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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사·철+북 리딩/번역 이론

[세계포럼] 번역, 이대로 좋은가?

by 추홍희블로그 2011. 10. 12.

세계포럼] 번역, 이대로 좋은가<세계일보>

 

시장 자정기능 믿을 단계 넘었다

‘위키피디아’식 대안도 검토해야
  • 국회에 양서(良書)를 읽는 이들이 많은 모양이다. ‘국회보’ 2월호에서 “이 책을 (의원회관에서) 흔히 볼 수 있다”는 글을 봤다. 제러미 리프킨의 ‘공감의 시대’ 얘기다. 정치권이 공감을 갈망하는 징표라고 한다.

    유감스럽게도 나는 속이 거북했다. 기억의 김칫독에 던져놓았던 오역(誤譯)의 파편들이 꿈틀거렸기 때문이다. 번역본을 읽는 동안 곱씹은 질문도 다시 떠올리게 됐다. 우리 번역, 왜 이 모양인가. 

    이승현 논설위원책을 보자. ‘공동의 비극’이란 말이 나온다. 660쪽에서다. 문맥으로 보면 ‘Tragedy of the Commons’를 옮긴 말이기 십상이다. 사리사욕을 무한 방치하면 공동체가 파국을 맞을 수 있다는 결론을 도출한 개럿 하딘의 1968년 ‘사이언스’ 논문에서 비롯된 술어다. 시장 실패를 경고하는 화두여서 사회과학에서 폭넓게 다뤄진다. 경북대 최정규 교수가 깔끔하게 집필한 ‘이타적 인간의 출현’에선 ‘공유지의 비극’으로 표현되는 술어다.

    번역 속성상 정답이 하나일 수는 없다. 서강대 김경환, 홍익대 김종석 교수는 ‘맨큐의 핵심경제학’ 번역본에서 ‘공유자원의 비극’으로 옮겼다. ‘소유의 역습, 그리드락’ 번역자는 ‘공유재의 비극’이라고 했다. ‘행인 1·2’ 격의 변용도 있다. 일각에선 ‘공동의 비극’이라고도 한다.
    ‘공감의 시대’ 번역자·편집자는 ‘공동의 비극’을 택했다. 최적의 등가어로 본 걸까. 속내를 측량할 길이 없다. 더 헷갈리는 대목도 수두룩하다.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죽음 충동’은 이미 굳어진 술어인데도 63쪽에 ‘죽음 본능’으로 등장한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노벨상 수상자 콘라드 로렌츠는 ‘호주의 동물행태학자’로 소개된다. 88쪽에서다.

    ‘공감의 시대’는 양서다. 국회에서 읽힌다면 반가운 일이다. 지난해 ‘올해의 책’으로, 지난달 ‘이달의 책’으로 꼽혔다. 출판사도 일류다. 그런 책이 단어 차원에서부터 줄줄이 물음표를 낳는다. 원문 대조를 통해 문장 차원에 현미경을 들이대면 결과가 어떨까. 낙관이 쉽지 않다. 하물며 급이 떨어지는 다른 번역물들은 어떻겠는가. 문예연감에 따르면 2009년 중 번역물이 1만1681종 나왔다. 전체 출판물의 27.6%다. 번역 수준은? 대체로 참담하다.

    한국 현대사는 압축성장의 역사다. 산업화·민주화 시대가 거칠게 이어졌다. 번역 문제를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개선의 실마리를 찾을 기회가 전무했던 것은 아니다. ‘삼국지연의’ 번역을 둘러싸고 갑론을박이 오가고 ‘노자를 웃긴 남자’ 1·2탄이 출간된 21세기 진입기에 정부와 시장이 각성했더라면 현실은 달라졌을 것이다. 2006년 우석대 박상익 교수가 ‘번역은 반역인가’를 냈다. 통렬했다. 그때라도 박 교수 등의 목소리를 정책에 반영해야 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장하준 교수의 신간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를 놓고 사변적 공방이 한창이다. 황희 정승 흉내를 내는 꼴이지만, 나는 저마다 일리가 있다고 본다. 하지만 번역 문제로 초점을 좁히면 국가 역할을 강조하는 장 교수 편을 들고 싶다. 시장에만 맡길 일이 아니다. 정부가 나서야 한다.

    ‘책은 사람을 만든다’고 한다. 황폐한 번역문화를 방치한 채로 지식기반 사회나 지식정보화 사회가 만개할 리 없다. 동북아 역사전쟁에서도 이길 수 없다. 실력파 학자들이 동서양 양서 번역에 나설 기반부터 닦아야 한다. 번역 성과가 연구 업적에 비중 있게 반영되고, 학위 취득에도 도움되도록 제도화하는 것이 급선무다. 선진국 모범사례도 즐비하다.

    사견이지만, 정부가 직접 혹은 산하기구를 통해 ‘위키피디아’ 유형의 번역 특화 사이트를 개설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독자들이 오류를 지적·토론하는 지식 놀이터로 자리 잡을 수 있다. 의욕을 낸다면 ‘미슐랭 가이드’ 방식의 대처도 검토함직하다. 전문적 검토를 거쳐 별표 등급을 부여하는 것이다.

    그 어느 쪽으로 나아가든 사전 검증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사후에 온라인상에서 일반 독자가 명품 번역물을 구분하게 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잘 실행한다면 피드백 효과가 작지 않을 것이다.

    법과 소시지의 공통점은 뭘까. 유머집에 따르면 둘 다 만드는 과정이 역겹다고 한다. 입맛이 뚝 떨어지는 것이다. 우리 번역은 어떤가. 정말 수수방관할 일이 아니다.

    이승현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