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선거와 정치경제학/의원과 관료 ethics-베버

황우석 난자 제공 파문과 연구(자)의 진실

by 추홍희블로그 2005. 11. 26.

거짓말을 하지 않으면 살아 남지 못하는 거짓 문화에 찌들라고 산 속성을 여실히 다시 보여 준 사건이 황우석 난자 사건 임다.  연구원이 가짜로 난자 제공을 해 놓고도 노성일과 황우석은 몰랐다고 우기다가 결정적 증거를 들이대니 그때서야 서로 울면서 기자회견에서도 거짓말을 해대었다.  학문적 연구자에게 '가짜'와 '동정'은 금물이고 절대로 동침해서는 안될 적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눈물 많는 한국인 정서에는 좇겨난 대통령도 탄핵되엇다고 눈물 보이면 다시 대통령 되는 세상에서 배운 것이라곤 누구나 눈물 흘리면 통한다는 악어의 눈물이다.  그런 눈물 많은 약한 자들이 특허권 지분 문제 즉 돈문제에는 그토록 악착같이 서로 많이 가질려고 싸웠을까?  알다가도 모를 한국인들의 적나라한 모습인데 그렇게 잘났다고 설치고 설친 연구자가 그렇게 억울해 할 것이 무엇일까?  분명히 돈문제이겟지! 

 

학문적 연구에는 진실이 전제조건이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진실이 수잔되지 않으면 그것은 모래성을 쌓아 올린 것과 같다.  하늘 높이의 바벨탑 같이 우뚝 솟은  학문적 성과라도 해도 기초가 되는 연구자의 진실의 전제조건이 무너진다면  아무리 높은 바벨탑이라도  한 순간에 무너저 내리고 된다.

 

한마디로 학문의 세계에서는 매장 당한다 이거다.  물론 교수직이야 지킬 수는 있을 것이다.  한국과 미국(유럽선진국 포함) 문화 사이에 알카에다 같은 큰  문명충돌이 일어나는  분야가 한국인들은 어느 분야를 막론하고 거짓말을 앞뒤 가리지 않고 한다는 것이다.  신뢰타당성이 정치경제분야 뿐만이 아니라는 이 엄청난 충격을 가져온 불신의 장벽을 넘지 못하게 하는 것은 누구의 책임인가?  그동안 못살아서 생존을 위해서는 거짓말을 해야만 했다는 상황논리로 ‘못살고 가난을’을 그이유로 넘어갔지만 국제적 가치와 국제적 기준을 적용하지 않으면 안되는 이 국제화 시대에 한국적 상황논리로 적당히 무마한다면 또다시 황우석 사건이 나올 수 밖에 없다. 

 

(MERCY) 자비나 용서는 먼저 잘못을 뉘우쳐야 가능한 것이다.
세익스피어도 그의 희곡에서 절실히 주장하고 있듯이 자비와 용서는 인간 조건 (QUALITY) 이기도 하다.

‘베니스의 상인’에서 포샤가 웅변하는대로 용서라는 것이 권력과 명성을 놓치는 것이 아니다. 그녀는 자비는 마음에 달려있고 오히려 축복을 받는것이라고 열렬히 사자후를 토한다.  주는 것 만큼 받는 것이 자비이다.  절간에 가서 기도하는 황우석 교수나  그를 옹호하는 이들은 이 ‘자비 (mercy)’의 의미를 왜 제대로 알지 못할까 궁금하다.

 

고해성사 없이는 살 수 없는 것이 우리 인간이다.  용서는 잘못을 먼저 고백해야 하는 전제조건이 달려있음에도 잘못을 해 놓고도 우기다가 그래도 탄로나니 홍위병 동원해서 적반하장으로 나오는 2번의 잘못을 저지리는  어리석음을  보이는 것이 똑똑하다는 한국 사람들의 전형이다.

 

황우석 사건도 연구 교수가 인정하다시피 난자제공 문제 실수 (절차적으로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확인서 발부등 –거짓진단서 발부는 한국 병원들 전유 물 독점이고 특허일 것이지만. )는 연구 결과에는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지엽적인 작은 문제라고 하였으니 처음부터 당사자인 황우석 대표교수가 깨끗이 진실을 있는 그대로 밝히고 용서를 구하면
그 만한 학문적 성과에 비해서 얼마든지 용서 PARDON 를 받을 사건이었다고 본다.

 

(아무리 가장 윤리적문제하고  첨예한 대립을 다르는 생명유전자공학 분야이지만 과학인 만큼 여지는 충분히 있을 수 있다.)

남의 것 뻬끼는 것이 버젓이 통용되고 있는 한국인 연구자에게 진실의 중요성과 윤리 문제가 법적으로도 바로 문제가 된다는 (면허 취소되듯이 모두 매장당하는 ) 것은 체감하기 힘들지도 모를 것이다.

 

가장 세계적으로 첨단을 걷는다고 자랑하는 국경이 없다는 최고의  과학자가 자신의 거짓 실수에 대해서는 '한국적 상황' (한국에서는 거짓말이 통용된다는) 을  논리로  변명해 대는 어처구니 없는 변명을 하는 것을 보고 사라지는 것을 보고서 암담하다는 느낌은 지울 수 없다.

 

결국  ‘거짓말 잘하는 한국인’의 우수성을 널리 알린 공로(?)에 대해서 황우석과 그의 동업자 노성일 그리고 청와대 가 벌이는  적반하장격의 여론몰이 행태는  ‘한국넘들은 믿을수가 없다’는 국제적 공인을 다시한번 확인시킨 해고망칙이라고 나는 본다.

 

사실 명성이 높을 수록 진실이 부족하면 바로 매장당하는 것이  서양선진국 생리 (문화)이다.  서양에서 거짓말 하지 않고 사기나 살인이 없다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로마시대에 왕과 귀족들이 보여준 투철한 도덕의식과 솔선수범 하는 공공정신이 모두에게서 나타나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사회적 지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 를 말하는 노블리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는 실제 생활에 체화 되어 나타난다.  지도층은 각자의 영역에서 한 번 거짓말 하면 생매장된다는 것을 법문화적으로 체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율곡이이가 강조한 ‘성’은 이러한 두려움 때문에 자기자신에게 신실해 지는 것이다.  우리 인간 자체가 부족하기에 '죄와 벌'이 존재하는 것이다.  오늘날  사회통합에 극도의 혼란을 겪고 잇는 한국으로서는 ‘일벌백계’ 의 법치원칙으로 어지러운 중국을  통일한  진시황제의 역사에서 그 교훈을 찾아야 할 것이다. 

 

아무런 권력도 명성도 없는 사람이 작은 잘못을 하는 것과는 분명히 다른 차원인 것이다.  한국인은  상류층이니 지도층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하기에 ‘일벌백계로 다스리는 서양 선진국의 노블리스 노블리제 (명예와 의무) 의 중요성’ 을 더욱 일깨우는 일벌백계의 기회가 되엇스면 한다.

 


(어제 본 '난' 중 한 장면-왠 한글자막?- 내가 찍은 것이 아니고 인터넷에서 훔처 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