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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포토 essay/산사의 아침-문화유산 탐방기

영축산 통도사

by 추홍희블로그 2012. 3. 9.

 

영축산 통도사.

 

 

 

 

 

 

 

절 입구를 지나고.

 

 

 

다음 글는 카피임. 선오스님(통도사성보박물관 학예연구원)의 통도사의 가람과 전각에서 가져온 글임.

 

1. 불보종찰 통도사

 

(1) 불보사찰로서의 통도사

 

한국의 사찰은 각기 나름대로의 고유한 성격과 특징 및 가람배치를 통하여 이 땅에 불법을 전파하고 있다. 특히 삼보사찰의 경우 이러한 성격을 잘 나타내고 있다. 즉 통조사는 부처님의 진신사리와 가사를 봉안한 불보(佛寶)사찰로, 해인사는 부처님의 말씀(法)인 팔만대장경을 간직하고 있는 법보(法寶)사찰로, 송광사는 보조국사 이래 열여섯 명의 국사를 배출했기 때문에 승보(僧寶)사찰로 이름나 있다. 그것은 달리 말해서 불교의 요체인 불, 법, 승 삼보가 각 사찰에 따라서 어느 한 부분의 특별히 강조되어 표현된 것이다.

 

통도사는 삼보 가운데 가장 으뜸인 불보(즉 부처님 진신사리)를 간직하고 있어 진정 불지종찰(불지종찰)이요, 국지대찰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석가모니 부처님의 진신사리와 가사를 금강계단(金剛戒壇)에 봉안하고 있기 때문에 통도사는 대웅전에 불상이 없는 사찰로 유명하다. 부처임의 진신인 사리가 대웅전 뒤쪽에 있는 금강계단에서 살아 숨쉬고 있어서 구태여 부처님의 형상[佛像]이 필요없다는 뜻이다. 그래서 정자형(丁字形)법당 외부 사면에는 각각 다른 이름의 편액(扁額)이 걸려 있다. 즉 동쪽은 대웅전, 서쪽은 대방광전, 남쪽은 금강계단, 북쪽은 적멸보궁(寂滅寶宮)이라 씌여 있다.

 

(2) 통도사의 어원

 

해동의 이름난 명승지, 영축산 통도사는 신라 제27대 선덕여왕 15년(646)에 고승 자장율사에 의하여 창건된 국내 제일 대가람(大伽藍)이다. 영축산이란 본래 부처님 재세시(在世時) 마가다국 왕사성의 동쪽에 있던 그리드라(Gdhra : 鷲, 독수리)라는 산(봉우리)이었다. 본래 이 산은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법화경(法華經)』을 설한 곳으로 유명하며 신선과 독수리들이 많이 모여 살고 있었기 때문에 영축산이라 불렀던 것이다. 이러한 영축산에 통도사를 창건하게 된 것은 자장스님의 ‘부처님나라 만들기’의 일환으로 이루어졌다. 즉, 자장스님이 활동하였던 신라시대에, 이땅 신라는 과거부터 특별한 인연이 있어 이미 부처님과 인여을 맺어오던 곳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한 자장스님의 원력으로 황룡사 구층탑이 건립되었고, 대국통에 오른 뒤 신라의 불국토설을 가시화하기 위하여 인도 영축산과 닮은 이곳에 통도사를 창건하기에 이르렀다.

 

신라에는 불교가 전래되기 이전에 이미 일곱군데의 가람터가 있었다고 『삼국유사』흥법편 아도기라조(아도기라조)에 전해진다. 오대산과 금강산에는 문수보살(文殊菩薩)과 법기보살(法起菩薩)이 거주하는 곳이라 하여 우리나라가 불법과 매우 인연이 깊은 땅임을 보여준다.

 

영축산 통도사에 있는 전각들과, 탑, 석등, 이것들과 어우러져 있는 자연, 그 속에서 불법을 꽃피운 위대한 고승들, 어느 하나 불연(佛緣)과 떼놓을 수 없다. 그래서 이 산의 모양이 불법을 직접 설하신 인도 영축산과 통한다(此山之形 通於印度靈鷲山形) 해서 통도사라 이름했다고 일컬어진다.

 

또한 “승려가 되려는 사람은 모두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금강계단에서 계를 받아야 한다(爲僧者通而度之)” 는 의미에서 통도사라 했다한다. 이는 사찰의 근본 정신을 잘 말해주는 것으로 통도사는 계율(戒律)의 중심지로서 모든 승려들은 이곳에서 계(戒)를 받아야 산문(山門)에 들어서게 된다. 그리고 “모든 진리를 회통하며 중생을 제도한다(萬通法度衆生)”의 의미를 통도(通度)라는 이상(理想)으로 표현한 탁월한 발상이었다. 보살은 자기만의 깨달음을 구하는 데 있지 않다. 깨달음을 향하여 진리의 세계로 나가는 동시에 고통받는 중생들과 함께하는 대비(大悲)의 마음이 있어야 한다.

 

 

 

 

 

라) 사리신앙

 

사리는 불자가 존중하는 신앙(信仰)의 대상이다. 이 사리는 옛적부터 계(戒), 정(定), 혜(慧)의 삼학(三學)을 성취(成就)했을 때 나타나는 결정체라고 한다.

「통도사 사적기(通度寺 事蹟記)」사리영이편(舍利靈異篇)에 보면 사리의 영이함에 관한 많은 이야기들이 지금까지도 전해 내려오고 있다.

첫째는 사부대중(四部大衆) 가운데 어느 누구든지 사리(舍利)를 첨례(瞻禮)하고 공양할 때에는 먼저 다섯 가지 법신(法身)의 향기가 산내에 드높아 내원(內院)에 머물고 있는 사람들이 이상한 향기를 맡고 감탄하는 일이다.

둘째는 인연의 유무를 따라서 사리가 나타나기도 하고 나타나지 않기도 하고 빛나면서 수정통(水晶筒) 가운데 붙어서 나오지 아니하며 혹은 절반만 있고 절반은 없으며 혹은 크기도 하고 작기도 하며 때로는 순금색(純金色)이거나 또 순옥색(純玉色)이며 절반은 금이며 절반은 옥이며 또 크고 작음과 숨고 나타남이 같지 아니한 것이다.

셋째는 사람들이 첨례할 때 맑은 하늘에서 갑자기 비가 내리기도 하며 우천(雨天)이 홀연히 개기도 하며 검은 구름이 깔리고 우레 소리를 내며 폭풍이 갑자기 비를 내려 수목(樹木)을 쓰러뜨리기도 하여 그 길흉(吉凶)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넷째는 사람들이 첨례하기 위하여 동구(洞口)로 들어올 때면 계단 석종(石鍾)위에서 먼저 오색광명(五色光明)이 크게 천지(天地)를 비춰 훤히 산과 골짜기를 밝히는 것이다.

다섯째는 사람들이 첨례(瞻禮)하여 향과 초를 태워 여러 가지로 공양하고 부지런히 정진(精進)하면 계단(戒壇)의 반상에 변신사리(變身舍利)가 모래알처럼 무수히 나타나는 것이다.

여섯째는 사리를 첨례하려는 사람이 몸과 마음이 부정(不淨)하여 하심(下心)하지 못하고 원문(院門)을 소란스럽게 하면 일원중(一院中)에 먼저 비우를 상하는 고약한 냄새가 나서 그 사람이 곧 광란(狂亂)하여 땅에 쓰러져 귀신의 말을 지껄이다가 결국 미치게 되는 것이다.

일곱째는 금강계단 석종 부도의 여의주석 반석 아래 움푹 파인 곳에 항상 물이 가득 차 있고 그 가운데 한 쌍의 푸른 달팽이가 매양 붙어 있는데 석종을 들 때 사람이 보면 사방으로 흩어져 간 곳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 없어지면 잠깐 사이에 들어와서 전과 같이 있는 것이 사시(四時)에 끊어지지 아니하고 죽지 아니하여 항상 붙어 있으면서 나타나기도 하고 나타나지 않기도 하는 것이다.

여덟째는 금강계단 위로는 모든 날 짐승이 그 가운데를 날아가지 아니하고 또 그 위에 오줌과 똥을 주지 않는 것이다.

 

 

이와 같이 여덟가지로 사리에 대한 신령(神靈)스러움과 길흉변동(吉凶變動)을 사적기(事蹟記) 사리영이편(舍利靈異篇)에 기록(記錄)하고 있다.

통도사에서는 이런 사적기(事蹟記) 기록 못지않게 지금도 간혹 사리탑 계단에서는 밤중에 광명이 뻗어 올라 대낮처럼 밝아 대중이 깨어나서 첨례하는 일이 있으며 그럴때면 멀리 양산(梁山)에서는 통도사에 화재가 생겼다고 야단들이라고 한다. 뿐만 아니라 상노전(上爐殿)의 스님들이 혹시 예불시간에 일어나지 못하면 종소리와 목탁소리가 들리게 되니 이는 불사리를 봉안한 적멸보궁(寂滅寶宮)만이 갖는 특별한 영이(靈異)로움이라 하겠다.

 

 

 

 

 

절에 대한 많은 내용은 다음에 정리하기로 하고. 오늘은 통과.

 

 

 

통도사를 뒤로 하고 산 정상에 오릅니다.

 

 

 

산 중턱의 암자에는 얼음이 얼어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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