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유토피아는
섬인가?
<유토피아>의 저자 토마스 모어도 유토피아는 섬으로 설정했다. 15세기의 모어만 유토피아를 섬에서 실현하는 것으로 설정한 것만이 아니라 20세기 사람 헉슬리도 그의 소설 <아일랜드>에서 섬에서 유토피아를 실현하고 있다.
유토피아 이상향 무릉도원은 육지가 아니라 섬에서 구현되고 있다는 사실은 진시황제도, 한무제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들은 섬을 무척 동경하였고 바닷가에 누각 정자를 지었다. 이들 황제가 유토피아를 정치적으로 설정했다면, 무릉도원을 사상적 이념적 문학적 실천적 삶으로 완성한 도연명은 <도화원기>에서 이상향을 세상과 절연된 고도의 섬으로 그렸다.
동서고금을 통틀어 유포피아는 섬에서 이루어지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왜 섬에서만 유토피아가 이루어지는 것일까? 섬은 노자가 그린 이상국인 “소국과민”의 요소를 갖추고 있어서 그럴까?
루소는 그의 일생에서 가장 행복한 때가 그가 망명지로 향하기 전 머물렀던 제네바 호수의 피에르 섬에서 보낸 두 달간이었다고 회고하며 섬에 대한 최고의 찬사를 그의 유작인 “고독한 산보자의 명상”에서 서술하였다.
루소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 자신 스스로 부여한 임무는 절대 고독한 상태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을 것 같다. 번잡한 사회에서 살아가면 불가능한 그런 길고 깊은 생각과 조용한 침작의 명상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위대한 대문호 빅토르 위고에게 18년 동안 건지 섬에서 보낸 기간이 없었다면 리 미제라블 같은 그 같은 위대한 작품의 탄생은 불가능했으리라는 결론은 루소의 명제로써 쉽게 이해된다.
그런데 사람들은 참 묘하다. 이이러니한 삶 말이다. 섬사람들은 육지를 동경하고 육지의 사람들은 섬에 들어가 살고 싶어 한다. 왜 일까?
유토피아는 섬 속에서만 이루어지기 때문일까? 하지만 이 지구상에 더 이상의 섬은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절해고도란 더 이상 없다. 실제로도 그렇고 문학적으로도 로빈슨 크루소가 무인도에 표류하고 난 뒤 거기에도 다른 사람들이 곧 찾아오게 된다. 철학적이든 실제 삶이든 개인은 그가 속한 공동체로부터 분리되어 백지상태에서 혼자만의 삶을 설계할 수 없다. 사람으로 태어난 순간 인간은 다른 사람들과 엮이게 되고 어떤 한가한 사건이든 결부되게 마련이다. 스마트폰이 등장하기 이전의 원시적인 삶의 모습에서도 낮말은 새가 듣는 세상이었다.
그리고 존 던이 말하듯, “어느 누구도 그 자체로서 온전한 섬은 아니다. 모든 인간은 대륙의 한 조각이고, 본토의 일부분이다. 한 줌의 흙덩이가 바닷물에 씻겨가면 대륙은 그만큼 작아지는 것이며, 바닷가 해안선도 마찬가지이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사람들은 매일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지 않을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어느
누구라도 홀연히 나타난 혜성으로부터 눈을 뗄 수 있을텐가?
사람들은 때때로 울리는 종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을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어느 누구라도 자신의 한 분신을 떠나 보내는 종소리를 외면할 수 있을텐가?
어느 누구도
그 자체로서 온전한 섬은 아니다.
모든 인간은 대륙의 한 조각이고, 본토의 일부분이다.
한 줌의 흙덩이가 바닷물에 씻겨가면 대륙은 그만큼 작아지는 것이며,
바닷가 해안선도 그렇고,
친구의 임대 농장이든 또는 자영 농장이든 마찬가지다.
어느 누구의 죽음도 나를 감소시키는 까닭은, 내가 인류 전체 속의 한 부분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누구를
위하여 종이 울리는지 알아보려고 내게 사람을 보내 묻지 말라.
종소리는 그대 자신을 위하여 울린다.” *[1]
종소리는 당신의 깨우침을 위해서 울린다. 사람이 죽으면 장례식을 치르게 된다. 예전에는 아이가 태어나고 또 죽을 때도 그 예식을 교회에서 관장했다. 아이가 태어나면 출입금지선을 쳤고, 사람이 죽으면 교회에서 종을 치고 소식을 알렸다. 그러면 마을 사람들은 누가 죽었는지 알아 보려고 교회 목사에게 달려와 물었다. 그런데 교회목사의 눈에 사람들이 남의 일이 아니라 바로 자신의 일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는 것이 보였다. 이런 사람들의 자신에 대한 무관심을 설파한 시가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이다. 작가 존 던은 영국의 중세 시대 교회 목사였다. 또 하나 존 던의 인간 사회의 진실을 알리는 것은 바로 모든 인간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인간은 결코 고립되어 살아갈 수 없다. 인간은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존재가 아니다. 사람들은 섬이란 본토에서 떨어져 있어 본토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고립된 존재로 인식하고 있으나 실제로 자세하게 섬을 관찰해 보면 섬은 결코 고립되지 않고 항상 본토 대륙과 서로 연결되고 있다. 이런 지구상의 진실을 존 던이 시로 갈파한 것이다. 존 던이 이 시에서 말한 것처럼 사람은 누구든지 그 자체로서 섬이 될 수 없다. 부모 탯줄에서 태어난 사람들이긴 하지만 우리는 하루도 누군가로부터 공급을 받지 않으면 하루도 못 버텨 내고 죽고 말 것이다. 아무리 깊은 산 속에 홀로 떨어져 산다고 해도 물과 전기와 인터넷 없이 살아갈 수 있겠는가? 우리 모두는 누군가와 어떻게든 서로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사람들은 항상 서로 돕고 사는 상부상조의 존재의 운명은 아닐지라도 (때론 해를 입을 수도 있겠지만)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한다는 점을 부정할 수 없다. 독방의 감옥에 갇힐 지라도 거기에는 간수가 지키고 있다. 결론적으로 인간은 고립된 개인이 아니라, 사회적 존재라는 사실을 이해하게 된다. 토마스 모어가 그의 유명한 소설 “유토피아”에서 유토피아는 대륙과 격리된 섬으로 그렸으나 사실 유토피아는 항구가 있어 사람들이 들어오고 나가며, 들어온 사람들은 모두 이민자이었다. 아무리 고립된 섬에서 혼자 사는 사람이라고 해도 사람들이 오가는 것을 막거나 피할 수 없다. 태평양 한 가운데 고립무원의 섬에 혼자 떨어져 살고 있던 로빈슨 크루소에게도 사람들이 찾아오게 된다. 이렇듯 우리 모두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 우리는 살아 있는 한 누군가와 같이 살아간다. We cannot live alone. 따라서 사람은 누구든지 그 자체로서 섬이 될 수 없다. “No man is an island, entire of itself..” 사람은 같이 살아가는 공동체의 운명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다른 한 사람이 죽으면 인류의 한 쪽이 사라지는 것이 된다. 2-1=1의 공식이다. 종소리가 울린다는 것은 인간은 누구든지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단순한 진리를 확인하는 사실적 묘사이다. 한편 모래톱이 파도에 쓸려 나갔다 다시 밀물에 밀려 오듯이 죽음은 다시 삶으로 들어오게 된다. 바다는 밀물과 썰물이 끊임없이 반복되며 영원토록 이어간다. 인류 전체의 삶을 이와 같이 볼 때 삶과 죽음은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이고, 그 과정은 바다처럼 영원한 것이다. 우리는, 죽음과 삶이, 서로가 서로에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운명의 동반자인 것이다.
하지만 나는 루소처럼 생각을 깊고 오랫동안 해 낼 이성적 능력이 결코 부족하다는 것이 분명할 뿐 더러 어찌됐든 모든 생각을 접고 그간 동경해 왔던 섬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나는 그 섬에 들어가서, 난생 처음으로 바다에 배를 타고 나가, 바다낚시를 하였다. 차가운 바다 깊은 심해에 사는 블루코드를 낚아 올려서, 그 자리에서 싱싱한 횟감으로 배불리 먹어봤다. 바다 낚시의 낭만인지 감격인지 환희를 내 어찌 잊을 수가 있을까? 지금껏 여행의 최고의 멋진 기억은 단연 스위스의 융프라우이었다. 그런데 바다의 감격이라면 바로 이번의 기억이 다음 인생까지 잊혀지지 않을만큼 최고이리라.
고기나 생선 이름은 각 나라마다 조금씩 다른 경우가 많다. 코드라는 생선 명칭을 흔히 우리나라에선 대구로 불리어서 그런지 “블루 코드”를 대구로 쓰는 경우가 흔한데 사실 블루 코드는 찬 바다 깊은 곳에서 잡히는 고기로써 우리나라의 “우럭”에 가까운 바다생선이고 가격도 매우 비싼 편에 속한다.
모든 섬이 유토피아가 아니지만 유토피아가 섬인 것은 분명한 것 같다. 그렇다면 유토피아는 무엇을 말할까? 유토피아는 아픈 곳이 없이 즐겁게 오래 사는 무병장수의 조건이 실현되는 곳이다.
유토피아로 들어가는 길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에서 말하듯, 도연명이 도화원기에서 잘 서술하듯, 첫 번째 빛을 보아야 한다. 먼저 말씀이 있었고. 초기의 혼돈에서 빛이 있어 그것이 사람을 인도하게 된다. 따라서 그 빛을 보아야 한다. 꿈에서 영감을 얻어 상대성 이론을 발견했던 아인슈타인의 예와 같이 사람은 꿈에서도 빛을 보아야 한다. 내가 지금껏 빛의 화가이었던 요하네스 베르메르에 천착해 온 이유 하나가 이 빛 때문이었다.
섬은 빛이다. 광선이고 오로라이다. 아침 햇살이고 저녁 노을에 빛의 아름다움, 그것을 섬은 보여준다.
유토피아란 무엇을 말하는가?
도화원기-도연명
도연명 陶淵明 |
추홍희 번역 |
임어당 영역 |
Rick Davis 영역 |
晉太元中武陵人捕魚為業。緣溪行﹐忘路之遠近。忽逢 桃花林﹐夾岸數百步中無雜樹﹐芳華鮮美落英繽紛。漁 人甚異之。復前行欲窮其林。林盡水源便得一山。山有 小口仿佛若有光。便捨船從口入。初極狹纔通人。復行 數十步豁然開朗。土地平礦屋舍儼然。有良田美池桑竹 之屬。阡陌交通雞犬相聞。其中往來種作。男女衣著悉 如外人。黃髮垂髫並怡然自樂。見漁人乃大驚問所從來。 具答之。便要還家為設酒殺雞作食。村中聞有此人咸來 問訊。自云先世避秦時亂率妻子邑人。來此絕境不復出 焉。遂與外人間隔。問今是何世乃不知有漢無論魏晉。 此人一一為具言所聞皆歎惋。餘人各復延至其家皆出酒 食。停數日辭去。此中人語云不足為外人道也。既出得 其船便扶向路處處誌之。及郡下詣太守說如此。太守即 遣人隨其往。尋向所誌遂迷不復得路。南陽劉子驥高尚 士也。聞之欣然規往未果尋病終。後遂無問津者。 |
진나라 태원 시대(376-396)에 고기 잡이가 직업인 어떤 사람이 무릉 지역에 살고 있었다. 어느 날 강둑을 따라 올라 가다가 얼마쯤 왔는지를 모르고 그만 길을 잃어 버렸다. 그 때 홀연히 복숭아꽃 나무가 우거진 숲이 나타났는데 양쪽 언덕을 끼고 수백 걸음을 걸어가도 다른 잡다한 나무들은 하나도 없었고 맑고 아름다운 향기나는 녹음방초 풀들 사이로 떨어지는 꽃잎들이 흩날리고 있었다. 어부는 이를 몹시 이상 야릇하다고 여기고 다시 앞으로 나아가 그 숲이 끝난 곳까지 들어가 보려고 했다. 숲이 끝나는 곳에 이르니 물이 흐르는 원천 샘이 있었고 그 뒤로 산 하나가 나타났다. 산에는 작은 동굴이 있었고 그곳에서 마치 빛을 발하고 있는 듯하여 편한 곳에 배를 대고 내려서 동굴 입구로 따라 들어갔다. 처음 들어갈 때는 구멍이 매우 좁아 겨우 사람 하나가 들어갈 만하더니 수십 발자국 정도 더 걸어 나아가자 시야가 훤하게 트여 들어왔다. 땅은 평탄하고 크고 넓었으며 집들은 바르고 정연하게 들어서 있었다. 기름진 밭과 아름다운 연못이 있었고 그 사이로 뽕나무와 대나무가 자라고 있었다. 다랭이 논밭이 사방으로 서로 통하듯 펼쳐져 있고, 개 짖는 소리와 닭 우는 소리가 가까운 듯 들려왔다. 그 곳에 사람들이 오가며 경작을 하고 있었다. 남녀들이 하고 있는 신발 모자 의복 가지들은 모두가 이국풍이었다.머리는 하얀 노인들이었으나 얼굴은 어린아이들같이 앳돼 보였다. 모두가 기뻐하는 모습이었고 자연스런 즐거움이 넘쳐나 보였다. 이들이 고기잡이 어부를 보고는 크게 놀라면서 어디서 왔느냐고 물었고 그들이 묻는 대로 모두 답했다. (그러자 하던 일을 멈추고) 편하게 집으로 데리고 들어가 술을 내고, 닭을 잡아, 음식을 차려 주었다. 이 사람이 찾아 왔다는 소식이 온 마을에 퍼지자 모두들 찾아와 이것저것 캐물었다. 이들이 말하기를 앞선 조상들이 진나라 때의 난리를 피해 처자식과 도시 사람들을 이끌고 국경과 멀리 떨어진 이 곳으로 피난 왔는데, 그 이후로 다시는 밖으로 나가지 않아서 바깥 사람들과는 그만 격리 단절되고 말았다고 말했다. 그들이 지금이 대체 어느 시대냐고 물었는데 어부가 들은 바대로 상세하게 일일이 말해주자 모두들 안타깝고 애석해 했다. 나머지 사람들이 각자 교대로 돌아가며 자기들 집으로 초대해 모두들 술과 음식을 차려 주었다. 그렇게 며칠을 머문 후 어부는 이제 돌아가봐야겠다고 말했다. 이들 가운데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바깥 사람들에게는 도道를 말해보니 아무런 소용이 없을 것이니 (이곳으로 들어 오는) 길 道을 알리지 말아 달라고 말했다. 어부는 이 곳을 나와서 대어 둔 배를 타고 이전의 왔던 길을 되짚어가며 여기 저기에 표식을 해 두었다. 어부가 고을로 되돌아오자마자 군태수를 찾아뵙고 이러한 자초지종의 얘기를 말했더니 군수는 사람을 보내 왔던 길을 되짚어 표식을 더듬어 그곳을 찾아 보게 했다. 하지만 두 번 다시 그 길을 찾아내지 못했다. 남양에 사는 유자기라는 사람은 뜻이 높고 존경받는 도사이었다. 그가 이 이야기를 듣고 기뻐하며 찾아갈 계획을 세웠으나 결과를 이루지 못하고 얼마 못되어 병들어 죽었다. 그 후로는 길 道를 묻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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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ring the reign of Taiyuan of Chin, there was a fisherman of Wuling. one day he was walking along a bank. After having gone a certain distance, he suddenly came upon a peach grove which extended along the bank for about a hundred yards. He noticed with surprise that the grove had a magic effect, so singularly free from the usual mingling of brushwood, while the beautifully grassy ground was covered with its rose petals. He went further to explore, and when he came to the end of the grove, he saw a spring which came from a cave in the hill. Having noticed that there seemed to be a weak light in the cave, he tied up his boat and decided to go in and explore. At first the opening was very narrow, barely wide enough for one person to go in. After a dozen steps, it opened into a flood of light. He saw before his eyes a wide, level valley, with houses and fields and farms. There were bamboos and mulberries; farmers were working and dogs and chickens were running about. The dresses of the men and women were like those of the outside world, and the old men and children appeared very happy and contented. They were greatly astonished to see the fisherman and asked him where he had come from. The fisherman told them and was invited to their homes, where wine was served and chicken was killed for dinner to entertain him. The villagers hearing of his coming all came to see him and to talk. They said that their ancestors had come here as refugees to escape from the tyranny of TsinShih-huang (builder of Great Wall) some six hundred years ago, and they had never left it. They were thus completely cutoff from the world, and asked what was the ruling dynasty now. They had not even heard of the Han Dynasty (two centuries before to two centuries after Christ), not to speak of the Wei (third century A.D.) and the Chin (third and fourth centuries). The fisherman told them, which they heard with great amazement. Many of the other villagers then began to invite him to their homes by turn and feed him dinner and wine. After a few days, he took leave of them and left. The villagers begged him not to tell the people outside about their colony. The man found his boat and came back, marking with signs the route he had followed. He went to the magistrate's office and told the magistrate about it. The latter sent someone to go with him and find the place. They looked for the signs but got lost and could never find it again. Liu Tsechi of Nanyang was a great idealist. He heard of this story, and planned to go and find it, but was taken ill and died before he could fulfill his wish. Since then, no one has gone in search of this place. |
During the Taiyuan era of the Jin Dynasty there was a man of Wuling who made his living as a fisherman. once while following a stream he forgot how far he had gone. He suddenly came to a grove of blossoming peach trees. It lined both banks for several hundred paces and included not a single other kind of tree. Petals of the dazzling and fragrant blossoms were falling everywhere in profusion. Thinking this place highly unusual, the fisherman advanced once again in wanting to see how far it went. The peach trees stopped at the stream's source, where the fisherman came to a mountain with a small opening through which it seemed he could see light. Leaving his boat, he entered the opening. At first it was so narrow that he could barely pass, but after advancing a short distance it suddenly opened up to reveal a broad, flat area with imposing houses, good fields, beautiful ponds, mulberry trees, bamboo, and the like. The fisherman saw paths extending among the fields in all directions, and could hear the sounds of chickens and dogs. Men and women working in the fields all wore clothing that looked like that of foreign lands. The elderly and children all seemed to be happy and enjoying themselves. The people were amazed to see the fisherman, and they asked him from where he had come. He told them in detail, then the people invited him to their home, set out wine, butchered a chicken, and prepared a meal. Other villagers heard about the fisherman, and they all came to ask him questions. Then the villagers told him, "To avoid the chaos of war during the Qin Dynasty, our ancestors brought their families and villagers to this isolated place and never left it, so we've had no contact with the outside world." They asked the fisherman what the present reign was. They were not even aware of the Han Dynasty, let alone the Wei and Jin. The fisherman told them everything he knew in great detail, and the villagers were amazed and heaved sighs. Then other villagers also invited the fisherman to their homes, where they gave him food and drink. After several days there, the fisherman bid farewell, at which time some villagers told him, "It's not worth telling people on the outside about us." The fisherman exited through the opening, found his boat, and retraced his route while leaving markers to find this place again. Upon his arrival at the prefecture town he went to the prefect and told him what had happened. The prefect immediately sent a person to follow the fisherman and look for the trail markers, but they got lost and never found the way. Liu Ziji of Nanyang was a person of noble character. When he heard this story he was happy and planned to visit the Shangri-la, but he died of illness before he could accomplish it. After that no one else ever looked for the place. |
[1] John Donne, "For whom the bell tolls"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중에서.
Who casts not up
his eye to the sun when it rises?
but who takes off his eye from a comet when that breaks out?
Who bends not his ear to any bell which upon any occasion rings?
but who can remove it from that bell which is passing a piece of himself out of
this world?
No man is an
island, entire of itself;
every man is a piece of the continent, a part of the main.
If a clod be washed away by the sea, Europe is the less,
as well as if a promontory were,
as well as if a manor of thy friend's or of thine own were:
any man's death diminishes me, because I am involved in mankind,
and therefore never send to know for whom the bell tolls;
it tolls for t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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