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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이 책의 주요 내용 요약 ● 27
순서 내용 쪽
1
① 비문앞면3행의 “鯨津氏”(경진씨)는 문무왕의 인 태종 무열왕 김춘추를 지칭한다. “鯨津氏”(경진씨)가 신라 제29대왕 태종 무열왕 김춘추를 지칭한다는 사실을 밝혀냄으로써 반만년 한국사의 최대의 미스터리가 풀리게 되었다.
② 비문 뒷면 20행에 나오는 “粉骨鯨津”(분골경진)은 나라를 위해 “분골쇄신한 경진씨”라는 뜻이다. 粉骨鯨津(분골경진)은 국편위의 해석대로의 “경진에 뼈가루를 날리셨네”라는 뜻이 아니다. “鯨津”(경진)은 지금까지 다수가 해석하는대로의, ‘어느 바닷가 포구’를 말하는 지명이 아니다. “粉骨鯨津”(분골경진)의 粉骨(분골)은 삼국사기에서 기재하고 있는 “粉骨碎身”(분골쇄신)의 약자로써 “몸이 부셔지는 것도 마다하고 진심전력으로 나라를 위해서 온몸을 던져 헌신한 사람”을 지칭하는 비유적인 의미로 쓰였다.
(73 - 119)
2
비문앞면2행 □□□通三後兵殊□□□에서 5행 不可得而稱者까지의 문장 내용은 문무왕의 부친인 태종무열왕 김춘추의 영웅적 인물상을 묘사 서술하고 있다. 이와 같이 비문의 맨처음 부분을 아버지 태종무열왕의 공적부터 서술하고 또 비문 마지막 명부분에서 충효정신을 강조하는 “因心孝友”(인심효우)의 문구로써 끝맺고 있는 점에서 신라의 이효치국(以孝治國)의 정치 이념이 파악된다.
(73 - 119; 187- 228)
3
비문앞면3행의 황룡(黃龍), 주몽(朱蒙), 백무(白武) 이 단어들의 정확한 의미를 밝혀냈다. (100 - 108)
순서 내용 쪽
4
비문앞면4행의 “勳超三□”(훈초삼□) 부분을 勳超三皇(훈초삼황), 勳超三讓(훈초삼양)으로 해석해내어 국편위가 해석한 “勳超三韓”(훈초삼한)이 잘못되었음을 통박한다.
(109 - 119)
5
비문앞면5행의 “傅七葉”(부칠엽)의 글자판독을 “傳”(전)이 아니라, “傅”(부)로 판독하고 “傅七葉”(부칠엽)의 의미가 ‘천자의 후손으로서 7대의 조상까지 제사를 모신다’는 7대 선조에 대한 제사 七代之廟(칠대지묘)로 해석해냄으로써 여지껏 해결해내지 못했던 “秺侯祭天之胤”(투후제천지윤)의 실체를 밝힐 수 있게 되었다. “七葉”(칠엽)은 “七世之廟”(칠세지묘) 즉 “七廟”(칠묘)의 뜻과 같고, 七廟(칠묘)는 “王朝”(왕조)의 뜻으로 대신 쓰이는 말이다. 비문의 “傅七葉”(부칠엽)은 국사위가 해석한대로의 “7대를 전하여”의 뜻이 아니라, “敷七葉”(부칠엽)의 뜻으로 쓰여서, ‘천자국을 떨어져 나와 새로운 왕조를 부설했다’는 뜻이다. 비문의 傅七葉(부칠엽)은 건릉 술성기에 나오는 칠묘지기(七廟之基)의 뜻으로 새기는 것이 옳다. 따라서 “秺侯祭天之胤傅七葉以□□□” 문장은 ‘천자의 후예인 투후는 새왕조의 기틀을 다졌다. (그리하여 선조를 빛냈다)’는 뜻이다.
(120 - 140)
6
비문앞면5행의 “秺侯”(투후)의 실체적 인물이 누구인지를 밝혀냈다. 그리하여 신라의 시조를 흉노족 출신 “金日磾”(금일제)라고 주장하는 일설에 대해 사료로써 정면으로 통박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하여 민족혼을 되찾을 수 있게 되었다.
(120 - 140)
7
비문앞면 5행의 火官之后(화관지후)는 국편위의 번역대로의 “화관의 후손”이라는 뜻이 아니라, 저자는 “后”를 “君”으로 주해한 (“后 君也”) 주석을 따라서 화관(火官)과 后(후)는 동일한 사람 즉 화관대제를 지칭함을 밝혀냈다. 신라인의 선조는 멀리는 요순우의 태평시대 성군 요임금의 후손임을 밝혀낸 것이다.
(120 - 140)
8
비문앞면6행의 “星漢王”(성한왕)의 의미를 밤하늘 “은하수”를 의미하는 보통명사 “星漢”(성한)의 뜻으로 새겨서, 성한왕을 후대에 이르러 김수로왕으로 전해온다는 결론으로써 사라진 가야왕국의 역사를 복원할 수 있게 되었다.
(142 - 148)
9
비문앞면9행 “□□者□知其際承德者咸識其隣” 구절에 대해 국편위는 “ 한 자는 그 시기를 알고, 덕을 이어받은 사람은 모두 그 이웃을 알아보니”라고 번역했지만, 저자는 “그가 남의 뜻을 받들고 베푸는 사람 즉 승의자(承意者)임은 국내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고, 그가 승덕자(承德者) 즉 많은 은사와 덕택을 받은 사람임은 이웃나라들에까지 널리 알려졌다”고 해석하여 영웅의 조건이 무엇인지를 파악해냈다.
(142 - 148)
10
비문앞면12행의 “詩禮之訓姬室拜.梓之□” 구절에 대해서 姬室(희실)과 拜(배)와 橋梓之道(교재지도)와 詩禮之訓(시례지훈) 뜻을 以孝治國(이효치국)의 통치이념으로 해석해냈다. 희실(姬室)은 주나라 왕조를 지칭하는 단어이고, 주공단은 주나라 건국 시기의 최고권력자로서 먼 훗날 공자가 태어나는 공자의 고향 곡부가 위치한 산동성의 노나라에 자신의 아들 백금을 제후에 봉했던 인물로서, 姬室(희실)과 橋梓(교재)와 拜(배)의 세 단어를 조합하면 고사성어 “伯禽趨跪”(백금추궤)의 의미가 찾아진다. 橋梓(교재)는 부자지간의 마땅히 해야할 도리를 뜻하는 말이다. 跪(궤)는 무릎 끓고 절을 하는 것 拜(배)의 뜻을 갖는 글자이다. 姬室(희실)과 橋梓(교재)와 拜(배)의 세 단어에 서 나타나는 내용은 자식은 부모의 뜻을 받들고 이어받는다는 자승부교(子承父教), 자승부업(子承父業), 백금추궤(伯禽趨跪)의 의미이다. 백금추궤(伯禽趨跪)는 주공단이 그 아들 백금(伯禽)을 노나라의 제후로 봉하고서 제아무리 최고권력자라고 해도 결코 교만해서는 아니된다는 겸손의 국정철학을 가르친 고사성어이다.
(187 - 215)
11
비문앞면12행의 “大唐太宗文武聖皇帝應鴻社□” 구절을 당태종의 哀死之道(애사지도) 즉 吊祭哀哭(조제애곡) “傷遼東戰亡”(상요동전망)으로 해석해냄으로써 당태종과 문무왕의 역사적 관계와 그 의미를 고증해냈다.
(216 - 228)
12
비문앞면14행의 “□舜海而霑有截懸堯景以燭無垠” 구절에 대해 ‘슬픔은 파도를 타고’의 哀思如潮(애사여조)의 의미로 해석해냄으로써 문무왕릉비 내용의 참뜻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시경에 海外有截(해외유절)의 표현이 나오는데, 후대에 들어서 많은 문인들이 海外(해외)라는 말을 생략하고 有截(유절)만 써서 그 뜻을 나타냈다. 여기의 “유절”은 “해외유절”의 생략형으로 “유절”은 “해외”라는 말을 대신했다. 有截(유절)은 절단하다, 반듯이 잘라지고 가지런한 모습을 나타내는 뜻에서 “해외”까지를 보탠 의미이다. 건릉 술성기에서의 “財成有截”(재성유절), 이백의 명당부의 “武義.赫於有截”(무의훤혁어유절), 백거이의 “方今華夷有截”(방금화이유절) 구절의 有截(유절) 의미가 그것과 같다. 또 여기의 舜海(순해)와 堯景(요경)의 堯(요)와 순(舜) 글자는 요임금과 순임금을 지칭하는 인칭명사로 쓰인 것이 아니라, 댓구법의 표현기교로써 쓰였다. □舜海而霑有截 懸堯景以燭無垠(순해이점유절 현요경이촉무은) 문장은, ‘슬픔과 사모의 정이 솟구치고 밀물처럼 밀려와 그 애도의 물결은 파도를 타고 바다 건너 먼 해외에까지 적셨다, 높이 내걸린 추모의 등불은 끝없이 넓은 곳 광대무변의 지역까지 비추었다 (존경하고 숭모하는 추모의 정이 끝없이 모든 지역에서 타올랐다)’ 이런 의미이다. 이렇게 번역되는 이 구절의 정황을 부연하면 다음과 같다. 문무왕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덕행을 베풀었던 성현철인 같은 분이었는데 그런 존경받는 사람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니 사람들의 슬픈 감정은 어떠했겠는가? 전국적으로 모든 사람들이 마치 자기 부모친척이 세상을 떠난 것처럼 슬픔이 밀물처럼 솟구치고 애도의 감정이 넘쳐나 바닷물을 적시고 그 바닷물이 불어나 저 먼 지구 반대편 외국에까지 적셨다는 것 아닌가? 상가는
(229 - 246)
밤새 불을 밝혔고 조문객들로 꽉 들어차서 인산인해를 이루었으며, 해외에서도 찾아온 조문 행렬이 그치지 않았다는 애도의 정황을 말해준다.
13
비문앞면15행의 “而光九列掌天府以” 구절에 대해서 저자는 “九列”(구열)을 “9성”의 별들로 이루어진 騎辰尾星(기진미성)- 사람이 죽으면 그 혼을 기탁한다는 즉 소크라테스의 오라클(信託)과 같은 의미 즉 동방청룡의 끝자리 아홉개 별들로 이루어진 별자리-로 해석해내어 15행의 내용이 ‘우리들의 운명을 부열성에 맡기고 쉬지 않고 항해를 계속하여 마침내 하늘의 뜻을 얻어냈다’는 의미로 풀어냈다. 다시 말하면 진인사대천명의 자세로써 자강불식의 노력을 한 결과 마침내 바라던 꿈을 성취해냈다는 내용이다.
(247 - 253)
14
비문앞면17행의 “ 近違鄰好頻行首鼠之謀外信 ” 구절에 대해서 국편위는 “이웃나라와의 우호를 어기고 자주 이쪽 저쪽으로 붙으려 하면서, 겉으로는 …을 믿는 척하니 …”으로 번역하였는데, 이에 대해 저자는 국편위의 번역은 “頻行”과 “首鼠之謀”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해 내지 못한 부족함이 있다고 통렬히 지적하고, ‘이웃나라와의 선린우호 관계를 조금이라도 해치는 것을 결코 용납하지 않는 그러한 단호한 외교 정책을 기본으로 하고, 처한 상황에 따라 수시로 변경할 수 있다는 외교 정책의 유연성의 지혜를 병행하였다 ‘(선린우호, 수서지모, 당랑포선 황작재후, 외유내강의 외교 정책의 기조하에) 외국에는 신임을 얻고 그들을 안심시키는 정책을 펼쳤다’는 의미로 저자는 번역했다. 螳螂捕蟬黃雀在後(당랑포선 황작재후)는 오월춘추와 장자에서 설명하는 뜻대로, 바로 눈 앞에 전개되는 일보다 그 뒤에 숨어 있는 상대방의 의도와 음모를 경계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와 같이 首鼠之謀(수서지모)의 의미를 정확하게 해석해냄으로써 문무왕의 삼국통일의 위대한 업적을 재조명하게 되었다.
(259 - 264)
15
비문앞면19행의 “列陣黃山蝟聚鴟張欲申距□” 구절에 대해서 국편위는 “황산(黃山)에 군진을 펼치니, 적들이 고슴도치와 올빼미처럼 모여들어 (진군을) 가로막고자 하였다”라고 번역하였는데, 저자는 이를 정면 반박하고, ‘황산에 전투 전개의 진을 쳤다 송곳처럼 돌격해오는 적의 어린진 공격에 독수리매가 양 날개를 펼치듯 학익진을 치고서 적을 포위하고, (적의 결사대가 직진돌파를 시도할 것으로 예상하고서) 중앙지휘부는 뒤로 약간 물러나 있다가 (양 옆에서 조이고 뒤에서 후려치는 그리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결코 흔들리지 않는 목계술을 전개했다)’는 뜻으로 해석한다. 비문의 蝟聚鴟張(위취치장)은 전장터에서의 양측이 어떤 전투대형으로 전투를 전개했는지를 묘사해주는 구절이다. 신라와 백제는 황산벌 전투에서 삼국사기가 기재한 “遂鏖戰”(수오전) 즉 결렬한 섬멸전을 전개하였다. 鏖戰(오전)은 격렬한 전투(激烈地戰斗)를 벌린 것 즉 인명살상이 큰 섬멸전을 의미한다. 어린진과 학익진은 당태종이 죽기 일년전인 648년에 완성하여 태자에게 전한 “帝範”(제범) 서문의 “夕對魚鱗之陣 朝臨鶴翼之圍”(석대어린지진 조임학익지위) 구절에서 등장한다. .(치)는 큰수리매 올빼미를 말하고 鴟張(치장)은 鴟囂張(치효장) 즉 큰수리매가 날개를 쫙 펼치다는 뜻이다. 당태종의 파진무도에서 그려낸 ‘날개를 펼친다’는 翼舒(익서)와 같은 뜻이다. 날개는 옆으로 쭉 펼쳐지는 것이니 익서는 횡렬대열로 펼치는 대진법을 묘사한다. 箕張(기장)은 “兩旁伸張開去如簸箕之形”, 箕張而進(기장이진)의 의미로 공격대열을 뜻한다. 문무왕릉비에서의 蝟聚(위취)는 고슴도치가 송곳칼날을 솟구치며 움추리고 모이는 모습을 뜻한다. 蝟(위)는 고슴도치를 지칭하는 단어이다. 聚(취)는 聚集(취집)하다, 모이다, 會合(회합)하다의 뜻이다. 그러므로 蝟聚(위취)는 고슴도치의 날카로운 송곳들이 함께 모여서 찌르며 돌격하는 전투 대진을 비유한다.
(267 - 276)
고구려-백제-일본으로 이렇게 남북 종대로 서로 연계해서 슈퍼 파워 당나라에 맞서려고 했던 것은 소진의 합종책에 가깝고, 신라와 당나라가 동서로 서로 연결된 전략적 제휴를 맺은 것은 장의의 연횡책과 가깝다. 섬멸전의 황산벌 전투에서 일대십의 절대적 수적 우위를 점한 신라군이 절대적 수적 열세의 백제군을 포위하는 학익진 즉 문무왕릉비문에서의 “鴟張”(치장)진을 쳤으면 백제군이 취할 진형으로는 일당천의 결기로 오천 결사대를 조직하고 정면돌파를 시도하는 최후의 선택을 할 수 밖에 없게 된다. 결국 계백의 오천 결사대는 전부 몰살하고 말았다. 문무왕릉비의 “蝟聚鴟張”은 건릉 술성기의 구절 “殲蝟結而殄鴟張”의 표현과 같은 의미를 갖는다. 즉 문무왕릉비의 “蝟聚鴟張”은 무측천의 술성기 “蝟結鴟張”의 표현과 의미가 같다. “聚”와 “結”은 그 의미가 취집(聚集)으로 서로 같은 뜻이다. 聚(취)는 聚集(취집)하다, 모이다, 會合(회합)하다의 뜻으로 結(결)과 같은 말이다. 이와 같은 분석에 따라서, 국편위가 “적들이 고슴도치와 올빼미처럼 모여들[었]”다고 번역한 것은 잘못된 해석임이 분명해졌다. 蝟聚鴟張(위취치장)은 고슴도치와 올빼미라는 개별적 낱말 뜻으로 쓰인 것이 아니라, 좌전과 손빈병법과 제갈량의 팔진도, 당태종의 파진무 12진도, 무측천의 술성기에서의 “蝟結鴟張”(위결치장)과 같은 의미로써 황산벌 전투에서 펼쳤던 전투대형 군진법을 지칭하는 비유적 의미로 쓰였다. 계백의 오천결사대가 고슴도치형 돌격대 공격을 취할 때 신라군은 독수리가 양날개를 펼치듯이 군사들을 양 옆으로 쭉 벌려 펼치는 독수리 날개진 치장진 즉 학익진의 포위전술을 구사했음을 말해준다. 학익진에서는 삼군 중 중앙지휘부는 약간 뒤로 물러서서 마치 닭의 며느리발톱이 뒤로 나 있지만 그 며느리발톱을 숨기고 있다가 한 순간에 냅다 후려 갈겨치는 닭싸움과 같은 전략-이러한 전투대열을 묘사하는 구절이 문무왕릉비문의 이어지는 “欲申距□” 표현이다.
16
비문앞면23행의 無爲(무위)와 無不爲(무불위)의 의미에 대해서 저자는 天下自和.寧無事 (천하자화 청녕무사)라는 노자 도덕경 제38장의 개념으로써 설명해냈다.
(287 - 292)
17
비문앞면24행의 “泰伯之基”에 대해서 국편위는 “秦伯”(진백)으로 판독했으나, 저자는 “泰伯”(태백)으로 판독하고 오나라 시조 오태백으로서 해석하여 ‘민족 중흥’의 의미와 그 조건을 풀어냈다.
(293 - 296)
18
비문앞면25행의 “北接挹婁蜂▨” 구절에 대해서, 저자는 蜂翔吐飯(봉상토반)의 의미로 해석해내어, 읍루족이 ‘완전히 변해서 새사람이 되었다’는 뜻으로 번역했다. 이로써 신라의 덕화정치 德政(덕정)의 실체를 설명해내고, 읍루족 여진족 거란족 몽고족 만주족 등 북방민족들과의 역사적 관계 그 실체를 밝혀냈다.
(297 - 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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