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폐한 집
왜 형평법 법원이 문제인가? 법원 대개혁의 출발점
1장 형평법 법원의 법정 진행 모습 묘사
런던에 있는 대법원은 분기제로 업무를 보는데 4분기가 막 끝나고 대법관은 링컨 사법연수원 건물에서 업무를 본다. 날씨는 흠잡을 데 없이 좋은 11월인데, 길은 마치 물이 찼다고 바로 막 물러간 것처럼 진창이어서 십 미터가 넘는 거대한 공룡이 또는 코끼리만 한 도마뱀이 홀본 고개 쪽으로 어기적거리며 올라가는 것을 보는 것과 같이 보기 좋은 모습이 아니다. 굴뚝 사이로 매연이 날리면서 보슬비가 검게 내리는데 그 속에 함박눈 눈송이만큼 큼직한 검은 숯댕이 조각이 섞여 있으니 태양의 사망을 애도한다고나 할까. 개들도 진창 속에서 서로 구별이 안 될 지경이고 말들도 별로 나은 꼴이 아니니, 곁눈가리개까지 진흙이 튀어 오른다. 보행자들은 다들 악에 받쳐서 서로의 우산을 떠밀다가 길모퉁이에서 발의 균형을 잃고 마는데, 거기서는 새날이 밝은 후(날이 샜는지도 모르지만) 이미 수만 명의 다른 보행자들이 넘어지고 미끄러지면서 진흙이 늘어붙은 위에 또 눌어 붙은 덩이 위에다 새로 진흙덩이를 내리깔고, 그 지점에서 진흙덩이는 인도에 고집스레 들러붙어서 복리이자로 쌓이고 있었다.
사방은 안개투성이, 강을 따라 올라가며 깔린 안개는 초록빛 섬들과 초지 사이를 따라 흐른다. 강을 따라 내려가는 안개는 줄지어 선 선박과 거대한 (그리고 더러운) 도시의 강변의 오염물 사이로 더럽혀진 채 굴러간다. 에식스 습지에도 안개, 켄트 고지에도 안개, 석탄 운반선의 취사장으로 기어 들어가는 안개, 큰 배들의 활대에 걸쳐 있고 장비 위를 맴도는 안개, 바지선과 작은 배들의 뱃전에 늘어져 있는 안개, 병실 난롯가에서 천식으로 씨근거리는 노쇠한 그리니치 상이군인 연금 수령자들의 눈과 목구멍에 낀 안개, 갑판 아래의 비좁은 선실에서 격노한 선장이 오후에 빼문 담뱃대에도 안개, 갑판 위에서 오들오들 떨고 있는 수습 선원 녀석의 발가락과 손가락을 온통 안개에 둘러싸인 채 마치 비행선을 타고 올라가서 안개낀 구름 사이에 걸려 있는 듯이 난간 너머로 안개 낀 아래쪽 하늘을 내려다본다.
거리의 여러 장소에서 가스등이 안개 사이로 어렴풋이 비치는데 마치 습기 가득 찬 들판에서 가축을 키우고 밭을 가는 농부들의 눈에 태양이 희미하게 비치는 것과 같은 모양이다. 대부분 상점에서는 평소보다 두 시간 먼저 불을 켰는데 가스등도 이것을 눈치챈 듯이 황량하고 마지못한 표정을 짓고 있다.
납처럼 무겁고 오래된 시소유건물 건너 제대로 된 장식물이 높은 꼭대기꺼지 무겁게 달려 있는 고풍스런 건물인 템플 사법연수원 근처에서는 스산한 오후는 더할 수 없이 스산하고, 짙은 안개는 더할 수 없이 짙고, 진흙탕 길은 더할 수 없이 진흙탕이다. 템플 사법연수원 바로 옆 링컨 사법연수원 홀의 안개 자욱한 가운데에 대법관이 형평법 대법정 재판관석에 앉아 있다.
오늘 하늘과 땅이 보기에 머리가 허연 죄인들 중에서도 가장 해로운 죄인인 이 형평법 법원이 처해 있는 이 더듬거리고 허우적대는 상황과 딱 어울릴 정도로 그처럼 안개가 짙게 낄 수는, 그처럼 진흙탕이 깊이 깔릴 수는 결코 없을 것 같다.
그런 오후에 대법관은 머리에 흐릿한 안개 후광을 두르고 주홍색 천과 커튼으로 부드럽게 둘러싸인 채 여기 재판장석에 앉아 있다. 판사는 구레나룻수염을 길렀고, 목소리가 작으며, 지루하게 진행된 소송 사건 일지를 들고 있는 몸짓 큰 변호사의 말을 들으면서 눈으로는 천장의 채광창을 응시하고 있는 모습이다. 하지만 거기서 안개 말고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런 오후에는 형평법 법정의 수십 명의 구성원들이 지금 그러하듯이 끝도 없는 소송의 수만 단계 중의 하나에 몽롱하게 몰입해 있다. 애매한 판례로써 서로를 걸고 넘어지고, 법률 전문 용어의 무릎까지 빠져 더듬거리며, 염소 털과 말 털로 감싼 머리를 말의 벽에 부딪치고, 마치 배우들이 하듯이 진지한 얼굴로 형평의 핑계를 대면서, 그런 오후에 소송에 참가한 각양각색의 사무변호사 그들 중 두서 명은 거기서 한 몫을 단단히 챙긴 부친에게서 소송을 이어받았을 터인데, 소장, 반소장, 답변서, 제2답변서, 법원명령신청서, 증인진술서, 변론준비서, 법원주임사건판단서, 주임판결문 그리고 돈 잡아먹는 터무니없는 서류들을 산더미처럼 앞에 쌓아둔 채 서류 보존 담당자의 붉은 탁자와 법정변호사 사이에 있는 양탄자가 깔린 긴 변호인석(그러나 여러분은 그 밑바닥에서 진리를 찾으려 해도 소용없을 것이다)에 한 줄로 늘어서 있다. 당연히 법정 안은 여기저기 꺼진 촛불로 인해 침침하게 보인다. 당연히 안개는 마치 절대로 나가지 않을 것처럼 그 속에 무겁게 걸려 있다. 그리하여 채색 유리창은 색을 잃어버리고 대낮의 빛을 그곳까지 들여보내지 않는다. 당연히 법에 생소한 거리의 사람들은 문에 붙은 유리창을 통해 안을 들여다보다가 어두컴컴한 분위기 때문에 똑 푹신한 연단에서 천장까지 활기 없이 울려 퍼지는 느린 말투 때문에 들어오지 못하고 머뭇거릴 있을 뿐이다! 그 연단에서 대법관은 빛도 들어오지 않는 채광창을 올려다보고 있으며, 그 옆에 가발을 쓴 변호인들은 모두 안개 둑에 처박혀 있다. 이곳이 형평법 법정의 모습이다. 이곳은 허물어지고 있는 집들과 황폐해진 땅을 통제하고 있다. 이곳은 모든 정신병자 수용소의 지쳐버린 광인들과 모든 교회 묘지에 묻힌 자들을 낳고 있다. 이곳은 뒤축이 닮아 빠진 구두를 신고 실이 나달나달할 정도로 낡은 옷을 입고는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돌아가며 돈을 빌리고 구걸하는 파멸한 사건당사자들을 낳고 있다. 이곳은 돈이 있는 사람도, 올바른 사람도 지치게 하는 수단을 무지하게 제공해 주며, 금전과 인내와 용기를 그토록 고갈시키며, 그토록 머리를 뒤집어놓고, 가슴을 부숴버려서 여기서 일하는 사람들 중에 명예를 아는 사람이라면 “여기 오느니 차라리 네게 가해질 어떤 잘못이라도 견뎌라!”라는 경고를 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실제로는 그리 자주 경고를 하지도 않지만
이 음산한 오후 대법관 나리의 법정에 대법관 나리와 그 소송의 법정변호사 어떤 소송에도 절대 끼지 못하는 두 세 명의 법정변호사 그리고 이미 언급한 변호인석의 사무변호사들 외에 누가 또 있는가? 판사석 아래에는 가발을 쓰고 법복으로 정장을 한 법정서기가 있다. 법원 직원인지 변호사인지 세무서직원인지 아니면 뭐든지 간에 두 세명 정도가 각자의 직급에 맞는 법복을 입고 있다. 이들 모두가 하품을 하고 있다. 법정 심리가 곧 진행될 잔다이스 대 잔디이스 사건은 벌써 오래 전에 짜낼 대로 짜내어 더 이상 우스갯소리 한 조각도 떨어지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잔다이스 사건이 올라오면 법원 속기사와 신문 기자들은 나머지 다른 관계자들과 함께 바로 법정 밖으로 물러가 버린다. 그들이 있던 자리는 텅 비어 있다. 홀 옆면의 좌석에 서서 커튼으로 가려진 성역을 더 잘 들여다보려고 하는 사람이 있는데 바로 찌그러진 보닛을 쓴 자그마한 정신 나간 노파이다. 그녀는 개정 때부터 폐정 때까지 항상 법정에 나와서 뭔가 이해가 안되는 판결이라도 그저 자신에게 우호적으로 내려지기만을 늘 고대하고 있다. 그녀가 정말로 소송의 당사자이거나 당사자였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확실히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아무도 그녀에게 관심을 두지 않기 때문이다. 그녀는 자신의 서류라면서 잡동사니 몇 개를 손가방에 넣고 다니는데 그건 주로 종이 불쏘시개와 말린 라벤더 꽃이다. 창백한 얼굴의 죄수가 “자신이 당한 모욕을 깨끗이 씻어 내겠다”며 직접 청원을 하러 여섯 번째로 법정에 나왔지만 그 일을 해낼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그는 유일한 생존 소송인이지만 머리가 굳어버려 자신도 잘 알지 못하는 일을 설명하는 것이 불가능한 상태다. 그러는 동안 그의 삶은 끝장나 버렸다. 또 다른 파멸한 소송인은 정기적으로 수롭셔 지방에서 올라와서 그날의 업무가 끝날 무렵 대법관에게 말을 하려고 애를 써본다. 그는 대법관이 사반세기 동안 자신을 황폐하게 만들어놓고도 법적으로 자신의 존재를 전혀 모른다는 사실을 도무지 받아들일 수가 없다. 그는 적당한 자리를 잡고 앉아 재판관에게 시선을 고장하고 있다가 재판관이 일어나는 순간 낭랑하게 울러 퍼지는 불만에 찬 목소리로 “재판장님!”하고 부를 준비를 하고 있다. 이 소송인을 수습변호사들과 몇몇 사람들이 이번에는 그가 어떤 재미를 제공해서 이 음산한 날씨를 다소 활기차게 만들어줄까 기대하며 머뭇거리고 있다.
잔다이스 사건이 단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이 허수아비 같은 소송은 시간이 흐르는 동안 너무 복잡해져서 도대체 그게 무슨 소린지 누구도 알지 못한다. 이 소송에 대해 제일 모르고 있는 사람들은 소송의 당사자들이다. 알려진 바로는 어떤 형평법 변호사들도 그 소송에 대해 5분만 얘기하다 보면 진솔한 모든 사항에 대해 전적으로 의견을 달리하게 된다고 한다. 수없이 많은 아이들이 이 소송에 얽힌 채 태어났고 수없이 많은 젊은이들이 이 소송에 얽힌 채 결혼했고 수없이 많은 노인들이 죽어서 이 소송에서 풀려 나갔다. 수십 명의 사람들이 이유도 알지 못한 채 자신이 잔다이스 사건 소송인이 되어 있음을 알아채고 넋이 나갔다. 온 가문이 그 소송에 대한 전설적인 증오심을 물려받았다. 잔다이스 사건이 해결되면 새 목마를 받을 거라고 약속받았던 어린아이 원고나 피고는 성인이 되어 진짜 말을 소유하게 되었다가 종종거리며 저승으로 떠났다. 법원의 소녀 피후견인은 어머니로 할머니로 시들어갔다. 대법관들의 긴 행렬이 들어왔다 나갔다. 그 소송의 수많은 조서는 단순한 사망 조서로 탈바꿈했다. 늙은 톰 잔디이스가 절망에 빠져 좁은 챈서리 길의 찻집에서 총알로 머리를 날린 후로 지상에는 이제 세 명의 잔다이스도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잔다이스 사건은 여전히 법정에서 영원히 가망없이 지루하고 길게 끌어 가고 있다.
잔다이스 사건은 농담거리가 되어버렸다. 그것이 그 소송이 만들어낸 유일한 좋은 점이다. 그것은 수많은 사람에게는 죽음과 마찬가지지만 그 법조인 세계에서는 농담거리다. 형평법원의 주임과 판사 보좌관들은 그 사건 소송을 통해 경력을 쌓았고, 판사들은 그들이 법정변호사시절에 사건 당사자 누구를 위해 변호했건 그 사건에 관련된 적이 있었다. 푸르뎅뎅한 코에 알뿌리 모양의 구두를 신은 나이든 판사들은 정찬 후에 홀에서 포트 와인을 마시는 특별 모임에서 그 소송에 대한 유쾌한 얘기가 오가기도 했다.
법조인 수습 신분인 예비법조인들은 그 소송을 두고 자신들의 법 지식을 시험해 보려는 습관에 젖어 들기도 했다. 지난 번 대법관은 그런 일은 하늘에서 갑자기 비처럼 내려올 때나 일어날 거라는 유명한 법정변호사인 블로워변호사의 말에 “또는 우리가 잔다이스 사건을 끝냈을 때 말이지요”라고 답하면서 매끄럽게 넘겼다. 이 말은 특히 법원직원과 변호사와 세무서직원을 웃긴 농담이었다.
잔다이스 사건이 그 음탕한 손을 뻗쳐 소송과 관련된 사람들을 얼마나 많이 망치고 타락시켰는지는 파급효과가 크고 중대한 문제에 속한다. 서류가 잔뜩 꿰어져 있는 자신의 서류철 위에서 먼지가 쌓인 엄청난 분량의 잔다이스 사건의 소환장이 여러 행색으로 징글맞게 꿈틀거리고 있게 내버려 둔 말단 법원직원에서부터 변함없이 똑 같은 제목을 달고 있는 형평법원 사용 2절지 수만 장을 베껴 쓴 여섯 명의 형평법원 주임의 필사 서기까지 해당될 것이다. 그 소송으로 인해 어떤 사람의 성격도 나아진 바가 없었다. 갖은 종류의 거짓 변명을 하며 속임수를 쓰고 회피하고 지연하며 강탈하고 성가시게 구는 것에는 결코 좋다고 할 수 없는 영향력이 들어 있다. 사무변호사들의 사환 아이들은 아주 오래 전부터 치즐, 미즐 등이 특별한 일을 하고 있고 정찬 때까지 약속이 있다고 주장하면서 불쌍한 소송인들의 접근을 막아왔지만 잔다이스 사건 당사자 스롭터는 도덕적 사기와 술책을 체득했을 것이다. 소송의 수혜자는 소송으로 인해 상당한 금액의 돈을 얻었으나 또한 자신의 어머니에 대한 불신과 자신과 같은 인간에 대한 경멸감도 얻었다. 치즐과 미즐 기타 등등은 잔다이스 소송이 종결되면 그때는 그 중요한 작은 문제를 들여다봐서 잘 대우받지 못했던 드리즐을 위해 무엇을 할지 살펴봐야겠다고 막연하게 혼자 다짐하는 습관에 젖어 들었다. 최대한 다양한 방식으로 속이고 사기치는 일이 그 운 나쁜 소송에 의해 널리 파종되었다. 그 악의 가장자리에서 소송의 변천을 관조하던 자들조차도 나쁜 일은 원래 정해진 나쁜 길로 가게 내버려 두는 수 밖에 없다는 안이한 생각에 무심하게 빠져들었고 다소 냉담한 태도로 만일 세상이 잘못된다면 그 세상은 잘 되어가게 예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믿어버렸다.
“재판관님 실례합니다만, 조부는 강도를 당해 뇌를 다쳤습니다.”
갑자기 안개 끝쪽에서 몹시 왜소하고 작달막한 변호사가 득의양양하게 일어나서 말한다. “재판관님 발언해도 되겠습니다. 제가 변호인입니다. 그 사람은 친척입니다. 촌수는 멀지만요. 지금으로서는 법정에 계신 여러분께 정확히 몇 촌인지 알려 드릴 준비가 되어 있지 않지만 분명히 친척입니다.”
이 발언(그것은 무덤에서 온 전언처럼 음침하게 이어졌다)을 서까래 사이로 반항시키면서 이 작달막한 남자가 털썩 자리에 앉자 곧 안개가 그를 묻어버린다. 모두 그를 찾으려 했지만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는다.
대법관이 고쳐 말한다. 내가 두 사람과 이야기해서 친척 집에 살지 말지 확인해 보겠습니다. 이 건에 대해서는 내일 아침 이 자리에서 다시 이야기하지요.”
대법관이 법정을 향해 경례하려는 찰나 피고인이 대법관 옆으로 끌려 나온다. 이 피고의 재판 결과로 보아 나올 말은 고작 감옥으로 돌아가라는 정도이리라 예상되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곧 그런 판결이 내려진다. 수롭셔지방에서 온 사나이가 용기를 내어 다시 한 번 절절하게 재판관님!하고 외쳤지만 대법관은 이 사나이를 보자마자 재빨리 사라져 버린다. 다른 사람들도 그 뒤를 따라 사라진다. 대포처럼 일렬로 배치된 푸른 자루마다 대량의 서류가 장전되고 서기들은 그것들을 들고 법정을 나간다. 앞서 언급한 미친 노파도 서류를 들고 씩씩하게 퇴장한다. 텅 빈 법정이 굳게 잠겼다. 이 법정이 저지른 모든 범죄 행위와 그것이 불러온 모든 불행도 함께 잠그고 모든 것을 활활 타오르는 불길로 화장해 버릴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잔다이스 사건의 당사자들을 제외한 세상 모든 사람에게 얼마나 행복한 일이랴!
CHAPTER I In Chancery
황폐한 집-디킨스 장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