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구성5 정말 신라는 흉노족의 후손일까? 1. 들어가기-말과 글과 문화-사전의 가치 정말 신라는 흉노족의 후손일까? 문무대왕 왕릉비문 속에 등장하는 “秺侯 祭天之胤”(투후 제천지윤)을 “투후 김일제”라고 해석하는 주장들이 존재한다. 탈-진실사회에서 활개치는 인터넷 가짜글들은 두말할 필요도 없거니와, 지난 30년간 식민사학자들이 진행시켜 온 특히 KBS 방송 역사 스페셜 등 각종의 신문 방송에서 문무대왕 왕릉비문의 “투후”를 “김일제”로 해석하여 “신라인은 흉노족의 후손”이라고 떠들어대고 있는 이들 때문에 역사 교육의 혼란스러움이 극한 상황에 다다른 지경이다. 그렇게 떠들어댄 이유 중 하나는 공자도 칭찬해 마지 않았던 우수한 한반도 동이 민족을 침략자 서방 강족 흉노족으로 변신시켜 민족 정체성의 혼란을 겪게 만들어 내고, 그리하여 유구한 역사를 .. 2024. 4. 17. “투후”를 “김일제”이라고 해석하는 한국인들에게 “투후”를 “김일제”이라고 해석하는 한국인들에게 투후 상구성-반악의 서정부와 백제 흑치준 묘지명의 투후는 누구인가 투후를 김일제라고 해석하는 한국 사람들에게 나는 그들의 잘못을 한번에 깨부숴버리는 주장으로서 우선 강희자전을 즉시 펼쳐보기를 바란다. 한자옥편만 펼쳐봐도 투후 김일제라고 단정하는 사람들의 주장이 얼마나 부족한지를 바로 알 수 있다. 그런데도 그동안 왜 한국인들은 눈뜬 봉사가 되었고 코끼리 다리 만지는 장님이 되었고 귀마저 멀은 귀머거리가 되었고 벙어리 삼룡이 농아가 되었단 말인가? “한 나라가 종교에 대한 믿음을 잃게 되면 그 문명은 국내적으로 사회적 분열을 겪거나 외부 군사적 침략의 위험에 노출되거나 경제적 식민지 노예 상태로 전락할 그럴 위험에 처하게 된다. 믿음의 상실이 가져온 결과로 .. 2024. 4. 17. 9장 왜 권력의 역사만 선택되었고, 예를 들어, 종교나 문학의 역사는 빠졌을까? 9장투후 상구성 전기 투후 상구성(商丘成)은 누구인가? 투후 상구성 전기 상구성(商丘成)은 성은 상구(商丘) 이름은 성(成)이다. “열선전”에 상구자서(商丘子胥)라는 선인이 소개되어 있고, 상구는 복성이다. 상나라의 수도가 상구였다. 투성이 위치한 성무현이 이 근처이고 오늘날 산동성 하택(荷澤)시 부근이다. 상구성의 출생 연도는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다. 대홍려와 어사대부를 지낸 관직 경력과 무고의 난 때 한고조 묘지기를 지낸 전천추(?-BC 77)의 기록을 통해서 대략 추측해 보면 BC 2세기경에 태어났을 것으로 보인다. 한서 기록에 따르면 한문제(BC 202-BC 157) 묘지기 첨사로 재직 중 설화를 입어 BC 88년 황제에 대한 불경죄의 판결이 나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상구성은 한무제 때 조.. 2022. 9. 19. 18장 투후제천지윤 갈마무리 한국인은 문무대왕릉비문 속에 적혀 있는대로 “秺侯祭天之胤”(투후제천지윤)이다. 한국인의 선조 “투후”(秺侯)는 누구인가? 이 담대한 의문에 대한 역사적인 해답을 추구한 것이 이 책의 발간 의도이고 그 주된 내용이다. 역사의 오리진(Origin) 스토리는 누구도 정확하게 말하기가 미지의 힘든 영역으로 남아 있다. 로마제국의 흥망사는 잘 알려진 역사서이지만 그 로마 제국의 건설한 사람들의 원래 오리진 스토리는 누구도 정확하게 분석해내지 못했다. 아이네이드라는 서사시로 언급은 했지만 역사로 입증되지는 못했다. 왜 오리진 스토리는 누구도 해내지 못한 미스터리와 미완의 영역인가? 이 책은 “秺侯”(투후)는 “金日磾”(김일제)가 아니라 “秺侯 商丘成”(투후 상구성)이라는 역사적 결론을 이끌어내고 이를 입증하는 역사.. 2021. 10. 27. 7. 문무왕릉비문의 투후는 상구성 (秺侯 商丘成) 7. 투후는 상구성이다 한서 공신표(景武昭宣元成功臣表) 투후 상구성 1. 투후 상구성 (秺侯 商丘成) 商丘成(상구성)이 秺侯(투후)에 봉해진 기사는 한서 공신표(景武昭宣元成功臣表)에 나타난다. 以大鴻臚擊衛太子 力戰 亡它意 侯 二千一百二十戶 대홍려 상구성은 반란을 일으킨 위태자 일당을 추격 역전분투하여 일망타도한 공로로 제후 작위를 수여받았고 제음현이 그 봉읍지로써 봉읍호수는 2천2백2십 호에 달한다. 시호성명 제후 봉작을 받게 된 구체적 공적 내용과 봉읍의 호수 봉작을 작위받은 시기 봉읍지 투후 상구성 (秺侯 商丘成) 대홍려 상구성은 반란을 일으킨 위태자 일당을 추격 역전분투하여 일망타도한 공로로 제후 작위를 수여받았고 제음현이 그 봉읍지로써 봉읍호수는 2천2백2십 호에 달한다. 정화 2년 (BC 91).. 2021. 10. 24.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