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언제 고통에서 해방될까?
인간에는 최악과 최선이 공존한다. 인간은 상황이 닥치면 무슨 짓이든 저지를 수 있는 존재다.
기원전 430년 디오니소스 축제 때 처음 공연된, 소포클레스의 비극작품 “외디푸스 왕”.
“외디푸스”라는 말은 어원적으로 “발이 부르튼 사람”을 말한다. 왜 발이 부르텄을까? 그는 이민자이었다. 그래서 발이 부르트도록 걸어 다닌 사람이기 때문에 그렇게 이름이 붙여진 것이 아닐까?
외디푸스 왕는 결점도 많은 인간이었다. 그에게는 충동적이고 화를 바로 내는 단점이 있었다. 동네밖에서 길을 가로막고 비껴주지 않는 노인을 보고 화가 나서 바로 죽여버릴 정도로 성격이 급하고 참을성이 없는 인간이었다.
알면 다친다. “모르는 것이 약”이라는 우리 속담이 있듯이, 아는 것이 많으면 근심 또한 많다
외디푸스왕의 어머니이자 그의 아내인 저카스타는 그들의 과거사를 아는 순간 자살을 하게 된다. 기억이 없으면 우리에겐 책임이 없다. 외디푸스왕은 목을 매고 죽은 저카스타의 옷에 달린 브로우치로 자기 눈을 찔러버린다. 자기 운명을 알지 못했다는 후회이었을까? 아니면 근친상간이라는 점에서 수치심을 느껴서였을까? 그러나 외디푸스왕은 두 눈이 먼 심봉사가 어린 딸 심청이를 키운 것처럼, 부모에게 닥친 재앙을 모르는 두 딸 이스메네와 안티고네를 함께 데리고 먼 이국 땅으로 멀리 이민을 가게 된다.
이민은 기억에서 해방하고자 함인 것이다. 인간에게 새로움의 삶이란 기억으로부터 해방되지 않으면 기약되지 않는 제약조건이 따른다.
우리 인간은 자신의 작은 잘못이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을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자신의 행동과 그 결과에 대해서 콘트롤할 수 있다는 자만심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인간의 운명은 자신의 영역 밖이다. 내일 일은 아무도 모른다. 언제 죽을지 아무도 모른다. 우리가 가진 것을 한 순간에 잃어 버릴 수도 있다. 인간은 잘못으로 가득한 죄인이다. 갈대만큼 약한 존재다. 인간은 약점으로 가득 차 있고 원죄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외디푸스 왕”의 마지막 부분 합창의 대사는 다음과 같다.
“내 동포들이여, 외디푸스왕을 보아라.
그는 뛰어난 머리로 그 어려운 수수께끼를 풀어내었고
왕의 자리에 올라 세상 최고의 권세를 가진 사람이 되었다.
그의 위대함을 바라보며 어느 누군들 선망을 품지 않았을 수 있었을까!
그러나 이제 칠흑의 밤바다 같은 공포가 그를 삼켜버렸다.
이제 우리가 지켜보며 마지막 날을 기다릴 뿐이니.
그 누구도 행복하다고 생각하지 말아라,
죽어서 마침내 고통에서 자유로워질 때까지.
“외디푸스”가 말하는 것은 무엇일까? 일반적인 해석을 따르지 않고 내 생각을 말한다면,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식자우환”이라는 말처럼 인간은 알면 알수록 고통은 더 커진다.
“모르는 것이 약이다.”"It's better not to know." “검증되지 않은 삶은 의미가 없다(The unexamined life is not worth living.)”고 소크라테스의 지혜를 가지는 사람은 괴로울 뿐이다. 대의(국가와 사회)를 위해서 진실을 파헤치는 사람은 몹시 괴롭고 힘들 뿐이다.
전지의 역설 paradox of omniscience, 모든 것을 아는 존재가 오히려 불리한 입장에 처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외디푸스가 자기가 입양아라는 과거사실을 알지 못했다면 그에게는 비극이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인간의 삶은 “기억 memory”에 달려 있다. 기억하기 때문에 괴로운 것이다. 그래서 망각의 강인 레테의 강을 건너면 비로소 행복함을 찾을 수가 있는 것이다.
아무도 풀지 못하는 수수께끼를 풀어낸 뛰어난 외디푸스이었다. 아침에는 4발로 걷고, 점심때는 두발로 걷고 저녁에는 3발로 걷는 짐승은 누구일까? 그 답은 “인간”이다. 이 수수께끼에 “걷는다”는 말이 들어가는 것처럼 “외디푸스”라는 그리스 어원을 보면 “부르튼 발” 즉 인간은 많이 걷는 존재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베에토벤처럼 산책을 많이 하는 사람이 지혜롭다는 말을 이해하겠는가? 인간은 걷는 존재다. 발이 부르트도록 걸어야 한다. 기억이 쇠진할 때까지. 인간은 “발품”을 팔아가는 존재라는 것. 아무리 지혜가 큰 사람이라도 해도, 살아 있는 동안, 인간은 진실을 찾는 사람이라면 고독한 고통의 삶이 전개된다는 것이다. 인간의 고통은 죽을 때까지 떠날 수가 없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 아닐까? 외디푸스 왕=발품발이=진실된 삶을 찾는 사람은 헤매게 된다=방황하는 존재=계속 걸어라=슬퍼할 겨를이 없다=내일이 없는 것처럼 오늘의 삶을 부딪혀라=맨발의 이사도라=우리 인간의 피할 수 없는 운명.
인간은 알아도 문제요, 몰라도 고통이다. 그렇다면, 쇼펜하우어식(결혼해도 고통이요, 안해도 고통이다, 그렇다면 하는 것이 낫다)으로 말한다면, 알고 나서 고통을 느끼는 것이 보다 낫다. 인간은 선악이 공존하는 존재로서 결자해지를 할 수 있는 존재다. 프로이트가 말한 대로 인간은 외부 충격적으로 진실을 깨닫는 존재가 아니라고 나는 생각한다.
“진실은 거기에 있다 the truth is out there."
[1] People of Thebes, my countrymen, look on Oedipus.
He solved the famous riddle with his brilliance,
he rose to power, a man beyond all power.
Who could behold his greatness without envy?
Now what a black sea of terror has overwhelmed him.
Now as we keep our watch and wait the final day,
count no man happy till he dies, free of pain at last.
'여행 포토 essay > 산장의 여인-레츠 고 핫츠' 카테고리의 다른 글
런닝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나는 오늘 같이 좋은 날에도 달리고 궂은 날에는 더욱 멀리 달린다~~~강함은 (0) | 2016.08.14 |
---|---|
별똥별 (0) | 2015.08.21 |
기상 나팔 (0) | 2015.07.30 |
발 (0) | 2015.07.28 |
내포 문화 숲길 (0) | 2015.07.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