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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문화+Culture Studies/빌 게이츠 & 대통령

빌 게이츠와 대통령: 프라이밍 효과 Priming effect

by 추홍희블로그 2015. 8. 19.

 빌 게이츠와 대통령

프라이밍 효과 Priming effect

 



추홍희 지음


빌 게이츠와 대통령: 프라이밍 효과 Priming effect

 

들어가기

 

이 책은 세계 최고 갑부 빌 게이츠가 자선을 행하는 의미를 문화적으로 탐구한 에세이이다.

 

 

빌 게이츠와 대통령: 프라이밍 효과 Priming effect

 

목차

 

1

빌 게이츠가 대통령을 만나 악수하는 모습을 언론이대서특필하는 이유

7

 

빌 게이츠가 호주머니에 손을 넣고 악수하는 모습에암시된 의미

 

 

미국식 문화인가?

 

 

신호 이론, 외연과 내포-associated connotations

 

 

빌 게이츠의 왼손과 비밀

 

2

언어의 역사성, 문화와 관습, 은유법과 관용어구

13

 

호주머니에 손을 넣고 putting my hand in my pocket”의 의미-(연상주의-근접성의 법칙)

 

 

putting my hand in my pocket”의 의미-(원인 결과의 법칙)

 

 

putting my hand in my pocket”의 의미-(상징적 의미)

 

3

시뮬라크르, 시뮬라시옹

22

 

빌 게이츠의 자선 단체 트러스트 구조

 

 

변화 발전의 조건-다양성의 차이와 자기 동일성의 유지

 

 

빌 게이츠의 의사 소통-외연과 내포

 

4.

바르트의 기호학과 의미 작용

28

 

기표, 기의, 의미 작용

 

 

디노테이션과 코노테이션

 

 

사진의 의미작용

 

 

빌 게이츠 사진의 의미 작용

 

 

바르트의 의미 작용과 빌 게이츠 악수 사진의 의미 작용

 

 

빌 게이츠가 호주머니에 손을 넣는 모습과 암시

 

5.

프라이밍 효과 Priming effect

37

 

프라이밍 효과

 

 

사고의 연상 이론-association of ideas

 

 

결사의 자유가 중요한 까닭

 

 

동업에 대한 인식 차이

 

 

생각의 연결 고리 이론

 

6.

황금률 Golden Rule이란 무엇을 말하는가?

47

 

황금률의 의미

 

 

상호주의와 일관성 원칙

 

 

정언 명령

 

 

가언 명령

 

 

정의의 원칙과 우선적 적용 순서

 

 

칸트의 정언 명령의 장점

 

 

양심과 판단의 개념

 

 

왜 황금률이라고 말하는가? 총체적, 2차적, 대안, 일관성

 

7

휴머니즘 종교”-“인간의 인간에 대한 사랑

59

 

조지 엘리어트의휴머니즘 종교

 

 

포이에르바하의기독교의 본질

 

 

휴머니즘의 신조

 

8.

왜 미국의 최고 갑부들은 재산을 기부하는 걸까?

64

 

셰익스피어 자선의 개념에 대하여

 

 

영미국인의 기부와 자선의 전통

 

9

자선 charity은 무엇을 말하는가?- “믿음 소망 사랑의 새로운 번역-KJB

71

 

 

 

10.

차이와 변화-진화의 조건

84

 

로마 시대 마리우스 개혁과 의도하지 않는 결과의 법칙

 

 

가이 팍스 데이의 유래

 

 

의미의 이중성과 경계선

 

11.

아담 스미드의 모두가 잘사는 경제학

91

 

자본주의 사회를 지탱하는 3가지 기본 원칙

 

 

인터넷 세대는 단순 소비자가 아니라 <Prosumers>

 

12.

개인은 사회적 문화적 소산

93

13.

나눔 경제우애 복지 국가

96

 

우애 복지 국가 affiliative welfare

 

14.

소크라테스와 인터넷 시대

109

15.

페이스북이 하바드대학에서 탄생한 이유

115

16.

인터넷 항해 시대

119

17.

스티브 잡스의 아이패드2 론칭

125

 


 

 

1. 빌 게이츠가 대통령을 만나 악수하는 모습을 언론에서 대서특필하는 이유

 

빌 게이츠가 호주머니에 손을 넣고 악수하는 것에서 암시된 의미

 

악수 handshake’는 인종과 언어를 달리해도 서로 통하는 세계 만국의 공통어라고 말한다.[1]  그런데 악수에도 결례가 있는 것일까?  한국의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세계 최고의 재산가인 빌 게이츠를 면담했고, 그 다음날 일간신문 1면 머리 기사로 빌 게이츠가 대통령과 악수를 하면서 왼손을 바지 주머니에 넣은 채로 한 손으로 악수를 나눈 사진이 실렸다.  사진과 같이 빌 게이츠가 양복 상의 단추를 풀고 왼손을 바지 호주머니에 넣은 채 한 손으로 대통령과 악수를 나눈 모습을 두고서 많은 사람들이 왈가왈부하고 악수 논란 the handshake furore이 일어났.[2]  인터넷 뉴스 기사에 달린 댓글이 1600개 이상을 넘었음을 볼 때 국민적 관심도가 무척 높았다는 것은 사실이다.[3]  빌 게이츠는 2008년 청와대를 방문하였을 때도 왼손을 바지 호주머니에 넣고 악수를 하며 똑같은 모습을 보였는데 그 때도 같은 논란이 일어났다.[4]

 

빌 게이츠가 악수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청와대 사진을 살펴보자.






AFP

AP

abcnews







연합뉴스

한겨레

조선일보







경향신문

한국경제

해외문화홍보원

 

이러한 빌 게이츠의 악수하는 모습에 대해서 그가 한국의 대통령을 하대하고 결례를 범했다 disrespecting the South Korean president by his 'rude' handshake”는 지적과[5] 반대로 미국 특유의 인사법 as an American style of greeting으로 문화적 차이 cultural difference”라는 엇갈린 반응이 일어난 것이다.[6]  왜 두 사람이 만나서 반갑게 악수한 사진을 두고서 해석을 달리하고 논란이 일어나는가?  표현과 의미가 서로 차이가 나서인가?  그같이 악수하는 모습이 미국인의 시각에서는 어떤 의미를 주는 것일까?[7][8] 

 

몇몇 언론사는 빌 게이츠가 왼손을 호주머니에 넣은 부분은 부각되지 않게끔 하체부분을 나오지 않게 하거나 각도를 달리한 사진을 게재한 사실을 눈 여겨 볼 필요가 있다.[9]  빌 게이츠는 호주머니에 왼손을 넣고 악수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것이 한국에서 논란이 되니까 빌 게이츠의 왼손을 보이지 않게 처리해 버린 것이다.  하지만 이는 빌 게이츠의 본질적 경향이 사라지게 하는 예기치 못한 결과를 가져온 것은 아닌지? 

 

이런 논란은 언어와 문화가 각각 다른 사람들이 서로 만났을 때 말을 전달하려는 사람이 가진 의도와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수용하고 이해하는데 서로 일치하지 않아서 생긴 문제가 아닐까?  영어의 관용어구 idioms를 잘못 이해하게 되면 엉뚱한 해석을 낳는다든가 혹은 꿈보다 해몽이 좋다거나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하는 오류를 범하기 쉽다.  만약 영어의 관용적 표현을 제대로 이해했다면 이 같은 해프닝이 일어나기 보다는 오히려 좀더 본질적인 문제가 논란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미국식 문화인가?

 

우선 분명히 말해서, 왼손을 바지 호주머니에 집어넣고 한 손으로 악수하는 것은 미국식 문화가 아니다.  미국 사람들 다수가 그렇게 악수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세계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악수를 나누는 것도 아니고, 장 정중한 태도는 두 손으로 악수하는 것이라고 한다.[10]  미국의 유명한 정보교양지 더 아틀란틱의 뉴스 기사에서 미국은 만나 인사를 나눌 때 호주머니에 손을 넣고 악수를 하는 나라가 아니다라고 단언하고 있다: America is not a nation of hands-in-pants greeters.[11]  비록 빌 게이츠가, 특히 도움을 받는 사람들을 만날 경우 (예컨대 영미국에게 도움을 받는 프랑스의 대통령, 미국의 원조를 받고 있는 유엔의 사무총장, 모금운동가인 보노 등을 만날 때), “호주머니에 손을 넣은 모습을 자주 보이는 경향이 큰 것은 사실이나, 다른 나라의 정상들을 만날 때 그렇게 악수하는 모습을 습관적으로 보이는 것은 아니다.[12]

 

한편 빌 게이츠의 악수법을 결례라고 여기는 사람들에게 반박하자면, 와이어 기사를 인용하여 말하고 싶다.[13]  빌 게이츠에게 손을 벌릴 입장이 아니라 대신 그에게 어떤 서류라도 전달한다면 그가 손을 호주머니에 넣을 수 있겠는가?[14]

 

사람들이 생존을 위해서는 누구에겐가 손을 벌리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을 생각해 보자.  그러면 자선가에게는 어떤 형태로는 결코 비난할 수 없을 것이라는 결론이 도출된다.  빌 게이츠는 세계 최고 갑부이자 최고 자선가로 잘 알려져 있는 월 스트리트의 아이콘이다.  경제학의 낙수 이론 trickle-down economics’에 대한 논의는 차치하고서라도, 빌 게이츠의 일거수일투족은 언론과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외부에 손을 벌리지 않으면 안될 사람들이 그의 손에서 돈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형편에 처해 있다.  이런 자본주의 본질적인 상황에서 빌 게이츠의 호주머니에 손 넣고 악수하는 모습은 언론의 관심거리가 되지 않을 수 없다.

 

아담 스미스는 사회는 보이지 않는 손 invisible hand에 의해서 움직인다고 주장했는데, 보이지 않는 손에는 이기심뿐만이 아니라 이타심양심또한 포함된다.  어떤 의미로든 보이지 않는 손이 작동하는 인간 사회에서는 겉모양과 속내가 일치하지 않을 수 있고, 이에 따라서 속뜻을 탐구하는 작업이 요구된다.[15]  

 

신호 이론, 외연과 내포-암시적 의미 associated connotations

 

대통령의 집무실이나 공적인 장소에서 대통령과 함께 사진을 찍는다는 사실은 대통령의 의전사항이고 또 그것은 전세계의 언론을 통해서 전달된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이런 사실에서 언론 장치를 이용하여 전달되는 메시지에는 어떤 의미가 암시되어 있다고 짐작할 수 있다.  언론은 빌 게이츠가 왼손을 바지 호주머니에 넣는 모습을 부각시키는데, 언론의 사진은 몸짓이나 손짓으로 의사 소통을 하는 신호 언어, 수화 sign language의 일종일 테고 몸짓 제스처를 이용해 의사 전달을 하는 바디 랭귀지 body language의 일종이다.  더욱이 사진 한 장이 천 마디 말보다 낫다."는 속담을 기억하자.

 

대개 사람들의 대화는 알아 듣게끔 넌지시 말하거나 비유적으로 말하는 경우가 흔하다.  교양이 있고 상식이 높은 양반”-문화인-이 왜 굳이 상대방이 결례라고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다는 논란에도 불구하고 그 같은 방식의 악수를 하려는 것은 다른 어떤 의도가 있어서일까?  만약 의도된 표현이라면 어떤 의미가 암시되어 있을까?  그게 궁금하다.  이에 대한 답은 영어의 관용어구의 뜻에서 찾아질 수 있다.  “Put one's hand in one's pocket“의 뜻을 이해한다면, 그가 왼손을 바지 주머니에 넣고 악수를 나누는 모습에서 말하고자 하는 암시적 의미가 무엇인지 쉽게 눈치채리라. 

 

2. 언어의 역사성, 문화와 관습, 관용어구의 발달

 

빌 게이츠의 왼손과 비밀

 

원활한 의사 소통을 하려면 말의 의미가 제대로 전달되어야 하고 또제대로 의미를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고 가르치는가?[16]

 

어떤 사람이 어떤 불우한 이웃에게 돈 한 푼 주려고 하면 자선을 받는 입장의 사람은 그 돈을 쉽게 받지 않으려고 손을 뿌리치려는 경향이 있다.  누가 공짜로 주는 것을 쉽게 받지 않으려는 경향을 비단 우리나라 사람들만의 정서는 아닌 것 같다.  모스 Mauss증여론”(1925)에서 원시 부족 사회에서 선물을 받았을 경우 의무적으로 답례를 하게 만든 규칙이 존재하는데 선물을 주고받는 행위는 겉으로 자유롭게 보이지만 실제로 그 관계는 강제적이고 의무적인 관계라고 논증했다. 

 

왜 사람들은 그냥 주는 것을 쉽게 받지 못하고 사양할까?  일본어 표현에 누군가로부터 작은 선물이라도 받게 되면 그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하는 정중한 화법으로써기노도쿠데쓰 氣の毒です라는 말을 쓰는 경우가 있다.[17]  이 말은 독이 있는 감정이 느껴진다고 직역되는데, 상대방은 기쁜 마음에 흔쾌히 줄지 모르겠지만 그것을 받는 입장에서는 독으로 느껴진다는 것 즉 마음의 짐’, 갚아야 할 어떤 부담감을 느낀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와 같은 인간본성을 고려하여서일까 성경은 불쌍한 사람을 도울 때는 그 사람의 면전이나 혹은 남이 보는 길거리에서 행하지 말라고 가르치고 있다.[18]

 

영어 표현으로는 좀 더 직설적으로 이 세상에 공짜는 없다고 선언한다.  유명한 노벨상 수상 경제학자 프리드만의 이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 there is no such thing as a free lunch.”는 말은 인간 세상의 본질을 설파한 것이다.  우주 만물의 음양의 이치처럼 인생은 주고 받는 것 give-and-take라고 말하지 않던가?  이러한 상호성의 원칙에 따라서 구제를 받는 사람은 부담감을 느끼게 마련인 것이다.

 

소크라테스에 따르면 사람들은 죽음의 순간에서 자신이 갚아야 할 빚 debt이 남아 있는지가 관심사라고 한다.  이런 태도는 인생을 정리하는 단계에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것은 당연할 텐데 흙에서 와서 흙으로 돌아가는 공수래공수거의 인생관하고는 약간 차이가 느껴진다.  사람은 어디에선가 누구로부터 이 땅에 태어난 존재임을 인식할 때 부채의식을 갖는다는 것은 당연한 것 같다.  소크라테스도 임종의 순간 마지막으로 남긴 유언은 의사에게 닭 한 마리를 갚아야 할 빚이 있는데 그것을 대신 갚아 달라는 말이었다.  소크라테스의 마지막 유언을 인용하면, “이보게 내 친구 크리토, 내가 아스클레피우스에게 닭 한 마리를 빚지고 있는데, 잊지 말고 꼭 갚아 주게나.[19]

 

이와 같은 근거로 보면, 상대방의 호의에 대해서 부담감을 느끼는 것은 인간본성이고 따라서 돈을 주고자 하는 손을 뿌리치는 이유는 무례나 결례나 굴욕감을 느껴서가 아니라 자신이 다시 갚아야 할 부담감을 느껴서 나오는 행동 같다.

 

사람들이 일부러 사고를 내려고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테고 그와 마찬가지로 불우한 사람들이 자신이 의도적으로 원해서 불우한 이웃이 된 사람은 한 명도 없을 것이다.  부자도 행운이 따라서 부자가 된 경우가 많고 마찬가지로 불행한 사람도 불운이 따라서 그렇게 된 나름대로의 사정이 있는 것이 아닌가?  행운과 불운은 개인의 의지와 능력과는 상관없이 우연하게 random 움직이는 우주 질서 법칙의 하나이다.  이러한 우연과 운명의 법칙은 투키디데스부터 아담 스미스 그리고 현대의 하이젠베르그의 불확정성의 물리학 원리까지 과학적으로 증명되고 남는다.  그리고 행운과 불운이 순전한 자기 책임의 결과라면 보험의 존재 기반 자체가 무너지게 될지 모른다.  로또가 무작위 추첨으로 당첨되듯이 누구든지 언제 어디서 사고가 날지 모르기 때문에 즉 랜덤하게 움직인다는 가정이 성립하기 때문에 보험 시장이 존재하는 것이다.

 

은유법과 관용어구-metaphor, idiom

 

은유법은 직유법과 달리 직접적인 비교 대상이 없이 표현되는데[20] 은유하는 말의 난이도와 그 의미가 내포하는 정도에 따라서 수신자가 말하는 사람의 의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임의적으로 해석하는 경우가 나타날 수 있다.[21]  또 시대가 변함에 따라 은유의 대상이 달라지기도 하고 따라서 그 의미 또한 달라진다.[22]  그리하여 은유에는 읽는 사람들 모두가 똑 같은 해석을 하리라고는 기대할 수 없는 경우도 생기게 된다. (“악마의 공장 Satanic Mills” 은유법에 대한 설명은 III 6장을 참조하라.) 

 

관용어구 idiomatic expression’란 개별적인 낱말이 갖는 뜻으로는 이해할 수 없고 새로운 의미를 갖는 어구로써 굳어진 두 낱말 이상이 결합한 언어의 단위를 이른다.  예컨대 “It was raining cats and dogs.”의 뜻은 비가 억수로 퍼부었다는 의미이지 고양이와 개라는 의미는 들어 있지 않다.  만약 고양이와 개를 축자번역하면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23]  관용어구는 은유하고는 달리 다른 은유 대상의 지시어 없이도 관용어구 자체가 하나의 의미를 갖고 있어 직접적인 의미를 전달할 수 있다.

 

호주머니에 손을 넣고 putting my hand in my pocket” 의미-1-(연상주의-근접성의 법칙)

 

바틀비 스토리에서 호주머니에 손을 넣고 putting my hand in my pocket라는 표현이 들어 있는 문장이 두 번 나타난다.  나는 내 돈을 꺼내려고 본능적으로 호주머니에 손을 넣으려다가 오늘이 선거일이라는 것이 기억났다.  I was instinctively putting my hand in my pocket to produce my own, when I remembered that this was an election day.”  여기에서 화자인 변호사가 호주머니에 손을 넣으려는이유는 내 돈을 꺼내기 위해서 to produce my own”.  “I put my hand in my pocket for the wallet.”-이 문장 표현과 같이 사람들이 호주머니에 손을 넣는 이유는 대개 지갑을 꺼내기 위해서이고 지갑을 꺼내는 경우는 돈을 쓰기 위해서이다.  앞서 예시한 문장의 후반부에 선거 election”라는 말이 이어지고 기억났다 remembered”고 말한다.  이 문장에서 선거 때는 후보자가 선거모금 활동을 벌이고 유권자는 돈을 기부하는 선거와 정치 세계의 모습이 쉽게 연상된다.  바틀비 스토리에서 지역 정치가 ward-politician”, “정권 교체 change in the administration”, “연장자 elderly man (연장자 이 단어는 시군의 행정에 선출된 지역 유지 alderman 또는 교회 장로 elder가 연상된다) 등의 표현이 나온다.  선거 때는 선거 자금이 필요하다는 것은 오늘날의 정치자금법의 존재를 봐도 예나 지금이나 변함 없는 사실이다.  이같이 선거와 돈의 관계는 서로 쉽게 떠올려지는 본능적으로 instinctively연결되는 연상 개념에 가깝다. (생각의 연결 고리 이론 연상주의에 대해 자세한 설명은 III 2장을 참조하라).

 

호주머니에 손을 넣고 putting my hand in my pocket” 의미-2-(원인 또는 결과의 법칙)

 

두 번 째 나타나는 문장을 보자.  I re-entered, with my hand in my pocket.”-이 문장에서 with my hand in my pocket”이란 구절은 영어의 관용어구로써 그 의미를 파악해야 문장의 의미가 제대로 전달된다.  “Put one's hand in one's pocket“는 무슨 의미인가?  옥스포드 영어 사전을 찾아보면 “spend or provide one’s own money”라고 설명하고 있다. (“The Oxford American College Dictionary”, OUP, 2006, at 1049.)  사전에서 어구의 쓰임새로 들고 있는 문장의 예를 보자.  “I would urge you to put your hand in your pocket and give some money to this family.”  이와 같이 자선을 행하다라는 의미로 쓰이고 있음을 있다.  따라서 “with my hand in my pocket”는 영어 사전의 설명대로, “자기 돈을 쓰다 spend or provide one’s own money”라는 관용어구의 의미로 해석해야 함이 옳다.  “I re-entered, with my hand in my pocket.”-이 문장의 바른 번역은, “(나는 돈 몇 푼이라도 쥐어주고 싶은 생각으로) 바지주머니에 한 손을 넣은 채 다시 안으로 들어갔다.” 

 

이렇게 자기 돈을 쓰다라는 관용어구의 뜻으로 해석하는 것이 옳다는 점은 이 문장의 후반부의 의미를 살펴보면 더욱 분명해진다.  이 문장의 후반부 구절 my heart in my mouth”은 무슨 의미인가?  만약 이 표현을 내 입에 가슴을 넣고라는 식으로 축자 해석 directly translated word-for-word’을 시도하면 그게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물리적으로도 가슴이 입에 올라올 수 없고 또 가슴과 입이 다른 어떤 관계가 있는 것도 아니다.  소리가 목구멍을 기어 올라왔지만 참았다는 시중의 표현이 있는데, my heart in my mouth”의 의미는 목이 잠기다”, “목이 매이다는 뜻을 가진 영어 관용어구로 해석하면 의미가 매끄럽게 연결된다.  가슴은 감정을 뜻하므로 가슴이 목까지 차 오르다는 감정이 목구멍까지 차오를 정도로 감정이 솟구친 상황을 말한다.  옥스포드 영어 사전을 찾아보면, “have one's heart in one's mouth”의 뜻은 “be greatly alarmed or apprehensive”으로 설명하고 있으므로 (supra at 618) “my heart in my mouth의 어구는 영어 사전의 설명대로, “to be extremely frightened or anxious; to feel strongly emotional about someone or something”, 가슴이 목까지 차 오르다”, “감정이 왈칵 북받쳐 올라왔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사람들이 전혀 예상치 못한 충격적인 소식을 접할 때, “가슴이 덜컹 내려 앉았다의 표현은 영어로 “panic in my mind”라고 쓰는데, 이와 마찬가지로 my heart in my mouth” 예컨대 만에 만난 친구를 만나 동안의 안부를 물을 느끼는 감정 감정이 울컥 솟아났다는 뜻을 나타내는 감정이입의 표현인 것이다.  그러므로, “with my hand in my pocket” 구절은 뒤따르는 관용어구 “my heart in my mouth”의 뜻과 함께 어울려 말하는 사람의 감정이 솟구치는 상황을 더욱 강하게 전달하는 효과를 나타낸다.  “I re-entered, with my hand in my pocket—and—and my heart in my mouth.”-이 문장의 번역은, “나는 돈 몇 푼이라도 쥐어주고 싶은 생각으로 바지주머니에 한 손을 넣은 채 다시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그런데-막상 들어가니까 감정이 왈칵 북받쳐 올라왔다.”

 

호주머니에 손을 넣고 putting my hand in my pocket” 의미-3- 빌 게이츠의 호주머니와 상징적 의미

 

“out of pocket”이란 말은 돈을 잃고 빈털터리라는 뜻이다.  사람들이 흔히 자기에게 돈이 없다는 의미로 호주머니를 털털 터는 모습이 “out of pocket”이다.  반대로 in pocket”의 뜻은 호주머니가 두툼하다는 의미로써 자신의 영향력 안에 놓여 있다는 의미이다.  호주머니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그 사람의 가진 부, 재정상태를 나타내는 의미를 가졌다.  호주머니가 두툼한 부자들은 굳이 나서서 자신에게 돈이 많다고 천명할 필요가 없고 단지 그것을 보여주면 된다.  물건이 상징적 가치를 가졌고 또 보드리야르의 개념으로 말하면, ‘사용 가치 use-value’기호 가치 sign value’로 전환되었기 때문이다.[24] 

 

빌 게이츠의 호주머니는 더 이상 실재의 호주머니를 지칭하는 말이 아니다.  곤궁한 사람들이건, 가진 자들이건, 국가 정책담당자들이건 모두 어미가 물어오는 먹이를 쳐다보며 입을 벌리는 어린 새처럼, 부자들의 호주머니를 쳐다보고 있다.  빈곤의 문제는 풍요의 문제와 같이 인간의 사회 경제적 시스템 문제이므로 완전히 제거하기 어렵다.  월 스트리트를 점령하라!”의 시위가 일어난 것은 가난이 체제에 위협을 주는 것과 마찬가지로 풍요도 체제에 위협을 준다는 것이 그 배경이 아니던가? 

 

빌 게이츠는 세계 최고 갑부이자 세계 최고의 자선가이다.[25]  with my hand in my pocket 호주머니에 손을 넣고 영어 표현은 spend or provide one’s own money 자기 돈을 쓰다는 관용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으므로, 그가 한 손을 호주머니에 집어넣고 있는 사진에 담긴 메시지는 신규 사업 투자, 경제적 원조, 금전적 지원, 자선 사업이든 자기 돈을 쓴다 spend or provide his own money” 의미가 암시되어 있음을 눈치챌 수 있다.  따라서 빌 게이츠의 악수하는 모습에 대해서 결례이니 미국식 문화이니 하는 논란은 아무런 쓸모가 없는 소모전에 불과할 것이다.[26] 


 3. 시뮬라크르, 시뮬라시옹

 

시뮬라크르는 시늉, 흉내, 모방, 재현을 뜻하는 프랑스어로 사전적 정의에 의하면 이미지나 유사한 것, 모호한 재현이나 닮은 것, 단순한 속임수나 가짜를 말한다.  신문, 방송, 영화, 인터넷을 통해 보이는 세계는 가상으로 존재하는 시뮬라크르의 세계다.  현실이 아닌 가상의 세계이지만 인간 사회의 삶에 매우 깊숙이 침투해 있어서 현실보다 더 현실적으로 느껴진다.  보드리야르는 이미지, 기호, 코드가 실재 대상을 삼켜버린다고 말했다.  이미지가 그 자체로서 현실을 대체하고 현실은 이 이미지에서 의해서 지배받게 되므로 오히려 현실보다 더 현실적인 것이다.  기호와 이미지를 통해 광고, 뉴스, 영상, 상품 이런 것들을 생산해 내는 네트워크 또는 가상현실의 모습을 말해 주는 시뮬라시옹의 세계이다.  시뮬라시옹의 시대가 열리고 모든 지시대상은 소멸되어 버린다.  곧이어 사라진 지시대상들이 기호 체계 속에서 인위적으로 부활됨에 의해서 시뮬리시옹은 더욱 강화된다.”  보드리야르의 시뮬라크르의 4단계 즉 재현, 변형, 은폐, 대체의 단계 가운데 대체 단계에서 일어나는 시뮬라시옹은 더 이상 이미지나 기호가 지시하는 대상 또는 어떤 실체의 시뮬라시옹이 아니다.”  지시하는 대상 또는 실체로부터 독립한 채, 그 자체가 스스로 자립적인 생명력을 갖게 된다.[27] 

 

빌 게이츠의 자선 단체 트러스트 구조

 

빌 게이츠의 자선 단체 트러스트의 경우를 보자.[28]  자선 단체 트러스트가 설립될 때는 빌 게이츠가 구체적 지시 대상이 되지만 설립되고 나면 빌 게이츠로부터 독립되어 트러스트 그 자체가 스스로 자립적인 생명력을 갖게 된다.  빌 게이츠가 죽고 나서 그의 흔적이 사라져 버리더라도 오히려 빌 게이츠를 완벽하게 닮은 (시뮬라크르) 단체가 빌 게이츠가 꿈꾼 그대로를 재현(원본 실재), 변형(실재 흔적 찾기 어려움), 은폐(실재를 은폐), 대체(실재의 부재)해 나가는 것이다.  트러스트 재산은 빌 게이츠의 원본 재산을 모태로 출발하고 목적에 맞는 여러 활동을 벌이는데 이는 게이츠의 개입없이 일어나는 변형 또는 은폐에 해당하고 그가 죽고 나면 트러스트가 그를 대체한다.  현실의 개인 인물로서 빌 게이츠가 시뮬라크르의 공간에서 여러 얼굴을 가지며 활동을 하게 된다.  트러스트는 빌 게이츠 원본을 재현하고 변형시키고 은폐시킨 시뮬라크르다.  그리고 그를 뛰어 넘어 스스로 원본으로 대체된 시뮬라크르다.  이들은 빌 게이츠 실재보다 더욱 실재적이다.  빌 게이츠가 창업한 마이크로소프트 회사 또한 트러스트 구조에 의해서 움직인다.  월 스트리트에서는 모든 행동들이 원본, 모방, 재현, 변형, 은폐, 대체로 나타난다.  광산 철도 주택 등 기초자산에서 생겨난 증권 시장의 구조 그리고 이들을 기초로 하여 생겨난 파생상품 시장이 증권 시장보다 거래 규모가 더 커진 월 스트리트 금융 시장을 보라.[29]  원래 모델을 뛰어넘는 역동성의 구조가 월 스트리트를 받치고 있다.  금융 파생 상품이 그러하듯이, 월 스트리트는 시뮬라크르의 세계인 것이다.  빌 게이츠는 창조적이고 실재적인 비즈니스와 부의 화신이고 월 스트리트의 아이콘, 신화, 상징, 환타지가 된다. 

 

보드리야르는 실재가 아니면서 더 실재 같은 하이퍼-리얼리티이 지배하는 세계의 한 예로써 디즈니랜드 Disneyland’를 들었는데, 실제의 미국은 디즈니랜드처럼 유치하다는 사실을 감추기 위해 디즈니랜드가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미국이 시뮬라크르임을 감추기 위해서 또 다른 시뮬라크르인 디지니랜드로써 가림막을 친다는 것이다.  월트 디즈니는 원본의 쥐를 미키마우스라는 시뮬라크르를 변형 생산해 냈고 이러한 변형된 이미지를 통해서 실재로 쥐를 바라보게 만들었는데 따라서 이제는 쥐의 본 모습이 어떤 것인지 구별 불가능하게 은폐 대체되어 버렸다.  월 스트리트 또한 그것의 원본들인 카네기, 게이츠를 변형하고, 만들어내고, 이런 변형된 이미지를 통해 월 스트리트를 바라보게 하는데 이제 월 스트리트의 본 모습이 어떤 것인지 게이츠의 본 모습이 어떤 것인지 구별 불가능할 정도로 은폐되고 대체되어 버린 것이다. 

 

변화 발전의 조건-다양성의 차이와 자기 동일성의 유지

 

주식, 채권, 주택담보대출증권, 파생 상품이 만들어지고 거래되는 월 스트리트 시장 구조를 보자.  진화론이 설명하는 바와 같이, 발생한 차이를 사라지지 않도록 보존하여 다음 세대에 그대로 전달해 줄 수 있는 어떤 실체가 존재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 상품들을 설계하고 구조적으로 이끄는 보이지 않는 손의 정체는 누구인가?  종교기관, 교육기관, 회사 법인, 국가기관 등의 트러스트 구조에서 끊임없는 세대교체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자기 동일성을 유지해 나갈 수 있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사회 또한 유전자처럼 자신을 불변적으로 복제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기 때문인데 그 역할을 변호사들이 담당하고 있다. 

 

진화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변화를 발생시키는 원인이 존재하는 변이 조건과 변화 발생한 이후에 다음 세대로 전달되는 유전 조건이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진화의 조건은 변화가 일어나야 할 뿐만 아니라 또 여기에서 그것이 후세에게 유전되지 못하면 변화의 원동력은 사라지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진화가 일어난다는 사실 그 자체는 바로 다음 세대로 전달할 수 있는 불변적인 자기 복제의 능력이 생명체에게 있음을 말해준다.  이 변하지 않는 자기복제의 능력과 또 변형이 일어난다는 사실은 진화론과는 모순되는 것처럼 일견 보일 수 있지만 1차적인 성격과 2차적인 성격을 이해하면 이러한 모순이 해결된다.  생명체의 1차적인 본질은 불변적인 자기복제의 능력을 갖고 있고, 진화를 가져오는 변화란 생명체의 내적 본성에 의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자기복제능력을 가진 생명체의 내적 본성을 방해하고자 하는 원인이 외부로부터 침입하여 교란시켜서 발생한다고 진화론은 가정한다.  영미법이 프랑스나 독일의 대륙법보다 우월하다는 것 그리고 영미국이 세계를 제패하게 된 원인은 바로 사회의 유전자가 다르다는 것에서 나온다.  영미국의 핵심 유전자는 영미법인데 사회 생명체의 자기동일성을 계속 지켜가려는 사회의 자기 복제 능력-1차적 원칙을 변호사들이 담당하고 있다.  여기의 변이조건과 유전조건이란 말을 다원성통일성으로 (들뢰즈의 개념으로 대체한다면 차이반복에 가깝다) 대체하면 보다 쉽게 수긍할 수 있을 테고, 그러면 통일성을 유지해 나가는 유전자의 핵심 기능을 변호사들이 담당하고 있다는 것과 영미국 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그들의 힘이 느껴질 것이다.[30]

 

빌 게이츠의 의사 소통-외연과 내포

 

빌 게이츠가 왼손을 호주머니에 넣고 악수하는 모습의 사진에 담긴 암시된 의미가 담겨 있다면 그것은 그가 월 스트리트 최고 재산가로서 돈을 투자할 여력이 있고 또 세계 경제를 쥐락펴락할 정도로 막강한 영향력을 갖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최고의 자선가로서 빈곤을 퇴치하고 인류 발전에 공헌하고 있다는 사실 그러한 자선 사업을 통해서 많은 돈을 유용하고 현명하게 쓰고 있다는 사실을 재확인시켜 주는 것이 아닐까?[31]  빌 게이츠는 사물을 대체한 기호와 이미지와 코드로 정보를 유발하고 전달하고 있다.  맥루한의 미디어는 메시지이라는 공식을 상기하라. 

 

한편 발신자와 수신자가 분리되어 있는 곳에 상호적 의사소통은 불가능하다.  쌍방형 의사소통이 가능하다는 인터넷 스마트폰에서도 대중매체에 의한 의사소통은 일방성을 면치 못하고 있다.  언론사들의 인터넷 소통은 댓글까지 포함하여 모두 통제 관리되고 있고 또 매체 자체가 일방적인 의사소통 구조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SNS 스마트폰 또한 그러한 한계를 극복해 내지 못하고 있기는 마찬가지이다.  보드리야르가 말한 대로, 대중매체 형식은 의사소통이 아니라 비의사소통의 형식에 머물고 있다.  언론이 상호성의 의사소통 구조가 아니라는 사실은 빌 게이츠가 인터뷰로 통해서 논란을 잠재우지 않고 있지 않는 사실에서도 알 수 있다.  전 세계의 수많은 언론이 기사를 취급하고 있고 과잉 정보를 산출 배설하고 있지만 상호적인 의사소통은 이루어지거나 유지되기 어렵다. 

 

현재 인터넷 SNS으로 개방된 의사소통을 하고 상호성에 따라 서로 교환하는 대화를 실현할 수 있다고 여길 지 모르지만 사람들은 실재 서로 접촉하지 않고 서로에게 말하지 않고 다만 기계에다 대화하면서 의사 소통하는 것으로 여기고 있는 기계적인 가상에 불과하다.  언론으로 전달되는 빌 게이츠의 메시지는 수신자하고 교환의 양가성이 배제되어 있는 의사소통 구조에 놓여 있다.  기계는 거대한 대체 체계이다.  의사소통은 네트워크로 구성되어 있고 네트워크 속에는 어떤 주체를 확인할 수도 없다.  혼네와 다테마에, 보이지 않는 속내와 겉으로 보이는 겉보기가 있다.[32]  달마대사가 손가락을 들어 달을 가르킬 때 손가락을 보는가? 달을 보는가?[33] 

 

우리는 빌 게이츠에게 “당신이 노리는 의도가 뭐요?”-이렇게 당돌한 질문을 할 수가 없다.  이미지, 기호, 코드가 실재 대상을 삼켜버린 시뮬라시옹의 세계에 있고 교환의 양가성이 배제되어 있는 의사소통 구조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남의 속을 떠보려고 한 마디 넌지시 던질 수 있는 대화의 기회를 갖고 있는 사람은 극히 제한적이다.  더욱이 교양인[34]이라면 그런 당돌한 질문은 애초부터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그 순간 문화인을 포기하는 것이고 그건 형사범에게 질문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안광이 지배를 철할 정도로 지식을 갈고 닦으면 속 마음을 꿰뚫어 볼 수 있지 않던가?  그리고 들뢰즈의 말로 답한다면, “어떤 제스처, 어떤 억양, 어떤 인사의 몸짓이 해석되어야 한다는 것을 먼저 깨닫지 못했다면 누가 진리를 찾으려 하겠는가?”


 

4. 바르트의 의미 작용’, 기표 signifier, 기의 signified

 

전달 메시지는 상대방에게 전달되어야 의미가 생긴다.  케뮤니케이션은 최소한 송신자와 수신자의 두 사람의 상대방을 필요로 하는 것이고 상대방에게 도달해야 메시지는 의미가 있는 것이며 상대방에게 의미가 제대로 전달되어야 최소한의 행동이 유발된다.  바르트에 따르면 의미작용은 기호를 만들 때와 그 기호가 무슨 의미가 있는지 그것을 해석할 때 나타나는 작업이다. 

 

봉수대에 불을 피워 하연 연기를 지퍼 오르게 하는 것은 봉수대 불은 기표이고 그것을 전달받는 사람들은 적이 쳐들어온다든가 어떤 위급한 상황이 일아 났다는 것을 말하는 의미이다.  여기서 기표는 봉수대 불과 연기이고 기의는 위급한 상황에 대처하는 행동을 말한다.  봉수대 연기라는 기표와 위기 대처의 긴급 사태 발생에 대한 행동 요령이라는 기의와 결합하여 봉수대 신호의 기호를 만들어낸다.  봉수대는 연기는 구체적으로 일어나는 개별적 사건(표지)이고, 긴급사태 행동 요령은 추상적 관념이다.  사랑의 전도사 셰익스피어에게 장미는 사랑의 열정을 나타내는 기표이고, 기의는 사랑과 열정이다.  기표와 기의를 결합하는 작용을 의미 작용이라고 한다.  영어로 ‘signification’라고 말하는데 사람들이 모든 신호에 반응을 나타내는 것은 아니고 행동을 유발시킬 만한 의미가 없다고 여기는 하찮은 일에는 별무반응을 보인다.  사진이 발명된 때는 1840년경인데, 사진이 나타나가 전에까지의 신호체계는 장미와 봉수대처럼 사람의 오감으로 구체적으로 인지되는 직접적인 경험이었지만 사진과 방송의 언론이 등장하면서 중간 매개자의 메시지 전달 기능이 중요해졌다.  조선시대 장계같이 문서수발로 담당하는 중간 전달자가 개입하였지만 이들은 단순한 문서 전달자에 불과하였다.  하지만 9.11 테러 사건 때 뉴욕 쌍둥이 빌딩이 불타는 장면은 영상 화면과 사진 전송으로 즉시 전달되었고 이러한 화면 정보는 어떤 별도의 말이 필요 없을 정도로 정확하고 언어를 통한 구체적인 묘사를 불필요할 정도로 분명하게 전달되었다.  그러나 사진이 모든 의미를 그대로 전달하였을까?  2001 911 사태가 일어난 순간에서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하고 전쟁을 일으킬 줄을 상상한 사람들은 얼마나 되었을까?  거의 없었을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의미를 재생산해는 작용을 필요로 하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사랑을 확신하고서 장미꽃을 바친 사람들이 항상 연애에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수신자가 꽃을 전달한 사람의 의도를 받아들이지 않는 경우도 많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의미 작용은 해석을 필요로 한다.  연애하는 사람에게 장미꽃은 사랑을 고백하는 의미를 가졌다는 기호체계를 공유하지 않는 사람은 누가 있을까?  장미꽃을 갖다 바치면서 무릎을 끓고 사랑을 고백하는 청각적 의미와 시각적 의미가 함께 일어난 경우라면 거의 실패하지 않을 것이다.  사람에게 의미작용은 시각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다. 

 

‘Denotation 디노테이션’(외연적 의미)‘Connotation 코노테이션’(내포된 의미)

사람들은 사진을 통해서 어떻게 정보를 받아들이고 무엇을 알게 되는 것일까?

 

외부적으로 표현되는 의미를 ‘Denotation 디노테이션’(-외연적 의미)이라고 말하고, 그 속에 어떤 상징적인 의미가 들어 있는 경우를 ‘Connotation 코노테이션’(-내포된 의미)이라고 말한다.  건물에 불이 난 사진은 여러 경우에 일어날 수 있어 단일한 메시지를 가질 수 있지만, 한 편으로 911 테러 사건의 경우와 같이 특정한 장소와 정치적 문화 죵교적 제 요소를 감안하게 되면 의미 작용은 단순하게 진행되지 않고 확산된다.  사진의 의미작용에 관하여 바르트는 스투디움푼크툼이라는 개념을 내세우고 설명했다.  스투디움 studium’은 문화적 개념으로써 누구나 의미를 쉽게 알아차릴 수 있는 것으로 예컨대 고층빌딩에서 큰 화재가 나면 사상자가 발생하고 인명피해와 재산피해가 나타날 것이라는 객관적인 해석을 말한다.  알아본다는 것은 송신자의 의도에 맞닿음을 뜻한다.  수신자가 자신의 의도를 알아 맞출 때 빙고라는 외침이 나오는 바로 그런 것이다.  스투디움은 보내는 정보로써 수신자는 총체적인 as a whole 의미로 판단하는데 코드가 서로 통하고 느낌을 공유할 수 있는 것 즉 문화적이고 일상적인 의미를 갖는다.  푼크툼 punctum’은 사진의 의미에서 나의 폐부를 예리하게(이는 은유적인 표현이므로 표시하지 않게 은밀하게 그리고 매우 강렬하게 전달되는 메시지를 말한다- 흔히 우리가 필이 꽂힌다’, ‘화살이 폐부를 찌르고’, ‘감동 먹다등의 표현을 쓴다) 찌르는 것과 같은 어떤 깊은 의미를 가질 수도 있는 것으로 이는 사람마다 각기 다르게 나타나는 주관적인 요소에 해당하는 것으로써 예컨대 이슬람 급진파의 비행기 납치 자살 공격이라는 사실에서 정치 군사 종교 전문가들 중에 전쟁의 위기를 느끼게 되는 경우일 것이다. (보도 사진은 예술 사진과 차이가 나서 예술적 감각으로 설명하기란 힘들지 모르지만, ‘이미지 정치하고 주요 이슈를 물타기 해버린다든가 교묘하게 정보 조작의 능력을 발휘하는 고도의 정치 기술자들 즉 정치계 은어의 스핀 닥터들의 존재를 상기하라.)

 

코노테이션

바르트는 사진을 코드없는 메시지라고 말했는데, 사진에도 2차적 의미인 코노테이션이 들어가 있다.  그것은 사진의 선택 (여러 장의 사진 중에서 하나를 고르는 작업이 개입된다), 기술적 처리 (게이츠의 왼손이 안보이게 부분을 잘라내는 것같이), 지면 배치(1면 머리 기사인가), 제목과 기사 (‘결례 rude’라고 제목을 다는 경우) 등에 의해서 인식될 수 있다. 

 

바르트는 신화론에서 총체적인 의미작용을 설명하면서 다음과 같은 예를 들고 있다.  이발소에서 잡지 한 권을 내미는데 그 잡지 표지에 프랑스 군복을 입은 한 흑인 젊은이가 눈을 들어 프랑스 국기에 거수경례를 하고 있다 바로 이것이 이미지의 의미 sense’이다.  그러니 순진하건 아니건 나는 이 이미지가 내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다.  즉 프랑스는 위대한 제국이라는 것, 모든 프랑스의 아들은 피부색의 구분 없이 그 국기 아래 충성으로 봉사한다는 것, 그리고 식민주의에 대해 비방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른바 압제자들에게 충성하는 이 흑인의 열정보다 더 훌륭한 대답이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제 나는 확대된 기호학적 체계를 앞에 두게 된다.  즉 선행하는 체계로 이미 형성된 하나의 기표가 있다 (한 흑인 병사가 프랑스식 거수경례를 한다).  하나의 기의가 있다 (여기에서는 프랑스의 특성과 군대적 특성의 의도적인 혼합이다).  마지막으로 기표를 통한 기의 현존이 있다.”[35]

 

사진이 어떤 의미를 전달해 주는지 즉 사진의 의미작용에 대한 바르트의 설명을 그대로, 빌 게이츠의 악수하는 사진에 적용해 본다면, 빌 게이츠가 왼손을 호주머니에 넣고 있는 의미는 미국은 슈퍼초강대국으로 월 스트리트가 세계의 부를 주무르는 심장부이고, 자신은 월 스트리트 최고의 재산가로써 영향력이 막강하다는 것 (따라서 당신은 내 손아귀에 들어 있다의 뉘앙스는 부정적인 의미가 따르나 투자의 개념으로써 당신이 필요로 하면 자신은 돈을 투자할 의향이 있다는 긍정적인 의미를 함께 갖고 있다), 그리고 재산을 현명하게 쓴다 use wisely’는 영미국의 자선과 나눔의 문화적 전통을 말해주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우리들이 호주머니에 손을 넣으려는이유는 대개 자기 돈을 꺼내기 위해서 to produce my own”이고, 호주머니 지갑이 두툼한 사람은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자기 호주머니에 손을 넣고의 영어 표현은 “with my hand in my pocket”인데 이 어구는 옥스포드 영어 사전의 설명대로 자기 돈을 쓰다 spend or provide one’s own money”라는 관용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  이와 같이 빌 게이츠의 호주머니와 그의 왼손에 대한 의미를 본다면, 빌 게이츠의 호주머니에 왼손을 넣고 악수하는 모습은 더 이상 단순한 한 개인의 악수가 아니라, 그것은 미국의 교육과 자선의 문화적 전통과 월 스트리트 정보통신의 비즈니스를 특성을 모두 아우르고 있는 코드의 의사 소통에 해당한다.  이런 측면에서 빌 게이츠의 악수법을 상대방에 대한 결례라고 문화적 차이를 들어서 비난하는 사람들은 그 사실 자체가 상대방의 문화적 차이와 상대방의 내포된 의미를 읽어내지 못한 역설적인 잘못을 범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빌 게이츠의 악수법이 논란이 되는 배경은 한국의 경제성장에 따라서 대우받고 싶어하는 자존심의 영향이라고 볼 여지도 충분한데 이에 대해서는 보드리야르의 시뮬라크르 시뮬라시옹 이론을 통해서 설명될 수 있다. 

 

빌 게이츠가 악수하는 사진과 함축된 의미

 

빌 게이츠가 호주머니에 손을 넣는 행위가 의미하는 바는 자신은 미래의 인류 발전에 공헌하는 비즈니스 투자와 교육과 자선 사업으로 돈을 현명하게 쓴다는 그의 철학과 행동하는 양심을 암시한다.  이러한 해석은 관용어구의 사전적 의미와 같이, 바르트가 사진의 의미작용에 대하여 개념 지은 스투디움으로 설명된다.  스투디움 studium’은 보내는 정보로써 수신자는 총체적인 as a whole 의미로 판단하는데 코드가 서로 통하고 느낌을 공유할 수 있는 것 즉 문화적이고 일상적인 의미를 갖는다.  속마음을 꿰뚫어 본다는 것은 송신자의 의도에 맞닿음을 뜻한다.  퀴즈풀이처럼 수신자가 송신자의 의도를 알아 맞출 때 빙고라는 외침이 나오는 바로 그런 것이다. 

 

 

 

바르트의 의미 작용과 빌 게이츠 악수 사진의 의미 작용

 

바르트는 신화론에서 총체적’ ‘의미 작용을 설명하면서 다음과 같은 예를 들고 있다.  이발소에서 잡지 한 권을 내미는데 그 잡지 표지에 프랑스 군복을 입은 한 흑인 젊은이가 눈을 들어 프랑스 국기에 거수경례를 하고 있다 바로 이것이 이미지의 의미 sense’이다.  그러나 순진하건 아니건 나는 이 이미지가 내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다.  즉 프랑스는 위대한 제국이라는 것, 모든 프랑스의 아들은 피부색의 구분 없이 그 국기 아래 충성으로 봉사한다는 것, 그리고 식민주의에 대해 비방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른바 압제자들에게 충성하는 이 흑인의 열정보다 더 훌륭한 대답이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제 나는 확대된 기호학적 체계를 앞에 두게 된다.  즉 선행하는 체계로 이미 형성된 하나의 기표가 있다 (한 흑인 병사가 프랑스식 거수경례를 한다).  하나의 기의가 있다 (여기에서는 프랑스의 특성과 군대적 특성의 의도적인 혼합이다).  마지막으로 기표를 통한 기의 현존이 있다.”[36]

 

사진이 어떤 의미를 전달해 주는지 사진의 의미작용에 대한 바르트의 설명을, 빌 게이츠의 악수하는 사진에 적용해 보자.  빌 게이츠가 왼손을 호주머니에 넣고 있는 의미는 슈퍼초강대국 미국의 월 스트리트는 세계의 부를 주무르는 심장부이고, 월 스트리트 최고의 재산가로써 영향력이 막강하다는 것[37] 그리고 재산을 현명하게 쓴다 use wisely’는 자선과 나눔의 문화적 전통을 말해주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사람들호주머니에 손을 넣으려는이유는 대개 자기 돈을 꺼내기 위해서 to produce my own”이고, 호주머니 지갑이 두툼한 사람은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자기 호주머니에 손을 넣고의 영어 표현은 “with my hand in my pocket”인데 이 어구는 옥스포드 영어 사전의 설명에 따르면 자기 돈을 쓰다 spend or provide one’s own money”라는 관용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  이와 같이 빌 게이츠의 호주머니와 그의 왼손에 대해 내포된 의미를 고려한다면, 빌 게이츠의 호주머니에 왼손을 넣고 악수하는 모습은 더 이상 단순한 한 개인의 악수가 아니라, 그것은 미국의 교육과 자선의 문화적 전통과 월 스트리트 정보통신의 비즈니스를 특성을 모두 아우르고 있는 코드의 의사 소통에 해당한다.  따라서 빌 게이츠의 악수법을 상대방에 대한 결례라고 지적하며 문화적 차이를 근거로 비난하는 사람들은 상대방의 문화적 차이를 인정하지 못하는 모순에 빠지고 만다는 사실을 살펴 보라.  자신의 문화적 차이를 내세운다면 반대로 상대방의 문화적 차이 또한 인정해야 한다.  상대방의 존재는 자신의 본 모습을 비쳐 볼 수 있는 거울이거나 서로 마주 보는 두 개의 렌즈가 있는 망원경으로 이해되어야 함이 옳다.[38]

 

빌 게이츠가 호주머니에 손을 넣는 모습과 암시된 의미

 

앞에서 말한 대로, 빌 게이츠가 왼손을 호주머니에 손을 넣고 악수하는 모습을 결례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현대 사회의 본질과 구조를 제대로 파악해 내지 못했다고 보여진다.[39]  진심으로 말해 정작 중요한 일은 그처럼 창의적인 발상으로 새로운 비즈니스 혁명을 일으켜서 인류 발전에 공헌하는 일이고 또 자기의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고 자선 사업을 펼치는 일이다.[40]  그가 호주머니에 손을 넣는 행위는 자기가 번 큰 돈을 현명하게 쓴다는 최고의 자선가로서의 면모를 암시하는 것이라면 우리 모두가 그의 모습을 따라 모방하고 반복하여 자선과 기부 행렬에 동참할 때 인류 사회 발전에 기여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빌 게이츠는 재산이란 하늘로부터 받은 축복이고 따라서 그것을 현명하게 쓰는 것이 미국의 기부와 자선의 전통이라고 말했다.  돈이란 벌어서 장롱 속에 숨겨 두거나 곳간에 챙겨 놓는 것이 아니라 미래 세대를 위해 현명하게 쓴다는 개념에 있다.  성경에서도 분명히 말한다: “자신을 위해서라도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고, 오로지 하늘에 쌓아 두라.”[41]  미국의 위대성은 미국인들의 자선 charity, 기부 donation, 선물하고 증여하고 자선 서약하는 것 gift, grant, giving pledge에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


 

 

5. “프라이밍 효과 Priming effect”-“사고의 연상 효과

 

영어 prime은 최고라는 뜻이고 또 프라임은 기독교에서 하루가 시작되는 아침 6시를 뜻한다.  이와 같이 프라임은가장 먼저 떠오르는의미를 갖고 있는 단어이다.  물론점화하다는 뜻도 갖고 있다.

 

“프라이밍 효과점화 효과라고 번역하기도 하는데 연상 효과라는 용어가 이전부터 관련된 철학사조 연상주의 associationism, the association of ideas” (영국의 17-18세기 홉스, 로크, , 하틀리, , 베인 등 인간의 합리적 이성을 중시하는 경험철학) 역사를 참작한다면 (17-18세기에는 심리학은 학문으로써 아직 체계가 나타나지도 않았다) 연상효과나 점화효과 어느 말을 쓰든지 서로 대체될 수 있는 표현이다.  사람들의 사고의 연상 경향을점화 효과라고 번역한 이유는 (한 때 유명했던사나이 가슴에 불을 당긴다!”라는 광고 카피를 기억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불을 댕기면 심지가 탄다는 것, 점화는 불꽃을 튀기는 것으로 다음의 예정된 수순을 촉발 (스파크 spark) 한다는 의미에서점화 효과라고 번역한 것 같다.  프라이밍 효과는 잠재된 기억이 사람들의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는 심리학 이론 (implicit memory effect) 즉 사람들은 종종 마음속에 먼저 떠오르는 것에 지배되는 경향을 의미하므로연상 효과라는 말 또한 적절하다.[42]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카네만이 밝히듯이 사람들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으로든 연상 작용을 하는 경향이 있다.  카네만의 책에서 예를 들고 있는 것과 같이, w _ _ h s _ _ p 여기에서 빈칸을 채워 단어를 적어내라고 물으면 어떤 단어를 말할까?  사람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가 있을 텐데 그건 각자의 특수한 경험이나 상황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다.  예를 들어, 죄를 지은 사람이 자기 지은 죄를 씻고 싶어하는맥베드 부인 증후군을 가진 사람이라면 아마도 w _ _ h s _ _ p 에서 빈칸을 채우는 단어를 적으라고 한다면 아마도 wash soup라고 말할 개연성이 높다.  하지만 앞에다 똑 같은 예에서먹다 eat”라는 단어를 추가해 놓고 난 후 w _ _ h s _ _ p 에서 빈칸을 채우는 단어를 적으라고 한다면 아마도 대개는 “I wish to have a soup 수프를 먹고 싶다라는 상황이 떠올라 가장 먼저 “wish soup”라고 말할 것 같다.  이처럼 시각적으로 먼저 제시된 단어가 나중에 제시된 단어의 처리에 영향을 주는 현상을프라이밍 효과 priming effect”라고 카네만이 개념화했다. 

 

바틀비 이야기에서 화자는 바틀비의 비합리적인 행동을 처음에는 이해할 수 없다는 생각을 가졌는데 카네만의전망 이론에 따르면, 사람들은 항상 합리적인 행동을 나타내는 존재가 아니다.  사람들이 착각하고 편견에 빠지는 이유와 그 인지적 편향 cognitive biases 구조를 밝힌전망 이론 prospect theory”으로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카네만은 “Thinking, Fast and Slow”(2011) 에서 말한다.  단어가 기억을 떠올리고, 기억은 감정을 유발하며, 감정은 다시 얼굴 표정과 일반적인 흥분과 회피 경향 같은 다른 반응들을 일으킨다.  표정과 회피 동작은 그들이 연결되어 있는 감정을 강화하고, 그 감정들은 다시 그에 어울리는 생각들을 강화한다.”  사람들의 몸은 실제 일어나는 일에 보여주는 반응을 축소 복제하듯 반응하고, 사건을 해석 하는 과정에서 감정적 반응과 신체적 위축이 일어난다.”  이러한 정신적 사건들을 불러오는 기본적 구조는 생각의 연상 작용 association of ideas에 기초한다.  사람들은 두뇌뿐 아니라 몸으로 생각한다.  사람들은 과거의 지식과 경험을 통해서 여러 생각들이 사람들의 의식적 사고 속에서 질서정연한 방법으로 잇따라 발생된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다.

 

“바틀비 스토리”에서 구토와 소화불량에 관한 직원들 묘사, 프리스틀리의 필연성 철학 언급, 소설 말미에 화자가수신자불명 우편물 Dead Letter”를 부연 설명하는 부분 등 많은 부분에서 사고의 연상 작용 이론을 암시함을 알 수 있다.  바틀비를 키케로 석고 흉상(석고는 모조 미술품을 그대로 본뜨는 데 쓰여지는 것에 알 수 있듯이 키케로 본인이 아니라 모방 복제품이다)에 빗대는 것-이를 association이라고 말한다-에서 우리는 키케로가 귀족 가문의 배경 없이 지배 상류층으로 신분상승한 새 인물이라는 개념과 낯선 새 땅의 이민자로 들어온 새 인물 new man인 바틀비와 연결된다는 측면에서 서로 이어짐을 알 수 있다.  사람의 자각 수준은 사람의 뇌에서 활성화된 복잡한 연결망 (“network” 개념)이 작용한다.  카네만은한 생각이 다른 생각을 불러일으킨다는 연결 작용을연상적 활성화 associative activation’라는 과정을 통해 일어난다고 설명한다.

 

사람의 생각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사람의 외연적 행동에는 내면적 동기에 있고 또 그것의 연결고리를 찾아내는 원인-결과에 의한 책임론이 발전된다)는 여기는 철학적 사고인 연상주의 association of ideas”사고의 결합 이론”, “생각의 연결 고리 이론또는연상주의 associationism”라고 부르기도 한다.  사람들은 자신의 행동과 감정이 전혀 의식하지 못한 (하지만 필연적으로 예정되어 있는-사람들의 정해진 사고 구조 또는 신의 섭리에 따라) 사건들마저 어떤 의미가 서로 관련되어 있음을 깨닫게 되는 경우가 흔히 나타나기도 한다.

 

사람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심오한 우주법칙의 존재한다는 것을 믿고서 17-18세기 영국 철학자들(홉스, 로크, , 하틀리, , 베인 등)은 사고의 결합과 그 순차적 연결 과정을 설명해 내는 규칙을 깊이 연구했다.  데이비드 흄의인간 이성에 관한 연구 An Enquiry Concerning Human Understanding”가 유명하고, 경제학의 원조 아담 스미스의도덕 감정론에서불법행위 책임론을 전개한 이유가 이러한 사고의 연결고리 이론, 연상주의 철학 체계에 기반하였다.[43]

 

인과관계연쇄론을 설명하는 아담 스미스의 구절을 옮겨보자.

제아무리 작은 부분이라도 하더라도 우주 속의 서로 공존하는 모든 부분들은 정확하게 서로 맞물려 있고, 또 이 모든 것은 연결되어 하나의 장대한 구조를 구성하는 기초를 이루고 있는 것처럼, 제아무리 미미한 사건일지라도, 서로 연달아 연속적으로 일어나는, 모든 사건들은 시작도 없었고 또 끝도 없을 인과 관계의 거대한 고리를 구성하는 꼭 필요한 부분들을 채우고 있다.  또 그 모든 사건들은 전체의 기본 설계 의도와 계획에 따라 필연적으로 일어나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것들은 전체의 발전뿐만 아니라, 전체의 연속과 보존을 위해서도 필수적으로 필요하다.”[44]

 

수학용어로 어떤 가정이 어떤 결론을 이끌어내는 공식에서 주는 것이 충분조건 받는 것이 필요조건인데 서로 주고받으면 필요충분조건이라고 말한다.  전체집합은 부분집합으로 이루어졌지만 부분과 전체는 서로 연결고리로 연결되어 있어서 필요충분조건의 관계라고 볼 수 있다는 사고인 것이다.

 

사고 연상 이론-association of ideas과 사람들간의 연합체 association-전문가들은 유유상종하는 이유

 

“바틀비 스토리”에서 등장하는 “domestic associations”이란 표현 부분을 보자.  이 표현은 가정도 각자 독립된 한 사람과 다른 또 한 사람들이 서로 결합된 존재라는 것을 뜻한다.  동양적 사고방식으로는 부부일심동체의 구조라고 여겨질 테지만, 영미국인의 사고방식으로는 가정 또한 각자 독립된 두 별개의 인격체가 서로 독립적으로 결합하여 하나의 전체를 이루고 있다는 결합체의 구조로써 인식한다.  영미국에서 사회를 이루는 기본적인 관계를 형성하는 가장 기초적인 메커니즘은 사람들은 자기 결정 의사 능력을 가졌고, 따라서 사람들의동의 consent”에 기반한다.  자기결정권에 기초하는 낙태의 법적 해결 방식 또한자기결정권동의에 기초한다. 

 

수학용어에결합 법칙 associative law”이 있고 집합론이 중요한 수학이론을 차지하는데, 영미인들의 사고방식을 (대륙법 국가와 대조대비되는 측면에서) 특징적으로 나타내 주는 단어 하나가 어소시에이션 associations이라고 생각한다.  복수의 사람들이 함께 모여 결성한 조합 모임체를 지칭하는 어소시에이션은 그 모임체를 이루는 한 개인 한 개인과는 구별되는 별개의보이지 않는 그 무엇”으로써 여기에는 동호인 클럽, 협동조합, 동업자 관계, 연합 단체, 회사 법인, 기업 집단 등 조직 단체를 포괄하는 단어이다. 

 

영미인들은 개인들간에 스스로 자발적으로 모임과 협회 조직을 만들고 발전해 왔다.  교회 조직뿐만 아니라 인간 사회의 거의 모든 직업 분야는 거의 단체 조직화되어 있다.  변호사 사무소 명칭 형태가 “*** Associates & Co”으로 쓰는 경우를 흔히 볼 것이다.  명칭에서 보여지는 바와 같이 변호사 의사 기술자 등 전문가 직업군은 길드 조합 단체를 통하지 않고는 존재하기 힘들다.  농업협동조합뿐만 아니라 경영자 단체 등 농공상인을 통틀어 사회의 직업 단위는 길드 조합 단체 조직을 통하여 이루어진다.  사람은 큰 이불 하나만이라고 혼자서는 기울 수가 없고 여러 명이 동시에 힘을 거들어야 가능했다.  새로운 발전은 독자적인 혼자의 힘으로는 이루어내기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조합 단체를 결성하여 서로 이익을 향유하고 또 파이전체를 더욱 키워서 이익을 분배하는 시스템을 고안해 냈지 않았을까?  한 사람의 사고 작용은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고 또 타인에게서 영향을 받는 주고 받는 관계 기브--테이크 give-and-take” 과정에 해당한다.  어떠한 사람의 활동은 직간접적으로 다른 사람의 삶에 어떤 식으로든 관여되어 있다.  인간은 타고난 순간부터 죽을 때까지 상호의존적이다.  이것은 보편적이다.  사람들은 서로의 이해와 발전을 위하여 즉 자기에게 이익이 된다고 여기기 때문에 타인과 유대관계를 맺고 활발히 교류하는 것이다.  결사의 자유를 영어로 freedom of association이라고 말하는데. “결사의 자유는 헌법상 보장되는 국민의 기본권에 속하는 것으로 그만큼 중요한 개념이다.  사람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는 까닭에 결사의 자유는 기본권에 속하는 것으로 보고 이를 보호하는 것이다. (유럽인권협약 11[45])  경제학의 원조 아담 스미스가국부론에서 조합 단체에 대한 이론을 피력한 부분을 상기하자.  이러한 영미인의 주류적 사고방식의 기초와 동양인의천상천하유아독존사고방식과는 서로 대척점에 서 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대륙법 국가에서는 (개인은 국가의 종속체로 봄으로) 개인을 국가의 관리 대상체에 해당하는 존재로 인식하여, 국가는 개인들이 단체를 조직하는 것을 오히려 막고자 한 경향을 나타낸다.  대륙법제에서는 조합이나 회사 같은 단체를 규율하는 법이론이 상대적으로 발달되지 못했다.  국민은 국가의 직접적인 통제 대상으로 여김으로써 국가는 개인이 단체화되는 것을 두려워하는 경향이 강했기 때문이리라 (노조 단체나 정당조직에 부정적인 태도가 강한 이유가 여기에서 나온다).  연속성을 갖는 단체에 대한 존중이나 그 가치를 존중하는 마음이 부족하다 보니 국가 권력을 형성하는 가장 중요하고 큰 단체인 정당마저도 진중하게 오래도록 연속되는 정도가 낮고 대신 쉽게 모였다가 쉽게 흩어지는 모래알 같은 개념으로 이해하는 것 같다.  개인은 죽을 수 밖에 없는 운명이지만 단체는 삶의 유한성의 개인적인 한계를 뛰어넘어 영원한 연속성을 가질 수가 있다.  영미국의 정당이나 회사는 단체들은 개인적인 한계를 뛰어넘어 지속되고 끊임없이 발전되어 왔음을 볼 때 우리나라에서 단체에 대한 존중이나 그에 대한 가치를 제대로 부여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을 타파하지 못한다면 영미국같이 세계를 제패할 정도로 번영과 발전을 이루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동업하면 망한다는 사고 의식이 팽배해 있는 이유는?

 

우리나라는 개인이 조합이나 결사 단체를 결성하여더 큰 파이를 만들어가는 조직화 논리 또는 동업 association”의식은 매우 열악한 편이다.  대륙법제에서 회사법은통일적인 상법의 틀에서 논의된다.  우리나라에서협동조합기본법이 발효된 때는 가장 최근인 2013년에 불과하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동업 의식은 영미법 국가에 비해서 크게 차이가 난다.  우리나라에서 설립된 조합이나 회사 법인의 수가 낮은 영미국에 비해 낮은 수준임은 통계 비교 수치로도 확인된다.  우리나라의 낮은 동업자 의식에 대해서 극단적인 일화를 들어보자.  이승만 대통령이 미국인을 말로만 흉내 내어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united we stand, divided we fall”고 연설을 한 적은 했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동업하면 망한다는 의식이 팽배해 있다. 

 

반면 영미인들은동업하지 않으면 망한다는 생각이 지배하는 것 같다.  사회 관계에서 혼자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생각을 공유하고 합작하면서 서로의 장점을 배우고 서로 발전하는 경향이 크다.  자본의 축적과 집중이 경제 법칙으로 분명한 현상이라면, 마찬가지로생각의 발전을 이루기 위해서는사고의 결합또한 분명한 요구일 것이다.  병원이나 대학이 잘 말해주다시피 개인 혼자서는 연구를 할 수 없다.  NASA가 있지 않으면 달나라 우주 여행은 영원히 불가능하였으리라.  지식의 분야에서의 동호인 조직뿐만 아니라 영국의 프로 축구 클럽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보여주다시피 사람들이 복수 결합 단체 “united” 형태로 출범했다.  바틀비 소설에서 암시되는버밍업 루니 협회가 없었다면 영국에서산업 혁명이 일어나기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기업은 사람간의 지식을 합치지 못하면 발전하기 힘들 것이다.  월 스트리트의 발전은트러스트에 기반하였다. (얼마나 강력한 영향을 미쳤으면 했으면 독과점금지법 anti-trust이 출현했겠는가?  사실 증권 (담보 금융의 모기지, 오늘날의 첨단 금융 공학으로 파생 상품)시장의 발전은 트러스트 법제에 기초하였다.)  마이크로소프의 빌 게이츠도 동업했고, 애플의 스티브 잡스도 동업자로 출발했다.  반면 우리나라는 전문가들 (의사나 변호사 등)도 동업 보다 개인 개업을 선호하는 경향이 크게 나타난다.  동업이나 조직 단체에 대한 사고방식이 열악한 이유 하나는사고의 결합 (chain 연쇄고리)” 이념이 문화적 (상호 신뢰의 부족 등)으로나 상대적으로 빈곤한 것에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보는데 여기에는 여러 가지 설득력 있는 근거가 많다. 

 

사람들의 생각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생각의 연결 고리 이론

 

자연 현상에서 먹구름이 몰려오면 비가 내리고 비 갠 후에 무지개가 뜨듯이 사건은 연쇄적으로 일어난다는 생각이 쉽게 떠오를 것이다.  사람들의 생각은 생각에 꼬리를 물고 다니는 것처럼 생각은 또 다른 생각을 낳는다.  인간의 행동 또한 마찬가지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사람의 일에도 자연 법칙처럼 어떤 일이 일어나면 거기에는 어떤 원인이 개입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쉽게 여길 수 있다.  인간의 행동을 일으키는 것은 사람들의 머리 속에 들어 있는 생각이라고 보고 또 이러한 생각은 옥구슬을 매단 고리로 서로 연결되어 있어서 하나의 행동이 나타나면 줄줄이 사탕처럼 일이 서로 연관되어 있다는 것으로 이해하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어떤 일이 일어난 경우 그 일을 일으키는 어떤 분명한 원인이 존재한다고 믿는 사고방식이 프리스틀리가 주장했던 필연주의 철학의 기본적인 구조다.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연상이 된다.  지식의 체계성도 이러한 연결고리에 의존한다.  필연주의 철학은 생각의 연결 고리 이론 연상주의와 맞닿아 있다.

 

영국의 17-18세기 경험철학자들은 사람들의 생각은 결합되었다고 보기 때문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 데는 그 원인이 존재한다고 여기고 그 원인이 무엇인지를 파악하기 파고들었다.  뉴튼은 사과가 떨어지는 원인을 파고 들어 갔던 것이고 거기에서 보이지 않는 중력의 법칙이 존재한다는 것을 밝혀내었다.  물리학의 중력의 법칙이 존재한다는 것이 분명하듯이 영국의 경험철학자들은 사람의 몸과 마음은 별개로 따로 떨어진 것이 아니라, 마음도 몸처럼실체적인 physical” 것으로 인식하였다.  자연법 경험 철학의 사고방식은 오늘날의 카네만의 전망이론, 뇌신경학으로 이어진다. 

 

반면 동양인의 생각 기저에는 어떤 결과의 원인을 끝까지 파고 들어가 마지막 원자 요소까지 찾아내려고 하기 보다는 대충 손 맥이나 짚고 그냥 두리뭉실하게 덥고 넘어가는 것이 신의 뜻이라고 여기는 사고가 깔려 있는 것 같다.  동양에선 사람의 죽음의 원인을 밝히려고 시체를 해부하는 것은 사람을 두 번 죽이는 행위이라며 불경죄로 간주되고 금기시된다.  (따라서 우리나라에서는 벤담 같이 당대의 대가를 이룬 사람일지라도 벤담같이 구체적으로 자기 시신을 의대 해부학 교실에서 anatomy 해부하고 보존하여 사후 1백년 후에 자기 모습 그대로의 “Auto Icon”을 전시하라는 유언을 남길 수 있을 것으로는 전혀 상상하기 힘들 것이다.)  벤담의 구체적 해부 지시를 명시한 벤담의 유언장의 내용은 영국 정부 기록 보관소에서 읽어볼 수 있다.[46]


 

 

6. “황금률 Golden Rule”이란 무엇을 말하는가?

 

“바틀비 스토리”에서 화자인 변호사가 상대방을 해치고 싶은 범죄 충동이 일어났을 때 그것을 이겨내는 힘이 신약 성경의 황금률이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구약의 아담 시대부터 있어온 인간의 원초적인 분노 감정이 내게도 치밀어 올라 바틀비를 해치우고 싶은 충동이 일어났을 때, 나는 그 원초적 분노라는 놈과 맞서 싸우고 그 놈을 내동댕이쳐버렸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느냐고?  글쎄다.  나는 그저 신성한 강제명령-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주노니, 너희는 서로를 사랑하라는 신약의 말씀을 상기했을 뿐이다.  그렇다.  나를 구해 준 것은 아담의 자손인 예수님의 바로 이 말씀이었다.”  예수님의 바로 이 말씀은 예수의 산상수훈의 설교에서 가르친 신의 명령 divine injunction”을 말한다.  이를 보통사람들은 대개 황금률 Golden Rule”이라고 부른다.”

 

황금률은 무엇을 말하는가?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마태 7:12).[47]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요한 13:34).[48]

 

이 실천계명은 구약성경에도 나오는 계명이기도 하다: "'원수를 갚겠다고 분을 품지 말고, 동포 누구에게라도 앙심을 품지 말고, 대신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내가 (만물을 주관하는) 하나님이니라.”[49] (레위기 19:18). 

 

구약에서는 이웃 사랑하기의 범위가 같은 동포에 한정되었지만 이방인을 포함하여 인류 전체로 확대되었고 모두가 평등하다는 사상의 측면에서 예수의 새로운 실천윤리 지침은 그야말로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오게 된 것이다.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 자신과 자기 가족의 작은 범위 내에서의 사랑을 실천하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예수의 실천윤리는 남들이 싫어할 일은 남들에게 행하지 말라 (예컨대 침묵) 소극적 의미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대신 적극적으로 나설 의무의 실천윤리를 강조하였다는 측면에서 새롭고도 혁명적인 법률해석론에 해당하였다.  혁명적이라는 말은 과거에 없는 새로운 질서를 낳게 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이러한 예수의 산상수훈의 가르침을 황금률이라고 일컫게 된 시기는 종교 개혁이 일어난 16세기부터라고 한다.  종교 개혁은 새로운 성경 해석을 통해서 이루어졌다.

 

역지사지라는 우리말이 있는데 이는 네가 다른 사람의 입장이라면 어떻게 하겠는지? if we imagine ourselves in someone else's shoes” 재차 생각해 보라는 뜻이다.  "Treat others only as you consent to being treated in the same situation."  역지사지라는 우리말이 황금률과 동일한 뜻은 아니지만 자신이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자신도 남을 대접하라.  Treat others as you want to be treated."는 황금률의 의미를 갖고 있다.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남에게 사랑을 받고 싶어한다.  따라서 남을 사랑하라는 말은 누구에게나 타당한 원칙이 된다..

 

Wattles황금률의 구체적 단계를 다음과 같이 6단계로 설명하고 있는데 이를 재음미해 보자. 

① 남이 나에게 기쁨을 주기를 원하는 대로 네가 남에게 먼저 행하라

② 남이 나의 감정을 배려해주기를 바라는 대로 너도 남의 감정을 배려해 주라.

③ 너는 다른 사람을 대함에 있어서 네 자신과 똑 같은 이성적인 존엄성을 가진 존재로 대하라.

④ 남이 나를 사랑해 주길 원하는 대로 네가 형제애를 남에게 행하라

⑤ 남이 나에게 대우해주기 원하는 대로 네가 도덕 명령 원칙에 입각하여 남을 대하라.

⑥ 나에게 객관적인 양심의 원칙이 적용되기를 원하는 대로 남에게도 똑같이 그 원칙을 적용하라.”[50]

 

황금률 Golden Rule, 상호주의 reciprocity, 일관성 원칙 consistency principle

 

새로운실천계명 new commandment나 자신만이 아니라상대방과의관계 relationship’를 깨닫는 것을 필요로 한다.  상호주의서로 주고 받는 reciprocal’ 관계 또는 오고 가는쌍방형 two-way’의 관계를 인식하는 것을 말한다.  흔히 주고 받는 give-and-take’라는 말로 쉽게 표현되는데 여기서 나와 네가 똑같이 동일하다는 측면이 강조된다.  사람은양쪽 다 똑같이 both sides equally’ 중요한 존재라는 것 즉 사람은 모두가평등하다는 것을 가르치는 말이다.

 

JS Mill은 그의공리주의 Utilitarianism” 2장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의 행복의 관계에 대해, 공리주의는 이해관계가 개입되지 않고 악의 없는 제3자가 갖고 있는 공정성을 엄격하게 자기 자신에게도 적용할 것을 요구한다.  공리주의 실천윤리의 핵심이 무엇인지는 나사렛 예수가 말한황금률로써 온전히 설명된다.  남이 나에게 해주기 원하는 대로 남에게 먼저 행하라그리고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는 의무 원칙은 공리주의 실천윤리원칙에 이상적으로 들어맞는다.”[51]

 

“나와 너 I and you”는 나는 너가 될 수 있고 너는 내가 될 수 있다.  나와 너는 서로 상호 교환 도치될 수 있는 관계이므로 나는 너와 똑 같은 가치를 갖는 존재이다.  그러므로 나와 너는 서로똑같이 대우를 받아야 한다 be treated equally”.  황금률은 평등적인 관계가 분명하게 강조된다.

 

또 황금률은 이와 같은 연장선상에서 일관성의 원칙과 같은 개념이다.  무게나 길이를 재는 저울과 잣대는 언제 어디서나 똑같이 적용할 때만 의미가 있는 것이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가 되는 이현령비현령 또는 고무줄 잣대같이 일관성을 갖추지 못한다면 잣대로써의 기능은 상실되고 만다. 

 

공정성은 한 번의 판단으로 보여지는 것이 아니다.  작심삼일이라는 속담이 있는데 인간의 약점은 사람의 마음은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와 같아서 초지일관의 마음을 지속하기란 매우 어렵다는 것에 있다.  이런 일관성의 가치는 인간의 본성은 장년이 되기 전까지는 경험칙으로써 느끼기 어려운 것 같다.  사람은 누구나 한 순간은 미덕을 실천할 수 있겠지만 시공간의 차이를 두고서 일관성 consistency’을 갖추어 실천하기는 쉽지 않다.  공정성의 평가는 일관성을 요구한다.  만리장성이나 로마의 성벽은 하루 아침에 세워지지 않았으며, 그와 같이 사람의 도덕성은 하루 아침에 세워지는 것이 아니다.  공정성은 판단을 받아들이는 상대방의 태도에서 얻어지는 earned’ 개념이기 때문에 공정한 행위가 오래 지속되고 나서야 확보된다.[52] 

 

황금률에 대한 오해 3가지

 

정언 명령 Categorical Imperative의 의미

 

우리나라에서는황금률에 대한 이해를 조금 달리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우리나라에서는 황금률을 이해함에 있어서, 사람들이 옳은 행동을 하게 만드는 윤리 도덕의 기초가다른 사람을 수단으로 대하지 말고 목적적인 존재로 대해야 한다는 자신의 내적정언 명령 Categorical Imperative”에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 같다.[53]  하지만 이런 해석은 궁극적으로의도나 목적이 선하기만 하면 설령 결과가 잘못되어도 책임이 면해진다는 결론을 가져오기 쉽다.  사람들에게 있어서 동기는 행위를 낳는 요인이지만, 인간의 삶은 의도와 결과가 항상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단적으로 말해서, 사람들이 원래 설계하고 의도하고 계획한대로 이루어진다면 무슨 문제가 있겠는가?  아담 스미스의 통찰을 다시 한번 확인하자.  모든 사람은 자기가 이룬 결과로써 판단되지, 의도한 계획으로써 판단되지 않는다는 이런 사실은 오랜 인류 역사를 통해서 존재해온 불평거리였으며 또한 사람들이 아름다운 덕목을 그리 높게 평가하지 않으려고 하는 생각을 낳는 가장 큰 요인이기도 하다.”[54] 

 

분명하게 황금률의 실천윤리는 칸트의 실천 명령 개념에서도 똑같이 강조하는 행동 윤리 원칙이다.  유명한 칸트의 말을 다시 보자.  “Act so that you treat humanity, whether in your own person or in that of another, always as an end and never as a means only.  너는 사람들을 대할 때, 너 자신이든 아니면 다른 사람이든지 간에 구분함이 없이, 항상 목적으로 여겨야 하고 결코 수단으로는 여기지 말아야 된다.”[55]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대개의 번역은너는 너 자신의 인격과 다른 모든 사람의 인격에 있어서 인간성을 언제나 동시에 목적으로 간주하여야 하며, 결코 단순한 수단으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  여기에서 다른 사람을 뜻하는 ‘humanity’인간성’, ‘인격으로 번역하고 있어서 원문의 의미가 정확하게 전달되지 못하고 있거나 개념에 대해 제대로 이해를 하지 못하고 있음이 보여진다. 

 

칸트의 실천 명령 개념은 제3자적 객관적인 양심인 신의 이성에서 의존하는 개념이지, 사람들 각자 편할 대로 자신의 내적 명령 private consciences”을 말하는 개념이 아니다.  그런데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실천 명령을 자신의 내적 명령이라고 이해한다면 황금률이 의미하는 너와 내가 똑같이 취급된다평등 equality’의 개념이 그만 사라지고 묻히고 마는 결과로 이어지는 잘못이 나타나게 된다.

행위에 대해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판정자는 자기 자신인가?

 

도덕적 실천 명령 Categorical Imperative”이라는 말을각 개인은 자신의 행위에 대해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심판자라는 개념으로 이해하는 것 같다.  하지만 여기서 판정자는 자신이 아니라, 이해관계가 얽혀있지 않는 객관적이고 제3자적 입장을 가진 사람을 말한다.  사람은 자신의 행위에 대해서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이성과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얘기이지, 판정자가 자신이 된다는 뜻이 아니다.  우리들이 흔히 법을 거부한다는 명분으로 자신의 양심과는 어긋난다는 점을 드는 것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국법과는 다르게 별도의 법체계가 있는 듯이 오해할 소지가 다분하다.  홉스의 설명을 잠시 살펴 보자.  법은 국민이 세운 국가가 정한다.  선악의 척도를 판정하는 사람은 법을 만드는 입법부 의원이고 그 법을 해석하는 법관이고 그 법을 집행하는 행정부 공무원이다.  법은 개인 자신의 내적 명령에 따라 판단되는 개념이 아니다.  법의 명령에 대해 복종하거나 거부하는 기준이 자신의 내적 명령에 따른다고 여기면 그건 잘못이다.  자기의 내적 명령에 어긋난다고 생각하여 그 법을 거부할 수 있다는 논리는 잘못되었다.  국가가 정한 법에 대한 수용 기준이 각자 개인적인 판단에 따라 적당하다고 여겨질 때 받아들일 수 있다는 생각은 잘못되었다.

 

양심과 판단은 각각 다른 개념이고 구별되는가?

 

자기 자신이 선악의 판정자라는 사고는 사람들이 자신의 양심에 반하여 행동하는 것은 모두 죄악이라고 잘못 생각하는 결론을 낳을 수 있다.  행동하지 않는 양심이 존재하고, 또 양심과 판단은 서로 다르다는 말인가?  양심과 판단은 다른 것이 아니다. 또 사람의 판단은 실수할 수가 있는 것이고 그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양심도 잘못을 범할 수 있다.  행태 (진화) 심리학이 밝혀내는 진실이기도 하지만 인간은 살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 마저 속이는 경우도 발견된다.  청소년기에 흔히 나타나는 현상이기도 하지만 자기의 양심을 잘못 알고 있는 경우도 있다.  어떤 이는 섹스 행위를 자기 양심상 허용되지 않는 죄악으로 간주하기도 하지만 성인간의 합의에 의한 성행위를 양심에 반하는 죄악으로 여기는 성인은 거의 없을 것이다.  만약 그것을 금하는 국법이 있다면 어느 것이 양심인가?  이 경우 자기 자신의 내적 양심에 반하는 모든 행위가 죄를 범하는 것이라고 여긴다면 이런 국가에서는 살아가기 힘들 것이다.  사람들이 공동체를 형성하는 가장 기초적인 수단은 사람의 동의 consent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각자 private opinions과 각자의 양심 private consciences은 실로 다양하다.  그래서 서로의 동의가 중요하고 합의가 국가 사회의 기초이다.  양심은 객관적이고 불편부당하고 공정한 제3자적 관찰자의 입장에서 나오는 것이다. 

 

황금률이라고 말하는가? 

 

전체적으로 as a whole, 총체적 입장을 고려

황금률이란 첫 번째 그냥 떠오르는 대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그 행동이 결과에 미칠영향까지 ‘gauge their actions’ 다시 한번 재고하고 재차 secondary’ ‘따져보는것을 말한다.  한 문장 안에서는 해석을 하는데 어떤 문제점이 발견되지 않는다고 해도 전체 문장을 통틀어 보면 이상한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 그런 불합리한 결과가 나오지 않기 위해서 (in order to not reach an absurd decision) ‘개별적인의미는 전체적이고 총체적인’(‘as a whole’) 의미에 양보해야 한다.  판례를 인용하여 재정리하면, 개별적으로 보면 틀린 것은 아닐지 몰라도 전체적으로 보면 터무니 없는 absurdity’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 그것은 억지 주장에 불과하므로 개별적인 의미에서가 아니라, 전체적인 의미에서 재해석되어야 한다는 원칙을 황금률이라고 불렀다.[56][57]

 

2차적 대안을 제시하는 해석 원칙

 

선생님,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크나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마태 22:36-40).[58]

 

황금률은 제1의 원칙을 거부하고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보충하는 역할을 맡는다.  의미가 불분명한 경우 글에 쓰여 있는 대로 그 단어가 나타내는 일상적인 의미를 따라서 해석하는 문언주의 the literal rule” 해석 원칙을 따르고, 거기에서 터무니 없는 결과가 나타나게 되면 새로운 의미를 찾아봐야 한다는 것이다.[59]  나중에 생긴 형평법이 보통법원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보통법원으로써는 할 수 없는 것을 보충하는 마치 경제학의 보완재의 성격을 갖는다.  문언주의 해석 원칙이 확인된 때는 1584년의 헤이돈[60] 케이스에서였다.

 

황금률은 일관성의 유지가 관건

 

황금률은 수학의황금비율” (세로와 가로 비율 1:1.618을 황금비율이라고 부른다)의 존재와도 같이, “언제 어디서나 항상 적용되는 always act in such a way” “보편성을 갖는 법 universal law”이기 때문에 그와 같이 부르게 된 것이다.

 

황금률원래의 original” 것에 기반을 두고 새롭게 등장한 2 secondary’ 원칙이고, 기존의 주류에서 파생된 derivative” 원칙이고,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기존의 이론에 대항해서새로운 대안 alternative’을 제시하는 원칙이다.  황금률은 무에서 유를 창조한 것이 아니라 기존의 것에서 발상의 전환을 통해서 새로운 혁명적 변화를 가져온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자기와 타인의 관계에서 동등가치를 부여하지 않고, 대신 각자 자신의 주관대로 (예컨대 누구는 3대 독자이니까 군복무를 면제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긴다거나 자본주의 경제 사회에서 특혜를 추구하는 것) 차별적인 적용을 주장하는 것은 나와 남이 다같이 동등하다는 평등 정신을 실천하라는 황금률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우를 범한 것이다.

 


 

변화의 조건-공감의 놀라운 힘

 

“바틀비 스토리”에서 바틀비는 비록 창조적인 일을 아닌 복제 모방 단순 반복의 노동을 하는 단순 노동자 일꾼에 불과할 뿐인(99%에 속하는 을의 입장에 처해 있는 사람들) 반면 화자인 변호사인 월 스트리트에서 성공한 변호사로서 그가 거느린 직원의 삶의 조건을 결정할 만큼 큰 힘을 가진 고용주로서 (1%에 속하는 갑의 지위를 갖고 있는 사람들) 바틀비와는 주인과 머슴의 관계에 있다.  하지만 상위 1%에 속하는 그 변호사는 빈부, 기타 모든 차별을 초월해서다 같은 하나님의 자손 아담의 후예로서 같은 형제임을 느끼게 되는 순간 지금까지 월 스트리트 부자들을 고객으로 모시면서 편안하고 안락한 삶에 안주해 온 (“아늑한 휴양지같이 차분하고 조용한 가운데 돈 많은 부자들의 채권, 담보증서, 소유권증서들을 취급하는 편안한 업무를 맡아온”) 그 변호사는 갑자기 격정에 휩싸이게 되고 같은 인간으로서 타인의 불행에 동정심을 갖게 되는 놀랍고 큰 변화를 경험하게 된다.  그가 독백하는 부분을 다시 읽어보자.  “난생 처음으로 나의 마음은 가슴이 찔리듯 참을 수 없는 격한 슬픔의 감정에 휩싸였다.  이제껏 나는 아름다운 슬픔밖에 경험해 본 적이 없다.  그런데 지금은 다 같은 인간이라는 동질감으로 인해서 나는 슬픈 감정을 도저히 주체할 수가 없다.  피를 나눈 형제같이 느껴지는 슬픔의 감정!  아마 나나 바틀비나 다 같은 아담의 자식이어서가 아닐까?”[61]

 

이러한 묘사는 우리 사람들이 타인에 대한 동감을 느끼게 되면서 생기는 놀라운 변화의 힘을 보여주는 것 같다.  이는 자본주의 경제학의 대부 아담 스미스가 그토록 특혜를 배격하고 공정하고 공평한 정의가 자본주의 사회의 발전의 핵심적인 요소라고 주장했던 이유와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예수가 죽음을 앞두고서 11제자 앞에서 남긴 황금률의 말씀이 인류 역사에 있어서 혁명을 가져오게 된 이유 중 하나는우리 모두는 평등하다는 가장 단순한 진리에 있지 않았던가?  동감은 변화의 제1의 조건인 것 같다.

 

7. “휴머니즘 종교”-“인간의 인간에 대한 사랑 man’s love for man”의 종교

 

조지 엘리어트의 휴머니즘 종교

 

휴머니즘의 정수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가로는 조지 엘리어트 George Eliot(1819-1880)을 들 수 있다.  1861년 출간된 사일러스 마너 Silas Marner”에서 휴머니즘의 내용을 설명하였다.  그녀는 1846년 스트라우스 Strauss의 독일어 책 예수의 생애를 영어로 번역한 예수의 생애-비판적 고찰 The Life of Jesus, Critically Examined”, 1854년 포이에르바하의 독일어 책 기독교의 본질의 영어 번역본(“The Essence of Christianity”)을 출간하였다. 

 

조지 엘리어트는 인간은 (우주와 마찬가지로) 신의 섭리에 따라 설계되고 움직이므로 자연의 법칙을 떠날 수 없는 한계를 가지고 있지만 즉 인간은 환경의 지배를 받기 마련이지만 (따라서 절대적인 의미에서 인간은 자유 의지 free will을 가졌다고 볼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 스스로 자유 의지에 따른 선택적 결단에 따라 행동하여야 하고 (인간은 보다 나은 선택을 할 능력을 가졌다- 왜냐하면 인간은 선한 우주를 창조한 신에 의해서 창조되었기 때문에), 그 결과에 대해서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생각을 가졌다.  그녀는 경험철학과 자연법 사상의 전통에 연결된 인과응보론 causation의 관점 (물리학의 우주 법칙처럼 사람의 운명은 과거 행위에 좌우된다)을 견지하였다.

 

그녀는 보편적인 인간성 common humanity은 사람들 각자 마음 속에 들어 있는 인간의 인간에 대한 사랑 man’s love for man”이라고 파악하였다.  그녀는 인류의 진보를 믿었고, 인간의 행복은 전체 사회의 행복happiness of humanity as a whole을 위해서 개인 이기주의보다 공동체 가치가 우선할 때 달성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녀는 인간의 도덕성의 발전은 그가 속해 있는 사회의 행복 happiness of the society s/he lives in에 기여하는 것에서 찾아진다고 믿었다.  조지 엘리어트는 사람은 연민의 감정 없이는 이기적인 자신으로부터 해방될 수 없다고 보았고, 이러한 해방에는 반드시 고통 suffering”이 수반되지만 그것을 극복해 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람에게 요구되는 가장 높은 헌신과 결단은 인간의 고통을 견디어 내야 하는 것인데 그것은 아편 중독에 의해서가 아니라 다만 인간내면의 맑은 의식과 깨우친 눈을 통한 인내이다.”[62]

 

이러한 사상을 인류애, 박애주의, 인도주의, 콩트 Comte가 명명한 휴머니즘 종교 Religion of Humanity” 등의 용어로 불렀다.  휴머니즘 종교는 이기주의 egoism’에 반대하고, 대신 자기 희생과 이타주의 altruism’를 요구한다.  휴머니즘 종교에서는 타인의 고통에 대한 연민과 공감이 강조된다. 

 

포이에르바하의 기독교의 본질비판

 

휴머니즘 종교신 중심이 아닌 인간 중심의 종교 a religion not of God, but of man, a religion of humanity”라고 말한다.  조지 엘리어트의 견해는 특히 포이에르바하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결과이었다.  포이에르바하는 인간들이 신을 믿는 모든 종교가 실제로는 인간의 본성, 필요, 욕망이 무의식적으로 빚어낸 외재화의 결과에 불과한 것이고 즉 인간의 주관적인 필요와 기대 실현을 위해서 인간이 주관적으로 만들어낸 하나의 도구 방편 unconscious objectification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포이에르바하는 종교의 의미는 사랑 love 경외 admiration 동감 sympathy 연민 pity 인간 사이에의 희생 sacrifice of man for man에 있다고 보고 인간 관계 그 자체가 바로 종교적인 성격을 갖는다고 말했다.[63] 

 

포이에르바하는 진정한 종교적 의미는 인간의 내적 이기적 욕구에서 만들어진 추상적인 신에게 바쳐질 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이고 같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행할 때 그 의미가 있다는 것, 다시 말해 인간의 문제는 인간이 구해낼 수 있는 주체 the savior is nobody but human라고 파악하고, 신을 인간의 위치로 from God to Man 끌어내렸다.  기독교는 신은 사랑 God is Love”이라고 표현하는데 그는 역으로 사랑이 신 Love is God”이라는 의미가 도출된다고 주장했다.  사랑은 신성보다 더 높은 능력이자 진리이며 따라서 사랑은 신을 정복한다.”[64]

 

이와 같이 볼 때 동료 감정 fellow-feeling (In love the reality of the species becomes a matter o feeling.)”[65]은 동지애, 인간애 humanity와 동의어가 된다.  사랑이 인간을 결합시키는 가장 강력한 힘이자 종교의 본질이라면, 같은 인간으로서 연민의 감정에서 우러나오는 인간 동료애 man’s love for man”는 자기애만큼 거의 종교적인 것이다.  인간의 인간에 대한 사랑타인에 대한 희생은 인간 자신의 형상대로 신을 창조한 인간의 최고의 본성적 표현인 것이다.  사랑과 공감으로 이루어지는 인간관계는 그 자체가 종교적인 성격을 갖는다.” 

 

이와 같이 엘리어트가 주장한 휴머니즘의 개념을 비유적으로 쉽게 설명한다면, 천수답을 짓는 삼한시대 사람들의 종교가 태백산에 올라가 기우제를 지내며 천지신명이시여! 비나이다! 하늘이시여! 우리를 도와 주소서! Heaven help us!”라고 하늘에 고사를 지내는 기우제의 종교이었다면, 휴머니즘은 고통으로 점철된 인간 사회의 개선을 위해서 우리가 스스로 서로 돕자! Help one another”의 사랑과 우애와 협동의 실천 정신으로 무장하여 공동 저수지를 만들며 인간사회의 개선과 발전을 도모하는 실천적인 종교라고 말할 수 있겠다.

 

휴머니즘의 내용이 무엇인지를 가장 쉽고 잘 표현해 주는 휴머니즘의 신조를 보자.  이것은 기독교의 사도신경과 거의 비슷한데 다만 신의 위치가 인간으로 대치된 것 같다.  휴머니즘은 무엇인가?”란 책에 다음과 같이 정리되어 있는데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휴머니즘의 신조

 

나는 내가 우주 천체의 중심이라는 것과

나와 똑 같은 다른 사람은 존재하지 않으며

나는 전체 인류 가운데 한 부분에 속한다는 것을 믿는다.

나는 모든 사람들이 내가 태어나기 이전에 존재했고 또 내가 죽은 후에도 존재한다는 것을 믿는다.

나는 모든 인류가 공통으로 갖고 있는 것을 공유하고 있으며,

필요, 욕구, 감정, 지성, 지식 추구 등은 모든 인류의 보편적이라는 것을 믿는다.

내가 속한 인간 종족이 생존하는 한 나는 결코 죽어 사라지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믿는다.

나는 내 자신을 보호해 줄 위대한 신의 존재가 필요하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

만약 신이 존재한다면 좋겠지만, 아무튼 내 자신을 보살피는 것은 내 자신의 책임이라고 믿는다.

인간은 공동 선을 추구하는 존재라는 것을 믿으며 또 그 이유는 우리들이 신을 두려워해서가 아니라 다만 우리들은 평화와 공존을 추구하며 함께 살아가야 할 필연성 때문이라는 것을 믿는다.[66]


 

 

8. 영미국인의 기부와 자선의 전통과 법제도의 기원

 

월 스트리트 최고 부자 세계 갑부 서열 1위에 2위에 올라 있는 빌 게이츠, 웨런 버핏은 자신의 모든 부를 자선 단체에 기부했다.  보통사람들은 자기 가진 것 중에서 자기 입고 먹고 살고 남은 것 그 중에 십 분의 일에 해당하는 작은 돈을 내놓기도 어려운데, 하물며 세상의 부귀를 다 가진 그런 사람들이 어떻게 자기 가진 돈을 자신의 핏줄도 아닌 다른 자선 단체에 기부할 수가 있다는 말인가?  부자들이 자기 가진 재산을 모두 다 내놓는다?  과연 그게 가능할까?  누구를 믿고?  무엇을 믿고?  하지만 영미국에선 그게 가능하다.  영미국인에게 있어서 자식은 못 믿을지 몰라도 하나님의 법은 믿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법 원칙을 추구하는 법정이 바로 “equity 형평법이다.  법과 정의 law and equity”보통법과 형평법의 두 법원을 말한다.  이 두 법체계는 오늘날에는 하나의 사법부인 법원으로 통합되었다.  영미국인의 기부 자선의 문화, 전통, 법제도의 심연을 파악해 들어가 보자. 

 


셰익스피어의 소네트 제1장에서 자선을 행하라고 가르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영국이 낳은 위대한 대문호 셰익스피어는 그의 소네트 제 1장에서 자선을 행하라고 가르치고 있다.  성경의 1장처럼 누구나 시작하는 제1장은 가장 중요한 의미를 부여하리라.  1장이 그렇게 중요하다면 1장에서 자선을 말하고 있는 그 이유는 무엇인가?  셰익스피어는 풍요를 추구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라고 말하면서 왜 남에게 동정심을 보이고 자선을 행하라고 말하고 있는가?  박애 정신의 기독교적 사랑은 자선을 행하는 것으로써 외부로 표현된다.  더구나 셰익스피어 시대 당시는 유럽 인구의 3분의 1 가까이 사라져 버린 대전염병 흑사병이 창궐했던 때임을 상기하라.  자선은 영미국인의 전통, 문화적 관습, 일상적 태도에 깊숙이 뿌리 박혀 있으며 오늘날까지 지속되고 있다.  셰익스피어 소네트 1장을 현대적으로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이 세상의 모든 만물은 풍요를 추구하는 경향이 있는 법,

그래서 세상은 아름답고 또 영원히 지속된다.

하지만 사람은 노년기를 지나면 사라지고,

젊은 후계자가 그의 유업을 이어 받는다. 

그런데 넌, 자기 혼자만의 풍요를 위해

연료를 독점하고 삶의 불꽃을 혼자만 이어가려 하느냐!

자기 혼자만 챙기다 보면 고대광실도 곧 사라지고 마는 법,

따라서 그런 태도는 결국 자신을 죽이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넌 지금 세계 최첨단 패션으로 치장하고,

젊고 멋진 자태를 뽐내며 봄의 전령사인양 설쳐대고 있으니,

자신의 타고난 재능을 꽃피우기도 전에 묻어버리려 하는구나!

이보게, 젊은이, 타인을 무시하는 것은 사실 자신의 아름다움을 죽이는 거라오.

세상 사람들에게 동정심을 보여 주시오. 

그렇지 않으면 이기적인 탐욕자라고 지탄받을 거외다. 

죽고 나서 좋은 평가를 들으려면 이 우주만물의 법칙을 잊지 마시오.

 


 

왜 세계 최고 갑부들은 모든 재산을 다 내놓고 자선을 행하는 갈까? 그 이유는?

 

세계 최고 갑부인 빌 게이츠가 아프리카 기아 해방을 위해서 자선 사업을 벌이고 있는데 그 동기는 어디에서 나왔을까?  그것은 자기 자신의 일신의 편함을 추구해서는 결코 아닐 것이요, 자기 자신의 명예를 추구하기 위해서도 아니고, 다른 불쌍한 사람들을 보고 동정심이 넘쳐서 불현듯 자기의 모든 재산을 자선 사업에 쏟아 부은 것은 아니리라.  세계 최고의 갑부인 카네기, 버핏, 게이츠 등 수많은 월 스트리트 재산가들이 자기가 평생 모은 모든 재산을 모두 공익 자선 사업에 선뜻 내놓은 동기가 무엇일까?  그들이 자선 사업을 펼치게 만드는 것- 그들을 움직이는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아담 스미스의 통찰에 따르면, 그것은 자기이익 추구도 아니고, 헐벗고 굶주린 사람들을 보고서 너무 마음이 아파서 동정심만으로도 부족하고, 최고 부자인 그들을 움직이게 하는 보다 강력한 힘은 이기주의 이타주의를 초월한 그 무엇에 있다.  여기의 그 무엇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사람들마다 각자의 개념들을 늘어놓을 수 있다.  여기에는 자선도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주장도 포함된다. 

 

아담 스미스에 따르면, 사람들이 지나치게 자기이익만을 추구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그 무엇이 있다면 그것은 인간의 마음에 살아 있는 박애정신의 약한 불꽃 즉 인류동포에 대한 사랑인 휴머니즘이 아니라, 사람들의 행동을 불러 일으키는 데는 그보다 훨씬 강력한 동기인 인간의 내부 마음 속에 살아 있는 양심 conscience이다.  이러한 아담 스미스의 결론은 이기주의와 이타주의라는 두 개의 서로 배타적인 이분법적 구분의 함정에서 벗어나 제3의 해결 구조를 열어주는 것이 창문이고 열쇠가 된다.  아담 스미스의 인구에 회자되는 저 유명한 구절을 다시 보자.  우리가 식사를 할 수 있는 것은 정육점,양조장,빵집 주인의 자비심에 의한 것이 아니라 그들 자신들의 이익에 대한 관심 때문이다. It is not from the benevolence of the butcher, the brewer, or the baker, that we expect our dinner, but from their regard to their own interest.”  하지만 아담 스미스가 말한 보이지 않는 손의 개념은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인간의 자기애의 본성에만 머무르는 개념이 아니었다.  양심 또한 보이지 않는 손의 힘에 속한다.  양심에 대해 자세하게 논하고 있는 도덕감정론 33장 중 간단하게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사람의 소극적인 감정들은 거의 언제나 이처럼 야비하고 이처럼 이기적일 때, 어떻게 사람의 적극적인 천성들은 흔히 그처럼 관대하고 그처럼 고귀할 수 있는가?  사람들이 언제나 다른 사람들에 관련된 일보다도 자기 자신에 관련된 일에 의해 훨씬 많은 영향을 받는다면, 무엇이 자선을 베푸는 사람들로 하여금 모든 경우에, 그리고 일반 사람들로 하여금 많은 경우에, 다른 사람들의 더 큰 이익을 위하여 그들 자신의 이익을 희생시키도록 촉구하는가?  자기애의 가장 강한 충동에 대항할 수 있는 것은 휴머니즘의 물렁한 힘이 아니며, 신이 인간의 마음에 밝혀준 박애정신의 약한 불꽃도 아니다.  이러한 경우에 요구되는 것은 보다 강렬한 힘이고 보다 강제력 있는 동기이다.[67]  그것은 이성, 법칙, 양심, 가슴속의 살아 숨쉬는 것, 인간 내면 흉중에 있는 것, 사람의 행동을 결정짓는 최후의 판단자이고 조정자이다.[68]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의 행복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일을 하려고 할 때마다 사람들 내심의 가장 몰염치한 격정을 향하여 깜짝 놀랄 정도의 큰 목소리로 다음과 같이 소리치는 것은 바로 이 사람인 것이다.  개인은 대중 속의 한 사람에 불과하고, 어떠한 점에 있어서도 그 속의 다른 어떠한 사람보다 나을 것이 없으며, 사람들이 그처럼 수치를 모르고 맹목적으로 자기 자신을 다른 사람들보다 우선시킨다면, 그 사람은 마땅히 다른 사람들의 분개와 혐오와 저주의 대상이 될 것이라고 외치는 사람 말이다.[69]

 

사람들이 자기 자신들에 관련된 모든 것이 실제로는 사소한 것이라는 사실을 배우는 것은 오로지 이 중립적인 관전자 impartial spectator로 부터이고 이 중립적인 관전자의 눈에 의해서만 자기애가 빠지기 쉬운 잘못된 생각을 바로잡을 수 있다.[70]

 

관용의 적정성과 부정의 추악성, 자기 자신의 큰 이익보다 다른 사람들의 더 큰 이익을 위하여 자기 자신의 그것을 양보하는 것의 적정성과 자기 자신의 최대의 이익을 얻기 위하여 다른 사람의 가장 사소한 이익까지 침해하는 행위의 추악성을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것은 바로 이 공평무사한 중립적 방관자이다.[71]

 

많은 경우 사람들로 하여금 그러한 신성한 미덕을 행하도록 촉구하는 것은 사람들의 이웃에 대한 사랑도 아니고, 인류에 대한 사랑도 아니다.  그러한 경우에 통상 생기는 것은 보다 강한 사랑, 보다 강력한 애정 즉 명예스럽고 고귀한 것에 대한 사랑, 사람들 자신의 성격 속에 들어 있는 숭고함, 존엄성, 탁월성에 대한 사랑인 것이다.[72]

 


 

9. 자선 charity은 무엇을 말하는가?-“믿음 소망 사랑의 고린도 전서 13장에 대한 킹제임스성경의 새로운 번역

 

고린도 전서 13장은 가장 잘 알려진 성경 말씀이다.  믿음, 약속, 자선, 이 세 가지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선이다.  And now abideth faith, hope, charity, these three; but the greatest of these [is] charity.”  믿음 소망 사랑의 이 구절에 대해서 1611년의 킹제임스성경은 faith, hope, charity”으로 번역했다.  17세기 당시 성경번역자들은 사랑“charity”로 번역했을까?  성경의 “charity”“love”로 새롭게 번역하게 된 시기는 19세기에 이르러서였다.  신학자 프리스틀리와 에드워즈는 각각 킹제임스성경에서 새롭게 번역한 고린도전서 13장의 해석을 강조하였다.  산업 혁명이 도래하고 국가가 사회적 약자를 돌보기 시작하기 이전까지는 가난한 사람에 대한 구제는 오로지 교회가 담당하고 있었다.  교회의 존재 기반은 사람들의 자선과 기부에 의해서였다.  자선과 기부가 없다면 교회는 존재할 수가 없고 따라서 사회적 약자 또한 살아갈 길이 없었다.  따라서 자선은 생명과도 같이 중요했다.  오늘날 또한 마찬가지가 아닐까?  아마 우리나라에서 복지국가가 건설되었다면 얘기는 달라질 수도 있을 것이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복지국가의 실현은 요원하다.  복지국가의 건설은 맨 처음의 원칙으로 되돌아가서 다시금 짚어볼 때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킹제임스성경이 출간된 17세기 당시 상황을 감안하여 고린도전서 13장을 다음과 같이 새롭게 번역하고자 한다.

 

1 내가 일반인들이 쓰는 언어와 천사들이 쓰는 언어로 말할지라도, 자선을 행하지 않는다면, 단지 변죽만 울리는 징과 꽹과리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2 내가 미래를 예견하는 능력을 가졌고, 모든 신비를 꿰뚫고, 모든 지식을 갖추었다 해도, 또 완전한 믿음을 가져서 태산을 옮길 수 있을지라도, 자선을 행하지 않으면, 나는 아무 것도 아닐 것이요,         

3 가난한 사람들을 먹일 만큼 많은 재산을 내가 축적해 놓았을지라도, 또 내 몸을 불사르는 희생을 감수할지라도, 자선을 행하지 않으면, 그런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이다. 

4 자선은 오래 가고, 공감하는 것이며, 자선은 더 가지려고 시기하는 것이 아니며, 자선은 뽐내고 자랑하는 것도 아니며, 자선은 부풀리는 것도 아니다.           

5 관례에 어긋나게 행하지 말며, 자기 이익을 추구하지 말며, 쉽사리 즉흥적으로 나서지 말며, 악의적인 의도를 품지 말라.  

6 나쁜 짓을 저지를 생각조차 하지 말 것이며, 다만 진리를 추구하라.  

7 모든 것을 주며, 모든 것을 진실로 믿으며, 모든 것을 확신하며, 모든 것을 참고 헤쳐나가야 한다.

8 자선은 결코 실패하는 법이 없다.  반면 신의 계시자라고 떠드는 사람에게 맡기는 것은 실패하기 마련이다.  그냥 말로만 떠드는 것은 곧 그치고 만다.  자신이 알고 있으면 충분하다고 말할지 모르지만 그것도 곧 사라지고 만다.

9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부분적인 것이요, 우리가 예견하는 것도 부분적인 것 밖에 아니다.       

10 그러나 완전한 전체가 되면, 그때에는 부분적인 것은 없어 지니라.  

11 내가 아이였을 때에는, 아이처럼 말하고, 아이처럼 깨달으며, 아이처럼 생각하였다.  하지만 어른이 되어서는, 아이처럼 유치한 것들은 내가 모두 버렸노라.   

12 우리가 지금은 거울을 통하여, 희미하게 보나, 다음에는 얼굴을 마주 대하여 보게 되리라.  내가 지금은 부분적으로 알고 있으나 다음에는 내가 모든 것을 알게 될 터이고 또한 내가 이해하였다는 것을 다들 알게 될 것이다.

13 따라서 믿음 faith, 약속 hope, 자선 charity, 이 세가지는 모두 필요하다.  하지만 이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자선이다.        

 

믿음, 소망, 사랑 faith, hope, charity” 이들 단어를 영어 사전을 찾아보면 3 단어 모두 “trust”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믿음, 소망, 사랑의 구절은 성경본문 중에서도 가장 잘 알려진 구절의 하나이다.  여기서 믿음은 loyalty 즉 기독교 교리에 순종한다는 뜻이고, 소망은 내가 미래에 기부하겠다는 의사가 있는데 그렇게 할 것을 분명하게 약속한다는 뜻의 약속, 확신, 자신감 confidence”을 말하며, “사랑아가페를 말하는데, 킹제임스성경에서는 아가페란 단어를 채리티 charity”로 번역했다.  (우리나라 성경 번역본은 19세기 후반에 들어서 이루어졌으므로 새로운 번역에 따라 자선이라는 말 대신 사랑이라는 말로 번역하고 있다).  실천 없는 사랑은 무의미하다는 의미에서 킹제임스성경에서 그리스어 아가페“Charity”라고 번역한 것이라면 그것은 적절하고 타당하다고 여긴다.  더욱이 17세기 당시에는 교회가 구제를 전담하던 시기임을 고려하면 분명하다.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양심이라고 부르기 어렵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외부적으로, 결과적으로, 구체적으로 나타나지 않는 선의는 큰 의미가 없을 것이다.  누구든지 꿈 속에서 선을 행하지 않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며 또 반대로 악몽을 꾸고서 악몽대로 행동하고자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고린도전서 13장의 의미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따르는 큰 믿음을 가졌고, 또 그 믿음에 따라서 미래에 자선을 행하고 재산을 기부할 것을 굳게 맹세하고 약속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즉 그런 믿음과 약속도 중요하지만 지금 바로 자선을 실천하는 것에는 미치지 못한다는 의미가 아니겠는가?  지금 바로 행동하는 양심이 자선인 것이고, 이 자선을 실천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 된다. 

 

자선의 개념이 무엇인지에 대해 영미법상의 트러스트 Trust 법제도와 비교하여 보면 더욱 구체적이고 쉽게 이해가 되리라. 영미법상의 트러스트의 구조와 원리를 이해할 수 있다면 이 성경 구절이 더욱 쉽게 이해되리라.  기부가 법적 효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미래에 자기 재산을 공공 목적의 자선 단체에 기부하겠다는 기부 의도와 목적을 문서로써 표시하고, 해당 재산을 내놓으면 기부자하고는 상관없이 자선 단체가 독립적으로 유지해 나갈 수 있는데 이런 구조가 트러스트 제도다.  트러스트는 보이지 않는 손이 작동하는 법제도라고 말하는데 이것은 트러스트는 표면만을 보고서는 트러스트를 움직이는 내막을 자세하게 알기 어려운 이중의 법체계를 갖고 있음을 말해준다.  트러스트는 등기상의 명의와 실질적인 소유자가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  개념을 영어를 써서 반복하면, 트러스트(신탁)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신탁자 기부 의사 intention, 기부 대상의 신탁 재산 특정 gift, certainty of subject matter, 신탁 수혜자 certainty of objects의 특정 이렇게 최소한 3가지 조건이 존재해야 한다.[73]  하지만 일단 기부 재산부터 먼저 내놓으면 다른 2가지 조건이 충족되지 않아도 법적으로 신탁이 설정될 수 있다.  법원은 되도록이면 좋은 일을 하는 것을 이루게 해주려고 하기 때문이다 ("would rather than not that a will's provisions should fail").  가장 중요한 부분인 기부 재산을 공공목적으로 내놓았으면 바로 그 순간부터 법은 자선의 실체를 인정하고 보호해 준다.  트러스트 법제에서는 형식적으로 갖추어야 할 직인이 누락되었다는 등의 형식적인 흠결을 이유로 신탁의 설정을 부정하는 경우는 거의 없고, 또 기부자가 기부약정을 통해 기부목적이나 사용방법을 지정했다면 그런 경우 기부금 운영자가 기부자의 의도를 소홀히 하는 경우는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영미법 국가는 교회, 회사, 국가의 운영과 구조는 기본적으로 트러스트이고 따라서 트러스트 법제에 내재된 기초적인 형평법 법원칙에 의해서 운용 유지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영미법상의 트러스트 Trust 법제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금융상품의 상사 트러스트 제도가 도입되어 있긴 하지만 그것은 영미법상의 일반법상의 트러스트 법제하고는 차이가 있다) 자선과 트러스트 관계를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영미국인들의 자선단체에 기부하는 전통이 이어져 내려 오고 있는 배경에는 트러스트 법 제도가 확립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교회는 거의 국가에 버금갈 정도로 거대한 재산 규모를 가진 실체이었고, (교회가 곧 국가이었던 이유는 교회가 형평법원의 시초였다는 것에서 짐작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회사가 가장 큰 재산을 가진 실체이다.  영미법 국가에서는 대학과 학교의 모든 교육 기관 (공립이든 사립이든)은 그 구조와 운영이 기본적으로 트러스트 법 제도에 따른다.  작은 개인 회사일지라도 회사를 운영하는 관리자는 트러스트 법원칙에 따른다.  작은 공동체 운영이든 국가 정책 결정자이든 이들은 트러스트의 법제에 의해 통제된다.  트러스트를 세우고 운용하고 유지해 나가는 실체는 변호사들이다.  교회, 회사, 국가를 이어주는 실체적 손발이 변호사(법원)인 것이다.  영미국을 사법부 통치 국가라고 말하는 근원이 이런 구조에서 연유한다.  재산이 힘과 권위를 가져다 준다는 말이 변함없는 진실이라면, 변호사들(법원)이 힘과 권위를 가진 실체라는 결론은 자연스런 도출이다.  이와 같이 영미판례법국가는 변호사들이 중심이 되어 국가와 사회가 움직여지고 있으므로 영미법은 국가와 개인이 정반합의 관계를 갖고 서로 발전적 관계에 놓여 있다.  영미법상의 변호사들은 대륙법국가의 국가공무원의 신분이 아니지만 이들은 국가 공무 (예컨대 등기 업무 수행이 대표적이다-우리나라는 등기업무를 국가공무원이 법원조직이 담당하고 있다)를 수행하는 위치에 있다.  이는 대륙법의 국가의 개인의 일체관계하고 대조 대비되고, 이런 구조적 장점에 의해서 세계초강대국을 건설할 수 있었다고 생각해 본다.

 

믿음, 소망, 사랑중에 제일은 사랑이라는 말은 우리에게 매우 익숙하지만 믿음, 소망, 사랑을 추상적으로 이해한다면 우리들이 성경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 같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는 사람이 자기 재산을 내 놓을 리는 만무할 테고 따라서 자기가 죽으면 당연히 교회 재산이 된다는 기독교의 교리와 믿음으로도 충분할 수 있겠지만 또 미래 시점에 기부하겠다는 그런 약속의 말도 믿을 수 있겠지만 뭐니뭐니해도 우선 지금 즉시 기부하는 자선의 실천이야말로 가장 확실하다는 말이다.  여기서 국가는 교회는 일치되는 개념이다.  영미국의 기독교 국가는 교회와 국가가 일치한다.  물론 미국은 영국과는 달리 미국독립 전쟁을 통해서 국가와 종교는 분리된다고 헌법상 선언하고 있지만 공공의 이익을 위한 트러스트 법제에 의해서 국가와 공익 추구의 종교는 일치된다.

 

믿음, 소망, 사랑표현에서 믿음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변치 않는 법칙으로 작동한다는 것을 믿는다는 것 즉 기독교의 교의 교리를 믿는다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것을 글로 옮긴 성경과 동일하다.  따라서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이 쓰여진 성경의 가르침을 믿는다는 의미이다.  소망은 미래에 기부하겠다는 의사 표시를 실천하겠다는 약속을 말한다.  소망은 미래의 기부 약속을 꼭 지키겠다는 신뢰이고 그 신뢰를 충분히 지킬 수 있다는 자신감 confidence”을 나타낸다.  사랑은 사랑하는 내적 마음의 추상적인 상태에 머무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가진 재산을 지금 바로 내놓는 기부행위를 지금 실천하는 자선을 의미한다. 

 

이렇게 믿음 소망 사랑을 이해한다면 믿음, 소망, 사랑과거, 미래, 현재라는 말로 서로 바꿔 쓸 수 있을 것이다.  성경은 과거 (성경은 과거에 기록됐다)에 해당하고, 약속은 다음에 실천하겠다는 다짐이므로 미래에 해당하고, 사랑은 지금 바로 실천한다는 현재의 의미를 갖는다고 이해된다.  과거, 미래, 현재이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누구든지 현재라고 대답할 것이라는 추측은 별도의 추가 논증을 필요로 하지 않고도 수긍할 것이다.  위와 같이 근거들로 보면 믿음, 약속, 자선으로 성경의 말씀을 번역하는 것은 자연스런 결론이 된다.  믿음 약속 자선 3 가지가 모두 필요하고 또 중요하지만 그 중에서도 지금 현재 바로 행동하고 실천하는 자선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킹제임스성경의 번역자들은 “faith, hope, charity”으로 번역했을 것 같다.  이를 우리말로 보다 충실하게 번역한다면 믿음, 약속, 자선이 되지 않을까?  기독교의 복음과 사명을 제대로 이해하고 실천했던 킹제임스성경 번역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히브리어와 그리스어 텍스트를 충실하게 따라서 편견 없이 번역했다는 사실은 모두가 동의하고 있다.  그렇게 올바르게 성경을 번역한 번역의 위대한 힘에 의해서 킹제임스성경은 400년 이상을 전세계적으로 영향을 떨쳐 온 것이 아닐까.  킹제임스성경의 “faith, hope, charity”의 한글 번역을 믿음, 약속, 자선으로 번역한다면 자선과 기부를 실천하는 새로운 역사와 문화를 창조해 나가는데 도움이 될 것 같다.  사랑이라는 말의 쓰임새가 산업사회와 후기 산업사회를 거치면서 현재 너무 진부해져” “사랑의 본래적 의미가 많이 퇴색되고 변질되었다는 현실 인식에서, “믿음 약속 자선으로 새롭게 번역하여 원래의 의미로 되돌아가자 Back to basics”[74]는 제안을 하고 싶다. 

 

킹제임스성경 번역자가 추상적인” “사랑이라는 말 대신에 구체적인” “자선을 지금 행동으로 옮기는 것으로 번역한 것은 문맥상이나 법적이나 기독교 교의적으로 모두 완전하게 일치하게 됨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사랑으로 번역하고 있다.  그 이유는 한국은 기독교 전래가 시기상 늦었고 또 영미국의 현실과는 다른 역사적 배경을 갖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400년 동안 영미국인에게 가장 심오하게 영향을 끼친 킹제임스성경에서 “Charity”로 번역한 그 의미를 놓치지 않아야 하지 않을까?

 

1 내가 일반인들이 쓰는 언어와 천사들이 쓰는 언어로 말할지라도, 자선[75]을 행하지 않는다면, 단지 변죽만 울리는 징과 꽹과리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1 Though I speak with the tongues of men and of angels, and have not charity, I am become [as] sounding brass, or a tinkling cymbal.

2 내가 미래를 예견하는 능력을 가졌고, 모든 신비를 꿰뚫고, 모든 지식을 갖추었다 해도, 또 완전한 믿음을 가져서 태산을 옮길 수 있을지라도, 자선을 행하지 않으면, 나는 아무 것도 아닐 것이요,          2 And though I have [the gift of] prophecy, and understand all mysteries, and all knowledge; and though I have all faith, so that I could remove mountains, and have not charity, I am nothing.

3 가난한 사람들을 먹여 살릴 만큼 많은 재산을 내가 축적해 놓았을지라도,[76] 또 내 몸을 불사르는 희생을 감수하더라도, 자선을 행하지 않으면, 그런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3 And though I bestow all my goods to feed [the poor], and though I give my body to be burned, and have not charity, it profiteth me nothing.

4 자선은 오래 가고, 공감하는 것이며,[77] 자선은 더 가지려고 시기하는 것이 아니며, 자선은 뽐내고 자랑하는 것도 아니며, 자선은 부풀리는 것도 아닙니다.  4 Charity suffereth long, [and] is kind; charity envieth not; charity vaunteth not itself, is not puffed up,

5 관례에 어긋나게 행하지 말며, 자기 이익을 추구하지 말며, 쉽사리 즉흥적으로 나서지 말며, 악의적인 의도를 품지 마십시오.  5 Doth not behave itself unseemly, seeketh not her own, is not easily provoked, thinketh no evil;

6 나쁜 짓을 저지를 생각조차 하지 말 것이며, 다만 진리를 추구하십시오.[78]  6 Rejoiceth not in iniquity, but rejoiceth in the truth;

7 모든 것을 주며, 모든 것을 진실로 믿으며, 모든 것을 확신하며, 모든 것을 참고 헤쳐나가야 합니다.       7 Beareth all things, believeth all things, hopeth all things, endureth all things.

8 자선은 결코 실패하는 법이 없습니다.[79]  반면 신의 계시자라고 떠드는 사람에게 맡기는 것은 실패하기 마련입니다.  그냥 말로만 떠드는 것은 곧 그치고 맙니다.  자신이 알고 있으면 충분하다고 말할지 모르지만 그것도 곧 사라지고 맙니다.             8 Charity never faileth: but whether [there be] prophecies, they shall fail; whether [there be] tongues, they shall cease; whether [there be] knowledge, it shall vanish away.

9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부분적인 것이요, 우리가 예견하는 것도 부분적인 것 밖에 되지 않습니다.          9 For we know in part, and we prophesy in part.

10 그러나 완전한 전체가 되면, 그때에는 부분적인 것은 없어 지게 됩니다.        10 But when that which is perfect is come, then that which is in part shall be done away.[80]

11 내가 아이였을 때에는, 아이처럼 말하고, 아이처럼 깨달으며, 아이처럼 생각하였다.  하지만 어른이 되어서는, 아이처럼 유치한 것들은 내가 모두 버렸습니다. 11 When I was a child, I spake as a child, I understood as a child, I thought as a child: but when I became a man, I put away childish things.

12 우리가 지금은 거울을 통하여, 희미하게 보나, 다음에는 얼굴을 마주 대하여 보게 될 것입니다.  내가 지금은 부분적으로만 알고 있으나 다음에는 모든 것을 알게 될 터이고 또 내가 이해한대로 모두가 알게 될 것입니다.[81]          12 For now we see through a glass, darkly; but then face to face: now I know in part; but then shall I know even as also I am known.

13 따라서 믿음, 약속, 자선, 이 세가지는 모두 필요합니다.  하지만 이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자선입니다.        13 And now abideth faith, hope, charity, these three; but the greatest of these [is] charity.

 


 

 

10. 아담 스미드의 모두가 잘사는 경제학

 

경제학의 태두 아담 스미스의 저서 <국부론>은 책 제목이 사시하는 바 그대로 나라가 <돈 버는 비결> (causes of the wealth of nations)을 알아 낸 원칙을 기록한 책이다.  아담 스미스가 그의 조국인 변방국가 영국도 당시 세계를 주름잡고 있던 선진국 네덜란드처럼 부국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밝힌 책이다.

어떻게 하면 돈을 벌 수 있느냐의 핵심 원리를 알아 낸 아담 스미스의 관심은 당시 체제를 개혁하는 실천적 과제에 있었다. 조상대대로 물려받은 신분적 질서에 얽매여 거주이전의 자유도 없이 한 곳에 얽매여 살고 있던 당시의 사회 조직을 변혁하지 않고서는 국가의 부를 창출해 낼 수가 없다는 결론을 얻어냈기 때문이었다.  당시엔 교회가 <자기 희생>을 가르치고 사회조직은 <길드>조직으로 직업 선택의 자유마저 없이 얽매여 있었다. 평생 한 교회에 나가고 대장장이처럼 평생 주문제 생산에 의존하고 있으니 얼굴 모르는 사람하고는 거래가 될 수 없었던 중세 사회이었다.  그의 국부론이 출판된 해는 미국 독립선언이 있던 해 1776년이다.  그 시기는 변혁이 소용돌이치던 때이었다.  외국 상선이 드나들면서 전혀 얼굴도 모르던 사람들 사이에도 활발하게 거래가 이뤄지던 그런 경제 현실을 보면서 보통 사람 들도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을 알아낸 것이다. 일방적 공급자의 이해만 반영하여 독점조직이던 <길드> 조직에서 벗어나 새로운 아이디어에 따라서 자유롭게 생산에 참여한다면 <천민>들도 “Lower ranks of the people” 들도 돈을 벌 수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

 

자본주의의 높은 생산성은 모두가 익명이기에 가능한 것이다.  통제 없는 시장, 낮은 노동비용, 높은 생산성 등은 모두가 얼굴을 모르는 사람의 이동으로 생겨난 것이다.  이처럼 아담 스미스는 이름 없는 일반민초들도 얽매여 있던 기존 질서에서 벗어나 돈 벌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소리쳐 주장한 것이었다.  한 곳에 얽매여 살며 평생 얼굴을 아는 사람만으로 이뤄지던 사회에서 서로 얼굴 모르고서도 경제활동을 아무런 지장 없이 할 수 있고 더구나 <>는 익명적 거래로 인해서 가능하다는 위대한 <익명성>의 경제를 발견해 낸 것이다. 

 

그 때까지 얼굴마저 하는 사람하고는 거래하던 그전 당시 사회상과는 달리 상대방이 누구인지 또 무슨 목적으로 물건을 거래하는지 그런 상대방의 정보는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아담 스미스는 거래에서 상대방의 목적은 알 필요도 없다는 것을 발견해 낸 것이다.  상대방의 마음은 내가 알 수도 없는 것이고, 따라서 오로지 내가 추구하는 내 이익 추구 활동에 전념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밝힌 것이다.  물건을 만드는 것이 뼈빠지게 남에게 갖다 바치는 것 즉 <자기희생>이 아니고 내 이윤추구라는 것에 있으며 이것이 정당하다는 것을 가르친 것이다.  그래서 얽매어 있던 기존 질서를 타파하지 않으면 돈을 벌 수 없다고 보고 관세니 가격통제니 임금억제니 독점이니 허가나 도제 등 모든 기존 얽매인 질서를 타파해야 된다고 부르짖었다.  <자기 이익 추구의 정당성>을 도덕철학적으로 증명하고 천민들의 두 손에서 부가 창출된다고 보고 <노동의 분업>이 가장 생산성을 높인다고 것을 분명하게 밝혀낸 것이다.  거기에다 부는 국가간에도 서로 거래를 통해서 축적된다고 보는 이 3가지 주장을 수많은 예를 들어서 체계적으로 정리한 것이 경제학의 탄생을 알린 <국부론>의 내용이다.  부란 성안의 부엌이나 창고에 쌓아 놓은 물건으로 평가되는 것이 아니라 각자 간에 이뤄지는 거래량으로 측정할 수 있다고 아담 스미스는 밝힌 것이었다. 그러니 소비가 생산의 정당한 목적으로 보게 된 것이다.  부란 성안의 쌓아놓는 보물이 아닌 것이라는 인식은 일반 천민들의 눈을 열고 귀를 열게 만들었고, 천민 각자는 자신들도 부를 이룰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  아담 스미스에 따르면, 가난한 천민들이란 가진 것은 두 손 밖에 없는데 부는 그들의 손재주에 달려 있고, 다시 말해 망치와 낫을 잘 다루는 기술에 달려 있다고 설파했다.  지금의 상황으로 비유한다면 컴퓨터 키보드 다루는 손 재주에 돈 버는 기술이 달려 있다고 여긴 것이다. 

 

익명의 경제 구조에 기반하여 큰 기업들이 나타난 바 그런 회사들이 바로 마이크로 소프트, 아마존, ebay, 구글, 애플 등의 현재 세계 최고의 기업들이다.  결론적으로, 새로운 경제 시대에서 기존에 아는 사람들하고만 거래한다는 것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 낡은 사고가 되었다.

 

이층 구조 빈부 격차가 확대되고 있는 한국의 문제점

 

이렇게 세상이 흘러감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아담 스미스가 부르짖던 당시로 착각할 만큼 신분제 질서로 각종 차별이 상존하고 사방이 벽으로 둘러 싸여 있다. Top lower ranks 만으로 이뤄지는 사회의 <2층 띠구조>가 되어버린 한국 사회 구조에서 국민 대다수는 99% 하층민에 해당한다.  아담 스미스 가 당시 감자를 주식으로 하는 아일랜드 출신의 하층민을 “inferior ranks”이라고 공공연히 말했던 것처럼 천민들의 존재는 확연하게 보인다.  1%에 해당하는 상류층을 제외하면 나머지 99%는 모두가 하층민에 속한다. 

 

하지만 아담 스미스가 밝혔듯이 감자로 연명하는 하층민들도 상류층으로 갈 수 있는 길이 있기는 하다.  아담 스미스가 비판을 가한 대상은 지주계층 즉 기존의 구체제 질서이었다.  일하지 않고 놀고 이자만 챙겨 먹는 지주층에 대해서 아담 스미스는 지주계급은 임금(노동의 대가로 지불하는 것인)을 인상해 주지 않으려고 교묘한 수단을 짜낸다고 그들을 비판했다.  "Masters are always and everywhere in a sort of tacit, but constant and uniform combination, not to raise the wages for labour."

 

아담 스미스는하층민 lower ranks of the people”도 돈을 벌 수 있는 참다운 세상이 되기를 갈망하였고, 새로운 경제 질서에서는익명의 동료 anonymous fellow”들이 새로운 경제 주체가 될 수 있다고 내다 보았다.

 

지금 네트워크 시대는 아담 스미스가 살았던 당시처럼 새로운 경제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급격한 변혁의 현장이다.  아담 스미스의 당시처럼 익명의 거래에 의한 새로운 경제 질서가 탄생하였다.  수공업이란 아는 사람에게 주문을 받고 생산하는 경제체제이고, 농사 짓는 농부들은 생전 자신의 농장을 떠나가 보지를 못했다.  사농공상은 자신들과 아는 사람들과의 거래 즉 폐쇄적인 거래에 지나지 않았지만 이제는 경제 현실이 근본적으로 변해서 전혀 모르는 사람들과도 거래가 트이게 되었다. 거래하기 전에 서로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을 어떻게 믿을 수 있을까?  해적 같이 생긴 사람들과 어떻게 거래를 틀 수 있을까?  생판 모르는 사람들을 어떻게 믿을 수 있을까?

 

자본주의 사회를 지탱하는 3가지 기본 원칙

 

아담 스미스는 얼굴 모르는 익명의 거래가 위대한 사회를 이룰 수 있다고 밝혔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 3가지 기본 원칙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바로 자기 절제, 자선, 정의 이 3가지의 원칙을 말하였다.

 

1번째 원칙은 자기 절제의 원칙

자기 절제란 서로가 만족한 가격으로 거래하는 것이 서로에게 이익이 된다는 원칙으로 효용의 원칙이라고도 한다.  이것은 바가지를 씌우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관광지에서 바가지를 씌우는 것은 아담 스미스가 보기에는 결국 자기들 스스로 망하는 길에 지나지 않는다.  바가지 횡포에 그 당사자들이 피해를 구제받기에는 어렵지만 소문이 퍼지고 대체상품이 생기면 타격을 입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신혼여행이나 결혼식장 등 일생에 거쳐 오직 한 번 밖에 일어나지 않는 거래에서 바가지를 씌우게 된다면 이것은 결국 장기적으로 보면 자기 자신들의 이익을 해치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 되는데 그렇다면 소비자들이 흔히 소비하는 경우에서 서비스가 만족하지 못할 정도가 모두에게 손해가 된다는 결론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바가지 횡포가 극성을 부린다면 결국에는 모두의 부가 줄어들고 말 것이다.  아담 스미스는 모르는 사람에게도 바가지를 씌우지 않는 것이 정당한 거래이고 또 이래야 제대로 된 사회라고 주장했다.  다시 말해 한 쪽을 일방적으로 손해 보게 만드는 것은 그런 사회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을 주장한 것이다.  이것이 시사하는 바는 어느 한 쪽이 손해 보는 거래는 결국에는 양쪽 모두에게 손해가 된다는 것을 증명한 것이다.

 

2번째 원칙은 자선

동정심은 배고픈 사람에게 남는 빵을 갖다 주고, 옷 없는 사람에겐 여분의 옷을 주는 선행을 베푸는 것을 말하는데 이것은 사회가 꼭 절대적으로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자선은 있으면 더욱 좋은 장식품이지만 꼭 있어야 할 기둥이 아니라고 아담 스미스는 인식하였다.

 

3번째 원칙은 정의

아담 스미스는 정의란 사회를 지탱하는 중심 기둥이라고 인식하였다.  그에 따르면, 정의는사회를 지탱하는 중심 기둥 main pillar that the whole edifice”이고, 따라서정의가 없으면 사회가 망하게 됩니다 the pre-valance of injustice must utterly destroy it.”

 

자선과 선행을 베푼다면 칭찬을 받아야 마땅하다.  왜냐면 꼭 해야 할 일을 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가 선행을 베푸는 사람에게 표창과 훈장을 주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아담 스미스에 따르면, 정의에 어긋난 일은 반드시 벌을 받아야 함이 마땅하다.  그는 정의를 지키는 일은 정부의 책임이라고 주장했다.  후대에 막스 베버가 파악한 것과 마찬가지로, 법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으면 자본주의가 발생할 수 없다고 인식했다.

 

인터넷 세대는 단순 소비자가 아니라 <Prosumers>

 

인터넷 세대는 신문이나 광고를 그저 그대로 믿지 않는다.  물건 하나를 살 때라도 하다못해 검색이라는 것을 해보고 아니면 최소한 동료네티즌의 의견을 참조한다.  자기 의견을 피력하는 수단도 동영상, 대시보드, 게시판, 블로그, podcast SNS 수단은 실로 다양하다.  사람들은 더 이상 가만히 앉아서 눈팅만 하고 있지 않다.  단순히 정보를 읽고 듣고 보고 있지만 않는다.  수동적으로 서핑만 하는 것도 아니다.  대신 서로 동료처럼 나누고 사귀고 서로 협력하는 것이 인터넷 세대의 모습이다.  그리고 참여하는 것이다.  지나가나가도 최소한 댓글을 하며 참여를 하는 것 즉 새로운 생성거리를 만드는 것이 인터넷세대이다.  그래서 인터넷은 정지된 명사가 아니라 움직이는 동사라고 위키 파운더는 말했다.  디지탈 세대는 참여하고 협력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 것이 몸소 베어있다. 한꺼번에 인터넷 창을 다중으로 띄우며 메신저도 하며 다른 업무도 훌륭히 할 수 있는 멀티능력을 가지고 있다.  스피드, 자유, 공개, 변혁, 자유이동, 자기독창성, 재미나게 즐기는 것 등이 인터넷 세대가 추구하는 가치들이다.  Remix는 카피가 아닌 팝 문화에 해당하고 사회 네트워크를 형성한다.

 

이처럼 인터넷 세대는 단순 소비자가 더 이상 아니다.  Consumer 소비라는 말은 그 어원이 “Con-sumere”로써 쓰고 없어 버리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이제는 단순 소비자가 아니라 함께 참여하고 같이 만들어낸다는 의미해서 consumer란 말 대신에 prosumer 란 말이 등장했다.  (Producer + consumer=pro-sumer). 단순 소비자가 아니라 같이 생산물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SNS 글은 단순한 한 개인의 소비행위가 아닌 것이다.  디지탈 경제 the digital economy” 책에서 생산자와 소비자의 한계가 불분명해지는 것을 “presumption” 개념을 주창하며 잘 설명하였다.  인터넷 세대는너와 나가 아닌우리가 설정 모드로써, 단순 소비자가 아니라 함께 참여하는 <우리 WE> 모델이다. 

 


 

11. 개인은 사회적 문화적 소산

 

사람들이 어떤 하나의 사건에 대해서 나타내는 의견은 지금까지 사회에서 배우고 읽힌 지식과 경험의 소산에서 나온다.  우리가 쓰는 말과 글은 한 개인의 머리 속에서 한 순간에 튀어 나온 것이 아니라 그 동안 형성되어 온 사회적인 영향의 소산이다.  제 아무리 한 사람의 주관적인 예술적 작품이라고 해도 거기에서도 사회적인 영향력이 들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유행이나 추세를 거부한 작품일지라도 거기에는 지금껏 수 많은 사람들의 생각과 영향을 받아서 탄생한 것이다.  어떤 비판을 하려면 우선 알아야 가능하다.  경제도 또한 마찬가지이다. 사회적 인프라가 구성되어 있어야 가능하다.[82]  인프라는 사회적으로 도움을 받는 과정을 보여준다.  경제 개발은 한 개인의 힘으로는 불가능한데 그 이유는 자본조달은 사회적 구조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은행과 증권시장이 잘 갖춰지지 않으면 자본조달을 하기 어렵다.  한 개인의 능력뿐만 아니라 그 개인의 능력을 밑받침 하는 사회적 인프라의 구축이 필요하다.  글래드웰 Gladwell이 주장하다시피 개인능력이란 사회적 결과물에 지나지 않는다.  마이크로 소프트회사는 빌 게이츠가 아니었다면 탄생할 수 없었지만 만약 빌 게이츠가 한국인이었다면 마이크로 소프트 회사를 탄생시킬 수 없었을 것이다.  글래드웰은 "아웃리어 Outliers"에서 비범한 천재들이 어떻게 등장할 수 있는지를 잘 설명해 주었다.  그는 누구나 한 가지 분야에서 10년 동안 연마하면 빌 게이츠같은 천재가 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러다 시운만 좋으면 누구나 갑부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최소한 이 경우 미국처럼 사회적 인프라가 구축되었을 경우에 가능하다는 얘기이다.

 

국가는 국민과 ‘신탁 관계에 있기 때문에 국가는 그 의무를 다해야 한다.  국가와 국민의 관계는 국가가 국민에게 봉사하는 봉사자 servant 관계이지 국민이 국가의 노예가 되는 관계가 아니다.  이러한 국가와 국민의 관계를 확인하기 위해서 대통령을 국민의 직접 선거로 뽑는다.  그리고 3권분립을 헌법으로 마련해 놓고 있으며 누구나 법앞에 평등하다고 법에 의한 제도적 통치를 요구한다.  공직자는 항상 감시를 받아야 하고 언론의 자유가 보장되며 정보 공개 정보 접근을 허용해야 한다는 장치를 두고 있다.

 

권력은 부패하기 마련임으로 국가가 당연히 해야 될 국가적 의무를 다하고 있는지를 늘 체크하고 감시기능을 게을리지 말아야 한다.  감시기능이 작동하기 위해서 정부가 정확한 정보를 적시에 즉시 공개할 의무가 있다.

 

국가는 법을 만들고 세금을 거두고 국가예산을 집행한다.  또 다른국가가 해야 할 일은 국민을 계도하는 to inspire 일이다.  국가는 국민을 정신적으로 이끌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데 여기에서 교육 사회 문화 등 보이지 않는 부분이 매우 중요하다.  왜 국가가 의무적 무상 교육을 실시하는가?  교육은 경제적 측면에서 보면 ‘투자개념에 속하고 또 사람을 인적 자원이라고 표시하듯이 미래에 수익을 창출해 낼 ‘자산개념에 속하기 때문이다.  정보기술, 교육, 문화는 한 번 쓰고 버리는 단기적 이익의 개념이 아니라 미래 세대를 이끌어가는 투자와 자산의 개념에 속한다. 

 


 

 

12. ‘나눔 경제우애 복지 국가

나눔의 경제

할프런은 옥스포드대 경제역사학자인 오퍼 Offer가 주장한 “나눔의 경제 the economy of regard”의 중요성을 강조한다.[83]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  사람들은 가족, 친척, 친구 등 형태로 서로 관계를 맺고, 서로 신뢰하고, 때로는 서로 의지하면서 살아간다.  예컨대, 명절 때 서로 선물을 주고 받고, 취미생활을 하고, 아이나 늙은 부모를 보살피고, 친구들과 저녁을 먹곤 한다.  이러한 부분은 돈과 결부되어서 일어나지 않고, 사람들과의 신뢰적 관계에서 일어난다.  “나눔의 경제”란 이와 같이 사람들이 사회 속에서 서로 관계를 맺고 살아가면서 금전적으로 결부되지 않는 형태로 일어나는 형태의 경제를 말한다.  이러한 나눔의 경제는 실물경제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이런 나눔의 경제 부분이 국가 경제에 매우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GDP지표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GDP는 경제적으로 의미 있는 가격 economically significant price으로 판매되거나 처분되는 시장 산출물만을 기준으로 하기 때문이다.  국가의 부를 총합하는 개념으로써 GDP는 이러한 한계가 있다.  GDP는 국가의 “숨겨진 부hidden wealth”를 나타내지 못한다.  우리나라의 전통미풍양속인 품앗이같은 형태나, 또는, 어린 아이를 서로 돌봐주는 경우, 이것을 비용 가치로 환산하면 국가적인 부는 크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어린아이 보육에 관한 통계조사의 보면 나눔의 경제의 중요성을 인식할 것이다.  2010년 조사연구에 따르면, 어린아이를 친정부모나 시부모에게 맡기는 경우가 64.5%에 이르는데 아이를 어린이 집에 맡기는 경우 GDP 성장 통계 수치에 기여를 하게 되는 반면 부모에게 맡기는 경우는 GDP 성장 경제 통계 수치에 잡히지 않는다.  조부모가 손자손녀를 돌보는 것이 어린아이의 성장에 더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경제성장과는 무관하게 여겨지고 있다.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사회적 자본이 국가의 부를 결정하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차지한다.  사회적 자본이란 개인과 지역사회를 형성하는 사람들의 사회 협력적 행동을 장려하거나 제재하는 사회적 네트워크의 제도적 형태”라고 정의한다.  할프런은 국가의 부가 많이 숨겨져 있고, 또 지금까지 국가는 이런 숨겨진 부 hidden wealth”를 너무 과소평가해 왔다고 지적한다.

국가는 나눔의 경제와 사회적 자본의 중요성을 깨닫고 이를 향상시키는 경제사회 정책을 펼쳐야 한다고 그는 주장한다.  미국에서는 “넛지 경제학”이 할프런이 주장하는 정책과 같은 방향의 내용을 담고 있다.

우애 복지 국가 affiliative welfare

헬프런에 따르면 영국의 직장인을 대상으로 통계조사를 실시해 본 결과 업무 시간에 집중하는 시간은 총 근무시간 중의 ¼ 밖에 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23%).  이것은 풍요한 부 속에 숨어 있는 한 부분이다.  이런 숨어 있는 낭비 부분이 찾아내면 삶의 행복도를 보다 높일 수 있다.  낭비시간은 메신저나 핸드폰 등 인테넷 신기술이 발전한 현대 환경에서 업무 집중도의 개선필요성이 요구된다는 것을 시사해준다. 예컨대 일찍 퇴근하여 다른 사람들을 위한 생산적인 시간을 활용할 수 있는 여지가 크다는 것이다.  풍요 속에 숨어 있는 부를 찾아내면 상부상조하는 시민으로 만들어갈 수 있다.  국가의 개입없이 시민들이 스스로 함께 보다 좋은 사회를 만들어가게 지원하는 개념인 “호혜 복지 국가”는 지방 분권 시민 참여 시스템이라고 말할 수 있다.  국가는 4E (Enable, Encourage, Engage, Evaluate: 지원하고 권장하고 참여하고 평가하는 시스템)정책 즉 국가는 보다 좋은 지역사회를 만들어 가기 위해서는 시민들의 변화를 유도하고 자발적인 참여가 일어나게끔 봉사의 공공 정책을 구축하여야 한다고 할프런은 주장한다.

할프런은 결론에서 나눔의 경제와 사회적 자본을 보다 확충하고, 정보는 공공재로써 인식하여 시민에게 정보 제공 서비스를 높이고, 소득불평등을 해소하여야 하고, 환경을 보호하여야 한다는 것을 주요 정부 정책 방향으로 제시하고 있다.  정부 주요 목표는 경제성장이 아니라 국민의 행복도를 증진하는 것에 두어야 함을 강조한다.[84]

 

  

13. 의도하지 않는 결과의 법칙

 

로마 시대 마리우스 개혁과 의도하지 않는 결과의 법칙

 

마리우스 Gaius Marius 당시의 로마 군제는 징병제로써 군인으로 복무하려면 토지 보유 조건 등 일정한 자격 요건을 필요로 하였다.  군인으로 전쟁에 참가해서 승리하면 전리품을 얻을 수 있는 특권이 있기 때문에 군인이 되기 위해서는 일정한 자격이 요구되었다.  일정한 자산이 없는 무산계급(당시 인구조사 시 5단계 구분에서 최하층을 차지한)을 프롤레타리아라로 불렀다.  이들 프롤레타리아 계급은 군인 징집에서 면제되었다. 

 

군인이 될 수 없다는 것은 전리품을 챙길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므로 이들 무산계층은 영원히 가난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평민층의 지지를 받은 마리우스는 로마에 정복된 외국인이나 최하층 빈민 계층에게도 군인으로 복무할 수 있게 하여 군인 충원을 지원병제로 바꾸는 군대 개혁 정책을 실시하였다.  징병제 대신 지원제로 바꾸는 군대개혁이 단행되자 그간 도시로 몰려든 다수의 빈민들이 군인으로 대거 지원하였고 이에 로마 정권은 잦은 전쟁으로 절대적으로 부족한 군인을 충당하였을 뿐만 아니라 심각한 빈민의 문제도 해결할 수 있게 되었다.  마리우스의 군대 개혁으로 도시의 가난한 빈민들이 군대 충원으로 흡수되었고 이들은 의무 복무가 아니라 일정한 봉급을 받는 직업군인으로써 복무하였기 때문이다. 

 

마리우스의 군대 개혁 중에 또 하나 중요한 것은 군단의 조직 구조를 대대(코호르스) 편제로 바꾼 전법 개혁 그리고 군인의 이동을 빠르게 하기 위해서 식기와 모포 등 먹고 자는데 필요한 필수품을 자신의 등에 직접 둘레 매게 한 전술의 개혁이었다.  마리우스 군대개혁 이전까지는 군인의 전투야영 물품은 별도의 마차에 실어서 보병의 이동에 뒤따라가는 마차 부대가 조달하는 형태이었는데 이러한 구조로는 군대의 이동이 느릴 수 밖에 없었다.  전투의 승리는 속도가 결정한다는 원칙은 동서고금의 역사를 통해서 쉽게 입증된다. 오늘날 야전 군인의 기본인 식기와 모포와 전투식량을 더블백(배낭)에 넣고 직접 매고 행군하는 것도 바로 마리우스의 군대 개혁에서 연유한 것이다. 

 

대대 구조는 3개의 중대(마니풀루스)로 이루어진 부대였는데 이는 오늘날 군대 조직 편제의 기본으로 자리잡은 초기 형태이다. 마리우스는 이전의 군단 조직이었던 웰리테스와 3개의 전열(하스타티, 프린키페스, 트리아리)의 구분을 폐지하고 대신 모든 군단병에게 똑같은 무기와 장비를 지급했다.  이전의 벨리테스와 3개 전열 구조는 병사들의 재산과 경험에 따라 구분 배치되었으나 마리우스의 개혁에 따라 군단병들이 전투대열을 만들 때 누구나 똑같이 대우받았다. 

 

이러한 마리우스의 군제 개혁으로 로마 군대는 더욱 유연하고 빠르고 강력해진 군대로 거듭나고 성장 발전하였다.  마리우스의 군대 개혁은 성공적이었고 마리우스 개인적으로도 전쟁의 승리를 발판으로 6번이나 집정관 consul에 선출되는 등 정치적 성공을 이루었다.  그런 그가 국민의 나이 들어서 이미 은퇴한 마당에 자기의 정치적 적이 정권을 잡고 있는 상황을 참지 못해 자신의 영광스런 과거의 힘을 다시 복구할 수 있을 것으로 어리석게도 순진하게 믿고서 다시 정계에 복귀하였다.

 

그가 정계에 복귀하여 지배층(원로원)이 지원하고 또 법적으로도 정식 군사지휘관인 술라(그는 젊었을 때 마리우스의 참모로써 마리우스의 부하로 근무하였다)를 지휘관에서 물러나게 하는 법을 통과시켰다.  만약 마리우스가 민중의 지지를 업고서 군사령관을 물러나게 하는 법이 통과되면 그 최고군사령관이 순순히 응할 것으로 판단했었다면 그건 (술라 같은 군인과 지배계층의 권력 의지에 대한)인간 본성을 잘못 파악한 것-너무 순진했다 (“innocent and transformed Marius”). 

 

한 도시가 전쟁으로 폐허가 될 때 그건 사람의 의지에 의해서가 아니다.  전쟁 고아가 생기는 것도 그 고아는 아무런 죄가 없이 그저 당한 것이다.  가난 또한 마찬가지다.  근대 국가 발전으로 가난의 문제를 국가 개입으로 해결해 낸 영미국의 빈민구제법의 기본적 이념은 동양적인 가난은 나라도 어찌할 수 없다며 개인 책임으로 전가하는 것이 아니라, 한 때 국가의 최고 지도자였던 마리우스가 헐벗고 굶주리게 된 바로 그 철저하게 변모한 transformed” 모습의 사례처럼 가난은 개인의 책임이 아니라는 즉 개인은 자기 책임이 없는 곳에서도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는 죄 없는 innocent” 개인의 존재를 수긍한 발전적 전환에 있었다. 

 

이런 확률적 무작위성의 개념은 보험의 발전과 밀접하게 연관 되어 있었다.  맨 처음 보험의 발전 영역을 이끌었던 해상 보험에서 조난사고는 선장의 책임이 아니라 인간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천재지변으로 일어나기도 하며, 태풍이 불거나 쓰나미가 밀려온 현대의 자동차 사고 경우처럼 전적으로 운전자 개인의 책임을 묻기 어려운 경우도 흔하다.  산업혁명과 보험의 발전으로 흉년 기근이 들어도 사람을 죽여서 제사를 올렸던 미신이 지배하던 구시대에서 통하던 천벌 개념이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된 것이다.

 

현재 헐벗고 굶주린 마리우스가 자기 의지로 그렇게 됐겠는가?  그게 아니라 군대가 반란을 일으켜서 내전이 일어난 결과 타의에 의해서 그런 신세와 처지로 전락한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폐허처럼 변모한 모습에 책임 없는”, “죄 없이 당한”, “순진해서 당한마리우스 (또는 무고한 마리우스의 쇠퇴한 모습”)으로 번역하는 것이 보다 역사적이고 문맥의 의미를 살리는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순진해서 당했다는 해석은 당시 로마와 카르타고의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로마는 카르타고에게 전쟁을 피하려면 모든 무기를 로마에게 넘길 것을 최후 통첩하였는데 카르타고는 정말로 전쟁을 원하지 않았으므로 그에 따라 로마의 조건대로 수많은 무기를 자발적으로 모두 로마에 넘겨 주었으나 로마는 이제 전쟁 무기 없는 카르타고를 무참하게 짓밟아버리고 온 도시를 쑥대밭으로 만들어 버렸다.  이런 역사적인 사실을 상기한다면 “innocent and transformed”순진해서 당한이라고 번역하는 것은 큰 무리가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실 군대 실권자 술라 Sulla를 해임하려는 법이 통과되자 군의 신뢰와 지지를 받는 술라는 자기 휘하 군대를 동원하여 수도 로마로 쳐들어왔다.  당시 술라 군대는 아직 이탈리아 본토를 떠나지도 않았고, 군대를 장악하고 있었던 실권자는 술라이었으며 그는 지배계층인 원로원의 지지를 받고 또 이들의 이익을 대변하고 있었다.  따라서 마리우스의 정세 판단 미숙 또는 개인적인 욕심에 의존한 노욕의 결과 로마 역사상 처음으로 수도 로마의 길거리에서 전투가 벌어지는 내전이 일어나게 되었다고 해석된다. 

 

마리우스의 술라 축출 시도는 내전에서 군대와 지배계층의 지지를 받은 술라의 반발을 받고 내전이 일어나 마리우스는 패퇴하여 로마를 도망쳐 빠져 나와 시칠리아 섬으로 거기서 다시 아프리카 카르타고까지 힘겨운 망명의 길을 걷게 되었다.  망명길의 마리우스는 한 때 승승장구한 장군의 처지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추위와 굶주림으로 심한 고난을 겪게 되었다.  마리우스는 폐허가 된 카르타고에서 자기의 쇠락한 신세를 되새기고 된다. 

 

이와 같이 마리우스의 개혁 조치 단행의 결과에서 예상치 못한 결과가 나타났다.  이전의 자기 토지를 가진 사람만이 의무복무 시민징병제하에서는 자신의 재산을 지키기 위해 군단에 편입되고 출정하였다.  하지만 직업 군인이 된 도시 빈민 출신 병사들은 국가에 대한 충성심과 책임감-즉 공익 개념-이 무뎠다.  직업군인은 자신의 생계를 책임져 주는 자신의 직속 지휘관에게 충성을 바치는 것이 보다 중요했던 것이다.  자신의 생계를 책임져 주는 장군과 그에게 봉사하는 군인은 사용자와 피사용자의 관계를 맺게 된 것이었다.  먹고 살기 위해서 장군 휘하로 편입 종속된 것이다.  이렇게 군인이 자신의 이익 추구에 따라 자신의 지휘관에게 충성하는 군대가 사병화된 문제점이 나타났다.  이것은 마침내 변방의 군대가 루비콘 강을 건너 수도 로마로 진군하여 정권을 장악한 줄리어스 시이저의 사례가 말해주듯 사익에 집착한 군인들이 쿠데타를 일으키게 되고 이에 따라 공익에 기반한 로마 공화정이 무너지게 되는 예기치 못한 결과[85]를 낳게 되었다.  인간 본성의 결과일까 아니면 역사의 아이러니라고나 할까?


 

 

가이 팍스 데이유래

 

종교혁명 당시 영국은 당시 제임스 1세 왕이 영국 성공회의 수장으로 올라서고 로마 가톨릭으로부터 독립하게 되자 로마 교회는 이에 저항하였다.  반란 음모자들은 영국 의회 의사당 건물 지하실을 임대하고서는 거기에 화약고를 몰래 설치해 놓고 있다가 왕이 참석하는 1605 11 5일 의회 개회식에 맞춰 폭약을 터트려 국왕과 정부 요인들을 일시에 암살할 음모를 꾸몄으나, 거사일 직전에 발각이 되어 미수에 그쳤던 정치적 종교적 반란 사건이 일어났는데 이를 통상의사당 폭파 음모 사건 Gunpowder Plot”이라고 부른다.  이 반란 음모 발각 사건을 주요 가담자의 이름을 따서가이 팍스음모 사건이라고도 부른다.

 

가이 팍스 사건에서 의사당 폭파 임무를 실행하는 주요 인물은 스페인에서 용병으로 활동하던 가이 팍스 Guy Fawkes (1570~1606)으로 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반란을 기도한 실제 주요 인물들은 로마 카톨릭 예수회 신부들과 이들과 연계된 귀족 계급들이었다.  반란 음모의 핵심자급이었던 캣츠비 Catesby는 귀족출신으로 왕과 함께 사냥을 할 정도로 고위급에 속했다.  주요 실행 요원으로 잉글비 Ingleby는 귀족의 친척이었고, 딕비 Digby는 기사계급에 속했다.

 

당시 대법원장 코크의 심문으로 이루어진 재판 내용 (처음에 체포된 음모가담자가 묵비권을 행사하자 정보를 캐내기 위해서 갖은 고문을 자행했고, 딕비는 능지처참의 형벌을 받았으며, 음모 주동자들의 목이 효수되었다)이 널리 알려졌고, 또 화약 폭파 실행조 중에서 누군가가 거사일 열흘 전에 지배층 귀족에게 거사가 예정되어 있으니 몸을 보존 preservation하기 위해서는 의회 행사에 참석하지 말라고 귀뜸해 준 익명의 편지 (“몬티글 Monteagle 편지”)로 인해서 폭파 음모가 사전에 발각된 (음모에 일부 가담한 일부 귀족들은 혐의가 밝혀졌어도 사형을 면하거나 벌금형 등으로 끝났다) 내부자의 배신에 의한죽음의 편지”, 종교 개혁 당시 탄압당하자 이에 반란을 기도한 로마 카톨릭 예수회 신부들의 수도원 도피 그리고 수도원에서 시중들던 요리사의 제보로 인해서 이들 음모자들이 체포되었다.

 

영국 정부에선 하나님의 도움으로 사전에 발각하여 감사하다는 의미에서 “Thanksgiving Act 1605” 법률로써 매년 11 5일을 기념일로 정했다.  이 사건에 대해 영국 의회는 현재까지도 역사성을 잘 간직하고 있다.[86]  민간에선 기이한 복장을 한 가이 팍스의 허수아비를 끌고 다니다 밤이 되면 불태우는 화형식의 풍습이 생겼다.  이런 풍습은 식민지 미국에도 전해졌고, 영국 미국뿐만 아니라 호주 뉴질랜드 등 영연방 식민지 국가들에서 오늘날까지 불꽃놀이 풍습이 전해 내려 오고 있다. 

 

그러다가 1843년 영국에서 지방정부 조례로 화형식을 금지시키기도 했는데 당시 영국에서 로마 카톨릭 교회의 부활 운동이 일어나자 1850년에는 카톨릭 대주교의 화형식을 벌어지기도 했다.  이런 측면에서 가이 팍스 데이는 가이 팍스를 기념하는 것이 아니라 그와 반대로 반란 음모를 꾸민 로마 카톨릭을 경계하고자 하는 반면교사의 의미를 들어 있다는 것을 쉽게 읽을 수가 있다.  로마 카톨릭이 탄압을 받자 쿠데타를 일으키려고 했으나 이런 반란 음모가 사전에 분쇄되었고 이로 인해 로마 카톨릭 신도들은 반란음모자의 배후세력으로 낙인 찍혀서, 한동안 변호사도 될 수 없었고, 군대도 지원할 수 없었고, 선거권도 박탈되는 등 엄청난 피해를 당했다는 역사적 사실을 충분히 새길 만하다.  인간의 일에는 우연이 작용하고 그로 인해 제 아무리 확실한 예측을 할 수 있고 선한 의도나 대의명분을 갖고 일을 추진하고 실행한다고 할지라도 예기치 못한 일이 벌어지거나 의도하지 않는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패착된 결과가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의도하지 않는 결과의 법칙

 

영국 의회는 현재도의회 폭파 사건을 교훈을 크게 챙기고 있는데 그 이유는의도하지 않는 결과의 법칙의 교훈을 챙길 수 있다는 것에 있을 것이다.  그리고 2001년의 이슬람의 뉴욕 쌍둥이 건물 폭파 “9.11 테러사건의 결과 그 반작용으로 이라크 전쟁으로 일어나 이라크가 초토화되는 비극이 수반되었다는 역사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  또 영국의의사당 폭파 기도 사건2011년 뉴욕에서 시위군중들이 월 스트리트를 점령하라는 구호를 외치며 빈부 격차 해소를 요구하는 가두시위를 벌일 때 가이 팍스가면을 쓰고 나타났던 이유를 연결시켜 생각해 보라.  가이 팍스의 역사적인 배경과 그 사건의 교훈을 제대로 이해하면 그것이 보인다.

 

인간사회에도 자연 법칙처럼 일정한 법칙이 작용한다고 (예컨대 적자생존이나 만유인력의 법칙) 보므로 인위적인 개입을 우려하는 것이다.  또 그 이유 하나는 인위적인 강제 개입을 급격하게 시도하게 되면 인간 사회의 본성상 아무리 선한 의도를 가진 시도라고 해도 결과는 전혀 반대로 엉뚱한 나쁜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는 점-이를 의도하지 않는 결과의 법칙이라고 부른다.

 

진화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즉 생명체의 형질에서의 변화가 발생하기 위해서는 변화를 발생시키는 원인이 존재하는 변이조건과 변화 발생한 이후에 다음 세대로 전달되는 유전 조건 이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진화의 조건은 일어나는 변화가 일어나야 할 뿐만이 아니라 그것이 후세로 유전되지 못하면 변화의 원동력은 사라지고 말 것이다.  진화가 일어난다는 사실 그 자체가 말해주는 것은 바로 다음 세대로 전달할 수 있는 불변적인 자기 복제의 능력이 생명체에게 있음을 말해준다.  이 변하지 않는 자기복제의 능력과 또 변형이 일어난다는 사실은 진화론과는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1차적인 그리고 2차적인 성격을 이해하면 이러한 모순이 해결된다.  즉 생명체의 1차적인 본질은 불변적인 자기복제의 능력을 갖고 있고, 진화를 가져오는 변화란 생명체의 내적 본성에 의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자기복제능력을 가진 생명체의 내적 본성을 방해하고자 하는 원인이 외부로부터 침입하여 교란시켜서 발생한다고 진화론은 가정한다.  우주자연질서의 우연의 법칙과 같은 맥락인 것이다.  생명체는 자기동일성을 계속 지켜가려는 자기복제 능력 이것은 1차적 원칙이고 차이와 변화가 일어나는 것은 2차적인 성질에 해당한다.  진화는 개별적 차이에 의해서 이뤄지는데 이러한 변이는 예측할 수 없는 우연한 미미한 변화가 서서히 축적되어 오랜 세월에 걸쳐서 진행되는 것이어서 사람들의 눈에는 가시적으로 보여지는 성향이 아니다.  카오스 이론의 나비 효과와 같이 미시적인 작은 변화가 거시적 차원의 엄청난 사건으로 발전할 수 있다.

 

투키디데스의역사에서 말하듯이, 인류의 역사상 전쟁과 음모는 끊임없는 인간 본성에 속하고 따라서 음모자보다 미리 발각하여 음모를 사전 분쇄한 사람이 영웅이 되는 것이 당연하다.  역사는승자의 기록이라고 하지 않는가!  그런데 가이 팍스 데이는 정부 요인을 암살하려다 거사일 이전에 사전 발각되어 음모자들은 처형된 사건인데, 왜 미수에 그친 음모 사건을 기념하는 것일까?  (하나님의 도움으로 사전에 발각하여 감사하다는 의미에서 “Thanksgiving Act” 라는 법률을 제정한 표면적인 의미 이외에).

 

이런 사고의 배경에는 프리스틀리의 필연주의 철학이 자리잡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영미인들은 선한 것뿐만 아니라 악한 것도 그 나름대로 어떤 의미가 있다고 여긴다.  악을 본받자고 나쁜 사건을 떠올리는 행사를 벌이는 것이 아니라, “선악이 개오사라는 우리 속담이 있듯이, 선은 선대로 좋고 악은 반대로 어떤 의미를 주기 때문에 사전에 조심하고 사전에 미리 손을 써서 방지를 하는 것이 보다 낫다는 교훈을 얻기 때문에 나름대로 의미(쓸모)가 있다는 것이다. 

 

“할로- hallow-ween” hallow신성시하다”, ween의도하다는 뜻이 결합된 단어다.  신성해야 할 할로윈 축제에 왜죽음의 귀신과 해골 등이 등장하는 것일까?  우리 사람들은흙에서 와서 흙으로 돌아가는존재다. (창세기 3:19).  우리 사람들은 죽으면 자연으로 되돌아간다.  “All go to the same place; all come from dust, and to dust all return.” (전도서 3:20.) 

 

계절이 바뀌는 11월에 벌이는할로윈 halloween” 축제의 기원도 비슷하다.  할로윈 축제 때 무서운 마녀 witches, 뱀파이어 vampires, 귀신 ghosts 등의 기괴한 복장으로 분장한 아이들이 집집이 돌며 “Trick-or-Treat”(무서운 해골 분장으로 협박하는 것은 모금을 목적으로 속임수 trick 쓰는 것이다) 하는 것은 의도하는 목적과 외양은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Guy (“가이로 발음)라는 단어는 가이 팍스 데이 기념일이 생긴 이후 등장한 기이한 옷차림의 남자를 지칭한 의미로 사용되었다가 세월이 흐르면서 일반적인 남자를 지칭하거나, 친구나 동료를 지칭하는 보통명사화되었다. 

 

가이 팍스 데이 때 어린아이들이 집집마다 돌면서 모금할 때, 이 헐벗고 굶주린 사람에게동전 한 푼 적선해 주세요 "A penny for the guy!” 라고 적선을 부탁하면, 이에 대해 어른들은 똥이 무서워서 피하나 더러워서 피하지 하면서 동전 한 푼 선뜻 내놓는 사람이 있을 테고, 또는 동냥할 때 옷이라도 좀 단정히 차려 입고 구걸하지! 뭐 이런 괴이한 차림을 한 놈에게 뭐 적선을 하라고? "A penny for the guy?"라며 달리 대응을 할 수 있을지 모른다.  아이들은 불꽃놀이 화약을 사는데 필요한 동전을 구할 의도를 가지고서 어른들에게 귀신 가면을 쓰고 협박(장난치는 것)을 하는 속임수에 해당한다.  그런 복장은 참새를 쫓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허름한 차림새를 갖추고 있는 허수아비와도 같다.  복장에 대해서 어른들과 아이들의 시선과 마음은 분명히 서로 다르게 해석할 수 있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는 속임수가 필요하기도 한데, 모금자는 모금을 달성하기 위해서 협박과 애원 사이에서 밧줄타기를 하는 것이다.  음양의 이치처럼, 양면의 칼날처럼, 세상 일에는 양면의 두 가지 대립되는 속성을 가질 수 있다.

 

왜 가면을 쓰는가? 

 

가면을 쓰는 것은 성경 시대 때부터 존재했고 가면을 쓴 자를 위선자라고 비난해 왔다.  가면을 쓰는 이유는 본심을 속이기 위해서였고 정체를 숨기기 위해서였다.  데모할 때는밴대나 수건을 쓰거나월 스트리트를 점령하라!”의 시위대가 익명의가이 팍스가면을 쓰면서 가두 시위를 벌인 것처럼 바틀비가 자신의 정체를 스스로 말해주려고 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은 자신들의 신원이 밝혀졌을 때의 역풍을 우려하기 때문일 것이다.  대개 사건 주모자가 당국의 취조 심문에 순순히 응하지 않는 것은 스스로 죄를 지은 것을 알고 있거나 또는 최소한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가면을 쓰는 또 다른 이유 하나를 보자.  가면을 쓰는 안동 화회 탈춤 놀이를 상기해 보라.  탈춤놀이에는 적나라한 사회 고발과 사람들의 권력 본능을 질타하는 숨어 있는 전달 메시지가 들어 있다.  일본의 전통가극 가부키歌舞伎나 노能에서 가면을 쓴다.  진정한의도는 복장이 아니라 숨어 있는에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가면을 쓰지 않으면 사람들은 옷이 날개라고 하여 화려한 치장이나 얼굴이 어떻게 생긴 누구인지에 대해 온통 시선을 빼앗길지 모른다.  따라서 말하고자 하는 화자의 진정한 의도가 잘 전달되기 위해서도 가면을 쓰는 것이 필요하고 보다 효과적이다.  사람들이 전달하고자 하는 핵심적 메시지는 때로는 숨어 있는 경우가 많고, 만약 발각되면 생명의 위협이나 어떤 피해를 입을 두려움이 있는 경우 그런 사회적 구조니 관계에서는 의도와 표현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또 만유인력이나 중력의 법칙처럼 항상 거기에 있는 것이라 하더라도 사람이 발견할 때까지 숨어 있는 경우도 많다.  보이지 않는 손 the invisible hand”이 작용하는 우주질서와 인간 사회의 본성을 이해한다면 말이다. 

 

흔히 사람들은 사건의 실체를 이해하는 수단은 밖으로 드러난 공식적으로 작성한 문건에 의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그 속에 흐르는 내막을 들쳐 보면 진실은 외부로 들어난 외양과는 다르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게 되는 경우가 흔하다.  가이 팍스 가면은 창백한 얼굴에 검은 먹 같은 콧수염이 달린 피에로 같은 모습인데 사실 가이 팍스는 피에로 같이보이지 않는 손에 의한 거대한 음모를 실행하는 하나의 부품에 불과한 위치이었다.  영국에서 최고의 지위를 상실하게 된 로마 카톨릭 고위 성직자들이 의회 개원일에 맞추어서 국가 주요 인물들을 살해할 반란 음모를 꾸몄고 (1884년 갑신정변 때 정부 요인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우정국 개국 일을 쿠데타 거사일로 정한 것과 마찬가지로), 가이 팍스는 돈을 받고 그 음모를 대신 실행한 행동책에 지나지 않았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반란 기도 사건에는 배후 세력이 숨어 있는 경우가 많았고 또 그런 음모가 발각되고 나서 배후 세력 조직을 일망타진하려는 살벌한 검거 색출 역풍이 부는 경우가 많았다.  반란은 혼자 실행하기 힘든 속성을 가졌기에 반란이 일어나면 그것은 한 개인의 일탈 행동으로 치부하기 어려웠다.  따라서 반란 주동자나 반란 의도를 끝까지 찾아 내고자 고문까지도 서슴없이 자행했던 것이 지배권력의 속성이었다.  역사를 통해 보면 권력 세계에는 원초적 인간 본성이 결부되어 있고, 또 그것을 획득하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음모와 배신이 끊임없이 일어난다.  이러한 권력과 탐욕의 세계에서 사람들은속마음겉보기가 서로 다르게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겉 모양새로는 속 마음을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이것에 대해서는 일본문화의 특징의 하나로써 혼네다테마에의 개념이 잘 알려져 있다.

 

 


 

14. 소크라테스와 인터넷 시대

 



 

2500년 전 당시 그리스는 황금 문명을 꽃 피우고 있었다.  이 때 소크라테스가 있었다.  소크라테스는, 오늘날 학생과 제자가 서로 묻고 대답하는소크라테스의 토론대화법이라고 알려진  ("하바드대학의 공부벌레들" 영화에서 사례를 잘 설명하고 있다) 지식 탐구의 새로운 방법을 도입함으로써 위대한 철학자의 반열에 올라서게 되었다.  당시 소크라테스의 토론법은 다른 연설가들이 군중 앞에서 강연을 하는 방식과는 전혀 다른 혁명적인 방법이었다.  소크라테스는 아테네 도시 속에서 모든 사람들에게 토론하고 대화하는 것에 관심을 두고 진리는 서로간의 토론과 대화를 통해서 습득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소크라테스 자신은 새로운 진리의 발견이라고 믿지 않았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무슨 새로운 지혜를 발견한 것은 아니라고 보았고 자기 생각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들은 것이라고 말했다.  소크라테스 자기 자신 또한 무슨 큰 지혜를 가진 대단한 사람이 아니라고 스스로 믿었다.  소크라테스에게 "당신은 무엇을 알고 계십니까?"물으면 "나는 아는 것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했던 소크라테스이었다. 

사람은 지식을 통해서 자연을 극복하게 된다.  지식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서 얻어진다.  다른 사람과 관계되어 있는 상대적인 관계이다.  무인도에 표류한 "로빈슨 크루소"가 다른 사람을 만나기 전에는 그의 삶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우리는 사람을 만나서 우리는 지식과 삶의 의미를 얻게 된다.  소크라테스의 기본적인 생각은 바로 이러했다.  다시 말해 다른 사람의 생각을 듣고, 친구를 사귀며, 지적 자극을 받아 자신의 발전을 이룬다고 보았다.  소크라테스는 사람들이 자신의 발전을 이룰 수 있는 길은 다른 사람들과의 대화에 있다고 여겼다.  사람들과 함께 섞여 살며 지혜를 찾았던 소크라테스는 그의 새로운 토론 대화법으로 아테네 사람들로부터 큰 인기를 끌게 되었다.   소크라테스 제자 중  "패드라"라는 한 사람이 있었다.

 

어느 날 출근 길에 소크라테스가 패드라스와 마주쳤다.  소크라테스가 말했다.  패드라스, 그 동안 잘 안보이던데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느냐?  지금 어디로 가느냐?” 어린 소년 패드라스가 이렇게 답했다.  오전 내내 라시아스의 연설을 듣고 있었어요.  지금 성문 밖으로 산책을 나가는 중이에요.  친구 아쿠메너스가 충고하기를 폐쇄한 성곽 안에서 있는 것보다 확 트인 시골의 맑은 공기를 마시는 것이 훨씬 좋다고 했어요.” 

 

바로 그날 패드라스는 유명한 연설가인 Lysias 연설을 듣고 그의 연설에 큰 흥미를 느꼈고 그 연설내용을 머리 속에 암기하고자 했다.  그러나 사람들이 번잡거리고 4각 건물에 막힌 아테네 도시 안에서는 머리 속에 기억이 잘 들어오지 않았다.  그래서 의사인 친구의 충고에 따라 성문 밖을 막 벗어나던 참이었다.  의사인 친구 아쿠메너스는 패드라스에게 나무와 숲이 있고, 실개천이 흐르는 한적한 시골로 나가서 바람을 쏘이면 머리가 맑아질 것이라고 충고를 했던 것이다. 

소크라테는 평소 성문 밖을 나가는 사람이 아니었다.  사람 만나기를 즐기는 소크라테스이었다.  그러나 어린 소년이 연설 라시아스의 연설 원고를 가지고 있다고 하니까 소크라테스는 생각이 달라졌다.  소크라테스는 언제 어디서 누구하고나 토론을 즐긴 사람이기에, 라시아스의 연설원고를 들으면 어떤 지혜를 얻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결국 어린 소년 패드라스를 따라서 성문 밖의 한적한 곳으로 함께 가는 것에 소크라테스는 동의했다.  소크라테스는 제자와 토론을 즐기는 편이라 지식을 얻을 목적으로 패드라스의 요청에 따라 한적한 시골로 나가기로 한 것이다.  소크라테스 입장에선 소풍이나 바람을 쐬러 가는 목적은 아니었다.  

 

Lysias 연설의 주된 내용은 "섹스"에 대해서였다.    "사랑하는 사람과 섹스를 하는 것이 좋으냐? 아니면 단지 욕구를 해소하기 위해서 사랑없는 사람과  섹스를 하는 것이 좋으냐?" 이런 청소년들의 현실적인 물음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이었다.  25백년 전 옛날이나 오늘날이나 청소년들은 섹스에 대한 관심이 무척 많다.  소크라테스의 사형 죄목이 어린아이들을 선동질했다는 것을 기억한다면, 소크라테스가 패드라스에 관심을 가진 이유를 이해할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나이 70세 때 시민들이 믿는 신들을 믿지 않은 불경죄와젊은이들을 타락시킨 죄를 범했다고 사형선고를 받았다.  당시 그리스는 배심원 제도를 택하고 있었는데 30세 이상의 명망있는 시민 501명으로 구성된 배심원들은 투표를 통해 소크라테스에게 유죄를 선고하였다.  유죄여부 평결 투표결과가 유죄 281표 무죄 220표이었음을 볼 때 소크라테스는 사형이란 극형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사형여부 2차 투표 배심원 투표에서도 사형찬성 36표 반대 140임을 볼 때 소크라테스가 죽음을 택한 것은 연결된 도시를 떠나 격리된 시골로 유배를 간다면 자신이 평생 동안 갈고 닦아온 진리탐구방법과 다른 사람들과 연결된 자기의 삶을 부정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은 요즘과 같은 인터넷 시대에서 연결된 "네트워크" 삶의 방식을 자신들에게는 큰 가치로 여긴 것이다.

 

수많은 연설가가 자신들의 주장을 알리고 있던 당시에 Lysias는 사랑하는 사람과 섹스를 하면 복잡한 감정이 관련되기 때문에 섹스욕구를 충족시키고 사랑없는 사람과 섹스를 하면, 감정적인 문제가 생겨나지 않을 것임으로 사랑없는 섹스가 더 나은 선택이 된다고 설파하였다. 

 

라시아스의 주요논점을 요즘의 예로 들어 설명해 보면, 중요한 시험를 앞두고 공부에 매진하고 있는 대학생이 사랑하는 애인과 섹스를 한다면 서로가 만족해야 되고 즉 희생과 부담이 따르게 되므로 성적 욕구가 날 때 차라리 애인 아닌 사람과 순수한 성적 욕구를 해소한다는 차원에서 섹스를 하고 나면 자기의 하던 공부에 방해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논리이다.  다시 말해 시험을 앞둔 학생들이 연애를 하면 공부에 방해가 되기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과는 연애를 하지 않는 것이 자기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도 옳다는 주장이다.  소크라테스와 라시아스의 연애관 즉 사랑에 대한 구체적인 논쟁은 다음 기회로 미루고 다시 주제로 돌아가서 이야기를 이어나가자. 

 

소크라테스와 패드라스는 성문밖으로 나가 일리수스강가에 이르렀다.  강가에 자라고 있는 큰 플라타나스 나무 아래 자리를 잡고 앉았다.  소크라테스가 패드라스에게 말했다.  여보게 사랑스런 제자여, 나는 지혜를 추구하는 철학자이잖아?  그래서 도시사람들이 내 스승이야.  시골의 자연 풍경이나 나무와 숲들이 나의 스승은 되지 못할 걸세.  내가 생각하기엔 나를 이런 시골로 오게 만든 것은 무슨 마법에 걸린 것 같아.  굶주린 소가 풀을 찾는 격이라고나 할까.  자네가 책을 들고 오지 않았다면 내가 따라 오지 않았을 것이야.  이왕 여기까지 왔으니 여기에 자리를 잡고 편하게 앉지 그래. 나는 편하게 눕겠네.  자네는 편한 자세로 내게 라시아스의 연설원고를 읽어주게나.”

 

우리 속담에 "사람이 나면 서울로 보내고 말은 제주도로 보내라"는 말이 있다.  우리 속담처럼 소크라테스는 자연으로부터는 하등 배울 것이 없고 그보다는 도시 속의 사람들에게서 모든 지식을 배울 수 있다고 여긴 사람이었다.  따라서 소크라테스는 평생 아테네 성문 밖을 나가본 적이 없었다. 그는 사람들과 섞여서 다른 사람들의 관심사를 캐묻고 대화하기를 즐겼다.  이것이 그의 진리탐구 방법이었고 이를 평생 동안 실천해 왔던 것이다.  이런 소크라테스이기에 나무들이 멋지게 어우르고 개천이 흘러서 풍광이 아름다운 자연 속에 나온 소크라테스이었지만 그는 별로 감흥을 느끼지 못한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오로지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삶의 의미를 찾을 수가 있었던 것이다. 

 

 서양의 소크라테스는 동양의 공자하고는 달리 학생들로부터 수업료를 받지 않았다.  공자는 신분지위의 고하를 막론하고 모든 사람을 자기 제자들로 받아들였으며 말린 고기를 수업료로써 일률적으로 받았다.  공자도 소크라테스처럼 제자들과 토론을 통해서 지식을 터득하는 방법을 적용했으나 소크라테스하고는 달리 사변을 중요시하였다.  공자는배우되 깊이 생각하지 않으면 체계적 지식을 가질 수 없고, 사색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공허할 따름이다. 나는 일찍이 종일토록 먹지도 않고 밤새도록 자지도 않고 사색하였으나 무익하였으니 배우는 것만 같지 못하다고 가르쳤다.  공자도 소크라테스처럼 사람은 사회 속의 관계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보았지만 구체적인 학문과 지식의 방법론은 차이가 있었던 것이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려면 어떤 도구가 필요하다.  원시인시절부터 인류가 자기가 아닌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하려면 자신의 의도를 알릴 어떤 도구가 필요했다.  이러한 도구 하나가 바로words”이었다.  사람은 말을 발명해 낸 순간 비로소 타인과 관계를 맺고 소통할 수가 있었다.

 

"" 이외의 다른 수단은그림이었다.  3만년 전 크로마뇽인이 그린 사냥 모습의 라스코 동굴 벽화가 말해 주듯이 그림을 그릴 줄 알게 됨으로써 인류는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의도를 전달할 수 있게 되었다.

사람들은 고구려 벽화처럼 완벽한 그림을 통해서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열어 나갈 수가 있게 되었다.

 

인터넷은이미지가 모두 함께 들어 있는 동시 연결 형태이다.  소크라테스의 애제자 플라톤이 쓴 패드라스-이 책에서 세상의 관심사를 해결하는데 참여하는 사람이 진정한 철학자라고 말하며 소크라테스와 패드라스의 얘기는 이런 말로 끝맺는다.  친구라면 서로 같은 점을 많이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이메일, 메신저, 게임, Mp3, 아이패드, 안드로이드, 갤럭시 등 현재 우리들은 길을 걸을 때도 네트워크에 연결되어 살아가고 있다.  만약 우리가 인터넷으로부터 갑자기 단절된다면,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는 유명한 연설로 미국 독립혁명을 일으킨 패트릭 헨리의 외침이 나오게 될까?  소크라테스처럼 다른 사람들과 연결되지 않으면 지식의 습득도 없고 삶의 의미도 없다고 볼 것인가?  아니면 패드라스처럼 한시도 끊임없이 연결된 번잡한 도시적 네트워크에서 벗어나 혼자 사색을 할만한 자기만의 공간과 격리가 필요할까?  인터넷은 바로 우리 자신에게 이런 질문을 하고 있다.  우리는 여기에 자기 스스로의 답변을 바로 할 수 있어야 한다.  바로 지금 이 순간, 당신은 누구인가?  소크라테스를 성문 밖으로 이끌어낸 패드라스인가?  패드라스에게 충고를 한 소크라테스인가?


 

15. 페이스북이 하바드대학에서 탄생한 이유

 

우리 사람들 사고방식은 컴퓨터 부팅 프로그램처럼 일정하게 입력내어 있어서 일정한 사고 패턴을 보인다고 한다.  다음 그림을 보자.  미국 대학의 심리학자의 실험연구에 이용된 설문 문항 중 하나이다.

 



 

닭과 젖소와 건초더미를 함께 그려 넣고젖소와 관계 있는 것끼리 연결하시오라는 질문을 했다.   이에 대해서 한국 중국 일본학생들 즉 동양인들은 젖소를 건초더미와 연결시켰다.  반면 서양인들은 젖소를 닭과 연결시킨 경향을 보여주었다.  왜 이런 차이를 나타내게 될까?  연구를 진행한 인지심리학 Nisbett는 결론짓기를 서양인과 동양인의 사고패턴이 다른 이유는 문화가 서로 다르기 때문이라고 한다.  정보해석을 하는데 있어서 서양인들은 대상을 범주화하는데 비해 동양인들은 관계를 보다 중요시한다고 말한다.  그림에서 서양인들은 같은 동물처럼 젖소와 닭을 연결하는 반면 동양인들은 젖소는 건초를 먹으니까 젖소하고 건초더미를 연결시킨다고 한다.

 

유명한 뉴욕타임즈의 칼럼리스트인 브룩스는 서양과 동양의 문화차이를 설명하는 글을 자주 쓰고 있다.  브룩스는 설명하길 서양문화는 개인주의를 강조하고 동양문화는 집단주의를 강조한다고 말한다.  집단주의는 남을 먼저 배려하기에 집단과의 조화를 중요시하는 반면 개인주의는 개인 능력을 우선시한다고 말한다.  미국의 유명한 영화감독인 앨런 우드가 천박한 미국 문화를 비판하며 보다 고상한 프랑스 문화를 존중한다는 일화도 잘 알려져 있다.

 

미국식맥도날드는 세계를 장악하고, 일본식스시도 세계화를 진행했으며, 한식도 아시아의한류의 단계를 넘어서 세계화의 길에 들어섰다.  청바지와 속옷 패션과, ‘내집 마련 주택 소유의식빚내서 집사는 부채추세는 세계 공통으로 유행하고 있다.  의식주뿐만 아니라 쓰고 말하는언어에서도 문화 차이는 그 벽이 허물어지고 있다.

 

중국은 집단사회주의적 사고가 강하다고 하지만 사실 1938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미국인 펄 벅의 소설대지를 읽어보면 미국보다 오히려 훨씬 더 개인주의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음을 알수 있다.

 

중국사람들과 섞여 살아보면 함께 떠들며 몰려 사는 것을 좋아하는 중국인들은 많은 사람들 속에서 태어나 자랐기 때문이지, 집단주의 공동체사회의 이념에 따른 것이 아님을 보게 된다. 

 

반면 서양은 개인주의에 따라 개인능력을 우선시한다고 하지만실용주의사고가 일반주류적인 사고라는 것을 안다면 서양은 개인주의보다 집단주의적 사고가 강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이라는 유명한 개념으로 잘 알려진 공리주의는 개인주의보다 집단주의에 기울어진 이념이다.    서양의 계몽주의 사상 자체가집단적 진보를 믿는 사고에 바탕을 두고 있다.  공리주의는 선험적인 개인주의를 강조하는 칸트의 목적론과는 대척점에 서있는 철학적 사고체계이다.   미국의 실용주의 철학은 바로 영국의 공리주의 철학의 미국식의 다른 이름에 불과하다.  

 

미국의 꿈 (아메리칸 드림을 장려할 때 광활한 서부개척을 할 때 사회적으로 필요해서 개인 능력껏 최대의 땅을 차지할 수 있도록 이념적 취지에서 아메리칸 드림을 강조한 것이다.  바로 미국사람들이 강조하는 개인주의는 사회적 필요에서 나온 이념이었다.

 

젖소를 닭과 연결시키는 서양인이든, 젖소를 건초더미와 연결시키든,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간 본성은 차이가 없다.  흑인이든, 백인이든, 황인종이든, “피는 다같이 붉다는 얘기다.  마찬가지로 동서양의 문화차이 존재를 거부하는 예는소셜 네트워크 문화에서 잘 볼 수 있다.  유투브도 서양인 미국에서 생겨났다.  개인보다관계(관시)’를 중요시하는 페이스북의 성공도 서양인 미국에서 생겨났다.  유튜브나 페이스북 이런 문화는 관계를 보다 중요시하는 네트워크 사고에 기반한다.  네트워크 사고는 동서양의 이분법적 차이를 무용하게 만든다.

 

부는 인간사회에서 각자의 협력을 통해서 만들어진다.  서로 통하는 행위는 사람들 사이에 약속인 것이다.  네트워크 사회에서는 필연적으로사회 정의공동 선을 추구하게 된다.

 

한 사회를 깊게 이해한다면, 미국식 개인주의는 한마디로환상이었음 알게 될 것이다.  동서양의 구분을 문화차이로 구분할 수 있다는 이분법적 사고는 인간본성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방해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왜 이런 설명들은 대중에게 어필하게 될까?

 

혈액형 구분으로 사람의 성격을 파악할 수 있다는 혈액형 운명론이 일본이나 한국 등 동양인에게 크게 어필한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런 4형 성격결정론은 사람이 자기 태어난 날짜로 운명을 점칠 수 있다는 별자리 점성술이 서양인에게 크게 어필하는 것과 별로 다르지 않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문화 차이보다인간 본성상의 같음에 주목하는 것이 보다 옳다고 생각한다.  아무튼 단순한 설명이 보다 설득력을 갖는 이유는 사람들의 이해력과 인내심이 생각만큼 크지 않다는 것에 있다.  복잡한 인간 사회를 단순하게 설명하지 않으면 어느 누가 귀를 기울이겠는가?  마르크스의 자본론이나 공산당 선언이 이론적으로 매우 정교해서 이해하기가 어렵다면 그토록 많은 사람들에게 어필했었겠는가?

 

우리사람들은 자기가 아는 것만을 자랑하고 싶어하고, 어려운 것은 회피하려고 한다.  한편무지한 자가 용감하다고 했는데, 레닌처럼 공산주의자들은 단순한 논리를 구사하며 무지한 노동자와 농민들을 솔깃하게 만든다.  우주의 비밀을 캔 천재과학자 뉴튼은 겸손하게 말했다. “한 사람이 한 시대에 걸쳐서 우주를 설명하기란 너무 어렵다.” 

 

뉴튼이 말을 빌려서 내자신의 부족함을 말한다, “나는 눈 앞에 떨쳐진 거대한 바다의 진실을 모르는 채, 해변에서 놀고 있는 어린아이에 불과하다.”

 


 

 

16. 인터넷 항해 시대

 

뉴질랜드를 맨 처음 항해한 사람은 누구인가?  뉴질랜드를 맨 처음 발견한 때는 언제인가?

 

뉴질랜드를 맨 처음 발견한 때는 현재 교과서에서 기술하고 있는 1642년이 아니다.  사실은 그보다 120년이나 앞선 1522년이다.  이를 밝혀주는 역사적 사실을 읽어보자.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서 세계를 오세아니아, 유라시아, 동아시아의 3국가로 분할 통치된다는 것을 그리고 있다.  오세아니아라는 국가는 영어를 쓰는 앵글로 색슨족이 통치하는 국가 즉 영미국 영연방국이고 동아시아는 중국일본한국 중심이고 유라시아는 소련을 포함한 통합된 유럽을 나타낸다면 조지 오웰은 오늘날의 세계 지배권력 지도를 미리 잘 내다본 것으로 생각된다.

 

국가라는 체제에서는 모든 것이 통제되고 있다는 것을 밝혀주는 소설이다.  특히 9.11사건 이후 세계 흐름을 본다면, 그리고 인터넷 글쓰기를 감시하고 금지하는 현실을 본다면, “1984”는 미래소설이 아니라 현재진행형 사실적 묘사라는 것을 인식하게 되고 따라서 자유민주국가도 전체주의 국가와 크게 다를 바가 없다는 현실에 전율을 느낄 것이다.

 

오세아니아 집권당은 "현재를 지배하는 자가 과거를 지배하고, 과거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한다"고 인식하고서 국가는 과거의 역사를 현재를 위해서 새롭게 조작해내는 시스템적 작업을 해내 가고 있다.

 

하나의 사실만이 진실인 과거의 역사적 사실을 두고서 대한민국의 학교 교과서에서 가르치는 것과 북한의 교과서가 가르치는 것과 중국의 동북공정 교과서가 가르치는 것과 일본의 교과서가 가르치는 것이 모두 다른 것이 현실이다.  이런 연유는 바로 조지 오웰의 견해를 보면 이해가 될 것이다.

 

역사는 바로 지배 계급과 지배 시스템이 조작하는 권력의 일부인 것이다.  푸코가 밝힌 것과 같이 학교도 권력을 행사하는 대표적인 시스템의 하나이다.  학교는 지배권력의 하나이다.  지배권력에 순응하지 하지 않으면 지배체제에 편입될 기회가 박탈되고 만다.  학교에서 배우고 가르치는 지식이 전부가 아닌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학교에서는 진실만을 가르치는 곳이 아니다.  학교시스템과 학교의 선생들은 미래의 순응체제를 길러내는 지배권력의 작업에 종사하는 일꾼일 뿐이다.

 

이런 배경 지식을 읽혔다면 뉴질랜드를 최초로 건설한 사람이 대영제국의 해군함대 선장인 캡틴 쿡 Cook이라고 학교에서 반복적으로 가르치는 그 이유를 알 것이다.

 

전세계에 걸쳐서 해외 식민지를 건설하면서해가 지지 않는 대영제국은 그 이전의 해양제패 세력인 네덜란드를 물리쳤고 네덜란드는 그 이전 해양제패 세력인 스페인과 포르투칼을 물리쳐야 했다.  17세기 세계를 지배하던 나라는 네덜란드이었고 네덜란드 사람인 "아벨 타즈만" "1642"에 처음으로 뉴질랜드를 발견하고스테이튼 랜드라고 이름붙혔다.  네덜란드를홀랜드 Holland”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네덜란드의 지명인질랜드를 따서새로운 New 질랜드Zealand”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이름처럼 뉴질랜드는 네덜란드 땅이어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18세기 세계를 장악한 대영제국은 그의 해군 선장인 제임스 쿡을 보내어 태평양을 항해하고 식민지를 건설하게 되는데 이 때 제임스 쿡 대영제국 해군선장이 뉴질랜드를 발견한 때가 "1769"이었다. 

 

최근 지진이 일어나 많은 피해를 본 지역인 뉴질랜드 남섬 지역인 크라이처치 지역을 프랑스가 점령하려고 하는 등 급박한 제국주의 세계정세에서 뉴질랜드를 지배하기 위해서 대영제국은 뉴질랜드 원주민인 마오리족과 국가 조약인 와이탕이 조약을 체결함으로써 대영제국의 식민지로 편입하게 되는데 바로 이 때가 "1840"이다.  이 때부터 역사는 대영제국의 일부로서 뉴질랜드 역사는 다시 쓰여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영국이 식민지를 건설하기 이전에 네덜란드가 먼저 발견하였고 네덜란드가 발견하기 이전에 포르투갈이 먼저 뉴질랜드를 발견하였고 포르투갈이 발견하기 이전에 마오리족이 훨씬 800년 전에 뉴질랜드를 발견하고 마오리족이 잘 살고 있던새로운 땅이었다.

 



 

뉴질랜드를 처음 발견한 유럽인은 포르투갈 항해사인 "크리스토퍼 멘돈사 Mendonca"이다. 맨돈사가 뉴질랜드를 처음 항해한 때는 1522년이었다.  우리나라가 풍신수길의 일본 침입을 받아 이순신장군이 일본침입을 물리친 임진왜란이 발발하기 훨씬 이전이다.  임진왜란에서 일본군은 포르투갈 상인을 통해서 조총을 수입하고 신식무기인 조총을 통해서 임진왜란에서 조선군을 쉽게 이겼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임진왜란 이전에 포르투갈은 스페인과 세계를 나누어서 지배하였다.  이때 이미 브라질과 중국 일본을 드나들고 태평양 먼 나라인 뉴질랜드까지 항해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역사적 사실은 지배계층의 "지식 시스템"아래에서는 숨겨진 역사로 치부되고 일반인들은 잘 알 수 없게 된다.  지배계급은 새로운 사실의 발견을 극도로 경계한다.  새로움은 기존 질서를 파괴하는 것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Status quo”에 안주하는 것이 자기 이익의 극대화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지배계급이 항상이주민이나이방인 strangers”을 경계하는 이유가 바로 기존 질서를 유지하고자 하는자기 이익 지키기때문이다.

 

지배권력과 역사 쓰기 문제에서 오늘날 변화하고 있는 비지니스 환경으로 이해의 폭을 넓혀보고자 한다.  지금의 "Net 시대"처음 깃발을 꼽는 것이 결정적으로 중요하지 않게 된 세상이다.[87]  새로운 기술을 발명해야만 세계시장을 주름잡는 것이 아니다.  이미 나와 있는 기술로 얼마든지 새로운 비즈니스를 건설할 수 있다.  빌 게이츠의 마이크로소프트는 비지니스 세계를 제패한 것은 뛰어난 기술력의 우위가 아니었다.  빌 게이츠의 마이크로소프트를 이긴 구글이 뛰어난 기술력이 있어서가 아니다.  빌 게이츠의 마이크로소프트를 능가하게 된 스티브 잡스의 애플의 성공은 새로운 기술력의 우위에 있어서가 아니다.  페이스북이 구글을 능가하게 된 까닭이 페이스북이 구글보다 더 새로운 기술을 발명해서가 아니다.

 

지금 세상은 새로운 땅에 누가 먼저 깃발을 꼽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그러기에 요즘 세상은 기회가 더욱 많아지고 있는 세상이다.  주인 없는 세상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오로지 주인은 자기 자신일 뿐이다.  점유권은 소유권의 90%이다라는 법 격언은 더 이상 통용되기 어려운 시대에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얼마든지 쉽게 허물어지고 얼마든지 쉽게 개척할 수 있는 새로운 환경에 우리는 모두가 노출되어 있는 것이다.  모든 것은 변한다.  변하는 것만이 진실인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We are all travellers in this NET world.  We are all navigators in this NET World.  우리는 이제 진정한 항해자이고, 모두가 여행자인 세상에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17. 스티브 잡스의 아이패드2 론칭에 대해서

 

라디오가 등장한 지는 아직 100년도 채 되지 않는다.  라디오가 미국시장에 처음 나선 때는 1920년대이다.  세계에서 가장 큰 방송국이었던 영국의 BBC가 설립된 때가 1922년이었다. 당시에 라디오는 혁명적인 상품이었다.  미국 가정의 절반이상이 라디오를 갖추기 까지는 10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미국에서 텔레비젼 방송이 처음으로 시작된 해는 1928년이었다. 칼라 텔레비젼이 시작된 때는 한국전쟁이 끝난 해인 1953년 경이다.  일본은 1964년 도쿄 올림픽 때부터 시작되었고 한국은 1975년 북한은 1977년 칼라 텔레비젼 방송이 시작되었다.

 



미국 가정의 반 이상의 다수가 텔레비젼을 갖추기까지는 라디오가 걸린 햇수보다 더 짧았다.   귀로 듣는 라디오보다 눈으로 직접 보는 텔레비젼이 훨씬 신기했기 때문에 구매욕을 앞당기었기 때문이다.  보는 것이 믿는 것이다라는 격언처럼 텔레비젼은 전국민을 사로 잡았다.  그러나 칼라 텔레비젼이 걸린 해수는 텔레비젼보다 2배나 더 걸렸다.  칼라 텔레비젼이 흑백TV보다 가격이 높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한국에서 칼라방송이 1975년에 시작되었기는 하지만 전두환 정권까지 특소세 등이 붙어서 부유사치품으로 취급되었었다.  

 

그러나 칼라TV가 더딘 이유는 가격장벽이라기 보다는 본다는 그 것 자체를 달리한 완전히 격이 다른 제품은 아니었기 때문이리라.  보는 것은 같지만 색깔이 칼라로 다양해진 것일 뿐이기에 사람들은 흑백TV로도 얼마든지 정보를 접할 수 있기 때문에 제품의 필수성이 그만큼 약해진 것이다.

 

 반면 DVD가 걸린 햇수를 보면 CD가 걸린 햇수보다 더 짧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까닭은 DVD가격이 구매하는데 큰 부담이 없을 만큼 가격경쟁력이 크게 낮아졌기 때문이다.

 

반면 우리들이 생각하기에 초고속인터넷이 한 순간에 터진 것 같지만 사실은 라디오가 걸린 해수보다 더 오래 걸렸다.  그 이유는 브로드밴드가 아니더라도 유선인터넷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초고속인터넷이 절실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미국이창의적인 나라라고 하는데 사실, 미국은 중국만큼짝퉁 천국인 나라이기도 하다.  종이 발명 인쇄술이 우리나라에선 고려시대 1234년에 이루어졌으니 서양의 구텐베르크 보다 200년이나 앞선 것이 사실이다.  서양은 원래 모든 것을 다른 나라에서 받아들이고모사꾼 scribbler”들이다. 

 

그리스 로마시대 때부터 서양의 사고나 제품은 모두 동양에서 흘러간 것들이다.  천주교 성경 그 자체는 바로 아시아 동양에서 시작된 것이다.  유대 민족과 예수는 아시아 땅에서 태어나고 산 사람들이다.  서양은 남의 것을 베끼고, 모방하고, 복사하고, 따라 하는 족속들이다.  인간은 원래 부터 모방하고 남 따라 하는 복제하는 것이 특성을 가졌다고 한다.  복제 “DNA”부터 시작해서 문화복제인까지 인간은 복제 알고리즘이 작용한다. 복제가 생명을 창조하는 것이다.

 

CD를 굽는다고 한다.  Burn, 태우는 것이다. 불교에서 죽은 사람을 저승으로 보낼 때 화장을 하는 것은 시체를 태우는 것이다.  태우는 것은 바로 새로 시작을 알리는 것이다. 봄철 새싹이 트기 전 들판을 태우는 것처럼. “도자기를 굽듯이” CD를 태우는 것은 복사한다는 것을 일으킨다.  복사 알고리즘은 또 다른 생명을 창조하기에 죄악이 아니다.

 

그러나 서양은 창의성이 부족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서양사람들은 남의 것이 좋다고 생각되면 바로 따라서 자기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  유럽이 그렇다.  유럽은 땅이 편편하기에 쉽게 퍼져나간다.  서양인들은 진입장벽이 쉽다는 것을 잘 안다.  그래서 이들은 길드조직과 독점체제를 유지하려고 갖은 노력을 다했다.  서구인들은 오려 붙이고 갖다 붙이고 내다 붙이는 모방천재들이다.  서양은 글자, 아라비아 수자, 법전, 종이, 화약, 나침반, 시계 등 어느 하나 새로이 발명한 것이 없다.  세계 4대발명품은 모두 동양에서 주워가거나 훔쳐간 것들이다.  세계 4대발명품은 종이, 인쇄술, 화약, 나침반이다.  이들은 모두가 중국에서 발명된 것이다.  인쇄술은 우리나라가 가장 앞선 나라이다.  햄버거의 맥도날드 뿐만 아니라, 빌 게이츠의 마이크로소프트나 야후나 애플이나 모두가 다들 다른 것을 베껴서 성공한 세계 최고 기업들이다.  특허라고는 하지만 제약사들은 모두가 남의 것을 본뜨고 모방한 것에서 나온다.  한창 잘 나가는 최고의 IT기업 페이스북도 자기 것은 하나도 없다.  주커버크가 만든 페이스북에 뭐 새로운 것이 있었던가?

 

스티브 잡스가 아이패드2 신제품 발표회에서 삼성 등을따라장이 복사꾼 copycat”이라고 말했다.  동영상에서 보는 바와 같이, 잡스는 허니콤, 삼성, hp, 블랙베리, 모토로라 등을 특정하며 “2011년이 복사꾼들의 해가 될 것인가? 2011: year of the copycats?”이라고 묻으며 삼성 갤럭시폰을 특정하며 아이패드의 경쟁우위성을 설파하였다.  페이스북도 자기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어느 나라 어느 텔레콤 제품이든 간에 텔레콤은 거의 모방품이고 복사품에 불과하다.  아이패드가 하늘나라에서 떨어진 제품이 아니다.[88]  서양의 발명품이란 것은 copy burn rip paste remix하는 것에 기반한다.  그런데 스티븐 잡스가 마이크로소프트나 삼성을모방꾼copycat”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당연히 스티브 잡스가  언급한 내용은 저작권 위반으로 타사들을 비방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광고전략인 것이다.  지금 디지털 시대에서는모방창의의 경계선은 희미해졌다.  오늘 날 모든 것은관계성에서 나오기 때문이다.[89]  그리고 무엇보다 상업적인 성공은 광고 마아켓팅에 의존한다. 그리고 마아켓팅은 자본이 달려 있다.  그런데광고는 허가 받은 거짓말이라고 말을 하지 않는가?  광고는 거짓말이 어느 정도 들어가 있다. 허풍치고 과장이 들어가지 않으면 사람들을 끌어당길 수가 없기 때문이다.   광고에 어느 정도 거짓말은 용인하는 것이 사람들이다.  

 


 

빌 게이츠와 대통령: 프라이밍 효과 Priming effect

 

저자 소개

 

추홍희

고려대학교 법과대학 졸업

고려대학교 경영대학원 졸업 (경영학석사)

뉴 사우스 웨일즈 대학교 로스쿨 졸업 (JD)

뉴 사우스 웨일즈 대학교 법학석사 졸업 (LLM)

COL 사법연수원 졸업 (GDLP)

KATUSA, LG 투자증권, Clyde & Co 

호주법무법인 오스틴하워드 변호사

세계법제연구원 이사()

인수합병 M&A업무 한국시장 도입에 관한 연구”(석사논문)
번역서: “The Politics of Happiness”

저서: “월 스트리트 변호사 이야기 A Story of Wall Street”
email: 21wallst@gmail.com

 

 

 


 

서지 정보

 

빌 게이츠와 대통령: 프라이밍 효과 Priming effect

 

발행일 2015815일 제1판제1쇄 발행

저자 추홍희

발행처 세계법제연구원

주소 경기 부천 원미구 부일로 205번길 46 (윌타운 601)

등록번호 제 387-2013-000054

전화 070-4624-1335/ 010-2289-1335

email caselawcenter@gmail.com

홈페이지 caselawcenter.wordpress.com  

블로그 caselawcenter.tistory.com

 

정가 23,500

ISBN 9791195137923/03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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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홍희 2015

 



[1] 다른 문화와의 비교는 다음을 참조하라.  “A handshake can also be a faux pas in France if a kiss on the cheek would have been more appropriate.”, http://www.dailymail.co.uk/news/article-2313604/Bill-Gates-disrespects-South-Koreas-female-president-shaking-hands-keeping-pocket.html

[3] “Some South Korean media outlets have actually gone so far as to crop out the offending Gates appendage. Others, … highlighted the other hand — it's on pretty much every front page in the country today, and South Korean TV has gone all-out, complete with meteorologist-style green screens.”, Abad-Santos, “The Bill Gates Handshake: Offensive, or Just Weird? A Photo Investigation”, the Wire, 2013.4.23. http://www.thewire.com/global/2013/04/bill-gates-handshake/64477/.

[4] Ibid.

[5] “This picture of Bill Gates shaking hands with South Korean President … with his left in his pocket was splashed across the country's newspapers on Tuesday with the media accusing him of 'disrespecting' the leader.”; “Using one hand with the other tucked in the pants pocket is considered rude here, done when one is expressing superiority to the other.", http://www.seattlepi.com/local/article/Bill-Gates-handshake-sets-off-international-4456967.php

[6] “Bill Gates 'disrespects' South Korean president with casual handshake”, 각주 33.

[7] "미국인이 잘 모를 모욕사례 1위 박대통령-게이츠 악수", http://www.yonhapnews.co.kr/politics/2013/09/03/0501000000AKR20130903109200009.HTML; “일부 국가에서는 손을 주머니에 넣은 채로 악수하는 것이 모욕으로 간주된다. 사진은 게이츠 회장이 한국의 박근혜 대통령을 만나서 바로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지난 4 한국에서 논란이 됐다.  In some countries, shaking a person's hand while your other hand is in your pocket is considered an insult. A photo of Microsoft's Bill Gates doing just that while meeting with South Korean President Park Geun-hye caused an uproar in that country in April.”, http://articles.chicagotribune.com/2013-09-01/opinion/ct-perspec-0901-things-20130901_1_anthony-weiner-insults-10-things.

[8] “We didn't notice Bill Gates's one-armed, one-hand-in-his-pocket salutation until South Korean media brought the apparently "rude" gesture to our attention this morning.”  한국에서 큰 논란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미국인들은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각주 3.

[9] 사진 © 각사 당일자 뉴스 기사몇몇 언론사는 빌 게이츠가 호주주머니에 왼손을 넣고 있는 부분을 보이지 않게 처리했거나 (조선일보, 한국경제, abc, 문체부 해외홍보문화원), 각도를 약간 달리한 (AP) 사진을 배치하고 있다.

[10] that's pretty creepy in any country.”, 각주 3.

[11] 각주 3.

[12] “Indeed, it appears Gates's natural inclination is to put his left hand in his pocket, whether he's shaking hands or not.” 각주 3.

[13] 각주 3.

[14] 사람의 생각은 시간과 장소의 영향을 받는다사람의 상황은 수시로 변하고 그에 따라 사람의 생각도 변한다사람의 처지가 다른 경우에는 각자의 입장에서 해석의 차이가 나타날 수 있다하지만생존상황에서의 인간의 마음은보편적일 것이다사막에서 허기에 지친 사람에게 물과 빵은 생존의 필수품이고 이런생필수품을 건네는 사람에게동기여하를 불문하고 감사의 마음을 갖기 마련이다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가 다르다행측이심 行厠異心의 속담이 있다미국은 한국전쟁 이후 식량부족에 시달리던 한국에 미국의 잉여농산물(옥수수 전분 등)을 원조해 주었다.  현재 한국의 경제성장으로 식량난이 해결되었는데 지금 와서 자기들에게 필요없는 잉여농산물을 가지고 원조해 주었다는 사실에서 그 동기가 순수하지 않았다고 반박할 수 있을까?  ‘착한 사마리아인의 사례에서 보다시피 인간 모두가 동정심을 발하는 것은 아니고 또 어려운 사람을 돕는 일은 순수한 동기 여부하고는 상관없이 돕는 행위가 중요하다자기 자신의 생존을 확보하지 않고서 어떻게 남을 도울 수는 없기 때문에 잉여농산물 여부는 관점의 대상이 아니다현재 상황에서 과거를 재단하기란 (굳이 노직의 이론을 들어서 설명할 필요도 없이) 힘들겠지만 잉여농산물(자신에게 불필요한 것이지만 상대방에게는 생존의 필수품이 된다)을 기근에 시달리는 타인에게 나눠준 행위 그 자체는 어떤 형태로든 비난의 대상이 될 수 없다제 아무리 풍요한 부를 가진 사람일지라도착한 사마리아인처럼 직접 자선의 행동에 나서지 않는 한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라그리고 어려운 과거는 잊기 쉽다는 의미의개구리 올챙이 시절 모른다는 우리 속담이 있는데 이는 호세아 13:5-6 구절과 맥락이 닿는다.  “네가 사막의 메마른 벌판에 처했던 때를 분명히 기억하는데, 먹여 살려주고 이제 배가 부르니 마음이 교만해져 날 잊었구나.”

[15] 우주 질서의 법칙은 침묵하고 있다다만 인간은 거기에 이미 존재한 진리를 발견하면서 인간의 삶을 발전시켜 왔다우주는 빅뱅하고 원자 분자 운동처럼 잠시도 쉬지 않지만, 뉴튼 아인슈타인 등 위인들이 말해주듯이 인간은 침묵속에서 진리를 발견한다갈릴레오가 망원경을 이용하여 인류 최초로 우주 천체를 관측한 뒤 그가 발견한 진리를 담은 책 제목을 별의 메신저라고 붙인 것은 사람은 침묵속에서도 대화를 하기 때문이 아닌가천체 관측과 원자 운동(DNA 나선구조)의 발견의 예에서 알 수 있듯이 외양과 실체는 다를 수 있다.  ‘해석 작업 interpretive process’이 없다면 진리는 발견되기 힘들 것이다다른 하나의 예를 들어보자경제학자 베블렌 Veblen유한계급론에서 "과시적 소비 conspicuous consumption"라는 개념으로 사회적 지위에 따른 근거를 설명했다한편 병적일 정도로 명품을 소비하려는 현상을 가져오는 것은 사회적 집단의 우월적 위치를 과시하려는 것, 또는 명품구매를 불러일으키는 기업의 현혹적 마아켓팅에 있다는 등의 기존이론에서 벗어나 소비자 자신에게 기인한다고 주장하는 진화 심리학의 관점이 있다명품 소비에 집착하는 이유는명품을 구매하면 나를 달리 대우할 것이라고 믿는소비자의 환상 delusion에 있다고 설명한다“값비싼 신호 이론 costly signal theory”이란신호의 비용이 신호의 진실성을 보장한다"는 뜻이다동물들은 성적인 장식을 포함하여 자신의 적응도를 과시하기 위해 다양한 신호들 fitness indicator을 진화시켜 왔는데 이러한 신호가 그 진실성을 보장받기 위해서는 실제로 적응도가 높은 개체만이 발현시킬 수 있는 즉 적응도 낮은 개체들은 따라하기 힘든 특성들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이론으로써 그 대표적인 예가 멋진 긴 꼬리의 공작새와 긴 뿔 달린 사슴이다이는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The Selfish Gene"의 개념과 연결된다.

[16] '너희는 불쌍한 사람을 도울 때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너의 착한 행실이 남의 눈에 띄지 않게 하라.'  "But when you give to the poor, do not let your left hand know what your right hand is doing, so that your giving will be in secret.” (마태 6:4). (NASB).

[17] http://www.weblio.jp/content/%E3%81%8A%E6%B0%A3%E3%81%AE%E6%AF%92.

[18]Take heed that ye do not your alms before men, to be seen of them.” (마태 6:1). "너희는 남에게 보이려고 의로운 일을 사람들 앞에서 하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새번역). “너희는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일부러 선한 일을 하지 않도록 조심하라.” (현대인의 성경).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구제 의연금]를 행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개역개정).  우리나라 성경은 대개 이와 같이 번역하고 있는데, 킹제임스성경을 그대로 번역하면, “구제 의연금 alms을 그들이 보는 앞에서 내놓지 말고, 그들이 눈치채지 않도록 특별히 조심해서 하라.  여기서 men은 구제 대상자 the poor를 지칭하고, 6 2절은 위선자처럼 사람들 많은 곳에서 행하지 말라고 충고하는데 여기서 그들은구제 의연금을 기부하는 일반인을 말한다구제 대상자 앞에서 의연금을 직접 전달하지 말라는 의미는 예컨대 학교 무상급식 논란에서 보듯이 구제 대상자를 표시 나게 하면 어린 학생의 경우 마음의 상처를 입기 쉬운 것처럼 구제 대상자의 입장을 배려하여 행여나 그들의 마음의 상처를 주지 말라는 의미이다기부 자선을 면전에서 하지 말고 대신 교회나 학교에 기부금을 전달하는 것이 보다 낫다.  그러면 이들 구제 기관이 일괄적으로 시행하여 혹시나 생길 지 모르는 마음의 상처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학교에서 차별없이 똑같은 교복을 입는 이유를 상기하라.  (교복을 입는 학교에서 어린 학생들에게 무상 급식을 거부하고 빈부의 격차를 느끼게 하려는 일부 학교의 차별 정책은 옳지 않다.)  우리들이 다같이 가난했지만 행복했던 그때 그 시절이었다고 회고하지 않는가왜 그렇게 느끼는가인간은 차별 대우를 받으면 상처를 받기 쉽고 또 평등성을 추구하는 본성을 갖고 있다따라서 구제 대상자를 차별하지 않아야 하고 또 그들을 인간답게 존중해서 대우해야 한다“If someone is eligible for help, treat them with respect.”  보편적 복지에 대한 현대적 이론으로 설명하면 티트머스의 주장이 타당하다영국의 사회학자 Titmuss에 따르면 선별주의는 낙인을 수반하며 지불능력이 없는 사람과 있는 사람간의 이중구조를 가져와 공적 서비스의 상대적 열악함을 초래하기 때문에 적합하지 않다.

[19]Crito, I owe a cock to Asclepius; will you remember to pay the debt? The debt shall be paid.” Plato's “Crito", 54d-e.

[20] “A similitude briefly expressed without any indication of comparison.”, “A Dictionary of Literary Terms”, Routledge; “Metaphor: the transfer of a quality or attribute from one thing or idea to another in such a way as to imply some resemblance between the two things or ideas.”, “Glossary of Literary Terms”, CUP.

[21] “metaphor compares two or more things that are not in fact identical; a metaphor's literal meaning is used nonliterally in a comparison with its subject.”

[22] 종교와 정치에 대한 엄격한 분리 정책을 의미한 “wall of separation”에 대하여 벽 wall의 은유 해석의 변화에 대한 글은 다음의 논문을 참조하라. http://www.heritage.org/research/reports/2006/06/the-mythical-wall-of-separation-how-a-misused-metaphor-changed-church-state-law-policy-and-discourse.

[23] 관용어구 또는 개별적인 낱말로써도 의미가 통하는 경우도 있다헤밍웨이 글에 나오는 예를 든다면 “He slipped into the familiar lie he made his bread and butter by.” 여기서빵과 버터의 의미는 서양인과 동양인의 식생활 문화적 차이를 고려하지 않고서그는 버릇이 된 거짓말에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빠져들었다그 거짓말로써 그는 지금까지 빵과 버터를 벌어 왔던 것이다.”으로 번역해도 의미가 통한다하지만 빵과 버터의 직접적인 지시어라기 보다는 돈벌이라는 추상적인 뜻의 관용어구로써 해석하는 것이 보다 적절한 표현으로 생각된다: “그는 먹고 살기 위해 해왔던 그 상습적인 거짓말을 또다시 해댔다.”

[24] 기호가치란 다른 사람과 차별되는 지위와 삶의 양식을 나타낸다다이아몬드의 예를 들어 보면, ① 공업용 도구로 사용되는 사용 가치 ② 시장에서 매매 거래되는 교환 가치 ③ 연인에 대한 사랑의 징표로써의 상징 가치 ④ 디바스15K같은 기호가치가 있다.  “나는 소비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소비 사회 consumer society”에서 사람들은 소비를 통해서 자기 존재를 확인받고자 하는데 샤넬-5를 사면서 기호로 신분과 계급의 차이를 나타낸다.  ‘기호가치란 다른 사람과 차별되는 지위와 삶의 양식을 나타낸다.

[25] http://www.forbes.com/profile/bill-gates/.  Bill Gates’ and Warren Buffett’s Giving Pledge, in which the ultra-wealthy pledge to give away at least half their net worth to charity.

[26] 언론이라는 중간 전달자’(매개된 mediated)를 통해서 말이 전달될 때 당사자의 의도 intent와 표현 expression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일어날 수 있고, 또 간혹 중간 매개체인 언론이 의도적으로 왜곡시키는 경우도 없지 않다보드리야르는 미디어가 전체주의적 메시지를 생산해 낸다고 비판하였다.

[27] 보드리야르 Baudrillard,시뮬라시옹”.  the orders of simulacra the phases of the image the three phases of utopian and science-fiction 개념을 참조하라.

[28] 빌 게이츠 자선 단체 트러스트 홈 페이지, http://www.gatesfoundation.org/.

[29] “Understanding Derivatives: Markets and Infrastructure”, https://www.chicagofed.org/publications/understanding-derivatives/index.

[30] Deleuze G., “Difference and Repetition” (1968).

[31] 게이츠의관심과 열정에 의해 운영되는 게이츠 자선 트러스트의 주요 목적은 국제적 보건 의료 확대, 빈곤 퇴치, 교육 기회 확대, 정보 기술에 대한 접근성의 확대이다.

[32] 일본어 바카 쇼지키 馬鹿正直는 사슴을 말이라고 말하는 것에 숨어 있는 의도를 알지 못하는 “stupidly honest”, “바보스런 솔직함”, “우직스런을 뜻하는 부정적인 뉘앙스를 갖고 있는 말이다.  말하는 사람의 숨은 의도를 파악하지 못하는 사람을 바보라고 부른다.  다테마에 建前는 외양 겉보기 겉치레 pretense, 혼네 本音는 마음 속의 진실한 감정과 진실한 의도 true intentions를 말한다사슴을 보고 말이라고 우기는 권력에 대해서 진실을 말하는순진한 바보에 대하여 III 13장을 참조하라

[33] 문자는 달을 가르키는 손가락과 같다교종이 교리를 터득하면 불도를 완성할 수 있다고 보는 반면 선종은 불립문자로써 수행과 계율을 중요시한다. “見月忘指”, "計著名字者 이름과 글자가 나타내는 것에 집착하면 不見我眞實 나의 실상을 보지 못한다."

[34] Cultured man 교양인은 교육받은 사람을 말한다. educated, polished, refined, cultivated.

[35] 바르트, “현대의 신화”, 이화여대대학교 기호학연구소 역, 동문선, 1997, 274.

[36] 바르트, “현대의 신화”, 이화여대 기호학연구소 역, 동문선, 1997, 274.

[37] 당신은 내 손아귀에 들어 있다의 뉘앙스는 부정적인 의미가 따르나 투자의 개념으로써 당신이 필요로 하면 자신은 돈을 투자할 의향이 있다는 긍정적인 의미를 함께 갖고 있다,

[38] 한편 빌 게이츠의 악수법이 논란이 되는 배경은 한국의 경제성장에 따라서 그만큼 대우받고 싶어하는 자존심에 있다고 볼 여지도 충분한데 이에 대해서는 보드리야르의 시뮬라크르 시뮬라시옹 이론을 통해서 설명될 수 있다.

[39]사전적인 의미로써 이해하지 못하거나 혹은 오독의 가능성이 존재하는 것은 의미의 해석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현상이다이는 현대에서 언어의 청각적 기능이 많이 사라진 결과가 낳은 부작용일 수도 있다.  아마 이런 측면에서 소크라테스는 오해를 방지하기 위해서 직접적인 대화의 방식을 선호했던 것 같다한편 오독의 가능성의 문제는 다양성이 나타나는 원인이기도 하고 또 통합작용을 통해서 발전적인 의미를 낳을 수 있으므로 꼭 부정적인 측면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의미를 명확히 하기 위해서 새로운 말이 생기는데 이는 간단하고 명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 언어가 더 복잡해진다는 언어 발전의 역설적인 모습이기도 하다인간 사회에서 법률이 제정되고 발전되는 과정 또한 이와 마찬가지로 이해할 수 있다.)

[40] 아담 스미스의 친구이자 멘토이었던 데이비드 흄은 돈을 벌어서 금괴에 넣어 두면 결국 다시 돈이 빠져나간다고 여겼다조나단 스위프트가 화폐는 국가 경제의 피라고 표현했다사람의 몸에 피가 돌지 않으면 죽고 마는 것처럼 경제는 돈이 돌고 돌아야 성장한다.

[41] 너희는 보물을 땅에 쌓아두지 말아라. 땅에서는 좀먹고 녹슬어 못 쓰게 되고 도둑이 뚫고 들어와 훔쳐 가기도 한다. 너희는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어라. … 네 보물이 있는 곳에 네 마음도 있다. … for where your treasure is, there your heart will be also.” (NASB, 마태 6:19-21).  필연주의 철학, 진화 심리학의 주장과 일맥상통한다.

[42] 맥락효과: 처음 제시된 정보가 나중에 들어오는 정보들을 처리하는 기본지침이 되어 전반적인 맥락을 제공하는 것.   "THE CAT" is a classic example of context effect.  We have little trouble reading "H" and "A" in their appropriate contexts, even though they take on the same form in each word.

[43]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이 우리나라의 학계에 미친 영향은 아직도 강하게 남아있고 또 뿌리 깊다고 생각된다우리나라 사람들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의 강한 영향을 받아서인지는 모르겠지만 꿈이 사람들의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고 여긴다는 경향이 있는데 반해 이들 영미인들은 꿈은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고 본다.)

[44] As all, even the smallest of the co-existent parts of the universe, are exactly fitted to one another, and all contribute to compose one immense and connected system; so all, even apparently the most insignificant of the successive events which follow one another, make parts, and necessary parts, of that great chain of causes and effects which had no beginning, and which will have no end; and which, as they all necessarily result from the original arrangement and contrivance of the whole; so they are all essentially necessary, not only to its prosperity, but to its continuance and preservation.” (A Smith, TMS.VII.2.41.) http://www.econlib.org/library/Smith/smMS7.html.

[45] 결사의 자유권은 국가 기관에 의한 일체의 간섭 없이 정치적 의견을 형성하며, 또 정보를 취득하고 전달할 자유를 포함한다유럽 인권 협약 The European Convention on Human Rights. 11 (집회 및 결사의 자유) ① 모든 사람은 자신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하여 노동조합을 조직하고, 이에 가입하는 권리를 포함하여 평화적인 집회 및 다른 사람과의 결사의 자유에 관한 권리를 가진다. ② 이 권리의 행사에 대하여는 법률에 의하여 규정되고, 국가 안보 또는 공공의 안전, 무질서 및 범죄의 방지, 보건 및 도덕의 보호, 또는 다른 사람의 권리 및 자유의 보호를 위하여 민주사회에서 필요한 것 이외의 어떠한 제한도 가해져서는 아니된다이 조항은 국가의 군대, 경찰 또는 행정부의 구성원이 이러한 권리를 행사하는 데 대하여 합법적인 제한을 부과하는 것을 막지 아니한다.

[46] http://discovery.nationalarchives.gov.uk/details/r/D7863973.

[47] So in everything, do to others what you would have them do to you, for this sums up the Law and the Prophets.”

[48] Love one another.  As I have loved you, so you must love one another.”

[49] Do not seek revenge or bear a grudge against anyone among your people, but love your neighbor as yourself. I am the LORD."

[50] "Do to others as you want them to gratify you."

"Be considerate of others feelings as you want them to be considerate of your feelings."
"Treat others as persons of rational dignity like yourself."

"Extend brotherly or sisterly love to others, as you want them to do to you."
"Treat others according to moral insight, as you would have others treat you."

"Do to others as God want you to do to them."
Wattles, “Levels of Meaning in the Golden Rule”, The Journal of Religious Ethics, Vol. 15, No. 1 (Spring, 1987), pp. 106-129.

[51] “As between his own happiness and that of others, utilitarianism requires him to be as strictly impartial as a disinterested and benevolent spectator. In the Golden Rule of Jesus of Nazareth, we read the complete spirit of the ethics of utility. ‘To do as you would be done by’ and 'To love your neighbor as yourself' constitute the ideal perfection of the utilitarian morality".

[52] “The golden rule is best seen as a consistency principle. It doesn't replace regular moral norms. It isn't an infallible guide on which actions are right or wrong; it doesn't give all the answers. It only prescribes consistency -- that we not have our actions (toward another) be out of harmony with our desires (toward a reversed situation action). It tests our moral coherence. If we violate the golden rule, then we're violating the spirit of fairness and concern that lie at the heart of morality.”

[53] 도덕적 실천 명령.

[54] Everyone judges by the outcome, and not by the design—that has been the complaint down through the ages, and is the great discouragement of virtue.” (TMS II.3.1.)

[55] Kant, “Grounding for the Metaphysics of Morals”, translated by James Ellington [1785] (1993). 3 ed. Hackett. p. 30.

[56] “the golden rule is right, vis, that we are to take the whole statute together, and construe it all together, giving the words their ordinary signification, unless when so applied they produce an inconsistency, or an absurdity or inconvenience so great as to convince the Court that the intention could not have been to use them in their ordinary signification, which though less proper, is one which the Court thinks the words will bear." River Wear Commissioners v Adamson.

[57] Grey v. Pearson (1857), 6 H.L. Cas. 61.

[58] “Teacher, which is the greatest commandment in the Law?  Jesus replied: “‘Love the Lord your God with all your heart and with all your soul and with all your mind.’  This is the first and greatest commandment.  And the second is like it: ‘Love your neighbor as yourself.’  All the Law and the Prophets hang on these two commandments.”

[59] “The literal rule should be used first, but if it results in absurdity, the grammatical and ordinary sense of the words may be modified, so as to avoid absurdity and inconsistency, but no further.” Grey v Pealson (1857)..

[60] Heydon's Case [1584] EWHC Exch J 36.

[61] “For the first time in my life a feeling of overpowering stinging melancholy seized me. Before, I had never experienced aught but a not-unpleasing sadness. The bond of a common humanity now drew me irresistibly to gloom.  A fraternal melancholy! For both I and Bartleby were sons of Adam.”

[62] The highest calling and election is to do without opium and live through all our pain with conscious, clear-eyed endurance.” (letter, 1860.12.26).

[63] “Relationships of man to man, all the moral relations are per se religious.”  Feuerbach, Eliot G., “The Essence of Christianity”, at 271.

[64] “Love is a higher power and truth than deity.  Love conquers God.”  Feuerbach, Eliot, “The Essence of Christianity”, at 53.

[65] Paris, at 432.

[66] I am the center of my universe;

There is no one else quite like me.

I am part of the human species,

All who came before me and all who will come after.

I have things in common with all humankind:

Needs, drives, emotions, intelligence, and a thirst for knowledge.

As long as my specifies survives, I shall never die.

I have no need for a Greater Being to take care of me. 

While that would be nice, it is my responsibility to take care of myself.

Human beings strive to be good because we need to live in peace and harmony, not because we fear God.

-Bennett H, “Humanism, What's That? A Book for Curious Kids”, Prometheus Books, Amherst, NY, 2005.

[67] When we are always so much more deeply affected by whatever concerns ourselves, than by whatever concerns other men; what is it which prompts the generous, upon all occasions, and the mean upon many, to sacrifice their own interests to the greater interests of others? It is not the soft power of humanity, it is not that feeble spark of benevolence which Nature has lighted up in the human heart, that is thus capable of counteracting the strongest impulses of self-love. It is a stronger power, a more forcible motive, which exerts itself upon such occasions.

[68] It is reason, principle, conscience, the inhabitant of the breast, the man within, the great judge and arbiter of our conduct.

[69] It is he who, whenever we are about to act so as to affect the happiness of others, calls to us, with a voice capable of astonishing the most presumptuous of our passions, that we are but one of the multitude, in no respect better than any other in it; and that when we prefer ourselves so shamefully and so blindly to others, we become the proper objects of resentment, abhorrence, and execration.

[70] It is from him only that we learn the real littleness of ourselves, and of whatever relates to ourselves, and the natural misrepresentations of self-love can be corrected only by the eye of this impartial spectator.

[71] It is he who shows us the propriety of generosity and the deformity of injustice; the propriety of resigning the greatest interests of our own, for the yet greater interests of others, and the deformity of doing the smallest injury to another, in order to obtain the greatest benefit to ourselves.

[72] It is not the love of our neighbour, it is not the love of mankind, which upon many occasions prompts us to the practice of those divine virtues. It is a stronger love, a more powerful affection, which generally takes place upon such occasions; the love of what is honourable and noble, of the grandeur, and dignity, and superiority of our own characters., TMS III.I.47.

[73] Knight v Knight 49 ER 58 (1840).

[74]  A return to previously held values of decency.”

[75]  “믿음 소망 사랑의 유명한 성경 구절에서 사랑의 그리스어 텍스트는 ‘agape’이고, 이를 킹제임스성경은 ‘charity’라고 번역했다이에 대한 에드워즈의 설명을 그대로 인용한다. “But, then, the word “charity,” as used in the New Testament, is of much more extensive signification than as it is used generally in common discourse. What persons very often mean by “charity,” in their ordinary conversation, is a disposition to hope and think the best of others, and to put a good construction on their words and behavior. Sometimes the word is used for a disposition to give to the poor.”  에드워즈는 ‘Charity’‘Love’로 어휘를 바꾸는 것이 보다 낫다고 지적하였다.

[76]가난한 사람들을 먹일 만큼 많은 재산을 내가 축적해 놓았을지라도이 구절은 우리나라 성경번역에서는 거의 일률적으로 내가 내 모든 소유를 나누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는 아무런 이로움이 없습니다.”, “내가 모든 재산을 바쳐 가난한 자들을 먹이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그것이 내게 아무 유익을 주지 못하느니라.”, 이렇게 번역하고 있다여기서 영어 번역 “bestow all my goods to feed” ‘bestow’라는 단어를 주다는 뜻으로만 알고 있기 때문에 내 모든 소유를 나누어줄지라도라고 번역하는 것 같다하지만 ‘bestow’라는 단어를 영어 사전에 찾아보면 첫 번째 “to present as a gift or an honor; confer”라는 뜻만이 있는 것이 아니고 또한 축적하다, 쌓아놓고 저장하다는 뜻의 “to store, or house”의 의미가 있다앞의 ‘bestow’준다고 해석하면 뒤에 나오는 자선(사랑)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을 주지 못한다는 의미와의 연결이 매끄럽지 못하다.  ‘가난한 자먹여 살리다라고 말할 때 가난한 자부분의 단어는 그리스어 원문에 나오지 않는 것을 킹제임스성경 번역자들이 문맥이 통하도록 추가한 것이고, 이런 사실을 그 해당 부분의 단어를 이탤릭체로 표기해 놓았기 때문에 분명하게 알 수 있다가난한 사람에게 베풀 만큼 많은 재산을 모았다고 해도 직접 자선을 행하지 않으면 그가 무슨 이익을 받을 수 있겠는가?-이런 해석이 보다 자연스럽고 타당하다.

[77] 우리나라 성경 번역은 일률적으로 사랑은 오래 참고 친절하며이렇게 번역하고 있다하지만 여기서 ‘long’오래 간다’,’지속의 의미이다교회는 개인 재산이 아니다교회는 신탁 재산이다신탁재산(트러스트)은 몇 백년을 지나 영구히 지속되어 내려왔다신탁은 한 사람의 목숨처럼 일시적이고 유한적인 것이 아니라 일시성의 한계를 뛰어 넘는다.  ‘Kind’를 흔히 친절하다고 번역하는데 ‘kind’의 의미는 남이 나의 잘못을 꾸짖고 훈계할 때 그것을 감사하다고 받아들이는 태도를 의미하는 뜻을 갖고 있다교육이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은 나의 잘못을 깨우쳐 줄 때 그래서 내가 나의 잘못을 시정하는 그 결과에 있다남에게 친절하게 대한다는 말은 남이 나의 잘못을 꾸짖을 때 내가 화내지 않고 기꺼이 받아들이는 관용적 태도를 말한다우리는 교육을 통해서 남에게 친절을 베풀고 또한 그러한 남의 친절에 공감하여 그대로 받아들이는 열린 마음을 가지는 것이 보다 중요하다이런 열린 태도를 사도 바울은 가르쳤다.  ‘kind’ 단어를 사용하고 있는 다른 성경 구절을 보면 ‘kind’의 의미가 무엇을 말하는지 더욱 확실하게 이해가 된다.  “Let the righteous smite me; it shall be a kindness: and let him reprove me; it shall be an excellent oil, which shall not break my head: for yet my prayer also shall be in their calamities. 의로운 사람이 내가 뉘우치도록 책망하면 그것은 기꺼이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그가 나를 비판하고 꾸짖으면 그것은 내 머리 속의 윤활유가 되는 것이지, 결코 내 머리를 상하게 하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아무튼 내가 또 원하는 것은 나쁜 사람들은 재난을 당하고야 만다는 사실이니 그것을 보여 주길 바랍니다.” (시편 141:5). “현대인의 성경번역은 다음과 같다: “의로운 자들이 나를 치고 책망할지라도 내가 그것을 좋게 여기며 거절하지 않을 것이나 악인들의 악한 행위는 내가 대적하고 항상 기도하리라.“  “공동번역 성경의인에게 매를 맞고, 그 사랑의 벌을 받게 하소서. 나의 머리 위에 악인들이 기름 바르지 못하게 하소서. 나는 언제나 그들의 악행을 반대하여 기도 드립니다.”  이 성경구절의 ‘calamities’ 단어는 바틀비 스토리맨 마지막 두 번째 구절에 등장한다다시 강조하지만 이 ‘Kind’라는 단어는 나의 잘못을 책망하는 것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태도를 뜻한다이렇게 ‘kind’의 의미는 관용오픈 마인드의 의미하고 맞닿는다.  “바틀비 스토리를 관통하는 교육 철학 역사 법학 신학의 단편적 소재는 서로 논리적으로 촘촘히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여기에서 암시하는 역사적 소재들은 홀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한 줄에 꿔 달아 메어 놓은 옥구슬 같이 서로 닿아 있다프리스틀리, 에드워즈, 키케로 등의 역사적 인물 등의 사상과 사건은 화자의 생각-월 스트리트와 역사 발전의 본질과 조건-을 관통하게 된다자선과 교육은 월 스트리트의 핵심 사업 중에 하나이다

[78] 우리나라 성경 번역자들은 거의가 일률적으로 불법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진리를 기뻐하며라고 번역하고 있는데 그것은 ‘rejoice’ 단어를 기뻐하다는 뜻으로만 받아들이기 때문일 것이다하지만 ‘rejoice’를 영어 사전에 찾아보면 To have or possess의 뜻을 갖고 있다그러므로 우리나라 번역자들은 가지고 있다라는 뜻을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와 같이 번역한 것 같다특히 ‘rejoice in’이라고 분명히 ‘in’이 붙어 있는데도 그저 기뻐하다로 단순하게 번역하는 것 같다킹제임스성경의 번역대로 ‘rejoice in’가지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킹제임스성경 번역대로 기꺼이 진리를 추구하되, 나쁜 짓을 행여 마음 속에 품지도 말라는 뜻으로 번역하는 것이 옳은 것 같다

[79] 자선은 영원하다실패하는 법도 없다. 다시 말해 재산을 일단 내놓으면 공공목적으로 쓰여지지 결코 사적으로 쓰여지는 경우란 있을 수가 없다영미법상의 신탁(트러스트) 법제의 본질이 그렇기 때문이다신탁(트러스트)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신탁자 기부 의사 intention’,기부 대상의 신탁 재산 특정 gift’, ‘신탁 수혜자 certainty of objects의 특정이렇게 최소한 3가지 조건이 존재해야 한다.  하지만 일단 재산부터 먼저 내놓으면 다른 2가지 조건이 충족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법적으로 신탁 설정이 거부되는 경우란 거의 없다법원은 되도록이면 좋은 일을 하는 것을 이루게 해주려고 하기 때문이다 ("would rather than not that a will's provisions should fail").  가장 중요한 재산이 공공목적으로 내놓았으면 바로 그 순간 법은 자선을 인정하고 보호해 준다다시 말해 트러스트 제도가 없는 대륙법나라들같이 형식적인 요건의 흠결을 이유로 예컨대 직인 누락이라든가, 문서로 증명이 안된다든가 하든 이유 등으로 신탁의 설정을 부정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80] 신탁 trust은 부분적이라도 해석을 통해서 법을 통해서 완전하게 만들어진다이것이 형평법의 기초이다설령 부분적으로 부족하더라고 해도 전체적으로 평가해서 전체를 위해서 부분 부분을 이어서 완전하게 만들어 내어질 수 있다부분 부분이 모여서 전체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개체가 모여서 전체를 만들어가는 것이다전체에서 개인을 내동댕이쳐 내는 것이 아니라, 개인 하나 하나가 모여서 국가 공동체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벌집처럼 하나의 벌꿀은 각자의 영역이 있고 각자의 할 일이 있어 자신들은 자신들 부분밖에 이해할 수 없을지라도 국가공동체 전체적으로 하나님같이 하늘에서 내려다 보면 전체를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전체는 부분의 합보다 더 크다 The whole is greater than the sum of its parts.”  개인은 공동체 전체에서 조망할 때 비로소 각자의 이익과 각자의 몫을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81] 천주교회에서 고해성사할 때 자신의 몸을 숨긴다.  희미한 창문 밖으로 형체만 보여서 상대방이 누구인지 정확하게는 모른다마찬가지로 트러스트의 액면 그대로, 표면 위의 사항으로는 트러스트를 움직이는 배후가 누구인지 정확히 모를 수 있다그러나 얼굴을 직접 맞대고 이야기하면 더욱 확실하게 이해가 될 것이다트러스트는 보이지 않는 손이 작동하므로 누가 트러스트를 움직이는 실체인지 잘 알기 어려운 경우가 흔하다.

[82]사회적 자본은 개인의 사회생활에 필요한 자산이 될 뿐만 아니라 사회전체의 생활수준을 향상시키는데 크게 기여하게 된다사회 각 구성원의 협력은 공동체 전체에 이익을 주며, 개인 역시 이웃과의 교류와 상호협력, 사회적 연대감등을 통해 많은 이익을 얻게 된다.” (퍼트넘, “보울링 혼자 치기”).

[83] Offer, Avner, “Between the Gift and the Market: The Economy of Regard”, Economic History Review, 50 (3) (1997), 450-476.

[84]http://www.instituteforgovernment.org.uk/blog/764/no-2-to-no-10-taking-mindspace-to-downing-street/

[85] 예기치 못한 결과 (unintended, unanticipated, unforeseen consequences)의 법칙.

[86] http://www.parliament.uk/about/living-heritage/evolutionofparliament/parliamentaryauthority/the-gunpowder-plot-of-1605/

[87] 조금 옆으로 새는 이야기이지만, 1980년대까지만 해도 남녀간의 관계에서 누가 먼저깃발을 꼽는 것이 우선적인 관심사이었다남녀간의 관계어서 섹스를 하는 것을 남자입장에서 상대방 여자가  “자기 것이라는 점유 표시가 바로섹스라고 여겼다남성우월주의 입장에서 여자는 소유권의 객체 대상이었던 것이다.  “먹고 먹히는관계로 본 것이 남녀간의 섹스행위이었다한번 점유 표시를 당한 여자는 결혼까지를 당연시 여겼다그러나 요사이는 누구나 언제든지 어디에서나 할 수 있는 자유연애시대이다. 이러한 자유연애를 훅컵 Hook up이라고 말한다쉽게 만나고 쉽게 헤어지는 세태다이런 세태에서 영원한 관계는 무척 어렵다그래서 요사이 젊은이들은투투 22 파티를 한다고 한다.  “투투 파티란 무엇을 말하는가요사이는 쉽게 만나고 쉽게 헤어지는 세태이어서 남녀간 만남의 기간이 3*7 =21일을 넘기기가 어렵다고 한다그래서 만난 지 21일이 지나면 그것을 성대히 축하하는 의미에서 “22일 축하파티를 연다고 한다이런훅컵세태에서 시쳇말로 요사이 세상에 남녀가 섹스 한 번 했다고 해서 상대방을 결혼상대자로 여기는 사람은 없다는 말이다점유가 소유권으로 바로 이어지는 세상이 더 이상 아니다

[88] Daft Punk - Technologic 이 노래 가사를 참조하라.

[89] 스티브 잡스의 스탠포드대 졸업식 치사 연설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