뭉크의 바로 이 그림은 내 블로그 대문에 걸린 그림이다.
천여 점이 넘는 그림을 그린 뭉크의 그림 중에서 가장 유명하게 잘 알려진 그림은 아닌 것으로 나는 알고 있다.
그런데 나는 이 그림을 무척 좋아했다.
왜? 각자의 보는 눈에 달려 있을 것이다.
여자(빨간색)와 피 (빨간 색)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피는 공포와 관련되어 있다. 생명력과 관련되어 있다. 결국 삶과 죽음의 문제와 바로 연결된다.
‘For in these pictures the painter gives his costliest possession – he gives his
soul – his sorrow, his joy – he gives his heart’s blood. He gives the person –
not the object. These pictures will – they must be able to grip more
strongly – first the few – then more – then everyone.’
Edvard Munch, 1891
‘His use of colour is above all lyrical. He feels colours and reveals his feelings through colours; he does not just see them in isolation. He does not just see yellow, red and blue and violet; he sees sorrow and screaming and melancholy and decay.’ - Sigbørn Obstfelder, 1893
귀차니즘 탓도 있지만 내가 대문을 바꾸지 않은 이유는 난 뭉크의 그림을 좋아했기 때문이다.
뭉크는 공포와 절망과 우울이 우리 삶의 큰 부분임을 알려주는 노르웨이의 국민 작가다.
뭉크를 좋아하는 이유는 뭉크의 삶의 견지를 나는 동의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내가 뭉크를 결정적으로 좋아하는 이유는 바로 이거다.
‘In my art I have tried to find an explanation for life and to discover its meaning. I also intended to help others understand life.’ - Edvard Munch
‘I do not paint what I see, but what I saw.’
Edvard Munch, 1890
‘He does not paint the image of nature itself but the image in his memory, not scenery directly and at first hand, as it stands there in the outer world, but its subjective likeness, which for longer or shorter periods of time is etched and burnt into his retina and into his soul and constantly springs out of the darkness in garish colours under his eyelids as soon as he shuts his eyes.’ - Ola Hansson, 1893
‘The camera will never compete with the brush and the palette, until such time as photographs can be taken in Heaven or Hell.’ - Edvard Munch in his Frieze-of-Life pamphlet of 1929
인생은 낙관적이지도 않고 그저 페시미즘을 간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태생적으로 낙관적인 사람은 아니다. 훈련을 받아서 낙관적인 면이 많게 보일 뿐이다.
이런 것도 인생의 아이러니이겠지.
가장 낙관적인 사람이 가장 비관적이라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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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크 “비명”. 1893. Casein/waxed crayon and tempera on paper (cardboard), 91 x 73.5 cm National Gallery, Oslo. 1883년 크라카토아 화산 폭발에서 영감을 얻어서 그린 1893년 뭉크의 그림이다. 화산폭발은 거대하고 끊임없는 비명과 같을까?
“해가 저물고 있던 거리를 나는 친구 둘과 걷고 있었다. 하늘이 갑자기 붉게 물들어 갔다. 나는 멈춰서서, 피곤한 몸을 난간에 기대었다. 검푸른 피요르도와 도시 위로 피와 불꽃처럼 퍼져 있었다. 친구 둘은 계속 걸어 갔고, 나는 불안에 몸을 떨면서 계속 서 있었다. 나는 끊임없는 비명이 세상으로 퍼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뭉크의 일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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