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바다 만리포 1
저녁 여섯 시 어느 서쪽에도 그만한 태양은 지는 법인데
유독 만리포에서만 해가 진다고 부산떠는지?
저녁 여섯 시 태양은 수 만 개, 유독 만리포에서만
해가 지는 것으로 착각하는 것은 무슨 이유인가?
나와서 해를 보라. 하나밖에 없다고 착각해 온 해를 보라.
만리포에서는 푸른색 이외에도 손이 가고 잡힌다.
만리포에서는 설사 색연필이 없어도 바다를 빨갛게 칠할 수 있다.
만리포에서는 바람이 잠잠한 날 물오리처럼 날개짓으로 말한다.
그러다가도 해지는 저녁이면 말보다 더 쉬운 감탄사를 쓴다.
손을 대면 화끈 달아오르는 불덩어리의 감탄사를 쓴다.
만리포에서는 남자가 여자보다 여자가 남자보다 바다에 가깝다.
내가 내말을 하면 바다는 제말로 답하며
술은 내가 마시는데 취하긴 바다가 취하고
만리포에서는 바다가 술에 더 약하다.
맨 처음 나는 해안선을 따라 백사장을 돌고
그리고 수평선에 눈이 감겼다.
워낙 잔잔한 바다에 내 눈이 멀고,
그래도 바다인지 파도가 치느냐고 묻는다.
그저 바다가 호수인양 하면서 당하고 있었다.
내 눈이 그렇게 유쾌하게 감긴 적은 없었다.
내 귀가 그렇게 유쾌하게 잠긴 적은 없었다.
모두 통하는구나! 산은 뭍으로 흐르고 뭍은 바다로 통한다.
잡고 싶은 것이 잡히지 않을 때는 차라리 눈을 감자.
눈을 감으면 보일거다. 갯벌에 꽃게가 기어가는 것처럼 보일거다.
장보고가 김통정이 호령하던 배들이 지나가는 것처럼 보일거다.
밀물에도 썰물에도 타지 않는 바다가 기억하는 그들의 흔적이 보일거다.
그리하여 나는
밤에도 지울 수 없는 물안개로 태어나 파도에도 실려가지 않는 조개껍질로 살 거다.
*예전엔 술을 한 두잔 마시면 제가 좋아하는 이생진의 “그리운 성산포”를 외어서 읊조르곤 했었지요. 성산포에서의 파도와 대비되는 잔잔한 서해의 낙조를 보면서 그리운 성산포 시를 가져와 흉내내서 잔잔한 서해 바다의 저녁노을을 그려 봤습니다.
** 만리포는 서해 땅끝 태안반도에 위치합니다. 태안의 리아시스식 해안선은 장보고 김통정 등의 많은 역사와 유물들이 알려주듯이 서해안 해상 루트의 주요 거점이었습니다.
장보고는 진도에 청해진을 설치하고 동북아 해상무역을 주름잡았던 통일신라의 장군이었으나 중앙 정치계의 음모와 부하의 배신으로 억울하게 목숨을 잃었습니다.
김통정은 고려시대 몽고의 침략군에 맞써 항쟁한 삼별초군단의 마지막 장수로써 강화도 진도 제주도를 잇는 서해바다를 통해 항쟁하였고 제주도의 붉은오름성이 함락되자 한라산으로 들어가 마지막까지 싸우다가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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