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특권층 &
노블레스 오블리주:
영미국의 평등 사회와 대륙국가의 특권 사회 비교
Noblesse Obli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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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knowledgement
1. 이 책을 구상하고 발간하게 된 가장 중요한 계기는 “노블레스 오블리주 Noblesse Oblige”라는 말과 그 개념을 맨 처음 본격적으로 소개하고 널리 알린 프랑스의 작가 발자크의 소설 “Le Lys Dans La Vallee”-(영어 번역은 “The Lily of Valley” (1898), 한글 번역은 “산골짜기의 백합꽃”)을 번역함이었다. 이 책은 프랑스에서 본격적으로 나온 “노블레스 오블리주”에 대한 개념을 한글로 독창적으로 최초 제기 소개하는데 큰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2. 이 책은 “문화학 Cultural Studies“의 지식과 방법론을 본격적으로 동원 분석한 것은 아니지만 저자는 “The Cultural Studies Reader” (2nd ed, Routledge 1999)을 읽었고, 또한 저자는 로스쿨에서 법문화비교방법론을 공부하였으며, 저자의 판례법 국가에서의 삶의 경험 등이 모여서 한국에서의 “노블레스 오블리주”에 대한 개념을 비판적으로 제기할 수 있는 바탕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3. Jean Froissart 의 “칼레의 함락 The Siege of Calais”의 역사서, 발자크의 “The Lily of Valley”, 로댕의 “칼레의 시민” 조각에 대한 학문적인 글에 의존하여 독창적인 내용으로 이 책을 썼지만 이 책은 학문적 연구서라기 보다 교양서에 해당한다고 여긴다.
4. “한국의 특권층과 노블레스 오블리주: 영미국의 평등 사회와 대륙국가의 특권 사회 비교”- 이 책의 내용 중 11장 키케로의 “완벽한 인간” 모델, 12장 “Caveat emptor 케비어트 엠토”, 13장 키케로의 “의무론” (번역) –이 3장의 부분은 저자의 “월 스트리트 변호사 이야기: A Story of Wall Street” 책에서 전제한 것임을 알려드린다.
한국의 특권층 & 노블레스 오블리주:
영미국의 평등 사회와 대륙국가의 특권 사회 비교
목차
1. 서문
“문화 culture”의 의미-나무와 수액
각 나라의 문화적 특성과 차이
“완벽한 인간 perfect man”은 실재 여부
시각 관점의 차이와 그 중요성
이 책의 내용과 편제
“노블레스 오블리주 Noblesse oblige”의 의미
한국적 병폐-“전관예우”의 문제점
“사회 지도층 인사”이라는 말의 의미
극단적 자기이익 추구와 무한 경쟁 체제에서 의무 실천
인간 본성과 책임과 의무의 실천 문제
“인치국가”와 “법치국가”의 차이와 그 경계선
2. “노블레스 오블리주 Noblesse oblige” 개념
2.1 “노블레스 오블리주”란 어떤 의미인가?
2.2. 한국에서 “높은 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 개념 으로 이해할 때 나타난 문제점
2.3. 노블레스 오블리주-영미국의 개념-자선과 기부 문화
2.4. 영미국의 평등 사회 개념-법 앞에 모두가 평등하다-equality before the law
3. 프랑스에서
최초로 전개된 “노블레스 오블리주” 개념에 대한 이해
3.1. 맨 처음 프랑스에서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말이 처음으로 등장한 과정
3.2. 프랑스에서 등장한 “노블레스 오블리주” 개념은 무엇인가?-경험 많은 멘토가 사회 진출을 앞둔 젊은 청년에게
보내는 충고(발자크 글 번역)
4. 프랑스 칼레 도시의 함락과 역사적 진실
4.1. 칼레의 지리적 위치와 역사
4.2. 칼레 성의 함락과 지도층이 역할-역사적 사실-카이저의 희곡“칼레의 시민”에서
나타난 역사적 허구
4.3. 허구적 희곡에 의존한 역사 인식과 담론 전개의 위험성
4.4. 전쟁에서 패해 항복사절로 잡혀간 사람이 후세에 들어 영웅으로 추앙 받는 이유
5. 로댕의 “칼레의 시민” 조각 작품에 대하여
5.1. 로댕의 “칼레의 시민” 작품 완성 과정
5.2. 로댕의 “칼레의 시민”과 현대적 영웅 modern hero 이미지
5.3. 로댕이 시민의 평등성을 강조한 특별한 이유
5.4. 로댕의 조각에 나타난 “시민 사회”와 “평등 사회”의 개념
6. “전관예우” 특권 의식과 “노블레스 오블리주” 개념의 충돌
6.1 사회 지도층의 기득권과 의무감에 대한 개념적 이해
6.2 전관예우 현상과 노블레스 오블리주 개념 충돌
7. 노블레스 오블리주-품성과 자질은 천성인가 교육되는가?-Nature vs Nurture
7.1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공직자의 “지위”에서 나오는가?
7.2. 공직에 대한 관점과 인식의 차이: 영미국과 대륙국가의
비교
7.3. 누가 사회지도층의 행동을 감시하고 감독하는가?
7.4 공직자의 자기 이익 추구 금지 원칙
7.5 자유지상주의 리버터리안 관점 libertarianism
8. 법치 vs 인치
8.1 영국과 프랑스의 법 문화 차이- 법치 vs 인치
8.2. 법의 지배-1요소-사법부의 절대적인 우위 absolute supremacy of the
ordinary law
8.3. 법의 지배–2요소-법 앞에 만인 평등 equality before the law
8.4. 법의 지배–3요소-헌법은 사법부 판례로 축적된 결과물 a judge-made
constitution
9. 계급과 국가 개념
9.1. 왜 국가간 그리고 부족간에 우열성패가 나타나고 흥망성쇠의 역사가 반복되는가?-다윈의 자연도태설
9.2. 영화 “위대한 환상 Grand Illusion”-자기 이익 추구 본성과 귀족 문화의 모순
9.3. “노블레스 오블리주 Noblesse
oblige”는 로마 시대 라틴어 어휘인가?
10. 영미국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개념-자선과
기부 문화
10.1. 영미국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개념-자선과
기부 문화
10.2. 발자크 “산골짜기의 백합”에서 모르소프 부인이 남모르게 실천한 자선 행위의 내용 (번역)
10.3 특권 의식과 시혜 의식
10.4. 진정한 시민국가가 소수의 사회지도층에 의해서 주도적으로 건설될 수 있는가?
10.5 노블레스 오블리주 개념과 자선의 의미
10.6 만국의 사회지도층은 보편적으로 귀족문화를 공유하고 실천하는가?
10.7. 법률 문제와 윤리도덕적 의무의 분간과 구별
11. 키케로의 “완벽한 인간” 모델
11.1. “키케로 추종자”는 어떤 사람들인가?
11.2. 키케로는 “완벽한 정치인”의 모델인가?
11.3 “완벽한 인간 perfect man”의 모델은
실재하는가?
12. “Caveat emptor 케비어트 엠토”
12.1 “Caveat emptor 케비어트 엠토”-“매수자 책임 원칙”이란 무엇인가?
12.2. “침묵은 금 silence is golden”인가?
12.3. 거짓과 사기가 판치는 세상이라는 것을 다들 알면서 왜 진실을 말하지 못하는 것일까?
13. 키케로의 “의무론” (번역)
13.1. 키케로의 “의무론”
13.2. 키케로의 단기적 이익과 장기적 이익의 개념
14. 후기
15. 참고문헌
16. 부록 (English)
I.
“The
Siege of Calais” in “Chronicles” – Jean Froissart
II.
“The Six of Calais”- Bernard Shaw
III.
“The
Lily of Valley (LE LYS DANS LA VALLEE)” (in part)- de Balzac
한국의 특권층 구조 & 노블레스 오블리주: 영미국의 평등 사회와 대륙국가의 특권 사회 비교
1. 서문
“문화 culture”의 의미-나무와 수액
각 나라의 문화적 특성과 차이
“완벽한 인간 perfect man”은 실재 여부
시각 관점의 차이와 그 중요성
이 책의 내용과 편제
“노블레스 오블리주 Noblesse oblige”의 의미
한국적 병폐-“전관예우”의 문제점
“사회 지도층 인사”이라는 말의 의미
극단적 자기이익 추구와 무한 경쟁 체제에서 의무 실천
인간 본성과 책임과 의무의 실천 문제
“인치국가”와 “법치국가”의 차이와 그 경계선
제도와 문화-“문화 culture”의 의미-나무와 수액
나무는 물이 없으면 살아가지 못한다. 식목일 날 나무 한 그루를 심어보거나 정원의 꽃 화분에 물주기를 해 보건 아니하든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나무는 물을 먹고 사는 것이 분명한데 사람들이 물 마시는 것과는 달리 나무에 물이 흐르는 것을 육안으로 관찰하기란 쉽지 않다. 나무 껍질을 벗기면 물기가 흐르는 것이 쉽게 보이지만 나무 속으로 물이 흘러 오르내리는 것을 육안으로 직접 관찰하기란 쉽지 않다. 수액이 없으면 나뭇잎이나 열매가 달릴 수도 없다. 나무의 수액은 나무의 뿌리에 스며들어 줄기를 타고 올라가 나무에게 삶의 기운을 불어넣고, 초록빛 잎을 자라게 하고, 그 잎이 햇빛을 받아 광합성을 하게 만들고, 꽃을 피우고, 과일과 열매를 맺게 해준다. 우리의 육안으로 보이든 안보이든 나무속엔 물이 흐르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고 그처럼 나무 속을 흐르는 물을 나무의 수액이라고 부른다. 사람의 눈에 보인다고 해서 확실한 것이 아니고, 사실 정말 중요한 것은 사람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다. 수액처럼 우리 사회도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그 속에 사람 몸의 피같이 무언가가 돌고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사회에서 나무의 수액처럼 그 무엇이 없으면 고사하고 마는 그것은 무엇일까? 제도와 문화의 관계를 나무와 그 나무를 살찌게 하는 보이지 않는 수액으로 비유 설명해 볼 수 있겠다.
각 나라의 문화적 특성과 그 차이
영미국인의 사고방식을 말해주는 표현 하나에 “절대라는 말을 절대 다시 하지 말라 Never say, never again”는 할리우드 영화 제목이 있다. 또 “완전히 끝나기 전까지는 끝난 게 아니다 (It's not over till it's over.”라는 영어 속담이 말해주듯이 영미인들은 “never”라는 말을 가급적 피한다. 사람의 일에서 미래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아무도 모르는 법이고 따라서 “절대”, “결코“ 단언은 피하는 것이 옳은 것 같다. 한편 프랑스 같은 대륙법국가들에서는 거꾸로 “항상 always”이라는 말을 사용하기를 장려하는 것 같다. 대륙국가에서는 첫사랑의 영역, 결혼 서약, 국기에 대한 맹세에서 나타나듯이 “항상”, “언제까지나”,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변함없이” 이렇게 사랑과 충성을 끝없이 맹세하기를 바라는 문화 같다. 사랑과 권력의 세계에서는 그것이 설령 “거짓 맹세”일지라도 “언제까지나” 사랑하고 충성한다는 다짐을 받기를 좋아하는 것 같다.
우리나라와 프랑스 같은 대륙법국가의 문화는 “항상” “절대” 이런 단어들을 즐겨 사용하는 반면, 영미법 국가의 문화는 이런 단정적인 표현들을 회피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어느 쪽이 인간본성에 보다 가깝고 또 보다 나은 결과를 가져올까?
“완벽한 인간 perfect man”은 실재하는가?
이러한 비유는 “키케로 추종자”의 대한 인식과 평가에 대한 서로 상반되는 입장을 보여줄 것 같다. 우리나라나 프랑스 같은 대륙법 국가에서 키케로는 “완벽한 인간 perfect man”으로 추앙 받고 사회 지도층 인사의 상징적인 존재이다. 하지만 키케로 같이 모든 것을 완벽하게 다 갖춘 “완전한 인간”은 현실적으로 존재하기 힘들다. 사람은 겉모습은 화려할지 몰라도 실상은 다른 경우가 다반사로 나타난다. 인간의 한계가 크기 때문에 애초부터 “완벽한 인간”이란 실현될 수 없다고 보는 것이 보다 진실에 가까울 것 같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완벽한 인간의 모델 즉 수신제가치국평천하의 모델이 지속되고 있을까? “수신제가치국평천하”의 모델은 그 자체가 노블레스 오불리주 개념에 배치된다. 왜냐하면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지위가 높을수록 의무와 덕망이 높아야 한다는 개념이라면 수신제가후 공직자에 나선 치국의 단계에서는 즉 가장 낮은 지위를 갖든지 가장 높은 지위에 오르든지 의무와 덕망의 차이가 있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영미인들은 애초부터 완벽한 인간이란 존재하기 힘들다고 여기고서 오랜 세월에 걸친 실제 교육과 직업을 통해서 하나하나 발전해 나간다는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 사람은 스스로 배우는 것이 아니라 남에게서 지도를 받고 경험을 통해서 덕망이 지식과 덕망이 쌓아지는 것이지, 골방에 들어서 맹자왈공자왈 공부한다고 해서 덕망이 쌓아지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영미인은 “완벽한 인간”이란 존재하기도 힘들기 때문에 그런 완전한 사람 모델을 추종하지도 않을 것이다. 영미인들은 어떤 사람을 추종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정책”(이론)을 추종하는 것이다.
관점의 차이와 그 중요성
흔한 사례를 들면 컵 속의 물이 반쯤 차 있을 때 어떤 사람은 “물이 반밖에 안찼다 (반이 비어있다 half empty”고 보는 반면 어떤 사람은 “물이 반까지 찼다(반은 차있다 half full)” 라고 서로 반대되는 반응을 보인다. 똑 같은 사건을 두고서 보는 시각이 다르면 반응도 달라질 것이다. 반응이 달라지면 결과도 달라질 것이다. 예컨대 물이 반쯤 비어있는 여기는 사람은 컵 속에 물을 더 채울 것이며 반면 물이 반쯤 찼다고 여기는 사람은 컵 속의 물을 비우려고 할 것이다. 이런 사례에서 볼 때 사람의 보는 시각 차이는 결과에서의 차이를 가져올 수 있다. 보는 관점에 따라서 행동 동기와 그 결과가 달라지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강렬하게 내리쬐는 태양을 바라볼 때는 선글라스를 끼고 보지 않으면 눈이 부셔서 바로 쳐다볼 수 없다. 우리가 사회를 본 모습을 이해할 때도, 이글거리는 태양의 흑점을 쳐다보는 것 같이, 그 사회의 치열한 속까지의 모습을 알아보려면 어떤 안경을 끼고 바라보아야 할 것 같다. 이런 특수 안경과 같이 보이지 않는 사회의 내면의 본 모습을 똑바로 이해할 수 있는 하나의 기본적 도구가 “시각” 또는 “관점”인 것 같다. 다만 있는 그대로의 인간 사회를 이해하려면 색안경을 끼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이 책의 내용과 편제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는 속담이 있다. 오늘날의 국제 무역에서 원산지 증명법이 있어서 더 이상 이런 말은 통하지 않을 세상으로 변했지만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새로운 말은 아직도 귤과 탱자의 비유가 적절할 것 같다. 2002년 표준어로 정해진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프랑스에서 유래한 “프랑스어 격언 French maxim”이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란 개념에 대해서 얼마나 정확히 알고 있는가? “노블레스 오블리주 Noblesse Oblige”- 이 프랑스 단어를 라틴어로 잘못 알고 있거나 혹은 로마 시대의 개념으로 설명하려는 논자도 적지 않게 나타난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프랑스어 단어이고, 프랑스 귀족 문화를 설명하는 개념으로써, 프랑스의 제도와 역사와 문화에 대한 이해를 하지 않으면 정확한 이해를 하기 어려울 것이다. 프랑스에서 “칼레의 시민”을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전형적 사례로 들고 있는데, “칼레의 시민”은 역사적 사건이자 또 로댕의 이 조각 작품으로써 세계적으로 더욱 잘 알려진 사건이다.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개념적 이해에 대해서 필수적인 사례로 들고 있는 사건과 내용에 대해서는 보다 정확한 이해를 필요로 한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현재 한국에서 전개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에 대한 논의를 보면, 기본적인 역사적 사실과 개념에 대해서 정확한 이해가 결여되어 있고 또 심지어는 왜곡된 사례까지 나타나고 있음이 보인다. 따라서 누가 무엇을 언제 어떻게 했다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에 대한 기초적 사실부터 재검토하고, 노블레스 오블리주에 대한 개념을 있는 그대로 설명하는 이 책은 지도층의 본질적 성격에 대한 그동안 잘못 형성되어 온 일종의 신화적 개념을 깨고 부수는 작업이며 이를 통해서 노블레스 오블리주에 대한 개념 정립과 담론 public debate 형성이 올바르게 전개되기를 기대하고 희망하면서 그 동안 한국에서 진행되어 온 기존의 접근 방법과 시각을 혁신적으로 바꿀 수 있는 원칙들을 검토하고 제시한다.
지금까지 한국의 교육 제도의 기본 가정은 ‘완전한 인간 perfect man’을 상정하고 그것을 모방하는 것에 두고 있다. 이를 에라스무스가 비판한 “키케로 추종자”로 표현할 수 있는데, 소위 공자왈맹자왈의 성현 추종 교육인 것 같다. 키케로 같은 완전한 인간 모델을 상정하고서 그를 모방하면 득도할 수 있다고 여기고 득도할 때까지 골방에 처박혀서 암기하고 모방하는데 죽을 힘을 다해 쓰고 있다는 것으로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에라스무스가 든 비판을 읽어보면 왜 우리에게 창조성이 부족한 지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사기”의 “열전”은 사후적으로 영웅적인 인물들을 그려내고 있으나, 현실세계에서는 “영웅은 없다”, 만약 영웅이 있다면 일반시민에서 나오는 것이지 사회지도층의 전유물이 아니다. 이런 측면에서 이 책에서 제시하는 이야기들은 지동설의 코페르니쿠스적인 전환, 토마스 쿤이 말한 “패러다임”의 전환, “상자 밖에서 생각하기 Thinking outside the box”등의 잘 알려진 표현으로 이해될 수 있다.
이 책은 프랑스에서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개념이 등장한 19세기 당시의 개념을 설명하고, 그 원천적 소스로 들고 있는 “칼레의 시민”들에 대한 역사적 사실과 로댕의 조각을 살펴보고, 이에 대한 영미국의 개념과 비교하여 설명하고, 또 사회지도층의 솔선수범을 기본 전제로 하는 의무론의 흠결을 지적하며 이에 대한 근거의 하나로써 로마 시대 키케로의 “의무론”를 살펴보고, 또 그에 대비되는 영미법상의 “케비어트 엠토 caveat emptor” 원칙을 설명하고, 그리고 신분계급사회 이념에 대비되는 영미국의 평등 사회 egalitarian society 법 문화 개념을 설명함으로써 현재 우리나라에서 전개되고 있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담론 형성의 과정에서 나타나고 있는 부족한 점을 메꾸고 채우는 데 도움을 주고자 한다.
이 책은 사회 지도층 인사들은 도덕적 의무감이 강하다고 말하는 것은 가공된 이야기, 허구의 이념, 조작된 신화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프랑스와 영국의 학문적 연구 자료에 의존하여 전달하고자 하는 목적에서 쓰여졌다. 사회지도층은 일반적인 민주 시민에 비해서 도덕적 의무감이 크게 뛰어나지도 않으며, 오히려 부패와 타락이 더 심한 존재라는 (부패, 타락, 배신은 그것을 행사할 때 부와 권력을 가졌을 경우에만 가능하다는 의미에서) 역사적 결론에 수긍하고, 현실적으로 존재하기 힘든 비현실적인 전통적인 영웅의 개념은 건전한 시민 사회와 평등 사회를 건설하는 데 오히려 걸림돌로 작용한다는 점을 영미국의 “법의 지배 rule of law” 개념을 통해서 지적하며, 따라서 경쟁 구도와 폐쇄적 관료제적 중앙 통치 구도 방식의 제도와 문화를 혁신하지 않는 이상 한국이 지금까지 이룩한 경제적 발전은 사상누각에 불과하다는 결론을 제시하며, 이런 사상누각의 위험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개인의 도덕적 품성과 사회적 의무와 배려 의식 이 3가지 측면에서 사회 교육 법 윤리 철학적 기초를 근본적으로 재검토할 필요성이 있으며, 그리하여 노블레스 오블리주 개념을 개인의 도덕적 차원에서 적용할 것이 아니라 전문가적 직업윤리 의무로써 격상하여 즉 법적 규율의 대상으로 전환될 때 가능하다는 결론을 제시한다.
우리나라가 과거 약소국 시절에는 귤이 물을 건너오면 탱자가 되는 경우가 있었지만 오늘날 세계적 강대국의 일원으로 발전한 현재의 한국의 위상을 감안한다면 더 이상 과거와 같은 잘못과 우를 범할 이유는 찾아볼 수 없다고 생각한다.
“노블레스 오블리주 Noblesse oblige”이란 무엇을 말하는가?
“노블레스 오블리주”에 대한 한국어 사전을 찾아보면,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뜻은 “높은 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 “왕과 귀족들이 보여 준 투철한 도덕의식과 솔선수범하는 공공 정신에서 비롯된 말”로 설명하고 있다.”[1] 2002년 “정부 언론 외래어 심의 공동위원회”에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표준어로 정했다..[2] 동아일보 신문 기사 DB에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검색해 보면 “노블레스 오블리주” 이 말이 가장 먼저 쓰여진 신문 기사는 1996년 10월 .24일로 나타나는 것을 볼 때, 그리고 같은 신문 기사 DB에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검색 건수는 2015년 2월말 현재까지 368건이 검색됨을 볼 때 우리 사회에서 상당히 빠르고 폭넓게 담론을 진행해 온 영역임을 알 수 있다.[3]
더욱이 노블레스 오블리주 개념은 우리나라의 교육 제도, 교육 체계, 교육 이념을 형성하고 있는 뼈대와 골간의 기초 구조물에 해당될 뿐만 아니라 국가와 사회 전체적으로 기초 토대를 형성하고 관통하고 있는 핵심적 지배 이념이자 도구에 해당된다고 생각한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이와 같이 중요한 개념인 만큼 올바른 이해를 필요로 한다.
한국적 병폐-“전관예우”의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인가?
“전관”과 ”예우”라는 말 자체에서 유퍼미즘 표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전관예우의 핵심적 내용은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표현될 수 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는 1988년 교도소 탈주범이 벌인 인질사건을 통해서 인구에 회자된 표현으로써 우리나라 법조계의 뿌리깊은 부패와 타락상을 대표적으로 함축한 말로 잘 알려져 있다.
공직자의 지위와 신분을 가진 “전관”은 지도층인사의 핵심군에 속한다. 그러므로 “전관 예우”가 뿌리깊은 한국의 현실이 확인된다면 “노블레스 오블리주” 개념은 한국에서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반론의 근거로 쓰일 수 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개념이 사회지도층에 속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가진 것을 희생할 특별한 의무감을 갖고 있다고 본다면 전관의 지위에서 얻은 특권을 돈으로 교환하는 한국의 전관예우의 문화는 노블레스 오블리주 문화와 서로 상충된다,
사실 전관예우의 문제는 미국 영국 일본 독일 프랑스 등 선진국가에서는 발견되기 힘든 “대단히 한국적인” 현상이라는 점은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것 같다. “전관예우”문화는 선진국가의 법조문화하고는 이질감이 매우 큰 부분 중에 속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관예우의 문제는 개선되기 힘들까? “유신 헌법”은 선진국가에게는 이질감이 커서 유신체제는 곧 무너졌고, 다시 민주헌법 국가를 건설했다. 그런데 “전관예우”문제는 아직도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을까? 아마도 돈과 권력을 추구하는 인간본성이 제도적으로 결합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돈과 권력의 문제를 인간 내면적 도덕의 문제로 해결할 수 있다고 여기면 그것은 자기 기만에 해당할 것이다. 여기에서 한국에서 현재 통용되고 있는 노블레스 오블리주 개념의 한계가 분명하게 노출된다.
국회 인사 청문회에서 거론된 전관예우의 사례를 살펴보면 관련된 돈의 액수와 규모는 일반인들에게는 너무 커서 현실감이 별로 크게 느껴지지 않을 정도고 어마 마마한 규모에 이른다. 사람들은 규모가 엄청 큰 경우에는 현실적인 감각이 무뎌지기 쉽다. 아마도 이런 측면에서도 우리 관료제 사회에 뿌리깊게 자리잡은 전관예우의 문제는 더욱 더 개선하기 힘들 것 같다.
전관예우의 단면을 신문 인터뷰에서 밝힌 대한변협 회장의 다음과 같은 말을 보자.[4] "대법관 출신은 소송 서류에 도장만 찍어주고 3000만~5000만원을 받는다. 대법관까지 올라간 분이 비리 행태로 돈을 벌어서야 되겠나”, “대법관 출신은 연간 3만6천 건에 이르는 상고심 사건의 수임을 독점한다. 소송 내용도 모르고 상고 이유서에 이름 하나 써주고 '도장값'으로 한 건당 3천만~5천만원씩 번다.”, "대법원에는 '심리불속행 審理不續行' 제도가 있다. 대법원까지 올라간 사건 중 65%가 재판 없이 기각된다. 그런데 대법관 출신 이름이 들어가면 다뤄준다는 것이다.”, “안대희 전 대법관은 10개월에 17억원, 이용훈 전 대법원장은 3년에 100억원을 벌었다. 대법관 출신치고 이렇게 못 버는 게 바보다. 그런데 이게 의뢰인을 위한 정정당당한 노력의 대가라기보다 전관前官에 의한 비리 행위다.”, “검사장급 이상 출신은 변호사 선임계도 안 내고 현직 검사 후배에게 잘 봐달라는 전화를 거는 걸로 억대 수임료를 받는다.” 이와 같은 사실로 볼 때 한국에서 노블레스 오블리주 개념이 얼마나 허구인지를 즉각 단언할 수 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개념에 따르면, 국가 사회에서 직업윤리와 청렴도가 가장 높아야 할 대법관 출신이 이런 정도이면 그 아래 단계의 사람들은 말할 필요 조차도 없지 않겠는가?
“전관예우”의 관계되는 사람들은 대표적인 “노블레스”에 해당되는 계층이다. 노블레스의 핵심층이 전관예우라는 돈과 권력에 의한 부패와 타락상을 보여주고 있다면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진 것이고, 따라서 이 부분을 해결하지 않고서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에 대한 건설적인 담론을 형성해 나갈 수 없을 것이다. 분수대 낙수론에 따를 때, 피라미드의 상층부에 해당되는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 어떻게 피라미드 하층부를 콘트롤할 수 있겠는가? 분수대의 낙수물 효과를 생각해 보자. 돈과 권력의 문제를 인간의 내면적 도덕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면 그것은 인간본성을 거부한 자기기만에 다름 아닐 것이다. 돈과 권력은 불이 커져 있는 곳에 몰리는 불나방과 같은 것이어서 부나비 같은 인간들을 제어할 수 없을 것이고, 그러므로 등불을 먼저 관리해야 될 것이다.
전관예우의 문제가 우리 사회의 병리적 문제를 낳고 있는 핵심으로 지목되면서도 여지껏 크게 개선되지 못한 이유는 토크빌의 표현을 빌리자면 법조인들이 돈과 권력의 “노예”가 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노예가 자신에게 구속된 사슬을 스스로 뚫고 나온다는 예를 찾아보기란 인간 경험칙상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이러한 인간본성과 인간 경험칙을 고려한다면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개념이 얼마나 자기기만적 허구에 가까운지를 느낄 수 있으리라.
“사회 지도층 인사”이라는 말의 외연과 내포
“사회 지도층 인사”라면 그 수가 소수에 불과한데, 만약 그 소수가 계급적 이해관계를 공유하게 되면, 프랑스혁명처럼 혁명이 일어나지 않고서는 스스로 해결해 낼 수 없을 것이다. 사법부가 권력으로부터 독립되지 못했을 경우 나타날 위험성을 일찍이 경고한 토크빌의 탁견을 참고할 만하다. “[행정부]의 권한이 본질적으로 사법부의 영역인 곳까지 점차 확대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사법부가 행정부의 영역에 개입하는 것은 단지 업무 진행을 지연시키는 정도인데 반해서 행정부가 사법부의 영역에 개입하는 것은 분야에 대한 개입은 시민을 타락시켜서 혁명가인 동시에 노예로 만들어 버린다.”[5] 우리나라는 행정부 소속인 검찰 권력의 비대화가 가장 큰 문제 중의 하나인데, 사법부가 독립되지 못하면 국민들은 절망할 수 밖에 없고 노예로서 숨죽이고 있다가, 절망이 극한적인 상황에 이르면 혁명이 일어나게 된다는 역사의 경고를 잊지 말아야 할 것 같다.
공직을 떠난 후에도 공직을 통해 다져진 직업적 인간적 관계를 통해서 다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구조가 견고하고 또 그에 따라 이해관계자들이 법을 지키고 있지 상황을 내버려 둔 채 사회지도층의 의무를 강조하는 것은 또 다른 역효과를 불러올 위험이 있다. “경제가 이만큼 성장하고 교육수준도 세계 최고인 나라에서 민주시민의 가장 기초적인 자질인 ‘타인에 대한 배려’ 능력을 결여하게 된 이유는 그 동안 우리 사회가 지나치게 경쟁 중심의 사회로 흘러왔기 때문이라는 것이다.”[6] 승진 제도에 의한 폐쇄적 관료 사회는 “경쟁 구조”에서 축적된 배당금을 통해서 “강자가 살아남는” 구조이고 또 자리가 있어야 올라가는 “승진”제도는 제로섬 원칙이 적용되므로 관료 사이는 같은 “동료 fellow, brethren”가 아니라 “경쟁자 rivals”의 입장에 놓여 있다. 따라서 만약 공무원이 타인을 먼저 생각하고 “배려 의식을 갖게 되는 순간 오히려 “경쟁에서 낙오”될 가능성이 크다.
극한적 자기이익 추구와 무한 경쟁 체제하에서 상호배타적인 의무의 실천이 가능한가?
이러한 폐쇄적 관료제 구조를 통해서 지위와 신분을 경쟁적으로 획득한 고위 공직자 지도층인사들에게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기대한다는 것은 연목구어에 다름 아닐 것이다. 다음과 같은 소크라테스의 질문을 상기하자. 윤리도덕의 함양이 교과서를 통해서 외우면 길러지는 것일까 아니면 개인의 실제적 실천을 통해서 다져지는 것일까? “Can virtue be taught?” 소크라테스는 공직자에게 요구되는 덕목을 교실에서 가르친다고 해서 그런 공직자의 덕목이 그들에게서 실천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가 아니면 그런 덕목은 공작자의 실무 과정에서 직접적인 행동으로 배우고 익혀야 되는 성격의 문제인가를 질문했다. “진리란 무엇인가?”라는 식으로 단도직입적인 소크라테스식 질문법으로 “노블레스 오블리주란 무엇인가?”의 질문을 해 본다면 이에 대해서 명쾌한 답변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설혹 명쾌하게 답변을 할 수 있는 경우라고 해도 또 다시 소크라테스의 원천적 질문인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개념을 가르친다고 해서 그것이 달성될 수 있는 성격의 문제인가 아니면 실제적 현장 실무 과정 속에서 오랜 시간에 걸쳐 배우고 익히고 실천하여야 달성이 가능한 문제인가에 대해 재질문해 보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개인의 미덕, 덕목, 도덕적 품성 (예컨대 용기 신중 정의 중용 등)은 개인과 사회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개념이다. 하지만 이러한 도덕적 품성은 교실 안에서 치르는 시험 답안지로써 점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사람이 특정한 시대와 특정한 장소에서 일어난 어떤 사건을 통해서만 알 수 있는 개념이다.[7] 개인의 미덕은 실무 과정에서의 실제적 일로써 평가된다. 그런데 고위공직자들에게서 도덕적 품성과 의무감이 뛰어나다는 말과는 달리 실제적으로는 전관예우의 부패와 타락상이 나타남을 볼 때 그들의 도덕적 품성이 높지 않다는 점이 확인된다.
인간 본성과 책임 의무
부부간의 정조 의무는 예나 지금이나 똑같이 요구되는 도덕적 의무이고 법적 의무에 해당한다. 그런데 간통죄가 2015년 2월 헌법재판소에서 위헌으로 선고되고 나서야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8] 하지만 여기서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 하나는 정조 의무가 문제가 아니라, 간통의 경우를 형사 처벌한 형법에 문제가 있었다. 위헌 사유는 국가 형벌권의 과잉금지원칙에 위배, 명확성 원칙의 위배, 책임과 형벌 사이의 비례원칙에 위반 등이었음을 참고하라. 여기서 내가 이 간통죄 위헌 사건을 꺼낸 이유는 정조 의무가 성적 자기 결정권과 사생활의 자유권 그리고 국가의 형벌권과 충돌한다는 것 즉 모든 의무는 권리에 대한 서로 대응 개념이라는 상대성을 말하려고 것에 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개념으로 “의무”를 강조하는 것은 그에 상당한 만큼 권리가 무엇인지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해당 문제를 해결해 낼 수 없다는 점을 말하기 위해서이다. 개인의 성적 결정권은 인간 본성의 영역 즉 개인 도덕의 영역인데 이를 국가의 공권력을 동원하여 즉 법적 강제로써 제압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왜 이토록 늦게 서야 폐지되었는가? 과거의 헌법 재판관들의 낡은 생각에 그 원인을 돌릴 수는 없을 것이지만 어떤 누군가의 사람들이 잘못된 생각을 견지해 왔기 때문에 이제서야 폐지된 것이다. 이제껏 권리 개념이 상대적으로 희박했다는 점에 있을 것이다. 사회 지도층의 도덕적 의무감이 높다는 생각도 아마 이와 대동소이하게 분석해 볼 수 있다. 누군가가 앞장서서 사회지도층의 도덕적 의무감이 높아야 국가가 발전한다는 점을 누누이 강조해 왔을 것이다. 하지만 사회지도층에게 보다 높은 도덕적 의무를 기대하는 것은 그 동안 유지되어 온 간통죄의 허구성만큼이나 거짓이고 또 어떤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개념이 아닌가? 부부간의 정조 의무를 법적 강제로써도 규율할 수 없었음을 볼 때 엄연한 법률 위반의 문제를 단순한 지도층의 도덕적 의무로 전환하려는 시도는 과연 어떤 실체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겠는가? 사회지도층 인사가 보다 높은 도덕적 의무를 실천한다고 가정하는 것은 실증되기 어려운 허구적 모델에 불과할 지 모른다.
인치국가와 법치국가의 차이점과 그 경계선은 어디에 놓여 있는가?
사회지도층 인사들이 탈영 (그들의 가족 중에 군대 병역 면제) 탈법 (자신과 자신의 가족을 위해서 위장전입하고 금지된 아파트 땅 투기 거래) 탈세하는 사례가 많이 나타나는 까닭은 무엇인가? 노블레스 오블리주 개념을 공적 영역에서 적용할 경우 그것은 궁극적으로는 “인치”의 개념과 상통하게 된다. 하지만 앞에서 열거된 한국 사회에서의 문제점들은 인치로서 해결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 “법치”의 문제로써 해결되어야 하는 영역으로 보인다. 전관예우, 병역 기피, 투기, 탈세, 등의 문제는 개인의 “도덕적 해이”의 차원이 아니라 “법치가 파괴된 법적 문제” 차원으로 보아야 한다. 법적 책임은 도덕적 책임과는 구별되고, 법적 책임은 국가 사회의 전체적인 문제에 해당한다. 누군가 법을 위반하였으면 법적 잣대에 따라 법적인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은 두말할 여지가 없다. 그렇지 않고서 법적 차원의 문제를 별개의 도덕적 차원으로 환원한다는 것은 “인치”의 시도에 다름 아니고, 그것으로는 무너진 법치 국가의 근본적인 뼈대와 골격을 다시 세우고 굳건히 할 수 없을 것이다.
2. “노블레스 오블리주 Noblesse oblige” 개념
2.1 “노블레스 오블리주”에 대한 정확한 개념
2.2. 한국에서 “높은 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 개념 으로 이해할 때 나타난 문제점
2.3. 노블레스 오블리주-영미국의 개념-자선과 기부 문화
2.4. 영미국의 평등 사회 개념-법 앞에 모두가 평등하다-equality before the law
“노블레스 오블리주 Noblesse oblige”이란 무엇을 말하는가?
2002년 “정부 언론 외래어 심의 공동위원회”에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표준어로 정했다고 한다.[9] 동아일보 신문 기사 DB에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검색해 보니 “노블레스 오블리주”- 이 두 단어가 가장 먼저 쓰여진 신문 기사는 1996년 10월 .24일로 검색됨을 볼 때, 그리고 같은 신문 기사 DB에서 “노블레스 오블리주” 검색 건수는 2015년 2월말 현재까지 368건이 검색됨을 볼 때 우리 사회에서 짧은 시기에 꽤 빠르고 폭넓게 담론이 진행 형성되어 온 영역임을 알 수 있다.[10]
노블레스 오블리주에 대한 개념 정의
사전적 정의
“노블레스 오블리주”에 대한 한국어 사전을 찾아보면, “노블레스 오블리주 (noblesse oblige): (사회), 높은 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 초기 로마 시대에 왕과 귀족들이 보여 준 투철한 도덕의식과 솔선수범하는 공공 정신에서 비롯된 말이다.”[11]
동아일보 신문 기사 DB에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검색해 보면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말이 가장 먼저 쓰여진 신문 기사는 1996년 10월 .24일로 나타난다. 이날 자 산업면에서 삼성물산에서 간행한 “로마인 이야기”의 책 내용을 간략하게 요약해서 싣고 있는데 그 중 일부를 옮기면 다음과 같다. “이는 높은 신분에 뒤따르는 도의적인 의무를 지칭하는 말이다. 로마인들은 전투에 나설 때 항상 최고 지휘자가 선두에 섰다. 이 때문에 한니발과 집정관 10명과 원로원 위원 수 백명이 전사했다. 경영진과 지원부서는 로마귀족의 이 같은 솔선수범과 희생정신을 배워야 한다.”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개념은 언론과 한국어대사전의 개념 정의대로 “높은 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를 지칭하는 말이다. 일반 학술 논문에서도 이 같은 사전적 정의를 따르고 있다.[12] “사회의 고위직과 지도적 위치에 있는 인사들이 지녀야 할 도덕적 의무”를 뜻하고, 대개 “지위가 높을수록 책임의식과 덕망이 높아야 한다”고 번역하고 있다.[13]
프랑스어와 영어 사전적 정의
노블레스 오블리주-이 말의 프랑스어 유래를 좀더 자세히 알아볼 필요가 있다. 먼저 프랑스 사전을 찾아보자. 위키사전을 찾아보면 불어사전과 영어 번역을 설명해 놓고 있는데 이를 그대로 인용한다. “Whoever claims to be noble must conduct himself nobly. (Figuratively) one must act in a fashion that conforms to one's position, and with the reputation that one has earned.”[14]
옥스포드 영어 사전을 찾아보면, “noblesse oblige: the inferred responsibility of privileged people to act with generosity and nobility toward those less privileged.”[15] 옥스포드 사전의 설명에 따르면, 노블레스 오블리주의는 “혜택을 받은 사람들은 자신들보다 더 가진 것이 없는 사람들에게 배려를 하고 자선을 베풀 책임이 있다는 것”을 말한다. 약자를 배려하고 자선을 베푸는 구체적 행동을 가르킨다.
우리나라에서 상정하고 있는 “높은 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 개념에 대한 문제점.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앞에서 인용한 바와 같이,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개념을 대개 “사회적 신분 계급”의 존재를 전제하고 그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를 말하는 즉 “높은 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 또는 “지위가 높을수록 책임의식과 덕망이 높아야 한다”는 뜻으로 개념을 정의하고 있다. 하지만 이를 “사람은 지위에 걸 맞는 처신을 해야 한다”는 뜻으로 확장한다고 해도, 영어 사전적 정의하고는 약간 차이가 난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우리나라에서 이해하는 “지위가 높을수록 책임의식과 덕망이 높아야 한다”는 애매모호한 개념이 아니라, 최소한 자선을 행하는 구체적인 행동을 지칭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보다 옳을 것 같다. 오늘날은 신분사회가 아니라 평등 사회이고, 따라서 신분과 지위의 고하귀천의 뜻이 내포되어 있는 “지위가 높을수록 책임의식과 덕망도 높아야 한다”고 말은 적절하지 않고 또 왜곡될 위험이 있는 것 같다.
사람의 덕망과 가치 value는 지위의 고하라는 요소에 의해서 차이가 난다는 연구결과를 찾아보기 어렵다. 근대 사회는 인격의 차별성이 아니라 인격의 개별적 완전성이 기초하고 있음은 더 이상의 논거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토크빌이 미국 사회와 유럽 사회의 차이점에 대해서 설득력 있게 논한 바대로, 유럽국가에서 “귀족”은 (유럽국가는 대부분 지금도 형식적으로 왕정을 유지하고 있다. 왕정을 유지하는 영국과 영연방국가들에서 현재까지 “Sir”의 호칭을 받는 기사 신분 제도를 부여하고 있는데 그와 같이 귀족계급이 현존한다.) 현실적으로 존재한다. 하지만 사람은 누구나 명예로운 행동을 보여야 하고 또 누구나 그런 능력을 가졌으며, 이런 점에서 어떤 차별적 구분을 나눌 근거가 없다고 한다. 이런 결론은 극히 자명하고 오래 전부터 확립된 원칙이다.[16]
우리나라는 헌법 규정에 의하여, “사회의 특권층은 존재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블레스 오블리주” 개념을 왜곡하거나 오도한다면, 그것은 헌법원칙을 훼손시키는 잘못을 범하게 될 것이다. 신분사회가 아니라 평등사회에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강조할 이유 또한 뚜렷하게 존재하지 않는다.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왜곡된 담론 형성은 사회지도층이라는 하나의 특수층을 형성하려는 숨은 의도가 의심되며, 또 법적 책임과 도덕적 책임을 혼동하고 있지 않나 하는 의심이 간다.[17] 빈부의 격차 심화와 극한적인 경쟁 사회 구조 그리고 재벌과 관료가 국가 사회를 이끌고 주도하는 한국의 현실에서 건전한 시민 의식이 배양되거나 함양되지 못했다. 더구나 한국에서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담론 형성을 프랑스에서 로댕의 조각에서 의도한 즉 평등 사회와 건전한 시민 정신의 함양과 교육의 측면이 고려되지 못하고 있고, 오히려 국가 관료와 재벌 등 상류층의 배타적 특권적 지위를 용납하는 신분사회로의 회귀로 흐를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는 것 같다. 노블레스 오불리주의 개념을 잘못 이해하고 전개해 나간 그간의 우리나라의 문제점과 그 결과를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측면에서 영미국의 사정을 좀더 살펴보고자 한다.
영미국의 기초 이념- 법 앞에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 equality before the law
영미국에서는 헌법에 의해 어떤 경우에도 사회 특권층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노블레스 오블리주” 개념이 통용되지 않는다. 사람으로서 권리와 의무를 다하는 인간의 조건은 어느 특수층의 사람들에게만 기대되는 것이 특별한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적용되는 평등의 개념이 적용되는 것에 있는 것 같다.
법의 지배 –법 앞에 만인 평등 equality before the law
영미국에선 “법의 지배”라는 법의 절대성의 원칙이 통용된다. 이것은 “어느 누구도 법 위에 군림할 수 없다 no man is above the law.“는 의미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은 지위나 신분에 관계없이 모두가 일반법의 적용을 받는다 every man, whatever be his rank or condition, is subject to the ordinary law.”다는 법원칙이 존재함을 의미한다. 영국과 프랑스의 법 이념과 법 제도의 차이점을 설득력있게 논한 다이시의 글을 인용하는 것이 오늘날도 적절할 것 같다.
“영국에서는 법 앞의 만인 평등이라는 사상이나 또는 일반법원에 의해 집행되는 하나의 법체계에 모든 계층이 보편적으로 기속된다는 원칙은 최고의 법원칙으로 자리잡고 있다. 영국의 모든 공무원-위로는 수상에서 아래로는 순경이나 말단 세무직에 이르기까지-은 법적 정당성이 결여된 모든 행위에 관하여 일반시민과 마찬가지로 법적 책임을 지게 된다. 법원 판례를 보면 공무원이 공무 수행 중에 행한 행위이었지만 정당한 권한을 넘는 경우에는 해당 공무원은 재판에 회부되고 (공무원 신분이 아닌) 개인 자격으로 처벌을 받거나 손해 배상의 책임을 진 사건들로 가득 차 있다. 식민지의 총독, 장관, 군장교, 상관의 명령을 수행한 하부 관료에까지 모든 공무원은 법이 부여한 권한을 넘는 행위에 대해서는 일반 사인과 마찬가지로 책임을 진다.”[18][19]
영미국의 만인 평등의 법적 개념에 대한 자세한 설명의 “법의 지배”에 대한 설명을 참조하라.
3. 프랑스에서 최초로 전개된 “노블레스 오블리주” 개념에 대한 이해
3.1. 맨 처음 프랑스에서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말이 처음으로 등장한 과정
3.2. 프랑스에서 등장한 “노블레스 오블리주” 개념은 무엇인가?-경험 많은 멘토가 사회 진출을 앞둔 젊은 청년에게 보내는 충고(발자크 글 번역)
3.1. 프랑스에서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말이 처음으로 등장한 과정과 의미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프랑스 말이 처음으로 등장한 시기는 1837년에 불과하고, 사회적으로 널리 알려지게 된 사실도 발자크 (1799-1850)의 “계곡의 백합” 소설에서 그 표현이 쓰여진 이후부터라고 말한다.[20] 왜 프랑스에서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말이 처음으로 사용하였을까? 당시 프랑스의 역사적 배경을 생각해 보면, 프랑스 대혁명으로 인해서 귀족 사회가 무너진 이후, 특권적 지배를 누렸던 달콤한 과거 즉 “앙시앙 레짐”에 대한 향수에서 나온 개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사실 발자크는 프랑스 부르봉 왕정 복고(1815–1848))에 호의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다.
상류지도층 인사들이 명예로운 행동을 수행한다는 전제와 가정은 이념일까 아니면 사실일까?
프랑스에서 타고난 신분 계급인 귀족들은 일반인들과 다르게 자신들의 의무를 죽음과도 맞바꾸며 진실과 양심을 실천하는 부류었을까? 하지만, 그런 전제하고는 반대로 오히려 지배계층의 타락과 수탈이 극심했었다는 사실은 역사로 입증되었다. 그것은 프랑스 대혁명이 극명하게 보여주기 때문에 다른 어떤 반박의 근거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귀족지배층의 사치와 부패와 타락의 결정판이었던 루이 16세와 마리 마리 앙트와네트는 1789년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 1793년 처형되었다. 이와 같이 볼 때 상류층은 일반인과는 다르게 도덕성이 높다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개념은 환상에 다름 아닐 것이고, 만약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아침이슬처럼 쉽게 사라지고 마는 개념인 것 같다.
프랑스 소설가 발자크는 1836년 소설 “산골짜기에 피어 있는 한 송이 백합꽃처럼 The Lily of the Valley”에서 “노블레스 오블리주” 개념을 설명했다. 그 소설에서 주인공은 젊은 귀족에게 사회 생활과 연애 성공에 필요한 덕목을 갖추기를 충고하고 또 고귀한 여자를 잘 골라서 만나고 또 귀족출신다운 명예로운 품성과 행동을 유지하라고 조언했다. 사회 생활 성공에 필요한 덕목들이 어떤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열거하고 나서 그것은 “노블리제 오블리주”라는 한 마디로 통칭된다고 설명했다.
주인공은 노블레스 오블리주 개념을 설명한 다음, “정치계에서는 모든 것이 달라지는, 개인의 행동을 규율하는 원칙들은 국가적 이익 앞에 양보되어야 합니다.”라는 설명을 덧붙이고 있는데, 이 말은 정치계에서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개념이 통용되기 힘들다는 고백에 다름 아닌 것 같다. 그리고 이어서 말하기를, 최고권력자가 된 순간 독단적이고 전제적인 판단을 할 수 있다는 말을 하고 있는데, 독단적인 전제적인 행동은 타인을 위해서 희생한다는 노블레스 오블리주 개념과는 서로 상치되고 만다. 발자크의 이 소설의 문장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정치계에서는 다른 측면들이 나타나는데, 개인의 행동을 규율하는 원칙들은 국가적 이익 앞에 양보되어야 합니다. 최고위직에 오르게 되면, 당신은 마치 하느님처럼, 스스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단독 재판관이 될 것입니다. 그 때는 당신은 더 이상 한 인간이 아니라, 살아 있는 법이 될 것이며, 더 이상 한 개인이 아니라, 국가의 화신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당신이 심판을 내리는 대가로 당신 또한 심판을 받는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훗날 당신은 역사의 심판대 앞에 오르게 될 터인데, 진정으로 위대한 행동과 정신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역사를 통해서 매우 자세하게 배우고 인식하고 있어야 될 것입니다.”[21]
또 주인공은 한편으로 남성이 여성에게 대하는 태도에 대해서 “모두를 섬기고, 한 사람만 사랑하라! "Serve all, love one!"고 충고하였는데, 이는 발자크가 설명한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개념과는 상호 모순되는 개념이다. 영미국은 “일부일처제”를 고수한 반면 프랑스 같은 대륙국가는 일부다처제를 허용하는데 인간본성상 두 사람을 동시에 섬기는 일은 힘들 것이다.[22] 이 소설에서 남자 주인공 팰릭스가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규범과는 어긋나게 정치 사교계에서 다른 여자들을 사귀었다는 사실을 본다면 인간의 내면적 도덕성이 얼마나 물거품 같이 실체가 없는 개념인지를 알 수 있다..[23]
발자크가 설명하고 있는 노블레스 오블리주 개념을 길게 인용하기에 앞서서 소설의 줄거리를 언급하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
프랑스 나폴레옹 군대가 영국, 독일, 러시아로 구성된 연합국 군대에게 1815년 패하게 되었고, 그 후 프랑스는 왕정이 다시 복구 (1815–1848)된다. 이에 프랑스 대혁명(1789–1799)이 발발하자 외국으로 망명했던 귀족들이 속속 귀국하는데 귀족가문 출신인 모르소프 백작도 귀국하여 부인과 함께 한적한 시골 영지로 들어가 요양을 한다. 백작은 정신병을 앓고 있다. 모르소프 부인의 이름은 앙리에트인데 그녀는 귀족 가문 출신으로 젊은 청년인 팰릭스를 우연하게 만나게 된다. 이들은 가까워져 서로 정신적인 사랑을 나누게 되는데 유부녀인 앙리에트는 남편에 대한 정절 의무를 지키고, 젊은 팰릭스에게는 자신의 상류층 출신 배경을 이용하여 처세술을 조언하는 등 그가 사회 생활에 성공하기를 바라며 경제적 정신적인 후원자의 역할을 맡는다. 팰릭스는 파리 중앙 정치계에서 성공을 거둔다. 성공한 남자에게는 여자들이 따르기 마련인데 팰릭스 또한 다른 여자들을 사귄다. 팰릭스와 앙리에트는 육체적인 사랑의 관계를 갖는 대신 정신적인 교감을 나누는 플라토닉 러브 차원에 머문다. 앙리에트의 남편은 정신병에 걸려 요양을 하는 처지인데 앙리에트도 정신적인 고민을 겪고 있다. 앙리에트는 정신적으로는 젊은 팰릭스를 사랑하지만 남편에 대한 정절의 의무를 지키다가 병으로 젊은 나이에 죽음을 맞게 되는데 죽기 직전에 팰릭스에 대한 진정한 사랑을 고백하고 그와 육체적인 사랑을 나누지 못한 점을 후회하는 편지를 남긴다. 앙리에트의 죽음으로써 남편은 정신병에서 회복하게 된다. 이상이 소설의 대강의 줄거리인 것 같다. 소설에서 앙리에트는 귀족 출신으로서 상류층 유한 마담에 속했고, 정신병을 앓고 있는 남편을 둔 우울한 환경 속에서 젊은 청년을 만나 서로 정신적 사랑을 나누며 사랑의 탈출구를 모색했지만 유부녀에게 요구되는 전통적인 정절의 규범을 벗어나지 못하고, 자신의 진정한 사랑의 욕구를 충족하지 못해 마침내 후회하면서 죽어갔다. 한 마디로, 그녀가 장황하게 설파했던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덕목은 그들의 플라토닉 러브 사랑이야기만큼이나 실체가 없는, 허무한 것에 지나지 않았던 것 같다. 귀족의 명예스런 의무라고 일컫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란 말은 결국 연애 시절의 맹세와 같이 행동과 정신이 일치하지 않고 또 정신적 지주라는 말처럼 실체가 애매모호한 개념에 가까운 것 같다..
지금까지 위와 같이 여러 논거를 통해서,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말의 유래와 기원을 살펴 보면서 우리나라에서 그 개념이 잘못 이해되고 있음을 비판적으로 살펴보았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말의 유래가 된 발자크의 소설에서 그 말의 뜻과 쓰임새를 해당 부분을 번역하여 보다 자세하게 설명하고자 한다. 노블레스 오블리주 개념을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는 앙리에트가 연인에서 보내는 장문의 편지 부분을 다음과 같다. 이 부분을 읽어보면 노블레스 오블리주란 말의 개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거기에 덧붙여 자선을 실천한 구체적 사실을 묘사하고 있는 부분을 읽어보면 그러한 자선 활동이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개념에 속한다는 것을 이해할 것이다.
지키지 못할 맹세라는 것을 알면서도 거짓 맹세를 한다?
어느 누군가의 말대로 “사랑과 전쟁에선 이기는 것”이 최고의 목적이고, 또 키케로는 적국이 신의가 없기 때문에 일단 거짓 맹세를 하고 이를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사실 키케로는 이러한 상황에서는 자신의 진정한 의도를 상대방에게 은폐하는 기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많은 사람들이 인생을 싸움터라고 비유하는데, 상류층들이 죽음을 마다하고 진실을 말하고 의무를 다할까? 발자크가 사랑의 의무를 크게 강조했지만, 맹세한 첫사랑을 지키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는 사실은 더 이상 검증해 볼 필요는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행태 경제학자들의 여러 논문에서 이미 잘 밝혀진 사실들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다른 사람들에게 확인해 볼 필요까지도 없이, 바로 자신의 첫사랑을 돌이켜 본다면 말이다.
우리가 불륜이란 말을 쓸 때는 육체적인 사랑이 결부된 경우를 말한다. 팰릭스와 모로소프 부인과 정신적인 사랑을 “불륜”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정신적인 사랑이든 육체적인 사랑이든 그런 영역은 그들 사이의 사적 영역에 머물고, 정치와 법의 공적 영역이 아닌 것이다. 하지만 “노블레스 오블리주” 개념과 담론은 정신적인 사랑, 플라토닉 러브 같은 사랑과 도덕을 논하는 것이 아니라, 공적 영역인 정치와 법을 논하는 개념과 장이다.
귀족이든 귀족이 아니든 누군들 사람으로서 높은 도덕성을 보여주는 고귀한 품성과 태도는 언제 어디에서든 존경을 받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사람들은 명예로운 태도를 보여준 사람들을 흠모하고 존경하는 것은 보편적인 인간성에서 나올 것이다. 아무튼 자선을 행하지 않고서도 명예로운 사람이라고 여겨질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
높은 내면적 도덕과 인격을 갖춘 사람이 발자크의 소설 “The Lily of the Valley”에서 묘사되는 “산골짜기의 한 송이 아름다운 백합꽃처럼” 한없이 아름답고, 그 향기는 온 산골짜기에 흘러 넘칠 수 있다. 따라서 어떤 누구라도 높은 도덕성을 추구하는 것 그 자체를 비판할 어떤 타당한 근거가 있을 수 없을 것이다. 다만 그토록 아름답고 향기 좋은 백합꽃이 산속에서 숨어 있다면, 공동체 사회에서 무슨 의미가 있을까?
3.2. 맨 처음 프랑스에서 등장한 “노블레스 오블리주” 개념은 무엇인가?
발자크, “계곡의 백합” (1835), 삽화
경험 많은 멘토가 사회 진출을 앞둔 젊은 청년에게 보내는 충고의 편지[24]
멘토-후원자의 역할과 그 중요성
사랑하는 친구, 위험이 가득한 이제 사회로 진출하는 당신에게 위험한 불똥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원하면서 그런 위험을 헤쳐 나가도록 내가 경험한 사실들을 모아서 당신에게 조언을 적고자 하니 내 가슴이 뿌듯해 집니다. 이런 생각으로 며칠 밤을 지새면서 극진한 모성애의 기쁨이 느껴집니다. …
당신은 이제 지금껏 학교에서는 가르쳐 주지 않은 원칙들로써 정신을 단련시켜야 할 성년기에 접어들었는데 우리 여성들은 그런 것을 지적해 줄 특권을 가지고 있답니다. 이러한 원칙들은 당신을 성공으로 이끌어 줄 것입니다. 그것은 성공으로 통하는 길이요, 성공을 가져다 줄 것입니다. 당신이 인생을 살면서 취하게 될 행동들을 판단하는데 필요한 모범 기준을 주는 일을 정신적인 어머니로써 마다할 수 있겠습니까? 어머니의 역할을 어린아이가 이해할 수 없다고 해도요?
멘토의 조건-사심이 없어야 한다
친애하는 친구, 내가 몇 가지 실수를 범할지라도 나는 우리 사이의 거룩한 우정을 위하여 그리고 저의 개인적인 욕심이 전혀 없다는 것을 말씀 드립니다. 당신을 사회로 내보내는 일은 내가 당신을 포기하는 것을 의미할 것입니다. 하지만 당신의 행복을 위해 나의 행복을 희생할 만큼 당신을 정말 사랑합니다.
시대를 지배하고 있는 법과 관습의 위치와 가치
나는 지난 몇 개월 동안 당신으로 인하여 우리 시대를 지배하고 있는 법과 관습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내가 상류층 친척집에서 배운 대화, 귀족의 부인이 되면서 보고 듣고 겪은 사건들, 궁정 생활에 잘 아는 저희 아버지가 들려준 이야기, 사회와 궁정 생활의 대소사를 포함하여 시시콜콜한 것까지 이런 모든 내용들을 내 기억에 떠 올려 이 모든 것을 당신에게 전해 주고자 합니다. 어떤 이들은 자신의 큰 장점을 가졌음에도 경솔하게 펼치다 쓰러지고 마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다른 이들은 자신의 큰 단점을 적절하게 대처해서 성공을 거두는 이런 험난한 세상에 기댈 조언자도 없이 홀로 나서려는 내 양자를 위해서 말입니다.
공동체 사회 society as a whole란 무엇인가?
공동체 사회 society as a whole에 대한 나의 의견을 진술하니 곰곰이 생각해 보기를 바라면서 당신에게는 긴 말이 필요 없어 간결하게 쓰는 글입니다.
사회가 신에 의해 창조되었는지 아니면, 인간의 창조물인지는 전 잘 모르겠습니다. 사회가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는 지에 대해서도 역시 모릅니다. 다만 내가 확실하게 아는 것은 사회가 존재한다는 사실입니다. 혼자 떨어져 따로 살지 않고 사회에 들어간 이상, 사회와 당신 사이에 맺은 계약의 조건들이 구속력을 갖는다고 여기고 그것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오늘날의 사회는 사람에게 이익을 주는 것 이상으로 사람에게서 이익을 받을까요? 전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개인 각자가 받는 이익보다 비용이 더 많은지 또는 개인 얻는 이익에 비해 너무 비싼 대가를 지불하는지에 대한 문제는 단지 입법자들에게 달려 있습니다. 따라서 내가 그런 문제에 대해서는 어떤 할 말이 없습니다.
사익과 공익의 관계
일반 법에서 규율하는 규칙을 준수할 의무-나무 수액과도 같이 중요한 것
내 생각으로는 그것이 당신의 개인적 이익에 도움이 되는지 아니면 해를 끼치는지에 대해 깊이 따지지 않고, 일반 법에서 규율하는 모든 것을 준수할 의무가 있습니다. 이 원칙은 매우 단순해 보이지만 실천하기란 어려운데, 그것은 가장 가느다란 실 뿌리로 스며들어, 나무 등을 타고 올라가, 푸른 잎을 틔우고, 꽃봉오리를 피우며, 열매를 맺게 하는 나무의 수액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불문율- 예의 범절과 관습의 중요성
사랑하는 친구, 사회의 법칙은 모든 것이 책 속에 쓰여 있는 것은 아니랍니다. 예의범절과 관습도 법으로 발전할 수 있고, 때로는 더욱 중요한 것일수록 가장 모르고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당신의 행동, 언어, 외양, 사회에 자신을 표현하는 방법, 한 몫 잡는 방법 이런 것을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 지에 관해서는 선생도, 학교도, 교과서도 가르쳐 주지 않는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이런 숨겨진 법칙을 무시하거나 이해하지 못한다면, 사회의 상층부 대신 사회 계층의 최하층 밑바닥에 머물고 말 것입니다
도덕 윤리적 태도
이 편지의 내용이 당신이 생각해 온 것과 많이 겹칠지 모르지만, 여성의 윤리를 가진 저를 믿어주기 바랍니다.
개인의 행복 추구와 사회 이론
개인의 행복이란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 손해를 입힌 대가로 교묘하게 얻어지는 것이라고 설명하는 사회 이론은 위험천만한 학설입니다. 이를 극단적으로 적용하면, 법률과 사회나 개인들이 법률 위반으로 책임을 묻기 이전에 남모르게 이익을 취하는 것은 타당하고 정당하다는 생각을 갖게 될 것입니다. 이런 생각이 만연된다면, 도둑질도 잡히지만 않으면 되고, 정조 의무를 저버려도 남 모르게만 하면 도덕적이고 행복한 여성이 되며, 맥베스처럼 사람을 죽이고 왕권을 찬탈한 살인자라고 해도 법적 증거만 남기지 않는다면 현명하게 행동해서 국왕에 오른 사람이 되고, 개인의 사적 이익만이 최고의 법이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개인과 개인의 사적 욕망 추구 사이에 법과 도덕이 둘러쌓아 놓은 장애물을, 증인이나 물적 증거를 남기지 않고, 어떻게 피해갈 수 있는 지 그 방법만이 중요하게 보일 것입니다.
사회를 이런 식으로 보는 사람에게, 큰 성공을 거둔다는 것은 이기면 수백억원의 부를 얻고 지면 감옥에 가는, 이기면 정치적인 권력을 얻고 지면 치욕을 당하는 그런 도박판을 벌이는 것과 같습니다. 그것도 도박판에 들어가기 위해 둘러쓰는 파란색 가운이 모자랄 정도로 도박꾼들이 많아져서, 도박장에 입장하기 위해서는 재주 좋은 수완을 필요로 하게 될 것입니다. 나는 지금 당신에게 종교적인 믿음이라든가 감정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현재 사람들이 가장 관심을 갖는 것은 금과 철강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공장 기계의 톱니바퀴와 사람들의 삶이 달려 있는 기계가 가져다 주는 실제적인 결과물에 대한 것입니다.
사회 책임 이론이란
사랑하는 친구여, 당신도 이러한 사회의 범죄적 이론에 대해 나만큼 경악을 느낀다면, 건전한 마음을 가진 다수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당신의 마음에는 사회 책임 이론을 받아들일 것입니다. 한 마디로 사회 책임 이론이란 사람들은 수천의 다양한 형태로 서로에게 의무를 지고 있다는 것을 말하는데 이것을 당신도 이해하리라 봅니다.
지위가 높을수록 의무 또한 크다?-직업귀천?
내 생각에는 높은 지위에 있는 공작이나 귀족은 공장노동자나 행려병자에게 훨씬 높은 의무를 지고 있습니다. 이들 하층민이 귀족층에게 부담하고 있는 의무보다 더 큰 의무를 부담한다는 말입니다. 의무를 부담하는 책임은 사회가 각자에게 부여한 혜택과 이익에 비례해서 커집니다. 정치도 비즈니스 세계에서 통용되는 이익에 비례해서 관심과 경계의 의무가 늘어난다는 철칙에 따라야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각자는 각자의 방식으로 자신의 빚을 갚아 나갑니다. 가난한 막노동자가 하루의 노동을 마치고 지친 놈으로 집에 돌아 올 때 그가 자기의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고 볼 수 있을까요? 그는 자기보다 높은 지위에 있은 다른 사람들보다 자신의 의무를 더 충실히 이행했다고 분명히 말할 겁니다.
양심의 중요성
이와 같이 사회를 인식할 때, 당신의 지적 능력에 걸 맞는 지위를 찾아야 할 것이며, 당신이 근본원칙으로 삼아야 할 원칙은 자신의 내면적 양심이나 공적 양심에 어긋나는 행동을 결코 해서는 아니 된다는 것이며 이를 항상 명심하길 바랍니다.
정직, 신의, 명예, 예의범절은 성공을 낳는 확실한 도구
내가 불필요하게 강조하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이 원칙이 의미하는 바를 숙고하기를 당신의 친구로써 재차 강조하며 부탁합니다. 간단한 보이지만, 정직, 신의, 명예, 예의범절은 성공을 낳는 가장 안전하고 확실한 도구입니다.
책임 윤리와 성공의 조건 - 먼 미래를 내다볼 줄 아는 장기적 안목의 중요성
이기적인 이 세상에서 사람은 정신력으로는 성공할 수 없고 또 도덕 원칙들에 너무 크게 의존하면 앞으로 나아가는 데 장애가 된다는 말들을 많이 듣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미래의 일은 알 수 없는 법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고 잘못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어린이를 아무렇게나 대하고, 나이든 노인에게 무례를 범하고, 존경 받는 어른의 훈계를 귀담아 들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은 무의미하다고 여겼던 가시에 의해 찔리게 되고, 사소한 이유 때문에 승리를 놓치게 된다는 것을 당신은 잊지 말기 바랍니다.
왜 책임감을 느끼는 것이 중요한가
반면 일찍이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도록 훈련을 받은 사람은 그러한 장애물을 만나지 않을 것입니다. 비록 성공이 늦어질지라도 그가 성공으로 이르는 길은 탄탄할 것이고 다른 사람들처럼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입니다.
예의 범절의 조건
이 원칙의 실현에는 우선적으로 예의범절을 완전하게 갖추어야 한다는 점을 내가 말한다면 당신은 내 철학이 귀족 가문에서 받은 교육과 궁정의 영향이 배어 있어서라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경애하는 친구, 나는 아무리 사소한 것일지라도 예의범절에 대한 훈련은 매우 중요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상류사회의 습관들은 당신이 갖춘 폭넓고 다양한 지식만큼이나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때론 그것이 지식을 대체하기도 하고, 또 실제로는 크게 배우지 못했지만 선천적으로 타고난 능력이 있고 또 생각들을 조리 있게 연결할 줄 아는 사람에게는 지식이 훨씬 뛰어난 다른 사람들이 도저히 오를 수 없는 최고의 지위에 오른 수단으로 알려져 있기도 합니다.
학교 교육만으로는 부족하다
학교에서 배운 교육이 전부인 당신에게 교육이 얼마나 당신의 본질을 내버려 두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 나는 당신을 유심히 관찰해 봤습니다. 당신에게 내가 말한 교육이 더 필요하다는 것을 발견하고서 나는 오히려 기쁨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상류층의 전통 속에서 자라난 사람들의 예절은 순전히 외부 표면적인 것에 불과합니다. 진정한 공손함, 완벽한 매너는 마음 속에서 오고, 또 깊은 속내에 들어 있는 인간의 존엄함에서 우러나오는 것입니다.
개인 품성의 중요성
좋은 교육을 받았음에도 매너가 좋지 못한 상류 귀족 출신이 있는 반면 타고난 품성을 갖추고 있어서 약간의 지도만 헤주면 흠잡을 데 없을 정도로 훌륭한 매너를 갖추는 중산층 출신이 있는 그 차이점을 이것으로 알 수 있습니다.
이 산골짜기를 벗어나지 않을 이 가엾은 여인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려 주기를 바랍니다. 언어, 행동, 몸동작, 제스처, 개인의 본연적 성격 속에서 나오는 위엄이 깃든 말씨, 공손하고 깔끔함은 생동감 넘치고 꼭 필요한 멋진 시와 같고, 매혹되지 않을 수 없는 강렬한 매력을 줍니다. 그러므로 무엇이 그리고 언제 진정한 가슴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지를 한 번 상상해 보기를 바랍니다.
예의범절
예의바름에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 스스로를 희생하는 마음이 들어 있습니다. 예의바름이란 사회적인 가면으로 이해되는데, 개인적인 이기심이 돼지 발굽처럼 마수를 들어내면 그 가면은 벗겨지고, 그러면 고상했던 사람이 비열한 인간으로 변합니다. 하지만 내가 당신이 행하길 바라는 것은 진정한 예의바름이라는 것이고, 거기에는 기독교 정신이 들어 있습니다. 그것은 사랑의 꽃이고, 우리 자신을 진정으로 희생할 것을 요구합니다. 나를 기억해서라도, 샘물 없는 샘이 되지 않기를 바라며, 진정한 예의바름의 본질과 형식을 보여주기 바랍니다. 이러한 사회적 덕목에 속거나 희생자가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은 갖지 마세요.
약속 남발의 위험성
거짓된 예의바름의 가장 큰 잘못 하나는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이라고 부모님께서 자주 말씀하셨습니다. 누가 당신이 들어줄 수 없는 부탁을 요구할 때는, ‘안된다’고 바로 거절하고 헛된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어떤 단서도 남기지 마세요. 한편 어떤 형태로든 들어줄 수 있을 때는 즉시 들어주세요. 신속한 거절로 인해서 친구를 얻을 수도 있고 신속한 혜택을 얻을 수도 있으며, 그리하여 당신의 성가가 높아질 것입니다. 잊어버릴 약속이라면 아예 하지 않거나 혹은 헛된 희망을 품게 하지 않아서 원한을 사는 일이 없도록 하는 것과 어떤 부탁을 들어줌으로써 친구를 얻는 것 중에 어느 것이 더 나은 지를 정확하게 구분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지키질 못할 약속을 남발하면 오히려 독이 됩니다.)
또 내 머리에 스쳐 지나가는 것 중에 중요한 부분은 아니지만 이건 내가 잘 아는 부분이니 한 마디 꺼내 봅니다.
자만심, 가벼운 처신, 지나친 열정- 3가지 경계사항
절대 자신만만해서도 안되고, 가볍게 처신해서도 안되고, 너무 열성적이어서도 안 됩니다. 이 3가지는 성년기에 자주 겪게 되는 기초적인 사항입니다. 사람이 너무 자신만만한 태도를 보이면 존경을 받지 못하고, 너무 가볍게 처신하면 멸시를 당하고, 열정이 지나치면 남에게 이용당하기 십상입니다.
친구 관계-중용의 도리
대개 사람들은 일생에 거쳐서 진정한 친구는 두 세 명 정도 이상을 두기 어렵습니다. 당신의 전적인 신의는 친구들에게 속하는 것이어서, 신의를 많은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것은 진정한 친구들을 배반하는 것이 됩니다. 만약 친구 중에 유별한 친근감이 생기는 경우가 있다면 진중하고 삼가기 바랍니다. 당신도 알다시피, 언젠가 당신의 경쟁자, 라이벌, 혹은 적이 될지도 모르므로, 조심을 다해야 합니다. 인간의 삶은 운명이 개입되고 변화무쌍하기 때문입니다.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은 태도로 견지하세요. 자신이 크게 손해보지 않는 선에서 남들과 적당하고 안전하게 교류를 하는 사람이 취하는 그런 중간 지점을 찾으세요.
진실한 사람은 비겁한 위선자도 아니고 마구잡이로 구는 사람이 아닙니다. 작가의 천재성은 이 같은 중용의 마음에서 나옵니다. 물론 대개 사람들은 잠재적인 이기심에 극도의 경멸을 보내기 보다 미덕을 조롱하는 편을 즐기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사람들은 양 극단을 피하려고 합니다.
사소한 것까지 신경을 쓰는 것에 대해 바보들은 매력 있는 사람이라고 여길 수도 있겠지만, 사람의 능력을 판단할 줄 알고 인성을 평가할 줄 아는 사람들은 밀보리 밭에서 잡초를 섞어 뽑아내듯이 좋지 않는 평판을 내리게 될 것입니다. 사소한 것까지 신경을 쓰는 것은 본성이 나약한 사람들에게서 나오는 것이고 또 사회 구성원을 단지 부품으로만 여기는 사회는 바로 그 점에서 결함이 있는 존재는 쓸모 없고 사망한 것으로 간주해 버리는 자연법칙과 같이 나약함 또한 그와 마찬가지로 평가하기 때문입니다.
여성의 보호 본능은 강자에 대항해서 약자를 보호하고자 하는 그리고 물질의 잔인한 물질주의에 대해 가슴 속의 이성이 승리하는 감정에서 느껴지는 기쁨에서 나오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사회라는 것은 친모라기 보다 계모에 가깝기 때문에 허영심을 채워주는 아첨꾼을 좋아하게 되어 있습니다.
지나친 열정은 젊음의 힘을 쓰는 데서 참된 행복을 찾고자 하는 그래서 다른 사람들에게서 속기 전에 자기 자신에게 먼저 속고 마는 그런 젊은 청춘기에 저지르는 실수 중 첫 번째에 해당합니다. 그런 열정은 가슴 속으로 대화를 나누는 영역, 즉 여성과 신의 문제에 대한 것으로 남겨 두기 바랍니다.
사회 관계
사회의 시장에서나 정치계에서 보물을 찾을 생각을 하지 마세요. 그런 곳은 사기꾼과 쓰레기만이 서로 교환될 뿐입니다.
당신은 모든 일에 있어서 고귀하게 행동하라는 목소리를 믿고 따라야 합니다. 쓸데없는 일에 힘을 낭비하지 충고도 믿고 따르기 바랍니다.
안타깝게도, 사람들은 사람의 잠재적인 능력보다는 현재 얼마나 쓸모가 있는지에 따라서 사람을 평가합니다. 이에 대해 당신의 문학적 상상력을 자극시킬 수도 있는 비유를 쓴다면, 어떤 숫자 코드가 있다고 칩시다, 그것이 크기가 잴 수 없을 만큼 크고, 황금으로 쓰여졌든, 연필로 쓰여졌든, 그것은 단지 숫자에 불과합니다.
유명한 사람이 말한, “무엇보다, 열정은 금물이다!”는 격언을 기억하십시오. 그 말에 실망하지 모르지만 그 충고는 정신이 개화하지 못하고 낭비되는 것을 막아준다는 측면에서 진실을 담고 있습니다. 당신의 순수한 감정들을 숨겨 두세요. 아니면 피어난 꽃들로 열광적인 찬사를 받을 수 있는 곳, 예술가가 명작을 꿈꾸는 곳, 그런 범인이 접근할 수 없는 곳에 두세요.
의무와 감정의 관계
친구여, 하지만 의무는 감정이 아니랍니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과는 분명하게 구별됩니다. 한 여자를 위해서 자신의 인생을 열정적으로 갖다 바칠 수 있는 남자는 나라를 위해서 냉정하게 죽을 자세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자신에 대해서 말을 많이 하지 말라
예의 범절의 기술을 연마하는 것에서 가장 중요한 규칙 중의 하나는 자기 자신에 대해 절대로 언급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스스로 예를 들어서 한 번 생각해 보세요. 잠시 알고 지내는 사이의 사람들에게 당신이 느낀 고통, 기쁨, 사업 이야기를 해보세요, 그러면 관심 있는 척하다가 금새 무관심해지고 마는데 그러면 어색함이 흐르고, 그래서 초대한 사람이 예의 있게 끼어들어서 대화를 멈추게 하지 않으면 각자가 교묘한 핑계거리를 대고 빠져나간다는 것을 알 것입니다. 한편 호감을 사고 활발하고 재치가 있고, 진정한 친구라는 말을 듣고 싶은가요? 그러면 그들 자신의 얘기를 해 보게 하세요. 그들을 앞으로 나오게 해서, 이맛살을 펴지게 하고, 입술에 미소를 머금게 하면 파티가 끝난 뒤에 모든 찬사가 뒤따를 것입니다. 당신의 양심과 당신의 마음 속으로부터 나오는 소리가 어디에서 비굴한 아첨이 시작되고 또 예의 바른 대화가 그치는지 그 경계선을 가르쳐 줄 것입니다.
젊은이들이 공적인 자라에서 취해야 할 태도에 관해서 한 마디 추가합니다.
성급한 판단은 금물이다
젊은이들은 결정을 성급하게 내리려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바람직한 경우도 있지만 해로움을 주기도 합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과거의 교육 제도는 젊은이들에게 결정권을 주지 않았고 일정 기간 동안 장로들의 감독하에 수습 생활을 거치도록 하였다. 구시대의 귀족들은 화가가 도제 제도를 두고 있듯이, 도제 제도가 시행되었고, 몸과 마음을 다해 스승을 받들어 모시는 어린 시동을 두고 있었습니다.
관용을 베풀고 여유로운 사고를 가져라
오늘날의 젊은이들은 온실에다 몰아넣고, 사상, 행동, 작문에 대해 아주 엄격하게 평가하는 교육을 받고 있는데, 이것은 아직 고기 한 점 썰어보지 않고서 칼질을 하는 것과 같습니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 이런 실수는 하지 마세요. 그러한 성급한 결정은 많은 사람들에게 비난으로 비추어져 은밀한 상처를 넘어서 공개 사과를 요구할지도 모릅니다. 젊은이들은 인생과 인생의 어려움에 대해서 아는 바가 없어서 관용을 베풀 줄 모릅니다. 노평론가는 너그럽고 사려가 깊으나, 젊은 비평가는 아는 것이 무모합니다. 한 사람은 아무 것도 모르는 반면 다른 사람은 모든 것을 다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인간의 모든 행위의 맨 밑바탕에는 결정적인 근거들이 미궁처럼 서로 얽혀 있는데 이에 대해 최종심판을 내릴 권한을 하느님만이 갖고 있습니다. 따라서 오로지 자기 자신에 대해서만 엄격해야 합니다.
멘토-후원자의 중요성
당신의 앞날은 펼쳐져 있습니다. 하지만 이 세상에서는 어느 누구도 도움을 받지 않고서는 성공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저희 아버님 댁을 자주 들리세요. 그 문은 당신에게 열려져 있습니다. 거기에서 맺어진 인간관계와 연결 끈은 여러 방면에서 도움이 될 것입니다.
도전하라!
그러나 저희 어머니에게는 한 치의 양보도 하지 마세요. 왜냐면 그분은 자신에게 지는 사람에게는 무참히 깨버리지만, 누구라도 자신에게 저항하는 사람의 용기를 감탄해 마지 않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마치 강철과도 같습니다. 철강은 두들겨서 단련되면 철과 합쳐지지만, 철이 식을 땐 그보다 경도가 약한 것은 모두 부셔지고 맙니다. 그분을 잘 설득시키세요. 그분이 당신이 마음에 들면 상류 세계의 필수적인 기술을 익힐 수 있도록 다른 귀족가문들에게 당신을 소개시켜 줄 것입니다.
지도층의 조건-듣기, 말하기, 답변하기, 발표 능력
거기에서 정치계에서 필수적인 기술인, 듣기, 말하기, 답변하기, 회합에서 소개하기, 모임에서 물러 나오기를 연마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정확한 언어 구사하기는 내가 그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좋을까요?-비유하자면 사람이 입는 옷이 그 사람의 탁월함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듯이 정확한 언어 구사력이 탁월함을 말해주는 것은 아니지만, 이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재능을 가진 사람일지라도 그들의 세계 안에서 그것이 없으면 절대로 인정 받지 못하는 그 무엇이라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
좋은 매너를 갖추어라
당신은 내가 기대하는 대로 성공하리라는 예감이 드는데 그건 헛된 환상이 아님을 확신할 만큼 나는 당신을 충분히 알고 있습니다. 당신은 매너가 분명하고, 온화한 말투에다, 자부심과 긍지를 갖추고, 어른을 공경하고, 비굴하거나 아첨하지도 않고 예의 바르며, 무엇보다도 신중한 사람이 될 겁니다.
실없는 농담을 하지 말라
유머감각과 재치를 발휘하되 남을 웃길 목적으로 농담은 일절 하지 마세요. 왜냐면 하찮은 인간들은 번뜩이는 재치로 거부감을 자질 수 있고, 그래서 다른 곳에 가서는 경멸조로, “그 사람은 참 웃기는 사람이야!” 이렇게 비꼴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남들이 감히 범접할 수 없을 정도로 위엄을 갖추기 바랍니다.
항상 남의 비위를 맞추려고 하지 말라
항상 남의 비위를 맞추려고 하지 마세요. 남자들 사이의 관계에서는 때로는 무뚝뚝하고 차가운 사람이라는 느낌을 줄 정도로 냉정함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람들은 이런 태도에 분노하지 않습니다. 왜냐면 사람들은 자신을 낮추는 사람을 소중히 여기기 때문입니다. 이런 태도는 당신에게는 남자들과 연관된 불미스런 일이 없다는 점에서 여자들로부터 호감을 사게 될 것입니다.
평판이 나쁜 사람들과는 비록 그럴 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더라도 바로 교제를 끊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사회는 우정에 대한 책임뿐만 아니라 명확하게 반대할 책임까지 지우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당신의 판단은 서두르지 않고 성숙한 자세로 심사숙고하여 내려야 하지만, 일단 결정이 내려 지면 취소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당신이 반감을 나타낸 그 사람들이 반감의 이유를 알게 되면, 당신의 주가는 더욱 치솟을 것입니다. 당신은 동료들 사이에서 돋보이고 부각되어 암묵적인 존경의 대상이 되는 겁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 Noblesse oblige
이제 당신은 호감 가는 젊은 청춘, 남들로부터 주목 받는 우아함, 성공을 약속하는 지혜로 탄탄히 무장했음을 선언합니다. 내가 지금까지 말씀 드린 모든 내용은 단 두 단어로 요약될 수 있는데, 바로 프랑스의 전통적인 격언인 "노블레스 오블리주 Noblesse oblige"[25]입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 원칙과 실제 생활에의 적용
정면 돌파하라
이와 같은 원칙들을 실제 생활에 어떻게 적용해야 하는지 그 부분을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성공의 주된 요인으로 전략이 필요하다는 점 그리고 군중 사이를 뚫고 나아가는 최고의 상책은 사람들을 서로 싸우게 갈라놓고 그 틈을 이용하는 것에 있다는 그런 말들을 자주 들을 겁니다. 그러한 방법은 왕권을 서로 다투는 유력자들은 다른 경쟁자들을 서로 싸우도록 함으로써 경쟁자를 제거할 수 있었던 중세 시대에서는 통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날은 모든 것이 대낮에 이루어지므로 당신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오늘날은 의리 있고 정직한 사람이든 아니면 비방하고 중상모략하고 사기치는 그런 비열한 적수이든지 간에, 일단 경쟁자라면 서로 직접 상대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정직하라, 정직하라, 정직하라
그러나 바로 이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바로 이런 사람들만큼 당신에게 도움을 주는 후원자는 없다는 사실 말입니다. 저들의 적은 바로 자기 자신들입니다. 정직을 무기 삼아 그들에 맞서 싸우면, 저들은 얼마 못 가서 스스로 무너지게 되어 있습니다. 경쟁 상대방 중 의리 있고 정직한 사람들은 당신의 솔직함을 보고 존경을 할 것이고, 이들과 차이가 있다면 서로 조정하여 해결해 낼 수 있을 것이며 (모든 것을 서로의 이해를 조정하고 타협해서 해결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러면 이들은 당신을 도울 것입니다.
적을 너무 두려워하지 말라
적을 만드는 것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정치세계에 들어가면서 거기에 적이 없다면 그건 오히려 더 이상한 것입니다. 하지만 조롱거리가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고, 얕잡아 보일 수 있는 틈을 주지 않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여기서 내가 “조심하고 노력해야 된다”는 단어를 쓴 이유는 파리에서는 사람들이 항상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때로 불가피한 상황에 놓여 있기도 합니다. 사람은 흙탕물이 튕기는 것이나 또는 지붕에서 떨어지는 기왓장을 항상 피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본질과 핵심 문제에 집중하라
도덕 세계에서도 배수로가 있는데 평판을 잃은 사람들은 진흙탕 싸움을 벌일 때 그 흙탕물을 명예로운 사람에게 튀기려고 애를 쓰기도 합니다. 하지만 당신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당신 자신의 원칙에 흔들림이 없다는 것을 단호하게 보여줌으로써 언제나 존경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의견이 서로 충돌할 때, 서로의 의도가 빗나가고 난장판이 될 때는 곧장 핵심 문제로 들어가서 그것에 집중해야 합니다. 절대로 본질적인 문제가 아닌 것을 가지고 싸우지 마세요. 본질적인 것에다 모든 정신을 쏟아 부어야 합니다.
구시대 귀족인 백작이 나폴레옹을 얼마나 증오하고, 저주하고, 범죄자로 형사처벌하기 위해서 재판에 회부하려고 했는지 당신도 잘 알 겁니다. 백작은 나폴레옹에 맞서 프랑스를 배반하고 영국의 첩자로 활동하다 처형된 부르봉 왕조의 앙투앙 공작의 죽음에 대해 책임을 질 것으로 밤낮으로 요구했습니다. 백작이 눈물을 직접 흘린 경우는 그 공작의 죽음과 불행에 대한 것이 유일합니다. 하지만 백작은 나폴레옹을 위대한 장군으로서 존경했고 또 그의 전략을 제게 설명해주곤 했어요.
그 같은 군사전략이 인간의 자기 이익 추구를 둘러싼 전쟁에도 적용되지 않겠습니까? 전투에서 병력과 지형을 경제적으로 활용하여야 하듯이 여기서는 시간을 최대로 활용하여야 하겠지요. 이 점에 대해 잘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여성들은 이런 부분들에 대해 오직 본능과 감정에 의해서 판단하는데 내가 같은 여성으로서 착각에 빠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내가 하나 분명하게 알 수 있는 것은 모든 술책과 모든 속임수는 반드시 탄로가 나고 해를 끼치게 된다는 것입니다. 반면 사람이 진실로 정직함을 확고하게 심어나간다면 어떠한 상황에서도 위험에 처할 가능성은 적습니다.
분쟁은 신속히 해결하라
내 자신의 예를 들자면, 나는 영지 관리를 하는데 있어서 일어나는 모든 문제는 서로 잘 합의해서 즉시 해결하고 그래서 법률 분쟁은 피해야 한다는 백작의 지시와 조건을 충실하게 따랐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백작의 성격에 흥분하기 십상이고 그러면 마음의 병이 되기 마련이니까, 나는 어떤 항의가 들어오면 언제든지 얽힌 매듭의 어려운 부분을 찾아내 붙잡고 상대방에게 “우리 둘이 매듭을 풀거나 아니면 잘라냅시다!”라고 말하며 모든 문제를 신속하게 바로 해결해 버렸습니다.
선행과 보답의 조건
당신이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주고 나서 그에 응당한 사례를 받지 못한 경우가 종종 일어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런 경우에 다른 사람들처럼 불평하거나 모두 배은망덕하다고 단정짓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곧 자화자찬하는 것이겠죠! 또 그것은 세상에 대한 무지를 자인하는 꼴이어서 조금 어리석은 처신으로 여겨집니다.
하지만 당신은 마치 고리대금업자가 돈을 빌려 주듯이 선을 베풀 사람은 아니라고 나는 믿습니다. 그런 식으로 선행을 챙기시겠어요? 아니면 그렇게 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좋은 일을 행하는 것은 꼭 무슨 보답을 바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잊지 마세요. “노블레스 오블리주 Noblesse oblige.”- 이 말을 꼭 명심하세요.
자선의 한계는 어디까지인가?
한편, 사람들이 도저히 갚을 수 없을 만큼 엄청난 일을 무조건 베풀지는 말아요. 만약 그러면, 그런 사람들은 당신에게 완강하게 반대하는 적이 될 것입니다. 파산의 절망감이 크듯이, 너무 부담이 크면 그것도 절망감을 낳을 수 있어서, 무모한 도전이 되고 말 수도 있습니다. 당신은 가능한 다른 사람들로부터 무엇을 받으려고 하지 마세요. 누구의 노예가 되지 말고, 자신의 어려움은 자기 스스로 극복해 내야 합니다.
정치 세계는 일반법칙이 작동되지 않는 예외적이고 특수한 영역인가?
사랑하는 나의 벗이여, 당신도 알다시피 나는 당신에게 삶의 사소한 부분에 대해서 충고의 말을 개진한 것입니다. 정치계에서는 다른 측면이 존재하는데, 개인을 행동을 규율하는 원칙들은 국가적 이익 앞에 양보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최고위직에 오르게 되면, 당신은 마치 하느님처럼, 스스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단독 재판관이 될 것입니다. 그 때는 당신은 더 이상 한 인간이 아니라, 살아 있는 법이 될 것이며, 더 이상 한 개인이 아니라, 국가의 화신이 될 것입니다.
역사의 심판대를 항상 기억하라
하지만 당신이 심판을 내리는 대가로 당신 또한 심판을 받는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훗날 당신은 역사의 심판대 앞에 오르게 될 터인데, 진정으로 위대한 행동과 정신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역사를 통해서 매우 자세하게 배우고 잘 인식하고 있어야 될 것입니다.
4. 프랑스 칼레 도시의 함락과 역사적 진실
4.1. 칼레의 지리적 위치와 역사
4.2. 칼레 성의 함락과 지도층이 역할-역사적 사실-카이저의 희곡-“칼레의 시민”에서 나타난 역사적 허구-
4.3. 허구적 희곡에 의존한 역사 인식과 담론 전개의 위험성
4.4. 전쟁에서 패해 항복사절로 잡혀간 사람이 후세에 들어 영웅으로 추앙받는 이유
칼레의 지리적 위치와 역사
칼레는 영국 해안 도시 도버에서 단지 33km 밖에 떨어져 있지 않는 프랑스의 국경 해안 도시이다. 이들은 서로 반대편의 해안가에서 육안으로 희미하게 관측된다.[26] 영국해협은 바다 밑으로 해저터널 Channel Tunnel이 1988년 착공 1994년 개통되어 영국과 프랑스 사이에 기차가 달리고 있다. 양국간에 해저터널을 건설하여 철도를 놓을 계획이 태동된 시기는 1856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칼레 성의 함락과 지도층이 역할-역사적 사실-카이저의 희곡-“칼레의 시민”에서 나타난 역사적 허구
게오르그 카이저의 희곡 “칼레의 시민”에서는 칼레의 영웅으로 칭송 받아온 유스타슈 드 쌩삐에르 Eustache de Saint-Pierre가 자원한 항복 인질들의 불확실성에 오는 불안과 공포를 덜고 항복 인질로 가는 것에 대한 확신을 주기 위해서 자살을 감행한 것으로 이야기를 구성하였다. 그러나 역사적 고증에 따르면, 그런 희곡의 결말과 같은 사회를 위해 개인적인 생명을 희생했다는 영웅적인 자살의 이야기는 작가적 상상력에 의존한 순전한 거짓이고 완전 허구임이 확인된다. 생 삐에르를 영웅적으로 묘사한 역사상 맨 처음 기록을 살펴 보자. 생 삐에르는 점령군인 영국왕으로부터 사면을 받고, 도시에서 추방된 다른 보통사람들과는 달리 계속 칼레에서 자신의 부를 지키며 살다가 죽었다. 그러나 카이저의 희곡에서는 생 삐에르가 자살을 하고 그러한 자기 희생을 통해서 지도층에게 요구된 의무를 실현했다고 이야기를 구성하였지만, 사실 생 삐에르는 즉시 사면을 받았고, 영국 점령군의 통치하에서도 부를 축적해 나갔던 인물이다.[28] 일부 평자는 역사적인 고증에 근거하여, 심지어 생 삐에르를 애국자가 아니라 오히려 칼레 도시를 팔아 먹은 “반역자 traitor”로 규정하기도 한다.[29][30][31] 6인의 항복 인질은 성문 열쇠를 영국군에게 넘겼다는 사실을 상기하라. 물론 성문의 열쇠를 넘긴 대가로 성안의 사람들은 살려주었다는 항복조건이므로 이들을 반역자로 규정하는 단정적 결론을 내리기가 쉽지 않을지 모르겠으나, 원전으로 여겨졌던 Jean Froissart의 “Chroniques” 역사서에서 새로운 역사 고증에 의해 역사적 사실과는 틀린 부분이 상당히 존재한 것으로 드러난 이상 정확한 역사적 고증 자료에 근거한 반박을 보다 신뢰할 수 있을 것이므로 이러한 비판적 반박은 참고할 만하다.[32] 하지만 보통 사람들의 정서는 영웅적 이야기에 계속 매력을 느낄 것 같다. 영국군은 칼레 성이 함락되자 성안의 사람들을 다른 곳으로 내쫓고, 그 자리에 영국 본국 사람들을 이주시켰다고 한다. 칼레의 경우와 같이 역사상 영국군은 비록 적지를 점령했다고 해서 그곳을 전멸시키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고 하는데 그것은 아마도 그리스시대부터 내려오는 역지사지의 현실적 역사관과 인간관에 기반한 점령 정책을 받아들인 결과인 것 같다.
당시 영국군은, (병자호란에서 청나라가 인조가 농성중인 남한산성을 직접 공격하지 않고, 대신남한산성을 포위하여, 성안의 식량이 떨어질 때까지 장기 고립작전을 편 사실과 같이), 칼레 성을 포위하고 성안의 먹을 식량이 떨어지기를 기다려 고사작전을 전개했다.[33] 칼레 도시가 11개월간을 버틸 수 있었던 까닭은 그때까지 먹을 식량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므로, 마지막 식량이 곧 바닥나고 굶어 죽을 상황에 이르자 항복을 한 것이라고 이해된다.
당시의 희생자는 힘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힘없는 사람들인 어린아이들과 노인들이 선택되어 성밖으로 내던져졌고, 이들은 양국 군대로부터 먹을 식량을 제공받지 못해 굶어 죽어갔다.[34] 칼레의 성 안에서 남은 사람들은 힘있고 건강한 사람들이 다수이었다.
이렇듯, 긴급피난이나 정당방위의 행위가 일어나는 극한적인 상황에서는 힘의 논리가 작동하고, 그런 상황에서는 힘 있는 사람이 힘없는 사람을 희생자로 삼았다는 것은 역사적 사실이고, 이것은 인간사회의 엄연한 현실적 진실로 확인된다. 그러므로 카이저의 희곡 “칼레의 시민”[35]은 이런 역사적 진실을 아예 무시해 버린 역사적인 왜곡에 지나지 않는다. 카이저의 희곡에서 가장 영웅적인 행동을 한 인물로써 도시에서 부유하고 도시 행정을 책임졌던 사회 지도층 인사였던 “생 삐에르”가 자살을 선택함으로써 가장 절박한 순간을 해결해 내는 것으로 이야기의 구도와 결론을 설정했지만, 사실 생 삐에르는 자살하지 않았고, 자유롭게 풀려나 자신의 부와 지위를 지키며 잘 살았다.[36]
이와 같이 역사적 사실을 고려하지 않고서 국가적 담론 형성을 전개해 나갈 때 중요한 문제점을 우리나라의 가상적인 예를 들어서 생각해 보자.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한 시기하고 비슷한 시기의 외국의 역사이어서 나름대로 상상력은 충분히 발휘해서 거짓된 이야기를 전개하는 것이 어떤 제약을 받는 것은 아니라고 해도, 또 그런 이야기가 제 아무리 문학적 가치를 지녔다고 해도, 그것은 마치 이성계장군이 위화도회군 전투에서 죽었다고 가정하고서 이야기를 전개하거나, 또는 이순신장군이 노량 해전에서 전사하지 않았다고 가정하고서 소설을 전개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실제적 가치는 전혀 없을 것이다.
최고 부유층 사람이 희생적 의무를 다한다는 영웅으로 미화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 개념은 거짓된 이야기에 바탕을 두고 만들어진 신화에 불과하다.[37][38] 특히 역사적 진실을 결여한 희곡에 바탕을 두고서 전개한 우리나라에서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개념 즉 사회지도층의 헌신과 희생을 강조하는 견해는 인간사회의 본성을 고려할 때 올바른 해결책으로 받아들여지기 힘들 것 같다.
사회지도층이라는 사람들이 수행한 일이 특별한 일도 아니었고, 또 그들은 의무를 자발적으로 솔선수범한 것도 아니었다
영국과 프랑스간의 “백년 전쟁”과정에서 프랑스 도시 칼레의 시민들이 성문을 굳게 닫고 1년을 저항하다가 식량이 바닥나자 끝내 항복을 하지 않으면 안될 극한 상황에 도달했다. 칼레의 성안에서 맹렬히 저항해 왔던 칼레 시민들은 결국 항복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되자, 영국왕은 포위당한 칼레 성안의 사람들에게 일종의 타협안을 제시였는데 그것은 저항을 귀족 계급과 하층 노예민을 제외한 자유시민계급에 속하는 사람들 중에 6명을 뽑아 칼레 시를 대표하여 항복 사절로 나올 것을 요구하고, 이들 대표자 6명의 목숨을 담보로 나머지 전체 칼레 시민의 목숨은 살려 주겠다는 마치 점령군의 포고령과 같은 조건이었다.[39] 대표자 6인이 항복 사절로 나올 행동수칙은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항복 의식과 별반 다르지 않게, 총기를 소지함이 없이 목에 밧줄을 매고, 복장은 남루한 옷을 걸치고 나올 것이며 또 성문을 열 성문열쇠를 가지고 나와야 된다는 것이 항복 요구 조건이었다. 이러한 항복 조건은 병자호란 때 인조가 청국에 항복할 때 남한산성에서 나와 삼전도에서 3배고두레의 치욕을 당한 “삼전도의 눈물” 항복 의식과 대동소이하다고 여겨지며, 그러한 항복 의식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전쟁에서 패배한 자와 승리한 측 사이에서 관계된 당연한 전범규칙에 속한다고 보여진다.
칼레 시를 대표하여 항복사절로 나간 6인 대표는 영국군과 항복 조건을 협상한 것도 아니었고, 항복 조건 협상이 완료된 후, 단순하게 항복 의식을 행하기 위해서 나갔을 뿐이었다. 이들은 손에 어떤 무기 하나 들지 못하고 맨손으로 적군에 끌려간 항복인질에 불과한데 과연 이들이 어떤 영웅적인 행동을 했을 리는 만무하다고 추측하는 것이 보다 합리적이고 설득력이 있는 것 같다. 다시 강조하지만, 이들 6인 대표는 성이 실질적으로 함락된 순간 단순히 형식적인 항복의식의 한 과정으로써 끌려 나온 인사들이었다. 이들은 그동안 1년간의 버티며 격렬하게 저항해온 소수의 책임자급을 처형하겠다는 점령군의 의지에 따라 만들어진 항복 요구 조건에 따라 나섰던 것이지, 항복 하기 전에 어떤 담판을 시도한 것도 아니었다. 따라서 프랑스의 입장에서 볼 때도, 이들이 어떤 “영웅”적인 행동을 했다고 보기도 힘들 것이다. 다만 전쟁에 패배하여 점령당한 패배자의 심정을 다독거리는 목적에서 자기합리화의 시도는 충분히 예상해 볼 수 있는 정도이고 또 자기 나름이고 그런 역할을 문학 작가(구전이든 실전이든)가 담당했다는 것은 더 자세한 설명을 요하지 않을 것이다.
병자호란의 전쟁에서 패배하여 삼전도에서 혹독한 항복의식의 치욕을 당한 조선국왕과 그 신하들이 과연 영웅적인 행동을 하였다고 볼 수 있는가? (항복조건을 놓고서 서로 의견을 달리한 김상헌과 최명길의 논쟁을 포함하여.)
병자호란에서 항복 의례를 행하는 사람은 최고책임자인 인조이었다. 마찬가지로 프랑스의 경우도 항복 의례는 당연히 칼레 시의 최고행정자가 적장 앞에서 무릎을 끓어야 했음이 마땅하다. 따라서 행정을 담당했던 책임자급에서 항복사절을 나가는 것은 어떤 영웅적인 결단을 요구하는 상황도 아니었다. 다시 강조하지만 패배한 측에서 어떻게 영웅이 나온다는 말인가? 만약 있다면, 전쟁에 패배한 사람들이 새롭게 살아갈 수 있는 마음의 근거를 마련하기 위한 자기 합리화의 심리적 방어기제에 해당할 것이다. 항복 사절로 행정책임자가 나가는 것은 당연한 것인데도 그것을 영웅적인 행동으로 묘사한다면 그것은 청태종에게 항복의례를 직접 행할 수 밖에 없었던 (적군이 요구한 사항을 그대로 따른 것일 뿐인데도) 인조를 두고서 임금님이 직접 나가서 항복하였고 그런 결과 그나마 백성들의 희생을 줄일 수 있었다고 역사를 왜곡 오도하고자 하는 것과 별반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1637년 인조는 “3배9고두 三拜九叩頭”의 항복의식에 따라서 적장인 청태종에서 한 번 절 할 때마다 머리를 3번 땅바닥에 부딪쳐야 했는데, 청태종은 머리가 땅바닥에 부딪히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고 하여 9번도 훨씬 넘게 머리를 땅에 치게 했으며 그래서 인조의 머리에 피가 날 정도로 굴욕과 치욕을 당했다고 전해진다.[40]
항복사절로 스스로 나섰던 칼레 시민의 대표자 6인에 대해서 사후에 영웅적인 각색을 하는 까닭은 우리나라에서 병자호란 때 항복사절로 적국 청국에 잡혀갔던 김상헌과 3학사를 영웅시하는 이유와 동일선상에서 이해될 수 있겠다. 항복사절은 항복사절일 뿐이다. 항복사절의 일행이 제 아무리 고귀한 행동을 했다고 쳐도 그런 행위가 전쟁에서 패배하였다는 사실 그리고 전란으로 인한 혹독한 패배의 후유증을 치유해 낸 것은 아니었다. 만약 전쟁에서 패배하여 국가가 항복한 원죄를 극복할 수 있을 정도의 영웅이었다고 역사적 평가가 달라질 수 있겠지만, 칼레는 항복 후 무려 200년 간이나 영국의 점령 통치하에 있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뒤집을 수는 없을 것이다. 패배 후 자기합리화를 역사적 허구를 동원하여 거짓되게 시도한다면, 전쟁에서 패배한 죄과를 단죄하지 못한 이중의 죄과를 부담하게 되어, 역사적 상처를 치유하는데 오히려 큰 장애물을 설치하고 마는 우를 범하는 것 같다.
허구적 희곡에 의존한 역사 인식과 담론 전개의 위험성
근대 “국가의 성립” 원칙으로서 철학적 기초를 다시 생각해 보자. 사람이 다같이 함께 잘 살아가기 위해서 공동체를 만든 것이 아니었던가? 누가 누구를 죽일 수 있는 기준을 만들 수 있다면 그것은 공동체의 합의에 의해서 일 것이다. 인간인 이상 누구도 목적적인 존재인지 수단으로 여겨서는 아니 된다는 칸트의 정언명령은 일단 접어두고 공리주의 철학의 기초를 생각해 보자. 한 예로 2차 대전 중 일어난 독일군과 프랑스군 사이에서 일어난 가상의 사례를 다룬 “처절한 정원” 소설에서 드는 예를 보자. “우리 네 사람 다 죽음의 구덩이에 빠지느니, 한 사람이 희생하여 나머지 세 사람을 살리는 편이 훨씬 낫지 않겠어?”이란 질문에 대해서 이런 대답을 한다. “죽고 사는 일을 다른 사람의 손에 맡기거나 또는 어떤 사람의 목숨은 다른 어떤 사람보다 지위가 높아서 다른 사람의 목숨보다 더 가치가 있다고 여기고, 그런 생각을 행동으로 옮긴다면 그것은 인간으로서의 모든 존엄성을 포기하는 것이고 또 악에 동조하는 것이다.”[41] 한편 유교적 이념에서는 가족적 온정주의가 정당화되는데, 불가피하게 한 사람을 죽여야 하는데 그 당사자가 자기 자신이거나 자신의 가족이 해당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이러한 극한적인 상황에서 지위와 신분상 힘있고 돈 많은 지도층에 속하는 사람이 자신이 희생자가 되겠다고 스스로 먼저 나서는 모습을 가정해 볼 수 있다. 이 가정의 전제는 지도층에 속하는 사람은 의무감이 특출해서 자기 희생을 무릅쓴다는 것이다. 이러한 피라미드 상위층의 결자해지적 해결책을 게오르그 카이저의 희곡 “칼레의 시민”에서 제시하였다고 본다.[42][43]
전쟁에서 패해 항복사절로 잡혀간 사람이 후세에 들어 영웅으로 추앙받는 이유
우리나라에서는 독일 출신의 작가 카이저가 쓴 “칼레의 시민들” 희곡을 중심으로 노블레스 오블리주 담론을 전개해 나가는 경향이 큰데, 사실 이런 태도는 역사 왜곡에 해당하고, 그리하여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진실된 담론을 형성하는데 장애물로 작용할 위험이 있다. 칼레의 역사 해석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인 생 삐에르가 보인 행적에 대해서 역사적 사실에 기반을 두지 않고, 대신 역사적 허구에 바탕을 둔 희곡 각색 작품에 주로 의존한다면, 그것은 역사의 진실과 소설적 허구를 구별하지 못한 잘못 뿐만 아니라, 진실을 왜곡시켜 특정 목적을 달성하고자 하는 불순한 의도가 개입되었다는 의심을 피하기 힘들 것 같다.
전쟁에서 승리한 에드워드3세 영국왕은 칼레시민 중 하층계급이 아니라 “칼레의 자유시민계급 중에서 6인을 항복 사절로 내보내면 이들만을 처형하고, 칼레 성의 모든 사람들은 살려 주겠다”는 항복 조건을 내걸었다. 이에 칼레의 부유하고 지위가 높던 생 삐에르를 비롯한 다른 돈많은 상인계급의 부유층 인사 6명이 항복 사절로 자진해서 지원하였고, 이들은 성문 앞의 영국군에 항복해 왔다. 이들 항복인질들은 목에 밧줄을 걸고 맨발에다 남루한 옷을 입고 항복했는데, 이런 모습은 전쟁에서 패배한 후 항복할 때의 전형적인 모습이었지, 칼레의 6인만이 보인 특별한 모습은 아니었다고 한다. 이들 항복 인질들은 한 명도 처형되지 않았고, 모두 살아 되돌려 보내졌는데, 영국의 입장에선 이들의 목숨을 살려 준 이유는 영국왕이 자비를 베풀었기 때문이라고 이해하고 있다. 자고이래로 프랑스와 전쟁을 수 없이 벌여왔고, 서로 대항해 온 영국의 입장에서 이들 6인의 항복안질들이 살아 돌아간 것의 주된 이유는 당시 영국왕의 왕비인 임신 중이어서 자비를 베풀어달라고 간청한 결과라고 이해된다. 이런 견해는 버나드 쇼의 짧은 단막극 희곡 “칼레의 시민 6인”을 읽어보면 쉽게 수긍되는 것 같다.
칼레 시는 1347년 8월 4일 영국에 항복한 후 1558년 프랑스가 다시 점령하기까지 210년 동안 영국의 점령 통치하에 놓여 있었다. 이런 역사적 사실을 고려한다면, 점령군 영국왕의 자비에 의해서 항복 인질들이 풀려났다고 보는 견해가 보다 사실에 가까운 것 같다. 항복 조건에 따라 점령군에 인질로 잡혀간 6명이 구체적으로 어떤 대화를 나눴고 어떤 마음의 상태를 가졌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모른다. 남아 있는 역사적인 기록이 적어서 그것을 추축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최초의 기록으로 잘 알려진 Froissart의 기록은 대강의 모습만 그렸을 뿐이고, 6인의 구체적인 모습을 기록한 것 까지는 아니다. 그리고 그의 기록마저 현재는 역사적 사실성이 의문시되고 있기도 하다. 로댕의 “칼레의 시민” 조각 작품에서 나타난 인물 묘사와 다른 희곡 등에서 묘사되고 있는 구체적인 인물의 모습이나 대화 내용은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작가적 상상력에 따른 묘사이다.[44]
5. 로댕의 “칼레의 시민” 조각 작품에 대하여
5.1. 로댕의 “칼레의 시민” 작품 완성 과정
5.2. 로댕의 “칼레의 시민”과 현대적 영웅 modern hero 이미지
5.3. 로댕이 시민의 평등성을 강조한 특별한 이유
5.4. 로댕의 조각에 나타난 “시민 사회”와 “평등 사회”의 개념
로댕의 조각 작품-“칼레의 시민”
우리나라에서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개념을 “사회 지도층의 도덕적 책임과 의무”라고 설명하고 있는 한 그것은 상당히 애매모호하여 사회의 특징과 설명 개념으로써는 중대한 결함을 내포하고 있는 것 같다. “지위가 높을수록 책임의식과 덕망이 높아야 한다”는 애매모호하고 실체가 없는 개념보다, 최소한 “타인을 위해 자기 자신을 희생하는 것 Sacrificing yourself for others”, “투철한 시민 정신 Civic Heroism”, “영웅적인 희생 정신”, “남에게 자선을 베푸는 일” 등을 포함한 보다 구체적인 개념으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할 것 같다. 이런 측면에서 로댕의 “칼레의 시민 대표 6인”조각 동상 작품의 의미를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원천으로써 거론되는 로댕의 “칼레의 시민”을 이해하려면 조각할 당시 프랑스의 당시 국민적 교육의 배경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사실 정신이 로댕이 “칼레의 시민” 조각을 만들 때 그의 기본적인 의도 귀족층이 아닌 “일반 시민 lay people”이 중심이 된 “시민 정신”의 함양에 이바지하고자 함이었다.[45] 로댕은 귀족층을 강조하는 대신 일반 시민을 강조하기 위해서 예로부터 칼레의 지도자로서 높이 추앙 받아 온 생 피에르 1인의 단독 동상 건립 취지에 반대하고 대신 일반 시민 6명 모두를 동등한 지위에 놓고서 칼레의 시민 6명의 조각품을 완성하였다.[46]
로댕의 조각 “칼레의 시민”과 노블레스 오블리주
로댕의 “칼레의 6인” 작품의 의도- 현대적 영웅 modern hero의 의미[47]
근대 이전까지는 칼레의 영웅은 당시 칼레 행정 최고 책임자였던 유수타쉬 드 생 피에르 Eustache de Saint Pierre 1인이 칼레를 구한 영웅으로 대접받아왔지만, 로댕은 1895년 “칼레의 여섯 시민”의 조각 동상을 세우면서, 종래의 역사 인식을 거부하고 대신 행정부 고위 관료가 칼레를 구한 것이 아니라 칼레의 시민 6명이 똑같이 대우받아야 한다는 것6인이 함께 한 동상을 만들었다.[48]
1894년 “칼레의 시민” 동상을 제작한 오귀스트 로댕은 행정부 고위 공직자 또는 사회 지도층의 소수가 영웅으로 대우받는다는 역사의 허점을 파악하고 6명 모두가 다 같은 평형으로 같은 위치에 서 있는 모습으로 조각 동상을 만들었다. 로댕의 조각은 예술작품에 속하기에 자세한 동기는 해석자에 따라 달라질 수 있겠지만, 로댕은 생 피에르 1인을 영웅적인 모습으로 그려내는 칼레의 전통적인 역사 해석 방법에 의문을 품고, 소수 지도층 1인이 아니라 그 대신 평등한 시민들이 모두 애국자가 될 수 있고 또 그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그 의무를 다할 때 부강한 나라를 건설할 수 있다는 새로운 평등한 시민상을 고취시키고자 했다.[49][50]
근대 국가는 자유 시민 계급 “common people”이 주인이 되어 국가를 건설한 “시민 국가 commonweal”이다. 자유시민계급 citizens, common people은 귀족과 반대되는 “부르주아” 계급을 말한다.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기원 사례로 흔히 인용하는 “칼레의 시민들”의 영어 번역은 "The Burghers of Calais"이고, 불어 원어 제목은 “Les Bourgeois de Calais”이다. 영어 “Burghers”은 불어의 “Bourgeois”와 같은 뜻으로, 불어 발음 그대로 “부르주아” 계급에 해당되는데 역사적으로 상인계급 즉 전쟁이나 농업을 통해서 부를 축적한 사람들이 아니라 무역으로 부를 축적한 상인계급을 의미했고 그 이후 “중간 계층 middle class”을 통칭하는 말로 쓰여왔다. 마르크스 공산주의 이론에서 “부르주아”는 “유산계급” 자본가계급을 뜻한다. 마르크스 개념에 익숙한 우리나라 사람들은 “부르주아” 계급을 이해할 때 “중산층”계급으로 이해하기를 약간 힘들어하는 정서가 있지만, 부르주아는 귀족도 아니고 하층노예도 아닌 오늘날의 “중산층”계층에 해당되고, 이를 “자유시민계급”이라고 불렀다. 이들 자유 시민은, 따라서 위로부터 지시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수동적인 위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자발적인 행위를 보다 우선시한다. “칼레의 시민 대표 6인”의 조각작품을 의뢰한 칼레 시의 의도와 과정에 대해서는 잘 연구되어 있다.[51][52]
1884년 칼레 시는 “칼레의 6인” 조각을 유명한 조각가 로댕에게 의뢰했고, 로댕은 1895년에 완성했다. 로댕의 작품은 공모 11년 만인 1895년에야 빛을 보게 되었는데, 영웅적인 느낌을 주는 기존의 동상들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칼레 시청 광장에 바닥돌 위에 받침대도 없이 보통 사람들의 눈높이로 세워졌다. 이 동상은 전통적인 영웅의 일인 동상이 아니라 6인의 동상의 한 군데 함께 모은 새로운 양식으로 세워졌다. 6인 각자의 얼굴 모습은 죽음의 공포 사이에서 인간적인 번민을 가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로댕은 전통적인 영웅에서 느껴지는 공동체를 위한 담대한 자기 희생 정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의연한 용기를 그려내는 것에서 벗어나 다가올 죽음 앞에 두려움을 느끼고 번민하는 보통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려고 했다.[53]
<로댕의 “칼레의 시민” 조각 중 칼레 성문의 열쇠를 갖고 온 Jean d’Aire>
항복인질의 지원자로 나선 이들 6인의 이름을 자원 순서대로 열거하면, 첫 번째 자원자가 Eustace de St. Pierre, 두 번째 Jean Daire, 세 번째 Jacques de Wiessant, 나머지 Pierre de Wiessant, Jean de Fiennes, Andrieu d’Andres 이다. 로댕의 동상 조각품에 나타난 시민 대표 6인에 대한 인물 묘사를 살펴 보면 다음과 같다.
①
Eustace de St. Pierre 유스타슈 드 쌩삐에르 가장 나이가 많고 가장 부유하고 가장 지위가 높은 사람으로 칼레의 영웅으로 알려져 온 인물.
② Jean Daire. 장 대르는 나이 든 원로로서 성문 열쇠를 갖고 있는 사람인데 자세가 똑바르지 않는 다른 5인과는 다르게 자세를 꼿꼿하게 유지하고 눈빛이 살아 있어 굳은 결의와 확신을 나타내고 있는 듯하다. 젊은이 Pierre de Wiessant 삐에르 드 위상 Jean de Fiennes 가 입을 벌리고 있는 모습, 그리고 Jacques de Wiessant 자크 드 위상과 Jean de Fiennes이 손을 들고 제스처를 하는 모습, Andrieu d’Andres buries이 머리를 손으로 감싸고 있는 모습과는 대조 대비된다. 가장 나이가 많고 가장 부유하고 가장 지위가 높은 Eustace de St. Pierre 유스타슈 드 쌩삐에르 그리고 원로이자 성문 열쇠를 갖고 있는 Jean Daire 장 대르는 다른 4인들이 죽음의 공포 앞에서 고통을 느끼고, 주저하고, 확신하지 못하며 불안에 떨고 있는 모습과는 대조 대비된다.
③ Jacques de Wiessant 자크 드 위상
④ Pierre de Wiessant 삐에르 드 위상, 자크와 삐에르는 형제 사이다.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보고 있는데 뒤따라 오는 동생을 독려하는 듯하다.
⑤ Jean de Fiennes 가장 나이가 적은 사람
⑥ Andrieu d’Andres buries 로댕 조각에서 머리를 손으로 감싸고 있는 사람
The Burghers of Calais[54]
로댕의 칼레의 시민 조각 의도
로댕의 “칼레의 시민”-1인 동상이 아니라 6인 동상-시민의 평등성을 강조
우뚝 선 한 명의 지도자로서가 아니라 평등한 여러 시민들이 전체로서 as a whole 합력하여 이룩한 공동체 시민 사회의 위대한 힘
대개 영웅 동상을 세울 때는 한 사람을 위주로 세우는 것이 보통이고 또 우리나라 서원에서 유고 제사를 받드는 선현들의 숫자가 소수로 제한됨을 보더라도 6명이라는 다수의 사람을 영웅으로써 함께 칭송하는 경우는 별로 많지 않은 것 같다. 우리나라 임진왜란에서 순국한 이름없는 용사의 무덤인 “700의총”은 지도자의 이름도 나타나지 않는다.
영국 군대의 침입에 대항해서 1년을 버티다가 결국 칼레 시가 포위 함락당하게 되자 6명의 항복 인물을 누구로 정할 것인지의 항복 상황에서 무슨 “영웅”이 존재할 수 있다는 말인가? 우리가 알고 있는 “영웅”의 칭호는 전정에서 승리한 경우에 나타난다. 이순신 장군이나 트라팔가 해전에서 영국이 프랑스와 스페인의 연합군에 승리를 거둔 넬슨 장군이나 2차대전과 6.25 한국동란에서 승리한 맥아더장군의 경우가 그것을 극명하게 말해주는 사례에 속한다. 영웅은 전쟁에 승리한 경우에 나타난다. 반대로 전쟁에 패배한 측은 치욕적인 항복 의식을 치르고 다수가 노예로 팔려나가는 경우가 일반적인 역사이었다. 청나라의 침입으로 남한산성에 2개월을 못 버티고 (프랑스 칼레는 1년이나 버텼다) 항복하면서 3배9고두레 무릎을 끓은 “삼전도의 눈물”을 흘린 조선시대 병자호란의 패배를 기억해 보자.
평등 사회 개념=시민 사회의 기초
공공교육 기관에서 로댕의 작품을 선호하는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로댕이라는 조각계의 거장다운 이름값뿐만 아니라, 현대 사회의 바람직한 시민상을 길러내고자 하는 시민교육의 목적이 들어 있는 것 같다. 로댕의 “칼레의 시민” 6인 조각 작품은 소수지도층을 영웅으로 칭송하자는 뜻이 있는 것이 아니라, 자유 시민은 모두 평등하고 또 시민 모두가 영예로운 삶을 영위할 수 있다는 평등 사회의 시민상의 이념을 구현시킨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런 로댕의 의도와 세계적인 이해를 감안한다면 우리나라에서 노블레스 오블리주 개념에 대해 사회 지도층의 우월적 의무를 강조하는 것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로댕의 ‘칼레의 시민들’ 조각은 프랑스 칼레에 1895년 6월 3일에 처음 세워진 이후 세계 여러 도시에 흩어져 전시되고 있다.
1. 프랑스 칼레
2. 프랑스 파리 로댕 미술관 the Musée Rodin
3. 영국 런던 빅토리아 타워 가든
4. 스위스 바젤 미술관 the Kunstmuseum
5. 미국 필라델피아 로댕 미술관 the Rodin Museum
6. 미국 워싱턴 the Hirshhorn Museum
7. 미국 워싱턴 the Sculpture Garden
8. 미국 파사데나 the Norton Simon Museum
9. 미국 스탠포드 대학
10. 미국 뉴욕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11. 미국 뉴욕 Brooklyn Museum-New York City
12. 덴마크 코펜하겐 Ny Carlsberg Glyptotek
13. 호주 캔버라 the National Gallery of Australia
14. 벨기에 브뤼셀
15. 이탈리아 베니스
16. 이스라엘 예루살렘 the Israel Museum
17. 일본 도쿄 the National Museum of Western Art
18. 한국 서울 삼성 미술관 (플라토 갤러리)
로댕의 “칼레의 시민들”을 전시하고 곳을 보면 공공 미술관임을 알 수 있는데 공공 미술관이 로댕의 이 작품을 선호하는 이유는 로댕의 조각가로서 유명세뿐만 아니라 그가 추구한 시민 교육 이념이 영향을 미치기도 한 것 같다.
칼레 시청 앞에 세워진 작품은 로댕이 직접 주물을 뜬 1호 작품인데 6인이 각각 떨어져 배치되어 있다. 반면 다른 곳은 한 받침대 위에 조밀하게 배치되어 있고, 6개 각각의 동상을 배치한 모습도 각각 다르다. 로댕의 이 작품은 먼저 점토 형상을 만들어 거푸집을 뜨고 청동주물을 부어 넣어 완성하는 청동주조물이다. 거푸집에 청동주물을 붓기만 하면 똑같은 작품을 복사하여 다수 찍어낼 수 있는 조작 구조물이다. 거푸집을 통해 나온 복사된 작품이 모조품이 아니고 오리지널 작품으로 인정되는 것 같다. 이것은 아마도 저작권자인 프랑스 정부의 허가를 통해서 조각품이 만들어졌기 사실에 있을지도 모른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 전시된 ‘칼레의 시민들’작품이나, 런던, 이스라엘, 호주, 일본 등에 전시된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위와 같은 주조물 복사과정을 통한 작품이다.[55]
한국에는 1999년 문을 연 플라토 갤러리에 전시돼 있다. 이 갤러리는 이건희 삼성 그룹 회장의 부인 홍라희 관장이 삼성생명 건물내에 만든 미술관이다.[56] 공공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는 다른 나라들과는 달리, 한국에서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담론 형성 과정이 삼성 재벌그룹이 주도하고 있다면 한국에서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개념이 왜곡되어 나타나고 있는 이유 중의 하나가 여기에 암시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6. “전관예우” 특권 의식과 “노블레스 오블리주” 개념 충돌
6.1 사회 지도층의 기득권과 의무감에 대한 개념적 이해-특권 의식과 시혜 의식
6.2 전관예우 현상과 노블레스 오블리주 개념 충돌
사회 지도층의 기득권과 특별한 의무감에 대한 개념적 이해
“노블레스 오블리주 Noblesse oblige”라는 말은 우리나라에서 신문 방송 뿐만 아니라 학계 교육계 등 사회전반적으로 자주 거론된다. 국회에서 장관 등 고위공직자 임명에 대한 청문회가 열리고 그에 대한 검증은 “사회지도층 인사”로서 그에 “수반되는 의무를 다했는지” 여부를 추궁하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렇다면, 법을 지키고, 병역과 납세 의무를 다하고, 윤리 도덕적으로, 어떤 결함이 없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면 이런 조건은 사회지도층 인사에게만 해당된다는 뜻일까? 아니면 역으로 질문해 본다면, “의무”를 따진다면 “특권층”이 누리는 “권리”는 당연하다는 것일까?
우리나라에서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말이 “상류층 인사들은 그들이 누리는 특권에 걸맞게 의무를 다해야 한다” 뜻으로 쓰이고 있는데, 이런 개념으로 이해한다면 여기에는 큰 결함이 있다. 우선 우리나라는 “특권층”이 존재하지 않는 민주 공화국이다. 둘째 국방, 납세 의무, 법을 지킬 의무는 모든 국민이 똑같이 지고 있어 사회 지도층 인사에게만 한정될 수 없다. 셋째 사회 도덕적으로 필요한 덕목은 모든 국민에게 다같이 요구되고 또 사람인 이상 누구나 그러한 덕목을 갖출 수 있는 것이지, 사회특권층에게서만 나타날 수 있는 개념이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노블레스 오블리주” 개념에 대해서 대개 “지위가 높을수록 책임의식과 덕망이 높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데, 이와 같이 이해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개념의 허구성을 가장 여실하게 보여 주는 근거 하나는 법조계의 “전관 예우” 문화일 것이다. “전관예우는 반드시 단절해야 하는 법조계의 후진적 악습이요, 공정사회를 좀먹는 대표적 불공정이다”. 이런 결론은 많은 사람들이 동의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악습과 관행적 문화가 뿌리 깊어서 단 시간 내에 혁파되기 어려운 것 같다. 인사청문회에서 밝혀진 사례인데, 청와대 수석이 되기 전 잠시 몇 개월 동안 “7억 원을 받은 것이 전관예우”의 악습과 관행이 아니라면 무엇으로 설명이 될 수 있겠는가? 이런 대표적 악습이 계속되어온 까닭은 전관예우를 원하고 끌고 가는 “수요자”가 있기 때문이다. 사회가 낳은 구조적인 요인 다시 말해 “수요가 있는 한 전관예우는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비관론적 전망을 전혀 무시할 수 없는 현실이다. 사회 구조적인 문제에 대해서 전문가의 개인 윤리적 문제로써 해결하려는 처방 자체가 문제가 있다. 따라서, 그 동안 많은 개선이 이루어졌다고 강변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전관예우는 워낙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는 사회구조적인 문제이어서 땜질식 처방으로는 가시적인 변화를 이끌어 내기에 한계가 있는 것 같다. 제도적 “특권”이 자리잡고 있는 영역에 대해서 개인의 “내면적 도덕”에 기반한 “의무론”으로 처방하고자 한다면, 그것은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문제점을 해결해 낼 수 없다고 보여진다. 이에 대한 논거 하나에 대해서 “키케로의 의무론” 그리고 “매수자 의무 부담 원칙 caveat empor” 글을 참고하라.
전관예우 현상과 노블레스 오블리주
여기에서 잠시 “전관예우”의 문제점을 잠깐 검토해 보자. 그 이유는 전관예우의 문제가 우리나라 법조인의 사고방식과 행동 문화 속에 깊숙이 뿌리 박힌 문제로써 “특권 의식”과 연결되고, 또 국회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드러난 예가 정치적 문제로써 확대되었어도 괄목할만한 가시적 변화나 근본적인 개선이 이뤄지고 있지 못한 상황에서 그것에 대한 깊은 성찰과 연구 시도를 촉구하고자 함이다.
“전관예우”란 무엇인가? “전관”과 ”예우”라는 말 자체에서 유퍼미즘 표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전관예우의 핵심적 내용은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표현될 수 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는 1988년 교도소 탈주범이 벌인 인질사건을 통해서 인구에 회자된 표현으로써 우리나라 법조계의 뿌리깊은 부패와 타락상을 대표적으로 함축한 말이다.
공직자의 지위와 신분을 가진 “전관”은 지도층인사의 핵심군에 속한다. 그러므로 “전관 예우”가 뿌리깊은 한국의 현실이 확인된다면 “노블레스 오블리주” 개념은 한국에서는 어떤 개념으로든 (영미국에서 이해하는 개념이든 프랑스에서 이해되는 개념이든 한국에서 이해되는 개념이든지 간에) 적용되기 힘들 것이다. 사회지도층에 속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가진 것을 희생할 특별한 의무감을 갖고 있다고 가정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개념은 지위에서 오는 특권을 돈으로 교환하는 전관예우의 개념과는 서로 상충되기 때문이다.
사실 전관예우의 문제는 미국 영국 일본 독일 프랑스 등 선진국가에서는 발견되기 힘든 “대단히 한국적인” 현상이라는 것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수긍하고 있다.[57] “전관예우” 법문화는 선진국가의 법조인의 행태하고는 이질감이 크다. 그런데 왜 우리나라에서 전관예우의 문제는 개선되기 힘들까? “유신 헌법”으로 탄생한 유신체제는 선진국가의 정치와 법 제도와는 이질감이 커서 유신체제는 오래지 않아서 무너졌다. 그런데 “전관예우”문제는 아직까지 그토록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을까? 그것은 아마도 돈과 권력을 추구하는 인간본성이 제도적으로 결합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돈과 권력의 문제를 인간 내면적인 도덕성의 측면에서 규율하고자 한다면 그것은 자기 기만일 테고 바로 여기에서 노블레스 오블리주 개념의 한계가 극명하게 노출된다.[58]
국회 인사 청문회에서 오가는 전관예우의 문제에서 확인되는 돈의 액수와 규모는 일반인들에게는 너무 커서 현실감이 별로 크게 느껴지지 않을 것 같다. 대개 사람들은 규모가 너무 큰 경우에는 현실적인 감각과 논리적 사고 사이에 연결이 쉽지 않다. 아마도 이런 측면에서 법조계에 뿌리깊게 자리잡은 전관예우의 문제를 개선할 수 없는 것 같다.
우리 사회에서 “전관예우”의 관계자는 대표적인 “노블레스”집단에 해당된다. 그런 노블레스의 핵심층이 전관예우라는 형태로 돈과 권력를 추구하며 그와 같은 심각한 부패와 타락상을 보여주고 있다면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첫 단추가 잘못 끼어진 것이고, 따라서 이 부분을 해결하지 않고서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에 대한 건설적인 담론을 형성할 수 없을 것이다. 피라미드의 상층부에 해당되는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 어떻게 피라미드 하층을 콘트롤 할 수 있겠는가? 분수대의 낙수물 효과를 생각해 보자. 돈과 권력의 문제를 인간의 내면적 도덕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면 그것은 인간본성을 거부한 자기기만에 다름 아닐 것이다. 돈과 권력은 불이 커져 있는 곳에 몰리는 불나방과 같은 것이므로 부나비 같은 인간을 제어할 수 없을 것이고 따라서 등불을 관리해야 되는 것이다.
전관예우의 문제가 우리 사회의 병리적 문제를 낳고 있는 핵심으로 지목되면서도 여지껏 크게 개선되지 못한 이유는 토크빌의 표현을 빌리자면 법조인들이 돈과 권력의 “노예”가 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노예가 자신에게 구속된 사슬을 스스로 뚫고 나온다는 예를 찾아보기란 인간 경험칙상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이러한 인간본성과 인간 경험칙을 고려한다면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개념이 얼마나 자기기만적 허구에 가까운지를 느낄 수 있으리라.
사회지도층이라면 사회지도층은 소수에 불과한데, 그 소수가 계급적 이해관계를 공유하게 되면, 프랑스혁명처럼 혁명이 일어나지 않고서는 스스로 해결해 낼 수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행정부 소속인 검찰 권력의 비대화가 가장 큰 문제 중의 하나인데, 사법부가 독립되지 못하면 국민들은 절망할 수 밖에 없고 노예로서 숨죽이고 있다가, 절망이 극한적인 상황에 이르면 혁명이 일어나게 된다는 역사의 경고를 잊지 말아야 할 것 같다. 사법부가 권력으로부터 독립되지 못했을 경우 나타날 위험성을 일찍이 경고한 토크빌의 탁견을 참고할 만하다. “… 행정부의 권한이 본질적으로 사법부의 영역인 곳까지 점차 확대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사법부가 행정부의 영역에 개입하는 것은 단지 업무 진행을 지연시키는 정도인데 반해서 행정부가 사법부의 영역에 개입하는 것은 분야에 대한 개입은 시민을 타락시켜서 혁명가인 동시에 노예로 만들어 버린다.”[59]
7. 노블레스 오블리주-품성과 자질은 천성인가 교육되는가?-Nature vs Nurture
7.1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공직자의 “지위”에서 나오는가?
7.2. 공직에 대한 관점과 인식의 차이: 영미국과 대륙국가의 비교
7.3. 누가 사회지도층의 행동을 감시하고 감독하는가?
7.4 공직자의 자기 이익 추구 금지 원칙
7.5 자유지상주의 리버터리안 관점 libertarianism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공직자의 “지위”에서 나오는가?
“법의 지배”가 통하지 않고 대신 “인치”가 통하는 대륙법 국가들의 법문화에서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현상 하나가 사람의 권위와 영향력이 공직의 직함에서 나온다고 여기는 사고방식인 것 같다. “소매에 완장을 차는 것”을 영어로 “getting some stripes on your sleeve”이라고 표현하는데, 우리나라 윤흥길의 소설 “완장”에서 졸지에 소매에 완장을 차는 순간 안하무인격으로 행동하는 권력의 속성을 그려내고 있는데, 이런 모습은 작은 권력의 영역에서 뿐만 아니라 일제시대, 한국동란, 권위주의 억압정권 시대에서 유별나게 나타나듯이 높은 권력의 세계에서도 통용되는 것 같다. 또 문화혁명기의 완장을 차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려대는 공산당 간부의 모습이나 히틀러의 나치 조직에서 소매에 완장을 차고 설쳐대는 전형적인 모습을 상기해 보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권력의 보편성이라고 여겨질 수 있다. 완장이 상징하는 것은 권력은 최고통치자에게서 나온다고 보는 권력을 “인치”로써 이해하기 때문일 것이다. “인치 the rule of man”의 개념은 “법치 the rule of law”의 개념과는 반대되는데 이 두 개념이 대륙법국가와 영미 판례법 국가의 권력에 대한 이해 차이를 설명해 주는 것 같다.
영미국의 공직에 대한 인식과 대륙국가의 공직에 대한 인식의 차이
‘오얏밭에서는 갓끈도 매지 말라’는 우리속담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나라에서는 전관예우 제도가 지금까지 큰 저항 없이 통용되어 왔을까? 더구나 우리나라는 영국처럼 공직자는 민간부분에서 임명되지 않고 평생직인 국가공무원제도를 두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공직자가 민간인이나 다른 외부조직으로부터 금전적인 이익을 받는 것을 당연시 여기는 문화를 형성해 왔을까?
프랑스와 대조적인 영국의 사례를 보자. 영국의 재판관은 민간인에서도 충원된다. 변호사중에서도 임시적으로 법관직을 수행하는 경우도 많다. 더구나 지역유지 민간인이 재판관을 맡는 제도를 공식적으로 유지해 내려오고 있다. 이를 “치안 판사” 등으로 번역하는 “매지스트레이트 Magistrate”, "저스티스 어브 피스 Justice of the peace"가 그것이다. “매지스트레이트 Magistrate”, "JP”는 우리나라 같은 대륙법국가에서 시장 군수가 사법권까지 전권을 행사하던 것과 같은 지위와 권한이 비슷하지만 대륙법국가의 경우는 시장 군수가 주민에 의해서 선출된 것이 아니라 중앙 정부(왕)에서 임명 파견된 사실 그리고 영미법은 행정최고책임자의 결정 즉 매지스트레이트, JP의 행위는 최종적으로 “사법부 법원에서 다시 재심사 대상 judicial review“이 된다는 제도에서 가장 큰 차이가 난다. 우리나라 같은 대륙법국가에 시장군수의 결정이 법원의 재심사 대상이 되지 않는 사실에서 시장 군수(조선시대의 사또)의 결정은 독단적인 면이 있지만 이 경우 행정부내에서 지휘 명령 계통-시장 군수의 경우 도지사-중앙 행정부-에 따라서 재심사 대상이 된다는 종적 관리 측면을 고려한다면 전제적이고 독단적이라고 평가하기는 힘들 것이다. 영미법국가의 “매지스트레이트”, “JP”는 공무원이 아닌 일반 보통사람 “lay"으로서 “자발적으로 voluntary” 참여하고, “무보수”로 일한다. 영미국에서 공직은 고대그리스 민주정의 경우와 같이 기본적으로 공직은 “봉사” 개념으로 여겼다. JP는 자치 지역 공동체의 수준에서 운영되는 모델이고, 중앙정부 차원의 고등법원, 대법원의 업무는 정통 법관이 완전하게 관장하고 책임진다. “일반인 lay people"이란 말은 어떤 공식적인 지위를 갖지 않고 있는 보통사람, 교회의 예를 들자면 성직자가 아닌 “평신도”를 지칭하는 개념인데, 이런 보통사람들이 국가의 가장 공식적이고 가장 공정성을 요하는 법원의 재판관 업무를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대륙법 국가에서는 중앙정부가 공무원을 임명하고 공무원은 임명권자에게 충성의무를 부담하게 만듦으로써 정부가 공무원을 완전히 통제하는 직업공무원 제도가 전통적으로 유지되어 온 반면 영미국은 공무원 신분이 아닌 이들 민간인들이 어떻게 고도의 전문성과 공정성을 요하는 재판관으로 봉사하게 만들고 또 이들의 공정성과 신뢰성을 어떻게 담보할 수가 있었을까? 아마도 직업공무원 제도에 의존한 우리나라 같은 대륙법국가들의 법조문화에서는 상상도 하기 어려운 부분일 것 같다. 한편으로 변호사 제도가 없는 대륙법 국가는 행정부 공무원에게 전적으로 의존할 수 밖에 없었지만 변호사 제도가 존재한 영미국은 대륙법국가의 국가 공무원의 역할이 이들 변호사들이 담당해 왔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미국 혁명으로 미국을 세운 국부들은 거의 다수가 변호사 출신이었다. 영미국인들은 지역공동체 일에 대해서 관심과 지식 등이 상대적으로 매우 높고 또 보통사람들의 지식 수준이 매우 높다는 사실에서 대륙법국가들과 차이가 나는 것 같다. 다시 말해 대륙법국가에서 지식과 행정능력을 갖춘 사람은 소수의 직업공무원에 한정되지만 영미국에서는 보통사람들의 지식수준과 관심이 대륙법국가의 직업공무원 수준에 견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영미국의 재판관 JP들은 “자발적으로 voluntary” 자원하고, 또 “무보수”로 일하기 때문에-(물론 법원 제도의 발전으로 보수를 받고 직업 법관 즉 판사로 임명), 외부의 영향력에 이끌리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양심에 따를 수 있는 것 같다. 이런 민간 재판관에 봉사함으로써 이들이 기대하는 것은 오로지 자신의 양심과 그리고 사회로부터 존경 받는다는 사실 이외에 다른 어떤 무엇이 있다고 보여지지 않는다. 사람의 본성상 “돈과 권력”으로 자유로울 수 있는 요소가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홉스, 로크, 스미스 등의 법철학자의 의견을 참고하여 보면) “양심 (자기 스스로 최선과 최고성을 추구하고자 하는 인간 본성”과 “명예 (타인으로부터 존경과 인정을 받고자 하는 인간본성”일 것 같다. 이와 같은 영국의 재판관 임명 제도를 보면, “지위가 높을수록 의무와 덕망도 높다”는 노블레스 오불리주의 허구성이 더욱 분명해 지는 것 같다.
누가 사회지도층의 행동을 감시하고 감독하는가?
영국은 프랑스나 우리나라와는 달리, 법원 인사에서도 민간과 공직자의 구분이 엄격하지 않고 언제든지 교류가 가능하다. 영국은 직업법관인 판사이건 무보수 재판관(JP)이든 민간인 변호사 중에서 임명되는 제도이기 때문이다. 정치 행정 공무원도 마찬가지로 총선에서 정권이 교체되면 그 다음날 바로 정권이 인수하고 공무원이 바뀌어도 정부 조직은 아무런 동요없이 원활하게 돌아간다. 언제든지 준비되어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처럼 지방도시 시장 지사가 바뀌어도 정권인수위원회를 구성하면서 몇 달씩 준비하는 경우는 상상하기 어렵다. 영국은 민간인이 공직자를 쉽게 맡는 제도인데 왜 우리나라의 “전관예우” 문제라고 나타나지 않고 있으며 그 이유가 무엇일까?
물론 깊이 따지고 들어가면 영미국의 “변호사”는 공식적으로 그리고 법적으로 “법원의 공무원 officer of the court”의 지위를 갖고 있다. 영미국의 변호사는 변호사로서의 자격과 임명 자체가 대법원에 의해서 부여되고, 또 이러한 법적 지위에서 보면 법적으로는 “민간인”, “일반인 lay”의 신분이 아니다. 영미국의 변호사가 “법원의 공무원 officer of the court”이라고 말할 때 법원에서 일정 보수를 받고 일하는 “법원 직원”임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법원의 직원, 법관과 마찬가지로 “진실을 전달하고 진실을 추구할 직업적인 의무”를 부담하고 있다는 “법적 의미”에서 “법원 공무원”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영미국의 변호사는 “법원의 공무원”에 속하기 때문에 법원이 최종적으로 변호사의 행동을 감독하고 규율한다. 따라서 변호사 중에서 판검사가 임용되는 영미국의 법관 임명 제도를 우리나라의 “직업 공무원”제도의 시각에서 단순하게 평가하기란 쉽지 않다. 결국 영미국에서는 법원이 최종적으로 공직자의 행동과 업무 평가를 책임지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나라에서 나타나는 “전관예우”의 문제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한편 우리나라에서 변호사는 “법원의 공무원”의 지위와 신분이 아님을 참고하기 바란다. 대륙법 국가는 행정부 우위 체제이어서 변호사를 규율하는 책임이 사법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에 대한 책임은 행정부 소속인 법무부가 관장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판검사가 “옷만 벗으면” 그 순간부터 “민간인”으로 취급되는데 이런 부분은 영미국에서 공직자의 책임을 다루는 법과는 큰 차이점을 보인다. (비리를 저지른 판검사도 “의원면직”만 되면 어떻게 더 이상 처벌할 수 없다는 그런 괴이한 공무원 특별 대우법이 통용되고 있다. 비리에 대한 책임 추궁이 공무원의 지위와 신분 여부하고 무슨 관련이 있다는 반박근거로써 영국의 헌법학의 권위자 다이시가 말한 대로 영미국인 법조인 시각에서는 이해하기가 어렵다는 뜻에서 괴이한 표현을 쓴다.)
공직자의 자기 이익 추구 금지 원칙
이와 같이, “지위가 높으면 의무와 덕망도 높다”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개념이 여지없이 파괴되고 마는 분명한 사례를 우리나라의 “전관예우”의 제도와 민간 변호사의 행동까지를 법원이 통제하는 영미국의 높은 청렴성 문화를 비교해서 살펴보았다. 영국에서 민간인이 법원의 재판관으로서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자격 기준을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 간단하게 열거하고자 한다. 노블레스 오블리주 개념을 형성하는 기준과 요소가 무엇인지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리라.
“공직자의 자기 이익 추구 금지 원칙: 공직자는 오로지 공익의 관점에서 공공의 이익 public interest을 위해서 업무를 수행해야 한다. 공직자는 자신이나 가족 친지에게 금전적인 이익이나 어떤 반대급부를 주고자 하는 목적에서 공직을 수행할 수 없다. 공직자애게 요구되는 높은 청렴도: 공직자는 공직을 수행하는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외부의 사람이나 다른 조직으로부터 어떠한 금전적인 이익이나 어떤 반대급부를 받아서는 아니 된다.”[60]
1. 훌륭한 인격과 성품을 갖추고, 사회에서 존경을 받으며, 진실성과 신뢰성이 확보되고, 가족이나 친지를 포함하여 공과 사적으로 어떤 이해 관계도 얽혀있지 않고 서로 충돌하는 일이 없어, 법원의 공정성을 실추할만한 어떤 의심도 들 수 없을 만큼 청렴성이 확실한 사람
2. 다른 관계자들과 의사 소통 능력이 뛰어나고, 독해력과 이해 판단력이 높고 사리 변별력이 특출하여 해당 사건을 증거와 법적 논박을 통하여 정확하게 처리할 수 있는 문제해결능력이 뛰어난 사람
3. 법질서 확립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지역사회 공동체의 사정과 기대수준에 정통하며, 사회의 배려가 필요한 약자 계층에 대한 이해력이 높은 사회 공감능력이 높은 사람
4. 일을 독단적으로 처리하지 않고 원만하게 처리할 수 있는 능력, 다른 사람의 주장과 비판을 귀담아 듣고 받아들일 줄 아는 공정성과 성숙한 판단력을 갖춘 사람
5. 편견과 선입관에 얽매이지 않고, 논리적인 사고력에 따라 양당사자의 주장을 이해하고,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는 뛰어난 판단능력을 가진 사람
6. 필요할 때 언제든지 응할 수 있는 높은 헌신감을 갖춘 사람.[61]
타고난 신분과 공직으로 얻은 지위가 특권층을 형성하는가?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고귀하게 태어난 사람은 고귀하게 행동해야 한다. The nobly born must nobly do.”- 이렇게 번역하고 있다. 여기서 “고귀하게 태어난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은수저를 들고 태어난 귀족 신분을 갖춘 사람을 말한다. 우리말에서 “고귀하다”는 말은 인격의 높음을 의미하지만, 영어의 “noble”이란 정해진 계급사회에서 출생 때 신분이 이미 정해진 것을 뜻한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노블레스란 말에서 보여지다시피, 귀족 신분이 존재한 유럽과 같은 계급 사회를 전제하고 쓰는 말이다. 그런데 우리나라가 신분사회인가? 사회학적으로 구분될 수 있을 지 모르지만 법적으로 존재하지 않아야 된다. 법적으로 왕실과 귀족계층이 존재하는 대다수의 유럽국가하고는 달리 미국과 한국은 귀족계급이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사회학적으로 귀족층을 오늘날의 개념으로 구분한다면 돈과 권력과 소유한 사회 상류층에 속하는 특수층으로 동일시할 수 있을 것이다. 사농공상의 차별적 신분 사회였던 조선시대 양반사회에서 소득의 주 원천인 전답과 토지 그리고 노비를 소유한 양반지주 가문을 귀족층으로 구분할 것이고 그런 상류지배계층은 오늘날도 사회경제적으로 확연히 존재한다. “재벌” 그룹과 그 가문이 거기에 속한다.
하지만 사회 지도층이 현실적으로 존재한다고 해서 “노블레스 오블리주”란 말을 “사회 지도층이 솔선수범해서 책임과 의무를 다해야 한다는 것”을 별도로 강조할 필요가 있을까? 의무가 있다는 것은 권리가 먼저 존재하고 그에 대응해서 나타나는 상응 개념이다. 만약 누구에게 의무를 부담하라고 말할 경우 그가 누리는 권리가 있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 권원이론 entitlement theory을 살펴볼 필요도 없이, 천부인권론이나 “권리 없이 의무 없다”는 법언은 더 이상 반박하기 어려울 것이다. 권원 entitlement이란 정당한 자격을 가지는 것 즉 마땅한 자기소유권을 갖는 자격이 있다는 뜻이다. 또한 하늘이 있고 땅이 있다는 동양적 음양의 이치나, 동전의 양면과 야누스적 본성을 이해한다면 의무를 강조하는 곳에 권리가 숨어 있다는 것은 그리 어려운 분석 능력을 필요치 않을 것이다. 사회 지도층으로 올라가지 못한 다른 하위층 사람들은 지위와 부를 가지지 못해서 공직자를 접근할 여력 자체가 없으므로 부패와 타락이 원천적으로 차단되어 있다. 그러므로 의무를 말하기 전에 지도층이 누리는 권리, 특혜를 밝힌다면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할지 궁금하다. 순전한 추측으로 말하는 것이 허용된다면, 아마도 프랑스 혁명이 다시 일어날 상황이지 않을까? 이런 추측은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이 아니라, 사실 미국에서 제2혁명이 일어날 때가 된 것 같이 느끼는 사람들의 숫자가 우리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많다는 점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에서 “노블레스 오블리주”란 개념을 “사회 지도층이 솔선수범해서 책임과 의무를 다해야 한다는 것”을 별도로 강조할 하등의 이유와 필요가 있다고 보인다. 문제의 초점은 지도층의 의무가 아니라, 부와 권력을 가진 지도층이 누리는 그들의 특권 privilege에 맞추어져야 할 것이다.
자유지상주의 libertarianism, 리버터리안 libertarian
“자유지상주의”라고 번역되는 “리버터리안”의 입장은 중앙권력의 비대화를 경계하고 (국가권력이 비대해지면 상대적으로 개인의 권리가 축소되는 당연하다)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 개인시민 사회의 역할을 강조하는 데 있다. 미국 혁명의 도화선이 되었던 홍차 무역 관세에 대한 역사적 사건을 소재로 정당의 명칭을 사용하고 있는 미국 극우보수정당 “티 파티”의 부상은 이런 측면에서 법찰학자 노직의 견해하고 연결된다. 미국에서 다시 혁명이 일어나야 할 때라고 여기는 사람들의 생각은 여론조사[62]로써 확인되고 따라서 그 실체가 분명함을 알 수 있다. 상황이라는 주장을 펼치고 있기도 하다. 아마도 이런 극보수우파의 시각을 가진 사람들을 리버터리언으로 부른데 이러한 견해가 일부층에게 상당한 호소력으로 받아들여지고 있기도 하다.
리버터리언의 시각에서 보지 않고 대신 영미국의 정치와 법제도 문화와 프랑스의 그것을 비교 분석하여 역사적 유명 인물로 남은 프랑스 판사 토크빌의 견해까지 올라가 보면 더욱 설득력이 큰 것 같다. 토크빌은 이렇게 말했다. “…행정부의 권한이 본질적으로 사법적인 영역으로 점차 확대되는 현상을 목도하고 있다. 권력의 융합이 법원쪽에서 이루어질 때는 용납할 수 없지만 행정부쪽에서 이루어진다면 하등 문제될 게 없다는 식의 관념이 횡행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식의 상황 전개는 결코 바람직스럽지 못하다. 왜냐하면 법원이 정부의 영역에 개입하는 것은 단지 업무의 원활한 수행을 방해할 뿐이지만 행정부의 사법 분야에 대한 개입은 시민을 타락시켜서 혁명가인 동시에 노예로 만들어 버리기 때문이다.”
토크빌이 우려한 대로 나타난 우리나라의 “검찰 공화국”이라는 오명이 통용되는 현실을 직시한다면, 토크빌의 말을 빌려서 표현하여, 우리나라는 “행정부의 사법 분야에 대한 개입은 시민을 타락시켜서 혁명가인 동시에 노예로 만들어” 버렸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나라에는 “혁명가”의 존재는 보이지 않으니 거의 다수가 “노예로 만들어진” 상태라고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런 단적인 견해를 반박하고 부인할 사람은 과연 몇 명이나 될까? 만약 우리나라에서 혁명가적 생각이 적다면 아마도 그것은 모두가 “노예” 상태에 놓여 있기 때문이 아닐까? 물론 나의 이런 지적은 토크빌의 현명한 분석에 동조하여 분석하면 그런 결과가 나온다는 것이지, 한국의 현실을 실증적으로 분석한 의견을 말하는 것은 아니므로 너무 비관적으로 해석할 필요는 없다고 말하겠다.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개념이 국방, 납세 의무, 법을 지킬 의무를 다해야 한다는 뜻이라면 사회지도층이 나서서 솔선수범해야 할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다. 왜냐면 책임과 의무는 사회지도층에 한정되는 것이 국민 모두 누구나 의무를 다해야 되는 일반적인 개념이기 때문이다. 책임과 의무를 다해는 데에 있어서 차별이 있을 수가 없다. 만약 고귀하게 태어난 신분상의 귀족층만이 고귀한 행동을 해야 한다는 뜻이라면 반대로 신분이 미천하게 태어난 사람이라면 고귀한 행동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인가?
책임과 의무는 누구나 다해야 하는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개념에 해당되기에 이것을 가지고서 특별하게 구분하려는 태도는 잘못되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하나의 단적인 예를 들어보자. 부과된 세금 납부는 누구나 내야하고 부과된 병역 의무는 누구나 예외 없이 수행하는 일이다. 그런데 왜 병역과 납세 등 법을 지키는 일에 사회지도층이 솔선수범해야 된다는 것인가? 그런 의무는 누구나 예외 없이 똑같이 수행하는 일이므로 누가 앞장설 필요 자체가 없는 성격이다.
책임과 의무를 다해야 한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다같이 해당될 덕목이고, 어떤 예외적인 구별을 강조할 이유가 없다. 그런데 왜 굳이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개념을 강조하는 것일까? 부와 권력을 독점한 사회 지도층 인사들의 특권과 특혜가 지나쳐서 “의무”를 강조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반동적 현상일까? 어차피 신분사회라면, 그나마 “떡고물”이나 챙기는 것이 보다 낫고, “시혜”와 은총을 기대하는 것이 보다 현실적으로 나은 대책이라는 보는 것일까?
다시 한번 분명하게 짚고 넘어가자. 병역과 세금은 전국민이 부담한다. 마땅히 내야 할 세금인데 그런 세금을 자진해서 납부한다고 해서 그게 무슨 특별하게 덕망 있다고 칭송받을 덕목이란 말인가? 사람들은 세금을 만기에 내지 않으면 벌금을 물기 때문에 제때에 내는 것이다. 세금을 일찍 낸다고 해서 무슨 혜택이 주어지는 것도 아니다. 병역 의무는 국민 모두가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기 때문에 법에 따라서 병역 의무를 다하는 것이지, 사회지도층은 특별하게 취급되어서 병역의무를 이행하는 것이 특별하게 칭찬받아야 하는 덕목이 아니다. 이런 측면에서 우리나라에서 노블레스 오블리주 개념에 대한 이해가 분명히 잘못되어 있다는 느낌을 떨칠 수가 없다. 이에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개념을 보다 근본적으로 따져 들어가 보자.
8. 법치 vs 인치
8.1 영국과 프랑스의 법 문화 차이- 법치 vs 인치
8.2. 법의 지배-1요소-사법부의 절대적인 우위 absolute supremacy of the ordinary law
8.3. 법의 지배–2요소-법 앞에 만인 평등 equality before the law
8.4. 법의 지배–3요소-헌법은 사법부 판례로 축적된 결과물 a judge-made constitution
영국과 프랑스의 법문화 비교방법론-법치 vs 인치
우리나라에서 혹자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개념을 설명하면서 영국과 미국의 사례를 프랑스와 비교해서 제기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에서도 비교방법론적으로 중대한 결함이 발견된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프랑스 사회에서 제시된 개념이고, 영미국에서의 동일한 개념이 논해지지 않기 때문이다. 영국과 미국의 지도층 자제들이 전쟁에 참가하여 전사자가 많았다는 통계적 비교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개념을 설명하는 논거가 되기 어렵다. 다이시가 밝힌 바대로, 영미국에서 지배 통용되는 사고 방식과 개념은 “누구나 법 앞에서 평등하다”는 “평등 사회 egalitarian society” 개념이다. 만약 영미국에서 그와 같은 지도층 인사의 전사자 비교 통계 수치가 의미가 있다면, 그것은 모두가 법 앞에 평등하다는 일반법원칙에서 나오는 결과이지,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개념으로 설명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보여진다. 사실 그런 결과에 대해 영미국에서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개념을 쓰는 경우는 찾아 보기 어렵기도 하고, 또 직접적으로 들어보지를 못했다. 필자는 법 앞에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는 영미법상의 평등 개념이 프랑스의 특별 행정법의 개념과는 차이가 난다는 다이시의 주장에 크게 공감한다.
“법의 지배”와 노블레스 오블리주 개념
“법의 지배 the rule of law”란 어떤 의미인가?
법의 지배 원칙은 사법부 독립의 원칙 등의 개념과 같이 영미법의 전통적인 법 개념에 따른 불문율로써 당연히 헌법에 포함되어 있다고 인정된다.[63] 따라서 명시적으로 규정할 필요도 없이 당연한 헌법상의 원칙에 속하기 때문에 이것은 기본적인 헌법 원칙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법의 지배’ 원칙은 대륙법 국가에서의 ‘법치 국가 Rechtstaat’ 개념에 가장 가까운 것 같으나 그것과 동일하게 대체되는 단어는 아닌 것 같다. 중국이나 조선시대는 영미국과 같은 독립된 법원과 변호사 제도가 존재한 것은 아니었지만 조선은 법률에 따라 국사를 진행한 대륙법국가에서 이해하는 대로 엄연한 “법치국가”였다고 보는 견해가 말해주듯이, “법의 지배”와 “법치국가”의 개념은 서로 구별된다. 유럽연합 조약 Treaty on European Union 6조는 “유럽연합은 회원국에 공통된 원칙인 자유, 민주주의, 인권과 기본적인 자유권에 대한 존중, 법의 지배라는 원칙에 기초한다”고 규정하고 이를 회원국 모두에게 법적으로 준수할 의무를 부여하고 있다.[64]
2005년 9월 국제변호사협회 집행위원회 결의문에서 “법의 지배는 문명 사회의 토대를 이룬다. 법의 지배는 모두가 평등하게 접근할 수 있는 투명한 절차를 확립한다. 그것은 사람들을 자유롭게 함과 동시에 보호해 주는 원칙들을 준수하도록 한다.”라고 말하고는 있지만 꼭 집어서 무엇인지를 말하고 있지 않다. ‘법의 지배’에 대한 정의를 내리려 시도하는 대신에 법이 지배를 구성하는 원리들을 나열하였는데 독립적이고 중립적인 사법부, 무죄 추정, 공평한 공개 재판을 지체 없이 받을 권리 등이 법의 지배 개념에 포함되어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법적 개념에 대해 정의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법적 개념을 시도한 영국의 빙햄 대법관의 설명을 인용하는 것이 보다 나을 것 같다. 그는 먼저 법적 개념 시도의 어려움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법률을 만드는 사람들은 법조문에 사용되는 용어를 정확히 정의하여 오해의 소지나 법원이 잘못 해석할 여지를 없애려고 한다. … 중요한 개념을 정의하는 규정이 있을 것이라고 예상해봄 직하다. 그런데 그런 규정은 없다. 법의 지배에 대한 별도의 정의 규정을 두지 않는 것은 다이시 교수의 정의가 별다른 반박없이 보편적으로 수용되어 부연설명이 필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그렇지는 아닐 것이다. 법률안을 작성하는 사람들도 법에 정통한 전문가들로, 법의 지배에 대하여 다이시가 내린 정의에 회의를 표명하는 스승들 밑에서 공부했을 것이다. 그들이 법의 지배에 대한 정의 규정을 두지 않은 것은 법의 지배를 간명하게 정의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는 점을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 정의 규정을 두는 대신 법의 지배가 무슨 뜻인지를 규정해야 하는 사건이 제기되면 법관이 이 문제를 판결하도록 맡겨두기로 결정하였다고 보는 것이 훨씬 나을 것이다. 이렇게 하면 법의 지배에 대한 정의가 추상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 사건과 관련되어 형성될 수 있고 시간이 흐르며 새롭게 등장하는 견해나 상황에 조응하여 진화할 수 있다. 법의 지배에 관한 기존의 헌법적 원칙이 제정법률에 명시적으로 규정되면 소송당사자자들이 이 규정을 원용하는 것은 시간문제다.”[65]
빙햄은 이런 단서를 붙이고서 ‘법의 지배’가 무엇을 뜻하는지를 다음과 같이 개념 정의하였다. “법의 지배라는 헌법 원칙의 핵심은 모든 개인과 단체(공공기관과 사적 단체를 포함하여)는 공개적이고 또 법제정 이후에 효력이 발생되는 제정법에 따라 법원에서 공개적으로 집행되는 법에 구속되고 그런 법의 혜택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에 있다”.[66] 빙햄은 8가지 요소로 법의 지배 원칙을 설명했다.[67] 빙햄의 설명에 따르면 법의 지배의 가장 핵심은 실제적으로 법을 집행하는 사법부의 독립에 있다. 사법부는 절차적 정의를 그 핵심으로 한다는 점에서 사법부와 행정부의 가장 큰 차이점이 갈라진다. 판례법 국가들에서 대법원이 국민의 기본권을 지켜내는 최후의 보루라는 인식은 그들의 사법 역사를 통해서 확인되고 있다.
만약 법원이 나라를 휩쓸고 있는 당시의 정치사회적인 상황에 굴복하여 다수가 지배하는 행정부의 독단적인 권력 행사에 굴복한다면 ‘법의 지배’[68] 제도와 전통은 세워질 수 없었을 것이다. 이와 같이 선례의 중요성과 법적 의의는 사후적인 부검에서 그 의의가 찾아지는 것이 아니라, 법의 가장 핵심적인 원칙이 지켜져야 할 필요성이 큰 가장 중요한 순간에서 실제로 적용되고 집행되었느냐의 여부 즉 당시의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행동하고 결단했느냐의 문제로써 판단되어야 할 것 같다.
이와 같이 법의 지배에 대한 법적 개념은 판례법국가와 대륙법 국가의 정치적 역사적 맥락을 통해서 이해하지 않으면 그 개념을 제대로 파악하기 힘들 것이다. ‘법의 지배’에 관한 개념을 맨 처음 본격적으로 정립해 냈던 다이시 Dicey 옥스포드대 교수의 “헌법학 개론”[69]에서 설명한 ‘법의 지배’ [70]의 개념을 이해하는 것이 요구된다고 여겨서 다음과 같이 해당 부분을 번역한다.[71]
“영국 헌법의 특징으로써 ‘법의 지배’ 원칙의 절대성을 들고 있는데 이 절대적인 법의 지배 원칙이라는 하나의 표현에는 최소한 세 가지의 상호 연관적이면서 뚜렷이 구별되는 의미가 들어 있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72]
법의 지배-1요소-일반법의 절대적인 우위 absolute supremacy of the ordinary law
“법의 지배”란 첫째, 법을 위반하였다는 것이 보통 법원에서 일반적인 법원칙과 법적 절차에 의하여 분명하게 판명되지 않는 한 어느 누구도 형사처벌을 받을 수 없고, 또는 신체나 재산상의 손해를 받는 것은 불법이다는 원칙이다. 이런 의미의 법의 지배 원칙은 광범위하고, 자의적이며, 재량적인 박탈권을 명령계통에 있는 공무원이 행사하는 행정부 통치 체제하고는 대조되는 개념이다.[73]
법의 지배 –2요소-법 앞에 만인 평등 equality before the law
“법의 지배”의 두 번째 의미는 어느 누구도 법 위에 군림할 수 없다는 원칙을 말할 뿐만 아니라 또 어떤 지위나 신분을 막론하고 누구든지 일반법에 따라야 하고 Everyone is subject to the law 또 재판권의 행사는 보통법원에 귀속된다는 것을 뜻한다. “법이 사람 위에 존재한다 Be you never so high, the law is above you."[74]
영국에서는 법 앞의 만인 평등이라는 사상이나 또는 일반법원에 의해 집행되는 하나의 법체계에 모든 계층이 보편적으로 기속된다는 원칙은 최고의 원칙으로 자리잡고 있다.[75] 영국의 모든 공무원-위로는 수상에서 아래로는 순경이나 말단 세무공무원에 이르기까지-은 법적 정당성이 결여된 모든 행위에 관하여 일반시민과 마찬가지로 법적 책임을 지게 된다. 법원 판례를 보면 공무원이 공무 수행 중에 행한 행위였지만 정당한 권한을 넘는 경우에는 해당 공무원은 재판에 회부되었고 (공무원 신분이 아닌) 개인 자격으로 처벌을 받거나 손해 배상의 책임을 진 사건들로 가득 차 있다. 식민지 총독과 장관, 군장교, 상관의 명령을 수행한 하부 관료에 이르기까지 모든 공무원은 법이 부여한 권한을 넘는 행위에 대해서 일반 사인과 마찬가지로 책임을 진다.[76]
법의 지배 –3요소-헌법은 국가의 일반법의 결과물 a judge-made constitution
셋째, 영국 헌법 밑바탕에 법의 지배의 원칙이 스며들어 있다고 말할 수 있는데 그 근거는 헌법상의 일반원칙(예컨대 개인의 자유권이나 집회참가의 권리 같은)은 법원에 제기된 구체적인 사건들에서 일반인의 권리를 선언한 법원 판결의 결과물로 모두가 누리고 있다는 점에 있다. 반면 다수의 외국 헌법은 이와 같은 개인 기본권에 대한 보장이 확보된 것은 헌법의 일반원칙으로부터 도출된 결과로 보인다.[77][78]
…
정부 형태는 인간의 의지나 힘에 의한 산물이라고는 간주할 수 없는 사람들의 생명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어 자연 발생적으로 성장해 온 것이라는 이론은 비록 정연하지 못하고 부정확한 형태이긴 하지만, 어떤 정치적 사건은(영국 헌법도 여기에 포함된다) 어느 한 순간의 결단에 의해 갑자기 일어난 것도 아니고, 또 의회가 제정한 법률의 결과도 아니며, 개인들의 권리 확보를 위하여 법원에서 진행된 (일반적인 의미로) 법정 투쟁의 결실이라는 사실을 밝혀 준다. 간단히 말해서, 영국 헌법은 법원의 판사가 만든 헌법이고, 따라서 헌법의 표면에 판례법의 장단점을 모두 갖고 있다.[79]
…
영국에서 개인의 자유권은 헌법의 일부분을 이루고 있는데, 그것은 인신보호법과 같이 법원의 판결에 의해서 보장되고, 확대 적용되거나 확정되기 때문이다.”[80]
(다이시가 결론적으로 재정리한 부분을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이와 같이 헌법의 기본 원칙을 구성하는 ‘법의 지배’ 원칙은 세 가지 의미를 갖고 있거나 세가지 다른 관점에서 파악할 수 있다.
첫째, 법의 지배는 자의적 권력의 행사와는 대립되는 의미로써 일반법의 절대적인 최고위치와 우월성을 의미하고 이에 따라 행정부의 자의성, 비상대권, 광범위한 재량권의 존재를 부정한다. 영국은 법에 의해서 통치되는데 이는 영국인은 오로지 법을 위반한 경우에만 처벌될 수는 있으며 법 이외의 다른 어떤 것에 의해서 처벌될 수 없다는 것이다.
둘째, 법의 지배는 법 앞의 만인 평등, 또는 일반법원에 의해 집행되는 일반 법에 모든 계층이 똑같이 동등하게 따른다는 의미를 갖는다. 이런 의미의 ‘법의 지배’는 일반시민에게 적용되는 법에의 복종 의무나 또는 일반 법원의 관할권으로부터 공무원이나 특정인이 면책될 수 있다는 이론을 거부한다. 영국에는 프랑스의 “행정법”이나 “행정재판소”에 상응하는 개념이 존재하기 어렵다. 프랑스 같은 나라들이 갖고 있는 “행정법”이라는 개념의 밑바탕에는 정부나 정부 공무원이 관련된 사건이나 분쟁은 일반법원의 영역을 벗어나는 것이고, 따라서 특별 기관이나 다른 행정 기관에 의해서 다루어져야 한다는 사고가 들어 있다. 이런 개념은 영국의 법에는 전혀 알려진 바 없고 진실로 영국의 전통과 관습에 근본적으로 들어맞지 않는다.
셋째, ‘법의 지배’는 법적 형식의 헌법 즉 다른 국가들은 기본적으로 성문 헌법 규정에서 나오는 법원칙들이 영국에서는 개인 기본권의 원천적 소스가 아니라 일반법원에 의해서 규정되고 집행된 결과물이라는 사실을 말해주는 공식으로써 사용된다. 한 마디로, 법원과 의회에 의해 형성된 일반 사법상의 원칙들이 국가와 국가공무원의 지위를 판단할 때에도 확대 적용되는데, 이는 곧 헌법은 하나의 일반 법의 결과물이라는 것을 말해 준다.”[81]
9. 계급과 국가 개념
9.1. 왜 국가간 그리고 부족간에 우열성패가 나타나고 흥망성쇠의 역사가 반복되는가?-다윈의 자연도태설
9.2. 영화 “위대한 환상 Grand Illusion”-자기 이익 추구 본성과 귀족 문화의 모순
9.3. “노블레스 오블리주 Noblesse oblige”는 로마 시대 라틴어 어휘인가?
왜 국가간 부족간에 성패가 나타나고 흥망성쇠의 역사가 나타나는가?-다윈의 자연도태설
다원은 인간은 민족적 단위로 살아가기에 도덕성이 우수한 민족이 살아남는다고 주장했다. 다윈이 말하기로, 성 도덕이 타락한 여자는 자녀를 출산하지 못하고, 성 윤리가 타락한 남자는 결혼은 못한다. 이런 인간들은 병에 걸리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런 다원의 견해를 일언지하에 무시될 수 없을 것이다. 건강을 제도적으로 챙겨주고 진수성찬의 음식을 먹었던 조선 왕들의 평균 수명이 상대적으로 크게 낮은 이유 하나를 성 도덕이 문란했기 때문이라고 보는 견해는 상당히 설득력이 있다. 다시 말하지만, 개인 도덕성의 타락은 개인 자신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다원이 주장한 바대로, 도덕성이 떨어지는 민족은 도덕성이 보다 우수한 민족에게 밀려나게 되고 결국 멸망하는 사실이 중요하게 파악되어야 한다. 사회의 건강성과 우수성은 개인 혼자만의 우월한 도덕성에서 찾아지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적으로 as a whole 으로 도덕성이 우수해야 의미가 있다는 점을 다원은 핵심적으로 지적해 내었다.
다윈의 “인간의 유래와 성 선택” 해당 구절을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높은 도덕성 수준이 같은 부족 내에서 한 개인이나 자손에게는 비교우위가 거의 무의미하지만, 높은 도덕성 수준을 고양하고 부유한 사람이 증가한 부족집단이 그렇지 못한 다른 부족집단에게 비교우위를 점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 높은 애국심, 충성심, 용기, 동정심을 갖고 있어서 다른 사람을 도울 자세가 되어 있고 또 공공의 선을 위해서 스스로를 희생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은 부족은 그렇지 못한 다른 부족과의 경쟁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바로 자연선택(도태)설이 적용된다고 볼 수 있다. 부족들간에는 하나의 부족이 다른 부족을 대체해나가는 과정이 진행되므로 이 과정에서 도덕성이 중요한 요인이 될 것이며 이에 높은 도덕성 수준과 부유한 사람들이 차지하는 수적 비중이 점차 늘어날 것이다.”
로마시대 때부터 강조해 온 개인의 도덕적 의무는 우리나라에서도 신라시대에서부터 있어 내려온 사회와 인간의 본성에 속하는 영역이어서 지구상 어떤 국가 어느 사회에 존재하는 보편적인 개념이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솔선수범의 의미를 갖는 측면에서) 국가간 또는 부족간의 사이에서 측정되는 상대적인 개념으로 판단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 노블레스 오블리주 같은 미덕은 절대적이고 일반적인 개념이 아니라, 특정 시대 특정 장소 특정 개인에게서 발견되고 확인되는 덕목이라는 점이다. 이런 개인적 덕목은 상대적으로 발견되고 확인되는 개념이므로 개인적 도덕 의무는 한국 대 일본, 한국 대 중국, 중국 대 일본, 남한 대 북한 이런 예처럼 외부 사회와의 비교에서 상대적으로 우수함이 증명되는 것이지, 자신이 속한 공동체 내부에서의 기준으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진실성, 성실성 등 이런 노블레스 오블리주로 통칭되는 개인적 미덕은 어떤 차별이 있을 수가 없고 사람인 이상 모두에게 요구되는 바람직한 덕목이다. 고귀한 개인의 도덕적 품성은 내부의 모든 사람에게서 나타나야 할 가치 덕목이지 어느 특수층의 전유물이 아닌 것이다.
아파트 건설 국토 계획을 입안하는 고위 공무원이 아파트 분양을 받으려고 위장전입을 했거나 혹은 자녀 교육 등을 이유로 위장 전입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사회지도층 인사들이 탈영(군대병역면제) 탈법 (자신과 자신의 가족을 위해서 위장 전입하고 아파트 땅 투기) 탈세하는 사례가 많이 나타나는 까닭은 무엇인가? 법률 위반의 경우 공무원 자신이 직접 당사자가 아니라 가족인 경우가 많은데, 본인이 아니어서 직접적인 법률 위반의 대상은 아니라는 변명과 항변을 듣곤 한다. 한편 어떤 경제학 교수가 노동자는 인센티브를 주어야 생산성이 높기 때문에 비정규직 제도를 주장하면서 정작 자신은 연구성과를 위해서 안정적인 정년교수제가 필요하다는 상호모순적인 논리를 전개하는 것은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탈법 위법 불법을 저질러도 걸리지만 않으면 된다는 사고방식이 만연된 사회에서는 윤리도덕적 규율의 효과를 크게 기대하기 어렵다. 여기 두 가지 질문의 성격은 서로 다르다. 전자는 법적 문제이고, 후자의 교수 경우는 학자의 연구 윤리의 영역에 속할 것이다. 물론 교수가 직업적으로 근무하는 대학 기관의 입장에서는 개인 도덕적 차원을 넘어서 기관의 문제 즉 법적 문제로 규율할 수 있는 법적 대상이 될 것이므로 법과 도덕은 사회적인 측면에서는 서로 혼합되고 맞물려 있다. 개인이 일단 사회에 편입된 순간 개인 도덕성 문제는 궁극적으로 사회 전체의 측면에서 평가되어야 할 문제이다. 이런 측면에서 노블레스 오블리주 개념을 동원하여 우리 사회에 널리 퍼져 있는 전관예우, 금품 수수, 병역기피, 탈세, 부정입학 등의 여러 사회문제들을 해결해 내기는 버거울 것이다.
노블레스 오블리주 개념을 공적 영역에서 적용할 경우 그것은 궁극적으로는 “인치”의 개념과 상통하게 된다. 하지만 앞에서 열거된 한국 사회에서의 문제점들은 인치로서 해결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 “법치”의 문제로써 해결되어야 하는 영역으로 보인다. 병역 기피 투기 탈세 등의 문제는 개인의 “도덕적 해이”의 차원이 아니라 “법치가 파괴된 법적 문제” 차원에서 접근해야 할 것이므로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개념을 동원하는 것은 해결책으로써 큰 효과가 없을 것이다. 법적 책임은 도덕적 책임과는 구별되고, 법적 책임은 국가 사회의 전체적인 문제에 해당한다. 당연하게, 누군가 법을 위반하였으면 법적 잣대에 따라 법적인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은 두말할 여지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별개의 도덕적 차원으로 환원한다는 것은 “인치”의 시도에 다름 아니고, 그것으로는 무너진 법치 국가의 근본적인 뼈대와 골격을 다시 세우고 굳건히 할 수 없을 것임은 분명하다.
모택동 아들의 한국전 참전 이야기를 노불레스 오블리주의 개념으로 적용하는 견해에 대해 프랑스 영화 한 편을 꺼내서 말하고 싶다.
영화 “위대한 환상 Grand Illusion”-극한적 자기 이익 추구와 귀족 문화의 모순
한 쪽은 전쟁 포로로 잡혔고 한 쪽은 그 포로를 수용소에 잡아 넣고 감시하는 적군과 아군의 상반된 관계에 놓여 있는 처지이지만 이들에게는 한 가지 공유하는 것이 바로 귀족출신이고 따라서 그런 상황에서도 서로에 대한 인간적인 존중감 그리고 예술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 귀족 문화를 공유한 이들이 과연 국가를 초월할 수 있을까? 프랑스 영화 “위대한 착각”에 대해서 몇 마디를 덧붙이고자 한다.
전쟁터-즉 자기 이익의 추구가 극단적으로 충돌하는 가장 극한적인 상황에서 과연 "우정 friendship과 문화 culture"라는 것이 존재하고 또 통용될 수 있을까? 내가 알 수 없는 영역이어서 이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는 영화를 꺼내서 한 마디 던지고 싶다.
마르크스는 전세계 노동자의 단결을 예견했었지만 마르크스의 그 같은 예견이 어리석었다는 결론으로 밝혀졌다. 그와 같이 전쟁터에서 즉 적과 대치하는 상황에서 "우정"과 "문화"가 존재할 것이라는 추측은 순진한 환상에 불과할까? 우정과 문화가 존재할 것이라는 생각은 인간의 이성에 대한 확신을 기반으로 한다. 그런데 전쟁이 인간의 합리적인 이성에서 나오는 것인가?
자기 생존-사적 개인 이익 추구가 서로 충돌하는 경우인데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극한적인 기아의 상황에 부딪히면 다른 사람의 살갗이라도 뜯어먹고 살아 나야 하는 것은 인간본능적 행동이라고 한다. 그리고 오로지 자기 이익을 얻기 위한 처절한 투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결정적인 순간에서는 거짓과 배신의 행동을 할 수 밖에 없고 또 그것이 용납된다고 말한다. 살아남는 것이 인간 본성인 이상 그것은 더 이상 도적적인 비난의 대상이 아닌 것이다.
전쟁에서 포로가 된 상황에서 만약 당사자가 귀족 문화를 공유하고 있다면 그것으로 인해서
적군과 아군 사이의 간격을 뛰어 넘을 수가 있을까?
“칼레의 시민들”에서 칼레를 함락시킨 영국군은 식민지를 효과적으로 지배하기
위한 목적으로 기사계급 등 귀족 계급에게 사면령을 내릴 수 있었다. 당시 14세기 시대에는 민족국가의
개념이 형성되기 전이어서 있었고 왕조가 수시로 교체되는 상황에서 귀족계급의 충성도는 국가보다는 자신의 생존 전략에 의존하였다. 즉 상황에 따라 수시로 배반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러한 전쟁상황에서 귀족문화는
자기 이익의 추구에 있었지, 국가와 타인을 위해서 희생하여야 한다는 개념은 확립되지 않은 것 같다. 한편 강력한 민족국가가 형성된 이후 적군과
아군 사이에서 귀족간의 동료애로써 서로 존중해 주는 귀족적 행동이 국가간의 전쟁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을까? 유럽왕조에서 왕실간의 혼인동맹을 통하여 국가간의 이해관계를 해결해내지
못했다는 역사를 고려해 볼 때 귀족 계급의 문화를 공유한다고 해서 전쟁과 같은 극한 상황을 해결해 낼 수 없을 것이라고 유추할 수 있는데 이와
같은 결론은 2차 대전 결과가 분명하게 입증해 준다. 이런 측면에서 2차 대전 이전인 1937년 상영된 이 프랑스 영화 “위대한 환상 Grand Illusion”은 비현실적이고, 순진한 낭만주의적 환타지에
불과할 것으로 생각된다.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개념도 마찬가지로 한계가 큰 것으로 보인다.
이 영화의 줄거리는 대강 다음과 같다.
전쟁 영화는 대개 아군과 적군 사이에 서로 총을 쏘고 피 흘리며 죽어가는 전투장면이
등장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있을 지 모르나, 전쟁영화의 고전적인 명작으로 꼽히는 영화 “위대한 환상 La Grande Illusion”에는 그러한 전투 장면이 나오지 않는다. 불란서 공군비행사인 마르샬은 비번 중에 갑자기 적군 영토지역인 독일영공으로
침범하여 군사기밀을 공중 사진 촬영을 해 오라는 명령을 받게 된다. 직속상사인 보듀와 함께 마르샬은
첩보 비행기를 몰고 이륙한다. 그러나
독일군에게 비행기는 격추되고 그들은 전쟁 포로가 된다. 포로수용소에서 갇혀 지내면서 일상적인 포로 생활을 하게 되는데 수용소 땅굴을
파고 탈출을 감행하려다 탄로가 나서 수포로 돌아가기도 한다. 수용소에서 지내는 동안 독일군에게 점령당한 프랑스 한 도시가 다시 수복하였다는
신문기사를 보고서 동료 포로들과 프랑스 국가를 합창하는 난리를 치기고 한다. 포로수용소 규칙을 위반한
이런 일로 인해 마르샬은 독방에 감금된다. 더욱이 포로들은 험준한 산악의 천연의 요새 지역으로 소개된다. 이곳 포로수용소 소장은 마르샬의 정찰임무 비행기를 격추시킨 바로 그 사령관이다. 여러 번 탈출을 감행하다 실패한 마르샬
일행임을 보고받고 이들에게 이곳은 절대로 탈출할 수 없는 천혜의 요새지역이니 탈출은 꿈에도 생각하지 말라고 경고한다. 그러나 이들은 피리를 불며 독일군초병의
감시를 벗어나는 계획을 실천하는데 이때 피리를 불지 말라는 명령을 거부하는 바람에 마르샬의 상관인 보듀는 초병에게 총격을 받고 중상을 입게 되고
간호원이 보살피지만 결국 죽게 된다. 보듀가
희생하는 과정에서 마르샬과 동료 포로인 로전탈은 스위스와 독일 간의 국경을 넘어 스위스 농가로 잠입하여 탈출에 성공하게 된다. 이 농가에는 홀어머니와 그녀의 딸이 살고
있는데 이들 군인은 이 두 모녀와 함께 살며 숨어 지내게 된다. 마르샬은 그녀의 딸과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결국 독일군인들
포로들이 탈출하여 도망친 하얀 눈발자국의 동선을 따라서 뒤쫓아 수색해 오면서 발각되고 마는데 마지막 순간 독일군 포로 수용소의 장군은 사격을 중지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이리하여 탈출
포로들은 스위스 국경 쪽으로 무사히 달아난다.
하얀 눈으로 덥힌 알프스 산으로 탈출에 성공하게 되는 모습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다. 포로가
탈출할 수 있도록 사격중지 명령을 내린 배경에는 결정권자의 몸에 밴 귀족 문화의 작동인가? 아니면 인간애 humanism의
발로인가? 또 한편으로 포로수용소장으로써
국가에 대한 의무는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이 때 의무의 충돌은 사적 이익의 충돌이 결부되지 않았기 때문에 고귀하다고 결론을 내릴 수 있는가? 그렇다면 보다 큰 공익-국가적 이익-에 대한 침해는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우선 이 영화가 나온 해가 1937년임을 상기해야 한다. 영화 감독은 인상파 화가로 유명한 구스타브 르노와르의 아들인 쟝 르노와르 Jean Renoir이다. 르노와르 감독 자신이 일차 대전에 참가하여 총상을 입고서 다리를 절단하여야
했으나, 그의 어머니가 절대로 다리 절단수술만은 안된다고 반대하는 바람에 평생 동안 다리를 절뚝거려야
했다. 비행기 조종사로서 정찰
임무에 참가한 그의 직접적인 전쟁 경험에 기반하기도 하지만 영화 스토리는 포로수용소에서 8번이나 탈출에
성공한 불란서의 한 포로의 이야기에 바탕을 두고 있다.
전쟁 영화가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경우 대개 반전 색채를 띠게 되는데 그것은 전쟁에서 파괴되어가는 반문명의 사실이 확인되기
때문인 것 같다. 전쟁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이 영화도 전쟁의 의미를 회의하게 만드는 반전 드라마의 의미가 전달되고 있다. 1937년 베니스 비엔날레 에 출품되었으나 나치 독일의 괴벨스가 이탈리아
파쇼정권 뭇솔리니를 움직여서 대상을 받지 못하게 하였다고 한다. 괴벨스가 공공의 적 제1호로
평한 영화로써 나찌즘이 독일을 휩쓸고 있던 당시 유태인인 로젠탈을 영화 편집기술로 지워버리고 상영하였던 반면,
1939년 미국 상영에선 루즈벨트 대통령이 전국민에게 이 영화를 관람하라고 격려했던 영화이기도 하다.
1937년 촬영된 영화로서 이 시기에는 2차 대전이
발발할지 모른다는 전쟁의 위기감이 일고 있었으나 히틀러의 나치 독일이 1차 대전에 패배에 대한 보복
전쟁을 일으키지는 않으리라는 일종의 희망이 존재하였다는 사실을 반영하기도 한 것 같다. 그러나 히틀러의 선전영화가 전성기로 들어서고 있었고 또 히틀러의 나치체제
선전을 목적으로 한 영화 “의지의 승리”가 나온 시기가 1935년임을 볼 때 인간의 전쟁 회피에 대한
믿음이 얼마나 순진한 것인가를 여실히 보여주는 것 같다.
1차 대전을 배경으로 하는 이 “위대한 환상”은 전쟁 때면 더욱 생생해지는 계급간의 격차를 리얼하게 보여주는 영화인 것 같다. 비록 적군과 아군 사이라고 해도 그 같은 적대적인 전쟁 상황에서도 상대방에 대한 개인간의 “존중”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 고매한 인간성의 발로가 전개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다. 포로 수용소에 감금된 적군 포로이지만 독방에 감금된 마르샬에게 하모니카를 넣어 주는 독일군 병정, 음악과 예술은 아픔을 잊게 하고 마음을 달래 주며, 황폐한 전쟁 상황 중에서도 인간에게는 고상함이 존재하고 또 그것을 유지해 주는 역할을 한다. 적군의 지역에서 피신하고 있는 중에 맞이하는 크리스마스. 그런 상황에서도 축음기로 음악을 듣고 있는 동안은 전쟁의 아픔이 잠시라도 사라지는 것 같다. 자연은 어디서나 다 똑같이 저렇게 아름다운 것을 보니 “전쟁터를 만들어 낸 것은 인간이지 하나님(자연)이 결코 아닌 것이다.” 이 영화는 인간으로서 함께 공유하는 “인간 속의 유대감”의 존재를 확신시켜주려고 하는 것 같다. 하지만 군대는 장교와 사병으로 확연히 구분된 그렇게 분명한 계급 사회이고, 가장 적나라한 계급 사회이고 목적 달성을 위해 존재하는 조직이다. 마르샬은 말한다: “우리는 꼭 이 전쟁을 종식시켜야 한다. 비록 개 같은 전쟁이지만. 끝내고 싶지 않더라 해도.”
이 전쟁영화에서 보여주는 적군과 아군이라는 국가간의 구분보다 인간의 가치가 계층 차이에 의해 정해 진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한 것 같다. 포로수용소 소장인 독일군 장군은 살기등등한 점령군 사령관의 모습이 아니고, 귀족출신으로써 포로들을 인간적으로 대우하는 인간적인 면을 간직한 모습으로 그려진다. 그의 귀족 같은 우아한 면모와 공손한 태도는 적막한 깊은 산속 요새에 피어나는 한 떨기 꽃을 두고서 보듀와 나누는 대화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그 꽃은 우정과 상호 이해성에 대한 희망과 가능성을 상징하는 것 같다. 포로수용소 소장은 보듀가 그의 가슴에서 죽어가자 소장으로써 임무에 자괴감을 느낀다. 그러면서 총격을 가한 자신을 용서해 달라고 빈다. “내 병사들이 어리지는 않지만 그들은 단지 군인이었을 뿐입니다.” 이에 보듀는 이렇게 답한다, “내라도 그렇게 똑같이 행동했을 것입니다. 임무는 임무이니까요.” 보듀는 포로수용소 소장과 같은 귀족 출신이다. 그 또한 적군의 용기를 인정하며 절대로 악의적인 폭력성을 나타내지 않는다. 이들의 우정 관계는 성장하면서 형성된 사회 계급에 대한 이해성을 바탕으로 해서 쌓아졌던 것이다. 이 영화에서 각 인물들의 묘사는 사회적 계급에 따라 형성되고 있으나 연대성이나 일체감 또는 상호 이해성이 이루어진다는 생각이 깔려있다. 포로들이 공연을 준비하고 있는 동안 막사로 처들어온 독일군 병사들을 보고서 보듀가 하는 말은, “한 편은 어린아이들이 병정놀이를 하고, 다른 한 편의 군인은 어린아이들처럼 놀고 있네.” 물론 그를 움직이는 최고의 원칙은 “전쟁에선 감정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는 생각이다. 이 영화가 보여주려 했던 의도는 인간성, 포용성, 관대성이라는 이성적 보편성이 국가와 전쟁을 초월해 낼 수 있느냐였던 것 같다. 하지만 이에 대한 답은 2차대전의 결과가 분명하게 말해줄 것 같다. "위대한 환상"은 인간적인 상호존중과 인격적 진실성을 보여주지만 또한 전쟁의 참극으로 인해 지불해야 하는 크나큰 대가가 무엇인지도 함께 보여주는 것 같다.
“노블레스 오블리주 Noblesse oblige”는 로마 시대 라틴어 어휘인가?
“노블레스 오블리주 Noblesse oblige” 단어는 라틴어가 아니고, “프랑스어 격언 French maxim”으로써 문자 그대로의 뜻은 영어로 “nobility obligates” 번역된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프랑스 말”이고 또 그 말이 맨 처음 등장한 때가 1835년이라고 한다.[82] 그런데 노블레스 오블리주 개념의 근거로써 로마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고, 또 혹자는 영국의 이튼 칼리지 출신의 전사자 수 비교치를 제시하는 등 개념을 혼동하는 논자들이 적지 않게 발견된다.
혹자는 시오노 나나미(“로마인 이야기” 저자로 잘 알려진)가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전통적 기원으로 로마의 역사를 내세운다고 말한다.[83] 하지만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로마시대 의 공식언어인 라틴어가 아니라 프랑스 말이고 그것도 1837년에야 처음으로 등장하였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로마시대 로마인들이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말을 쓴 것이 아니었다. 로마인들이 그와 상응한 어떤 실체적 개념을 가지고 있었다면 그것을 먼저 제시하고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개념과 비교 분석하는 것이 역사 분석에 있어서 요구되는 기초적인 방법론일 것 같다.
특히 나나미가 로마의 발전 동력의 원천으로 지목하면서 “노블레스 오블리주” 개념을 적용하는 것은 마치 영미국의 “기사도 정신 Chivalry motto”으로 표현될 수 있고 또 우리나라의 “화랑도 정신”으로 등가 대체될 수 있을 것이다..[84] “기사도 정신”과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리더쉽의 개념으로써 기사도 정신과 상호 대체 개념이라고 본다면, 영국과 프랑스의 귀족층의 차이점은 찾기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로마시대와 신라시대는 거의 동렬상에 놓이게 된다. 그렇다면 나나미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설명은 마치 조선시대 “선비정신”을 논하면서 “선비 정신”은 “화랑 정신”과 동일하다는 결론을 제시한 것에 비유될 것 같다. 시대도 엄연하게 다르고 또 문무로 구분되는 신분 계급 질서도 전혀 상이한 선비와 화랑이 동일한 개념으로 도출되고 만다면 그 얼마나 허무한 방법론인가?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는 원천은 자신의 맡은 바 의무를 다하는 것에서 나올 것이고, 이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느 사회에서나 존재한 인간 공동체 사회의 기초 원칙에 해당한다. 잠시 예를 들어서 살펴보자.
신라의 발전을 “화랑도 정신”에서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면, 신라 시대에 “화랑도” 이념 추구가 실제로 존재했다는 사실과 그 이념을 구성하는 요소 (예컨대 세속오계 등)를 발견하고, 신라 발전에 미친 결과에 대한 원인관계와 상관관계를 분석 입증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한편 한국을 설명하면서 “선비정신” 그리고 일본을 설명하면서 “사무라이 정신”을 제시하는 것은 어렵지 않는 개념이고, 조선의 발전이 “선비 정신”에서 찾을 수 있다거나, 일본의 발전을 “사무라이 정신”에 기인한다고 설명하는 논자가 쉽게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이 “한강의 기적”을 이룬 것에 대해 “선비정신”을 내세운다거나, 일본이 명치유신 단행 이후 세계 제2의 경제대국으로 발전한 원인을 “사무라이 정신”에서 기초한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설득력을 얻기에는 부족하다는 견해에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로마제국의 성공의 원인으로써 예컨대 로마 군대의 우수한 군사력을 제시하는 것과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개념을 적용하는 것은 그 차원이 다르다는 점이다. 로마의 공화정 시대와 제정의 성립 이후 등의 로마 역사를 통괄하여 보자. 이 때 막강한 군사력의 기초는 군대 규율이 존중된 사실에서 나올 텐데, 군인은 귀족층만으로 구성되지 않았다. 군인의 구성은 귀족층뿐만이 아니라 평민층이 다수를 점했다.
먼 과거의 역사인 로마 제국의 사례를 들 필요도 없이 세계 우일 초강대국을 건설한 오늘날의 미국 “팍스 아메리카나”를 사례를 들어보자. 미국은 유럽국가하고는 달리 왕정이 아니고 따라서 귀족 신분이 존재하지도 않는다. 이민 신생사회인 미국에서는 최소한 법적이든 경제적이든 사회적이든 타고난 귀족은 없었다. 그런데도 미국이 세계 최고의 유일 강대국을 건설해 냈다. 이것이 과연 타고난 신분 계층이 의무를 솔선수범해서일까? 타고난 귀족 신분 자체가 없었다는 미국의 역사와 사정을 잊지 않는다면, 반박근거를 찾기 힘들 것이다. 누구나 자기 능력과 업적에 따라서 차별 없는 대우를 받는다는 평등의 원칙에 의해서 미국의 발전이 가능했다고 보는 것이 보다 옳은 견해임은 분명하다. 미국의 발전 과정을 근거로 볼 때,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개념을 로마 제국의 성공 요인으로 제시한 시오노 나나미의 설명은 한계가 있다고 보여진다.
로마 제국은 “정복 국가”이었다는 점 (따라서 군사력의 중요성이 강조되었다), 또 로마 제국의 흥망성쇠와 그 원인결과책임론에 대한 역사분석 책을 잠시 찾아봐도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개념을 적용하는 경우는 나의 과문한 탓인지 여지껏 찾지 못했다. (로마 제국의 흥망성쇠론에 대한 설명 가운데 대표적으로 기본의 “로마제국 멸망사”, 몽테스티외의 “로마 성쇠 원인론”을 들 수 있겠다).
나나미의 설명이 로마 제국의 정치 법 군사 제도의 독특한 특성으로써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지적해 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명확한 언어나 정해진 개념으로 지적해 내기 어려운 모호한 로마 귀족층의 예의범절 Civility, Etiquette과 높은 도덕성의 추구의 개념을 가지고서 로마 제국의 성공 요인으로써 들고 있는 것 같다. 나나미가 로마 귀족층의 생활양식상의 특성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다고 수긍해도, 노블레스 오블리주 개념이 다른 연관된 개념들과 혼동되거나 명확하게 정의될 수 없는 영역이라면 기술 개념으로써 문제점이 나타나는 것 같다. 귀족층의 예의범절이 높다면 상대적으로 평민들은 낮다는 상대적인 개념인데 그 기초적인 차이점을 나나미는 제시하지 못한 것 같다. 아담 스미스가 밝힌 대로, 정의와 양심의 추구는 인간 본성의 하나에 속하는 것 같다. 따라서,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개념이 귀족층의 특성을 설명해내는 독립적인 요소로써 수긍하기 어렵다. (필자의 의견으로는 그만한 실체가 있는 개념으로 볼 수 없지만).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프랑스에서 나온 말이므로 나나미가 우선 밝혀야 할 것은 로마 귀족층과 프랑스의 귀족층과의 연관 관계와 그리고 프랑스 혁명이 발발하게 된 이유와 원인으로 규정되는 프랑스 귀족층의 부패와 타락상일 것이다. 프랑스 귀족층의 부패와 타락상-이것이 가장 특징적인 요소에 하나라고 보여진다면, 나나미가 적용한 노블레스 오블리주 개념은 수정되어야 할 것 같다. 다시 말해 귀족층이 의무를 솔선수범했다면 아마도 프랑스 혁명은 일어날 수 없었을 것인 바, 이런 반박 논거에 의해서 노블레스 오블리주 개념은 프랑스의 역사 발전을 설명하는데 모순되거나 부정될 가능성이 높다.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개념을 보다 정확하게 사용하려면, 프랑스 귀족층의 특권과 의무 실천과의 연관관계를 역사적으로 분명하게 설명해내야 함이 우선적으로 요구되는 것 같다.
왕정과 귀족층이 현재까지도 유지되는 영국과는 달리 프랑스는 왕정과 귀족층이 폐지된 사실을 고려한다면,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개념을 부르주아 “시민 정신”의 함양으로 이해하고자 노력한 로댕 이후 프랑스 정부의 국민 통합 노력이 보다 적절하고 타당한 것 같다. 다시 말해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지위와 신분이 높을수록 덕망 또한 높아진다는 일부 특권층을 통한 국민국가 건설이 아니라 전체 시민계급의 자발적 덕성 함양에 바탕을 둔 민주적 시민 정신에 의해 국민국가 건설을 시도하려는 이념으로 이해하는 것이 보다 타당할 것 같다.)
(이것은 신라의 역사 발전을 논하면서 “화랑도 정신”으로 특정하거나, 영국의 역사 발전을 “기사도 정신”, 조선의 경우 “선비 정신”, 일본의 경우 “사무라이 정신”에 있다고 특정하는-그와 같은 단순하고 애매모호한 개념으로 설명하려는 시도라고 볼 수 있다. 여기서 필자가 상세한 논거 제시는 생략하겠지만, 한 마디만 꺼낸다면, 화랑도 정신, 기사도 정신, 선비 정신, 사무라이 정신의 도덕적 가치를 부정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정신은 계급의 존재하고는 불가분한 관계에 있는 것으로써, 한 나라만의 유별난 독립 요소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여기서 “정신”이란 무엇인가? 이념이란 말과 동일하거나 대체되는 말이다. 그렇다면 조선에는 선비층(문무양반)의 존재했고 반면 일본에는 무사계급이 존재했기에 각각 선비정신, 무사정신으로 분류될 것이다. 따라서 그러한 계급이 폐지된 이후 선비정신, 무사정신은 실체가 없거나 다른 이념으로 대체되었을 것으로 간주하는 것이 보다 합리적인 생각인 것 같다. 선비 계급 무사 계급이 이미 폐지되었는데, 선비정신과 사무라이 정신을 강조하는 것은 현재 사회문제의 원인관계와 상관관계를 잘못 파악한 결과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선비정신 사무라이 정신이 나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고려를 이끌었던 불교가, 조선을 지배했던 유교가 현재 더 이상 통치이념이나 도구로 사용되지 못한 것을 볼 때 현 시대에서 불교정신이나 유교정신을 내세우는 것이 우스운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10. 영미국에서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개념-자선과 기부 문화
10.1 영미국에서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개념-자선과 기부 문화
10.2. 발자크 “산골짜기의 백합”에서 모르소프 부인이 남모르게 실천한 자선 행위의 내용
10.3 특권 의식과 시혜 의식
10.4. 진정한 시민국가가 소수의 사회지도층에 의해서 주도적으로 건설될 수 있는가?
10.5 노블레스 오블리주 개념과 자선의 의미
10.6 만국의 사회지도층은 보편적으로 귀족문화를 공유하고 실천하는가?
10.7. 법률 문제와 윤리도덕적 의무의 분간과 구별
노블레스 오블리주- 영미국에서의 개념- 자선과 기부 문화
만약 영미국에서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개념이 있다면, 특권층의 존재를 전제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그것은 누구나 자신보다 더 못살고 부족한 사람들을 향해 자선과 기부를 하는 일에 앞장서고, 공동체 사회 발전을 위하여 봉사에 앞장서는 문화를 가르키는 말이고 여겨진다. 이런 자선을 행하는 개념으로써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개념은 앞에서 인용한 옥스포드 사전의 설명으로써 충분하고 분명하게 이해된다.
결론적으로, 한국에서 강조되는 개념으로써의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개념은 영미국에서는 통용되지 않는다. 영미국에선 사회지도층이라고 해서 별도로 누릴 수 있는 특권이 존재할 수 없고, 또 당연한 논리적 귀결이지만, 사회지도층에 따르는 별도의 의무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솔선수범해서 의무를 실천하는 것에 대해 미덕으로써 칭송 받는 것도 아니다. 다만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다는 인식은 확고하여 누구라도 법을 어기면 법에 따라 처벌을 받는다는 일반원칙이 강조된다.
자선은 병역과 납세하고는 달리 법으로 강제하는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누군가 자진해서 자선과 기부금을 내고 실천하면 칭찬받아야 함은 마땅할 일이다. 이 점은 아담 스미스도 강조한 부분이다.
현재 세계 최고의 부자인 미국의 빌 게이츠와 워런 버핏이 가장 대표적으로 보여주듯이 자선 기부의 실천은 가진 사람이 실행할 수 밖에 없는 특수한 영역이다. 가진 것이 없는 사람은 자선 기부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으로 살면서 무엇인가를 가지지 않는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예전에는 돈으로 세금을 낼 형편이 없는 서민은 대신 몸으로 때우는 육체노동을 하며 의무를 실행하는 부역을 담당했다. 요즈음에는 재능기부라는 말이 있는데, 정신과 육체를 가진 사람이라면 어떤 형태로든 남을 도울 수 있는 최소한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 자기에게는 더 이상 필요 없는 헌 물건이지만 남에게는 필요한 중고품인 경우도 많고, 사실 버리는 쓰레기에도 재활용품이 얼마나 많이 있는가?
영미국에서 자산 기부는 상류층 전유물이 아니라 보통사람이라도 일상적으로 기부를 실천하는 전통과 문화를 가꾸고 있다. 자녀를 학교에 보내는 부모들은 어떤 형태로든 기부를 실천하는 것이 보편적인 모습임을 알 수 있다. 이런 영미국의 기부 문화는 자선과 기부의 실천이 부족한 우리나라의 문화와는 크게 대조된다.
발자크 “산골짜기의 백합”에서 모르소프 부인이 남모르게 실천한 자선 행위의 내용
“노블레스 오블리주”에 대한 보다 올바른 개념을 정립하려면, 그것은 자선행위를 실행하는 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노블레스 오블리주” 이 말의 개념을 처음으로 상세하게 밝힌 발자크의 소설 “산골짜기의 백합”에서 여주인공의 자선 charity 행위를 묘사하고 있는 부분을 인용해 보자.
“운구 행렬이 그녀가 수많은 선행과 적선을 남몰래 쌓아 둔 마을을 지나가자 슬픔과 애도를 표시하려는 수많은 사람들이 운구 행렬을 뒤따랐다. 집사에 따르면, 그녀는 살아 생전에 그 사람은 가난한 사람들을 돕기 위해서 저금통의 돈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때는 자신의 의복 비용을 절감하기도 했다고 한다. 배고픈 아이들에게는 먹을 것으로 보냈고, 벌거벗은 아이들에게는 옷을 입혔고,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홀로된 어머니들을 보살폈으며, 겨울에 양식이 필요한 나이 든 노인들을 공양하기 위해서 방앗간 주인에게 밀가루 여러 포대를 보냈으며, 가난한 집에는 암소 한 마리씩을 보내주기도 하는 등 하나님을 믿는 기독교 신자로서, 어머니로서, 귀족의 마님으로서 요구되는 자선 의무를 실천했던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라, 능력 있고 사랑하는 젊은이들에게 결혼 자금을 대주었고 또 군대 갈 형편이 되지 못한 젊은이들에게는 대리복무 비용을 지불해 주기도 했는데, 이 모든 것은 “자기 자신이 행복해질 수 없는 이들에게는 다른 사람의 행복에서 대신 위로를 받는다”라고 말하며 사랑으로 넘쳤던 그 사람이 베푼 자비와 선행이었다.”[85]
이와 같은 발자크의 설명 옥스포드 사전에서 정의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뜻과 동일함을 알 수 있다. 옥스포드 사전 정의를 반복하면, “noblesse oblige: the inferred responsibility of privileged people to act with generosity and nobility toward those less privileged.”[86] 노블레스 오블리주 자신들보다 더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에게 자선을 행하는 구체적 행동을 지칭한다. 이런 영어 사전적 정의하고 우리나라의 정의 즉 “지위가 높을수록 책임의식과 덕망이 높다”라는 개념은 차이와 간극이 크다. 우리나라에서의 의미가 자칫 잘못하면 노블레스 오불리주의 원래적 의미를 왜곡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위험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현재 진행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에 대한 개념 정의는 그 뜻이 애매모호할 뿐만 아니라 지위와 신분의 높고 낮음을 전제하고 있는 구시대적 봉건 질서로의 환원을 은연중에 내포하고 있는 개념에 가깝다고 보여지므로 이런 태도는 평등한 시민 사회를 건설하는 데 있어서 걸림돌로 작용할 위험이 있음을 다시 한번 지적한다.
특권 의식과 시혜 의식
다이시와 같은 엄격한 법률적 개념을 동원하지 않고 대신 일반적인 정치적인 의미로 쉽게 생각해 보자. 우리들의 귀에 익숙한 미국의 케네디 대통령의 말을 기억하자. “국가가 국민들을 위해 무엇을 해주기를 바라지 말고, 국민들이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생각하라. Ask not what your country can do for you; ask what you can do for your country.” 미국연방대통령의 지위인 케네디의 대통령 취임사 연설에서 한 말이니까 여기서 일상적인 삶을 규율하고 주 정부 사회 입장에서 본다면 국가는 공동체 사회라는 말로 대체될 수 있다. 종교와 법체제를 초월하여 같은 인간으로서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그 무엇이 있다면 그것을 “휴머니티 humanity”라고 부를 수 있는데 같은 인류로서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요사 하나가 “인간성 humanity”이고, 이것에서 자선을 베풀 수 있는 동기를 형성할 것이다. 자선을 행하는 것은 국가로부터 무언가를 기대하고 시혜를 바라는 것과는 반대방향에 서 있다.
사회 지도층, 특권층, 특권의식 등은 낱말부터 벌써 사라졌어야 할 개념!
대한민국은 법으로 왕족과 양반 귀족이 폐지된 지가 백 년도 넘었다. 영미국같은 평등사회를 지향하고 있다. 헌법상 왕족과 귀족의 존재를 인정하는 영국, 일본, 대부분의 유럽국가들과 달리 우리나라는 왕족이나 귀족 또는 사회의 특권층이 존재할 수 없다. 모든 사람은 타고난 신분 귀천, 권력과 지위의 높고 낮음, 소득의 많고 적음 등 어떤 특별한 조건에 의해서도 차별적인 대우와 취급을 할 수 없다. 대한민국 헌법 조항을 상기해 보라. 헌법 제11조는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①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 ② 사회적 특수계급의 제도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어떠한 형태로도 이를 창설할 수 없다. ③ 훈장 등의 영전은 이를 받은 자에게만 효력이 있고, 어떠한 특권도 이에 따르지 아니한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역사와 문화적으로 왕과 지배계층으로부터 시혜를 받지 않으면 살기 어렵다는 의식이 지배하였고, 그런 특권과 시혜 의식은 임금님에 대해 “성은이 망극하옵니다”의 표현으로 나타났다. TV 드라마에서 극적 표현이 아니라 역사로 확인된다. 서원의 등장과 발전 역사가 말해주듯, 향촌에서 민간 자율 규약으로 설립된 사적 교육과 봉제사 기능을 담당한 서원마저 국가가 지정하는 “사액 서원”이어야 급성장할 수 있었다. 서원의 발전 역사와 같이 요즈음의 사학의 성장은 두 말할 것도 없고, 재벌과 국가의 결탁으로 부가 편재되고 부의 집중화 심화된다. 부의 재벌 집중과 부의 양극화 격차가 더욱 심해주는 이유와 근거는 국가 관리 사회라는 사실에 있는 것 같다. 국가가 부의 분배 기능을 적절하게 통제 관리하지 못한 결과, 국민은 국가가 베푸는 시혜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고, 끝내는 예전과 같은 양반신분사회로의 회귀를 낳고 대개는 머슴의 위치로 전락하고 만다. 역사교과서에서 조선시대의 멸망원인이라고 그토록 강조하는 “삼정 문란”의 시대와 다를 바가 없게 된 오늘날의 현실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동의한다. 삼정문란이란 전정 田政(세금 징수), 군정 軍政(병역 의무), 환정 還政(정부 보유 쌀과 곡식을 빌려주고 다시 갚게 하는 제도로 오늘날의 복지 제도)의 제도가 무너진 역사적 사실을 이른다.
의무 수행이 소수인 사회지도층에 의존하고 그들이 이끌어나간다는 지도이념은 효과가 있는가?
영미국에서 사회지도층이라는 특수 계층의 존재 그리고 사회지도층에게 요구되는 의무와도덕이 별도로 존재한다는 사고방식은 찾아보기 어렵다. 영미국에서는 신분과 직업의 귀천을 따지질 않고, 또 부자이건 빈자이건 차별 없이 국민 모두가 다같이 하나의 법을 따르고 지켜야 한다는 평등의 이념이 뿌리 깊게 자리잡고 있다. 영미국은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다는 법원칙이 사회의 기초 토대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별도의 사회지도층의 존재와 의무를 강조할 이유가 없다. 한편 미국 사회도 평등 사회가 아니라 빈부격차가 심한 계급적 차별사회라는 비판이 나올 수 있고, 또 그러한 반박 근거로써 특히 노예 제도가 역사적으로 존재했다는 사실을 들 수 있을 지 모른다. 하지만 노예 제도는 남북전쟁 결과로 폐지되었고, 최소한 법적으로 평등의 이념을 추구하는 하는 “평등 사회 egalitarian society”임은 반박하기 힘들 것이다. 만약 미국 사회의 노예 제도를 존재를 근거로 반박한다면, 한국 또한 노예제도가 존재했는데, 조선의 사농공상 노비의 신분 제도가 폐지된 때는 미국의 노예제 폐지 시기보다 훨씬 늦은 1894년이라는 사실을 상기하라. 영미국의 사회를 이루는 기초는 만인은 평등하다는 평등 사회의 이념의 추구에 있고, 따라서 사회지도층이라는 차별적 특수 계층이 인정될 리는 만무하다. 만약 영미국에서 특별한 계층이 존재한다고 말할 때, 그것은 사회지도층이라는 개념이 아니라 사회적 배려가 필요한 사회적 약자의 보호 원칙을 지칭할 것이다. 사회적 약자에게는 배려가 필요하고 또 그것의 정당화를 이론적으로 설명한 존 롤스의 “정의론”의 개념은 별도 독립된 장에서 설명하기로 한다.
노블레스 오블리주이란 말의 영어 사전적 개념 풀이에 따라서 올바로 이해한다면, 우리나라에서 알고 있는 “지위가 높을수록 책임의식과 덕망이 높아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사회적 약자 보호의 원칙을 뜻한다고 이해하는 것이 보다 옳을 듯 하다. 앞서 인용한 옥스포드 사전 정의를 반복하면, “noblesse oblige: the inferred responsibility of privileged people to act with generosity and nobility toward those less privileged.”[87] 이러한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사전적 정의는, 자신들보다 더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에게 자선을 행하는 구체적 행동을 지칭한다. 따라서 우리나라에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지위가 높을수록 책임의식과 덕망이 높아야 한다”라는 개념으로 짓고자 한다면 그것은 노블레스 오불리주의 원래적 의미를 왜곡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위험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현재 진행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에 대한 개념 정의는 그 뜻이 애매모호할 뿐만 아니라 지위와 신분의 높고 낮음을 전제하고 있는 개념에 가까움으로 평등한 시민 사회의 건설의 걸림돌로 작용할 위험이 내포되어 있음을 지적하고 싶다.
노블레스 오블리주 개념과 자선의 개념
여기의 “노블레스”의 개념 즉 “지위”는 귀족 가문에서 타고났다는 봉건적 신분에서 나오는 지위 그리고 고위공직에 임명됨으로써 얻어지는 공직자의 지위 이 두 가지 형태로 얻어진다. 이 두 가지 지위는 눈에 보이는 구체성이 있는 반면 책임의식과 덕망에 대한 개념은 책임과 덕망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지 정확하지 않다. 우리나라에서는 책임의식과 덕망의 개념에 대해서 자선이라는 구체적인 행동을 직접적으로 연결시키지 않고 있지만, 영미국에서는 사전적 정의와 같이, 자선을 행하는 구체적인 행동을 지칭하고 있다. 오늘날의 평등 사회에서는 봉건적 신분 질서가 혁파되었는데, 왜 “지위가 높을수록”이라는 전제 조건을 필요로 한단 말인가? “높은 책임의식과 덕망”은 지위 고하에 따라 달라지는 개념이 아니다.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개인 각자는 모두 자신에게 할당된 의무와 덕성을 추구할 인격성과 완전성을 갖추고 있다. 이러한 이념적 기초에서 로댕은 “칼레의 시민들”의 동상을 완성했다고 했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자선을 행하는 능력 또한 인간 누구나 갖고 있다.[88]
영미국에서 사회 상류층은 무언가 특별하게 달리 취급되어야 한다는 그런 생각은 차별적인 시각으로써 지극히 배격될 개념에 속한다. 제 아무리 학문적인 근거를 원용한다고 해도, “인종 차별적인 태도”가 땅에 발 붙일 수 없을 만큼 사회 전체적으로 보편적으로 배격되는 것을 보면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을 것이다. 미국의 생물학자 제임스 왓슨의 사례를 들 수 있는데, 그는 세계 과학 교과서에 “DNA의 이중나선 구조”를 밝힌 유명한 과학자도 잘 알려진 인물이고 사실 1962년 노벨 생리의학상 공동 수상자이기도 하지만, 그가 백인우월주의 견해를 밝히자 전세계적으로 비판을 받고, 유명한 과학자에서 몰락한 처리로 변하고 말았다.
만국의 사회지도층은 보편적으로 귀족문화를 공유하고 실천하는가? 노블레스 오블리주 개념은 상대적인 개념인가? 절대적인 개념인가?
한국의 일부 식자들은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사례로써 심지어 중국의 공산당 국가주석 모택동의 아들의 한국전 참전 전사 사례를 들기도 하는데, 이것 또한 견강부회에 해당하는 것 같다. 1950년 당시 모택동은 한국의 적으로써 한국전쟁에 참전하였으므로 한국 입장에선 적장이었고, 따라서 그의 아들 또한 한국군에 대항해서 싸운 적군의 일원이었다. 그러므로 한국의 적이었던 모택동의 행동에 대해서 법적으로나 윤리도덕적으로 한국 입장에서 함께 논할 수 있는 성격이 아니다. 이 점은 로마시대의 키케로의 논거를 인용하여 설명할 필요도 없이 분명하다. 제 아무리 세계 시민의 한 사람이라는 세계시민의 입장에서 국가를 초월한 윤리적 의무가 존재한다고 주장할 수 있다 해도, 국방의 의무에 대한 적군과 아군의 입장을 동시에 해결해 줄 수는 없다. 적군과 아군으로 구별되는 적대적 전쟁에의 참가는 상호배타적이다. 그리고 전쟁 포로법 등 세계법이 존재하지만 그것이 국가 윤리를 초월하게 만들지는 않는다. 다시 말해 전쟁에는 아군과 적군이라는 상호대치적 입장에서 서로 생명을 담보하고 있는 상황이므로, 한국의 적이었던 중공군의 일원으로 참전한 사람을 한국의 입장에서 윤리도덕적 의무를 논할 수 있는 성격이 되지 못한다.
무엇보다, 전쟁에 참가하는 군인은 법에 따라 정해져 있는 규칙을 따를 것이고, 또 군인은 단지 명령을 수행하는 것이 본분일 텐데, 왜 굳이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개념을 빌어와서 “사회 지도층 인사”의 “도덕적 의무”라는 개념을 별도로 적용한단 말인가? “법은 누구나 준수하여야 한다.” “법과 도덕”의 차이점은 대학 교양과목에서 배우는 기초적인 개념이다. “법적 의무”에 대해서는 법적인 측면에서 따져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 법률 문제를 “도덕적 의무”로 환원하겠다는 것인가? 법질서는 도덕적 판단과는 구별된다.[89] 법질서 legal order는 사람들의 외적 관계를 규율하는 반면, 도덕 morality은 내면적인 관계를 규율한다.
법률 문제와 윤리도덕적 의무의 분간과 구별
도덕은 내면적인 측면이므로 보다 상대적이다, 따라서 개인차가 나타나지만, 법은 특정 목적 ends을 구현하고자 하는 수단에 해당하므로, 개인차가 존재하는 감정과는 다른 차원인 것이다. 우리나라 장관 청문회에서 흔히 나타나는 사례 하나를 보자. 아파트 투기, 땅 투기를 막기 위해서 토지거래 제한법 등 여러 특수 목적법이 제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법을 빠져나갈 법률상의 허점이 존재하거나 많은 사람들이 법 자체를 무시하게 된 상황이 흔히 나타난다. 이 경우 어떤 장관 후보자가 자신이 그런 법률을 위반하게 된 이유를 많은 사람들이 법을 무시하여 거의 사문화된 사정으로 변명하는 것을 본다. 하지만 왜 장관 청문회를 여는가? 설령 다른 많은 사람들이 법을 무시했다고 수긍하자. 하지만 그들은 장관 후보자가 아니지 않는가? 그들은 장관후보자가 아니기 때문에 후보자가 다른 사람들의 사정을 들고서 변명할 수 있는 근거가 되지 못한다. 장관후보자가 일률적으로 적용될 법을 지켰느냐의 사실 확인을 통해서 장관 자신의 내면적 도덕성 정도를 확인할 수 있는데, 여기서 포인트는 당시 법이 목적하였던 아파트 땅 투기 방지를 이루지 못한 책임을 누구에게 지울 것이지 법적 문제이지, 개인의 내면적 도덕의 문제로 보아서는 아니 된다는 점이다. 고위관료가 아파트 땅 투기를 할 수 있는 가능성은 정부 정책 입안자로서 정보 취득의 비대칭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기 때문에 일반사람들이 아파트 땅 투기에 가담하는 정도와 성격과는 달리 취급되는 것이다. 투기에 관한 우선적이고 우월적인 정보 취득이 정책 입안자로서의 지위에서 얻어진다는 선험적인 사실에 의거하여 비대칭적 정보우위를 점하는 고위 관료의 투기 사실은 다른 일반인들의 사정과는 달리 보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법의 목적과 수단을 혼동하면, 개인의 행동을 규율하는 법질서의 규범 norms이 확립되기 어려울 것이다.
도덕적 판단이 법 안에 내포되는 경우가 많지만, 법원은 법 제도 집행기관이지 도덕 함양 기관이 아니다. 법 앞에 만인 평등이라는 법의 보편성의 개념을 도덕으로 대체할 수 없을 것이다. 누구나 법 앞에 평등하다는 법률 문제를 두고서, 도덕적 의무를 강조한다면 그것은 “사회 지도층 인사”는 법적 의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않아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반대해석이 도출될 수 있다는 점을 경계하여야 한다. 법률 적용의 영역에서 도덕적 의무를 강조한다면 그것은 법이 존중되지 않는 사회임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한 마디 첨언한다면, 모택동의 아들의 한국전 참전 사례를 내세우는 것은 자유 민주 국가의 사회지도층과 공산독재 국가의 사회 지도층의 동일선상에서 본다는 것일텐데, 그렇다면 그것은 어느 체제에서나 사회지도층은 똑같이 훌륭하다는 어이없는 결론이 도출되고 말 위험성이 크다. 마르크스주의가 맹위를 떨치던 전세기말 당시, “만국의 노동자는 서로 함께 할 것”이라는 가정과 전제가 여지 없이 무너졌다는 역사적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큰 것 같다. 각 나라의 노동자들은 노동환경과 생각이 비슷하다고 해서 국가를 초월하여 같은 노동자라는 지위에서 동료애를 발휘하고 단결한다는 생각은 환상에 불과했다. 같은 노동자의 신분이긴 하지만 미국의 노동자와 한국의 노동자는 생각과 행동이 동일하지 않고 서로 다른 면이 많다. 미국과 한국의 의사들이 같은 전문직 의사라는 사회적 위치에서 서로 지식과 생각이 비슷할 수 있고 공유하는 면이 많을 수 있다. 하지만 보다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미국의 의사와 한국의 의사의 생각과 행동은 일치되지 않는 측면이 나타난다. 같은 변호사라고 해서 미국의 법조인과 한국의 법조인은 전문가로서의 서로 공유하는 점이 훨씬 많을 것이지만, 미국의 법조인과 한국의 법조인 사이에 사고와 행동은 항상 동일하지 않을 것이다. 한국의 재벌, 중국의 재벌, 미국의 재벌은 재벌이라는 사회지도층으로써 서로 공유하는 점이 클지 모르지만, 미국과 한국의 사회지도층으로써의 생각과 행동은 동일하지 않고 다른 면이 나타난다. 이러한 측면에서 “지위가 높을수록 의무도 높고 덕망도 높다”는 노블레스 오블리주 개념은 일반성, 보편성을 상실하고 만다. 어느 국가, 어느 사회이든 “사회 지도층”은 현실적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수긍할 수 있다고 해도, 북한의 사회지도층, 중국의 사회지도층, 한국의 사회지도층, 미국의 사회지도층의 행동 양식을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단일 개념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점이 존재하는 것 같다.
여기서 각 나라마다 사회지도층은 의무와 덕망이 높고 솔선수범한다는 가정을 받아들여보자. 그렇다면 중국의 지도층과 한국의 지도층이 모두 그 의무를 다하는데도 왜 한국전에서 승자와 패자가 나타났는가? 이 점에서 노블레스 오블리주 개념은 상호모순됨을 피할 수 없게 된다. 이 모순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각 나라의 사회지도층은 의무와 덕망을 실행하는 실제에서 서로 다르다는 가정을 추가해야 될지 모른다. 그렇다면, “지위가 높을수록 의무와 덕망 또한 높아진다”는 원래의 전제가 파괴되고 마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여기에서 노블레스 오블리주 개념의 보편성이 사라지고 만다. 이러한 결론에 도움을 주는 설득력 있는 다윈의 설명을 간단하게 추가하지 않을 수 없다.
11. 키케로의 “완벽한 인간” 모델
11.1. “키케로 추종자”는 어떤 사람들인가?
11.2. 키케로는 “완벽한 정치인”의 모델인가?
11.3 “완벽한 인간 perfect man”의 모델은 실재하는가?
키케로의 “완벽한 인간” 모델
“키케로 추종자”는 어떤 사람들인가?
로마법은 영미법의 재판 실상과 크게 차이가 난다는 점에서 영미국에서 키케로는 모범적인 변호사의 모델로 정착된 것은 아니었다. 영미국의 학교와 대학에서 키케로를 배우고 가르치고 있긴 하지만[90] 키케로를 극구 모방하고자 하는 “키케로 추종자”의 모습을 보이는 대륙법국가들과는 엄연한 차이가 존재한다. 19세기 영미국의 모범적인 법조인상에 대한 논문을 참조해 보면 그 차이점을 알 수 있다.[91]
키케로는 영미법국가에서 법조인의 롤 모델인가?
역사상 자료인 키케로의 연설은 영미국의 판례법 재판의 현실적 모습과는 크게 동떨어진 면이 많이 보인다. 판례법 재판 진행은 지루하게 느껴질 정도로 증인 심문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진실이 드러나도록 하는 것이지, 판례법의 재판과정에서 변호사가 일장연설을 하는 경우란 거의 없다.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동류의 보통 사람들이 상식과 이성적인 판단력에 따라서 사안을 판단하지, 마치 우리나라 일제시대 신파극으로 유명했던 “검사와 여선생”의 한 장면처럼 방청객의 “심금을 울리는” 일장연설은 그야말로 소설에서나 나오는 이야기에 가깝다. 물론 법정 재판에서 모두 연설과 최후진술이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증인의 법정 증거의 도입과 결론을 확인하는 수준에 불과하다. 취조심문이나 반대심문의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극적 전환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있긴 해도 그것은 증인에 대한 질문과 대답 과정에서 나오는 대화의 일부에서 포착되는 것이지, 검사나 변호사나 판사의 일장연설의 모습을 기대하기는 힘들다. 판례법 재판에서는 키케로가 재판의 승소 요인으로써 든 수사학적 유머 능력은 끼어들 여지가 없는 것이다.
또한 영미국인들은 모든 사람들은 진실을 파악할만한 인식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보며 따라서 진실은 자연스럽게 발견된다는 사고를 갖고 있다. 영미국인들은 겉모양의 포장에 의해서 진실이 호도될 수 있다는 사고방식을 거부하며, 또한 자신들이 다른 사람들로부터 조작이나 선동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여긴다. 유창하게 말을 잘하면 상대방을 감동시킬 수 있다고 여기는 생각을 역으로 해석하면 상대방을 조작의 대상으로 여긴다는 말이 된다. 영미인은 자기 주관적인 자기 결정권을 가진 자신의 판단력을 믿기 때문에 “검사와 여선생” 같은 감동적인 연설에 의해 이성적 판단이 흐려지는 것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 진실, 정의, 기본 상식 truth, justice, common sense이 통하는 사회가 영미국인의 공동체 현실이 아니던가? 따라서 “말 잘하는” 선동가의 일장연설로 진실이 왜곡될 수 있다고 믿는 경우란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말 잘하고 글 잘 쓰는 법이 법조 실무하고 동떨어져서 존재한다고 보기 어렵다. 키케로처럼 독방에서 홀로 책을 통해서 “완벽한 웅변가”로 성장할 수 있다고는 믿기 어렵다. 진실은 표현기교로써 호도되거나 감춰질 수가 있는 것이 아니고 또 설령 그런 기교나 지식을 완벽하게 마스터했다고 해서 개인이나 사회의 잘못을 바로잡을 능력으로 바로 이어지는 것도 아니다. 따라서 영미국의 판례법 교육(로스쿨)은 시험 기술, 말 잘하는 웅변술, 수사학 기교 등을 배우고 가르치는 곳이 아니다. 영미법 시스템과 법 현실은 진실을 추구하고 따라서 법조인에게 요구되는 법조 윤리를 강조한다.
“완벽한 정치인 perfect orator”의 모델은 실재하는가?
우리나라 같이 대륙법의 전통이 지배라는 문화에서는 시험공부를 통해서 완벽한 perfect 사람이 탄생될 수 있다고 여길지 모르지만 영미국인은 키케로의 완벽한 인간형은 현실적으로 존재하지도 않고 또 나올 수가 없다고 생각한다.[92] 물론 모든 장점을 갖춘 이상형적인 인간이 되고자 하거나 또 그런 이상을 추구하는 것 자체가 나쁘다고 보는 것은 아니다. 다만 현실적으로 완벽한 이상적인 인간형이 존재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누구나 그런 이상형이 될 수 있다고 하면서 그것을 모방하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오히려 그런 사람들이 거짓말을 하는 것에 해당된다고 의심하는 것이다. 인간의 본성과 능력에 비추어 완전무결한 인간이 될 수 없음은 인간 역사상 당연한 것인데도 시험공부를 통해서 완전한 인간이 태어날 수 있다고 보는 생각은 비현실적이기 때문이다. 인류가 하루 이틀 살아온 존재도 아니고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또 현재 70억이 넘는 인구 중에 그렇게 완전무결한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통해 보면 키케로가 주장하는 이상적인 완벽한 인간형은 현실적인 인간형이 아니라고 여겨진다. 키케로가 상정한 완벽한 모범적인 사람이 나오기가 어렵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모방으로써 완벽한 인간이 나올 수 있다는 주장은 흠결이 있고 또 거짓말이라고 여기게 되며 따라서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은 신뢰받기 어렵다.[93] 영미국인들에게 말 잘하는 선동꾼은 진실한 면이 부족한 사람이라고 여겨진다. 트롤로페의 저서 “키케로의 생애”를 읽어보면 19세기 영미국 법조인의 사고방식을 알 수 있는데 이들은 말만 번지름하게 잘하는 사람은 신뢰성이 부족한 사람으로 여겼다.
영미인들은 남에게서 모방한 것을 가지고서 마치 자기 창작물인양 거짓을 말하는 사람을 크게 멀리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 배경이 무엇인지 알 필요가 있다. 인류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진실성이 우선시되지 않으면 안 된다. 진실성이 담보되지 않는 외형적 발전은 사상누각에 불과할 것이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의 문화는 학문 추구의 장이든 일상적 사회 생활면에서 엄격한 ‘진실성’을 추구하는 데 인색한 측면이 나타난다고 보고된다. 흔히 한국에서 여지껏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지 못한 한국의 한계를 거론하는 데 그 이유 하나가 여기에 있을 지 모른다. 한 때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법적 허구가 인구에 회자된 적이 있는데, 어떤 부정한 수단을 써서라도 일단 챙기고 보자는 목전의 이익을 추구하는 사고방식이 우리나라 사람들의 사고 기저에 깔려 있고 또 팽배된 것 같다.
11. “Caveat emptor 케비어트 엠토”
11.1 “Caveat emptor 케비어트 엠토”-“매수자 책임 원칙”에 대하여
11.2. “침묵은 금 silence is golden”인가?
11.3. 거짓과 사기가 판치는 세상이라는 것을 다들 알면서 왜 진실을 말하지 못하는 것일까?
“Caveat emptor 케비어트 엠토”의 의미
매매는 매도자와 매수자라는 쌍방의 두 당사자가 물건을 사고 파는 것을 말한다. 매도자와 매수자는서로 대립하는 당사자인데 매매계약에서 누가 주의 의무를 다해야 되는지 그에 대한 기본적인 시각을 두고서 대륙법국가는 로마법의 정신에 입각하여 매도자가 책임을 다해야 함을 강조한 반면 영미법은 로마법의 입장과는 다르게 매도자에게 의무를 지우는 것이 아니라, 주의 의무를 다해야 할 주체는 매수자이고 매수자가 자기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여긴다.
매매과정에서 매수자가 매도자보다 주의를 더 크게 기울여야 함을 강조하는 이 “매수자 책임 원칙”은 일찍이 영국에서 확립되어 영미법의 원칙의 하나로 굳게 자리잡았다. 이 원칙은 매매 계약에서 매수자가 손해를 보지 않기 위해서는 매수자는 거래가 끝나기 이전에 매매물건을 직접 살펴보는 등 매수자가 사전에 모든 주의를 다해야 한다는 법의 일반 원칙을 말한다. 이를 라틴어 “caveat emptor”의 법률 용어로 부르고 영어로는 “Let the buyer be aware”으로 번역된다.
이 케비어트 엠토 원칙이 영미법상 처음 나타난 때는 영국의 에드워드 1세 때의 법률이고 그 후 여러 사례를 통해서 확립되었다. 미국에서 이 케비어트 엠토 원칙이 확고하게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을 재확인시켜 준 판결로는 1869년의 미국연방대법원 판결인 Barnard v. Kellogg 77 U.S. 383 (1869) 케이스가 있다. 물론 그 이전의 여러 케이스에서 법원칙으로 확립되어 있었음은 법률교과서에서도 확인된다.
미국의 1834년 법률교과서에서 정의한 케비어트 엠토 개념을 보자. “in the absence of an agreement between the parties, the seller is responsible for defects only when he has been guilty of fraud. 당사자 사이에 다른 별도의 특약 사항이 없는 매매 계약에서 매도자는, 사기를 치지 않는 이상, 물건의 하자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계약법 일반 원칙으로서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의미의 “caveat emptor 매수자 책임 원칙”은 대륙법국가와 대비되는 영미법의 분명한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매수자 책임 원칙이 가장 크게 나타난 거래는 예로부터 토지 거래와 주택 거래 분야이었다. 토지와 주택은 생활과 생산의 필수적 요소에 해당하기에 투기적 수요가 일어나기 어려웠고, 또 거액의 금액이 수반되는 거래이므로 자신에게 필요하지 않는 토지와 주택을 함부로 매매하는 경우는 거의 상상하기 힘들었다. 무엇보다 토지와 주택은 대개 사람들이 자신의 경험적 지식으로 잘 알고 대상이고 또 자신의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는 성격을 가졌으므로 토지와 주택의 매매는 매수자가 직접 점검하기 용이하다. 따라서 매수자가 미리 점검한다면 어떤 하자가 있는지에 대해서 찾아낼 가능성이 크다. 이와 같은 기본적인 배경에서 매수자 책임 원칙은 간결하고 분명한 법원칙으로 자리잡게 되었고, 자본주의 발전에 따라 토지 거래나 주택 매매 분야를 넘어서 일반적인 상거래 원칙으로 확립되었다. 케비어트 엠토 caveat emptor 원칙이 나오게 된 요인을 좀더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① 매도자는 생산비나 투자비를 회수하고자 하는 자기 이익을 얻기 위해서 물건을 판다. 매수자 또한 마찬가지로 사지 않는 것보다 사는 것이 자기에게 이익이 된다고 여기므로 매수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양쪽 당사자는 각자가 취하는 이익이 서로 존재하기 때문에 매매 계약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② 모든 사람들은 각자 자신의 판단 능력을 갖고 있고 또 그에 따라 신중하게 생각하고 자신이 직접 결정을 내린다. 계약 상대방은 각자의 이익에 따라서 누구나 갖고 있는 보통사람의 상식적인 신중함과 자신의 의사 판단력을 동원해서 행동하는 것이다. 이러한 구조가 일상생활에서의 거래의 기본이고 또 보편적으로 일어나는 일이며 이런 행태가 에서 작동되는 인간의 일반 원칙에 가깝다. 매수자가 매수를 하고자 원할 때는 자기가 직접 손수 물건의 품질을 꼼꼼히 살펴보거나 검사하고 나서 자기가 사고자 하는 목적에 적당하다고 여기지 않으면 매수를 그만 둘 것이다. 이와 같이 설령 물건에 대한 하자 책임이 매도자에게 있다고 해도 매수자는 자기가 사고자 하는 물건에 대해서 직접 점검을 하는 것이 매수자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도 필요할 것이다. 이러한 성향 때문에 매도자는 매수자의 기대에 부응하고자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다.
③ 사람들의 의식주에 관한 일상 생활에서 꼭 필요하기 때문에 상거래가 일어난다.
④ 사람들은 일상적으로 자기가 필요로 하는 물건을 살 것이므로 매수자는 자기가 모르거나 또는 자기에게 필요하지 않는 물건은 사지 않을 것임은 분명하다.
⑤ 사람은 누구에게나 공통적인 일반적인 지식 수준을 갖고 있다. 매수할 때도 당연히 그런 수준의 지식을 행사할 것이다. 따라서 물건에 흠이나 하자가 있다면 그것을 바로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보통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감각적인 판단으로 알아낼 수 있거나 또는 직접 점검해 보면 찾아 낼 수 있거나, 만약 흠이나 하자가 숨어 있을 경우에는 흠이나 하자가 분명하게 있다는 것을 서로 인정하여 매매당사자 사이에 특약을 맺고 해결해 낼 수 있을 것이다. (예컨대 흠이 있으니 매매가격을 낮추는 등). 이와 같이 물건에 대한 점검기회를 이용하면 보통사람이 갖고 있는 신중한 판단력과 지식으로 흠결 여부를 가려낼 수 있을 것이다.
⑥ 이렇게 해도 찾아낼 수 없을 정도로 흠결이 깊이 숨어 있다면 매수자는 위험 부담을 안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만약 물건의 하자가 알 수 없는 요인에 의해서 생긴 경우라면 매수자는 운이 없다고 여길 수 밖에 없는 경우도 생긴다. 그러한 흠결을 매도자도 모르고 있었던 경우라면 매도자에게 손해를 물을 수는 없는 것이다. 매도자는 그 물건을 팔기 위해서 물건을 생산하는데 비용을 지출했음을 생각해 보라.
⑦ 물론 여기서 분명한 원칙은 매수자의 자유 의사에 따라 신중한 자기 판단력으로 매수를 결정했다고 해서 매도자가 사기를 친 경우까지 매수자가 책임을 덮어써야 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매도자가 매수자를 속인 경우에 어떤 매수자가 사기를 당하고서도 매수 계약을 하였다고 여길 수 있겠는가? 허위나 사기가 개입된 경우라면 당연히 매수하지 않았을 것임은 불문가지다. 따라서 매도자가 사기를 친 경우라면 매도자가 그 책임을 당연하게 부담하는 것이다.
이렇게 매수자가 주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는 “매수자 책임 원칙 caveat emptor”은 논리적으로 현실적으로 타당한 것 같다. 그렇지만 우리나라 같은 대륙법 국가들은 이러한 영미법의 원칙과는 다른 원칙을 갖고 있다. 대륙법국가들은 매매 계약의 성격을 정해 놓고 있고, 매매 계약에 있어서 매수자에게 “신의 성실 good faith”의 원칙을 부담시키고 있으며, 매매 계약은 당사자간의 특별 관계에 기초한다는 사고를 갖고 있다. 그리하여 매매 계약에서 매수자가 물건에 대한 흠이나 하자가 없음을 보증하고 있다고 간주한다. 그러므로 만약 물건에 흠이나 하자가 발견되는 경우 매매를 취소할 수 있다고 여긴다. 또 매도자는 자기가 팔려고 하는 물건에 대한 가치를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가정하고 이에 따라 매도자는 매수자에게도 물건의 가치와 정보를 그대로 알려주어야 한다고 간주한다. 다시 말해 매수자는 물건을 사기 전에 꼼꼼히 챙겨 보지 않고 있다가, 대신 매수자는 매도자를 믿고 산다고 말하면서, 사고 나서 조그만 흠이라도 발견되거나 또는 사정이 달라지게 되면 매매를 취소해 달라는 하는 것이 대륙법 국가의 기본적인 가정이고 이것이 대개의 현실의 모습이다.
이렇게 대륙법 국가의 사람들은 매매계약에서 신의 성실의 원칙상 매도자는 허위 또는 사기를 치는 것이 허용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매매가격에 대한 정보도 매도자가 제공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적극적으로 사기 치거나 또는 허위 과장 광고하는 행위는 금지될 뿐만 아니라 흠이나 부실을 숨기는 것도 금지되는 것은 분명하다.
또 매도자가 물건의 가치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다고 가정하므로 매도자가 폭리 수준으로 가격이 정해서는 아니된다는 점을 전제하고 있다. 그러므로 매도자가 제시하는 가격 정보가 사고난 이후 내재 가치하고 달라진 경우 매수를 하고 나서도 매매를 취소할 수도 있다고 가정한다.
그런데 상업 행위의 기본 속성상 특별한 경우가 아닌 이상 (단골 고객이거나 특수한 납품거래상이거나 하청인 경우 등) 한번 팔고 난 물건을 취소하고자 하는 매도인이 누가 있겠는가! 그리고 설령 취소를 한다고 해도 취소 비용이 들어가게 마련이다. 매수자가 주의 의무를 게을리한 경우에도 매수자 자신의 부주의를 탓하기 보다는 매도자에게 책임을 묻고자 한다면 상거래의 속성상 어느 쪽이 유리하겠는가?
“침묵은 금 silence is golden”인가?
대륙법국가에서는 키케로의 격언처럼 “침묵은 금 silence is golden”이라는 덕목을 가르쳐 왔다. 자기 자신의 정보는 말하지 않는 것이 미덕으로 여겨져 왔고, 토론에서 자기 생각을 솔직하게 발언하는 것을 삼가는 경향이 크다. 타인에게 인정을 받으려고 하는 기대를 갖고 있는 것이 인간본성이라면 어느 누가 자기 결점을 스스로 밝히려고 하겠는가? 인간 본성상 자기 부족함은 감추고 자기 우월함은 자랑하려고 할 것이다.
소금이나 일용할 양식을 매도자가 독점적으로 공급하는 전제국가에서는 매도자가 물건에 대한 하자가 없다는 것을 보증해야 할 뿐만 아니라 폭리를 취할 가능성을 제거해야 할 것으로 매도자에게 의무를 부담시킬 필요가 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나 현실적으로 왕이나 가진 자들이나 상인들이 자기 이익을 추구하려는 기본적인 본성을 포기하는 경우란 거의 없다는 것이 밝혀졌다. 독점은 폭리를 낳게 마련이었다. 그리고 자본주의 경제에서는 소금이나 우유 등 생필수품마저도 매수자가 필요해서 물건을 산다는 측면을 감안해 보면 매도자의 신의성실에 기대하기 보다 매수자가 스스로 모든 주의를 다해야 한다는 원칙이 보다 옳은 것 같다.
여기에서 오해하거나 혼동해서는 아니될 것은 영미법에서도 근대 대량 생산 공업 사회로 전환되면서 매도자의 품질 보장과 허위 과장 광고에 대한 규제 등 영미법에서도 당연하게 “매도자의 책임 caveat venditor” 원칙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영미법에서 “소비자 보호법” 등 매도자 (공업 제품뿐만 아니라 금융상품을 포함한다)의 책임을 강력하게 부담시키는 법률이 존재하고, 토지나 주택 매매에서도 매도자가 공시해야 할 최소한의 조건을 명확하게 법률로 규제하는 등 매도자가 불법적인 사기나 허위 행위를 분명하게 단속하고 있다.
거짓과 사기가 판치는 세상이라는 것을 다들 알면서도 왜 진실을 말하지 못하는 것일까?
“침묵은 금”이라는 속담과 같이 침묵은 항상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행위일까? 셰익스피어 희곡 “리차드 3세”에 나오는 대사를 보자.
“그러니 참 이 세상은 정말 거꾸로 돌아가는 거지요! 이렇게 뻔히 사기치는 짓을 모르는 바보 같은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다만 자기가 알고 그대로 감히 말했다가는 돌아올 피해가 무서워서 모두들 눈감고 있는 것 아닙니까? 지금 세상은 정말 사악한 세상입니다. 자기가 알고 있는 것을 제대로 말도 못하는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셰익스피어, 리차드 3세, 3막 5장).
이 대사에서와 같이, 지금은 불의와 불법이 판치는 세상이 되었고, 그렇지만 누군들 설령 진실을 알고 있다 해도 진실을 말할 용기를 내기란 무척 어렵지 않겠는가? 왜냐하면 말 한마디 했다가는 자기 자신에게 해가 미칠 것임을 모두가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지 오웰은 이렇게 말하지 않았던가? “거짓과 사기가 판치는 세상에서, 진실을 말하는 것은 혁명적인 행동이다” In a time of universal deceit, tell the truth is a revolutionary act.“ 그런데 역사상 혁명이 일어난 경우는 거의 없다. 왜? 혁명이 그렇게 쉽다면 누군들 못했을 리가 없을 것이다. 인간인 이상 어느 누군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겠는가?
사슴을 보고 말이라고 우기는 권력과 진실을 말하는 순진한 바보
솔직하게 진심을 말했다가는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것이 세상이라고 한다. 자기 감정을 숨기지 않고 진솔하게 얘기하는 것을 일본말로 “바카 쇼지키 馬鹿正直”이라고 하는데 바카 쇼지키는 사슴을 말이라고 말하는 것에 숨어 있는 의도를 알지 못하는 “stupidly honest”, “바보스런 솔직”, “우직스런’을 뜻하는 부정적인 뉘앙스를 갖고 있는 말이다. 여기서 “마록”을 있는 단어 뜻 그대로 번역하면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 없고 이 말의 뜻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한자 고사성어 “지록위마”의 유래를 알아야 한다. 이 말은 사마천의 “사기”에 나오는 등장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권력을 이용해 잘못된 것을 끝까지 우긴다”는 뜻으로 흔히 쓰인다. 예컨대 “정부가 비행기나 함정 폭파 사건 등 대형 참사가 일어났을 때 진실 규명을 외면하거나 단순 사고 사건으로 치장해 버리며 정부의 실패를 감추기 위한 ‘거짓말’의 수단을 동원하는 것을 가르킬 때 쓰인다.
정부의 변명이 사슴을 보고 말이라고 우기는 격이라고 국민들은 알면서도 진실을 말하지 못하는데 그것은 무엇 때문인가? 권력은 외양 치장으로 진실을 가릴 교묘한 거짓말 skillful lying을 부릴 수 있는 능수능란한 자원을 가졌고 따라서 만약 진실을 그대로 말한다면 자기 목숨을 잃을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일 것이다. 때로는 진실을 말하는 것이 자기 생명을 버리는 “순진한 바보”가 될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왜 사슴을 보고 있는 그대로 사슴이라고 말하는 것이 “순진한 바보”에 해당하는가? 말하는 사람의 숨은 의도를 파악하지 못하는 사람을 바보라고 부른다.
“지록위마” 고사성어의 유래를 살펴보자. 진시황제가 죽자 환관 조고가 실권을 장악하고 태자를 폐하고 대신 미련한 아들 호해를 왕의 자리에 앉혔다. 조고는 자신의 권력에 순종하지 않는 자들이 누구인지 떠보려고 호해에게 사슴을 바치며 말이라고 했다. 이에 왕이 말했다. "승상도 농담을 하는가? 사슴을 가지고 말이라고 하다니 指鹿爲馬. 신하들이여, 그대들 눈에도 말처럼 보입니까?” 왕의 물음에 대해서 사슴이라고 바른말을 한 신하들은 조고에게 모함을 당해 목숨을 잃었고, 말의 ‘외양 pretence’을 보고 말이라고 대답한 즉 거짓말을 한 신하들은 살아남았다는 역사를 사마천은 기록하였다. 물론 여기서 사마천은 조고는 새로이 등극한 왕에게 피살되고 만다는 역사의 심판을 분명하게 기록하였다. 사람들의 말은 외양 속에 어떤 의도가 숨어 있는 경우가 있다는 것 그리고 이 숨은 뜻을 잘 파악하는 것이 필요하다.
13. 키케로의 “의무론” (번역)
13.1. 키케로의 “의무론”
13.2. 키케로의 단기적 이익과 장기적 이익의 개념
키케로 “의무론”-단기적인 이익 vs 장기적인 이익
당장 눈 앞의 단기적인 이익을 쫓는 행위와 장기적인 이익의 관점 차이-자기 이익추구와 도덕적 판단-자기 이익 고수와 공동체 이익 추구-short-term vs long-term 관점의 차이
앞에서 영미법상의 매수자 책임 원칙이 대륙법의 매도자 책임 원칙에 비해서 보다 우월하다는 결론을 설명했다. 우리나라에서는 매도자 책임 원칙이 기본적인 법체계를 형성하고 있고, 키케로의 “의무론”을 강조하고 있다. 키케로의 “의무론” 부분을 부연 설명 없이도 의미가 충분하게 설명된다. 우리나라에서 키케로의 “의무론” 부분이 대학입시 시험 문제에 등장할 만큼 (서울대 입시 논술고사 99년 출제) 크게 강조되고 있음을 볼 때 이 부분을 보다 정확하게 번역할 필요성이 있는 것 같다. 키케로의 “의무론” 해당 부분은 다음과 같이 번역된다.
“자기 이익을 쫓는 행위가 도덕적인 올바름과는 충돌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는데 이런 충돌은 불가피한 것인지 아니면 서로 타협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 심도 있게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이러한 경우에 해당하는 다음과 같은 사례를 들어보겠다. 옛날 그리스 로우즈 섬에 흉년이 들어 먹을 양식이 부족해지자 곡물가격은 폭등했다. 이 때 어떤 정직한 사람이 지중해 건너편 외국 알렉산드리아에서 큰 배로 곡물을 가득 수입해 왔다고 보자. 다른 곡물 수입상들도 곡물을 가득 싣고 오고 있는 중이라는 사실을 그가 분명하게 알고 있다고 가정하자. 그가 항해 중에 곡물을 가득 실어오는 상선들을 실제로 보았다고 하자. 이러한 경우 이 수입업자는 로우즈섬의 사람들에게 이 사실을 밝혀야 할까? 아니면 입 다물고 침묵한 채 자기가 수입해 온 곡물을 가장 비싼 시장 가격으로 팔아 해치워도 될까? 내가 들고 있는 예는 도덕적이고 양심적인 사람임을 가정하고 있어 만약 그가 사실을 감추는 것이 도덕적으로 옳지 않다고 생각하면 로우즈섬 사람들에게 사실을 감추지 않을 것이라는 결론은 당연할 터인데 내가 여기서 질문하는 것은 그러한 침묵이 정말 도덕적으로 옳지 않은 것인지의 여부가 확실하지 않다고 의심이 드는 경우에 그가 어떤 이유와 근거에서 로우즈섬 사람들에게 사실을 감추지 않을 것인지를 물어보는 것이다.” (Cicero, De Officiis. 3.12.50.)
“… 안티파테르의 견해는 모든 사실은 공시되어야 한다는 것 즉 매도자가 알고 있는 사실은 매수자에게도 그대로 알려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 디오게네스의 견해는 매도자는 물건에 하자가 있는 경우 그것을 외부로 밝혀야 하는데 외부 공시의 방법과 정도는 국내법률의 규정에 미리 정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법률 규정에 의해 제한된 경우 이외에는 매도자가 매도할 물건에 대해서 불법적인 사기나 허위 또는 과장 광고가 없는 이상, 자기에게 가장 유리한 가격으로 팔 수 있다는 입장이 디오게네스의 주장이다.
디오게네스: “나는 곡물을 먼 외국에서 수입해 와서 곡물을 매도하고 있는데, 다른 경쟁자들의 가격보다 더 높은 가격으로 팔지 않고 있으며, 시장에 공급이 넘칠 경우에는 가격을 더 낮춰서 매도할 것입니다. 이런 나에게 무슨 잘못이 있겠습니까?”
안티파테르: “무슨 말씀입니까? 각자는 사회 공동체를 이루는 동포 형제들의 이해관계까지를 고려해야 하고 또 공동체에 봉사할 의무가 있습니다. 이런 사회 공동체의 조건 아래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고 따라서 사람들이 준수하고 따라야 할 의무가 있다는 것은 내재적인 자연 법칙에 해당합니다. 그러므르 개인의 이익은 사회 공동체의 이익이 되는 것이며, 반대로 공동체의 이익은 개인의 이익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마땅한 사실들을 참작해도, 모두에게 풍족할 만큼의 곡물이 곧 도착할 거라는 좋은 소식을 동포 형제들에게 감출 수가 있겠습니까?”
디오게네스: “하지만 감추는 것과 적극적으로 밝히지 않는 것은 분명히 다른 별개의 문제입니다. 지금 이 순간 내가 여기에서 상품의 내용이나 가장 좋은 품질이 어떤 것인지를 밝히지 않는다고 해서 내가 사람들에게 뭘 감추고 있다는 것은 아닙니다. 이런 비밀을 아는 것은 곡물의 가격이 내려갈 것이라는 정보를 아는 것보다 매수자들에게 더 큰 이익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매도자인 나는 매수자들에게 이익이 돌아갈 수 있는 모든 정보에 대해서 그것을 다 알려주어야 할 의무는 없습니다.”
안티파테르: “네, 그렇습니다. 하지만 사람들 사이에는 하늘의 이치에 따라 맺어진 사회적 유대감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사정은 달라진다고 보는데 이점은 수긍하리라 봅니다.”
디오게네스: “나도 그런 점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사회적 유대감’이란 말이 의미하는 바는 사유 재산이라는 개념이 전연 존재하지 않는 그런 사회를 뜻하는 겁니까? 만약 그런 사회라고 한다면, 사람들은 아무것도 결코 팔아서는 아니 되고 다만 공짜로 모두 나눠주어야 할 것입니다.” (Cicero, De Officiis. 3.12.51-3).
어떤 정직한 사람이 자신은 알고 있지만 다른 사람들은 전혀 모르고 있는 어떤 결점 때문에 자기 집을 팔려고 내놓았다고 가정해 보자. 그 집은 오염되어 사람이 사는데 문제가 많은 집인데도 건강에 나쁜 영향이 없는 좋은 집으로 알려져 있는 경우, 방마다 뱀들이 기어 나오는 집인데도 일반 사람들은 그것을 모르고 있는 경우, 또 목조 건물 구조에 문제가 있어서 붕괴 위험이 있음에도 이런 사실은 매도자인 집주인 외에는 아무도 모르고 있는 경우라고 가정하자. 만약 매도자가 주택 매수자에게 이러한 사실을 말해 주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매수자가 생각하는 주택의 적정 가격 보다 훨씬 더 높게 팔려고 하는 경우 이 매매를 부당한 거래 또는 ‘사기 fraudulent’ 매매에 해당된다(따라서 매수자가 매매를 취소할 수 있다거나 손해배상을 요구할 수 있다)고 볼 수 있겠는가?” (Cicero, De Officiis, 3.13.54.)
“안티파테르: “물론 부당한 거래에 해당합니다. 매수자에게 서둘러 거래를 끝내게 유인함으로써 매수자에게 주택을 점검할 기회를 주지 않은 잘못이 크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고의적으로 매수자를 착각에 빠트린 행위에 해당합니다.”
디오게네스: “매도자가 집을 사라고 부추긴 말 한마디도 하지 않은 경우에도 매도자에게 집을 사라고 강요했다고 볼 수 있습니까? 매도자는 자기가 좋아하지 않는 것을 팔려고 내놓았습니다. 매수자는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매입했습니다. 만약 좋은 집도 아니고 잘 지어진 집도 아니면서 “주택 매매. 멋진 집임. 구조 튼튼함.” 이런 선전 문구를 걸어 놓는 것이 불법적인 사기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한다면, 자기가 팔려고 내놓은 집에 대해 어떤 말도 언급하지 않고 그저 침묵한 것은 문제 삼을 수 없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매도자가 사기를 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점에 대해서도 자신의 판단력을 동원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명시적으로 언급한 것도 모든 것을 다 그대로 해야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면, 어떤 말 한 마디 조차 꺼내지도 않은 것에 대해서 어떻게 매도자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겠습니까? 물건을 팔려고 내놓은 매도자가 그 물건이 지닌 결점을 모조리 밝히는 것보다 더 어리석은 행동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주택 경매인이 집주인의 말이라고 하면서 “자 여기에 사람이 살기에는 적당하기 않은 집 한 채가 지금 매물로 나와 있습니다”라고 소리 높여 외친다면 정말 어리석은 행동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Cicero, DeOfficiis. 3. 13. 55.)
“그럼 키케로가 생각하는 해결책을 말해보겠다. 미곡상인은 로데스인들에게 사실을 감추어서는 아니될 의무를 부담하고 있고 또 주택 매도자도 마찬가지로 매수자에게 사실을 말해야 될 의무가 있다. 단순하게 가만히 침묵을 지키고 있는 사실은 적극적으로 비밀을 감추는 행위에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매도자가 알고 있는 사실이 매수자에게 알려지면 매수자에게 유리할 경우 매도자가 자기 이익을 위하여 타인이 그 사실을 알지 못하게 만드는 것은 적극적으로 사실을 감추는 행위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무엇이 감추는 행위에 해당하는지를 분간하지 못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고 또 어떤 부류의 사람들이 그런 감추는 행위를 저지르게 되는 것일까? 어떤 경우이든지 간에 그런 사람은 솔직하고, 성실하고, 올곧고, 똑바르고, 정직한 사람이 아니라 그와는 반대로 믿을 수 없고, 은밀하고, 요령 좋고, 간교하고, 속임수를 쓰고, 교활하고, 사기와 배반에 물든 사람들일 것이다. 자기 자신에게 이렇게 열거한 것과 같은 그리고 그보다 더한 비난의 수식어가 붙는다면 그게 과연 자신에게 이익이 된다고 볼 수 있겠는가? (Cicero, DeOfficiis. 3. 13. 57.)
단기적인 이익 vs 장기적인 이익
위와 같이 키케로의 “의무론” 중에서 매도자 정보 제공 의무에 관한 부분을 정확하게 번역했다. 키케로의 의무론를 통해서 영미법상의 “매수자 책임 caveat emptor” 원칙과의 차이점을 충분하게 인식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 본성과 상거래의 기본적인 성격에 비추어 본다면 상거래에서 매도자보다 매수자가 주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는 결론에 쉽게 수긍되지 않는가? 매매 거래에서 매수자에게 책임 의무를 부담시키고 있는 영미법상의 “매수자 책임 원칙 caveat emptor”이 대륙법국가에서 기반하고 있는 “매도자 책임 원칙 caveat vendito”에 비해 보다 현실적임은 분명하다. 특히 주식 증권 시장의 구조와 생리를 이해한다면 매수자 책임 원칙의 타당성과 그 중요성은 백 번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자본주의 상업의 속성상 매도자에게 “신의 성실 good faith”의 원칙을 강조하면서 정보 제공 의무를 매도자에게 부담시키고 있는 대륙법의 기본적인 태도는 인간 본성과 자본주의 상업 거래의 기본적 특성을 간과하고 있는 측면이 크다. 물론 매수자 책임원칙에도 일정한 한계가 있음은 분명하고, 또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영미법의 입법 추세는 소비자 보호법 등 매도자의 책임을 강화시켜 오고 있다. 또 현재 양 제도상의 장점은 서로 수렴해가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사회의 가장 기초적인 토대를 이루고 있는 법제도의 핵심에서 서로 차이점이 존재하고 또 이런 차이점이 다른 결과를 가져오고 있다는 점을 정확하게 인식할 필요성이 있다.
아담 스미스가 논증한 바대로 자본주의의 기본 속성은 상대방의 호의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 자기 이익을 최대화하는 시키는 것에 있다. 사람들이 자기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반박할 수 없을 정도로 자명한 사실이지만 여기에서 중요한 점은 바로 이익의 크기와 그 실현 시기를 언제 어떻게 평가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점이다. 영미국인은 “파이를 더 크게 키워서 더 큰 이익을 서로 나누자”의 사고에 쉽게 공감하여 장기적인 이익을 추구하는 반면 대륙국가 사람들은 “남의 손의 백 마리 새보다 내 손 안의 한 마리의 새가 더 가치 있다”고 여기며 단기적인 이익에 집착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사람은 모두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방향은 같지만 그 이익의 크기를 언제 어떻게 실현시키느냐의 관점에서 큰 차이가 존재한다. 이익의 관점을 단기적으로 상정하느냐 아니면 정기적인 관점에서 보느냐의 차이에 따라 ‘이기주의’와 ‘이타주의 altruism’가 가름된다. 사람들은 단기적인 이익에 집착하기 보다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이익이 무엇인지를 판단할 수 있어야 되고, 이에 따라서 참되고 행복한 인간 사회가 펼쳐질 수 있다는 점을 역사가 웅변해 주고 있지 않는가? 영미판례법에 기초한 대영제국과 미국이 세계를 제패한 이유와 그 정신적 토대가 바로 여기에서 발견된다.
13. 후기-글을 쓰고 나서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 제도와 문화, 나무 옮겨 심기, 나무 탓인가? 토양 탓인가? 사람 탓인가? 환경 탓인가? 국력과 문화 격차
남귤북지 南橘北枳 귤화위지 橘化爲枳: “남쪽의 귤이 북쪽에서는 탱자가 된다. 사람도 환경에 따라 성품이 변함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 환경에 따라 선하게도 악하게도 된다.” 귤화위지의 국어 사전의 설명인데 이 4자 고사성어의 유래를 설명하고 있는 “안자춘추”를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초나라 왕과 제나라 출신 고문이 술잔을 나누고 있는데 그 때 마침 초나라 관리 두 사람이 한 사람을 결박하여 끌고 가는 일이 벌어졌다.
왕: “포박된 그 사람은 무슨 연유에서 잡혀왔는가?”
관리: “(외국인) 제나라 출신인데, 절도죄를 저질렀습니다.”
왕이 제나라 고문 안자에게 질문했다.
왕: "제나라 사람들은 원래 도둑질을 잘 합니까?"
안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이렇게 답변했다.
안자: "제가 들은 바를 말씀 드리면, 귤나무가 강남에서 자라면 그대로 귤이 열매 맺는데, 같은 귤나무를 강북에 옮겨 심으면 탱자가 열린답니다. 나무 잎은 서로 비슷하지만, 그 열매 과일의 맛은 서로 같지 않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물과 토양이 서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현재 제나라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은 도둑질을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초나라로 들어오면 도둑질을 합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도둑질에 물든 것은 초나라의 수질과 토양 때문이 아니라고 반박할 수 있습니까?
왕은 웃으면서 대답했다.
왕: "성인군자는 함부로 웃음을 파는 것이 아니랍니다. 웃자고 한 마디 했는데 오히려 제가 톡톡히 대가를 치르게 되었습니다."[94]
晏子至,楚王賜晏子酒,酒酣,吏二縛一人詣王,王曰:”縛者曷為者也?”對曰:”齊人也,坐盜。”
王視晏子曰:”齊人固善盜乎?”
晏子避席對曰:”嬰聞之,橘生淮南則為橘,生于淮北則為枳,葉徒相似,其實味不同。所以然者何?水土異也。今民生長於齊不盜,入楚則盜,得無楚之水土使民善盜耶?”
王笑曰:”聖人非所與熙也,寡人反取病焉”[95]
이 책은 필자가 23년 전에 로댕의 조각 “칼레의 시민”을 접한 이래로 그동안 노블레스 오블리주에 대해 가졌던 생각을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보다 자유롭게 쓴 에세이이다.
<사진: 영국 런던 빅토리아 가든에 자리잡고 있는 로댕의 “칼레의 시민” 동상 앞에 선 필자>
제도와 문화를 무엇이고 또 그 관계는 서로 어떻게 이어지고 서로 영향을 미치는 것일까? 제도와 문화는 인간이 공동체를 이루면서 가져온 역사성을 갖는다. 거의 모든 나라의 법과 제도는 사막에서 홀로 자라는 선인장이 아니고, 회수를 건너온 탱자나무처럼, 다른 나라 다른 곳에서 자라난 나무를 새로운 곳으로 이식 transplant해서 심은 나무와 같다. 사람이 태어나 사회에 편입된 순간, 제도와 문화로부터 벗어날 수가 없다고 본다면, 제도와 문화는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사과가 아니라 현재 이전에 생겨난 산물이다. 한편 과거의 산물인 제도와 문화는 항상 변화하고 발전해 온 사실에서 또한 미래의 개념이기도 하다. 마치 살아 있는 나무와도 같이 자라나는 생물이다.
각 나라의 문화적 특성과 그 차이
문화적 차이와 같음 그리고 의미와 가치
“절대라는 말을 절대 다시 하지 말라 Never say, never again”는 007 영화 제목이 생각나는데, 그와 같이 영미국의 문화는 “NEVER”라는 말은 가급적 피하는 것이 좋은 것 같다. 사람의 일이란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고 하는데 누가 미래의 일을 확실하게 장담할 수 있다고,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다”, “결단코 없다” “결코 하지 않겠다”등의 말을 확실하게 단언할 수 있겠는가? 사람의 일에서 미래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아무도 모르는 법이고 따라서, “완전히 끝나기 전까지는 끝난 게 아니다 (It's not over till it's over.”라는 영어 속담이 말해주는 대로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불굴의 투지를 갖는 것이 요구되는 것 같다. “결코”라는 말은 두 번 다시 결코 꺼내지 마라”는 충고는 대개 옳은 것 같다.
객관식 시험 답안 고르는 요령 중에 하나 들어가는 사실을 예로 들어보자. 4지선다형 답안지에 들어있는 문항 중에 “결코”라는 문장이 들어 있는 문항은 정답이 아닐 확률이 높기 때문에 소위 “겐또 찍기”를 할 때는 그 문항을 제외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선생님에게 배운 기억이 있다. 인간생활에서 극단적인 일이 일어나는 경우는 표준분산 확률적으로 판단하면 경우의 수가 적을 것으로므로 자기가 정답을 모를 경우에 틀린 답을 생각되는 문항을 우선 제외시키고 나면 아마도 정답을 고를 확률이 높아지는 것 같다.
영미국인의 사고방식에서 본다면 결코 never라는 단어를 사용하며 확신적으로 판단한다고 해서 그런 다짐이 본인의 의지대로 끝까지 지켜내지는 것도 아닐뿐더러 또 사람의 일이란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어느 누군들 미래의 일을 확실하게 앞서 장담할 수 없다는 측면에서, “절대로” “결코” 등 이런 극단적이고 단정적인 낱말은 피하는 것이 보다 좋은 방향인 것 같다.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다”, “결단코 없다” 라는 표현으로 단정을 하기 보다는, 만약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자신이 모르는 일은 모른다고 말하는 것이 인간본성상 보다 바람직하게 보인다. 이런 측면에서 영미국인은 이런 단정적인 어휘인 “결코 never” 등의 말을 쓰면 그것은 그 말을 한 사람의 단호한 의지를 보여주기보다 오히려 그 말을 한 사람의 신뢰성이 떨어지게 된다는 것으로 인식하는 것 같다.
한편 프랑스 같은 대륙법국가들에서는 거꾸로 “항상 always”말을 사용하기를 장려하는 것 같다. 소년 소녀의 첫사랑의 영역에서나 결혼 맹세에서나 국기에 대한 맹세에서나 우리들의 사고는 거의 “항상”, “언제까지나”,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변함없이” 이렇게 사랑과 충성을 끝없이 맹세하기를 바라는 문화 같다. 사랑과 권력의 세계에서는 설령 “거짓 맹세”일지라도 “언제까지나” 사랑하고 충성한다는 다짐을 나타내기를 바라는 것 같다.
인간 경험칙상 사랑과 충성의 맹세는 상황이 변함에 따라 배신의 결과를 가져온다는 점은 역사를 통해서 알 수 있다. 입증 논거를 별도로 제시할 필요 없이 사람들 스스로의 인생 경험에 기대어 본다면 자명한 사실임을 수긍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언제까지나 사랑하고, 항상 충성한다고 맹세하기를 좋아하지만 권력과 사랑의 세계에서는 배신과 음모와 술수가 난무하는 것으로 밝혀지지 않던가?
우리나라와 프랑스 같은 대륙법국가의 문화는 “언제까지나”, “결코”같은 극단적인 단어와 사고방식을 좋아하는 (호기심에서 발자크의 “The Lily of Valley”소설에서 “never’, “always”등의 단어를 검색해 보니 나의 이러한 가정은 사실로 밝혀진 것 같다- “never” 단어 사용이 약 197번, “always”는 약 80번 사용된 것으로 조사되었다) 반면 영미법 국가의 문화는 “항상”이나 “절대”라는 단정적인 표현을 되도록이면 피하는 경향이 있다. (실제로 학교에서 글쓰기 훈련을 받을 때 선생으로부터 지적을 받는 사항이고, 나의 이 글쓰기 스타일에서도 한국식 표현으로는 약간 어색한 “~~같다”라는 표현을 쓰는 이유는 영미국의 철학적 사고가 배어 있기 때문이다). 어느 쪽이 인간 본성에 보다 가깝고, 보다 나은 결과를 가져올까?
“하늘아래 변하지 않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말은 인간 세상의 유동성과 불확실성을 말해준다. 세상만사 새옹지마라고 하거늘, 세상과 사람은 “변한다”는 사실을 애써 무시하거나 부정하려는 태도보다 오히려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서 진솔하게 대처하는 태도가 보다 나은 태도라고 생각된다. 변함이 상수인 인간세상에서 자기만은 “결코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다짐은 오히려 자신이 먼저 “변한다”는 것을 예견해 주는 것 같아서 그다지 신뢰성이 높게 보여지지 않는다.
이러한 비유는 “키케로 추종자”의 대한 인식과 평가에 대한 서로 상반되는 입장을 보여줄 것 같다. 우리나라나 프랑스 같은 대륙법 국가에서 키케로는 “완벽한 인간 perfect man”으로 추앙 받고 사회 지도층 인사의 상징적인 존재이다. 그렇지만 키케로 같이 모든 것을 다 갖춘 “완벽한 인간”은 현실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은 겉모습은 화려할지 몰라도 실상은 다른 경우가 다반사로 나타난다. 인간의 한계가 크기 때문에 애초부터 “완벽한 인간”이란 실현될 수 없다고 보는 것이 보다 진실에 가까울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는 완벽한 인간이 존재한다고 보는 수신제가치국평천하의 모델은 현실성이 낮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아마 영미인들은 그런 완벽한 인간의 모델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여기고 “완벽한 인간”을 추종하지 않을 것이다.
관점의 차이에 대해 흔히 드는 사례를 보자. 컵 속의 물이 반쯤 차 있을 때 어떤 사람은 “물이 반밖에 안찼다 (컵의 반은 비어있다 half empty”고 보는 반면 어떤 사람은 “물이 반까지 찼다(반은 찼다 half full)” 라고 서로 반대되는 반응을 보인다. 똑 같은 사건을 두고서 보는 시각이 다르면 반응도 달라질 것이다. 반응이 달라지면 결과도 달라질 것이다. 예컨대 물이 반쯤 비어있는 여기는 사람은 컵 속에 물을 더 채울 것이며 반면 물이 반쯤 찼다고 여기는 사람은 컵 속의 물을 비우려고 할 것이다. 이런 사례에서 볼 때 사람의 보는 시각 차이는 결과에서의 차이를 가져올 수 있다. 보는 관점에 따라서 행동의 동기와 그 결과가 달라지게 되는 것이다.
“노블레스 오블리주 Noblesse Oblige”는 “프랑스어 격언 French maxim”
노블레스 오블리주 Noblesse Oblige 개념은 따라 프랑스에서 유래한 “프랑스어 격언 French maxim”이다. 따라서 프랑스 말이므로 프랑스에 대한 지식이 없으면 비평을 전개해 낼 수 없을 것이다. 외국 것을 비평하려고 하려면 최소한 그 나라 사정에 정통할 것을 요구할 것은 당연하기 때문이다. 그 나라의 정치 사회 제도와 문화적 특성을 이해하려면 해당 언어에 정통해야 함은 역사적 지식 등을 필수적인 갖추어야 할 것 같다. 우리 속어 표현에 “알아야 면장을 한다”는 말이 있지 않던가? 필자는 프랑스에서 살아본 적이 없고 프랑스어를 구사할 언어능력을 갖추고 있지도 못하다. 따라서 첫째 조건을 갖추지 못해서 프랑스에 관련된 논평을 할 자격을 갖추었다고 보기 힘들다. 자기 나라가 아닌 다른 나라의 정치 제도에 관해서 논평하려다 보면 누구나가 망설이게 되는 것은 인지상정이고 필자 또한 그 장애물을 뛰어 넘을 수 없다. 하지만 해당 분야에서 프랑스 저작물이 영어로 거의 완벽할 정도로 훌륭한 번역물과 기타 자료가 충분하게 나와 있고, 또 관련 지식을 책이나 기타 지식 정보전달 매체를 통해서 어느 정도 갖출 수가 있다면, 최소한 일반적인 비평을 한다고 해서 그리 큰 잘못은 없다고 생각한다.
더구나 한국에서의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개념에 대한 이해가 잘못되고 있음을 지적하기 위해서 반박 근거로써 탐구한 자료를 바탕으로 비평을 전개한다는 것은 프랑스인들에게 대한 비평이 아니므로 원래적인 비평자의 자격 조건은 따질 필요가 없다. 이러한 배경에서 또 불어 저작물은 거의가 영어로 번역되고 있고 그 영어번역 수준은 거의 프랑스 원문 수준에 가깝다고 인정되므로 2차적인 영어 저작물에 기초하여 프랑스 문화를 우리나라에 소개하는 것은 영어가 세계 공용어가 된 오늘날 어떤 측면에서는 오히려 바람직한 추세이기도 한 것 같다.
이 책의 아쉬움을 하나 밝힌다면, 의무론 Deontological ethics, 미셀 푸코의 권력 이론 Discipline and punishment, 그리고 그람시의 “헤게모니 hegemony” 개념에 대한 설명을 싣고 있지 못하는 점이다. 그람시의 “헤게모니” 개념(헤게모니는 강제와 동의의 형태로 이뤄진다)을 검토 설명하려면 현재 텔레비전 방송 (종합편성 방송 채널을 포함한) 내용에 대한 검토를 필요로 하는데 필자의 능력과 자료 정리할 시공간이 도저히 허용되지 않아서 아쉽게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미완의 영역으로 남겨두고자 한다. 또 하나 아쉬운 점은 “법의 지배 rule of law” 개념을 비교 설명하면서 영국의 헌법학자 다이시 Dicey가 설명한 “프랑스 행정법”에 대한 심도 깊은 고찰을 부록으로 추가하지 못한 책의 편집상의 애로 또 “칼레의 시민”에 관한 프랑스어 원전(한국에서 프랑스어를 제2외국어로 선택한 경우가 협소한 측면을 고려하여) 대신 세계 공용어에 가까운 영어 자료를 부록으로 추가한 점이다. 다른 아쉬운 점 하나는, 2015년 3월 국회에서 법률 통과된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안”-소위 “김영란법”으로 잘 알려진 법률에 대한 비평을 실지 못한 점이다. 김영란법은 원래 제안되었던 규정-공직자가 자신의 가족 또는 친족 등과 이해관계가 있는 직무를 수행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의 “'이해 충돌 방지” 규정이 삭제된 바 애초의 법률 취지가 크게 훼손되었다는 점이 아쉽게 느껴진다. 전문가 직업 윤리 규율에 대한 보다 깊은 논의가 필요하고 요구된다.
14.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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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부록 (English)
I. “The Siege of Calais” in “Chronicles” – Jean Froissart
II. “The Six of Calais”- Bernard Shaw
III. “The Lily of Valley (Le Lys Dans La Vallee)” (in part)- de Balzac
I. “The Siege of Calais”
Froissart, “The Siege of Calais” in “Chronicles” Book one (97 -110).
Penguin Classics version of Froissar, Chronicles, UK, 1968.
As soon as the King of England arrived before Calais, he began in earnest to make full preparations for a regular siege. Between the town, the river and the bridge of Nieuley he had houses built of heavy planks, thatched with straw and brushwood and set out in properly ordered streets, as though they were to be lived in for a dozen years. He was determined to stay there through winter and summer till Calais was his, without regard for the time and effort it might cost him. His new town had everything that an army could need and more, including a place to hold markets on Wednesdays and Saturdays. There were haberdashers and butchers' shops, stalls selling cloth and bread and all other necessities, so that almost anything could be bought there. All these things were brought over daily by sea from England and goods and foodstuffs were also supplied from Flanders. In addition, the English made frequent raids on the surrounding country, going as far as the gates of Saint-Omer and Boulogne, and bringing back much plunder to replenish their stocks of food. The King made no assaults on Calais, for he knew that the effort would be wasted. Desiring to spare his men and artillery, he said that he would starve the place out, however long it took, unless King Philip of France came to fight him again and raise the siege.
When Sir Jean de Vienne, the military commander of Calais, saw that the English were preparing for a long siege, he gave orders for all the poorer people, who had no stocks of provisions, to leave the town immediately. one Wednesday morning more than seventeen hundred of them, men, women and children, came out and tried to pass through the English army. When asked why they were leaving, they replied that they had nothing to live on. The King gave them permission to pass safely through and ordered that a hearty meal should be provided for them and that each should be given two pence. This merciful act was highly praised, with good reason. While Edward is besieging Calais, David II of Scotland invades England, but is defeated and taken prisoner at Neville’s Cross. According to Froissart, Edward's queen, Philippa, accompanied the English army to the battlefield, returning to London after the victory with the prisoners.
The Queen of England, soundly advised by her men, had the King of Scotland, the Earl of Moray and the other Scottish lords put in the Tower under close guard and then turned to her other business. What she particularly desired was to go over to Calais to see her husband the King and her son the Prince of Wales. She hurried on with her preparations and, embarking at Dover, had such a favourable wind that, thanks to God, she was soon across. As can be imagined, she was welcomed with joy and she and all her ladies were soon lodged as honourably and comfortably as if they had been in London. They had landed on 29 October. on All Saints Day the King held a court in honour of the Queen and gave a dinner for all his lords and especially for the ladies. A large number had come over, both to accompany the Queen and to see their fathers, brothers and friends who were at the siege.
The siege went on for a long time and was the occasion for many fine exploits and feats of arms on land and sea, much too numerous for me to record. The King of France had posted so many good fighting men in the fortresses lying on the borders of Guines, Artois and Boulogne, and around Calais, and he. kept so many Genoese, Normans and other sailors at sea, that when the English went out foraging or raiding they rarely had it their own way and often ran into fierce encounters. There were also frequent skirmishes near the gates and moats of the town which always took their toll in killed and wounded. Sometimes one side would come off best, sometimes the other, as is usual in this type of fighting. King Edward and his council now gave much thought to the construction of various machines to harass the besieged, but against these the defenders of Calais took counter-measures and were so successful that they suffered no damage from them.
Since they could not be reduced in these ways, the only course was to starve them out. Supplies could only reach them clandestinely, and if they did so it was thanks to two master mariners called Marant and Mestriel, both from Abbeville. These two would slip boldly into Calais with their ships, often at great risk to themselves. They were often pursued and nearly caught between Boulogne and Calais, but they always escaped. Many of the English were killed or drowned in attempting to stop them.
During the siege Edward finds time for diplomacy. The Flemish burghers to the east still support him and, during his march from Normandy to Crecy their forces have been active south of Calais, no doubt with the idea of eventually linking up with the English army. But they have fallen back after failing to take Bethune. The Flemish ruling house, however, is still at loggerheads with the burghers and supports the French. The Count of Flanders has been killed at Crecy fighting beside King Philip. His fifteen-year-old son and successor also favours the French and is prepared to marry the daughter of the Duke of Brabant, now a French supporter. King Edward proposes an English marriage instead and offers his daughter Isabella. Knowing that this would seal an Anglo-Flemish alliance, the burghers get the young Count into their power and try to force him to change his mind. For a long time the young Count was in the hands of the Flemings, who kept him a prisoner, though in comfortable conditions. But he grew sick of this, for it was not what he was used to, and in the end he changed his attitude - whether sincerely or not I do not know - and told his people that he would do as they advised, since he had more to gain from them than from any other nation. At this they were delighted and released him. Some of his pleasures were restored, such as freedom to go hawking for waterfowl, a sport of which he was very fond. But he was followed everywhere by guards who were entirely favourable to the King of England and had sworn on their lives not to let him escape. They watched him so closely that he was hardly able to go and piss. This went on for some time, until the Count agreed with his people that he would marry the King of England's daughter. The Flemings therefore invited the King and Queen, who were outside Calais, to come to the Abbey of Bergues and bring her with them. They would bring their young lord, and the marriage would be arranged.
As may be imagined, the King and Queen were very pleased by this news and said that the Flemings were excellent people. A day was agreed by both parties for the meeting at Bergues, to which the most prominent notables from the Flemish towns came in great state with the young Count. He bowed courteously to the King and Queen of England who had already arrived with a large suite. The King took him gently by the right hand, complimenting him as he did so. Then he asked him to forgive him for the death of his father and said that, as God was his witness, he had neither seen nor heard anything of the Count of Flanders during the whole of the battle of Crecy, or the day after. The young Count appeared to be fairly well satisfied with this apology.
They then discussed the marriage and drew up the various clauses of an agreement which all parties swore to observe. The Count was betrothed to the King of England's daughter. Princess Isabella, whom he promised to marry. The ceremony was postponed until a later date when they would have more leisure and the Flemings returned to Flanders with their lord and the English sovereigns to Calais. So things remained for a time. King Edward prepared to celebrate the wedding with great pomp and provided himself with costly jewels to be distributed on the day. The Queen did the same, for she was accounted the most gracious and bountiful lady of her time and she wished to be true to her reputation.
After the young Count had gone home he still went hawking and seemed to be very pleased at the prospect of the marriage. The Flemish were almost entirely reassured and no longer had him watched so closely. But they were far from understanding their young lord's mind, for in spite of his outward behaviour he was entirely French at heart, as he was soon to show.
One day when he had gone out hawking near the river it was in the very week when he was to marry the English princess - his falconer loosed a falcon at a heron and the Count did the same. As the two falcons flew after their prey, the Count rode in pursuit, shouting: 'O-ee! O-ee!' as though to lure them. When he had gone a little way and had open country before him, he clapped his spurs to his horse and galloped off, leaving his guards far behind. He reached the province of Artois, where he was safe. From there he went to France to King Philip, to whom he told liis adventures and explained by what clever tricks he had escaped from his own people and the English. King Philip and the French said that he had done very well, but the English for their part said that he had betrayed them.
However, the King of England continued to be friendly to the Flemish. He knew that the Count had not been acting on their advice and that they were greatly displeased by what he had done. He therefore easily accepted the apologies which they made to him.
In the summer of i^4J King Philip gathers an army to relieve Calais, which is being steadily reduced by famine. His easiest way of approach would have been from the east, but the Flemings refuse to allow him to pass. He therefore follows much the same route as that which had led him to Crecy the year before and reaches the village of Sangatte, a few miles to the west of Calais:
When the King of England saw that King Philip had come with such a large army to raise the siege of a place which had already cost him so dear in money, lives and personal hardship - and this at a time when he had it in so tight a grip that it could not hold out much longer - it went entirely against his will to abandon his prize. He reflected that the French army had only two ways of approach to Calais - either along the dunes bordering the sea, or over country full of dikes and
swamps which could only be crossed by the single bridge of Nieuley. He therefore had all his ships brought in near the dunes and loaded with bombards, crossbowmen, longbow-men, siege catapults and such things, for fear of which the French army dare not and could not pass that way. on the bridge he posted his cousin the Earl of Derby with a large force of men-at-arms and archers, so blocking the only road across the marshes.
Between the hill of Sangatte and the coast towards Calais there was a high tower guarded by thirty-two English archers which stood directly in the path of the French if they went over the dunes. It was strongly protected by big double ditches. The levies from the French towns saw this tower and the men of Tournay, who were a good fifteen hundred strong, advanced resolutely towards it. The archers who were inside shot at them, wounding a number. This only angered the men of Tournay and they went fiercely to the assault of the tower, forced their way across the ditches and reached the mound on which the tower stood with their picks and mattocks. Many more of the attackers were wounded in the struggle which followed, but they fought on until they had taken the tower. All those inside were killed and the tower demolished. This was hailed in the French army as a great achievement.
When his army was encamped on the hill of Sangatte, the French king sent forward the Lord of Beaujeu and the Lord of Saint-Venant, who were Marshals of France at that time, to reconnoitre the best line of approach to the enemy. They made a thorough inspection of the country, then came back and told the King that they could see no way of reaching the English without suffering further heavy losses. So things remained for the rest of that day and the following night.
After mass the next morning, King Philip sent four envoys, on the advice of his council, to the King of England. They were Sir Geoffroy de Charny, Sir Eustache de Ribemont, Sir Guy de Nesle and the Lord of Beaujeu. With the Earl of Derby's permission they crossed the bridge of Nieuley and as they went they looked closely at its strong defences and formed a high opinion of the dispositions of the Earl and his men who were guarding it. They rode on unmolested, on King Edward's orders, until they came to where the King himself was waiting, surrounded by a large number of his knights. They immediately dismounted and bowed before the King, who received them fittingly. Sir Eustache de Ribemont, acting as their spokesman, then said: 'Sire, the King of France has sent us to inform you that he has come to this place and halted on the hill of Sangatte with the intention of fighting you, but he cannot see any way by which to reach you. Yet he would dearly like to, in order to raise the siege of his loyal town of Calais. He sent out his marshals to try to discover some way of approaching you, but the thing is impossible. He would therefore take it as a favour if you would call your council together - and he would do the same - and, according to the decision they came to, agree on a spot where we could fight each other. Such is the message and request which we have been charged to bring you.'
After a brief consultation with his advisers, the King of England replied: 'My lords, I fully understand the request which you bring from my adversary, who is wrongly retaining possession of my lawful heritage, to my great displeasure. Kindly tell him from me that I have every right to be where I am and where I have been for nearly a year, as he must have known, and he could have come to me sooner if he had wished to. But he has let me stay for so long that I have spent my resources heavily and I believe I have now done enough to be shortly master of the town and castle of Calais. So I am not disposed to do very much to suit his plans and convenience, or let slip the thing I have so strongly desired and bought so dearly. Tell him that if he and his men cannot get through that way, they must go on looking until they find another.'
The envoys take this answer back to King Philip, who receives it with anger and frustration. Two cardinals delegated by the Pope then intervene in an attempt to arrange general peace terms, but after three days negotiations break down on the question of the possession of Calais on which neither king will yield. The defenders of Calais, their provisions exhausted, look on helplessly at the comings-and-goings between the two stationary armies. Finally, King Philip gives up. 'Early one morning his army strikes camp and marches off.
After the departure of King Philip and his army, the people of Calais realized that the support on which they had been counting had failed them, and at the same time they were so weakened by hunger that the biggest and strongest among them could hardly stand. So they took counsel together and decided it would be better to throw themselves on the mercy of the King of England, if they could not obtain better terms, than to die one by one of starvation; for hunger might drive many of them frantic and cost them their souls with their bodies. They so entreated the Governor, Sir Jean de Vienne, to negotiate that at last he consented. He went on to the battlements and signalled to those outside that he wished to talk with them. When King Edward heard of this, he immediately sent out Sir Walter Manny and Lord Basset. They came to Sir Jean de Vienne and heard him say:
'My dear lords, you are very gallant knights with much experience of war, and you know that the King of France whom we serve sent us to this place to hold the town and castle for as long as our honour and his interests might re- quire it. We have done everything in our power, but now our help has failed us and you are pressing us so hard that we have nothing left to eat. We must all die or go mad with hunger if the noble king whom you serve does not take pity on us. So I ask you, dear lords, to beg him humbly to have mercy on us and allow us to go away just as we are, taking for himself the town and citadel and all the things in them. He will find enough to satisfy him.'
To this Sir Walter Manny replied: 'Sir John, Sir John, we know something of the intentions of our lord the King, for he has told us of them. We must warn you that it is not his purpose to let you go free as you suggest. His intention rather is that you should place yourselves entirely in his hands, to be ransomed or put to death as he chooses. The people of Calais have caused him so much trouble and vexation, have cost him so much money and so many lives, that you cannot wonder that he should be enraged against them.'
Sir Jean de Vienne replied: 'It would be too hard for us to agree to such conditions. Inside here we are a little band of knights and squires who have served our master loyally to the best of our ability, as you would serve yours in the same case, and we have undergone many hardships and sufferings in so doing. But we would rather suffer more than any man has yet endured than consent that the humblest groom or servant in the town should be worse treated than the greatest among us. We beg you, in the kindness of your heart, to go back to the King of England and entreat him to spare us. That would be a chivalrous act on your part. And we hope that his noble heart will move him to have pity on us.'
Indeed, yes,' said Sir Walter Manny, 1 will do that willingly. Sir John. And I sincerely hope he will listen to me, for it will go better with all of you if he does.'
The two English knights went off, leaving Sir Jean de Vienne standing on the battlements, for they were soon to return. King Edward was waiting for them at the entrance to his quarters, eager to have news of the state of Calais. With him were the Earl of Derby, the Earl of Northampton, the Earl of Arundel and several other English lords. His envoys bowed and went up to him and Sir Walter Manny began:
'Sire, we have seen the captain of Calais and have had a long conversation with him. It appears that he and his companions in arms as well as the citizens would be quite ready to surrender the town and castle and everything in them to you, on the sole condition that they were allowed to leave unharmed.'
'Sir Walter,' the King answered, 'you know something of our intentions concerning Calais. What was your reply?'
'Before God, sir,' said Sir Walter, 'I told them that you would agree to nothing, except that they should put themselves entirely in your hands, to live or die as you chose. When he heard this. Sir Jean de Vienne admitted that they were on the point of starvation but said that rather than surrender on those terms they would sell their lives as dearly as men ever did.'
'Sir Walter,' replied the King, 'there is not the slightest hope or prospect of my changing my mind.'
Sir Walter Manny went closer to the King and reasoned with him, saying, to help the defenders of Calais: 'My lord, you may well be mistaken, and you are setting a bad example for us. Suppose one day you sent us to defend one of your fortresses, we should go less cheerfully if you have these people put to death, for then they would do the same to us if they had the chance.' This argument did much to soften the King's heart, especially when most of his barons supported it. So he said: 'My lords, I do not want to be alone against you all. Walter, go back to Calais and tell its commander that this is the limit of my clemency : six of the principal citizens are to come out, with their heads and their feet bare, halters round their necks and the keys of the town and castle in their hands. With these six I shall do as I please, and the rest I will spare.'
'My lord,' said Sir Walter, 'I will do as you say.'
He went back to Calais to where Sir Jean de Vienne was waiting and told him what the King had said, adding that that was the most he could obtain. 'I am sure that is true,' said Sir Jean. ' Now I must ask you to be so good as to wait here while I report all this to the townspeople. It was they who sent me here to talk with you and they, I think, who must give you the answer.'
Sir Jean left the battlements and went to the market-place, where he had the bells rung to summon the people together. They all came, men and women, eager to hear the news, though they were so weak with hunger that they could scarcely stand. When they were assembled, Jean de Vienne quietly repeated all that had been said, telling them that nothing more could be hoped for and asking them to consult together and give their answer quickly. When he had finished speaking they began to cry out and weep so bitterly that their lamentations would have moved the stoniest heart. For a time they were unable to say anything in reply and Sir Jean himself was so moved that he also was weeping.
At last the richest citizen of the town, by name Master Eustache de Saint-Pierre, stood up and said:
'Sirs, it would be a cruel and miserable thing to allow such a population as this to die, so long as some remedy can be found. To prevent such a misfortune would surely be an act of great merit in Our Saviour's eyes and, for my part, I should have such strong hopes of receiving pardon for my sins if I died to save this people that I wish to be the first to come forward. I am willing to strip to my shirt, bare my head, put the rope round my neck, and deliver myself into the King of England's hands.'
When Master Eustache de Saint-Pierre had said this, his hearers were ready to worship him. Men and women flung themselves at his feet weeping bitterly. It was indeed a pitiful scene.
Then another greatly respected and wealthy citizen, who had two beautiful daughters, stood up and said that he would go with his friend Master Eustache de Saint-Pierre. His name was Master Jean d'Aire. A third, called Master Jacques de Wissant, who owned a rich family estate, offered to accompany them. Then his brother. Master Pierre de Wissant, and a fifth and a sixth, said they would go, too.
These six burghers stripped to their shirts and breeches there and then in the market-place, placed halters round their necks as had been stipulated and took the keys in their hands, each holding a bunch of them. Sir Jean de Vienne mounted a pony - for he could only walk with great difficulty - and led them to the gates. The men, women and children of Calais followed them weeping and wringing their hands. Sir Jean de Vienne had the gate opened and closed behind him, so that he stood with the six burghers between it and the outer barriers. He went to where Sir Walter Manny was waiting and said to him:
'Sir Walter, as the military commander of Calais and with the consent of the poor people of this town, I deliver up to you these six burghers. I swear that they have been and are to this day the most honourable and prominent citizens of Calais, by reason of their personal characters, their wealth and their ancestry, and that they carry with them all the keys of the town and citadel. And I beg you, noble sir, to intercede with the King of England not to have these good men put to death.'
'I do not know,' said Sir Walter, 'what the King will decide to do with them, but I promise you that I will do all I can.'
The barriers were then opened and Sir Walter Manny led off the six burghers, in the state I have described, straight towards the King's quarters, while Sir Jean de Vienne went back into the town.
At that time the King was in his chamber with a large company of earls, barons and knights. Hearing that the men of Calais were coming as he had ordered, he went out to the open space before his quarters, followed by his nobles and by great numbers of others who were curious to see them and learn what would happen to them. Even the Queen of England, who was far advanced in pregnancy, went out with her lord the King. When Sir Walter Manny arrived with the six burghers, he went up to the King and said: 'Sire, here is the deputation from Calais at your orders.'
The King kept quite silent and looked at them very fiercely, for he hated the people of Calais because of the losses they had inflicted on him at sea in the past. The six burghers knelt down before him and, clasping their hands in supplication, said: ‘Most noble lord and king, here before you are we six citizens of Calais, long established and wealthy merchants of the town. We surrender to you the keys of the town and the castle, to do with them as you will. We put ourselves as you see us entirely in your hands, in order to save the remaining inhabitants of Calais, who have already undergone great privations. We pray you by your generous heart to have mercy on us also.'
None of the brave men present, lords, knights or men-at-arms, could refrain from shedding tears of pity when they heard this. It was indeed a moving sight to see men so humiliated and in such mortal danger.
But the King continued to glare at them savagely, his heart so bursting with anger that he could not speak. When at last he did, it was to order their heads to be struck off immediately.
All the nobles and knights who were there begged the King to have mercy, but he w^ould not listen. Sir Walter Manny spoke up for them: 'Noble sire, curb your anger. You have a reputation for royal clemency. Do not perform an act which might tarnish it and allow you to be spoken of dishonourably. If you do not spare these men, the world will say that it was a cruel deed and that it was too harsh of you to put to death these honourable citizens who have voluntarily thrown themselves on your mercy to save the others.'
At this the King ground his teeth and said: 'That is enough, Sir Walter, my mind is made up. Let the executioner be sent for. The people of Calais have killed so many of my men that it is right that these should die in their turn.'
Then the noble Queen of England, pregnant as she was, humbly threw herself on her knees before the King and said, weeping: 'Ah, my dear lord, since I crossed the sea at great danger to myself, you know that I have never asked a single favour from you. But now I ask you in all humility, in the name of the Son of the Blessed Mary and by the love you bear me, to have mercy on these six men.'
The King remained silent for a time, looking at his gentle wife as she knelt in tears before him. His heart was softened, for he would not willingly have distressed her in the state she was in, and at last he said: 'My lady, I could wish you were anywhere else but here. Your appeal has so touched me that I cannot refuse it. So, although I do this against my will, here, take them. They are yours to do what you like with.'
The Queen thanked him from the bottom of her heart, then rose to her feet and told the six burghers to rise also. She had the halters taken from their necks and led them into her apartment. They were given new clothes and an ample dinner. Then each was presented with six nobles and they were escorted safely through the English army and went to live in various towns in Picardy.
After King Edward had handed over the six burghers to the Queen, he called Sir Walter Manny and his two Marshals and said to them: 'Sirs, take these keys of the town and castle of Calais and go and assume possession of them. Take the knights who are there and make them prisoners or else put them on parole; they are gentlemen and I will trust them on their word. All other soldiers, who have been serving there for pay, are to leave the place just as they are, and so is everyone else in the town, men, women and children, for I wish to repopulate Calais with pure-blooded English.' . . .
Now in my opinion it is very sad to reflect on the fate of those great burghers and their noble wives and their handsome children, who with their forefathers had been living for generations in Calais. There were many such on the day when it fell. It was harrowing for them to have to abandon their fine houses, their estates, their furniture and possessions; for they could take nothing away and they received no restitution or compensation from the King of France, for whose sake they had lost everything. I will say no more about them. They managed as well as they could, and the majority went to the town of Saint-Omer.[96]
When King Edward returned to London, he gave serious thought to the repopulation of Calais, sending there thirty-six wealthy and responsible citizens with their families, and more than three hundred other men of lesser standing. Their numbers grew continually because the King granted them such great liberties and privileges that many became eager to settle there.
II. The Six of Calais
The Six of Calais is a one act play by George Bernard Shaw (1936)
A.D. 4th August 1347. Before the walls of Calais on the last day of the siege. The pavilion of Edward III, King of England, is on your left as you face the walls. The pavilion of his consort Philippa of Hainault is on your right. Between them, near the King's pavilion, is a two-seated chair of state for public audiences. Crowds of tents cover the background; but there is a clear way in the middle through the camp to the great gate of the city with its drawbridge still up and its flag still flying.
The Black Prince, aged 17, arrives impetuously past the Queen's tent, a groom running after him.
THE PRINCE. Here is the King's pavilion without a single attendant to announce me. What can the matter be?
A child's scream is heard from the royal pavilion; and John of Gaunt, aged 7, dashes out and is making for his mother's tent when the Prince seizes him.
THE PRINCE. How now, Johnny? Whats the matter?
JOHN [struggling] Let me go. Father is in a frightful wax.
THE PRINCE. I shall be in a wax myself presently. [Releasing him] Off with you to mother. [The child takes refuge in the Queen's pavilion].
THE KING'S VOICE. Grrr! Yah! Why was I not told? Gogswoons, why was I not told? [Edward III, aged 35, dashes from his pavilion foaming]. Out! [The groom flies for his life]. How long have you been here? They never tell me anything. I might be a dog instead of a king.
THE PRINCE [about to kneel] Majesty--
THE KING. No no: enough of that. Your news. Anything from Scotland? Anything from Wales?
THE PRINCE. I--
THE KING [not waiting for the answer] The state of things here is past words. The wrath of God and all his saints is upon this expedition.
THE PRINCE. I hope not, sir. I--
THE KING [raging on] May God wither and blast this accursed town! You would have thought that these dogs would have come out of their kennels and grovelled for mercy at my summons. Am I not their lawful king, ha?
THE PRINCE. Undoubtedly, sir. They--
THE KING. They have held me up for twelve months! A whole year!! My business ruined! My plans upset! My money exhausted! Death, disease, mutiny, a dog's life here in the field winter and summer. The bitch's bastard who is in command of their walls came to demand terms from me! to demand terms!!! looked me straight in the eyes with his head up as if I--I, his king! were dirt beneath his feet. By God, I will have that head: I will kick it to my dogs to eat. I will chop his insolent herald into four quarters--
THE PRINCE [shocked] Oh no, sir: not a herald: you cannot do that.
THE KING. They have driven me to such extremity that I am capable of cutting all the heralds in Christendom into their quarterings. [He sits down in his chair of state and suddenly becomes ridiculously sentimental]. I have not told you the worst. Your mother, the Queen, my Philippa, is here: here! Edward, in her delicate state of health. Even that did not move them. They want her to die: they are trying to murder her and our innocent unborn child. Think of that, boy: Oh, think of that [he almost weeps].
THE PRINCE. Softly, father: that is not their fault: it is yours.
THE KING. Would you make a jest of this? If it is not their fault it shall be their misfortune; for I will have every man, woman, and child torn to pieces with red hot pincers for it.
THE PRINCE. Truly, dear Sir, you have great cause to be annoyed; but in sober earnest how does the matter stand? They must be suffering the last extremity of famine. Their walls may hold out; but their stomachs cannot. Cannot you offer them some sort of terms to end the business? Money is running short. Time is running short. You only make them more desperate by threatening them. Remember: it is good policy to build a bridge of silver for a flying foe.
THE KING. Do I not know it? Have I not been kind, magnanimous? Have I not done all that Christian chivalry could require of me? And they abuse my kindness: it only encourages them: they despise me for it.
THE PRINCE. What terms have you offered them?
THE KING. I have not threatened the life of a single knight. I have said that no man of gentle condition and noble blood shall be denied quarter and ransom. It was their knightly duty to make a show of arms against me. But [rising wrathfully] these base rascals of burgesses: these huckstering hounds of merchants who have made this port of Calais a nest of pirates: these usurers and tradesmen: these rebel curs who have dared to take up arms against their betters: am I to pardon their presumption? I should be false to our order, to Christendom, if I did not make a signal example.
THE PRINCE. By all means, sir. But what have you demanded?
THE KING. Six of the most purseproud of their burgesses, as they call themselves--by God, they begin to give themselves the airs of barons--six of them are to come in their shirts with halters round their necks for me to hang in the sight of all their people. [Raising his voice again and storming] They shall die the dog's death they deserve. They shall--
A court lady comes in.
THE COURT LADY. Sir: the Queen. Sssh!
THE KING [subsiding to a whisper] The Queen! Boy: not a word here. Her condition: she must not be upset: she takes these things so amiss: be discreet, for heaven's sake.
Queen Philippa, aged 33, comes from her pavilion, attended.
THE QUEEN. Dear child: welcome.
THE PRINCE. How do you, lady mother? [He kisses her hand].
THE KING [solicitously] Madam: are you well wrapped up? Is it wise to come into the cold air here? Had they better not bring a brazier and some cushions, and a hot drink--a posset--
THE QUEEN [curtseying] Sir: beloved: dont fuss. I am very well; and the air does me good. [To the Prince] You must cheer up your father, my precious. He will fret about my health when it is his own that needs care. I have borne him eleven children; and St Anne be my witness they have cost less looking after than this one big soldier, the greatest baby of them all. [To the King] Have you put on your flannel belly band, dearest?
THE KING. Yes, yes, yes, my love: do not bother about me. Think of yourself and our child--
THE QUEEN. Oh, leave me to take care of myself and the child. I am no maternal malingreuse I promise you. And now, sir sonny, tell me all your news. I--
She is interrupted by a shrill trumpet call.
THE KING. What is that? What now?
John of Gaunt, who has been up to the town gates to see the fun, runs in excitedly.
JOHN OF GAUNT [bending his knee very perfunctorily] Sire: they have surrendered: the drawbridge is down. The six old men have come out in their shirts with ropes round their necks.
THE KING [clouting him] Sssh! Hold your tongue, you young devil.
THE QUEEN. Old men in their shirts in this weather!! They will catch cold.
THE KING. It is nothing, madam my love: only the ceremony of surrender. You must go in: it is not fitting that these half naked men should be in your presence. I will deal with them.
THE QUEEN. Do not keep them too long in the cold, dearest sir.
THE KING [uxoriously waving her a kiss] My love!
The Queen goes into her pavilion; and a group of noblemen attendant on the King, including Sir Walter Manny and the Lords Derby, Northampton, and Arundel, issue from their tents and assemble behind the chair of state, where they are joined by the Black Prince, who stands at the King's right hand and takes charge of John of Gaunt.
THE KING. Now for these swine, these bloodsuckers. They shall learn--[shouting] Fetch me these fellows in here. Drag them in. I'll teach them to hold me up here for twelve months. I'll--
The six burgesses, hustled by men-at-arms, enter in their shirts and halters, each carrying a bunch of massive iron keys. Their leader, Eustache de St Pierre, kneels at the King's feet. Four of his fellow victims, Piers de Wissant, Jacques de Wissant, Jean d'Aire, and Gilles d'Oudebolle, kneel in pairs behind him, and, following his example, lay their keys on the ground. They are deeply cast down, bearing themselves like condemned men, yet maintaining a melancholy dignity. Not so the sixth, Piers de Rosty (nicknamed Hardmouth), the only one without a grey or white beard. He has an extraordinary dogged chin with a few bristles on it. He deliberately separates himself from the rest by passing behind the royal chair to the King's right and planting himself stiffly erect in an attitude of intense recalcitrance. The King, scowling fiercely at St Pierre and the rest, does not notice this until Peter flings down his keys with a violence which suggests that he would very willingly have brained Edward with them.
THE KING. on your knees, hound.
PETER. I am a good dog, but not of your kennel, Neddy.
THE KING. Neddy!!!!
PETER. Order your own curs: I am a free burgess and take commands from nobody.
Before the amazed monarch can retort, Eustache appeals to Peter.
EUSTACHE. Master Peter: if you have no regard for yourself, remember that our people, our wives and children, are at the mercy of this great king.
PETER. You mistake him for his grandfather. Great! [He spits].
EUSTACHE. Is this your promise to be patient?
PETER. Why waste civilities on him, Master Mayor? He can do no worse than hang us; and as to the town, I would have burnt it to the last brick, and every man, woman and child along with it, sooner than surrender. I came here to make up the tale of six to be hanged. Well, he can hang me; but he shall not outface me. I am as good a dog as he, any day in the week.
THE PRINCE. Fie, fellow! is this a way for one of thy degree to speak to an anointed king? Bear thyself as befits one of thy degree in the royal presence, or by Holy Paul--
PETER. You know how we have borne ourselves in his royal presence these twelve months. We have made some of you skip. Famine and not you, has beaten us. Give me a square meal and a good sword and stake all on a fair single combat with this big bully, or his black whelp here if he is afraid of me; and we shall see which is the better dog of the two.
THE KING. Drag him to his knees. Hamstring him if he resists.
Three men-at-arms dash at Peter and drag him to his knees. They take his halter and tie his ankles and wrists with it. Then they fling him on his side, where he lies helpless.
THE KING. And so, Master Burgess--
PETER. Bow-wow-wow!
THE KING [furious] Gag him. Gogswoons, gag him.
They tear a piece of linen from the back of his shirt, and bind his mouth with it. He barks to the last moment. John of Gaunt laughs ecstatically at this performance, and sets off some of the soldiers.
THE KING. If a man laughs I will have him flayed alive.
Dead silence.
THE KING. And now, fellows, what have ye to say to excuse your hardy and stubborn resistance for all these months to me, your king?
EUSTACHE. Sir, we are not fellows. We are free burgesses of this great city.
THE KING. Free burgesses! Are you still singing that song? Well, I will bend the necks of your burgesses when the hangman has broken yours. Am I not your overlord? Am I not your anointed king?
EUSTACHE. That is your claim, sir; and you have made it good by force of arms. We must submit to you and to God.
THE KING. Leave God out of this! What hast thou or thy like to do with God?
EUSTACHE. Nothing, sir: we would not so far presume. But with due respect to your greatness I would humbly submit to your Majesty that God may have something to do with us, seeing that he created us all alike and redeemed us by the blood of his beloved son.
THE KING [to the Prince] Can you make head or tail of this, boy? Is he accusing me of impiety? If he is, by God--
EUSTACHE. Sir, is it for me to accuse you of anything? Here we kneel in the dust before you, naked and with the ropes on our necks with which you will presently send us into the presence of our maker and yours. [His teeth chatter].
THE KING. Ay: you may well tremble. You have cause.
EUSTACHE. Yes: I tremble; and my teeth chatter: the few I have left. But you gentlemen that see our miserable plight, I call on your generosity as noblemen, on your chivalry as good knights, to bear witness for us that it is the cold of the morning and our naked condition that shakes us. We kneel to implore your King's mercy for our wretched and starving townsfolk, not for ourselves.
THE KING. Whose fault is it that they are starving? They have themselves to thank. Why did they not open their gates to me? Why did they take arms against their anointed king? Why should I have mercy on them or on you?
EUSTACHE. Sir: one is merciful not for reasons, but for the love of God, at whose hand we must all sue for mercy at the end of our days.
THE KING. You shall not save yourself by preaching. What right have you to preach? It is for churchmen and learned divines to speak of these mysteries, not for tradesmen and usurers. I'll teach you to rebel against your betters, whom God has appointed to keep you in obedience and loyalty. You are traitors; and as traitors you shall die. Thank my mercy that you are spared the torments that traitors and rebels suffer in England. [Rising] Away with them to the hangman; and let our trumpeters summon the townspeople to the walls to take warning from their dangling corpses.
The three men-at-arms begin to lift Peter. The others lay hands on his five colleagues.
THE KING. No: let that hound lie. Hanging is too good for him.
The Queen hurries in with her ladies in great concern. The men-at-arms release the burgesses irresolutely. It is evident that the Queen's arrival washes out all the King's orders.
THE QUEEN. Sir, what is this they tell me?
THE KING [hurrying across to intercept her] Madam: this is no place for you. I pray you, retire. The business is one in which it becomes you not to meddle.
THE QUEEN [evading him and passing on to inspect the burgesses] But these gentlemen. They are almost naked. It is neither seemly nor sufficient. They are old: they are half frozen: they should be in their beds.
THE KING. They soon will be. Leave us, madam. This is business of State. They are suffering no more than they deserve. I beg and pray you--I command you--
THE QUEEN. Dear sir, your wishes are my law and your commands my duty. But these gentlemen are very cold.
THE KING. They will be colder presently; so you need not trouble about that. Will it please you, madam, to withdraw at once?
THE QUEEN. Instantly, my dear Lord. [To Eustache] Sir: when his Majesty has ended his business with you, will you and your friends partake of some cups of hot wine in my pavilion? You shall be furnished with gowns.
THE KING [choking with wrath] Hot w--!
EUSTACHE. Alas, madam, when the King has ended his business with us we shall need nothing but our coffins. I also beg you to withdraw and hasten our despatch to that court where we shall not be held guilty for defending our hearths and homes to the last extremity. The King will not be baulked of his revenge; and we are shriven and ready.
THE QUEEN. Oh, you mistake, sir: the King is incapable of revenge: my husband is the flower of chivalry.
EUSTACHE. You little know your husband, madam. We know better what to expect from Edward Plantagenet.
THE KING [coming to him threateningly past his consort] Ha! do you, Master Merchant? You know better than the Queen! You and your like know what to expect from your lords and rulers! Well, this time you shall not be disappointed. You have guessed aright. You shall hang, every man of you, in your shirts, to make mirth for my horseboys and their trulls.
THE QUEEN. Oh no--
THE KING [thundering] Madam: I forbid you to speak. I bade you go: you would not; and now you shall see what I would have spared you had you been obedient. By God, I will be master in my own house and king in my own camp. Take these fellows out and hang them in their white beards.
The King takes his place on his chair of state with his arms folded implacably. The Queen follows him slowly and desolately. She takes her place beside him. The dead silence is very trying.
THE QUEEN [drooping in tears and covering her face with her hands] Oh!
THE KING [flinching] No no no no NO. Take her away.
THE QUEEN. Sir: I have been always a great trouble to you. I have asked you for a thousand favors and graces and presents. I am impatient and ungrateful, ever asking, asking, asking. Have you ever refused me even once?
THE KING. Well, is that a reason why I should give and grant, grant and give, for ever? Am I never to have my own way?
THE QUEEN. Oh, dearest sir, when next I ask you for a great thing, refuse me: teach me a lesson. But this is such a little thing. [Heartbroken] I cannot bear your refusing me a little thing.
THE KING. A little thing! You call this a little thing!
THE QUEEN. A very very little thing, sir. You are the King: you have at your disposal thousands of lives: all our lives from the noblest to the meanest. All the lives in that city are in your hand to do as you will with in this your hour of victory: it is as if you were God himself. You said once that you would lead ten kings captive to my feet. Much as I have begged from you I have never asked for my ten kings. I ask only for six old merchants, men beneath your royal notice, as my share of the spoils of your conquest. Their ransom will hardly buy me a new girdle; and oh, dear sir, you know that my old one is becoming too strait for me. Will you keep me begging so?
THE KING. I see very well that I shall not be allowed my own way. [He begins to cry].
THE QUEEN [throwing her arms round him] Oh, dear sir, you know I would die to spare you a moment's distress. There, there, dearest! [She pets him].
THE KING [blubbering] I am never allowed to do anything I want. I might as well be a dog as a king. You treat me like a baby.
THE QUEEN. Ah no: you are the greatest of kings to me, the noblest of men, my dearest lord and my dearest dearest love. [Throwing herself on her knees] Listen: do as you will: I will not say another word: I ask nothing.
THE KING. No: you ask nothing because you know you will get everything. [He rises, shouting] Take those men out of my sight.
THE PRINCE. What shall we do with them, sir?
THE KING [flinging himself back into his seat] Ask the Queen. Banquet them: feast them: give them my crown, my kingdom. Give them the clothes off my back, the bread out of my mouth, only take them away. Will you go, curses on you.
The five burgesses kneel gratefully to the Queen.
EUSTACHE [kissing her hand] Madam: our ransom shall buy you a threefold girdle of gold and a cradle of silver.
THE KING. Aye, well, see that it does: see that it does.
The burgesses retire, bowing to the Queen, who, still on her knees, waves her hand graciously to them.
THE QUEEN. Will you not help me up, dear sir?
THE KING. Oh yes, yes [raising her]: you should be more careful: who knows what harm you may have done yourself flopping on your knees like that?
THE QUEEN. I have done myself no harm, dear sir; but you have done me a world of good. I have never been better nor happier in my life. Look at me. Do I not look radiant?
THE KING. And how do I look? Like a fool.
JOHN OF GAUNT. Sir: the men-at-arms want to know what they are to do with this fellow?
THE KING. Aye, I forgot him. Fetch him here.
The three men-at-arms carry Peter to the King, and fling him down. The King is now grinning. His paroxysm of tears has completely discharged his ill temper. It dawns on him that through Peter he may get even with Philippa for his recent domestic defeat.
THE QUEEN. Oh, the poor man has not even a proper shirt to wear. It is all torn: it is hardly decent.
THE KING. Look well at this man, madam. He defied me. He spat at me. There is no insult that he did not heap on me. He looked me in the face and spoke to me as if I were a scullion. I swear to you by the Holy Rood, he called me Neddy! Donkeys are called Neddy. What have you to say now? Is he, too, to be spared and petted and fed and have a gown from you?
THE QUEEN [going to Peter] But he is blue with cold. I fear he is dying. Untie him. Lift him up. Take that bandage off his mouth. Fie fie! I believe it is the tail of his shirt.
THE KING. It is cleaner than his tongue.
The men-at-arms release Peter from his bonds and his gag. He is too stiff to rise. They pull him to his feet.
PETER [as they lift him groaning and swearing] Ah-ooh-oh-ow!
THE KING. Well? Have you learnt your lesson? Are you ready to sue for the Queen's mercy?
PETER. Yah! Henpecked! Kiss mammy!
THE KING [chuckles]!!
THE QUEEN [severely] Are you mad, Master Burgess? Do you not know that your life is in the King's hand? Do you expect me to recommend you to his mercy if you forget yourself in this unseemly fashion?
PETER. Let me tell you, madam, that I came here in no ragged shirt. I have a dozen shirts of as fine web as ever went on your back. Is it likely that I, a master mercer, would wear aught but the best of the best to go to my grave in?
THE QUEEN. Mend you manners first, sir; and then mend your linen; or you shall have no countenance from me.
PETER. I have naught to do with you, madam, though I well see who wears the breeches in this royal household. I am not skilled in dealing with fine handsome ladies. Leave me to settle my business with your henpecked husband.
THE QUEEN. You shall suffer for this insolence. [To the King] Will you, my lord, stand by and hear me spoken to in this tone by a haberdasher?
THE KING [grinning] Nay: I am in a merciful mood this morning. The poor man is to be pitied, shivering there in his shirt with his tail torn off.
PETER. Shivering! You lie in your teeth, though you were fifty kings. No man alive shall pity Peter Hardmouth, a dog of lousy Champagne.
THE KING [going to him] Ha! A dog of Champagne! Oh, you must pardon this man, madam; for my grandmother hailed from that lousy province; so I also am a dog of Champagne. We know one another's bark. [Turning on him with bristling teeth] Eh?
PETER [growling in his face like a dog] Grrrr!!!
THE KING [returning the growl chin to chin] Grrrr!!!!!!
They repeat this performance, to the great scandal of the Queen, until it develops into a startling imitation of a dog fight.
THE QUEEN [tearing the two dogs asunder] Oh, for shame, sir! And you fellow: I will have you muzzled and led through the streets on a chain and lodged in a kennel.
THE KING. Be merciful, lady. I have asked you for many favors, and had them granted me too, as the world, please God, will soon have proof. Will you deny me this?
THE QUEEN. Will you mock my condition before this insolent man and before the world? I will not endure it.
THE KING. Faith, no, dearest: no mockery. But you have no skill in dealing with the dogs of lousy Champagne. We must pity this poor trembling fellow.
THE QUEEN [angrily] He is not trembling.
PETER. No, by all the saints in heaven and devils in hell. Well said, lass.
He nudges her, to her extreme indignation.
THE KING. Hear that, dearest: he calls thee lass. Be kind to him. He is only a poor old cur who has lost half his teeth. His condition would move a heart of stone.
PETER. I may be an old cur; but if I had sworn to hang the six of us as he swore, no shrew should scold me out of it, nor any softbosomed beauty wheedle me out of it. Yah, cry baby! Give her your sword and sit in the corner with her distaff. The grey mare is the better horse here. Do your worst, dame: I like your spunk better than his snivel.
THE QUEEN [raging] Send him away, sir. He is too ugly; and his words are disgusting. Such objects should be kept out of my sight: would you have me bear you a monster? Take him away.
THE KING. Away with him. Hurt him not; but let him not come into the Queen's presence. Quick there. Off with him.
The men-at-arms lay hands on Peter who struggles violently.
PETER. Hands off me, spaniels. Arrr! Grrr! [As they drag him out overpowered] Gee-up, Neddy. [He finishes with a spirited imitation of a donkey's bray].
THE KING. That is how they build men in Champagne. By the Holy Rood I care not if a bit of him gets into our baby.
THE QUEEN. Oh, for shame! for shame! Have men no decency?
The King snatches her into his arms, laughing boisterously. The laugh spreads to all the soldiers and courtiers. The whole camp seems in a hilarious uproar.
THE QUEEN. No no: for shame! for shame!
The King stops her mouth with a kiss. Peter brays melodiously in the distance.
III. “The Lily of Valley (Le Lys Dans La Vallee)”- H. De Balzac, English translated by Waring, The Gebbie Publishing Co., Ltd., 1898
What happiness for me, dear friend, to gather the scattered elements of my experience that I may arm you against the dangers of the world, through which I pray that you pass scatheless. I have felt the highest pleasures of maternal love as night after night I have thought of these things. While writing this letter, sentence by sentence, projecting my thoughts into the life you are about to lead, I went often to my window. Looking at the towers of Frapesle, visible in the moonlight, I said to myself, "He sleeps, I wake for him." Delightful feelings! which recall the happiest of my life, when I watched Jacques sleeping in his cradle and waited till he wakened, to feed him with my milk.
You are the man-child whose soul must now be strengthened by precepts never taught in schools, but which we women have the privilege of inculcating. These precepts will influence your success; they prepare the way for it, they will secure it. Am I not exercising a spiritual motherhood in giving you a standard by which to judge the actions of your life; a motherhood comprehended, is it not, by the child? Dear Felix, let me, even though I may make a few mistakes, let me give to our friendship a proof of the disinterestedness which sanctifies it.
In yielding you to the world I am renouncing you; but I love you too well not to sacrifice my happiness to your welfare.
For the last four months you have made me reflect deeply on the laws and customs which regulate our epoch. The conversations I have had with my aunt, well-known to you who have replaced her, the events of Monsieur de Mortsauf's life, which he has told me, the tales related by my father, to whom society and the court are familiar in their greatest as well as in their smallest aspects, all these have risen in my memory for the benefit of my adopted child at the moment when he is about to be launched, well-nigh alone, among men; about to act without adviser in a world where many are wrecked by their own best qualities thoughtlessly displayed, while others succeed through a judicious use of their worst.
I ask you to ponder this statement of my opinion of society as a whole; it is concise, for to you a few words are sufficient.
I do not know whether societies are of divine origin or whether they were invented by man. I am equally ignorant of the direction in which they tend. What I do know certainly is the fact of their existence. No sooner therefore do you enter society, instead of living a life apart, than you are bound to consider its conditions binding; a contract is signed between you. Does society in these days gain more from a man than it returns to him? I think so; but as to whether the individual man finds more cost than profit, or buys too dear the advantages he obtains, concerns the legislator only; I have nothing to say to that. In my judgment you are bound to obey in all things the general law, without discussion, whether it injures or benefits your personal interests.
This principle may seem to you a very simple one, but it is difficult of application; it is like sap, which must infiltrate the smallest of the capillary tubes to stir the tree, renew its verdure, develop its flowers, and ripen fruit.
Dear, the laws of society are not all written in a book; manners and customs create laws, the more important of which are often the least known.
Believe me, there are neither teachers, nor schools, nor text-books for the laws that are now to regulate your actions, your language, your visible life, the manner of your presentation to the world, and your quest of fortune.
Neglect those secret laws or fail to understand them, and you stay at the foot of the social system instead of looking down upon it.
Even though this letter may seem to you diffuse, telling you much that you have already thought, let me confide to you a woman's ethics.
To explain society on the theory of individual happiness adroitly won at the cost of the greater number is a monstrous doctrine, which in its strict application leads men to believe that all they can secretly lay hold of before the law or society or other individuals condemn it as a wrong is honestly and fairly theirs.
Once admit that claim and the clever thief goes free; the woman who violates her marriage vow without the knowledge of the world is virtuous and happy; kill a man, leaving no proof for justice, and if, like Macbeth, you win a crown you have done wisely; your selfish interests become the higher law; the only question then is how to evade, without witnesses or proof, the obstacles which law and morality place between you and your self-indulgence.
To those who hold this view of society, the problem of making their fortune, my dear friend, resolves itself into playing a game where the stakes are millions or the galleys, political triumphs or dishonor. Still, the green cloth is not long enough for all the players, and a certain kind of genius is required to play the game. I say nothing of religious beliefs, nor yet of feelings; what concerns us now is the running-gear of the great machine of gold and iron, and its practical results with which men's lives are occupied.
Dear child of my heart, if you share my horror at this criminal theory of the world, society will present to your mind, as it does to all sane minds, the opposite theory of duty. Yes, you will see that man owes himself to man in a thousand differing ways.
To my mind, the duke and peer owe far more to the workman and the pauper than the pauper and the workman owe to the duke. The obligations of duty enlarge in proportion to the benefits which society bestows on men; in accordance with the maxim, as true in social politics as in business, that the burden of care and vigilance is everywhere in proportion to profits. Each man pays his debt in his own way. When our poor toiler at the Rhetoriere comes home weary with his day's work has he not done his duty? Assuredly he has done it better than many in the ranks above him.
If you take this view of society, in which you are about to seek a place in keeping with your intellect and your faculties, you must set before you as a generating principle and mainspring, this maxim: never permit yourself to act against either your own conscience or the public conscience.
Though my entreaty may seem to you superfluous, yet I entreat, yes, your Henriette implores you to ponder the meaning of that rule. It seems simple but, dear, it means that integrity, loyalty, honor, and courtesy are the safest and surest instruments for your success. In this selfish world you will find many to tell you that a man cannot make his way by sentiments, that too much respect for moral considerations will hinder his advance.
It is not so; you will see men ill-trained, ill-taught, incapable of measuring the future, who are rough to a child, rude to an old woman, unwilling to be irked by some worthy old man on the ground that they can do nothing for him; later, you will find the same men caught by the thorns which they might have rendered pointless, and missing their triumph for some trivial reason; whereas the man who is early trained to a sense of duty does not meet the same obstacles; he may attain success less rapidly, but when attained it is solid and does not crumble like that of others.
When I show you that the application of this doctrine demands in the first place a mastery of the science of manners, you may think my jurisprudence has a flavor of the court and of the training I received as a Lenoncourt.
My dear friend, I do attach great importance to that training, trifling as it seems. You will find that the habits of the great world are as important to you as the wide and varied knowledge that you possess. Often they take the place of such knowledge; for some really ignorant men, born with natural gifts and accustomed to give connection to their ideas, have been known to attain a grandeur never reached by others far more worthy of it.
I have studied you thoroughly, Felix, wishing to know if your education, derived wholly from schools, has injured your nature. God knows the joy with which I find you fit for that further education of which I speak.
The manners of many who are brought up in the traditions of the great world are purely external; true politeness, perfect manners, come from the heart, and from a deep sense of personal dignity. This is why some men of noble birth are, in spite of their training, ill-mannered, while others, among the middle classes, have instinctive good taste and only need a few lessons to give them excellent manners without any signs of awkward imitation.
Believe a poor woman who no longer leaves her valley when she tells you that this dignity of tone, this courteous simplicity in words, in gesture, in bearing, and even in the character of the home, is a living and material poem, the charm of which is irresistible; imagine therefore what it is when it takes its inspiration from the heart.
Politeness, dear, consists in seeming to forget ourselves for others; with many it is social cant, laid aside when personal self-interest shows its cloven-foot; a noble then becomes ignoble.
But--and this is what I want you to practice, Felix--true politeness involves a Christian principle; it is the flower of Love, it requires that we forget ourselves really.
In memory of your Henriette, for her sake, be not a fountain without water, have the essence and the form of true courtesy.
Never fear to be the dupe and victim of this social virtue; you will someday gather the fruit of seeds scattered apparently to the winds. My father used to say that one of the great offences of sham politeness was the neglect of promises.
When anything is demanded of you that you cannot do, refuse positively and leave no loopholes for false hopes; on the other hand, grant at once whatever you are willing to bestow. Your prompt refusal will make you friends as well as your prompt benefit, and your character will stand the higher; for it is hard to say whether a promise forgotten, a hope deceived does not make us more enemies than a favor granted brings us friends.
Dear friend, there are certain little matters on which I may dwell, for I know them, and it comes within my province to impart them.
Be not too confiding, nor frivolous, nor over enthusiastic, --three rocks on which youth often strikes. Too confiding a nature loses respect, frivolity brings contempt, and others take advantage of excessive enthusiasm.
In the first place, Felix, you will never have more than two or three friends in the course of your life. Your entire confidence is their right; to give it to many is to betray your real friends. If you are more intimate with some men than with others keep guard over yourself; be as cautious as though you knew they would one day be your rivals, or your enemies; the chances and changes of life require this.
Maintain an attitude which is neither cold nor hot; find the medium point at which a man can safely hold intercourse with others without compromising himself.
Yes, believe me, the honest man is as far from the base cowardice of Philinte as he is from the harsh virtue of Alceste. The genius of the poet is displayed in the mind of this true medium; certainly all minds do enjoy more the ridicule of virtue than the sovereign contempt of easy-going selfishness which underlies that picture of it; but all, nevertheless, are prompted to keep themselves from either extreme.
As to frivolity, if it causes fools to proclaim you a charming man, others who are accustomed to judge of men's capacities and fathom character, will winnow out your tare and bring you to disrepute, for frivolity is the resource of weak natures, and weakness is soon appraised in a society which regards its members as nothing more than organs--and perhaps justly, for nature herself puts to death imperfect beings.
A woman's protecting instincts may be roused by the pleasure she feels in supporting the weak against the strong, and in leading the intelligence of the heart to victory over the brutality of matter; but society, less a mother than a stepmother, adores only the children who flatter her vanity.
As to ardent enthusiasm, that first sublime mistake of youth, which finds true happiness in using its powers, and begins by being its own dupe before it is the dupe of others, keep it within the region of the heart's communion, keep it for woman and for God.
Do not hawk its treasures in the bazaars of society or of politics, where trumpery will be offered in exchange for them.
Believe the voice which commands you to be noble in all things when it also prays you not to expend your forces uselessly.
Unhappily, men will rate you according to your usefulness, and not according to your worth. To use an image which I think will strike your poetic mind, let a cipher be what it may, immeasurable in size, written in gold, or written in pencil, it is only a cipher after all.
A man of our times has said, "No zeal, above all, no zeal!" The lesson may be sad, but it is true, and it saves the soul from wasting its bloom. Hide your pure sentiments, or put them in regions inaccessible, where their blossoms may be passionately admired, where the artist may dream amorously of his master-piece. But duties, my friend, are not sentiments. To do what we ought is by no means to do what we like. A man who would give his life enthusiastically for a woman must be ready to die coldly for his country.
One of the most important rules in the science of manners is that of almost absolute silence about ourselves.
Play a little comedy for your own instruction; talk of yourself to acquaintances, tell them about your sufferings, your pleasures, your business, and you will see how indifference succeeds pretended interest; then annoyance follows, and if the mistress of the house does not find some civil way of stopping you the company will disappear under various pretexts adroitly seized. Would you, on the other hand, gather sympathies about you and be spoken of as amiable and witty, and a true friend? talk to others of themselves, find a way to bring them forward, and brows will clear, lips will smile, and after you leave the room all present will praise you. Your conscience and the voice of your own heart will show you the line where the cowardice of flattery begins and the courtesy of intercourse ceases.
One word more about a young man's demeanor in public.
My dear friend, youth is always inclined to a rapidity of judgment which does it honor, but also injury. This was why the old system of education obliged young people to keep silence and study life in a probationary period beside their elders. Formerly, as you know, nobility, like art, had its apprentices, its pages, devoted body and soul to the masters who maintained them. To-day youth is forced in a hot-house; it is trained to judge of thoughts, actions, and writings with biting severity; it slashes with a blade that has not been fleshed. Do not make this mistake. Such judgments will seem like censures to many about you, who would sooner pardon an open rebuke than a secret wound. Young people are pitiless because they know nothing of life and its difficulties. The old critic is kind and considerate, the young critic is implacable; the one knows nothing, the other knows all. Moreover, at the bottom of all human actions there is a labyrinth of determining reasons on which God reserves for himself the final judgment. Be severe therefore to none but yourself.
Your future is before you; but no one in the world can make his way unaided. Therefore, make use of my father's house; its doors are open to you; the connections that you will create for yourself under his roof will serve you in a hundred ways.
But do not yield an inch of ground to my mother; she will crush anyone who gives up to her, but she will admire the courage of whoever resists her. She is like iron, which if beaten, can be fused with iron, but when cold will break everything less hard than itself. Cultivate my mother; for if she thinks well of you she will introduce you into certain houses where you can acquire the fatal science of the world, the art of listening, speaking, answering, presenting yourself to the company and taking leave of it; the precise use of language, the something--how shall I explain it?--which is no more superiority than the coat is the man, but without which the highest talent in the world will never be admitted within those portals.
I know you well enough to be quite sure I indulge no illusion when I imagine that I see you as I wish you to be; simple in manners, gentle in tone, proud without conceit, respectful to the old, courteous without servility, above all, discreet.
Use your wit but never display it for the amusement of others; for be sure that if your brilliancy annoys an inferior man, he will retire from the field and say of you in a tone of contempt, "He is very amusing." Let your superiority be leonine.
Moreover, do not be always seeking to please others. I advise a certain coldness in your relations with men, which may even amount to indifference; this will not anger others, for all persons esteem those who slight them; and it will win you the favor of women, who will respect you for the little consequence that you attach to men.
Never remain in company with those who have lost their reputation, even though they may not have deserved to do so; for society holds us responsible for our friendships as well as for our enmities. In this matter let your judgments be slowly and maturely weighed, but see that they are irrevocable.
When the men whom you have repulsed justify the repulsion, your esteem and regard will be all the more sought after; you have inspired the tacit respect which raises a man among his peers.
I behold you now armed with a youth that pleases, grace which attracts, and wisdom with which to preserve your conquests. All that I have now told you can be summed up in two words, two old-fashioned words, "Noblesse oblige."
Now apply these precepts to the management of life. You will hear many persons say that strategy is the chief element of success; that the best way to press through the crowd is to set some men against other men and so take their places. That was a good system for the Middle Ages, when princes had to destroy their rivals by pitting one against the other; but in these days, all things being done in open day, I am afraid it would do you ill-service. No, you must meet your competitors face to face, be they loyal and true men, or traitorous enemies whose weapons are calumny, evil-speaking, and fraud.
But remember this, you have no more powerful auxiliaries than these men themselves; they are their own enemies; fight them with honest weapons, and sooner or later they are condemned. As to the first of them, loyal men and true, your straightforwardness will obtain their respect, and the differences between you once settled (for all things can be settled), these men will serve you.
Do not be afraid of making enemies; woe to him who has none in the world you are about to enter; but try to give no handle for ridicule or disparagement. I say _try_, for in Paris a man cannot always belong solely to himself; he is sometimes at the mercy of circumstances; you will not always be able to avoid the mud in the gutter nor the tile that falls from the roof.
The moral world has gutters where persons of no reputation endeavor to splash the mud in which they live upon men of honor. But you can always compel respect by showing that you are, under all circumstances, immovable in your principles. In the conflict of opinions, in the midst of quarrels and cross-purposes, go straight to the point, keep resolutely to the question; never fight except for the essential thing, and put your whole strength into that.
You know how Monsieur de Mortsauf hates Napoleon, how he curses him and pursues him as justice does a criminal; demanding punishment day and night for the death of the Duc d'Enghien, the only death, the only misfortune, that ever brought the tears to his eyes; well, he nevertheless admired him as the greatest of captains, and has often explained to me his strategy.
May not the same tactics be applied to the war of human interests; they would economize time as heretofore they economized men and space. Think this over, for as a woman I am liable to be mistaken on such points which my sex judges only by instinct and sentiment.
One point, however, I may insist on; all trickery, all deception, is certain to be discovered and to result in doing harm; whereas every situation presents less danger if a man plants himself firmly on his own truthfulness.
If I may cite my own case, I can tell you that, obliged as I am by Monsieur de Mortsauf's condition to avoid litigation and to bring to an immediate settlement all difficulties which arise in the management of Clochegourde, and which would otherwise cause him an excitement under which his mind would succumb, I have invariably settled matters promptly by taking hold of the knot of the difficulty and saying to our opponents: "We will either untie it or cut it!"
It will often happen that you do a service to others and find yourself ill-rewarded; I beg you not to imitate those who complain of men and declare them to be all ungrateful.
That is putting themselves on a pedestal indeed! and surely it is somewhat silly to admit their lack of knowledge of the world.
But you, I trust, will not do good as a usurer lends his money; you will do it--will you not?--for good's sake. Noblesse oblige.
Nevertheless, do not bestow such services as to force others to ingratitude, for if you do, they will become your most implacable enemies; obligations sometimes lead to despair, like the despair of ruin itself, which is capable of very desperate efforts. As for yourself, accept as little as you can from others. Be no man's vassal; and bring yourself out of your own difficulties.
You see, dear friend, I am advising you only on the lesser points of life.
In the world of politics things wear a different aspect; the rules which are to guide your individual steps give way before the national interests. If you reach that sphere where great men revolve you will be, like God himself, the sole arbiter of your determinations. You will no longer be a man, but law, the living law; no longer an individual, you are then the Nation incarnate.
But remember this, though you judge, you will yourself be judged; hereafter you will be summoned before the ages, and you know history well enough to be fully informed as to what deeds and what sentiments have led to true grande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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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고려대 편찬 “한국어대사전”, 1254쪽.
[2] 손용근, “노블레스 오블리주”, 한양법학, 제21집(2007년8월), 167-174.
[3] 김해연, “언론 담화에 나타나는 사회지도층 인사에 대한 비판 담화 분석적 연구”, 텍스트언어학, 제34집(2013년6월), 33-62.
[4]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5/04/12/2015041202681.html
[5] “We have, … as any one can see, the authority of the government has gradually been introducing itself into the natural sphere of the Courts, … For the intervention of the Courts of Justice into the sphere of government only impedes the management of business, whilst the intervention of government in the administration of justice depraves citizens and turns them at the same time both into revolutionists and slaves.”, Dicey, at 233.
[6] 김재춘 외, “실천적 인성교육이 반영된 교육과정 개발 방향 연구”, 교육과학기술부 정책 2012, 40쪽.
[7] “virtue-words are defined with reference to particular persons in particular times and places.”
[8] “형법 제241조 위헌소원” 2009헌바17 2015.2.26 선고. 헌법재판소는 2015년 2월 26일 재판관 7:2의 의견으로, 간통 및 상간행위에 대하여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규정한 형법 제241조가 헌법에 위반된다는 결정을 선고하였다.
[9] 손용근, 각주 2.
[10] 김해연, 각주 3.
[11] “고려대 한국어대사전”, 1254쪽.
[12] 각주 2 &3.
[13] Ibid.
[14] “Here's what fr.wiktionary.org has to say about it (from the Dictionnaire de l’Académie française): noblesse oblige féminin
1. Quiconque prétend être noble doit se conduire noblement.
2. (Figuré) on doit agir en conformité avec la situation qu’on occupe, avec la réputation qu’on s’est acquise.
In English:
1. Whoever claims to be noble must conduct himself nobly.
2. (Figuratively) one must act in a fashion that conformes with one's position, and with the reputation that one has earned.” http://en.wiktionary.org/wiki/Talk:noblesse_oblige
[15] “Oxford American College Dictionary”, Oxford University Press, 2002, at 921.
[16] (물론 흑인과 백인 사이에 기본적 능력 차이가 존재한다는 이론이 존재한다는 것 그 자체까지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17] 김해연, 각주 3.
[18] 어느 누구도 법 위에 있지 않다는 원칙뿐만 아니라 또 어떤 지위나 신분을 막론하고 누구든지 보통법에 따르게 되고 Everyone is subject to the law 또 재판권의 행사는 보통법원에 귀속된다는 것을 뜻한다. “법이 사람 위에 존재한다 Be you never so high, the law is above you." 미국적 표현으로는 “미국에서는 법이 왕이다 In American, the Law is king.”이라고 말한 토마스 페인의 말이 널리 알려져 있다.
[19] 다이시, “헌법학 입문”, 2부4장, 법의 지배.
[20] Wiki Dictionary.
[21] “In the world of politics things wear a different aspect; the rules which are to guide your individual steps give way before the national interests. If you reach that sphere where great men revolve you will be, like God himself, the sole arbiter of your determinations. You will no longer be a man, but law, the living law; no longer an individual, you are then the Nation incarnate. But remember this, though you judge, you will yourself be judged; hereafter you will be summoned before the ages, and you know history well enough to be fully informed as to what deeds and what sentiments have led to true grandeur.”, de Balzac, “Lily of the Valley”.
[22] “남이 하면 불륜이고 내가 하면 로맨스”이고, “두 집 살림”이 가능하다고 보는 프랑스 문화(대륙법국가의 오랜 전통인 일부다처제)는 인간본성에도 잘 어울리지 않을 것 같다.
[23] “I behold you now armed with a youth that pleases, grace which attracts, and wisdom with which to preserve your conquests. All that I have now told you can be summed up in two words, two old-fashioned words, "Noblesse oblige." de Balzac, Chapter 2, “Lily of the Valley” (1836).
[24] 발자크의 소설, “The Lily of Valley” 중에서 “노블레스 오블리주” 개념을 설명하고 있는 부분을 번역한 것이다. 글 속의 헤딩은 발자크 원문에는 들어 있지 않고 다만 독자의 이해 편의를 위하여 필자가 추가로 삽입하였다.
[25] 내가 이야기한 모든 충고는 ‘지위가 높으면 의무 또한 크다’는 뜻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Noblesse oblige”라는 프랑스 격언으로 요약됩니다.
[26] 부산과 대마도 간 거리는 52㎞ 떨어져 있다. 날씨가 맑은 날이면 육안으로도 관측 가능하다.
[27] 소스, 위키 백과.
[28] Jean Froissart, “Chronicles”, Penguin Classics, 97-110.
[29] Richard Swedberg, “Auguste Rodin’s The Burghers of Calais: The Career of a Sculpture and its Appeal to Civic Heroism”, Theory, Culture & Society April 2005 22(2): 45-67, http://www.soc.cornell.edu/faculty/swedberg/2005%20Auguste%20Rodin's%20The%20Burghers%20of%20Calais.pdf.
[30] 우리나라의 예를 들자면 을사보호강제조약을 맺은 을사오적 이완용은 친일파 입장에선 일본의 무력으로 강제 점령을 막아낸 영웅적 인물로써 미화시킬 수도 있을 테고, 일본 입장에선 일본에 자발적으로 부역한 협조자로 분류할 수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한일강제합방 이후 이완용은 일본제국으로부터 귀족 칭호를 받고, 부와 권력을 이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역사와 한국인의 입장에선, 을사오적은 나라를 적국 일본에 팔아먹은 반역자로 기록되어 역사적 단죄로부터 벗어날 길이 없다. 이완용이 귀족칭호를 받고, 부와 권력을 쥔 지도층 인사였다는 것은 어느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 사실이다. 하지만 귀족층에 편입된 을사오적이 귀족다운 내면적 도덕과 외적 품행을 나타냈다고 말한 사람은 한 명도 없을 것이다.
[31] Jean-Marie Moeglin, “Les Bourgeois de Calais: Essai sur un Mythe Historique (The Burghers Of Calais: An Essay on A Historical Myth), http://www.theguardian.com/education/2002/aug/15/highereducation.news. 참조.
[32] Swedberg, 각주 29.
[33] Jean Froissart, “Chroniques”, ch I, http://www.hrionline.ac.uk/onlinefroissart/browsey.jsp?pb0=BookI-Translation_142r&img0=&GlobalMode=standard&img0=&pb0=BookI-Translation_141v&GlobalWord=0&div0=ms.f.transl.BookI-Translation&disp0=pb&GlobalShf=&panes=1
[34]Jean Froissart, “The Chronicles of Sir John”, Ch 145, http://www.maisonstclaire.org/resources/chronicles/froissart/book_1/ch_126-150/fc_b1_chap145.html
[35] Kaiser, “the Burghers of Calais”, Kaiser’s Plays Volume one, 1985.
[36] Swedberg, 각주 29.
[37] Moeglin, J, “Les bourgeois de Calais: Essai sur un mythe historique”, Paris: Albin Michel, 2002.
[38] 650 Years Later, History Repeats: The Burghers of Calais & Auguste Rodin. http://www.prx.org/pieces/105789/transcripts/235544; http://www.theguardian.com/education/2002/aug/15/highereducation.news.
[39] “That six of the chief burghers of the city shall come out, their hands and feet bare, and with halters round their necks, and with the keys of the town and the castle in their hands. These will be at my mercy, and the rest of the town shall go free.” http://www.hrionline.ac.uk/onlinefroissart/apparatus.jsp?type=context&context=english_translations__toc_#book_i_2c_translated_from_besan_c3_a7on_bm_2c_ms__864
[40] “인조실록”에서 삼배구고두의 항복의식은 기록하고 있지만 인조의 머리에 피가 났다는 기록은 들어 있지 않다. 왕조실록은 후대에 들어서 작성하는 것이고 그것도 수정까지도 가능한데 국왕이 피를 흘렸다는 사실을 기록으로 남길 수가 있겠는가? “항복”을 해놓고서도 역사서에는 그저 단순히 도성을 나왔다는 “하성”이라는 기록으로 유퍼미즘을 동원한 사초 작성자의 태도였음을 기억하라.
[41] "If you let someone else have the power of life and death over you, or think yourself so high-and-mighty you can say one person's life is worth more than another's-if you do that, you abandon all dignity and collaborate with evil."
[42] 김용호, “게오르그 카이저의 깔레의 시민들 에 나타난 새로운 인간상 연구”; GC Tunstall, “Light Symbolism in Georg Kaiser's "Die Bürger von Calais",
[43] Thick smoke swirls about your heads and feet and shrouds the way before you. Are you worthy to tread it? To proceed to the final goal? To do this deed–which becomes a crime–unless its doers are transformed? Are you prepared–for this your new deed? –It shakes accepted values–disperses former glory–dismays age-long courage–muffles that which rang clear–blackens that which shone brightly–rejects that which was valid! –Are you the new men? (114-5), J. M. Ritchie and Rex Last, Kaiser’s Plays Volume one, 1985.
[44] These six burghers stripped to their shirts and breeches there and then in the market-place, placed halters round their necks as had been stipulated and took the keys in their hands, each holding a bunch of them. Sir Jean de Vienne mounted a pony - for he could only walk with great difficulty - and led them to the gates. The men, women and children of Calais followed them weeping and wringing their hands.
[45] 로댕 창작 노트, 편지. 칼레 시 의회 기록. 용감한 영웅들의 이야기가 아닌 평범한 시민들의 숭고한 희생, "They are voluntarily bound to the same sacrifice but each of them plays the role suited to his individuality given his age and position" (Auguste Rodin).
[46] “Rodin described his intentions as follows: "It is the subject itself which (...) imposes a heroic vision of all six figures being sacrificed to one single communicative expression and feeling. The pedestal is triumphal, it has the rudiments of an arch of triumph intended to uphold, not a quadriga, but human patriotism, self-abnegation and virtue.” http://www.rodin-web.org/works/1884_burghers.htm.
[47] Swedberg, Sacrificing Yourself for Others: Civic Heroism and Auguste Rodin’s “The Burghers of Calais”.
[48] “The Burghers of Calais expresses the emotions of despair, defiance, and resignation. Rodin has captured these emotions in the roughly textured surfaces of the figures. He wanted the citizens of Calais to experience this heroic episode in their city’s history.”
[49] http://www.rodin-web.org/works/1884_burghers.htm.
[50] Swedberg, 각주 29.
[51] http://www.rodin-web.org/works/1884_burghers.htm.
[52] Swedberg, 각주 29.
[53] Benedek, AUGUSTE RODIN · THE BURGHERS OF CALAIS A Resource for Educators,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54] http://www.rodinmuseum.org/collections/permanent/103361.html.
[55] http://www.okba.net/bbs.php?table=board_01&query=view&uid=257.
[56] Ibid.
[57] 대홍수가 범람하듯이
큰 부패가 빙산처럼 떠돌고 있다
이 세상 모든 것에
탐욕이 파고 들어와
탐욕으로 퍼져 나가고
끝없는 탐욕은
해를 가리는 아침안개처럼
세상을 뽀얗게 덮고 있구나!
정치가와 권세가들과
재벌귀족과 하인들도
모두 똑같이 돈놀이에 열중하고
돈에 미쳐 놀아나 모두 눈이 멀었도다
노란 고름처럼 썩은 이들이
서울 장안을 모두 말아 먹었구나!
(이 시는 조나단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와 Pope의 시에서 약간 변형하였음. 이와 같은 영시의 존재가 말해주듯 부패와
타락의 문제는 한국만의 현상이 아니다. 하지만
영미선진국들은 과거의 잘못을 치유한 반면 그리고 영미법 국가는 헌법과 법제도와 법문화적으로 “사법부
통치국가”이라는 점에서 사법부의 타락과 부패의 행정부 우위의 대륙법 국가에서 나타나는 부패와 타락의
정도는 나타나기 어려운 성격을 보여준다.
[58] 부정한 뇌물을 받지 않고
넘쳐나는 탐욕스런 사람들로부터 욕먹지 않고
세상에 고아들의 눈물이 사라지게 하고
나의 명예와 나의 양심을 부끄럽지 않게 하고
그리하여 마지막 날 조용히 숨을 거두고
평화스럽게 무덤 속으로 사라지는 것이다.
Untainted
by the guilty bribe,
Uncursed amid the harpy tribe;
No orphan's cry to wound my ear
My honour, and my conscience clear;
Thus may I calmly meet my end
Thus to the grave in peace descend.
이 시 구절은 영국의 위대한 명판사, 최고의 법학자로 명성을 날렸던 블랙스톤(1723-1780)이 옥스포드 대학 시절 법조인의 길을 걷기로 맹서할 때 쓴 시의 마지막 구절이다. 어느 나라 법률가들도 처음 법을 시작할 때는 블랙스톤 같은 생각을 굳게 맹서할 것이고 모두가 양심껏 근무하다가 명예로운 은퇴를 꿈꾼다는 것은 동서고금을 불문하고 비슷한 것 같다. 그런데 왜 우리나라는 블랙스톤같은 위대한 법률가가 나오지 못하고 있을까? 그 대신 왜 전관예우로 한탕 크게 챙기는 법조인들이 넘쳐나게 됐을까? 왜 가장 양심적이고 깨끗해야 할 법조계가 그렇게 병든 모습으로 나타나게 됐을까? Why? 예나 지금이나 법조인은 큰 보상을 얻을 수 있는 직업에 속한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보다 원칙을 견지해야 하고 부정부패하지 않음을 생명으로 하는 것이 아닐까? 법조인이 탐욕을 가지게 되면 자칫 잘못해서 가시가 목에 걸리듯 체할 수 있다. 우리나라가 영국과 미국의 위대한 법률가들처럼 “양심”이 살아있는 법문화를 건설 유지해야 할 방법은 무엇일까?
[59] “We have, … as anyone can see, the authority of the government has gradually been introducing itself into the natural sphere of the Courts, … For the intervention of the Courts of Justice into the sphere of government only impedes the management of business, whilst the intervention of government in the administration of justice depraves citizens and turns them at the same time both into revolutionists and slaves.”, Dicey, at 233.
[60] “Selflessness: Holders of public office should act solely in terms of the public interest. They should not do so in order to gain financial or other benefits for themselves, their family or their friends. Integrity: Holders of public office should not place themselves under any financial or other obligation to outside individuals or organisations that might influence them in the performance of their official duties.” http://www.judiciary.gov.uk/wp-content/uploads/2010/08/lord-chancellors-directions-advisory-committees-part1.pdf
[61] “Becoming a Magistrate in England and Wales” (2015.1.), https://www.gov.uk/government/uploads/system/uploads/attachment_data/file/391818/magistrate-application-form-guidance-notes.pdf.
[62] http://www.huffingtonpost.com/2013/05/02/poll-armed-revolution_n_3203315.html.
[63] “The Constitution was framed in accordance with "many traditional conceptions." Dixon J, 법의 지배 원칙은 묵시적인 implication 헌법 규정으로 해석된다기보다 헌법에 당연히 포함되어 있다고 있는 불문율과 같은 가정 assumption에 해당된다.
[64] “The EU is based: freedom, democracy, respect for human rights and fundamental freedoms and the rule of law.”, http://europa.eu/scadplus/constitution/objectives_en.htm#PRINCIPLES.
[65] 빙햄 Bingham, “법의 지배”, 김기창 역, 이음, 2013, 22-23쪽.
[66] “[t]he core of the existing principle [of the rule of law] is that all persons and authorities within the state, whether public or private, should be bound by and entitled to the benefit of laws publicly and prospectively promulgated and publicly administered in the courts.” 다이시가 설명하듯이, ‘법의 지배’ 원칙의 핵심은 ‘절차적 정의’에 있다. 로즈는 이렇게 주장한다: “법의 지배의 핵심은 절차적 정의를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자유, 관용, 정의 같은 민주 사회의 필수 덕목에 꼭 필요한 (충분조건이 아니라) 것이다.” “the core of the rule of law is procedural: it is ‘a necessary, but not sufficient condition of other vital, civic virtues – freedom, tolerance and justice itself.’ Laws, J, “The rule of law - form or substance?”, [2007] 4 Justice Journal 24. 흔히 학생들의 열띤 토론에 흔히 등장하는 ‘필요조건’인지 ‘충분조건’인지를 상기해 보고 법의 지배 원칙의 의미를 되새겨보자. 교실에 책상은 충분 조건이고, 교실은 책상이 들어가기 위해 필요한 공간이므로 교실은 필요조건이다.
[67] 1. The law must be accessible and so far as possible intelligible, clear and predictable, 2. Questions of legal right and liability should ordinarily be resolved by application of the law and not the exercise of discretion, 3. The laws of the land should apply equally to all, save to the extent that objective differences justify differentiation, 4. The law must afford adequate protection of fundamental human rights, 5. Means must be provided for resolving, without prohibitive cost or inordinate delay, bona fide civil disputes which the parties themselves are unable to resolve, 6. Ministers and public officers at all levels must exercise the powers conferred on them reasonably, in good faith, for the purpose for which the powers were conferred and without exceeding the limits of such powers, 7. Adjudicative procedures provided by the state should be fair, 8. The state must comply with its obligations in international law, the law which whether deriving from treaty or international custom and practice governs the conduct of nations. Bingham T, “The rule of law”, (2007) 66 CLJ 67.
[68] 영미법 국가의 정치제도가 내각제 전통이 지배하는 측면에서 “의회 우위 the sovereignty of parliament” 전통이 지배한다고 종종 잘못 이해되고 있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사실 판례법 국가들은 “사법 심사”의 제도가 확립되어 있으므로 사법부 우위의 국가라고 이해되어야 한다.
[69] Dicey, “An Introduction to the Study of the Law of the Constitution”, 1885.
[70] (i) that the state possesses no ‘exceptional’ powers (ii) that individual public servants are responsible to (iii) the ordinary courts of the land for their use of statutory powers.
[71] Ch IV, “An Introduction to the Study of the Law of the Constitution”, 8th ed. Macmillan, London.
[72] “When we say that the supremacy of the rule of law is a characteristic of the English constitution we generally include under one expression at least three distinct though kindred conceptions.”
[73] [First] that no man is punishable or can be lawfully made to suffer in body or goods except for a distinct breach of law established in the ordinary legal manner before the ordinary courts of the land. In this sense the rule of law is contrasted with every system of government based on the exercise by persons in authority of wide, arbitrary or discretionary powers of constraint.
[74] 미국적 표현으로는 토마스 페인의 “미국에서는 법이 왕이다 In American, the Law is king.”잘 알려져 있다.
[75] 어느 누구도 법 위에 있지 않다는 원칙뿐만 아니라 또 어떤 지위나 신분을 막론하고 누구든지 보통법에 따르게 되고 Everyone is subject to the law 또 재판권의 행사는 보통법원에 귀속된다는 것을 뜻한다. “법이 사람 위에 존재한다 Be you never so high, the law is above you." 미국적 표현으로는 토마스 페인의 “미국에서는 법이 왕이다 In American, the Law is king.”이라는 말이 유명하다.
[76] [Secondly], not only that with us no man is above the law, but (what is a different thing) that here every man, whatever be his rank or condition, is subject to the ordinary law of the realm and amenable to the jurisdiction of the ordinary tribunals. In England the idea of legal equality, or of the universal subjection of all classes to one law administered by the ordinary courts, has been pushed to its utmost limit. With us every official, from the Prime Minister down to a constable or a collector of taxes, is under the same responsibility for every act done without legal justification as any other citizen. The Reports abound with cases in which officials have been brought before the Courts, and made, in their personal capacity, liable to punishment, or to the payment of damages, for acts done in their official character but in excess of their lawful authority. A colonial governor, a secretary of state, a military officer, and all subordinates, though carrying out the commands of their official superiors, are as responsible for any act which the law does not authorise as is any private and unofficial person.
[77] [Thirdly] We may say that the constitution is pervaded by the rule of law on the ground that the general principles of the constitution (as for example the right to personal liberty, or the right of public meeting) are with us the result of judicial decisions determining the rights of private persons in particular cases brought before the Courts; whereas under many foreign constitutions the security (such as it is) given to the rights of individuals results, or appears to result, from the general principles of the constitution.
[78] 이러한 다이시 Dicey의 관점은 독일 프랑스의 대륙법국가들에서 전제군주제의 국가 권력에 의해 개인의 자유가 크게 유린된 역사적 경험의 측면에서 크게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된다. 이런 진실된 의견은 영미판례법 국가들에서 대법원이 구체적 사건의 판결을 통해서 개인의 자유를 보장해온 역사를 고려한다면 충분히 입증된다. 반면 자의적이고 전제적인 행정부의 권력이 강화된 유럽 국가들의 역사를 보면 사법부의 독립 전통이 강하게 확립되지 못했고, 따라서 일반법원이 구체적인 사건에서의 판결을 통하여 기본적인 법원칙들을 하나 하나씩 쌓아 올려 갈 수가 없었다. 대신 나폴레옹 통일 법전, 2차 대전 종전 이후 독일 헌법 제정 등의 법역사가 말해주듯이 헌법을 제정하고 여기에서 일반적인 법원칙을 확립해내려고 시도했다.
[79] the dogma that the form of a government is a sort of spontaneous growth so dosely bound up with the life of a people that we can hardly treat it as a product of human will and energy, does, though in a loose and inaccurate fashion, bring into view the fact that some politics, and among them the English constitution, have not been created at one stroke, and, far from being the result of legislation, in the ordinary sense of that term, are the fruit of contests carried on in the Courts on behalf of the rights of individuals. Our constitution, in short, is a judge-made constitution, and it bears on its face all the features, good and bad, of judge-made law.
[80] In England the right to individual liberty is part of the constitution, because it is secured by the decisions of the Courts, extended or confirmed as they are by the Habeas Corpus Acts.
[81] Summary, That "rule of law," then, which forms a fundamental principle of the constitution, has three meanings, or may be regarded from three different points of view. It means, in the first place, the absolute supremacy or predominance of regular law as opposed to the influence of arbitrary power, and excludes the existence of arbitrariness, of prerogative, or even of wide discretionary authority on the part of the government. Englishmen are ruled by the law, and by the law alone; a man may with us be punished for a breach of law, but he can be punished for nothing else. It means, again, equality before the law, or the equal subjection of all classes to the ordinary law of the land administered by the ordinary Law Courts; the "rule of law" in this sense excludes the idea of any exemption of officials or others from the duty of obedience to the law which governs other citizens or from the jurisdiction of the ordinary tribunals; there can be with us nothing really corresponding to the "administrative law" (droit administratif) or the "administrative tribunals" (tribunaux administratifs) of France. The notion which lies at the bottom of the "administrative law" known to foreign countries is, that affairs or disputes in which the government or its servants are concerned are beyond the sphere of the civil Courts and must be dealt with by special and more or less official bodies. This idea is utterly unknown to the law of England, and indeed is fundamentally inconsistent with our traditions and customs. The "rule of law," lastly, may be used as a formula for expressing the fact that with us the law of the constitution, the rules which in foreign countries naturally form part of a constitutional code, are not the source but the consequence of the rights of individuals, as defined and enforced by the Courts; that, in short, the principles of private law have with us been by the action of the Courts and Parliament so extended as to determine the position of the Crown and of its servants; thus the constitution is the result of the ordinary law of the land.
[82] 옥스포드 영어 사전 참조.
[83] 1996년 삼성물산에서 간행한 “로마인 이야기” 참조.
[84] If the motto Noblesse oblige sums up the advice I gave you just now, my further advice on your relations to women is based upon that other motto of chivalry, "Serve all, love one!" “지위가 높으면 덕도 높아야 한다”는 말이 내가 처음에 했던 충고들의 대부분을 포괄한다면 여자와의 관계에 대한 내 생각들은 이 기사도적인 격언 속에 담겨 있습니다. “모두를 섬기고, 한 명만 사랑하라!”
[85] Honore de Balzac, “The Lily of the Valley”, English Translation by Katharine Wormeley, 1895. “We were followed by an immense crowd, seeking to express the grief of the valley where she had silently buried so many noble actions. Manette, her faithful woman, told me that when her savings did not suffice to help the poor she economized upon her dress. There were babes to be provided for, naked children to be clothed, mothers succored in their need, sacks of flour brought to the millers in winter for helpless old men, a cow sent to some poor home,--deeds of a Christian woman, a mother, and the lady of the manor. Besides these things, there were dowries paid to enable loving hearts to marry; substitutes bought for youths to whom the draft had brought despair, tender offerings of the loving woman who had said: "The happiness of others is the consolation of those who cannot themselves be happy."
[86] 옥스포드 영어 사전, “Oxford American College Dictionary”, Oxford University Press, 2006, at 921.)
[87] 옥스포드 영어 사전, “Oxford American College Dictionary”, Oxford University Press, 2006, at 921.)
[88] (그것은, 누가복음 4장 18절에 기록된 대로, 예수가 광야에서 40일간 시험을 견디고 나서 공의를 시작할 때 첫 번째 선언한 행동수칙인 “가난하고 억눌린 자에게 자유와 해방의 기쁨을 주는 것”에 해당된다.)
[89] the legal order as distinct from morality.
[90] “We learn our Latin from him at school; our style and sentiments at the college.”, Middleton, Conyers, The Life of Marcus Tullius Cicero, III, (Boston- Wells & Lilly, 1818), 313.
[91] Mary Rosner, “Reflections on Cicero in Nineteenth-Centuiy England and America”, Rhetorica: A Journal of the History of Rhetoric, Vol. 4, No. 2 (1986), pp. 153-182;
William McDermott, “Reflections on Cicero by a Ciceronian”, The Classical World, Vol. 63, No. 5 (1970), pp. 145-153.
[92] “The “perfect orator” is, we may say, a person neither desired nor desirable. We, who are the multitude of the world, and have been born to hold our tongues and use our brains, would not put up with him were he to show himself.” (Anthony Trollope, “The Life of Cicero”, Ch xi, Cicero’s Rhetoric.)
[93] “Trollope labels Cicero a liar and a scoundrel: a liar because he has not acquired "that ... aversion to a lie which is the first feeling in the bosom of a modem [Victorian] gentleman.”
[94] “晏子春秋” (BC 475-BC 221), “晏子春秋內篇雜下”, http://ctext.org/yanzi-chun-qiu/za-xia/zh
[95] Ibid.
[96] It appears that many of the French inhabitants were either not dispossessed, or were readmitted after a few weeks. one who was confirmed in his possessions and given a post of special responsibility was the heroic Eustache de Saint-Pierre. It is also established that Philip VI made efforts to compensate those who were expelled, by conferring various offices and rights upon th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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