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브레이드가 “풍요한 사회(The Affluent Society)”에서 주장하는 결론
벤자민 프랭클린이 말하는 부자의 개념
“시간은 금”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미국 자본주의 대부라고 불리우는 벤자민 프랭클린(B Franklin, 1706~1790)이 전한 것으로 유명한 격언이다.
프랭클린은1732년 부터 “가난한 리처드의 달력(Poor Richard’s Almanack)”을 출판하여 큰 돈을 벌었다. 여기에 실려 있는 “부(富)에 이르는 길(The Way to Wealth)” 글에서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면 건강하고 부유하고 현명하게 된다”등의 유명한 격언들을 전하고 있다. 프랭클린은 인생 승리를 가져다주는 13가지의 덕목을 들고 있는데 그것은 절제, 침묵, 질서, 결단, 절약, 근면, 성실, 정의, 중용, 청결, 평온, 순결, 겸손이다.
프랭클린이 말하는 부(wealth)란 간단히 “시간+돈=재산” 이런 도식으로 표현할 수 있겠다. 이도식을 이해하면, 돈이 없어도 시간이 많은 사람은 부유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부의 공식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시간의 가치”의 중요성을 망각하게 될까? 다시 말해 시간가치 대신 오로지 돈을 벌어들여야만 재산이 증식된다는 생각에 집착하고 있을까? 사람들이 부의 가치 창조에 대한 중요한 개념에 혼동을 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여긴다.
데이비드 헨리 소로우의 경고
헨리 데이빗 소로우( D H Thoreau, 1817-1862)는 자연과 함께하는 생태학적인 삶, 독립적인 자립 생계, 사회윤리성과 정의와 평화를 추구하는 삶을 살았다. 소로우의 사상은 많은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소로우는 월든 호숫가 숲 속으로 들어가 직접 통나무 오두막을 짓고 자신만의 단순한 삶을 살았다. 1845년부터 1847년까지 그곳에서 보낸 2년 2개월 동안의 단순한 삶의 방법과 사색을 기록한 책이 1854년 출간된 “윌든 호수가 숲 속에서의 생활(Walden; or,
소로우는 “월든”에서 1장을 “경제”이야기로 시작한다. 소로우가 기록한 오두막을 짓는 데 들어간 경비는 다음과 같다.
통나무집 신축 비용................... $28.12½
농장비용 (1년).............. ... 14.72½
음식비 (8개월). ........... 8.74
의복비(8개월). ........ 8.40¾
기름값 ........... 2.00
...합계...... .................... $61.99¾
채소등 재배 농작물 매각 수입 $23.44
일당 노동 수입.. ................ 13.34
합계 ........................ $36.78,
소로우는 이렇게 적은 경비로 단순하게 삶을 살아갈 수 있었다. 약 160년전 소로우가 숲 속으로 들어가 통나무집을 세우고 텃밭을 가꿀 당시 생활비를 이정도면 먹고 살 수 있었다고 한다. 당시와 현재의돈가치를 환산하는데 도움을 주기 위해서 미국의 달러가치 수준을 알아 보자. 약 200년전인1803년에 미국이 프랑스령 루이지애나를 매입할 당시 프랑스에 지불한 가격은 1천5백만달러였다. 현재가치로 환산하면 2억1천9백만달러라고 한다.
미국 각 도시의 현재 주택가격 동향을 알고 싶으면, 이를 잘 알려주는 인터넷 싸이트http://www.trulia.com/을 방문하기 바란다. 여기에서 소로우가 살았던 콩코드 지역의 현재 주택 가격을 조사하고 과거와 현재의 임금 수준을 감안하여 주택값을 비교해 보자.
1845년 당시 소로우가 오두막집 을 짓는 비용으로 $28.12½ 들었다. 당시에 하루 일당 임금은 $1불 정도이었다고 말하니 ,오늘날 현재의 평균임금수준의 상승비율과 집값의 상승 비율을 단순비교하여 현재의 집값을 계산해 본다면, 주택값 상승 정도는 노동자 임금 수준의 상승에 비해 10배이상 매우 높다. wmr 소로우 당시 집값과 오늘날의 주택값 수준을 비교해 본다면 현재의 주택값 수준이 매우 높다는 결론이 얻어진다.
소로우는 농촌지역에서 집을 팔기가 매우 힘들어서 도시로 나아가고 싶어도 나가지 못하는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소로우가 말하는 주택의 본질적 문제는 현재 미국 영국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의 농촌지역이나 교외지역의 대저택을 쉽게 팔지 못해서 발이 묶여 있는 상황에 그대로 적용된다고 본다.
최근말 농장 가격이 폭락했다고 전하는 뉴욕타임즈 기사를 꺼내 보자. 뉴욕 주 노스 살렘 지역의 말구유간이 3개 달리고 방3개 화장실3개 짜리 리노베이션한 1875년 농장 주택이 5년전에는 가격이 1백30만 달러였으나 2011년6월말 현재 시세로 8십9만5천달러로 크게 떨어졌다고 한다.[1]
소로우는 사람들이 재물을 축적하려고 살아가는 인생은 잘못된 것이며, 결국 시민들의 깨어있음이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그의 말을 가져온다.
“[사람들은] 그릇된 생각 때문에 고생하고 있다. 사람의 육신은 조만간 땅에 묻혀 퇴비로 변한다. 살기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는 즉 소위 긴급피난이란 말로 정해진 운명으로 남에게 고용되어 일을 하고, 어떤 오래된 책의 말처럼, 벌레 파먹고 녹슬어 부식되거나 도둑이 들어와서 훔쳐갈 재물을 축적하고 있다. 그러나 인생이 끝날 때까지는 알게 되겠지만 이것은 어리석은 자의 인생이다.” [2]
“우리들은 사치품에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수많은 원시적인 즐거움의 면에서는 가난하기 짝이 없다. 시인 챞먼이 노래하듯이,
"거짓 사회의 인간들이여,
세속적인 위대함을 찾는 것 때문에
천상의 모든 즐거움은 공중에 흩날려지는구나."
농부가 집을 마련하고 나서, 그 집 때문에 더 부자가 된 것이 아니라 사실은 더 가난하게 되었는지 모르며, 사람이 집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집이 사람을 소유하게 되었는지 모른다.”
생활필수품 이상으로 과도하게 소비하는 삶, 재물 축적에만 집착함으로써 인생의 소중한 참된 즐거움을 희생하는 대가를 치루는 인생은 어리석다고 소로우는 주장했다. 물질 추구의 어리석음에서 벗어나 자신의 내면 성장의 길을 발견하는 것이 보다 중요하다고 소로우는 결론에서 재강조한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여유를 찾지 못하고 시간에 쫓겨 바쁘게 살아가고있다. 그러다 중요한 인생의 가치를 놓고 있다고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에게 소로우의 사색이 진정으로 필요하지 않을까? 진정한 부란 스스로 선택한 창조적안 활동을 위한 여유로운 시간에 있다고 소로우는 강조한다.
소로우는 “월든”에서 그가 단순한 삶을 추구하려 산 속으로 들어간 이유를 이렇게 말하고 있다. .
“내가 숲 속으로 들어간 까닭은 다음과 이유 때문이었다.
인생을 의도한대로 살아가기 위해서, 오로지 삶의 본질적인 사실만을 직시하기 위해서, 삶의 가르침을 아직 깨닫지 못한 것이 무엇인지, 죽음의 순간에 내가 살아보지 못한 삶이 남아있는 것인지를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삶이란 너무나도 소중한 것이기에 삶이 아닌 삶은 살고 싶지 않았다.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라면 은퇴를 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나는 삶을 충실하고 살고 삶의 정수를 맛보고 싶었으며, 삶이 아닌 것은 모두 던져버리기 정도로 강하고 엄격하게 살고 싶었으며, 수풀을 넓게 베어 내고 잡초를 제거하고 싶었으며, 삶을 마지막 코너로 밀어넣고 싶었으며, 가장 낮은 조건의 삶으로 아껴쓰며 살고자 했으며, 그 결과가 만약 비천한 것으로 판명되면, 그 비천함의 적나라한 이유와 비천함을 세상에 알리고 싶었다. 만약 그것이 고상하다면, 직접 체험으로 알고 싶었고, 다음 여행 때 고상함을 있는 그대로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으리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I went to the woods because I wished to live deliberately, to front only the essential facts of life, and see if I could not learn what it had to teach, and not, when I came to die, discover that I had not lived. I did not wish to live what was not life, living is so dear; nor did I wish to practise resignation, unless it was quite necessary. I wanted to live deep and suck out all the marrow of life, to live so sturdily and Spartan-like as to put to rout all that was not life, to cut a broad swath and shave close, to drive life into a corner, and reduce it to its lowest terms, and, if it proved to be mean, why then to get the whole and genuine meanness of it, and publish its meanness to the world; or if it were sublime, to know it by experience, and be able to give a true account of it in my next excursion.
사람에게 필요한 땅은 어느 정도일까?
톨스토이의 소설 “땅”
이에 대한 답을 톨스토이 단편 소설에서 찾을 수 있다. 톨스토이 단편소설 학교 다닐 때 중고등 교과서 어디에서 나오는 것으로 기억한다. 톨스토이 단편소설을 다시 읽어보니 사람이 죽어서 땅에 묻힐 관의 크기 정도가 사람에게 필요한 땅의 전부라고 한다.
톨스토이 소설의 끝부분을 인용한다: “축하합니다. 당신은 이제 완전히 땅을 잡으셨소, 당신이 돌아온 모든 땅은 이제 당신의 것이 되어씁니다. 정말로 축하합니다." 바훕의 하인이 달려가서 그를 일으켜 세우려 햇지만. 그의 입에서는 피가 쏟아져 나왔다. 그는 쓰러져 죽고 말았다. 하인은 괭이를 집어들고 머리에서 발끝까지의 치수대로 정확하게 6핕를 팠다. 그가 묻힌 두 평 남짓이 그가 차지할 수 있었던 땅의 전부였다.”
톨스토이는 우리 인간의 지나친 욕심의 결과가 죽음으로 이끈다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데 사실 사람들의 땅에 대한 욕심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자고이래도 사람들은 땅에 대한 욕심은 지나치리 만큼 높은 모습을 보여왔다. 이것은 동서양 사회를 관통하는 인간 본성에 속하는 모습같다.
땅은 인간에게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의식주를 해결하는 가장 기초적인 자원이기 때문이다. 땅이 있어야 농작물을 재배할 수 있고 그래야 굶어 죽지 않는다. 땅이 없으면 집을 지을 수가 없다. 땅이 있어야 노동가치를 실현할 수 있다. 그래서 땅은 인간 삶의 기본 조건이다. 그러나 문제는 인간의 욕심을 제어할 만한 범위가 어디일까다.
도시근교 작은 농장을 시작하려고 한다면?
국제 축구장 규격은 110m*75m=8250m2, 그러니까 1에이커는 축구장 크기의 반이 조금 안되는정도다. 에이커는 미국과 영국 사람들의 쓰는 넓이단위이니까 우리가 익숙한평수개념으로 환산하며 1에이커는 1224.2평(4046.8평방미터(㎡))에 해당된다.
1에이커는 옛날에 농부가 황소가 끄는 쟁기로 하루에 밭을 갈 수 있는 정도의 넓이라고 한다. 그러나 세상이 발닳하면서 1에이커 정도로는 시골 농장 땅으로는 부족하고 더 컸다. 그래서 농장이라고 하면 가격이 비싸서 (땅이 넓은 관계로) 보통 도시인들은 엄두를 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오이나 토마토 등 채소재배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3에이커 정도면 충분히 잘 살아갈 수 있다고 도시인들의 탈도시 소규모농장 붐을 반영했던 것이 미국에서 “3에이커와 자유”라는 책이다.
농장 가격이 어느 정도 될까?라는 질문은 수도 없이 받아왔다. 이제는 그와같은 인터넷 정보 검색 문화로 인해서 그런 질문은 받아보기 드물지만 1997년 IMF외환위기를 맞아 탈한국행렬이 번질 당시에는 나에게 물어보는 사람들이 매우 많았었다.
3에이커와 자유
약 100년전인 1907년 미국에서 출간되어 인기를 끈 “3에이커와 자유(Three Acres and Liberty)”라는 책이 있다. 이책의 저자는 도시근교에서도 작은 농장을 하며 자급자족의 검소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고 하며 농장 구입부터 농장에 대한 실제적인 조언을 주고 있다. 사람들은 먹고 살아가기 위해서 보스 밑에서 종업원으로 일을 하고 그 대가로 임금을 받아 생활한다. 도시에서는 일할 기회가 많기 때문에 사람들이 도시로 몰린다. 그러나 최소한 자급자족할 땅을 살 수 있다면 사람들이 얽매인 도시 직장생활에서 벗어나 자유를 찾아 농촌으로 내려갈 사람도 보다 많이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나는 직접 농장일을 해보지는 않았으나 나의 고객들이 도시근교의 작은 농장을 구입하고 매매하는데 실무적 도움을 주고 나의 고객들이 오이와 토마토등을 재배하는 작은 농장일을 하며 살아가는 모습들을 많이 보아왔다. 한국에서는 주말농장이나 귀농이 유행처럼 번진 적이 있었는데 내가 직접 농장일을 해보지는 않았으니 체험적으로는 말할 수 없으나, 내가 보기에는 작은 농장이라도 비지니스인 이상 꼭 낭만적인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람 살아가는데 힘들지 않는 모습은 없다고 한다. 그러나 허울뿐인 풍요가 넘치는 번잡한 도시를 떠나 한적한 교외에서 작은 농장을 하여 살아가고픈 사람들이 더욱 많이 늘어나리라고 여긴다. 미국에서 “3에이커와 자유”의 인기가 있었던 것처럼 필요이상의 생산과 소비로 넘처나는 성장중심 경제에 대한 반성은 더욱 강해지리라 생각한다.
생산중심경제구조에 대한 갈브레이드의 비판 – “풍요한 사회”
허울뿐인 풍요- 소비중독- “어플루엔자”
오늘날 우리는 “쓰레기 더미”에 살아가고 있다. 소로우의 지혜와는 달리, 오늘날 우리는 왜 풍요의 늪에서 허우적 거리며 살아가고 있을까?
이런 의문에 대해서 “소비 중독”으로 진단하는 사람이 있다. 2005년 미국에서 출간된 “어플루엔자”책에서 저자인드그라프, 완, 네일러(de Graaf, Wann, Naylor)는 현대인들이 풍요로운 물질 중심주의에 빠져 있음을 경고한다. 저자들은 이런 현상을 “소비 중독(Affluenza)이란 말로써 표현하고 있는데 이말은 “ 더 많이 추구하는 걸신에 들며 과잉소비, 빚더비, 불안 초조, 과잉 소비를 하게 된 사회적으로 퍼진 고통스런 전염병”을 가르킨다. 저자들은 오늘날 미국 사회는 소비중독에 있음을 통렬하게 비판하고 있는데 소비중독에 빠진 자본주의의 폐해에 대해서는 이미 오래 전 부터 비판이 제기되어 왔었다.
생산중심경제구조에 대한 갈브레이드의 비판 – “풍요한 사회”
미국 하바드대 경제학과 교수 갈브레이드(1908-2006)는 1958년 그의 저서 “풍요로운 사회”를 통해서 미국 사회가 풍요로운 사회에 들어섰음을 밝히며, 19세기의 기존 경제학에 기반한 생각으로는 풍요로움이 넘치는 20세기의 미국 사회의 경제사회 문제를 풀어낼 수 없다고 말했다. 풍요가 넘치는 미국사회에서 생산과 소비의 근본적인 문제점을 잘 지적해내었다.
“풍요로운 사회”에서 갈브레이드는 “경제학 통념(conventional wisdom)”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며, 경제학 통념은 생산증대를 통해서 모든 사회악(惡)을 해소할 수 있다고 보는데 이런 경제학 통념은 잘못된 것이라고 비판하였다.
갈브레이드에 따르면 1930년 공황을 겪은 이래로 생산 증대를 통해서 경제적 안전을 이루어냈고 이를 통해 절대적 빈곤이 사라지고 경제적 불평등이 해소되면서 “생산 증대”가 경제학 사고의 중심을 차지하게 되었다.
생산활동을 경제활성화의 필수 측정수단으로 여기는 것이 경제학 통념이 되었는데 이러한 경제학 사고는 현실 경제가 작동하는 이면을 정확히 알게된다면 그러한 통념이 틀린 것임을 알게 될이라고 갈브레이드는 말했다.
갈브레이드는 GDP로 측정되는 생산 증대만이 국가 성공 여부를 가리는 사고는 문제가 있다고 본다. 생산증대는 다음의 5가지 수단을 통해 이루어질 수 있다: ① 유휴자원의 활용, ② 기술개발에 따라 자원의 효율적인 배분(자본과 노동력의 적정 배분, 회사구조조정등), ③ 노동력 투입 증대, ④ 자본 투입 증대, ⑤ 기술 수준의 상승.
그런데 경제의 총량 생산이 주된 관심사라고 하면서도 경제학자들은 2번째 수단인 산업 생산의 증대에만 주로 관심을 보이고 ①번과④번의 수단은 별로 고려를 하지 않고 있는 것은 문제라고 갈브레이는 지적한다.
갈브레이드에 따르면,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비자의 수요는 소비자 개인 자신의 필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생산의 결과적 산물이다.
소비 경제- 광고와 모방비교에 따라 조장된다
그가 파악하기로는 사람들의 소비에 대한 욕구는 “광고”와 “타인에 대한 모방비교(emulation)”에서 생긴다. 이를 “의존 효과(Defendence Effect)”라고 한다. “모방”은 남보다 앞서 갈려는 즉 남에게 자랑하려는 욕망에서 나오는 소비를 말한다. 이는 생산이 간접적으로 의도한 결과라는 것이다. 수요에 부응하기 위해서 생산을 늘리는 것은 새로운 소비 수준을 전반적으로 높히는 결과를 가져온다. 사람들이 유행패션에 따라 불필요한 소비를 하게 만들고 이런 과정이 수요를 낳게 만든다.
“광고”는 사람들의 소비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게된다. 이전에 수요하지 않았던 새로운 수요를 찾게되는 것은 광고의 힘에 따른 결과이기도 하다. 오늘날 핸드폰등 통신기술 제품이 그런 예에 해당한다. 경제경영학도들이라면 누구라도 광고마아케팅이 사업성공의 필수과정이라고 동의할 테지만, 물건을 만들어 놓는다고 바로 팔리는 세상이 아니고, 앞서 설명한 대로 “의존효과”로 인해서 마아케팅은 새로운 수요를 창출하는 큰 힘이다. 사람들의 배고픔에는 광고를 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광고에 의해서 생겨난 소비품은 광고가 없다면 수요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이와 같이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 있어서 생산과 소비과정을 보면, 사람들의 소비는 생활 필수품의 수요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생산 기득권층에 의해서 부추겨지고 놀아나기 때문에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편 현대 자본주의사회에서는 소비 개인 소비는 늘어나는 반면 공공서비스는 줄어들게 된다. 개인 부문 생산은 경제 성장에 이로운 것이고 정부가 담당하는 공공영역의 사회서비스 공급활동은 경제에 나쁜 것이라는 생각이 팽배하게 되는데, 이렇게 되면, 사람들은 부가 늘어나도 진정한 풍요를 느낄 수가 없게된다. 갈브레이드는 이런 과정을 “사회 균형(Theory of Social Balance)”으로 설명하고 있다.
갈브레이드의 결론
결론적으로 소비를 끊임없이 조장해내는 물질적 생산의 증대로는 풍요한 사회로의 진전을 이룰 수가 없다. 현대사회에서 생산은 인간생존 수단에 필수적인 단계를 넘어섰고, 생산기득권 논리에 따라 소비가 조장되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 참된 풍요로운 생활을 누리려면 교육을 통해서 잘못된 기존경제학의 통념에서 벗어나는 것이라고 갈브레이드는 제시한다. 갈브레이드는 소비는 의존 효과에 의해서 생겨나기 때문에 교육 즉 소비자의 자각을 통해서 잘못된 경제문제를 해결해 갈 수 있을 것으로 본 것 같다. “사람들이 더많은 물건을 소비하는 것이 행복”이라는 생각은 옳지 않으며, 그대신 생산지상주의에서 벗어날 때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1] http://www.nytimes.com/2011/07/03/realestate/horse-farm-prices-take-a-tumble-in-the-regionwestchester.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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