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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포토 essay/산행 우보 수필

사랑과 용서와 관용과 포용이 항상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by 추홍희블로그 2012. 7. 16.

"잃어버린 20년"을 찾으려고 지난 1년간 나는 극히 새로운 시도를 하였다. 그러나, 한비자의 "세난"이 가르치는 바와 같이, 참된 "소통"은 무척 어려웠다. 나로서는 국회의원 한 명 만나는 것이 별로 아무런 일도 아니었기에 나는 쉽게 누구를 만났다고 말하면 즉 내가 친구에게 아무개 의원을 만났다고 말하면, 상대방 듣는 사람은 내가 무슨 권위를 파는 것으로 이해하는 경우도 있었고, 내가 이런 의미로 말하면 다른 상대방은 전혀 뜻밖의 다른 뜻으로 받아들이는 일도 많았다.

내의 생각과 말의 뜻은 한국의 발전이 상전벽해가 됨에 따라 많은 차이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나의 기억은 20년전의 기억으로 정지된 가운데, 한국은 상전벽해가 되어버렸기에 나의 참된 자아를 찾기란 결코 쉽지 않았다.

그리하여 내가 내린 잠정적인 결론은 더 이상 나의 새로운 탐구와 시도는 의미 없다는 것이다. 이제 나의 모든 시도를 접는다. 더 이상 상처를 받을 필요도 없다.

누구나 분명하게 말할 수 있듯이, "차가운 진실보다는 좀 따뜻한 거짓말이 세상을 더 평화롭게 한다"는 말은 분명히 일리가 있다. 따라서 아무래도 눈물보다는 웃음을 보이는 것이 약한 자들에겐 위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랑을 받을 만한 (to be loved) 마음의 여유가 없는 사람까지 모두 다 포용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런 사람에게는 분노함으로 작별의 예를 갖추어도 될 것이다.

사랑과 용서와 관용과 포용이 항상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사랑을 할 능력이 없고, 어떤 사람들은 사랑할 줄도 모르고, 사랑을 받아들일 줄도 모른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차라리 분노함으로써 떠나게 만드는 것이 보다 현명한 방법이 될 수 있다. 다만 그들이 잘 되기를 간구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갈 사람은 가야 하고, 떠날 사람은 떠나야 한다. 남은 사람은 남는 것이고. 아름다움은 그 자체가 진실이다.

관용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에게까지 자비를 베풀 수는 없는 것이다. 진주목걸이를 돼지에게 던질 수는 없는 것처럼 말이다.

자비가 무한한 사랑의 원칙에서 나온 것임은 잘 알지만, 관용이 제1의 원칙은 아닌 것이다.

아무튼, 나의 능력 부재에 따라서, 나의 모든 새로운 시도의 노력을 포기하기로 한다.

그리고 오늘 부터 지난 1년간의 일들을 모두 내 마음 속에서 지우기로 한다.

그리고 나는 또다시 방랑의 길을 떠날 것이다. 내일 아침 해가 뜨면 나는 또다시 새로운 길을 떠나야 한다. 따라서 해가 뜨기 전에 나는 팩킹을 해야 한다.

ready to travel tomorr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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