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의 감미로운 봄비가 내리면
3월의 가뭄을 해갈하고
어린 나무 가지를 달콤한 소나기로 흠뻑 적시며
꽃봉오리를 터트리며 꽃을 피워낸다
서녘 산들바람이 녹녹하게 불어오면
들판과 산속의 기도원과
상큼한 나무잎새들이 설레인다
태양은 겨울철 황소자리를 반 정도 지나 왔고
작은 새들은 저마다 노래 부르고
즐거워서 밤새 뜬 눈으로 잠을 설치며
나무와 담장 위에서 사랑을 나눈다
이렇게 좋은 봄날 왜 사람들은 성지 순례 여행을 떠나고
순례자들은 외국 문물에 마음을 뺏기며
메마른 땅 먼 곳의 성지를 찾아 나서는 것일까”[1]
….
자세한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
시간과 공간이 충분할 때
내 눈에 비추는 대로 동행자들의 외양,
이들의 직업, 지위,
이들의 차림새와 복장에 대해서
그림을 보여주듯이
묘사해 드리는 것이 자연스러울 것 같다.
그럼 기사부터 설명을 시작해 본다.
…
기사는 훌륭하고 믿음직한 대장부이었다.
그는 어려서부터 말타기를 배우고
충성과 용맹,
진실과 명예, 자유와 절도를 닦았다.
….
그를 능가할 다른 기사들이 없었고,
그는 전국적으로 칭송받는 최고의 기사였다.
위와 같이 명예가 드높은 기사였지만, 그는 생각 또한 깊었고
그의 행동거지는 마치 청순한 처녀같이 유순했다.
그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어느 누구한테도
어떤 상소리 한 번 내 본 적이 없었다.
그는 흠 하나 없는 지도층인사이었고, 마음이 따뜻한 기사도였다.
…….
…
변호사는 신중하며 현명한 사람이었다.
그는 고객에게 법률 조언을 하기 위해서
권력 상층부(소문과 뉴스가 흘러나오는 원천)에 자주 들락거렸다.
그는 사려 깊고 명석하며 사회로부터 존경을 받고 있었다.
적어도 외양상으로는 그가 하는 말들은 옳은 것처럼 보였다.
그는 간혹 국가로부터 정식 임명을 받거나 또는 임시직으로
형사 법정의 재판관을 지내기도 했다.
그는 높은 학식과 드높은 명성으로 인해 거액의 수임료를 받았고
따라서 누구보다도 더 많은 부동산을 사들였다.
그는 분쟁 있는 땅도 쉽게 온전한 소유권으로 변경 취득하였는데
이런 것에 다른 사람들은 전혀 의심을 품지 않았다.
그는 변호사 중에서도 최고로 바쁜 변호사이었는데,
겉으로 보이는 모습은 실제보다 더 바빠 보였다.
그는 판례법 시대를 연 (1166년) 윌리엄 왕 이래로
모든 판례와 판결 내용을 정확히 인용할 만큼 출중했다.
그는 계약서를 매우 정확하게 작성하여서
다른 사람들이 어떤 흠결도 찾아낼 수가 없었다.
그는 모든 법조문을 원문 그대로 정확하게 인용할 수 있었다.
그는 푸른 색 섞인 자주 빛 색깔 코트를 입고
비싼 보석이 박힌 비단 혁대를 두르고 있었는데
다른 특이한 복장 차림새는 별로 보이지 않았다.
……
즉시 제비뽑기는 시작되었으며
일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간단히 얘기하자면
우연인지 혹은 운명인지 어쨌든간에
가장 짧은 제비가 기사에게 돌아갔으며
우리 모두는 기쁘게 받아들었다.
우리 모두가 함께 동의했고
기사 또한 맹세했기 때문에
기사는 이야기를 시작해야만 했다. 더이 상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
…
“여러분, 오늘 하루도 벌써 4분의 1이 지나버렸다는 것이
정말 안타깝습니다.
하나님과 세례 요한의 이름으로 자비를 구하오니
이제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하지 맙시다.
여러분, 시간은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흘러가
우리가 잠을 자는 동안은 어떤 방어를 할 수도 없고
또 깨어 있을 때는 우리 자신의 부주의와 태만으로 인해서
우리에게서 달아 나 버립니다.
마치 강물은 높은 산 위에서 평야로 흘러내리기에
두 번 다시 같은 강물에 발을 담글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따라서 (로마의 위대한 법률가) 세네카는
보물을 잃는 것보다 시간을 잃어 버리는 것이 더 무섭다고 경고했습니다.
“잃어버린 물건은 되찾을 수 있지만
낭비한 시간은 영원히 건질 수가 없다”고 그는 말했습니다.
여자의 순결은 한 번 잃으면
두 번 다시 회복할 수 없는 것처럼
흘러간 시간은 되돌아 오지 않는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그러므로 나태하여 시간을 녹슬게 하지 맙시다.
“변호사님, 먼저 축복과 건강하시길 인사 드리며,
약속한대로 저희들에게 이야기를 시작해 주십시오.
변호사님의 자유 의사에 따라 동의하셨잖아요?
반대 의견이 없으시면 제가 결정을 내릴 수도 있고
약속을 취소하시고자 하면 그냥 없던 일로 해드릴 수도 있습니다.
최소한 약속을 이행해 주십시오.”
이에 변호사가 답하기를
“주인장님, 저는 기꺼이 받아들이겠습니다.
약속을 깨트릴 의사가 전혀 없습니다.
약속은 갚아야 할 부채인데
제가 약속한 것에 대해서는 기꺼이 지키겠습니다.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합니까?
다른 사람들이 따라야 할 법을 만든 사람은
그 자신부터 법을 지켜야 된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문서로써 써놓는 것이 보다 좋았을 테지만
그렇지 않아도 저 자신 잘 알고 있습니다.
…
…
오 가증스러운 불운이여!
오 가난이여!
목마름, 추위, 배고픔으로 대해지는 비참한 가난이여!
그대는 남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을 마음의 수치로 여기지만
그렇다고 구걸을 하지 않는다면
마침내는 정말 궁핍해져 숨은 상처를 드러내고 말 것이네.
극심한 궁핍에 시달리면,
어쩔 수 없이 훔치거나 구걸하거나 생필수품을 빌려야 할 것이네.
그대는 하늘을 원망하고 하느님이 세속의 부를 불공평하게 배분하였다고 불평을 하는가 하면
또 이웃이 모든 것을 가진 것에 비해 자신은 너무 적게 가졌다고 이웃을 비난하는 죄를 지을 것이네.
또 “가난한 사람들을 돕지 않는 사람은 언젠가는
지옥의 불구덩이에 떨어지는 대가를 치를 날이
오게 되리라는 것을 굳게 믿는다”고 말할 것이네.
다음과 같은 성현들의 말씀을 귀담아 듣기 바라네.
“가난하게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것이 보다 낫다”.
“가난한 자는 자기 이웃의 멸시를 받기 마련이다.”
한편 “가난하면 예절도 잃는다”고 말하지만,
성현의 다음 말씀을 새겨 듣기 바라네.
“가난한 사람은 살아 있는 하루하루가 비참하다.”
따라서 그런 상황에 이르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하기 바라네.
만일 그대들이 가난하면 형제들로부터 미움을 받을 것이고,
또 친구들도 떨어져 나갈 것이네.
오! 부유한 상인들은 크게 행복할 것이며,
오! 고귀하고 신중한 사람들이여,
그대들의 보따리는 게임에서 항상 이길 수 있는 최고의 패로
가득 차 있는 큰 행운을 누리고,
또 크리스마스 축제 때 즐겁게 춤을 추는구나!
그대들은 이윤 추구를 위해서는
육지든 바다든 개의치 않고 나서는구나!
그대들은 현자처럼 여러 나라의 사정을 정확히 꿰뜷고 있고,
또 평시든 전시든 뉴스와 소문을 퍼트리는 소식통이기도 하구나!
오래 전에 어떤 상인이 나에게 이 이야기를 들러 주지 않았다면
지금 이 자리에서 할 이야기가 없었을 텐데!
이제 그 이야기를 내가 시작하겠소.
-제프리 초서, 캔터베리 이야기, 서시, 변호사의 이야기 중 부분
[1] 유명한 TS 엘리어트의 “황무지 The Waste Land”의 시구절은 제프리 초서의 “캔터베리 이야기”에서 따온 것이다. “4월은 잔인한 달
마른 땅에서 라일락꽃나무의 새싹을 틔우고,
봄비로 추억과 희망을 뒤섞고
잠자던 뿌리를 일깨운다.
APRIL is the cruellest month, breeding
Lilacs out of the dead land, mixing
Memory and desire, stirring
Dull roots with spring r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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