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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cessity긴급피난

망나니의 술과 죽음의 키스

by 추홍희블로그 2015. 7. 20.

(“문화란 인간에게 가장 신성한 의무인 살아남을 위해서는 적과의 동침도 마다하고 적과의 적당한 타협을 모색하는 의사결정의 세련된 프로토콜을 가진 것을 의미한다.)

 

결별의 죽음을 앞에 두고 있는 두 사람 사이에 사형집행자가 악수를 청하며 짓는웃음이란 어떤 의미일까?

 

상대방이 죽어야 내가 사는 전쟁에서는, 뒤통수를 쳐야 승리하는 법이다. 우리가 모두 잘 아는 손자 병법에서도 설파하는 전쟁 승리의 공식이다.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고 한다.  서로 원수 같은 사람들이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면 과연 여기에서 악수를 하게 될까?

 

죽기 전에 진실을 알게 될 때 이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사람이 죽으면 알 수가 없는데.  말기 암환자가 진실을 알게 된 본들, 바로 죽는데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사형수가 죽기 전 종교에 귀의한다는 장면을 영화에서도 자주 본다.  그런데 얼마만큼 의미가 있을까?  바로 죽는 순간인데.

 

술 마시고 정신 없이 죄를 지은 사람은 살인죄라고 해도 정신이 나간 상태에서 죄를 범했다는 정당한 핑계거리(insanity)로 방면을 받을 수도 있다.

 

사형수에게 마지막 기도를 올려주는 성직자는 무슨 일을 담당하는 것일까? 

 

옛날 봉건시대에 사형판결을 받은 죄수의 목을 치는 사람을망나니라고 불렀다.  망나니는 죄수의 목을 치는 업을 직업으로 갖고 있는 사람 즉 사람을 죽이는 사람이다.  그것도 직업이므로 망나니가 업무 수행 중에 정신이 나가면 안된다.  그런데도 망나니는 죄수의 목을 치기 전에 술을 마신다. 맨 정신으로는 도저히 사람의 목을 치기 어렵다는 것을 (직업적으로) 알기 때문이다.

 

현대 사회에서 교도소에서 사형판결을 받은 죄수의 목을 치는 형장에서 교도관의 사형집행을 돕는 성직자는 술을 마시지 않는다.  이 성직자는 직업적으로 그 일을 담당한다.

 

“유토피아”의 저자, 성인 토마스 무어가 단두대에서 마지막 유언으로 남긴 말은 이렇다.

"Pluck up thy spirits, man, and be not afraid to do thine office. My neck is very short. Take heed, therefore, thou not strike awry for saving thine honesty. I die the King's good servant and God's first."

“이봐? 간수, 용기를 내게. 자네의 직책을 수행하는 것을 두려워 말게. 내 목은 짧으니 자네의 진실성을 지키려고 목을 비켜나게 치지 않도록 조심하게나.”

 

토마스 모어의 마지막 남긴 말의 의미는 무엇일까?  혹시나 망나니의 직업적 임무를 소홀히 할까봐서 간수의 나약함을 고려해서일까? 아니면 간수가 보기에도 억울한 죽음을 맞이한 사람임을 전달한 최후의 항변일까?

 

정치에서 배신이란 밥 먹듯이 흔한 일이다.  배신과 뒤통수는 전쟁과도 같은 현대의 경쟁사회에서는 당연한 윤리일 것이므로 그것을 행하기란 전혀 거리낌이 없을 것이다.

 

배신과 뒷통수를 치기 위해서 일말의 거리낌도 느낄 필요가 없기 때문에 술도 마실 필요도 없다.

 

현대 사회에서는 오로지 싸움에서 승리해야만 얻게 되는 그 권력이 최고의 선으로 인식된다.  그리고 최고의 권력을 잡기 위해서는 온갖 쇼 show을 잘해야 하는 법이다.

 

"키스와 악수"는 서로가 죽이지 않고 같이 살기 위해서 보내는 신뢰의 신호 의식이다.  키스와 악수는 내가 너를 해치지 않는다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뢰 프로토콜이다.  말이 아닌 행동으로 직접 보여주는 키스와 악수는 말이 서로 통하지 않던 부족 사회에서부터 존재해 온 인간의 원초적 소통수단이다.  말은 재대로 의미를 알지 못하면 상대방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못할 위험이 있다.  그래서 말보다 행동이 보다 믿을 수가 있는 법이다.  키스와 악수는 가장 강한 신뢰의 상징이었다.  문명 사회에서 사는 문화인이라면 키스와 악수를 해놓고 상대방을 죽이는 행동은 하지 않는다.  사람을 죽일 때는 사형수에게는 마지막 유언이라도 남기게 하는 법이다.  가장 억울한 죽임을 당한 예수도 마지막 유언을 하고 죽었다.  말 없이 죽는 죽임이 가장 비참한 법이다.     

 

"죽음의 키스"는 마피아가 하는 것이다. 살아가야 하는 사람으로서 하는 손짓이 아니다.

 

사형집행자가 사형수에게 죽임을 알리기 전 청하는 악수의 장면을 보면서, 현대판 정치판에서는 이미 말의 의미 상실뿐만 아니라 인간행동의 마지막 소통수단 마저 상실 되었다는 안타까움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