요성이 강조되었다), 또 로마 제국의 흥망성쇠와 그 원인결과책임론에 대한 역사분석 책을 잠시 찾아봐도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개념을 적용하는 경우는 나의 과문한 탓인지 여지껏 찾지 못했다. (로마 제국의 흥망성쇠론에 대한 설명 가운데 대표적으로 기본의 “로마제국 멸망사”, 몽테스티외의 “로마 성쇠 원인론”을 들 수 있겠다).
나나미의 설명이 로마 제국의 정치 법 군사 제도의 독특한 특성으로써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지적해 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명확한 언어나 정해진 개념으로 지적해 내기 어려운 모호한 로마 귀족층의 예의범절 Civility, Etiquette과 높은 도덕성의 추구의 개념을 가지고서 로마 제국의 성공 요인으로써 들고 있는 것 같다. 나나미가 로마 귀족층의 생활양식상의 특성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다고 수긍해도, 노블레스 오블리주 개념이 다른 연관된 개념들과 혼동되거나 명확하게 정의될 수 없는 영역이라면 기술 개념으로써 문제점이 나타나는 것 같다. 귀족층의 예의범절이 높다면 상대적으로 평민들은 낮다는 상대적인 개념인데 그 기초적인 차이점을 나나미는 제시하지 못한 것 같다. 아담 스미스가 밝힌 대로, 정의와 양심의 추구는 인간 본성의 하나에 속하는 것 같다. 따라서,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개념이 귀족층의 특성을 설명해내는 독립적인 요소로써 수긍하기 어렵다. (필자의 의견으로는 그만한 실체가 있는 개념으로 볼 수 없지만).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프랑스에서 나온 말이므로 나나미가 우선 밝혀야 할 것은 로마 귀족층과 프랑스의 귀족층과의 연관 관계와 그리고 프랑스 혁명이 발발하게 된 이유와 원인으로 규정되는 프랑스 귀족층의 부패와 타락상일 것이다. 프랑스 귀족층의 부패와 타락상-이것이 가장 특징적인 요소에 하나라고 보여진다면, 나나미가 적용한 노블레스 오블리주 개념은 수정되어야 할 것 같다. 다시 말해 귀족층이 의무를 솔선수범했다면 아마도 프랑스 혁명은 일어날 수 없었을 것인 바, 이런 반박 논거에 의해서 노블레스 오블리주 개념은 프랑스의 역사 발전을 설명하는데 모순되거나 부정될 가능성이 높다.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개념을 보다 정확하게 사용하려면, 프랑스 귀족층의 특권과 의무 실천과의 연관관계를 역사적으로 분명하게 설명해내야 함이 우선적으로 요구되는 것 같다.
왕정과 귀족층이 현재까지도 유지되는 영국과는 달리 프랑스는 왕정과 귀족층이 폐지된 사실을 고려한다면,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개념을 부르주아 “시민 정신”의 함양으로 이해하고자 노력한 로댕 이후 프랑스 정부의 국민 통합 노력이 보다 적절하고 타당한 것 같다. 다시 말해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지위와 신분이 높을수록 덕망 또한 높아진다는 일부 특권층을 통한 국민국가 건설이 아니라 전체 시민계급의 자발적 덕성 함양에 바탕을 둔 민주적 시민 정신에 의해 국민국가 건설을 시도하려는 이념으로 이해하는 것이 보다 타당할 것 같다.)
(이것은 신라의 역사 발전을 논하면서 “화랑도 정신”으로 특정하거나, 영국의 역사 발전을 “기사도 정신”, 조선의 경우 “선비 정신”, 일본의 경우 “사무라이 정신”에 있다고 특정하는-그와 같은 단순하고 애매모호한 개념으로 설명하려는 시도라고 볼 수 있다. 여기서 필자가 상세한 논거 제시는 생략하겠지만, 한 마디만 꺼낸다면, 화랑도 정신, 기사도 정신, 선비 정신, 사무라이 정신의 도덕적 가치를 부정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정신은 계급의 존재하고는 불가분한 관계에 있는 것으로써, 한 나라만의 유별난 독립 요소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여기서 “정신”이란 무엇인가? 이념이란 말과 동일하거나 대체되는 말이다. 그렇다면 조선에는 선비층(문무양반)의 존재했고 반면 일본에는 무사계급이 존재했기에 각각 선비정신, 무사정신으로 분류될 것이다. 따라서 그러한 계급이 폐지된 이후 선비정신, 무사정신은 실체가 없거나 다른 이념으로 대체되었을 것으로 간주하는 것이 보다 합리적인 생각인 것 같다. 선비 계급 무사 계급이 이미 폐지되었는데, 선비정신과 사무라이 정신을 강조하는 것은 현재 사회문제의 원인관계와 상관관계를 잘못 파악한 결과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선비정신 사무라이 정신이 나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고려를 이끌었던 불교가, 조선을 지배했던 유교가 현재 더 이상 통치이념이나 도구로 사용되지 못한 것을 볼 때 현 시대에서 불교정신이나 유교정신을 내세우는 것이 우스운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영화 이야기 > 영화 (프랑스·이태리·유럽)' 카테고리의 다른 글
Jean de Florette -하모니카 연주 (0) | 2015.08.04 |
---|---|
As Far As Florence Adrift in Fiery Layers of Memory (0) | 2015.08.01 |
해바라기밭, 뽕밭, 갈대밭, 수수밭 속에서 정사 (0) | 2015.08.01 |
붉은 수수밭과 노란 해바라기 필드 (0) | 2012.10.22 |
거대한 착각 (0) | 2012.10.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