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산정상으로 올라가는 길
다른 하나는 저아래 바다로 향해 넘어가는 길이었다.
로버트 프로스트의 “택하지 않는 길”의 시를 기억하겠지?
갈림길이라고 하나? 이정표라고 하나?
숲 속에 두 길을 안내하는 표지판이 선명하게 들어왔다.
우리는 주저할 수 밖에 없다.
미지를 길을 걸을 때 동승객이 있을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미지의 세계. 펼쳐지지 않는 평원을 우리는 아직 경험해 보지 않았기에 알수 없는 두려움에 압도당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자유의 평원이 펼쳐진다 해도 우리는 아직 거기에 도착하지 않았기에 선택의 확신이 없기 때문이다.
모세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세계를 건널 때 아무리 확신이 심어 주어도 모세의 무리들은 확신을 할 수 없었다. 뒤를 곧꽃아 오는 이집트 군사들의 총칼 앞에 죽을 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쫓기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모세는 가나안땅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죽었다. 모세의 후계자 조수아가 들어갔을 뿐이다.
막다른 골목. No way out.
Cul-de-sac. 쿨-드-색.
퇴로가 차단된 탈출구가 없는 막다른 골목에 더이상 선택이 없는 순간에 그들은 모세를 따른 것이 아니었다. 모세는 하나님을 보왔지만 모세의 무리들은 하나님을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자유 의지 없는 옵션없는 선택을 해야하는 순간이 우리는 언젠가는 해야 한다.
그리고 “파리스의 심판”처럼 우연의 가장으로 선택을 할 수 밖에 없는 선택의 기로에 서기도 한다.
김수희가 부르는 “멍에”의 노래가사처럼. “사랑의 기로에서 서서 눈물을 감추지 말아요. 누구나 어차피 헤어져야 하는 것을~~~”
“파리스의 사과 “ 라고도 말하는 “파리스의 심판”의 그리스 신화가 있다.
결혼식 잔치에 초대받지 못한 “불화”의 여신 에리스는 화가 나고 이에 별 생각없이 황금사과를 던지게 된다. 이 황금사과에는 “이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신에게 (to the fairest)”라고 씌어 있다. 이 사과에 씌어진 대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을 정하는 게임에 제우스제왕의 아내인 헤라 그리고 지혜의 여신인 아테나 또 아름다움의 여신 아프로디테 이렇게 세 여인이 마지막까지 남아 있다. 올림픽 게임에서 김연아하고 아사다가 양보없는 접전을 벌이고 마지막 승자를 가려지듯이 이 아름다운 3여인들도 어느 한 여인을 최종승자로 결정해야 한다. 그러나 심판관들은 썩내키지 않는 판단을 해야된다는 점에서 쉽게 판단을 할 수 없다.
미스코리아 선발전에 심판관들이야 별로 어려움을 느끼지 않지만 그리스의 신들은 그래도 여러 생각들을 해야 하는 명색이 신이었기 때문이다. 그 난색의 촛점은 선택되지 못한 나머지 두 여신의 원한이 자신들에게 미칠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승자의 축복보다 루저의 저주를 생각해야 했기 때문인 것이다.
승자의 축복은 우승자 한 사람에게서 나오지만 루저의 축복은 떨어진 2 사람에게서 나올 수 있기에 숫자의 축제판에서는 루저의 저주를 그저 무시할 수만은 없기 때문이리라.
신들도 고민이 많은 것이다. 권력을 가진 자는 승자의 축복보다 루저의 저주를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는 것을 일깨워주리라.
올림푸스 산 정상에서 인간 세상을 내려다 보던 이들 3여신들은 양을 치고 있던 트로이 왕자 파리스를 발견하고 그 앞에 세계최고 미인을 얻게 되는 황금사과를 던져놓게 된다. 파리스는 선택을 거부할 수 없는 심판의 순간을 강요받게 된 것이다. 파리스는 이 3여인중 누구를 최고미인으로 선택한다고 해도 파리스에게는 불행이 따르게 되어 있다. 루저의 저주가 반격을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불행이 예고된 결정을 “파리스의 심판”이라고 말한다.
즉 세계미인으로서 아프로디테를 선택한 파리스는 황금사과의 약속대로 이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인 양귀비보다 더 아름다운 “헬렌”을 얻게 된다. 그러나 그 아름다운 여인을 차지한 댓가로 트로이 전쟁이 일어나게 된다는 역사의 아이러니를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이게 “의도하지 않는 결과”의 법칙이라는 것이다. 이 의도하지 않는 결과의 법칙 때문에 아폴로 신들이 파리스의 선택을 주저했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파리스의 사과.
The Judgement of Paris, 1599, Oil on canvas, Staatliche Museen, Berlin
박인환의 목마와 숙녀.
"....등대에....
불이 보이지 않아도
거저 간직한 페시미즘의 미래를 위하여
우리는 처량한 목마소리를 기억하여야 한다
모든 것이 떠나든 죽든
거져 가슴에 남은 희미한 의식을 붙잡고
우리는 버어지니아 울프의 서러운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전쟁을 피할 수 없듯이 우리는 숲 속의 두 갈래길에서 오로지 하나만을 선택하여야 한다. 선택의 연속인 우리 인생길에서 우리는 이제 한 길을 택해야 하는 것이었다.
그 길이 설령 눈내리는 샤갈의 마을로 내려가던 그 길에 바위낭떠러지가 있어서 더이상 진행을 할 수 없는 난관에 봉착하더라도 우리는 두 갈래 숲 속의 길에서 오로지 한 길만을 선택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언제나 결핍의 충족을 느끼든 풀요속의 빈곤을 느끼든 우리는 자신이 택하지 않는 길에 대한 아쉬움과 연민을 느끼게 된다. 다 가질 수 없는 우리의 한계. 그래서 우리의 삶은 항상 슬픔이 따르게 마련인 것이다.
그녀는 평생을 살아 오면서 외로웠다는 생각을 떨쳐버리지 못했다. 연인이 있어도 동지달 긴밤을 달래지 못하고 극도의 외로움을 느끼던 황진이처럼 우리 모두는 외로움의 극한을 간직하고 있을지 모른다. 한 여름밤의 꿈이라는 일장춘몽의 우리 사랑에서 골수처럼 빠고드는 그 외로움의 실체가 무엇이든 우리는 항상 고독속에 살아있는 무인도같은 존재이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는 언제나 파도를 그리워하는 것이다. 파도처럼 끊임없이 속살여 주고 달래주고 어루만져주고 반복하여 확신을 원하는 지도 모른다.
나도 마찬가지로 “인간 천하천상 유아독존”이라고 외치며 극도의 외로움을 스스로 받아들이기는 것에 익숙해져 있다.
그러나 서로가 외로움속에 고독한 무인도에 살면서도 우리 인간은 타인에게는 고슴도치처럼 날선 칼을 들어내고 경계를 하기 마련이다. 고슴도치처럼 남들이 나를 가까이 하지 못하도록 담장을 치고 가슴을 막고 마음의 만리장성을 쌓아놓고 사는 우리들은 아닌지?
시린 고독의 추위를 이기는 방법은 서로의 체온을 감싸고 부벼지는 것이 유일한 삶의 기술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그저 고슴도치처럼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고나 하는 것은 아닌지?
암튼 서로가 생존의 기술을 익히지 못한 때문일까? 그들은 남이 접근못하면 살아난다는 삶의 개념으로 날선 털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 놓고 사는 고슴도치이지만 고슴도치가 고슴도치에게 사로 접근할 때는 날선털까치를 숙인다는 방법을 모르고 살았다던 것이다.
서로가 서로의 장단점을 내려놓고 함께 부딪히며 살아가는 것.
고슴도치처럼 남들을 피해 동굴을 파고 살아가든 나팔꽃처럼 햇볕이 들 때에만 꽃잎을 풀어헤치듯 세월은 10년이 흐르고 말았다.
그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한 우리 삶에서 우리의 간격(distance)이 초겨울 호수가 실날의 얼음판처럼 위험하다 해도 암튼 시간은 세월이 되어서 레테의 강물로 흐르고 있는 것이다.
레테의 강물을 테스트하기 위해서 나는 사라 보간의 노래를 부르고자 한다.
A lover’s concerto
비가 갠 뒤 무지개를 바라보며는 내 마음은 무척 상쾌하다.
사랑하는 연인을 위한 바하의 미뉴엣 편곡 이 연가를 세라 보간의 촉촉한 목소리 만큼 무척이나 좋아한다.
푸른 목장 위를 촉촉히 적시는 비는 얼마나 부드러운가?
높은 나무의 새들은 꽃들에게 세레나데를 불러주고 있네.
언덕 저편에 밝게 빛나는 무지개 빛을 보세요.
사랑없는 외로운 긴 밤을 지새며 울고 싶지 않아요
언제나 진실한 모습만을 보여주세요
진실된 사랑은 영원토록 지속될 터.
먼후일 이 푸른 들판을 다시 찾아와 둘이서 빗속을 거닐며
새들이 함께 부르는 사랑의 노래를 다시 듣으리라.
저 푸른 초원 위에 구름같은 집을 짓고~~~~
내가 가진 꿈 하나는 높고 하늘에 흰구름이 두둥실 떠가는 곳 저 푸른 초원 위에 한 여자의 무릎베개를 하고 살아가는 것이었다.
일장춘몽이고 남가지몽이겠지만 내 꿈은 소박하기 그지 없었던 것이다. 너무나 세상의 단순한 이치마저 깨닫지 못한 바보이었을리라.
휜구름이 두둥실 떠가는 곳. 구름의 여신인 반인반마의 여신 센토처럼 나느 숲속을 배회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나는 천상의 나라로 올라가고 나의 꿈은 이루어졌다.
치명적인 유혹
비행기 아래로 펼쳐지는 하얀 구름 떼. 이곳이 바로 천상의 천국이라고 나는 확신했다. 몇 년 전의 군대에서 일이다. 하얀 겨울 눈꽃으로 세상 전체가 덮인 그 아름다운 순백의 세계를 경험했을 때의 일이 생각난다. 그 한 겨울 산 정상에는 하연 눈으로 모두가 덮혔었다. 오로지 순백의 세계. 헬기의 굉음속에서도 그 순백의 아름다움은 나를 치명적으로 유혹하였다. 나는 헬기 밖으로 뛰쳐나와 그 아룸다운 순백위로 떨어지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우리가 아름다움에 빠지면 죽어도 한이 없다는 생각에 사로잡히는 바로 그 충동을 이해하게 된다.
가장 힘든 군대의 훈련 기간 중에 그 아름다운 순백의 세계를 경험할 때 아름다움 속으로 빠져 들어가겠다는 충동. 그러나 그 때 내가 그 순백위 아름다움에 빠져 내리면 나의 생명은 싸늘하게 식고 말았다. 생과 사의 아이러니.
환상과 현실의 이중주.
꿈인지 생시인지 모를 정도로 몽롱한 세계는 잠시일 뿐이다. 오르가슴처럼 불과 몇 분에 불과하다.
암튼 죽어도 좋을 만큼 아름다운 하얀 백설같은 그 아름다운 구름을 여기에서 다시 본 것이다.
하얀 뭉개 구름은 고개를 넘고 있었다. 그리고 헬레네 활화산도 내 시야에서 서서히 멀어져 가고 있었다.
A love until the end of time
이 세상 다할때까지 영원할 사랑
I Love you with a heart that knows no one but you,
개는 하얀 눈 밭 위에서 미친듯이 뒹근다.
나도 개가 되고 싶다.
하얀 눈이 많이 쌓였다.
하얀 눈 위를 미친듯이 뛰다.
'에세이 수필 > 레테의 강'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숲이 바람에 날라가는 모습이 보인다 (0) | 2015.07.25 |
---|---|
time heals all wounds” (0) | 2015.07.09 |
“시간은 모든 상처를 치유해 준다 time heals all wounds”??? (0) | 2012.10.01 |
고독한 산보자의 명상 (0) | 2012.08.05 |
웃음과 망각에 대하여 -저항은 망각에 대한 기억의 투쟁” (0) | 2012.01.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