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의원을 심판하다!
정통성 legitimation과 정당성 justification
추홍희 편역
서지 정보 사항
국회 의원을 심판하다!
정통성 legitimation과 정당성 justification
차례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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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 국가”의 문제 |
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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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례대표제 의원의 법적 성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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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원은 정당의 대리인인가? 국민의 대표자인가?-“정당 국가”와 “대의제 책임 민주주의”의 충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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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원의 헌법 준수 의무와 의원 자격 상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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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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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례 대표제의 장단점 |
13 |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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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투표제도의 의의와 기능 |
20 |
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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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의 세계와 정치의 세계 |
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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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법의 정당성 justification과 정통성 legitimati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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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
가치의 통약불능성 incommensurability of valu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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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
“정치의 세계”와 “다수의 지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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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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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원 위임의 법적 성격과 의원의 법적 지위 |
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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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정당의 대리인으로서 의원의 지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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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
전체 국민의 대표자로서 의원의 지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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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
버크의 브리스톨 연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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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
의원의 공익 봉사와 청렴 의무와 Trust 법윈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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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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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적 민주주의 Militant Democracy-뢰벤슈타인 |
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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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전투적 민주주의와 방어적 민주주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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뢰벤슈타인의 전투적 민주주의 이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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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
파시즘의 성격과 국제적 침투 확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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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
권력 획득을 위한 정치적 기술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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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
민주주의는 취약점이 존재하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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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
전투적 민주주의의 구체적 예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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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
민주주의 딜레마와 ‘제3의 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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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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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시장 이론과 절차적 정의 |
6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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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사상의 자유 시장 이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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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
전투적 민주주의의 부활-역사적 회귀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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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
국가기관의 공정성과 절차적 정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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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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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 해산과 의원직 상실 여부-독일 케이스 |
7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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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독일사회주의제국당 (SRP) 정당 해산 심판 사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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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
심판 청구 이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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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
판결 이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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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
정당의 헌법상 특별한 지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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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
자유 민주주의 기본질서 수호장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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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
실질적 사법 정의 실현과 적법 절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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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
정당과 자유민주주의 헌법질서 수호장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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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
정당 조직과 민주주의 원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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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
자유 민주주의 기본질서의 개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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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
특별조항 우선 적용의 원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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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
헌법재판소 명령의 집행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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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
정당 해산과 의원직 상실 문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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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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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민주적 기본질서 개념 |
9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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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기본법과 헌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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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
민주 국가 최고의 헌법 원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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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
헌법 질서와 기본법 질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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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
자유민주적 기본질서-한국의 외국법 원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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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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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미국 헌법에는 정당 해산 제도가 존재하지 않을까? |
1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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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민주주의 정치체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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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
위임의 법적 성격과 심사숙고 판단의 조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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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
정당의 자유와 국민의 정치적 기본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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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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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원의 정부 비판 발언과 의원 자격 상실-본드 Bond 의원 케이스 |
1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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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본드 의원 케이스 개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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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결 이유-웨렌 대법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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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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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과 출판의 자유- 공적 관심사에 대한 토론의 자유와 공직자에 대한 비판의 자유 |
1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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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뉴욕 타임스 케이스 사건 개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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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
법률 쟁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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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
법원 판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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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
판결 이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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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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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통령 선거 부정 개표 선거 소송-법과 정치의 경계선 |
1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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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부시 대 고어 케이스 개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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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적 쟁점과 판결 이유 판결 이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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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에 대한 국민의 신뢰감이 중요한 이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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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
사법부 판결이 최고 최종적인 권위를 갖는다-고어 후보의 대선 패배 연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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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의원을 심판하다!
정통성 legitimation과 정당성 justification
1. “정당 국가 party state”의 개념
정당 국가 party state 독일어 표현은 Parteienstaat. ‘정당 정치’는 영미국의 대의제 의회민주주의 정치 체제와 독일식의 국가관이 결합된 형태라고 볼 수 있다. ‘의회 정치’는 ‘국민 주권 popular sovereignty’과 ‘대의제 민주주의 representative democracy’ 원칙에 기반한다. 반면 독일전통의 국가주의 체제는 정당을 국민의 정치적 의사 형성에 있어서의 대리인으로 이해하고 정당비례대표제를 채택하였다. 영미국의 정치현실에서도 정당 정치가 중심으로 자리잡아서 정당이 정치적 의사 형성의 과정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으나 독일의 정당명부 비례대표제가 아닌 순수한 대의제 원형을 지키고 있으므로 독일의 ‘정당 국가’ 개념과는 구별된다.
정당 국가와 정권의 정통성
자유 민주주의 국가는 국민 자치와 다수결의 민주주의 원칙을 기본적으로 지키는 체제다. 그런데 국민이 대표가 아닌 헌법재판소가 어떻게 정치 의사 형성을 기능으로 하는 정당을 강제적으로 정치적 의사 형성 과정으로부터 미리 배제할 수 있다고 한다면 그 근거는 무엇인가?
“자유 민주주의 헌법이 자신의 기본가치인 정치적 의사 표현의 자유를 보호하기 위해 지나친 제한을 가함으로써 제한규정 자체가 헌법에 위반되어 감당할 수 없는 자기모순에 빠지는 것은 아닌가? … 국가권력이 개입하여 정당을 정치활동으로부터 배제하는 것은 이론적으로 볼 때에 어쨌든 자유 민주주의 기본 원칙에 배치된다. … 자유선거권의 조건 속에서 정당이 체제 조화적인 방식으로 국가의 정치적 의사형성으로부터 배제되는 것은 선거에서 득표에 실패하면서일 것이다.”[1]
미국에서 의원의 헌법 준수 의무와 의원 자격 상실 문제
의원의 정부 비판 발언의 수준과 의원 자격 상실 여부
미국연방대법원의 본드 의원 케이스에서 의원의 정부 정책 비판에 대해서는 어떠한 제한을 두어서는 아니된다고 판시했다. 연방대법원은 이 판결에서“공공 정책에 대한 토론은 무제한적이고, 활발하게, 완전히 열려 있어야 한다”[2]는 뉴욕 타임즈[3] 판례가 확인한 언론 자유의 기준을 재확인하였다.
본드 Bond는 흑인이고 당시 인권 단체 소속 직원이었다. 그는 평화주의자로서 전쟁반대론자이었다. 1965년 의원 선거 이후 본드는 소속 인권단체가 미국의 베트남전쟁 정책과 전쟁 파병 군인 징병제를 비판하는 것을 지지했다. 본드는 흑인이 백인에 비해서 “차별받는 열등 시민”[4]으로 취급되는 한 전쟁에 참가할 이유도 없고 또 자신은 전쟁반대론자로서 당연히 베트남전쟁 등 모든 전쟁을 거부하는 명분을 가지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헌법 준수 의무에 위반된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조지아주 Georgia 하원은 본드가 주헌법과 연방헌법을 진정으로 준수한다는 것을 선서할 수 없다는 것[5]을 보여주는 것임으로, 따라서 본드는 의원 자격이 없다고 그의 의원 취임을 저지했다.
그러나 연방대법원은 본드의 행위는 법률로 금지하고 있는 징병제 반대 “선동 incitement”에 해당되지 않으므로 주 하원이 본드 의원의 자격을 박탈한 조치는 의원에게 주어진 수정헌법 제1조가 보호하는 표현의 자유 기본권을 침해하여 위헌무효라고 판결했다.[6]
정당 해산과 동시에 소속 의원의 의원직이 자동적으로 상실되는지에 대한 문제 즉 선출직 의원이나 정당 비례대표제 의원의 법적 지위와 성격에서 대해서 미국과 독일의 헌법 재판 사례를 통해서 보다 깊이 이해할 수 있다.
정당 해산과 의원직 상실 문제
독일 연방 헌법재판소는 과거 정당 해산 심판 사례에서 정당의 위헌성이 확인되고 이에 헌법재판소의 판결에 따라 해당 정당의 소속 의원들의 의원직은 즉시 상실된다고 판결했다. 독일 연방 헌법재판소는 비록 헌법에 직접적인 의원직 상실 규정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기본법 21조의 정당 조항에 근거하여 정당 해산과 동시에 의원직 상실 명령을 내릴 수 있다고 판결했다. 그리고 그러한 집행 명령은 사법부의 고유권한이라고 말했다. 정당 해산시 의원직 상실 여부에 대한 헌법상 규정불비의 논란에 대해서 독일은 1952년 최초의 위헌 정당 심판 사례 이후 연방선거법에 명문 규정을 삽입함으로써 입법적으로 해결하였다.[7]
하지만 의원의 국민 위임의 법적 성격은 단순한 정당의 대리인적 지위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대표자라는 트러스트적 지위를 동시에 갖고 있다는 의원의 이중적 법적 지위를 고려한다면 단순하게 판단한 사항이 아닐 것이다. 선출직 의원과 마찬가지로 정당의 비례대표제 의원은 “국민의 대표자”로서의 지위와 “정당의 대리인”으로서의 지위 즉 두 가지 지위[8]를 동시에 갖고 있는 관계로 정당 해산시 정당의 비례대표제 출신 의원의 신분이 계속 유지될 수 있는가의 문제가 떠오르게 된다.
당시 독일에서 반론은 의원은 총선에서 자유로운 국민들로부터 직접 선거로 선출되는 “전 국민의 대표자”이므로 정당해산과 함께 의원직을 상실시키는 것은 독일 기본법 38조[9]과 충돌된다고 반박하였다.
이에 대해서 헌법재판소는 정당의 위헌성이 확인되면 헌법재판소의 판결에 따라 해산 정당의 소속 의원들의 의원직은 즉시 상실된다고 판시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정당 해산으로 정치적 의사 형성의 헌법적 보호 장치에서 배제되는 경우 이에 대해서 정당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정당이 미리 자진 해산해 버리는 경우 헌법재판소의 해산 명령이 실효성을 거둘 수가 없을 것인 바 헌법재판소의 정당해산이란 헌법상 보호받는 헌법 기구 정당으로써 정치적 의사형성을 금지하는 것에 있음으로 정당 해산이 되는 순간 해산 정당의 소속 의원 또한 당연히 의원직이 상실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10]
여기에서 사법부가 정당 해산의 판결을 내린 의미는 정치적 의사 형성 과정에서의 민주주의 원칙을 존중하기 때문에 헌법재판소가 직접 그러한 정치적 활동을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헌법기관인 정당으로써 활동하는 것을 금지한다는 것을 의미한 것이라고 법적 판단에 대한 어려운 고민의 흔적을 스스로 말했다. 일반적인 결사단체로서 그러한 정치적인 활동과 전파 노력까지를 거부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헌법재판소는 자유롭고 민주적인 정치적 의사형성 과정을 방해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 것이지만 판례법 국가에서의 트러스트 법적 지위와 개념이 약한 독일의 전통이 드러나는 약점이 보일 수 밖에 없었다. 정당 해산은 헌법 기관으로써의 정치적 의사 형성을 금지하는 것이므로 당연히 헌법기관인 의원직은 동시에 상실된다고 헌법재판소는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정당뿐만 아니라 의원직 자체가 또한 헌법 기관이라는 측면에서 강제적 의원직 상실은 법적 논리가 취약한 고리를 가질 수 밖에 없다. 헌법 기관이 의원 자체가 헌법을 위반한 경우 사법부의 판단을 구하기 보다는 스스로 정치적 퇴출을 선언하여 국민의 정치적 판단에 맡겨 두는 것이 보다 바람직한 선택일 것이다.
2. 비례 대표제의 장단점-다이시의 견해[11]
비례대표제를 영국 정치제도에 도입하고자 하는 주장은 다음 3가지 명제를 그 이유로 제시하고 있다.
첫 번째 명제
하원이 여론의 추이를 정확하게 대변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최근 논의가 심화되고 있는 여성 참정권을 둘러싼 논쟁이 그 예가 될 수 있다. 달리 말해서 하원은 종종 유권자의 의사를 정확하게 반영하지 못하고 “국민의 의사를 반영하는 거울”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는데 실패하고 있다.
두 번째 명제
비례대표제의 제 방식을 도입함으로써 하원이 국민의 의사 즉 자유권자의 의사를 보다 충실히 반영하는 체제를 만들 수 있다.
세 번째 명제
하원이 유권자의 진실된 여론을 유권자 즉 국민 사이에 실제로 존재하는 비율에 최대한 가깝게 되도록 대변하는 것이 최선이다.
위 3가지 명제 중에서 첫 번째와 두 번째의 명제의 실질적 내용은 충분히 이해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여성참정권 확보운동이 현재의 추세대로라면 유권자의 과반수는 몰라도 하원의 과반수를 얻을 수 있는 가능성은 충분하다는 이이를 제기할 자는 많지 않다. 그리고 특정시기에 여성 참정권 쟁취 운동이 유권자의 과반수는 얻더라도 하원의 과반수를 얻는 데 실패할 수도 있는 것이다. 또 대중의 관심을 끌고 있는 비례대표의 정신을 구현하기 위한 몇 가지 방안 가운데 현재의 하원보다 더 완벽하게 국민의 의사를 반영하는 안이 있을 수도 있다는 데 토를 달 사람도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그렇다고 해서 이 주장이 모든 형태의 대중정부제도하에서 대의기관은 전 계층의 다양한 의견을 항상 거의 완벽에 가깝게 반영하여야 한다는 주장과는 별개의 것이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필자는 처음 두 가지 명제가 실질적 내용상으로는 일리가 있다고 수긍하기 때문에 이 서론의 목적상 엄밀성을 강조하는 입장에서 세세한 조건들을 달고 싶은 생각은 없다. 논의의 편의를 위해서 두 명제는 일단 옳은 것으로 가정하도록 하자. 필자가 비례대표제에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는 세가지 명제 중 마지막 세 번째 명제가 기본적으로 잘못된 것이라는 의구심에서이다. 즉 거대한 유권자 군에 존재하는 모든 여론이 실제치와 가장 근사하게 하원에 대변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는 주장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생각이라도 믿는다.
그런데 영국의 의회주의적 헌정제도에 비례대표제를 도입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하는 구체적 논거를 제시하기 전에 비례대표제는 하나의 목적에 융화되어 있는 서로 이질적인 두 사상을 구분하는 것이 선결과제이다.
그 중 하나는 영국민이 실제로 품고 있는 모든 의견을 하원에서 발언되는 것(정치적 속어로 하원 의원의 ‘입을 빌려야 한다’)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한 자유당 지도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다. “만약 하원이 국민의 의사를 비추는 거울 내지 실질적 반영이 이루어지는 곳이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하원에 대표가 없어 대신 발언해 줄 사람이 없는 국왕의 백성들이 가진 생각을 전혀 고려할 필요가 없게 된다면 하원만 이롭게 할 뿐이다.”
로크나 벤담 밀 등의 사상에 조금이라도 영향을 받은 사람이라면 쉽게 이 견해에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어느 국가치고 특히 대중정부체제를 채택하고 있는 나라라면 국민의 의견이 아무리 잘못된 것이고 우둔한 것이라 하더라도 국민의 의사기관에 반영하는 것은 당연한 일로 인정되고 있기 때문이다. 좀 극단적인 예를 한 가지 들어보자. 만약 일부 국민 중에 반유대주의자들이 존재한다면 이 가증스럽기조차 한 편견이 의회 내에서 동조자를 사지고 있는 것이 바람직한 것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대중의 오류나 망상을 파악하는 것이 정당한 정부, 현명한 통치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무시하는 것만이 결코 정의로움이나 현명함을 확보하는 길이 아니다. 비례대표제 찬성론자들이 곧잘 내세우곤 하는 또 다른 주장에는 모든 영향력 있는 의견이 하원에서 발언되어야 할 뿐만 아니라 총선에서 유권자들이 실제로 주장하였던 것과 동등한 비율로 하원에서 대표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것이 있다. 그래서 모든 여론이 하원에서 청취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신봉하는 한 논객은 다음과 같은 말을 곧잘 들먹이곤 한다. “하원을 단순히 국민의 입이 아니라 국민의 의사를 반영하는 거울로 만드는데 최선을 다하는 것이 우리 정체의 기초를 이루는 핵심적인 특성인 것이다.”라고. 이런 취지를 가진 비례대표제의 원칙은 공정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거부하지 않을 수 없는 도그마라 할 수 밖에 없다. 그들의 주장은 전혀 잘못된 것으로 보다 확실한 비판을 필요로 한다. 이하에서 살펴보도록 한다.
3번째 명제에 대한 비판
비판1
대중선거제도가 복잡하면 복잡할수록 선거꾼들이나 배후조종자들에게 더 많은 권력이 돌아간다. 정당조직의 장점을 사장시키고 권력을 강화시킨다. 그러나 영국이 당면하게 될 가장 큰 정치적 폐해는 정당 매커니즘이 너무도 비대해진다는 것이다. 일찍이 바조트가 이 점을 지적한 바 있다. 바조트의 주장을 백퍼선트 다 받아들일 수 없지만 존 브라이트의 허구적 참정권 비판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비판2
하원은 단순히 토론만 일삼는 곳이 아니다. 비록 간접적일망정 상당부분의 집행권을 행사하는 의사결정체이다. 하원은 내각을 임명하고 통제하는 기능을 한다. 논의를 위해 모든 영향력 있는 여론은 반드시 하원에서 청취되어야 한다고 가정하자. 특정 여론을 지지하는 발언을 하원에서 할 수 있는 사람이 최소한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가능한 일이다. 밀이 웨스트민스터를 주름답던 시기보다 의회에서 여성참정권에 대한 논의가 활발했던 적은 없었다. 밀과 같은 의견을 가졌지만 그에 버금갈 만큼의 논리력과 명석함을 갖추지 못한 백여 명의 의원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더라면 여성참정론이 그 정도의 반향을 얻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하원을 구성하는 일단의 멤버들이 어차피 정부 업무에 관련되어 있다면 행동의 통일이 의견의 다양함보다 훨씬 중요한 것이다. 대의제라는 관념이 가끔 너무 확대 해석되는 현상을 목격하게 되는데 모든 여론을 다 대변하는 내각은 아무 일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평상시에 하나의 정부가 동수로 두 반대당의 연합으로 구성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하물며 특정 목적을 위한 조사위원회가 여러 계파를 통합하여 조직되었을 때 판이하게 다른 두 가지 견해가 동시에 수렴될 수 있겠는가? 1834년 ‘빈민구제법 개혁안의 요강을 마련했던 한 위원회는 사회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런데 구빈법의 개혁에 반대하는 자를 위원으로 임명하였다면 일이 제대로 되었겠는가?
비판3
비례대표제는 사람을 대변하기보다는 여론의 대변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하원의 다양한 정파의 출현을 촉진하고 그들간의 결탁을 조장한다. 영국의 의회정부제도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양당정치제도가 정착되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좀 진부하지만 여전히 애용되고 있는 용어를 사용한다면 그 양당이란 다름아닌 토리당과 휘그당이다. 토리당이 유산자 및 학식을 갖춘 지식인계층의 지배를 지지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면 휘그당은 다수의 권력을 확보하여 상대적으로 빈곤하고 무지한 계층의 정치적 권력을 신장하는 정책을 펴왔다고 할 수 있다. 이런 경향들은 일장 일단이 있다. 근대적 표현방법 속에 담겨진 내재적인 비난과 찬양의 이미지를 탈색시킨다면 보수주의와 자유주의가 제각기 대중정부의 번영을 증진하는 방향으로 그들의 역할을 성실히 수행해온 셈이 된다. 오늘날 양대 주요 정당이 존재하고 이들 정당만이 영국 입헌주의의 발전을 주도해 왔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런데 19세기에 토리당이나 휘그당과 거리를 둔 몇몇 정파가 하원에 터잡은 때가 있었고 그들이 몇 가지 중요한 개혁을 이끌어 낸 사실이 있다는 것도 또한 사실이다.
다니엘 오코넬[12]이 주도한 영국-아일랜드의 합병 철회론자들, 콥헨이 주도한 자유무역주의자들이 이들 그룹에 속한다.[13] 이들 그룹은 토리당이나 휘그당에서 자리를 차지하고 안주하기보는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가진 대의를 위해 성공적인 활동을 수행하였다. 1845년만 해도 그들의 영향력은 무시할 수 없을 정도여서 헌법의 운용에 장애로 작용하곤 했다. 정당의 정책이 의회에서 실현되기 위해서는 내각을 꾸려 정책을 직접 실행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중요한 헌법 원칙의 운용을 제한하는 측면이 없지 않았던 것이다. 특히 자유무역주의자 그룹은 자신들의 의견 원칙 이론을 의회에서 관철시키기 위해 조직적으로 활동한 가장 모범적인 사례라고 볼 수 있다. (물론 그들이 최초의 사례는 아니었다). 오늘날 의회의 분포는 과거 구 휘그당과 토리당에 대비될 수 있는 여당과 통일당이 주요정당이고 이외에도 아일랜드민족당과 노동당이 있다. 이들 정당들은 각기 별도의 조직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 외에도 금주운동가나 여성참정권 옹호론자들, 혹은 국교철폐운동 그룹처럼 그들만의 운동과 대의를 위해 독자적인 소그룹을 유지하는 것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비례대표제가 원칙대로 실현된다면 의회 내 그룹의 증가를 초래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비례대표제 옹호론의 근본 목적은 영국 유권자 속에 존재하는 모든 여론이 실제상의 유권자의 비율에 따라 의회 내에서 교두보를 확보하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유권자의 10분의 1이 종두법 제정에 반대한다면 완벽한 비례대표제하에서는 67석의 하원 의석이 종두법 제정 반대론자들에게 할당되어야 한다. 우연한 기회에 보수와 진보파의 당적을 가지고 67명의 반종두법주의자가 의회에 진출하였다면 그들은 반종두법 운동을 대변하기 위해 하원에 보내진 67명과는 다른 조직을 구성할지도 모른다. 그 차이점은 다음과 같다. 우선 각 반종두법주의자들은 반 종두 문제보다 훨씬 중요한 사안이 있음을 종종 인식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비례대표제하에서 종두법의 전면적 폐지를 위해 선출된 67명의 의원들이 의정활동의 가장 중요한 목표로 동법의 폐지를 상정할 수도 있다 (일부는 그러해야 한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다수의 소 그룹의 난립이 의회정부제의 전 시스템을 붕괴시킬지도 모른다는 것은 전혀 근거없는 상상이 아니다. 비례대표제가 정파간의 결탁이라는 악순환을 확대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67명의 반종두법주의자[14]들이 이미 의회에 진출하였다고 가정하자. 그들은 반종두법주의에 대한 확고한 신념 때문에 의원으로 선출되었고 그들은 종두법의 폐지가 자신들이 취할 수 있는 최대의 목표라고 생각한다고 가장하자. 반종두법주의자들은 머지않아 자신들이 숫적으로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세력을 가진 것은 사실이지만 국정 전체를 좌지우지하기에는 역부족임을 뼈저리게 느끼게 될 것이다. 이들 애국자들이 다음에 취할 행동은 뻔하다. 아일랜드 자치령이나 국교폐지운동 혹은 노동당의 정책에서는 별다른 관심이 없는 반종두법주의자들은 저너의 환상이 낳은 종두법의 폐지를 도와준다면 기꺼이 아일랜드 자치정책과 국교 폐지 정책의 관철을 지원해 줄 것이라고 협상을 제의할 것이다. 정치적 기적이 일어날 수도 있다. 종두법 폐지에 다수가 찬성하고 광신자들의 목청이 국민적 상식을 짓눌러 버릴 수도 있다. 여기에서 필자는 한 예를 들어 일반 대중들이 망각하고 있는 사실 한 가지를 지적하고자 한다. 약 40년 전 지금은 단지 아더 오른으로 기억될 뿐인 한 청원인이 영웅이 된 적이 있다. 그가 14년인가 15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자 대중들이 분노하였다. 오른은 하원에서 그를 대변해 줄 단 한 사람의 의원을 확보하였다. 현재처럼 영국의 가택소유자 투표권제도와 결합되어 제대로 조직된 비례대표제도 아래에서는 20석쯤 확보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이 20표가 실권을 가진 정당의 원내대표의 마음을 움직일 만한 영향력을 가지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설령 이 청원인의 재심까지는 허용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형이 감형될 가능성은 충분하지 않을까? 이런 망상은 대중의 우둔함을 보여주는 극단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바로 그 때문에 논리적으로 이론을 검증할 수 있는 좋은 예가 될 수 있다. 필자는 비례대표제가 일고의 가치없는 주장이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아직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경청할 만한 비례대표제 반대론자에게도 귀를 기우릴 필요가 있음을 지적해 두고자 한다.[15]
3. 국민 투표 제도
다이시의 견해에 따르면, 미국에서 스위스에 기반을 둔 국민투표제도가 도입된 주된 이유는 정당 정치의 당파성과 정치적 부패 문제 때문이었다. 다이시는 국민투표의 기능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국민투표는 현재 절대적 권위를 누리고 있는 의회다수당을 견제할 수 있는 강력한 통제장치가 될 가능성이 있다. 또한 국민투표는 정당 정부가 노정시켜온 결함을 상당부분 치유해 줄 수 있는 제도이다. 국민투표의 장점으로 국민의 거부권은 그 자체가 민주적 제도인 동시에 그 소극적 성격 때문에 보수적 제도로 기능한다. 국민에게 직접 호소한다는 점에서 민주적이며 유권자와 다수가 유지하기를 원하는 법이나 제도를 지속시킬 수 있도록 한다는 점에서 보수적이다.”[16] 다이시의 견해에 따르면, ‘국민투표 referendum’는 스위스에서 시작된 제도로 ‘국민의 거부권 the people’s veto”이라고 흔히 설명되는데 이는 국민투표가 유권자의 승인을 얻지 못한 중요한 법안이 통과되는 것을 방지하는데 그 주요한 목적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런 측면에서 한국에서의 유신헌법에 대한 국민투표의 결과는 크게 대조된다. 한편 호주의 사례는 1952년 공산당 해산 국민투표에서 보여준 결과가 말해주는 것과 같이 다이시가 예견했던 대로 정당 제도가 가진 취약점을 치유하는데 기여한 것으로 평가된다.
소결[17]
의회주권은 여전히 영국 입헌론자들의 기본원칙이다. 그러나 상원의 권한은 상당부분 축소된 반면 하원 특히 하원의 다수당의 권한은 괄목할 정도로 확대되었다. 그리고 이제 정당조직의 주도권을 쥔 내각이 이 확대된 권한을 실질적으로 행사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의회다수당에서는 수상이 법적 수단으로 활동하며 실력을 갖춘다면 실질적 지도자로 활약한다. 내각과 수상의 점진적인 권력확대가 영국 헌법운용상 변화된 부분이다. 그 원인은 두 가지로 볼 수 있는데 양자는 상호 연관되어 있다. 우선 1867년부터 1884년 사이에 있었던 가택소유주의 참정권인정으로 민주주의에 중대한 진전이 있었던 것을 들 수 있다. 의회 안팎으로 아직까지는 완전히 승인되지 못하고 있기는 하지만 근대 의회의 정쟁에서 발휘될 수 있는 정치적 수완을 충분히 갖춘 지도자의 러디쉽에 따라 내각이 국가중대사에 관한 국민의 의사를 무시할 수도 있는 가능성을 전혀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영국의 통치구조에 비판적인 그룹의 태두가 개진하였고 로웰이 적극적 찬의를 표한 바 있는 정당 정부가 단순한 우발적 현상이나 타락이라기보다는 수 세대 동안 면면히 이어져온 영국입헌주의 제도의 토대라는 주장을 접하게 되면 정당조직을 통제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자들의 권한 강화가 어느 정도까지 진전되었는지 확연히 알 수 있게 된다. 영국의 의회정부제의 운용상 생긴 쉽게 인식하기 힘든 변화의 정도를 가능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팔머스톤이 활약하던 때 즉 아직 60년도 채 안된 1855년에서 1865년의 시기에 표면상 변화를 겪지 않은 한 제도가 어떻게 운용되고 있었는가를 살펴보는 방법이다. 팔머스톤은 1855년애 수상이 되었다. 1857년 팔머스톤은 역사상 가장 인기있는 수상이 되어 있었다. 팔머스톤의 반대파들의 연합작전으로 야기된 의회해산은 구의화파의 손에 절대적 다수의석을 안겨 주었다. 단 한 번 팔머스톤이 자리를 물러난 적이 있었다. 일시나마 하원에서 인기를 잃어갔던 것이다. 유권자들 사이에서 실없는 비난들이 제기되었다. 1858년 팔머스톤은 사임하였다. 그러나 1859년 또 단행된 의회해산으로 그는 국민의 지지를 얻어 수상에 복귀하였다. 팔머스톤은 1865년까지 국민들의 열화가 같은 성원에 힘입어 수상직에 머물러 있었다. 이런 사례들은 팔머스톤 시대에는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나 1914년까지 한 번도 그런 사례들이 되풀이되지 않았다. 글래드스톤과 마찬가지로 팔머스톤은 정당조직을 활용하여 권력을 장악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의회법’은 정당 정부론의 최종적인 승리를 의미한다.
정당 제도의 중요성의 증대는 영국뿐만 아니라 대영제국 전체에 걸쳐 국왕이 행사 가능한 도덕적 영향력의 증대와 동시에 일어나고 있다. 빅토리아 여왕의 왕위 승계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국왕의 도덕적 영향력이 확대되어 왔다. 영국 국왕이 헌법학자들도 그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도덕적 권한을 보유할 수 있는 근거로는 두 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 국왕은 대영제국 내에서 정당제도 밖에 존재하는 (그보다 우월한 것은 물론 아니다) 유일한 존재이다. 둘째 국왕은 영토적으로 연합왕국의 외부에서는 대영제국의 유일한 대표자요 중심으로 인정된다.
19세기에서의 마지막 25년과 20세기에 들어서 최초 14년은 1884년 당시 영국 입헌정부제도의 두 가지 핵심원칙으로 인정되던 법의 지배 원칙에 대한 신망이 뚜렷한 퇴조를 보인 시기로 기록될 수 있다.
오늘날의 개혁가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헌법 변혁에 관한 여러 제안들은 입법의 비대중성에 반기를 들고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 최선의 현명한 입법을 촉진하려는 목적이 결여된 것들이다. 불공정한 입법을 통제할 수 있는 기회를 간접적으로 촉진시킬 수 있을 것으로 보여지는 제안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비례대표제는 옳은 주장임에도 하원에서 상대적으로 낮은 평가를 받고 있는 여러 의견들이 하원에서 충분히 심리될 수 있는 기회를 보장할 수 있다. 국민투표도 영국 정당 제도가 가진 취약점을 치유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정치적 변혁을 주장하는 자들은 거의가 입법아 대중의 여론에 추종하도록 한다는 것을 주요 목표로 삼고 있다.
필자가 내린 결론은 양식 있는 애국적 영국인들의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자 하는 주관적 의도를 감추지 않고 있다. 시민 생활을 영위하는 모든 시민은 다음과 같은 물음에 답해야 한다. 오늘날 영국에서 정립되어 유행하고 있는 민주적 입헌주의의 결과는 무엇이 될까? 그들은 낙관주의와 마찬가지로 비관주의가 필자를 잘못된 방향으로 인도할 수도 있음을 항시도 잊어서는 아니된다. 그들은 40여 년 전 당시의 정치지도자들이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던 가능성과 위험성을 이미 인식하고 있던 한 헌법학도가 1872년에 갈파한 예언 중에서 그들이 찾고자 하는 해답의 가장 근사치를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월터 바조트의 말을 귀담아 들어보자
“머지않아 영국 정치가들은 이전까지 감히 생각할 수 없었던 엄청난 기회를 맞게 될 것이다. 그 기회는 아마도 상응하는 의무를 수반할지도 모른다. 정치가들은 새로 투표권을 행사하게 되는 유권자를 계도해야만 한다. 그것도 아주 조용하게, 그들이 무엇을 하는지도 눈치채지 못하게. 그러나 반드시 계도하여야 한다. 자유국가에서 정치 지도자들은 짧은 기간 동안이지만 강력한 권력을 가진다. 그들은 인류의 대화를 조율한다. 탁월한 언변으로 무엇을 무엇을 말해야 하고 무엇이 후세를 위해 쓰여져야 하는지를 결정하는 것이 바로 그들이다. 그들은 보좌진과 함께 미국인들이 ‘정강 platform’이라고 부르는 당의 프로그램을 작성하며 그에 기반하여 정치적 운동을 위한 조직을 구성한다. 바로 그 정강과 그들의 경쟁자들이 만든 정강을 비교함으로써 세계가 그들을 심판한다. 일반인의 상식만으로는 정강이 대상으로 삼는 정치적 문제들을 해결할 수 없다. 정강의 소재가 된 문제들을 최대한 엄정하게 판단하여야 한다. 정강은 그 주제들에 대답을 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그 주제와 관련된 이슈들에 대한 결정만을 할 수 있다. 문제제기의 과정에서 정치인들이 인류의 하층계급을 부추기는 문제를 제기하였다면 그들은 특히 엄중한 책임을 져야 한다. 그 계급이 잘못 판단하기 쉬운 문제를 제기한 경우, 그 계급의 이익이 국가의 전체 이익과 일치하지 않거나 상충되는 문제를 제기하였을 때, 그들은 장고 끝에 최대의 악수를 둔 셈이 된다. 국가의 운명은 미묘한 실험이 얼마나 좋은 결과를 낳는가에 달려 있는데 그들은 그 실험을 무산시킬 수 있는 모든 일을 저지를 가능성이 있다. 정치에 전혀 문외한인 무식꾼이 그들 앞에 훌륭한 이슈들, 잘못될 가능성 없는 이슈들을 제기하여야 할 바로 그 순간 현명하지 못한 이슈들을 제안할지도 모른다. 그들은 가난한 자들이 하나의 계급으로 뭉칠 수 있게 하는 주제, 그들이 가진 자들에 저항하도록 선동하는 주제를 선택할 가능성이 많다. 또 토론의 과정에 필연적으로 가난한 자들의 귀에 들어가서 현재의 법은 그들을 불행하게 할 뿐이므로 그들의 이익을 위한 새로운 법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가지게끔 해서는 정부가 그들이 원하는 것을 전부다 들어주기 위해 밑 빠진 독에 물 붇기 식으로 재정을 쏟아 넣어야 하는 주제들을 선택할지도 모른다. 만약 ‘가진 것 없는 자들의 낙원’을 꿈꾸고 그것이 실현 가능하다고 믿는 무산유권자들의 첫 작업이 그 낙원을 건설하려는 시도라면 휘황찬란하기만한 정치적 실험은 실패로 가는 열차에 몸을 싣는 것에 다름 아니다. 투표권을 계속 확대하려는 것은 새로운 투표권을 쟁취한 자들은 무론 전국민에게도 재앙의 저주가 시작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한 탁월한 학자가 남긴 이 말은 그가 죽은 후에도 살아서 우리의 귓전을 울리고 있다. 바조트가 남긴 경고의 말들이 기우에 불과한지 그의 예언 속에 들어 있는 재앙들이 별로 들어맞지 않고 머지않아 허언이었음이 드러날지는 독자들의 현명한 판단에 맡긴다. 1950년이나 2000년쯤 영국 민주주의 완결태를 그려낼 박식하고 객관적인 후세의 역사가들은 보다 완벽한 대답을 해 줄 수 있을지 모르겠다. 동년배의 어느 학자들에 결코 모자라지 않을 만큼 이 시대의 무지와 편견에 눈이 어두워져 있는 한 노학자에게도 말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과거나 미래 못지 않게 현재가 주는 교훈도 상당하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국가의 위기는 번영을 위한 시련에 불과하다. 평화의 교훈은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지만 전쟁은 보다 큰 교훈을 줄 수 있다. 하나의 왕국, 나아가 제국이 전체 국민의 총화를 이룸으로써 근대 세계가 낳을 수 있는 최대규모로 잘 조직된 군대를 보유한 국가들과 분명히 투쟁의 불길을 울렸던 것이다. 바로 이 점이 중요하다. 영국과 전대영제국은 칼을 움켜 쥠으로써 국가의 부와 번영, 심지어 정치적 실체마저도 위태로운 지경에 처하게 되었다. 영국은 국왕의 지배에 복속하는 모든 국가의 백성들이 보내는 열화와 같은 지지를 바탕으로 평화 속의 번영을 전쟁의 위험과 고통과 맞바꾸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모두가 새로운 식민지를 쟁취하고 군사적 영예를 더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국제적 정의와 인류 공통의 선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다. 이 모두가 비록 더디지만 진정한 용기와 진정한 정의의 길을 함께 걷는 인류 진보와 대중 정부의 찬란한 발전을 향한 첫걸음인 것이다. 이 모두가 영국 청년들이 프랑스 청년들과 더불어 젊음이 바로 낙원이라는 생각을 향유하게 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또한 쓸모가 없어졌다는 정치적 허무와 실망 때문에 좌절해 있던 노년층을 위무할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중요한 국가의무를 엄정히 완수함으로써 군국주의 국가의 거만함과 환상 힘을 제압하고 어떤 비용을 치르더라도 문명세계의 자유 인간애 정의를 수호하는 결정에 각계 각층의 국민들이 동참하는 그날을 보기 위해 죽지 않고 살았다는 기쁨을 가슴 뿌듯하게 누리게 할 것이다.”
4. 정의의 세계와 정치의 세계
4.1. 법의 정당성 justification과 정통성 legitimation
독일연방헌법재판소의 판결문에서 나타나듯이 정당 해산 심판에서 나타나는 3가지의 근본적인 문제점은 첫째, 민주주의 체제라면 심지어는 민주주의 체제를 반대하는 정당이라도 허용되어야 민주주의가 성숙되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고, 둘째, 의원은 전체 국민의 대표자로써 자신의 양심에 따른 지위임과 동시에 소속 정당의 정책들에도 따라야 되는 이중의 지위를 갖고 있다는 점이고, 셋째, 국가정보기관의 정당 개입의 한계가 어디에 있는지 즉 절차적 정의의 문제가 결부되어 있다는 점이다.
헌법상 정당의 자유를 보장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정당을 해산할 수 있다는 이러한 헌법조항은 일견 서로 맞지 않다는 생각이 바로 일어난다. 국민의 자기결정권과 다수결의 원칙에 기반하는 민주주의 정치 체제의 기본적인 가치는 누구라도 자유롭게 정치적 의사형성의 과정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에 있다. 그런데 자유로운 의사결정권을 가진 국민들이 자유로운 선거에서 결정을 하는 정권의 형성 문제에 대해서 국가가 미리 앞서서 어느 정치 세력을 정치적 의사 형성 과정에서 강제로 축출할 수 있는가? 하지만 이것은 반민주적인 조치에 해당할 것이다.
자유 민주 국가 체제에서는 정치적 의견의 표현과 정치적 결사의 자유가 국민 기본권으로써 보장되고 또 국민주권의 원칙에 따라 선거권을 가진 국민이 선거에 참여하여 다수결의 투표로써 정권을 결정한다. 이 과정에서 모든 자유 민주주의 국가의 정치적 현실은 선거일 이전에 정당을 조직하고 선거에 참여하게 된다. 이러한 민주정치의 이론과 현실에서 정치의 설립과 정당 활동은 제약을 받으면 안된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18세기 미국의 독립 당시부터 선거권자는 정치적으로 양진영으로 나뉘어져 서로 대립하여왔다. 민주적인 다수의 참여를 달갑지 않게 여겼던 연방주의자들은 대립하는 조직을 필요악이라고 인식한 반면 민주 국가에서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진영은 대립하는 집단의 존재는 기본적인 단위라고 보다 호의적으로 보았다. 개방성은 공익을 추구하는데 선한 도구로 작용할 수 있다고 여긴 미국 대통령 토마스 제퍼슨의 말이 대표적으로 후자의 견해를 반영한다: “만약 미합중국의 해체를 원하거나 공화국 체제를 바꾸기를 원하는 사람이 있다면 타당한 이유들이 자유롭게 경합할 수 있는 곳에서는 그같은 잘못된 의견도 관용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안전의 기념비로써 그들이 방해 받지 않도록 합시다.”[18] 민주주의 다양성과 개방성에 대한 자신감을 나타내는 토마스 제퍼슨 같은 미국 헌법기초자들은 정당의 자유를 인정하고서 정당 조항을 헌법 조문에 넣지 않았을 것이다.
또 정당에 대한 태도를 정치이념적으로 굳이 구분한다면 개인을 우선시할 것이냐 아니면 집단을 우선시 할 것이냐의 차이로 좁혀질 수 있는 문제다. 이런 측면에서 정치적 표현의 자유와 언론 자유를 신성시하며 수정헌법 1조로 보호하는 미국의 헌법을 고려한다면 정당 규제 조항을 헌법에 규정하지 않았던 미국 헌법기초자들의 기본적인 생각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대의제 민주주의의 기초는 공익을 위해서 “현명한 판단 mature judgment”을 내릴 수 있는 독립적인 지위를 가진 의원임을 상정하고 있다. 여기서 문제는 “현명한 판단”은 어떻게 내려지는가의 그 과정에 있다. 의원은 자신의 양심에 따른 독자적인 판단을 하는 존재라고 말하는데 이런 독자적인 현명한 결론에 도달하는 원천은 “토론”에 의존한다. 다수의 지혜는 남으로부터 정보와 의견을 얻음으로써 생겨나는 과일 열매와 같은 것이다. 의원의 면책특권을 보장하는 이유와 민주국가에서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는 근본적인 전제가 여기에서 나온다.
이러한 민주주의의 우월성에 대한 근본적인 믿음의 측면에서 보면 정당 해산은 민주국가의 정당성의 근간인 민주주의 체제의 정치적 개방성에 대해서 이율배반적인 결과를 가져올 위험이 있다. 이러한 딜레마 상황에 대해 독일헌법재판소도 시인하고서, 정당 해산 제도는 필연적으로 자유로운 정치 활동의 기본적 권리인 정치적 표현의 자유와의 사이에 일정한 긴장관계가 일어난다는 점을 경계하였다.
4.2. 가치의 통약불능성 incommensurability of value
무엇이 좋은 삶인지, 권리, 공공선, 정의 등에 사람마다 각자 생각이 다를 수가 있다. 자신의 가치와 생각이 타인과 다르다고 해서 다수의 의견을 따르지 않아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현실적으로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생각과 가치가 다르지만 다수의 의사에 따르고 있다. 각자 다른 생각과 가치들은 법원의 재판으로 강제될 수 있는 영역이나 내용이 아니다. 각자의 생각과 가치는 하나의 법적 잣대로 평가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이런 영역은 종교적 신념에 가깝다. 종교의 다원성을 인정하기 때문에 종교의 자유를 주장하는 것이다. 종교개혁의 발상과 역사적 흐름을 상기하라. 다양성이 개인적 자유를 가능하게 한다. 이것이 타인을 자기와 똑같이 인정하고 존중하는 자유주의의 기초적인 생각인 것이다. 이런 자유주의적 사고는 역으로 보면 잘못된 신념을 가진 사람이 그들의 잘못된 신념에 따라 행동하는 것을 허용할 의무를 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타인들이 자신의 믿는 참된 가치 즉 지금까지 알려진 진실 purported truth에 따라서 행동하는 것만이 허용된다면 다른 사람들을 같은 인간으로 존중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한다. 자기의 가치관에 따라 타인을 행동하도록 강제할 때는 인격의 평등성을 침해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그러므로 헌법의 핵심적 가치들을 정할 때 자신의 의견과 주장만이 일방적으로 채택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정당하지 못한 폭력’에 해당할 것이다.
사람마다 가치의 평가 대상이 다르고 또 가치 판단의 방식이 각자 다르고 대상에 따라서도 각각 다르다. 사람마다 무엇이 좋은 삶인지에 대해서 각자 다양한 생각과 가치들을 가지고 있고 또 그런 다양한 생각과 가치들을 비교하기 힘든 가치의 ‘통약불가능성’[19]과 가치의 판단방식은 각자 처한 사회적 조건에 따라서 각각 다르게 가질 수 있다. .
사람들은 각자 자신들의 인생관을 추구하고 자신들의 세계를 살아간다고 해도 하나의 일정한 공동체를 구성하는 한 공동체 삶에서 생기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가치 판단이 필요하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법이 도덕판단과 가치판단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고 하면 법을 도덕과 가치 판단으로부터 분리해서 생각해 보면 된다. 인간 사회에서 분쟁을 해결하는 관건은 어떤 가치를 선택할 것인가가 아니라 서로 다투는 가치들 사이에서 어떻게 가치판단방식을 채택할 것인가의 문제인 것이다.[20][21]
이를 정당 해산 심판 사건에서 적용해 보자. 정당해산 문제를 헌법재판소가 담당할 때 공산주의와 민주주의의 가치 우열을 논해서 결정될 성격도 아니거니와 (왜냐면 사람마다 각자 생각하는 가치가 다르므로)[22] 따라서 굳이 법이 나서야 한다면 법은 가치를 평가하는 특정한 방식을 반영하고 또 소통시키는 역할 즉 “표현적 기능 expressive function of law”[23]을 담당하는 것으로 전환하는 것이 보다 나은 매커니즘이라고 여긴다. 국가정보기관의 정당 개입의 문제가 드러난 독일의 NPD 정당 해산 심판에서 재판의 공정성 문제가 법적 쟁점으로 대두하게 되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민주주의냐 공산주의냐의 질적인 가치의 옳고 그름에 대한 결정이 문제가 아니었다. 절차적 정의가 담보되지 않으면 본질적 가치에 대한 논쟁이 결과적으로 아무런 의미가 없어지고, 재판의 당사자인 국민들에게 요구되는 동의의 조건이 허물어지고, 본질적 가치를 논쟁하고 이를 통해 숙의하고 동의를 구할 수 있는 대전제가 파괴될 것을 우려하였다. 또 국가정보기관이 깊숙이 개입해서 캐낸 정보에 의존해서 재판을 하게 된다면 정부의 요구 사항을 그대로 인정하는 거수기 역할밖에 할 수 없을 것이며 또 만약 국가기관의 정보 수집이 공정하지 못하다면 헌법 재판의 의미가 반감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4.3. “정치의 세계”와 “다수의 지혜”
정치적 반대 의견에 대해서 관용이 필요한 법적 근거를 잘 설명해주는 제러미 월드론 Waldron의 견해를 보자. 월드론은 인간사회의 조건에서 국민들 사이의 의견불일치가 존재하고 공동 결정의 지혜가 보다 낫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러한 인간 조건에서 인간 사회는 민주 정치 politics가 가능하고 또 필요로 한다고 것을 파악하고 이를 “정치의 세계 the circumstances of politics” 개념으로 설명했다. 월드론은 롤스의 “정의의 세계 circumstances of justice”개념을 차용했는데 롤스는 인간사회의 조건을 “자원의 희소성 moderate scarcity”과 “제한된 이타심 limited altruism”으로 보고 이러한 조건에서 인간 사회는 정의를 요구하는 상황이고 따라서 “정의의 세계 circumstances of justice”이 가능하고 또 필요하다고 주장했다.[24]
“사람들이 모두 다 착하면 법이 필요 없을 것”[25]이라는 말처럼, 무릉도원에서는 정의가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정의가 가능하지 않다는 의미가 아니라 서로 다툴 필요가 없는 곳에서는 정의를 요구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무릉도원에서는 좋은 삶의 방식이 무엇인가에 관해 모두가 다 같은 생각을 하거나 또는 다른 사람들 모두가 타인을 배려하고 또 타인의 생각이 뛰어날 것이므로 자신이 나서서 다툴 생각을 느낄 필요가 없다. 정의의 개념을 아리스토텔레스의 고전적인 분배적인 정의 즉 “각자에게 돌아갈 각자의 몫”을 정하는 역할로 이해하면 무릉도원에서는 정의를 요구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분배와 참여 문제 때문에 정의의 문제가 나오고 또 그것을 다루는 까닭이다. 문제는 인간사회는 무릉도원이 아니라는 것에서 생긴다. 각인각색인 인간사회에서 무엇이 좋은 삶인지에 대해서는 개인 자유 나름이고 또 이런 개인적 다양성을 인정해 주어야 한다는 롤스의 주장은 타당하다.[26] 하지만 월드론은 롤스의 정치적 자유주의 입장은 사람들이 의견불일치를 보이는 정의, 권리, 공공선[27]에 관해서는 제대로 설명을 해주지 못한다[28]고 비판하고 그런 부분까지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다수의 지혜” 방식이 필요하고 또 보다 나은 것이라고 주장한다.[29] “다수의 지혜”는 월드론이 말한 “정치의 세계 circumstances of politics”의 개념에서 나온 결과적 표현이다.
인간사회는 역사적으로도 또 현실적으로도 무엇이 좋은 삶인지 또는 어떤 정치체제가 좋은지 또는 인간이 무엇을 어떻게 해야 되는지 등에서 사람들의 사이에 각자 의견불일치가 존재한다. 그런데 이러한 의견불일치에도 불구하고 공동체를 이루고 살면서 함께 결정을 내리고, 살아오고, 또 그런 공동결정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다. 독재자처럼 공동결정을 원하지 않는다면 의견불일치는 문제 자체가 되지 않는다. 또 사람들 사이에 의견불일치가 없다면 공동결정의 장치 또한 불필요하다. 인간사회에서 의견불일치와 공동결정은, 롤스의 희소성과 제한적 이타심의 조건처럼, 주어진 조건에 해당된다. 다시 말해 의견불일치는 인간사회의 운명적인 존재인 것이고 그러한 의견불일치가 전제되기 때문에 이성적인 토론이 필요하게 되는 것이다. 이성적인 토론을 전개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정의, 권리, 공공선에 대해서 사람들 사이에 의견 일치라는 것이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이 전제되어 있는 것이다.[30] 합의가 되어 있다면 정치의 세계는 불필요하다.[31] 사람들이 다들 착하다면 정의가 필요하지 않는 것처럼, 인간 사회의 이런 조건 때문에 “정치”가 필요한 것이다.
사람들이 무엇이 좋은 삶의 방식에 의견이 불일치하고 다양하다는 것 따라서 개별적 자유를 인정해야 함이 보다 타당하다. 이것은 법(정치체제)에서 실질적으로 보장되는 영역으로 다루어야 할 부분이 아니라 그 이전의 단계로써 법의 효력을 가져오게 만드는 “절차적이고 기술적인 장치 procedural and technical method of decision”에 해당된다. 개인의 자유와 타인에 대한 배려와 존중은 이와 같이 절차적 정의를 우선 먼저 요구하는 것이다.
결정(법)에 관계된 사람들의 동의를 확보할 수 있는 장치가 절차적 공정성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절차적 공정성이라는 기술적 장치를 망가뜨리게 된다면 법의 정당성은 확보되기 어려울 것이다. 절차적 정의는 법의 정통성의 문제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정통성은 법의 기원의 문제다. 따라서 정통성은 정당성보다 먼저 위치에 있다.[32] 법의 권위는 법의 정통성 장치를 우선 통과해야 된다는 결론이 얻어진다.
선거의 공정성은 당사자인 국민의 합의를 이끌어내는 기술적인 대전제 장치에 해당된다. 마찬가지로 재판의 공정성 문제는 법의 정당성 (즉 판결의 내용이 정당하느냐) 문제 이전의 법의 정통성을 결정하는 기술적이고 절차적인 대전제 장치에 해당된다. 다시 말해 절차적 정의는 법의 정통성에 관한 문제이고 이는 법의 정당성과는 다른 문제일 것이다. 독일헌법재판소의 NPD 정당 해산 심판에서 재판의 공정성 문제가 주요 법적 쟁점이 되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와 같이 기술적인 장치인 절차적 정의의 문제는 실질적인 정의의 문제에 직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법의 정당성보다 정통성이 우선 요구되는 이유는 인간 사회에서는 의견불일치가 존재하고 또 결정(법)은 효력을 가져야 된다는 조건에서 나온다. 왜 판례법국가에서 절차적 정의를 보통법보다 상위에 존재하는 자연법적인 조건으로 이해하였는지를 보다 깊이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인간은 자유와 다양한 가치를 지닌 존재이고, 따라서 타인에 대한 존중과 배려를 가져오는 실질적인 정의는 절차적 정의의 기술적 장치가 확보되어야 가능한 것이다.
5 의원은 누구를 위해서 존재하는가?-전체 국민의 대표자인가? 정당의 대리인인가?
5.1. 의원의 성격과 지위-정당의 대리인
대의제 민주 정치 제도에서 요구되는 기초적인 개념 하나는 의원은 사익을 추구하는 지위가 아니라 공직 public service에 봉사하는 진실한 “수탁자 trustee”의 지위에 있다고 간주하는 점이다. 하지만 의원이 전체 국민의 입장에서 공익에 봉사하는 공직자라는 모델은 오늘날에는 별로 현실적으로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많은 나라에서 현재의 의원들의 의정 모습을 지켜보면서 전체 국민의 입장에서 공익을 추구하고 공익을 위해서 봉사하는 공직자의 모습을 느끼기 보다 그와 반대로 큰 실망감을 보이는 경우가 흔히 나타난다. 대의제 민주주의의 제도에 충실한 제도를 지키고 있는 미국의 의원들도 의회 로비 제도에 비추어지는 현실적인 모습을 보면 이들 또한 사익을 추구하는 측면이 강하게 나타난다. 실증적인 사회과학의 연구 결과들에 따르면 대의제 민주정치의 기초인 의원을 공익에 봉사하는 공직자의 개념이 순수하게 지켜지고 있다고 보기 힘들다. 특히 의원을 포함한 국가 공무원은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자신들의 사익을 추구하는 면이 크다고 강조하는 공공선택이론의 주장은 수긍할만하다. 이러한 근거에 따르면 선출직 대표를 공공의 이익에 봉사하는 선량한 관리자[33] 개념으로써 상정하는 것은 현실적인 모델이라고 보기 어렵다.
한편 독일은 현대적인 정당 정치의 현실을 인정하고, 정당을 헌법상의 지위로 격상시킨 “정당 국가”를 지향하고 있다. 독일은 대의제 민주 정치 제도의 전형적인 모습에서는 약간 벗어나는 정당 비례대표제도를 실시하고 있다.[34]
독일은 나치일당 독재 국가전체주의 체제에서 헌법이 파괴된 아픈 상처를 경험한 바 이와 같은 일당독재체제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 정당 국가의 정치적 현실을 보다 현실적으로 접근했을 것이다. 정당 또한 자신들의 사익을 추구하는 미국의 로비스트 그룹과 같은 기능을 가진 정당으로 보고 정당을 국민의 대표자라는 지위보다는 당파성을 가진 정당의 대리인 agent 개념으로 접근하면서 보다 현실적으로 파악하고 정당 해산의 법리를 이끌어 내었다고 추측할 수 있다.
물론 독일 헌법에서 의원의 법적 성격을 대리인의 개념으로써 분명하게 단정적인 결론을 내렸다는 뜻은 아니다. 독일헌법재판소가 밝히듯이 기본법 제38조에서 의원은 “전체 국민의 대표자”라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헌법 규정을 보면 의원은 자신을 선출해준 선거구민의 이익에 봉사하는 대리인이 아니라 의원 자신의 독자적인 현명한 판단을 하여야 하는 양심적인 존재로 인식하고 있다. 독일 헌법에서 상정하는 의원은 대의제 민주주의 기초인 공익을 위해서 “현명한 판단 mature judgment”을 내릴 수 있는 독립적인 지위를 가진 의원임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점 하나는 “현명한 판단”이 어떻게 내려지는가의 그 과정에 있다. 의원은 자신의 양심에 따른 독자적인 판단을 하는 존재라고 말하고 있는데 이런 독자적인 현명한 결론에 도달하는 원천은 “토론”에 있다는 점이다. 판례법 국가에서는 12명의 배심원들이 모여 숙의 deliberation의 과정을 통해서 나타난 “다수의 지혜”를 존중하는 배심원 제도가 법제도와 법문화의 기초를 이루고 있다. 배심원 제도는 판사 한 명의 판단 보다는 공동체 구성원 다수가 숙의의 과정을 통해서 가장 현명한 판단을 도출할 수 있다는 믿음에 기초한다. “다수의 지혜 wisdom of the mulitide”는 숙의 deliberation의 과정이 필수적으로 개입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심사숙고의 과정은 각자의 반대의견들이 하나의 일치된 결론으로 이끌어내지는 필수적인 과정이다. 반대의견이 존재하기 때문에 교황선출제도와 같이 한 방에 몰아넣고 거기서 하나의 일치된 결론이 얻어지는 것이다. 숙의의 과정에는 완전한 토론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 일치된 결론을 얻어내기 위해서 한 방 room에 들어가 토론한다는 것은 반대의견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전제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다수의 배심원들이 하나의 일치된 결론에 도달하는 배심원 제도의 숙의의 과정과 같이 의원들이 현명한 판단을 하기 위해서는 완전한 토론의 자유를 보호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은 두말할 필요가 없이 당연하다. 다수의 지혜는 타인으로부터 정보와 의견을 얻음으로써 생겨나는 하나의 과일의 열매와 같은 것이다. 의원의 면책특권을 보장하는 이유와 민주국가에서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는 근본적인 전제가 여기에서 나온다.
반대의견의 존재와 자유토론의 보장이라는 민주주의의 제도 측면에서 보면 선출된 대표자의 지위는 대리인의 성격에 보다 가깝다. 그러나 자신을 선출해준 사람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의원들이 숙의의 과정에 참가하고 토론함으로써 전체의 이익을 고려하며 전체의 대표로 전환되는 과정을 겪게 된다.
독일헌법재판소가 민주정치체제의 정치적 개방성에 이율배반적인 결과를 가져올 위험성이 큰 정당해산 제도의 딜레마를 해결할 법적 논리의 하나로써 나찌 일당독재의 뼈아픈 정치적 경험의 반성에서 찾고 있다. 이를 수긍하고 나서 하나 추측을 해보면 정당국가를 채택한 독일에서는 일견 숙의의 전통이 배심원제도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에 국민의 대표자라는 헌법 38조의 법적 장치하고는 조화되지 못한 결론을 가져왔다고 상상해 볼 수 있다. 의원은 전체 국민의 이익이 아니라 의원 자신이 속한 정당의 이익을 추구하는 지위를 가졌다고 보는 것이 현실적인 의원의 모습일지라도, 각자 이익을 추구하는 의원들이 숙의의 과정을 통해서 전체 이익에 합의하는 과정을 판례법국가들이 이해하는 만큼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추측해 보는 것이다. 아무튼 독일헌법재판소가 내린 ‘정당 해산과 동시에 의원직을 상실한다’는 판결의 논리적 배경에는 의원의 지위를 비현실적인 개념 (legal fiction)인 국민의 대표자라는 지위보다 보다 현실적인 개념인 정당의 대리인으로써 의원의 성격과 지위를 파악했다는 생각이 자리잡고 있다.
5.2. 의원은 전체 국민의 대표자인가
입법부 의원은 국가 전체의 이익을 위해서 봉사하는 국민의 대표자인가? 아니면 선거주민 (또는 정당)의 대리인인가?
현대의 정당국가와 이익단체의 의회 로비의 현실적 측면에서 본다면 의원이 전체국민의 대표자라는 인식은 법적 허구 legal fiction에 지나지 않는 비현실적인 개념이라고 볼 수 있다. 오늘날 대의제민주주의 국가에서 나타나는 압력단체 또는 이익집단의 로비 경향을 고려하면 의원은 어떤 집단들의 이익을 대리하고 그들을 옹호하고 있다는 모습을 강하게 그려진다. 또한 독일의 정당 국가 체제에서 정당비례대표제로 당선된 의원은 소속정당의 대리인에 보다 가깝다. 이와 같이 오늘날 의원의 의정 모습을 그려보면, 전체국민의 대표자보다 어느 한 지역 또는 어떤 집단의 이익을 대변하는 모습이 보다 현실적이라고 파악된다.
하지만 독일헌법에서 의원을 전체국민의 대표자라는 개념으로 규정하고 있으므로 독일에서도 의원의 지위에 대한 법적 성격은 완전하게 해소된 것이 아니다. 독일헌법 38조1항은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독일연방의회 의원은 전 국민의 대표자이며, 명령과 지시에 구속되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양심에 책임을 진다.”[35]
영국의 버크 Burke는 그의 유명한 브리스톨 연설에서 국민의 대표자로서의 의원의 위임 개념을 웅변적으로 설명했다. 의원은 선거구민의 단순한 대리인 agent이 아니라 국가 사회 전체의 이익을 interest of the nation as whole 위해서 봉사하는 ‘전체 국민의 대표자’라고 힘주어 말했다. 독일 헌법상의 의원의 법적 성격은 버크가 말한 그것과 다르지 않다고 보인다.
또 정당국가체제이면서도 책임정치[36]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고 또 지역정당의 모습을 강하게 보여주는 의회 정치의 현실에 근거해 판단한다면 의원은 대리인의 모델로 파악하는 것이 보다 현실적인 모습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견해가 전적으로 옳은 것도 아니고 또 법적으로 분명하게 해결된 것도 더욱 아니다. 현대 정당국가에서 의원은 정당 소속으로서 선출된다. 현대 사회의 복잡성을 감안해 보면, 의원의 지위가 대리인이냐 아니면 대표자이냐 Delegate vs. Trustee의 논쟁은 어느 한 쪽으로는 결론내기 힘든 영역에 속한다. 정당은 국가의 기관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사적 정치결사단체에 머무르고 있는 것도 아니다. 또 정당국가의 현실에서 정당은 권리만 있는 것이 아니고 의무 또한 지고 있는 존재다.
우리나라 헌법 46조에서 의원 위임에 대한 법적 성격을 독일의 규정과는 약간 차이가 나게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1) 국회의원은 청렴의 의무가 있다. (2) 국회의원은 국가이익을 우선하여 양심에 따라 직무를 행한다.” 헌법상의 규정으로 볼 때 “국민의 대표자”라고 직접적으로 말하고 있지는 않으나 청렴의무와 국가이익의 우선 그리고 양심에 따른 직무 수행을 규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원의 지위를 트러스티로서 설정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의원의 법적 성격과 지위를 트러스티로서 이해하고 주장한 버크의 견해는 오늘날에도 분명하게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대륙법국가에서는 의회에서 정부가 내린 결론을 밀어 부치려는 경향이 강하고 또 정치 토론의 문화가 부족하다는 반성의 측면에서도 버크의 의원의 법적 성격과 지위를 분명하게 재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보인다.
5.3. 버크의 브리스톨 연설
버크는 의원이 단순한 대리인이 아니라 자신의 성숙한 의견에 따라 독자적으로 ‘현명한 판단 mature judgment’을 내려야 한다고 강조하였는데 현명한 판단은 모든 정보의 자유로운 교환이 이뤄지는 완전한 토론을 통해서 얻어진다는 현명한 판단이 이루어지는 전제조건을 우선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버크는 선출된 의원의 위임 mandate의 문제에 있어서 의원은 선거구민의 의사를 대변하고 거기에 구속받는 단순한 대리인이 아니라 의원 독자적으로 현명한 판단을 행사할 수 있는 대표자라는 독립적인 지위에 있다고 주장했다. 버크는 의원의 지위를 영미법의 트러스트 Trust 법원칙으로 파악하고 의원에게는 공공의 이익에 봉사하는 청렴의무가 강조된다고 주장하였다.
대의제 민주정치에서 모든 정치 권력은 트러스트 trust로서 이해하는 것이 전통이었다. 의원은 트러스트 지위에 있으므로 사익이 아니라 오로지 공익을 추구하여야 하며 그런 내재적 도덕적 양심과 외재적 트러스트로서의 법적 의무를 강하게 부담하는 존재이다. 이와 같은 의원의 트러스티 trustee 지위를 웅변적으로 말해준 버크의 유명한 브리스톨 연설 일부분을 옮기면 다음과 같다.
“분명하게 말하지만, 의원이 지역구 선거권자와 철저하게 융합하고, 가장 가깝게 교류하고, 아무런 제한없이 소통하는 것은 의원의 행복이자 명예인 것입니다. 의원에게 지역선거민의 의사가 가장 중요하고 그들의 의견이 가장 존중되어야 하고 그들의 생업에 무한정으로 관심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의원 자신의 휴식과 기쁨과 만족은 선거민들을 위해서 희생되어야 하는 것이고 무엇보다도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이익보다 선거민들의 이익이 우선하여야 한다는 것이 의원의 의무입니다. 그러나 의원의 편견없는 의견, 의원의 현명한 판단, 의원의 깨인 양심에는 여러분이나 또 어떤 다른 사람이나 또는 어떤 집단의 사람들에게도 결코 희생해서는 아니될 것입니다. 이러한 것들은 여러분의 기쁨에서도 나오는 것이 아니고 또 법이나 헌법에서 나오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한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받는 트러스트(trust 신탁)인 것이며 따라서 그것을 남용한다면 의원은 깊이 책임을 져야 할 것입니다. 의원은 자신의 직업뿐만 아니라 자신의 판단도 여러분에게 달려 있습니다. 그러므로 만약 의원이 자신의 판단을 여러분의 의견에 따라 희생한다면 그는 여러분에게 봉사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을 배반하는 것입니다.[37] … 의회는 서로 다른 적대적인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대사들이 모여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관철하고자 하는 대리인이자 대변인으로서 서로 각각 대립하는 회의체가 아니라, 의회는 단일한 국가의 숙의 deliberative 기관으로서 국가 전체의 이익이라는 단일한 이해 관계를 갖는 것이고, 따라서 한 지역의 목표나 한 지역의 편견들에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전체의 보편적 이성의 결과인 보편적 선이 이끌어가는 것입니다. 실제로 여러분들이 한 의원을 선출하긴 하지만 여러분들이 한 의원을 선출했을 때 그 의원은 브리스톨의 의원이 아니라 의회의 의원입니다.”[38]
5.4. 의원의 공익 봉사와 청렴 의무와 트러스트 Trust 법윈칙
의원의 국민 전체의 대표자라는 지위는 영미법상의 “트러스트 Trust (신탁)” 법제도에 대한 이해를 요구한다. 하지만 독일 프랑스 일본 한국 등 대륙법 전통에는 트러스트 법제도가 없었다는 측면에서 정치제도 차이뿐만 아니라 법문화적으로 영미판례법국가들과는 현격한 차이가 존재하며 그런 관계로 트러스트에 대한 이해가 쉽지 않을 것이다.[39] 배심원 Jury 제도, 트러스트 Trust 법제도를 가지고 있는 영미법국가들은 대륙법국가들과는 정치 문화적으로 큰 차이를 나타내고 있다. 대륙법국가에서 배심원 제도는 아직 실시되지 않고 있고 다만 변형적인 모습으로 거의 무늬만의 배심원 제도를 운영하고 있는 뿐이며, 트러스트 법제가 도입된 시기 또한 가장 최근의 일이고 그것도 일반법제로써가 아니라 단지 상사신탁에 머무르고 있을 뿐이다. 프랑스의 경우 가장 최근인 2007년에서야 영미법상의 트러스트 제도가 도입되었다.[40] 우리나라에서 투자신탁 등 은행증권 상품에 존재하는 예와 같이 트러스트 제도는 일부 존재하나 이것은 영미법상의 트러스트 법제도의 진수하고는 거리가 크게 멀다.
트러스트의 법적 관계는 대리 관계도 아니고, 위임 관계도, 계약관계도 아니다. 트러스트는 신임 관계 fiduciary relation에서 존재하는 신인 의무 fiduciary duty가 가장 중요한 내용을 차지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신인의무에 대한 법적 개념이나 법문화적으로 이해도가 낮은 상황임을 보여준다. 트러스트 관계의 전형적인 예는 부모와 자식, 교회 목사(신부)와 신자, 의사와 환자, 변호사와 의뢰인 관계 등에서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이런 관계들에서 영미법상의 트러스트 관계의 법적 개념과는 크게 다른 상황이고, 법제도와 법문화가 역사적으로 크게 달라서 트러스트 제도가 이해하거나 정착시키기에는 쉽지 않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법이론적으로도 자산이란 한 사람에게 귀속된 물건과 채무에 의해 구성되는 권리의 총체로서 모든 사람은 각자 하나의 자산을 가지고 자산의 유일성이라는 개념과 또 인격과 자산은 불가분이라는 자산의 불가분성으로 개념으로 법체계가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트러스트 제도를 이해하고 실천하는 것은 쉽지 않다고 여겨진다.
영미국의 판례법국가들은 헌법상 정당 해산 제도가 존재하지 않으나 독일과 우리나라의 대륙법 국가들은 헌법상 정당 해산제도를 갖추고 있다. 독일의 정당국가 체제와 영미국의 대의제 민주주의 정치 체제는 서로 일치되는 개념이 아니다. 두 다른 법체계에서 의원의 법적 지위를 바라보는 시각은 많은 차이가 나타난다.
대의제 민주주의의 원형인 영미법국가에서는 의원은 국민의 대표자이고, 또 사익을 추구하는 존재가 아니라 공공 이익 public interest에 봉사한다는 전통적인 개념이 강하게 자리잡고 있다. 기독교 전통에서 발전한 트러스트 개념은 국가에서 국가와 사회가 분리된 것으로 보지 않고 국가와 사회는 공동체로서 서로 공존하는 개념에 가깝다. 판례법국가들에서 공무원의 부패가 적고, 정부의 투명성이 높이 나타나는 이유는 트러스트 법제의 존재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트러스트법제에서는 법과 도덕양심이 별도로 유리된 것이 아니라 법과 도덕(양심)은 함께 용해되어 있다.
반면 독일 프랑스 일본 한국과 같은 대륙법국가는 국가주의 전통이 강하고 국가와 사회를 분리해서 보는 이원론에 기반하여 국가를 지탱하는 공무원의 중립의무가 강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공무원의 책임윤리가 부족하여 부패의 수준이 심각하였고 또 국가의 권력 남용(나찌 독재정권 국가전체주의 체제 시대의 사례)이 크게 나타났던 역사를 보여주었다. 이러한 배경에는 공익을 추구하게 만들고 또 책임윤리를 강제하는 Trust 법제가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일견 분석을 할 수 있다.
(대륙법 국가에서는 트러스트 제도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영국의 버크가 의원을 트러스트 지위로 설명하고 트러스트 법원칙에 근거한 공공봉사와 청렴의무를 설명한 것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다.)[41]
의원은 국가 전체의 이익을 위해서 봉사하는 전체 국민의 대표자인가? 아니면 선거주민(또는 정당)의 대리인인가? 이러한 이분법적 구별은 무의미하거나 또는 불가능한 영역인지 모른다. 사실 “의원은 전 국민의 대표자이며, 명령과 지시에 구속되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양심에 책임을 진다”는 이런 규정에도 불구하고 독일은 정당 해산과 동시에 의원직을 상실한다고 정당법에서 규정하고 있다. 이런 결론은 의원은 전체 국민의 대표자라는 지위보다 ‘정당의 대리인 agent, delegate’이라는 인식이 기저에 깔려 있기 때문에 가능하였을 지도 모른다.
현대 국가에서의 민주·대의·정당 정치의 혼합적인 모습을 띠고 있기 때문에 단순한 하나의 법적 잣대로 구분될 수 있다는 생각은 옳지 않을 것이다. 의원이 자기 양심에 책임지기 위해서는 자유로운 토론 과정이 필수적이라는 절차적 정의의 측면을 잘 숙지할 것을 요구한다. 버크가 말한 대로 국가적 입법은 이성과 판단으로 이루어지는 것인데, 토론 없이 이성적인 결정이 이루어진다고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42] 버크는 국민의 행복만이 국가 정책의 유일한 판단 기준이고 또 이것을 달성하는 방법은 행복과 불행의 결과를 가져온 다양한 국가 정책들을 경험적으로 철저하게 검토하는 것에 있다고 말했다: “모든 정부-사실 모든 인간의 이익과 기쁨, 모든 미덕과 모든 신중한 행위-는 타협과 교환에 기초”[43]하기 때문에 토론의 과정은 필수적이고, ‘현명한 판단’은 자유로운 ‘토론’을 통해서 나온다.
6. 전투적 민주주의 Militant Democracy 이론-뢰벤슈타인
6.1. 전투적 민주주의 streitbaren Demokratie 개념
“민주주의가 생존하려면 전투적 민주주의가 되어야 한다. 물론 독재자의 투쟁정신과 그 반대편에 서 있는 전투적 민주주의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존재한다. 독재자의 목표는 국민들에게 가치의 국가전체주의 체제를 강요하고 또 국민 모두를 국가 조직 속에 통째로 편입시키려고 하는 것에 있지만, 이에 반해 전투적 민주주의는 오로지 사회 변화에 대한 합의된 정당한 방법과 기본 가치와 미덕-형제 사랑, 상호 도움, 예의바름, 사회 정의, 자유, 인격 존중 등 평화롭게 사회 질서를 세우는 데 기초가 되는-을 수호하기 위해서 전투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새로운 전투적 민주주의는 도덕가치에 대한 새로운 태도를 낳을 것이다. 이것은 서구 문명의 전통을 공유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기본 가치에 합의할 대담성을 요구할 것이므로 이전 시기의 상대주의적 자유방임적 민주주의와는 구별될 것이다.”[44]
경제 계획의 길을 역설한 만하임은 전투적 민주주의에 대해서 위와 같이 설명했다. ‘전투적 민주주의 streitbare Demokratie’ 이론이 판례에서 처음으로 언급된 경우는 1952년 나치 SRP정당 해산 케이스에서였다. 영국에서 1943년 출간된 만하임의 저서 “Diagnosis of Our Time: Wartime Essays of a Sociologist”가 1951년 독일어 번역으로 출간되었다. ‘전투적 민주주의’이론은 1949년 독일기본법 제정 과정에서 활발히 논의되었다고 한다. 전투적 민주주의 이론에 대한 독일헌법재판소의 설명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인간의 존엄성을 방어하고 보장해야 하는 자유민주주의 기본질서는 이러한 정당들에 대해 더 이상 중립적인 입장을 취할 수 없다. 자유의 적에게는 무조건적인 자유가 보장될 수 없다는 자유 민주주의 기본질서에 제기되는 요구를 해결하기 위해 어떠한 법적 수단을 강구할 것인가는 헌법 정책적인 문제로 된다. 바이마르헌법은 해결책을 포기하고 중립성을 유지하여 그 결과 전체주의적 정당들 중 가장 공격적인 정당에게 죽임을 당했다. … 기본법이 정당에 대해 취하는 태도는-기본법이 실현하고 있는 자유로운 민주주의의 특별한 형태 자체가 그렇듯이-이러한 ‘전체주의 체제와의 투쟁의 경험 der Erfahrungen des Kampfes mit diesem totalitären System’을 바탕으로 해서만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과거의 정치적 지향들이 다시 국가에 대한 영향력을 획득하는 것을 방지하는 효율적인 법제도를 마련해야 한다는 생각이 헌법제정자를 지배하였다. 기본법은 한편으로는 여전히 정당에 대한 기본적인 관용을 요구하는 종래의 자유 민주주의 노선을 추구하면서도 이러한 노선이 자신의 가치체계를 세우고 보호하는 것조차 포기하는 단순한 중립성을 의미하게 하지는 않는다. … 기본법 21조2항은 자유 민주주의 헌법 질서의 경계선상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식적인 헌법상 의지의 표현이며, 특수한 역사적 상황에서 정당에 대한 국가의 중립성을 더 이상 순수하게 실현할 수 없다고 믿게 된 헌법제정자의 경험의 결과이고 또 이러한 의미에서 ‘전투적 민주주의 streitbaren Demokratie’에 대한 고백이다.”[45]
방어적 민주주의 wehrhafte Demokratie
‘전투적 민주주의’는 ‘민주주의 그 자체를 방어할 능력을 갖는 민주주의[46])’라는 의미에서 ‘방어적 민주주의 wehrhafte Demokratie’라고도 부른다. ‘전투적 민주주의 militant democracy’는 극단주의자들이 범죄를 저지르기 이전이라고 이들의 잠재적 공격으로부터 보호받기 위해서 선제적으로 민주주의 가치를 보호하는 성채 bulwark 를 쌓고 민주주의 체제를 방어한다 preemptive protection of democracy 는 의미에서 ‘방어적 민주주의’라고도 부른다. 독일의 정당해산 제도 도입은 “전체주의 체제와의 투쟁의 경험을 바탕 der Erfahrungen des Kampfes mit diesem totalitären System”으로 해서만 이해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방어적 민주주의는 파시즘에 대항해서 승리한 역사에 비추어보면 “투쟁적 민주주의 streitbaren Demokratie”라고 부른다. 독일어 표현은 “전투적 민주주의 streitbaren Demokratie”를 “방어적 민주주의 wehrhafte Demokratie”라고도 쓰고 있고, 영어 번역은 ‘militant democracy’라고 쓴다.
전투적 민주주의는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서는 민주주의의 적대세력-1930년대 당시는 파시즘-에 대항해서 전투를 해야 하고 그래서 ‘민주주의를 스스로 지켜내야 한다 democracy capable of defending itself’는 원칙으로 1949년 독일 기본법 제정 과정에서 활발히 논의되었던 개념이다. 전투적 민주주의 이론은 반격 counteraction과 정당방위 self-defense로써 상대방에 같이 맞선다는 이열치열[47]의 전투를 말한다. 하지만 전투적 민주주의는 민주주의 체제에 위협을 주는 극단적인 세력을 예의 주시할 뿐만 아니라 미리 맞서는 전투 즉 상대방의 공격이 있기도 전에 선제공격 preemptive을 감행할 수 있는 의미를 가진다. 군사적 선제공격의 의미와 같이 법적으로 군사적인 조치 militant measures를 취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아직 범죄를 저지르지도 않은 상태에서도 잠재적인 가능성이 존재한다면 미리 선제적으로 막을 필요성이 있다는 의미다. 뢰벤슈타인은 파시즘을 막아내는 법적인 조치들을 13가지로 분류했는데 이러한 극단적인 조치의 정점이 바로 정당을 강제 해산하는 것이다. 이렇게 미리 선제 공격(강제 해산)을 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전투적 민주주의’의 내용에 속한다. 하지만 바로 이와 같은 군사적인 조치(선제 공격이라는 예방적인 조치를 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를 당연하게 취할 수 있다고 여기는 생각은 법의 정당성 normative legitimacy 측면과 민주주의 정치적 역동성에 중대한 의문점을 낳게 된다. 누가 민주주의의 적인지 어떻게 찾아낼 것인가? 어느 정도의 행동을 극단적인 세력에 해당된다고 판단할 것인가? 어느 수준까지 어떤 법적 조치를 취할 수 있는가? 다른 단체에 비해서 형평성의 문제는 없는가? 왜 지금까지는 가만히 두고 있다가 이때서야 갑자기 금지하는가?
6.2. 뢰벤슈타인 Loewenstein의 전투적 민주주의 Militant Democracy 이론
6.2.1. 파시즘체제의 성격과 국제적인 침투 확산
파시즘 체제(파쇼정권)는 어떤 성격과 특징을 갖고 있는가?
“실증적 공식으로 표현한다면, 독재 정권과 권위주의 정권은 국민들의 감성을 자극하여 이성적인 헌법 체제를 억압시키는 정부 체제이다. 헌법국가 체제는 법의 지배 rule of law 원칙을 확립하여, 국민의 사적 자치 영역과 기본권을 보장하고 행정의 합리성과 예측가능성을 보장하는 법치국가를 말한다. 반면에 독재체제는 법의 지배를 ‘국가 이익 raison d'état’을 가장하여 형식적 합법화를 기도하는 법 기회주의로 대체해 버리는 체제를 말한다. 독재 체제는 공법과 사법을 뒤섞여버리고, 완전히 공법으로 통합시켜서, 개인 기본권과 법의 지배가 설 자리를 아예 없애버린다. 독재 체제의 실정법은 더 이상 헌법 원칙들을 따지고 않게 되고 대신 법으로 따질 수 없는 행정 명령에 의존하려고 한다. 장기적으로 보면, 어떤 정부라도 항상 무력과 강제적 폭력으로 통치할 수는 없으므로, 독재 국가와 권위주의국가를 접착시켜주는 힘은 감성주의에 기반하고 있는데, 이에 따라 합법적인 정부를 결정하는 최종적인 잣대를 맞추기 위해서 형식적 합법성 요소를 보충하려고 한다.“[48]
파시즘의 국제적인 침투 확산
뢰벤슈타인의 1937년 “미국 정치학 연구”에 발표한 논문 “Militant Democracy and Fundamental Rights”[49]은 “파시즘은 세계적인 운동. 파시즘은 더 이상 일부 몇몇 나라에서 일어난 개별적인 현상이 아니다. 파시즘은 무분별하게 전세계적인 운동으로 확산되고 있는데 이것은 프랑스혁명 이후 절대주의에 맞서 일어난 유럽의 자유주의의 부상에 견줄 만하다.”[50]이라는 상황인식적 문장으로 시작한다. 독일의 유태인 출신으로 미국으로 망명한 뢰벤슈타인은 1933년 히틀러 나찌 일당이 집권한 이후 당시 1930년대 유럽대륙에서 파시즘 전제정권이 확산되어 가던 유럽 대륙의 정치적 위기 상황을 진단하고 헌법국가체제를 파시즘 일당독재 권위주의 체제로 떨어지는 것을 막아낼 선제적인 법적 조치가 요구된다고 그 대책을 제시하였다.
뢰벤슈타인은 당시 유럽의 상황을 독일, 이탈리아, 터키, 스페인은 일당독재정권이 수립되었고, 오스트리아, 불가리아, 그리스, 포르투갈 등은 일당 one-party 주도의 ‘국가 권위주의 authoritarian’ 체제가 되었고, 헝가리, 루마니아, 유고슬라비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등은 복수당을 유지하는 형태의 국가권위주의체제로 분류되고, 폴란드는 복수당권위주의 체제에서 일당독재 국가로 전환되는 과정에 있는 것으로 당시 유럽 국가들의 정치적 상황을 분석하였다. 이들 유럽 국가는 의회가 살아 있는 관계로 외견상으로는 파시스트체제가 아니라고 해도 실상은 국가기관과 소수의 권력 집단이 국민 여론을 장악하고 있음을 볼 때 전제주의 국가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고 하였다. 이들 국가가 파쇼 체제를 아직 거부하고 있는 이유는 “이제는 우리가 해먹을 차례다![51]”라는 속된 말로 표현되는 ‘정치 변혁 political changes’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형식적으로나마 의회 제도를 유지하고 있을 뿐이라는 주장이었다. 따라서 민주주의 헌법국가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국가들은 영국, 아일랜드, 프랑스, 벨기에, 네덜란드, 스위스, 스칸디나비아국가(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 핀란드, 체코슬로바키아 정도에 머무른다고 뢰벤슈타인은 당시 유럽 정세를 분석하였다. 유럽대륙이 빠르게 파시즘 체제로 확산되어가는 가는 이유에는 파시즘 체제가 국제적인 연대감으로 맺고 외국의 영향을 받기 때문이라고 뢰벤슈타인은 파악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파시즘 운동이 국제적으로 확산되는지 그 원인을 규명해낼 작업이 수반될 것이다.
왜 파시즘(전체주의 정권 totalitarian regime)이 국제적으로 확산되는가?
제1차 세계대전을 겪고난 후 패전국(독일 오스트리아 터키)의 민족주의 제국 야망의 실패, 국민자치 민주주의 전통의 결여, 경제 위기 등의 이유로는 파시즘 체제가 유럽대륙 전체로 급속히 확산되는 현상을 설명해 내기 어렵다고 뢰벤슈타인은 진단하였다. 그 이유는 독일 터키 등 제1차 세계대전의 패전국 뿐만 아니라 패전국이 아닌 국가들(프랑스, 벨기에, 스페인 등)에서도 파시즘이 나타난 것을 볼 때 파시즘은 민족주의하고는 큰 상관이 없다는 것이고, 오랜 민주주의 제도가 정착된 국가들(프랑스, 벨기에 등)에서도 파시즘이 나타난 것을 보면 민주주의 전통의 역사와도 관련이 없으며, 또 경제 공황을 크게 겪지 않고 외환위기를 겪지 않는 국가(벨기에 등)들에서도 ‘파시즘 바이러스’에 감염된 현상이 나타난 것을 보면 경제 위기로 인해 파시즘이 발호한다는 이유는 설명되기 어렵다는 것이다.[52] 한 마디로 국가적 특성, 역사적 전통, 경제 구조 등의 원인으로 파시즘의 전유럽적인 현상으로 확산되는 이유를 설명해 내기 힘들다는 것이다.
파시즘의 확산의 요인으로 또 하나 드는 상업 자본가 계층이 사회주의 확산에 대해 자기들의 특권을 빼앗길 위험을 차단하기 위해서 즉 반혁명적인 자기기방어의 측면에서 파시즘이 확산된다는 설명은 독일,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스페인 등에는 실증적인 타당성이 존재하지만, 상업 자본가계층이 파시즘 전체주의 일당 독재국가 개인 재산을 몰수할 것이라는 파시즘 정권의 본질을 모를리는 없을 것이라는 측면을 보면 사회주의의 확산에 대한 자본가계층의 반동적인 자기 방어 때문에 파시즘이 확산된다는 설명 또한 만족스러운 답이 아니라고 뢰벤슈타인은 주장했다. 이탈리아 (뭇솔리니)와 독일(히틀러)의 파쇼 정권이 치닫는 모습을 볼 때 자본가 계층이 주도하는 민주주의 체제보다 집단적인 중산층 국가 관료가 주도하는 자본주의체제를 결코 원하지 않을 것이 상업자본가 계층이라고 파악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보통 선거 민주주의의 확산에 따라 위험성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자본주의가 유지해 나가려면 법의 지배가 통하는 예측가능성이 있는 민주주의 체제가 유리하다는 것을 상업자본가계층이 믿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전체주의 파소 국가들은 결국에는 전쟁으로 치달을 수 밖에 없게 되는데 상업자본가계층에게는 자본을 지키는 길은 무엇보다 평화와 안전이 최고라는 것을 모를 리는 없을 것이고, 관료층 주도의 국가독재 체제는 결국 좌파로 흐를 것이라는 인식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상업자본가 계층이 파시즘을 지원한다는 설명은 부족하다는 것이다.
국가마다 사정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따라서 일반적으로 공통되는 요인으로 설명되기 힘들다) 대륙 전체적으로 파시즘이 확산되고 있는데 그렇다면 자유 민주주의 체제는 파시즘체제에 몰락하게 되는 운명을 맞는 것일까? 만약 파시즘이 하나의 정신적 이념이라면 파시즘에 저항한다는 것은 자유민주주의의 정신이 절대왕정 체제를 무너뜨렸던 때처럼 역사의 물결을 막을 수가 없는 무모한 짓일테고, 다만 시간과 정력만 낭비하는 헛된 일이 되고 말 것이며, 마지막 항복이라는 대재앙을 낳고 말 것이다. 사람은 정신과 이념으로부터 도피할 수는 없는 법이다.[53] 뢰벤슈타인은 이렇게 생각하면서 ‘정치 이념 ideology’과 ‘정치 기술 political technique’을 구분해서 이해하였다.[54]
6.2.2. 거대한 파도처럼 밀려드는 거대한 정치적 사상인가? 아니면 단지 권력 획득과 유지를 위한 정치적 기술에 불과한가?
파시즘은 국경을 타고 넘는 거대한 사상적 불길이 아니라, 오로지 권력을 획득하고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정치적 기술에 불과한 것인가? 이런 의문에 대하여 지난 10여년 간의 정치 현실을 분석해 보면 답은 자명하다고 뢰벤슈터인은 말했다. 그의 경험적 분석에 따르면, 파시즘은 정치 철학을 갖추지 못했고, 현실을 변혁시킬 실제적인 개혁 프로그램도 갖추지 못했으며, 다만 “파시즘은 기술의 발전과 대중적 감성에서 나온 시대적 산물”[55]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파쇼주의자들은 대중의 감성을 자극하는 기술을 갖추고 있는데 대중의 감성을 조작하는 기술은 민주주의 제도의 특수한 조건에서만 성공할 수 있다고 뢰벤슈타인은 주장했다. 뢰벤슈타인은 “민주주의 제도와 민주적 관용이 바로 민주주의의 파괴를 낳는다”고 보았다. 뢰벤슈타인은 민주주의가 아직 완성되지 못한 아직 진행중인 도상적인 상황으로 판단한다. 민주주의가 아직 도상적인 발전단계에 있는 과정이기 때문에 민주주의 완성을 위하여 싸우지 않으면 안된다고 본 것이다. 파시즘은 민주주의가 완성되지 못한 ‘특수한 상황 extraordinary conditions’에서 권력을 획득하기 위한 정치 기술로 작동된다는 것을 확신하고서 뢰벤슈타인은 주장했다: “민주주의는 전투적 민주주의가 되어야 한다 Democracy must become militant.”[56]
파시즘이 고상한 정치 이념을 가졌다면 맞서 싸울래야 싸울 수도 없는 거대한 역사적 물결이겠고, 따라서 이러한 거대한 폭풍 같이 진군해 오는 정치적 이념에는 단지 법률적인 조치로써 막을 수도 없을 것이겠지만, 당시의 상황을 현실적으로 분석해 보면 파시즘에는 정치적 이념이 들어 있지 않고 다만 민주주의 제도의 취약점과 새로운 시대 변화 상황을 이용하여 권력 획득과 유지 목적으로 대중의 감수성을 자극해내는 정치적 기술에 불과한 것으로 파악되므로 파시즘에 과감히 맞서 싸워야 된다는 주장을 펼친 것이다.
6.2.3. 민주주의는 취약점이 존재하는가
뢰벤슈타인에 따르면, 민주주의 근본주의는 결국 진실이 거짓을 이긴다는 믿음에 근거하여 관용의 원칙을 충실히 따르기를 요구하지만, 만약 민주적 관용을 베풀게 되면 민주주의 자체가 파괴되고 마는 그러한 취약한 점 vulnerable spot[57]이 민주주의에 존재한다.[58] 그는 민주주의 제도를 적이 목마 속에 숨어서 성으로 들어온 “트로이 목마”에 비유하였다.[59] 파시즘은 트로이 목마처럼 합법적인 정당임을 가장하여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권을 잡을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고 파악한 것이다. 민주주의는 적법성 legality을 강조하는데 파시즘은 그런 민주주의가 강조하는 적법성을 형식적으로 이용한다고 말했다. 파시즘은 쿠데타에 의해서가 아니라 민주주의 정치 이념의 가장 큰 실수인 비례대표제[60]를 악용해서 지방과 전국적인 의회를 장악하고 따라서 형식적인 합법성을 갖추면서 집권을 하게 되었다고 지적했다. 민주주의는 ‘공개적인 선동 open propaganda’의 효과를 미리 대처하지 못했는데, 민주주의 취약점을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이 있으므로 ‘전투적 민주주의’ 이론을 필요로 한다고 주장하였다.
왜 파시즘의 침투를 막아내기가 어려운가?
과거 시대의 혁명 결사 단체는 지하에서 숨어서 비밀리에 활동했기에 위험했지만 지금은 시대가 변해서 파시즘은 공개적으로 합법적인 정당 형태를 띠고 대중을 교묘히 선동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라고 진단했다.[61] 파시즘은 공개적으로 나와 대중을 선동하는데 그것은 끊임없는 자기 선전하고 같고, 이 같은 합법성을 갖춘 새로운 방식의 “공개 선전 open propaganda”으로써 대중의 감성을 자극하는 정치적 선동 행위를 막을 수 있는 법을 민주주의 체제에서는 찾기 어렵기 때문에 민주주의 체제로는 당해낼 수가 없다는 것이다. 왜 민주주의 체제에서는 이런 법률을 갖기가 힘든가? 그 이유는 정치적 의사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 민주주의 체제라고 믿는 “민주적 근본주의 democratic fundamentalism”에 너무 집착하기 때문이라고 그는 파악했다. 뢰벤슈타인이 이렇게 자문했다: “민주주의는 기본권 보장, 모두에게 공평한 기회와 공정한 정의 보장, 언론 보장, 집회 결사의 자유 등을 보호하는 체제이다. 이러한 민주주의 자체의 토대와 정당성을 훼손시키지 않고 이러한 것을 어떻게 축소 제약시킬 수 있는 방안을 민주주의 체제 스스로 마련해 낼 수 있을까?” 바로 이러한 민주적 근본주의 사고방식은 자기 모순을 간직한 민주적 낭만주의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고, 이것을 극복해 낼 수 있어야 한다고 뢰벤슈타인은 지적했다. [62]
6.2.4. 선동 정치로부터 민주주의를 방어하는 법률 조치-전투적 민주주의 구체적 예시
뢰벤슈타인은 의회를 파괴할 목적으로 이를 이용하는 좌우 양극단의 세력들에 대해 국가는 결단코 자신을 방어할 의무가 있다고 대담하게 주장하며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서는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뢰벤슈타인은 유럽 각국의 동향과 비교법적 연구를 통해서 반파시즘 법적 조치들을 다음과 같이 13가지로 분류했다.[63]
반역 도당 내란음모 반란단체 폭동 선동 등을 처벌하는 형법을 정비한다. 또 긴급사태에 대비해서 계엄령을 선포할 수 있는 비상계엄법도 정비한다.
반역 집단이나 반국가적인 정당이나 결사 단체를 금지하고 불법 선동 행위를 금지한다. 같이 모임에 참석만 해도 처벌할 수 있고, 정치 선전물 propaganda을 뿌리는 것을 금지한다. 대체정당도 불법화하고 금지된다..
정당이 준군사조직을 모방하는 것을 금지한다. 당원들이 배지 등 이념화 도구를 달고 다니는 것을 금지한다. 준사병적인 조직을 갖추는 것을 금지한다. 정당 지도자들이 경호원 조직을 갖추는 것을 금지한다.
총기 화약류를 제조하거나 유통하는 것을 금지한다.
입법부 의원들이 의회민주주의 절차를 남용하는 것을 방지한다. 의원들이 정당 조직을 악용하거나 면책 특권을 악용하는 것을 금지한다. 특히 의원의 면책특권을 이용한 정치적 선동 행위를 금지한다.
정치적 소동을 일으키는 것을 금지한다.
정치적 소란을 피우거나 정치적 집회를 금지한다. 정치적 반대파의 집회 모임에 가서 소란을 피우는 것을 금지하고 가두 시위를 금지한다.
정당한 정치적 비판을 가장하여 정치 선동하는 경우까지를 정치적 기본권으로 보장한다는 것은 문제가 많다. 지나친 관용이 파시즘을 낳는다.
정치 지도자를 비난하는 것을 금지한다.
정치범을 영웅화하는 것을 금지한다. 범법자를 순교자로 추앙하고 선동하는 것을 금지한다.
경찰과 군대가 잘 조직되고 정부에 충성하는 한 파시즘 막아낼 수 있다. 이념세력이 군대조직에 침투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
아무리 좋은 예방적인 법률이 존재하더라도 법을 집행하고 법질서를 유지하는 주요 지위에 있는 공무원이 국가에 충성하지 않는 경우에는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따라서 공무원의 충성 의무가 강조된다. 위험 정당에 가입한 공무원은 공직에서 배제시켜야 한다.
정보와 사찰을 담당하는 정치 경찰을 창설한다. 이런 업무는 특별법으로 설치되는 정치경찰에 위임한다. 경찰 군대 공무원에게 정치적 충성 의무를 부담시킨다.
6.3. 민주주의 딜레마를 해결하는 제3의 길은 존재하는가?
민주주의 딜레마는, 뢰벤슈타인이 말한 대로[64], 민주주의는 기본권 보장, 모두에게 공평한 기회와 공정한 정의 보장, 언론 보장, 집회 결사의 자유 등을 보호하는 체제인데 이러한 민주주의 토대와 정당성을 훼손시키지 않고 이러한 것을 어떻게 축소제약시킬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의문을 말한다. 뢰벤슈타인은 민주주의 딜레마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민주주의 개념을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였다.[65] 뢰벤슈타인은 1933년 히틀러 나찌 정권 수립된 이후 파시즘이 전유럽으로 확산되어가는 위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민주주의가 완성되기 이전의 최소한 “잠정적인 단계 transitional stage”에서는 “자유주의 사고를 가진 사람”이 자유 민주주의 정부의 “궁극적인 선”인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를 실현하기 위해서 “질서있는(규율잡힌) 권위주의 체제 disciplined authority”을 수립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아야 할 그렇게 생각을 바꿀 필요가 있음을 역설했다.[66]
하지만 민주주의 딜레마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질서있는 권위주의 체제”[67]를 제시한 뢰벤슈타인의 해결책은 한계점이 분명히 존재한다. 그것은 아마도 그(뢰벤슈타인 뿐만 아니라 대륙법 국가의 법률가들의 사고패턴에서 그런 경향이 나타난다)가 입법부를 통한 해결에 경도되어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가 말한 “자유주의 사고를 가진 사람”이 자유 민주주의 정부의 “궁극적인 선”인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를 실현하기 위해서 “질서있는 권위”체계를 확립하는 임무가 사법부의 몫이라는 측면을 보지 못한 것은 아니었을까? 뢰벤슈타인은 독일의 전통대로 충성심으로 무장된 행정부 경찰 군대의 관리[68]를 통해서 자유민주주의를 지켜낼 수 있다고 보았지만, 유럽 발전의 역사성을 이해했던 뢰벤슈타인이 자신 스스로의 흠결을 드러내고 만 것 같다. 19세기 초 토마스 제퍼슨이 파악하였고 또 우리나라의 유신헌법의 사례가 보여주는 바대로, 역사적으로 보면 자유민주주의를 훼손하고 침탈한 경우는 권력을 쥐고 흔든 행정부에 의해서였다는 사실을 뢰벤슈타인은 무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영미국은 민주주의의 딜레마 문제를 입법부와 행정부가 아닌 ‘사법부’가 해결해 낼 것으로 믿는 ‘사법부 우위’국가인데 뢰벤슈타인 판례법국가의 법현실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누가 헌법의 최종적 수호자인지에 대한 사고방식과 법제도와 법문화 차이가 대륙법과 판례법국가 사이에 존재하는 것 같다.[69] (이 책은 영미법과 대륙법의 근본적인 차이점과 또 같은 점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비교 설명한다. 독일은 특수하게 나치 일당독재 체제를 겪은 아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민주주의 딜레마’[70]를 해결하려는 독일의 SRP정당해산 케이스와 독일공산당해산 케이스의 판결이유를 참조하라.)[71]
7. 사상의 자유 시장 이론과 절차적 공정성
7.1. 미국의 사상의 자유 시장론 The marketplace of ideas theory
전투적 민주주의 이론과는 다르게, 미국에서 민주주의 개념은, 홈즈 대법관이 설파한 “사상의 자유 교환 free trade in ideas”대로, 모든 정치적 사상은-설령 자신의 정치 체제를 부정하는 주장까지도- 용인되는 것으로 이해한다.[72] “사상의 자유 시장론”[73]은 민주주의 시스템 그 자체가 거짓이 걸러지는 시스템이고, 결국 진실이 승리할 수 밖에 없다는 믿음을 확고하게 견지한다. 이러한 믿음에 더해서, 월드론의 견해인, 민주적 정당성을 갖추지 못한 구조에서는 결코 좋은 정책이 생산되지도 못할 것이라고 여기기도 한다. 이런 측면에서 전투적 민주주의 이론은 미국 민주주의 체제의 토대가 되고 있는 사상의 자유시장론과는 정면으로 부딪히게 되고, 따라서 영미국 판례법국가에서는 설 땅을 찾지 못하게 되는 이론이다.[74] 독일 유태인 출신으로 나치 체제가 수립되자 미국으로 망명했던 뢰벤슈타인과 영국으로 망명했던 만하임이 전투적 민주주의 이론을 전개하였지만 영미국에서 이들의 이론이 받아들여지기 어려웠던 까닭은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7.2. 전투적 민주주의의 부활- 역사의 회귀 & 희망의 좌절인가?[75]
뢰벤슈타인은 국가가 취할 수 있는 법적 강제력 조치들을 선제적으로 정비하고 대처함으로써 민주주의를 파시즘으로부터 방어해 낼 수 있는데 거기에는 보이는 법률뿐만 아니라 민주주의 체제를 “지켜내려는 불굴의 의지 indomitable will to survive”[76]가 필요하다는 전투적 민주주의 이론을 주장하였다. 1930년데 파시즘이 급격히 확산되어 가던 위기의 유럽 대륙의 당시 시대적 상황에서 나온 시대적인 산물이었지만, 단지 한 시대 상황에 머문 것이 아니고 그 이후 역사적으로 반복되는 흐름이 나타남을 부정하기 힘들 것이다. 파시즘 독재정권이 패퇴한 2차대전 종전 이후에는 공산주의체제가 급속히 확산되어감에 따라 자유민주주의 국가는 반공산주의 위기 상황에서 국민기본권을 축소하려는 흐름을 보여주었다. 미국에서 반공산주의 ‘매카시즘’의 역사가 여실히 말해주고 또 2001년 911 테러 사건 이후에는 테러리즘에 대처하기 위한 명분으로 국민의 기본권을 축소제약 시도하려는 일련의 반테러리즘 분위기가 되살아 나고 있다. 이러한 사례들은 공포와 위기의 시대에서 세계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법적 대처 흐름으로써 반복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다.
후쿠야마는 1992년 출간된 “역사의 종언”에서,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1991년 소련이 붕괴됨에 따라 자유민주주의와 공산일당독재 전체주의간의 정치이념 대결에서 자유민주주의가 최후 승리한 것으로 파악하였다:“우리들이 목격하고 있는 것은 단지 ‘냉전’의 종말이나 또는 특정시기의 종전후 역사가 끝났다는 것뿐만이 아니라 역사 그 자체의 끝이 왔다는 것-즉 인류의 정치이념 진화의 종점에 이르렀고 또 인류 최후의 정부 형태로써 서구 ‘자유 민주주의’의 세계적 보편화’가 실현되었다는 것이다.”[77] 뢰벤슈타인은 민주주의가 아직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전투적 민주주의 이론이 필요하다고 역설하였는데, 만약 후쿠야마의 대담한 선언 이후에도 전투적 민주주의 이론이 필요하다면, 그것은 누가 어디에서 어떤 문제점을 안고 있다는 것일까? 아무튼, 뢰벤슈타인의 전투적 민주주의 이론을 다시 살펴보면, 정권에 위협을 주는 위기에 대처하기 위한 정치적 기술으로써 반민주적인 입법이 요구되는 시기는 한 나라의 고립적 특수한 관점에서가 아니라 그 배경과 관련하여 국제적인 흐름을 타고 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반파시즘, 반공산주의, 반테러리즘 그러한 법 동조화 현상은 역사적 국제적 시각에서 전체적인 조망을 가지고 이해할 때 법과 정치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7.3.
국가 기관의 공정성과 절차적 정의
왜 민주정치에서는 토론의 과정이 결과보다 더 중요한가
1949년 독일헌법 기초자들은 나치 일당 독재정권의 뼈아픈 역사적 경험을 반성하고 정당국가의 위험성에 어떤 제한을 두어야 할 것인지를 고민하였고 또 동시에 정부가 소수정당을 탄압할 위험이 존재한다는 것도 인식하였다. 정부가 정당 활동을 금지시키는 권한을 남용할 위험을 제거하기 위해서 헌법재판소에 위헌정당 심판을 맡겨놓은 것이다.
하지만 정당해산 제도는 자유민주주의 헌법질서에서 조직화된 적이 존재한다고 여겨질 때 이들을 공격할 수 있는 “예리한 무기”에 해당될 것이다. 정당해산제도가 예리한 무기이기는 하지만 그것은 양날의 칼이라는 점에서 고도의 조심성이 요구된다는 것을 어느 누구도 부정하기 힘들 것이다. 조심성은 최종적인 판단을 맡고 있는 헌법재판소 또한 예외적일 수 없다. 국가기관이 판단하고 국민은 따라오면 된다는 시기는 이미 오래된 과거의 낡은 생각에 속한다. 지금은 국민을 설득하지 않으면 안되는 설득의 정치 설득의 법이 요구될 것이다.[78]
민주주의는 권력 참여가 목적이 아니라 국민적 합의에서 정권의 정통성이 나온다고 민주주의를 이해하는 견해는 매우 타당하다.[79] 헌법재판에서는 완전한 토론이 보장되고 또 합의제인 헌법재판소의 구성에서 “다수의 지혜”를 통해서 “현명한 판단”이 기대되어야 할 것이다. 재판의 공정성은 헌법개정으로도 개정될 수 없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핵심적인 법원칙에 속한다. 재판의 공정성은 절차적 정의의 실체적인 내용이자 사법권 독립의 외양적 표현이다.
양당사자주의 adversarial와 심문주의 inquisitorial 제도 비교
영미법 국가의 법제도를 살펴봄에 있어서는 영미법과 대륙법의 양 체계상 기본적 차이점이 어떤 것인지를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고 또 그것을 통해서 현재 봉착하고 있는 제도의 문제점을 개선하는데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
영미 민사소송법상의 기본적 구조는 원고와 피고의 양당자자에게 중심을 두고 있는데 이를 ‘양당사자주의 adversarial’ 시스템이라고 말한다. 반면 독일 일본 한국의 대륙법 체계는 판사가 소송의 모든 단계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개입 지휘하는 것으로 이를 ‘심문주의 inquisitorial’라고 말한다.
두 법률체계에서 판사는 불편부당한 역할을 하는 지위에 있으나 영미법에서 판사는 보다 수동적인 입장이고 양당사자가 제시하는 증거에 따라 판결을 내리며 양당사자가 절차적 원칙과 증거법 원칙을 정확하게 따르기를 감독하는데 있다. 영미법에서 소송후 재판전단계 절차, 소송 문건, 소장 등은 최종재판을 준비하는데 중요하게 여겨진다.
영국의 유명한 데닝 Denning 대법관이 50년 전에 양당사자주의의 개념을 다음과 같이 적절하게 표현해 주었다. “영국이 발전시켜 온 법정 재판의 구조에서 판사는 재판정에 앉아서 양당사자가 제기한 법률 문제를 듣고 판단을 내린다. 영국의 판사는 다른 나라들이 행하고 있는 것처럼 국가 사회 전체를 대변해서 사건조사나 심문을 직접 수행하지 않는다. 그러나 영국에서도 판사는 “어떻게 되죠?”라는 질문에 답변하는 단순한 심판관이 아니다. 판사의 목표는 무엇보다도 법에 따라 진실을 발견하고 정의를 행하는 것이다. 법을 추구하는 모든 일에서 변호사는 영예롭고 필수적인 역할을 한다.. “질문에 대한 양쪽 당사자들의 팽팽한 주장에 의해서 진실이 발견된다’는 뛰어난 명구를 남긴 이가 엘든 대법관이었나요? ‘정의는 서로 대립하는 양당사자들의 주장 사이에 끼어들지 않고 균형을 유지하는 판사에 의해 실현된다’고 설명한 이가 그린 대법관이었나요?”[80]
우리나라도 이제는 앞에서 설명한 대로 헌법재판소(법원)은 가치를 평가하는 특정한 방식을 반영하고 또 소통시키는 역할을 담당하는 ‘법의 표현적 기능 expressive function of law’을 강조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열려진 마당에서 모든 정보의 교환과 유통이 이루어지고 자유로운 토론의 과정과 숙의 과정을 통해서 국가 전체의 이익을 도모하는 현명한 판단이 내려지는 매커니즘을 유지하는 것이 요청된다. 재판의 공정성을 담보하지 않고서는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낼 수 없을 것이고 따라서 우리나라의 정당 해산 심판에서 보다 주목할 쟁점은 독일의 2003년 NPD 정당 해산 심판 판례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절차적 정의와 헌법 재판의 전제 요건
비록 우리나라 헌법재판소에서 합헌의 판결이 나긴 했지만 정당 해산 심판에서 가처분제도의 존재는 독일헌법재판소의 판결에서 말했듯이 헌법재판소의 위헌정당 판결 이전에 정당 금지 또는 해산에 대해 가처분을 할 수 있다면 왜 헌법에서 정당해산 심판은 헌법재판소의 판결에 의해서만 가능하도록 별도의 특별한 헌법적 장치를 마련해 두었는지를 분명하게 설명해 내지 못한 흠이 있다고 보여진다. 정당 해산에 대한 헌법재판 제도를 마련해 두었다는 그 자체가 헌법재판을 하기도 전에 정당 금지나 해산에 대한 사전적인 임시 가처분의 명령을 내릴 수 없다는 결론은 자명한 논리적 도출이기 때문이다. 정당해산에 대한 헌법재판 제도가 존재한다면 헌법재판소의 위헌판결이 나기 전까지는 정당의 기본권이 침해되어서는 아니되어야 한다는 결론이 보다 마땅하고 자연스럽다.[81]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그러한 자명한 법적 논리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만약 정당 해산 제도가 존재한다고 해서 헌법재판소가 정당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어긋나는지 여부만을 따지고 그에 따라 정당을 해산할 수 있다는 결론이 계속된다면 정당 해산 제도가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 가장 예리한 무기-그것도 양날의 칼을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신중해야 한다는 경고는 안중에 들어오기 힘들 것이다.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서 반민주적인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사고가 더 이상 필요하지 않는 성숙한 민주주의 시대에 진입하고, 따라서 모든 국민이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 진정한 자유민주주의의 가치의 혜택을 받는 대한민국이 되기에는 아직 이르다는 자조적인 생각을 견지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게 존재하는 지는 모르겠으나, 독일의 과거 1956년 판결에만 의존하여 독일의 1994년과 2003년 판결 등을 통한 새로운 법의 발견에 대한 노력을 게을리해서는 아니될 것이다.
독일의 2003년 NPD 판례는 정당국가의 현실에서 국가정보기관의 정당 개입의 한계가 어디에 있는지가 헌법재판소의 주된 법적 쟁점이었지 정당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침해하는지 여부는 따지지도 않았다는 것을 분명하게 깨달을 필요가 있다.[82]
정당 해산 심판이 제기될 수 밖에 없는 정치적 현실, 소수정당의 환상과 한계, 정당국가에서의 작용과 반작용의 기본적 정치적 역학관계 등 여러 측면에서 깊은 생각을 하여야 한다. 법은 살아 있는 생물과도 같이 끊임없이 진화 발전하는 성격을 가진다.
민주정치 대의정치 정당정치는 서로의 경계선을 두부처럼 칼로 반듯하게 오려낼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또 수학의 교집합으로써 서로 혼합 체계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정당 해산 문제를 어떤 독단적인 법이론에 의존하여 깔끔하게 해결해 낼 수 있다고 기대하기에는 무리다. 정당해산 심판은 민주 정치 대의 정치 정당 정치에서 요구되는 근본적인 가치, 국가기관 선거 개입 문제, 절차적 정의의 문제 등에서 현재 우리나라의 법과 제도의 질적 수준이 어느 정도에 와 있는지를 테스트하는 리트머스 시험지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또 우리나라에서 정당 명부제 도입 등 정당법 개정 측면뿐만 아니라 권력 구조 개편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헌법 개정의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83] 이러한 여러 상황들에서 정당 해산 심판은 민주 대의 정당 정치의 근본적인 가치, 사법부의 독립, 권력분립, 인권의 존중 등 자유민주주의 헌법질서의 근본적인 가치들에 대한 재점검의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독일의 판례가 말해주듯이,[84] 최고의 공정성과 투명성이 보장되어야 할 헌법재판에서는 모든 법적 정치적 사회적 쟁점들이 아무런 제한없이 충분히 토론되어야 한다. 한국은 그 동안 고속성장의 그늘에 가려서 과정과 절차는 중요시되지 않고 단지 승부의 결과만에 집착하는 승자독식의 정글의 법칙 (특히 한국은 대통령제도의 “엽관제”[85]의 폐해적 현실을 외면하기 힘들 것)이 지배하게 된 결과 “법과 정의 law and justice”의 원칙이 빗겨갔는지 모른다. 그러나 보편적 법의 발전 단계를 참고한다면, 공평하고 공정한 정의의 시대를 요구하는 흐름이 한국에서는 예외적으로 비껴갈 것이라고는 내다보기 힘들다.
또 정당 해산 심판은 일회성으로 그칠 성격으로 보기는 어렵다. 정치이념적인 체제가 다른 역사와 경험을 가진 나라의 현실에서 정당해산 제도는 자유민주주의 헌법질서에서 조직화된 적에 대한 예리한 무기에 해당되므로 정부는 언제든지 꺼내고자 하는 유혹이 강한 측면이 존재한다. 하지만 정당해산제도가 예리한 무기이기는 하지만 그것은 양날의 칼이라는 점에서 고도의 조심성이 요구된다는 것을 어느 누구도 부정하기 힘들 것이다. 조심성은 최종적인 판단을 맡고 있는 헌법재판소 또한 예외적일 수 없다. 국가기관이 판단하고 국민은 따라오면 된다는 시기는 이미 오래된 과거의 일에 속하고, 지금은 국민을 설득하지 않으면 안되는 시기[86]라고 생각된다.
8. 독일 사회주의제국당 (SRP) 정당 해산 심판
독일연방헌법재판소 1952년 10월 23일 판결 BVerfGE 2, 1
1.1. 사실 개요
심판 청구 배경
히틀러의 나치 정당을 추종하는 극우파 소수 정당인 DKP-DRP은 1949년 8월 총선에서 402명이 정수인 연방의회에 정당비례대표로써 5명의 의원 당선자를 배출했다. 이후 내부분열로 의원당선자 중 한명인 돌스 Dorls[87] 등이 주축이 되어 1949년 10월 독일사회주의제국당(SRP)을 창당하고 그 후 다른 한 명의 연방의원이 가담하여 SRP정당의 연방의회 의원수는 2명이 되었다. SRP당의장은 돌스가 맡았으나 실질적인 SRP당의 얼굴은 1944년 히틀러를 암살하려는 모의를 사전에 분쇄하여 유명해진 히틀러 추종자 레메르 장군이었다. SRP당의 주요 당간부들 또한 히틀러의 나치당 출신이었다.[88] 극우파 SRP정당은 북극해에 닿아 있는 독일 북부지역에 위치한 리더작센주가 주된 지지 기반이었고 리더작센주에서 1951년 5월 실시된 주의회 의원선거에서는 총투표의 약 11%의 지지율을 얻어 주의회 의원 16명을 당선시켰다. SRP당의 주요 방계 조직으로 제국전선(RF), SRP여성동맹, 제국소년단(RJ) 등이 있었다.
당시 공공연하게 나치 핵심임을 밝힌 레메르 장군의 대중적 인기가 높아져 갔고, 그에 따라 SRP의 정치적 위협은 무시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 이에 독일 정부는 1951년 5월 4일 기본법 21조2항에 따라 “SRP 정당의 목적과 당원의 활동이 특히 선거인들에게 테러 행위를 시도함으로써 자유 민주 헌법 질서를 침해하려는 기도”가 존재하고 또 기본법 9조2항에 따라 정당의 방계조직 제국전선RF을 금지시키겠다고 정부 방침을 밝혔다.[89] 독일 정부는 1951년 11월 19일에 SRP에 대한 정당 해산 심판을 연방헌법재판소에 청구하였다.
1.1.2. 심판 청구 이유와 청구 주문
독일 행정부는 정당 해산 심판 청구 이유로써 SRP 정당의 내부 조직 질서가 민주주의 원칙들을 위반하여 운영되고 있고 또 1인 독재자가 지배하는 국가전체주의 정당과 동일하게 민주주의 질서를 훼손하고 있다는 사실을 들어 이는 기본법 21조2항에서 규정하고 있는 정당해산 사유에 합당하다고 주장하고 이를 헌법재판소에 정당 해산 명령을 청구하였다. 독일 정부의 SRP 정당 해산 청구 주문은 다음과 같았다: “1. SRP정당은 위헌이다. 2. SRP와 그에 관련된 그 모든 하위 조직들은 해산된다. 3. SRP와 그 하위 조직들(특히 제국전선, 청년동맹, 여성동맹을 포함하여)의 대체 조직이나 위장 조직은 금지된다. 4. SRP과 하위조직의 재산은 공익 목적으로 몰수된다.”[90]
1.1.3. SRP 반론 요지
정부의 정당해산 심판이 헌법재판소에 제기되자 이에 대한 SRP의 주요 반론 논거는 다음과 같았다.
연방헌법재판소법[91]상 퇴임 재판관의 후임이 선임되고 있지 않으므로 헌법재판소의 재판부 구성은 위법이다.[92]
기본법 21조의 정당조항은 3항에서 말하는 대로 구체적인 법률의 제정이 있기 전까지 직접 적용될 수 없다.
SRP 정당의 내부 질서는 민주주의 원칙에 위반되지 않았고 또 다른 정당들도 나치당원들을 가입시켰다.[93]
SRP 정당에 대한 강제 해산은 국민 자치와 다수결 원리에 의해 국민 주권을 실현하는 민주주의 원칙에 반한다. 이것은 정권의 정치적 정당성은 국민 주권과 국민 자치 원칙에 따라 실시되는 선거를 통해서 획득되는데 국민의 정치 의사 형성을 막는 것 자체가 민주주의 원칙을 위반하게 된다는 논리로써, SRP의 반론 중에서 강력한 논거에 해당하였다.[94] 민주주의 체제란 국민 자치 원칙에 따라 누구라도 국민의 지지를 받으면 정권을 획득하는 것이고 또 국민의 정치적 의사를 형성하는 과정이 민주적인 방식에 의존해야 한다면 어떤 정당-심지어는 반민주적인 체제를 옹호하는 정당까지도 누구에게나 개방되어야 하는 것이 마땅할 것인 바, SRP은 국민의 정치적 의사를 형성하여 선거를 통해 정권을 획득하려는 하나의 정당인 이상 특정 정당을 배제하는 것은 오히려 민주주의 원칙을 부정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선거를 통해서 당선된 의원은 국민 개개인의 의사의 합으로써 전체 국민의 대표자의 지위에 있으므로 정당의 해산 여부하고는 관계없이 의원직이 상실되는 것이 아니라고 반박했다.[95]
1.1.4. 법적 쟁점
자유 민주주의 국가 체제에서는 정당 설립의 자유와 정당 활동의 자유를 헌법상으로 보장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정당은 정치적 결사로서 국민의 정치적 의사를 적극적으로 형성하고 자유 선거에 참여하여 정권을 획득한다. 대의제 민주주의 국가의 정치 현실은 “정당 정치”[96]를 기본으로 하고 있다. 이러한 대의제 민주주의 정치 원칙에서 국가가 어느 특정 정당을 강제로 배제할 수 있는 근거가 무엇인지를 찾아내는 일은 실로 매우 곤혹스러운 일임에 틀림없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국민 개개인의 자유로운 자기 의사 결정에 따라 정당 설립은 자유라고 전제해 놓고서 다른 한편으론 어떤 정당을 배제할 수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민주주의 원칙에 위반되는 결과일 것이다. 또한 의원은 국민의 대표자임과 동시에 소속 정당에 기율되는 이중의 지위를 갖고 있다는 점에서 정당 해산 심판은 난해한 영역에 속한다.[97]
자유 민주주의 기본질서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정당의 행위가 민주주의 질서에 얼마만큼 심각한 위협을 초래할 때 위헌정당으로 판단되는가? 국가 존립을 위협하는 위험이 실재적으로 현존해야 하는가? 아니면 위헌정당으로 확인될 정도의 단순한 개연성만 존재하면 되는가? 정당이 단지 강령 또는 정당의 운영이 반민주적이어도 위헌정당으로 판단할 수 있는가? 어떤 정당을 반민주적이 정당 또는 위헌정당으로 볼만한 어떤 객관적인 조건들이 존재하는가? 현존의 정치 체제를 근본적으로 변화하고자 하는 정당이 거기에 해당되는가? 어떤 정당이 불법적인 활동을 옹호하는 정당인가? 단순히 미래의 막연한 때가 오면 민주주의 체제를 전복할 의도를 가진 정당도 해산되어야 하는가? 이러한 쟁점들은 민주·대의·정당 정치에 대해서 근본적인 헌법상 쟁점을 던져주는 난해한 영역에 속한다.[98]
1.1.5. SRP 정당 해산 판결 주문
“I.1 SRP는 위헌이다.
I.2. SRP는 해산된다.
I.3. SRP와 같은 대체조직을 조직하거나 또 현재의 조직을 대체조직으로 계속 유지시키는 것을 금지한다.
I.4 SRP의원은 SRP 정당의 공천으로 선출되었거나 또는 판결 선고 당시 SRP정당에 소속된 의원의 연방의회와 주의회 의원직은 결원 보충됨이 없이 즉시 상실된다. 해당 의회의 법정 의원 정수는 상실된 의원직의 수만큼 줄어든다. 의회 의결의 효력은 이로써 영향을 받지 아니한다.[99]
I.5. SRP의 재산은 독일연방공화국의 공공의 이익 목적으로 몰수한다.
II. 각주내무성 장관들에게 주문 1.2 와 1.3의 명령을 집행할 권한을 위임한다. 그 범위 내에서 그들에게는 모든 경찰기관에 대한 직접적인 지휘권이 부여된다. 재산의 몰수는 연방내무성 장관에게 위임한다. 연방내무성 장관은 각주내무성 장관의 조력을 받을 수 있다.
III. 이 판결과 판결의 집행에 관한 모든 조치에 고의적으로 위반하는 행위는 연방헌법재판소법 47조와 42조에 따라 6월 이상의 금고에 처한다.”[100]
1.2. 판결 이유
독일연방헌법재판소는 1952년 10월 23일 다음과 같은 요지의 판결을 내렸다.
절차적 하자와 실질적 사법 정의 실현 관계
퇴임재판관의 후임재판관이 연방헌법재판소법 5조3항에 규정된 기간 내에 선임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재판부의 구성에 절차적인 하자가 있다고 볼 수 없다. 퇴임재판관은 그 법률규정에 해당되지 않기 때문이다. 또 설령 사소한 절차적인 잘못이 있다고 해도 실질적인 정의를 실현하고 법의 지배 원칙을 따르는 헌법재판소의 재판 절차에 실질적인 장애를 준 것이 아니다.[101]
정당의 헌법상 특별한 지위
자유 민주주의 국가 체제에서 정당은 국민의 정치적 의사형성에 참여하는 한 헌법상 보장하는 정당의 자유를 누리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정당은 일반적인 정치결사단체하고는 달리 헌법상 보다 강하게 보호받는 특수적인 지위[102]를 가지고 있으므로 정당이 자유 민주주의 헌법 질서를 부정하고 또 이를 적극적으로 철폐하고자 하는 정치 세력이 헌법상 정당 규정의 지위를 보호막으로 삼아서 다른 혜택을 추구하는 경우에는 헌법질서의 모순을 가져오게 된다는 측면에서 헌법상 위헌정당 심판 제도를 도입한 것이다.
헌법상 정당을 보호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정당을 해산할 수 있다는 이 규정은 일견 서로 맞지 않다는 생각이 들 수 있다. 정당의 금지는, 비록 정당금지의 요건을 엄격하게 정함으로써 되도록 민주적 정치과정의 개방성을 최대한으로 보장하려는 목적을 이해한다고 해도, 그것은 개방적인 민주적 정치과정의 기본질서에 대한 중대한 침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국민의 자기결정권과 다수결의 원칙에 기반하는 민주주의 정치 체제의 기본적인 가치는 누구라도 자유롭게 정치적 의사형성의 과정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에 있다. 그런데 자유로운 의사결정권을 가진 국민들이 자유로운 선거에서 결정을 하는 정권의 형성 문제에 대해서 국가가 미리 앞서서 어느 정치 세력을 정치적 의사 형성 과정에서 강제로 축출할 수 있다는 사고방식은 반민주주의적 결과를 가져올 위험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에 정당 해산 금지 제도는 가볍게 다룰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103]
자유 민주주의 기본질서를 수호하기 위한 헌법 장치
자유 민주주의 국가 체제에서는 정치적 의견의 표현과 정치적 결사의 자유를 국민 기본권으로써 보호한다. 한편 민주국가에서는 국민주권의 원칙에 따라 선거권을 가진 국민이 선거에 참여하여 다수결의 투표로써 정권을 결정한다. 이 과정에서 자유 민주주의 국가의 정치적 현실은 선거일 이전에 정당을 조직하고 정당을 통해서 선거에 참여하게 된다. 이러한 민주정치의 이론과 현실에서 정당 설립과 정당 활동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1949년 독일헌법 기초자들은 이러한 결론을 완전하게 반영할 것인지 아니면 히틀러의 나치 일당독재정권의 경험에 비추어 어떤 제한을 두어야 할 것인지를 고민하였다. 어떠한 정치적 이념에 근거하든 정당을 결성할 완전한 자유에 대해 제한을 가하는 것이 민주정치의 일반 원칙인지 또 민주적인 다수결의 방법으로 민주주의 국가 정치체제를 폐지하는 것을 추구하는 정당은 정치적 의사 형성의 마당에서 강제로 제외시켜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을 했던 것이다. 또한 정부가 문제 있는 야당을 말살할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것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헌법은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려고 노력하였다. 정당 설립의 자유를 보장하는 한편 다른 한편으론 위헌 정당의 활동을 막을 수단을 강구한 것이다. 이러한 정당 활동을 막는 권한을 남용할 위험을 제거하기 위해서 헌법재판소가 위헌성 여부를 판단하게 하고 또 위헌정당의 요건에 해당되는지를 확인하는 사실문제에까지 헌법재판소가 담당하도록 만들어 놓은 것이다.[104]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당이 갖는 특별한 중요성 때문에 만약 정당을 정치의 장에서 퇴출시키는 것이 가능하고 또 그것이 헌법재판소에 의해서 구체적인 사건에서[105] 위헌정당으로 확인될 때는 “오로지 정당이 헌법에 구체화된 자유 민주주의 기본질서에서 가장 중요한 기본적인 가치들을 철폐하려고 기도하는 경우”에만 가능하도록 헌법적 장치를 만들어 놓은 것이다.[106]
정당은 정치적 결사 단체의 성격을 갖는다. 따라서 기본법 9조에 의거하여 행정부의 규제의 받는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정당이 정치적 결사 단체의 수준에서 정당으로 그 수준과 위치가 격상되면 헌법이 특별히 보호하는 정당의 지위로 인해서 정당은 결사단체하고는 다르게 특별히 헌법상의 보호를 받게 된다.
정당 해산 제도의 위험성
기본법 21조2항의 정당 해산 제도는 21조1항에서 정당을 헌법상
보호하고 있기 때문에 정당 해산 제도는 필연적으로 “21조2항과 자유로운 정치 활동의 기본적 권리”인 정치적 표현의 자유와의 사이에 일정한 긴장관계가
일어나게 된다. 정당 해산은 민주국가의 정당성의 근간인 민주주의 체제의 정치적
개방성에 대해서 이율배반적인 측면이 된다. 민주국가에서 정당이 선거에 참여하여
정권이 탄생되는 정치적 현실에서 강제적인 정당 해산 제도는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정치적 정통성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을 하게 만든다.
정당 조직 운영과 민주주의 원칙
민주국가에서 정권은 정당을 통해서 창출되므로 정당의 운영과 조직 자체가 민주적이어야 한다는 내부적 요건은 정당 정치의 근간이자 토대를 이룬다. 정당은 기본법 21조1항이 요구하는 민주주의 원칙들에 의해 조직을 운용하여야 한다. 정당의 민주적 구성과 운용 요건은 강제 규정이므로 정당이 민주적인 정당이 아닌 것으로 판명되면 그 정당은 헌법을 위반하는 것이 된다. 압수 수색을 통해 얻는 증거-당지도부가 당원을 모집할 때 서신 교환 등을 분석한 결과 SRP 당 주요 간부들은 모두 히틀러의 나치당원이었고 또한 핵심 간부 출신이었다.[107] 또 이들은 히틀러의 나치당을 부활시키려고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108]
SRP는 당원과 그 추종자들의 행위에서 기본적 인권과 법치국가 원칙을 부정하는 것이 확인되었다. 특히 이들에게서 반유대주의의 재건 활동이 분명하게 나타났다. 그리고 SRP의 내부 조직 질서는 민주주의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 반민주적인 정당임이 드러났다. 즉 SRP는 당원의 민주적 의사 참여가 봉쇄된 하향식 명령 체계의 1인 지배 독재 정당이며, 정당 가입과 탈퇴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고 있고, 당원에게 충성을 강요하는 등 이러한 사실로 볼 때 민주주의 정당이라고 여겨지지 않는다. 또한 이들은 당원 가입에 제한을 두었으며, 당원에 대한 추방 절차는 나치당과 동일하였다.
SRP당의 강령, 프로그램, 내부 조직 등이 나치 일당 전체주의 국가 이념의 히틀러의 나치당(NSDAP)과 본질적으로 유사하고 또 SRP 스스로 나치당의 후신 successor 정당으로 여기고 있다는 사실[109]에 근거하여 자유 민주주의 기본질서를 철폐하고자 하는 기도가 확인된다.[110]
자유 민주주의 기본질서 freiheitliche demokratische Grundordnung
헌법재판소는 국민 자치와 다수결이라는 민주주의 원칙을 따르다 보니 히틀러 나치 독재 정권의 출현을 막지 못했었다는 독일의 정당 정치 현실을 반성하고 (판결문에서 히틀러의 나치 일당독재 전체주의 국가 체제의 역사를 자세하게 거론하였다) 정당 해산 제도의 법적 타당성을 단호하게 제시하였다. 정당 해산 제도는 히틀러의 나치 정권이 패망한 이후 1949년 독일기본법에 처음으로 규정된 것이 아니라, 정당 설립의 자유를 인정했던 바이마르 공화국에도 정당 해산 제도가 존재했다.[111] 기본법 21조는 헌법질서의 실정법화된 근본 규범 normative order으로써 가치 중립적인[112] 의미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이 말은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와 평등을 부정하고 일당독재 체제인 국가전체주의에 반대되는 개념이다.
헌법재판소는 정당 해산 제도가 민주주의 원칙에 위반된다는 SRP의 반박에 대해서 그에 대한 해답을 주기 위해서 ‘헌법 질서 constitutional order’와 구별되는 ‘자유 민주주의 기본질서 free democratic basic order’에 대한 법적 개념을 정의했다.[113]
“자유 민주주의 기본질서란 모든 공권력은 법의 지배를 엄격하게 따르고 또 어떠한 폭력이나 자의성을 배격하고 또 자유와 평등과 다수의사 원칙에 따른 국민의 자기 결정권에 기반하는 질서를 말한다. 이 질서의 기본 원칙으로는 최소한 다음의 요소들이 포함된다: 헌법에 구체화된 기본적 인권의 존중, 무엇보다 생명권과 인격의 자유 형성권, 국민 주권, 권력 분립, 정부의 책임성, 법에 따른 행정, 사법부 독립, 복수 정당의 원리와 모든 정당의 기회 평등과 헌법 범위내에서 야당의 구성권과 활동권.”[114]
특별법 우선 적용
기본법 21조2항은 3항의 단서 규정 (연방법률에 의한 상세한 규율을 예정하는)과는 상관없이 정당에 대해서 직접 가능하다. 또 이 정당조항은 9조2항에서 다루고 있는 결사단체하고는 별도로 정당에 대해서 특별하게 다룬 조항으로써 특별법 lex specialis 우선 원칙에 따라 정당에 대해서는 21조가 적용된다.[115]
정당의 방계조직은 정당의 핵심부와 느슨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그 정당의 정책을 지원하고 확산시키는 역할을 하는 조직으로써 흔히 정당 산하의 청년단체 등이 그 예이다. 방계조직은 정당이 아니므로 정당 보호 조항을 받는 대상이 아니다. 방계조직의 법적 운명은 정당의 운명과 무관하다. 정당의 특수조직(예컨대 정당의 지역단체)은 당원들로 구성되어 정당의 강령과 정책을 구현해 나가는 정당내부의 조직이므로 정당의 본질적 구성부분에 속한다. 따라서 이들 조직은 정당의 강제 해산과 법적 운명을 같이한다.
정당이라면 21조2항에 의해 즉시 해산될 수 있다. 21조에 따른 정당이 아니라면 9조2항[116]에 따라 일반 결사단체의 해산 법리에 따르게 될 것이다. 즉 일반 결사 단체는 헌법재판소가 아니라 정부에 의해 해산 명령이 가능하다.[117]
헌법재판소 명령의 집행력
기본법의 정당 해산 규정은 직접 적용될 수 있는 법이다. 21조1항에서 정당의 내부 조직이 민주주의 원칙들을 위반해서는 아니된다는 것을 규정하고 있다. 자유 민주주의 기본질서를 부정하는 정당에 대해서 헌법재판소는 정당 해산 규정에 근거하여 즉시 법적 효력을 갖는 정당 해산 집행 명령을 내릴 수 있다.[118] 헌법재판소의 명령은 사법부의 본질적인 권한과 성격에 의거하여 즉시 효력을 나타낸다. 기본법 21조는 근본 규범 조항이고, 다른 법률의 제정을 필요로 하지 않으며, 따라서 즉시 정당 해산을 명령할 수 있다. 헌법재판소의 명령에 대한 집행권을 경찰에게 위임하였다.[119]
정당 해산과 동시에 의원직도 동시에 상실되어야 한가?
정당의 위헌성이 확인되고 이에 헌법재판소의 판결에 따라 해당 정당의 소속 의원들의 의원직은 즉시 상실된다.
헌법재판소는 21조의 정당 조항에 근거하여 즉시 효력을 갖는 의원직 상실 명령을 내릴 수 있다. 이런 집행명령은 사법부의 고유권한에 속한다. 정당의 비례대표제 의원은 “국민의 대표자”로서의 지위와 “정당의 대리인”으로서의 지위 즉 두 가지 지위[120]를 동시에 갖고 있는 관계로 정당 해산시 정당의 비례대표제 의원의 신분 유지 문제가 떠오르게 된다. SRP는 의원은 총선에서 자유로운 국민들로부터 직접 선거로 선출되는 “전 국민의 대표자”이므로 정당해산과 함께 의원직을 상실시키는 것은 기본법 38조[121]와 충돌된다고 반박하였다.
하지만 정당의 위헌성이 확인되면 헌법재판소의 판결에 따라 해산 정당의 소속 의원들의 의원직은 즉시 상실된다. 이러한 의원직 상실이라는 결론은 다음의 논리에 따른 것이다. 정당 해산으로 정치적 의사 형성의 헌법적 보호 장치에서 배제되는 경우 이에 대해서 정당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정당이 미리 자진 해산해 버리는 경우 헌법재판소의 해산 명령이 실효성을 거둘 수가 없을 것인 바 헌법재판소의 정당 해산이란 금지된 정당이 헌법상 보호받는 헌법 기관으로써 정치적 의사 형성을 금지하는 것에 있음으로 정당 해산이 되는 순간 해산정당의 소속 의원은 당연히 의원직을 상실한다고 봄이 타당하다.[122]
정치적 의사 형성 과정에서의 민주주의 원칙을 존중하기 때문에 헌법재판소가 직접 그러한 정치적 활동을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헌법기관인 정당으로써 활동하는 것을 금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반적인 결사단체로서 그러한 정치적인 활동과 전파 노력까지를 거부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헌법재판소가 자유롭고 민주적인 정치적 의사형성 과정에 개입하여 그것을 방해하는 것이 아니다. 정당 해산은 금지된 정당이 헌법 기관의 지위를 갖고서 정치적 의사를 형성하려는 것을 금지하는 것이고, 따라서 헌법기관인 의원직은 동시에 상실된다.
판결 요지
BVerfGE 2, 1 at 1-2
1. Das Bundesverfassungsgericht ist nicht ohne weiteres schon deshalb unvorschriftsmäßig besetzt, weil für einen ausgeschiedenen Richter nicht innerhalb der in § 5 III BVerfGG vorgesehenen Frist ein Nachfolger gewählt wird.
2. Freiheitliche demokratische Grundordnung im Sinne des Art. 21 II GG ist eine Ordnung, die unter Ausschluß jeglicher Gewalt und Willkürherrschaft eine rechtsstaatliche Herrschaftsordnung auf der Grundlage der Selbstbestimmung des Volkes nach dem Willen der jeweiligen Mehrheit und der Freiheit und Gleichheit darstellt. Zu den grundlegenden Prinzipien dieser Ordnung sind mindestens zu rechnen: die Achtung vor den im Grundgesetz konkretisierten Menschenrechten, vor allem vor dem Recht der Persönlichkeit auf Leben und freie Entfaltung, die Volkssouveränität, die Gewaltenteilung, die Verantwortlichkeit der Regierung, die Gesetzmäßigkeit der Verwaltung, die Unabhängigkeit der Gerichte, das Mehrparteienprinzip und die Chancengleichheit für alle politischen Parteien mit dem Recht auf verfassungsmäßige Bildung und Ausübung einer Opposition.
3. Art. 21 II GG ist für politische Parteien uneingeschränkt lex specialis gegenüber Art. 9 II GG.
4. Art. 21 I 1 und 2 und II GG ist unmittelbar anwendbares Recht. Das gilt auch für Art. 21 I 3 GG insoweit, als er es verbietet, daß eine Partei sich in grundsätzlicher Abweichung von demokratischen Prinzipien organisiert.
5. Erreicht die Abkehr von demokratischen Organisationsgrundsätzen in der inneren Ordnung einer Partei einen solchen Grad, daß sie nur als Ausdruck einer grundsätzlich demokratiefeindlichen Haltung erklärbar ist, dann kann, namentlich wenn auch andere Umstände diese Einstellung der Partei bestätigen, der Tatbestand des Art. 21 II GG erfüllt sein.
6. Wird die Auflösung einer Partei in das freie Belieben einer autoritären Spitze aus wenigen Funktionären gestellt, so ist eine dahingehende Satzungsbestimmung oder eine einzelne Ermächtigung wegen Verstoßes gegen die zwingende Vorschrift des Art. 21 I 3 GG nichtig.
7. Mit der Feststellung der Verfassungswidrigkeit einer Partei fallen die Bundestags- und Landtags- (Bürgerschafts-) mandate der Abgeordneten dieser Partei fort.
9.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개념 정리
9.1. 기본법과 헌법
‘독일 기본법’[123]은 독일의 법령체계에서 가장 최상위의 지위를 가진 독일 헌법을 말한다. 그런데 왜 독일헌법을 ‘헌법 Verfassung 영어 Constitution’이라 부르지 않고, ‘기본법 Grundrecht 영어 Basic Law’이라고 부를까? 그 이유 하나는 2차대전 종결과 동시에 동독과 서독으로 분단된 당시 상황에서 서독은 1949년 5월 23일 발효된 새로운 헌법을 제정하면서 향후 독일의 통일을 염두에 두고 ‘임시 과도기 transitional period’의 헌법을 제정한다고 여겼기 때문에 ‘헌법 Verfassung’이라는 말 대신에 헌법의 기능과 지위를 가진 특별한 법을 나타내는 용어로써 의도적으로 ‘기본법 Grundrecht’이라는 새로운 단어를 만들어 내었다.
당시 헌법기초자들은 통일이 되면 새로이 헌법을 제정하여야 할것이고 따라서 최고의 상위의 법이기는 하지만 통일 때까지 잠정적인 기간에 효력을 가지고 있다는 측면에서 ‘헌법’이란 용어를 의도적으로 피하고자 했다. 통일이 되기 전까지 과도기의 헌법이라는 것을 분명히 말하기 위해서 기본법의 전문뿐만 아니라 기본법의 유효기간을 기본법 146조에서 독일국민의 자유로운 결정으로 채택된 새 헌법이 시행되는 날까지로 분명하게 명시하였다: “이 기본법은 독일의 통일과 자유가 달성된 후 전체 독일 국민에게 적용되며, 독일 국민의 자유로운 결정으로 새로운 헌법이 효력을 발생하는 날에 그 효력을 상실한다.”[124]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동독과 서독은 1990년 8월 30일 독일 통일조약을 맺고 10월 3일 하나의 독일로 통일되었다. 통일조약으로 서독이 동독을 흡수 통일한 결과 서독의 기본법의 적용 영역이 동독으로 확대 적용되게 되어 새로운 헌법을 제정할 필요성이 없게 되었다. 서독의 기본법이 새로운 통일 독일의 헌법이 되게끔 약간의 규정들에서 기술적인 수정 정도에 그치고 기본법은 독일의 헌법이 되었다. 1949년 기본법 제정 당시 염두에 두었던 통일이 실현된 결과 임시적인 기간의 의미를 가졌던 기본법의 뜻은 의미가 퇴색되었다. 독일 국민들의 자유로운 결정으로 독일의 통일과 자유를 성취하였고 따라서 기본법은 전체 독일에 적용되는 헌법의 지위를 가진다.[125]
9.2. 민주주의 국가 최고의 헌법 원칙 supreme
principles of a free democracy
독일헌법제정의
역사성에 대한 이해를 가지고서 ‘기본법’이란 용어 사용의 다른 배경 하나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헌법은
국가 생활에 근본 질서를 부여하기 위하여 태어난 최고 최상의 법이다. 행정부나
사법부 모두 법에 따라 국가가 운영된다. 법치국가 Rechtsstaat의
당연한 요청이다. 그런데 이러한 최고의 최상의 법률도 모든 실정 법률과 마찬가지로
입법부가 제정한다. 하지만 독일은 히틀러 나찌 일당독재 시대에서 실정법 만능주의[126]가
헌법 질서를 휩쓸고 “법 Gesetz”의 이름으로 “법 Recht”을 무시하는 독재체제가 수립되고만 뼈아픈 역사를 경험했다. 이러한 역사적 반성의 토대에서 생각을 깊이 해보면, 법률에 따른다고 해서 모두가 정당성을
가진 것이 아니라 같은 법률이라고 해도 “법률 Gesetz” 보다 더 상위에 suprapostitive 위치한 “법과 정의 law and
justice”의 개념이 존재한다고 생각해볼 수 있다. 모든 국가 질서를
법에 따라서 운영된다고 해서 법률로 제정만 하면 된다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고 법률 보다 상위에 위치한 “헌법 국가 constitutional
state” 체제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엄밀히 말하면 헌법도 “법률 Gesetz”의 한 형태이기 때문에 입법부가
법률 개정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헌법을 개정할 수 있다.[127] 하지만 헌법 개정으로도 개정할 수 없는 더 상위의 법이 존재한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면,
지구와 태양이 도는 자연불변의 법칙처럼 말로써 표현을 하지 아니해도 확실하게 존재하는 하늘에 있는 자연법칙과도 같이, 민주주의 국가 법질서에도 ‘최고의 원칙 supreme principles
of a free democracy’으로서 “법과 정의”의 이름이라는 최고의 상위법이 존재한다고 생각을 자연스럽게 도출된다.
기본법 체계에 있어서 모든 국가의 질서가 단순히 법률에 따라야 한다는 것뿐만 아니라 또한 더 상위에 위치한 어떤 구체적인 헌법(기본법)적인 질서를 만드는 최고의 법이 존재한다고 믿을 수 있는데 이 법을 기본법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1949년 기본법 기초자들은 이러한 법이론을 구체적인 헌법 규정으로 표현해 내었다(기본법 19조와 79조). “기본법에 의하여 기본권이 법률에 의하여 또는 법률에 근거하여 제한될 수 있는 경우에도” “어떠한 경우에도 기본권의 본질적 내용이 침해되어서는 안된다 In no case may the essence of a basic right be affected.”[128]
나치 일당독재 체제의 잘못된 역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기본법에다 헌법의 기본원칙을 명확히 밝히고 민주국가체제의 근본뼈대가 되는 기본적인 원칙들에 관해서는 헌법개정을 통해서도 불가능하게끔 헌법상의 장치를 마련해 놓은 것이다. 이러한 근본적인 불가침의 영역에 속하는 원칙들에 인간의 존엄성과 인권, 민주국가, 국민주권, 법의지배, 사법부 독립, 연방주의 등이 포함된다. 이러한 원칙들은 기본법의 가장 중요한 핵심부분들로써 헌법 개정의 대상에서 제외된다. 기본법의 핵심적인 본질 그 자체를 변경하는 것은 결코 변경될 수 없다고 확실하고도 분명하게 천명한 것이다.
9.3. 헌법 질서와 기본법 질서
‘헌법 질서’라는 말의 독일어 표현은 ‘verfassungsmäßige Ordnung’이다. 기본법 9조2항은 “[단체의] 목적이나 활동이 형법에 위반되거나 또는 헌법 질서, 국제상호 이해에 반하는 단체는 금지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헌법 질서”는 국가 통치 기구를 다루는 영역의 질서를 말하고, 21조의 “자유 민주주의 기본[법]질서“는 이보다 더 상위의 근본 규범에 해당한다고 독일헌법의 기초자들은 생각한 것이다.
‘헌법 질서 verfassungsmäßige Ordnung’와 ‘자유 민주주의 기본질서 freiheitliche demokratische Grundordnung’에 대해서 잠깐 살펴보자. 기본법 79조3항은 헌법개정의 한계로써 연방주의를 들고 있다.[129] 하지만 연방헌법재판소가 말하는 헌법 개정으로써도 폐기할 수 없는 가장 기본적인 내용의 법에 포함되는 것 즉 “자유 민주주의 기본질서”의 구성 요소에 연방주의를 포함하지 않고 있다. 따라서 연방주의를 폐지하는 헌법개정은 허용될 수 없지만 이를 폐지하려는 정당은 자유 민주주의 기본법질서에 위배되지 않을 것이다.[130] 그것의 범위는 정치적 표현의 자유의 영역으로 보호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같은 헌법상의 규정이라고 해도 기본적 인권을 규정하는 권리장전의 내용과 국법 질서 조항과의 차이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인권을 보호 신장하기 위해서 국법 질서 (각 헌법 기관들을 만들어 국가 질서를 정립하는 것)를 세운 것이다. 나치일당독재 국가전체주의 시대를 지배했던 실정법만능주의 (“법은 국가의 필요에 따라 법은 유효하다 Recht ist, was dem Staat nützt.)”를 배격하였다.
독일연방헌법재판소의
판결문에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대한 개념을 설명하였다.[131] 독일어 “freiheitliche
demokratische Grundordnung” 원문의 영어 번역은 “liberal-democratic
constitutional order” 또는 “free democratic basic order”으로
표현된다.[132][133].
|
기본법 |
일반 법률 |
자유 민주주의 기본질서 |
18조 21조2항 91조1항 10조2항 11조2항 87조a4항 |
정당법 1조1항1문 외국인법 6조3항21호, 3호 군인법 8조 형법 86조2항, 93조2항 등 |
헌법적 질서 |
9조2항 98조2항 2조1항 20조3항 28조1항, 3항 |
형법 81조2항 등 |
헌법 제원칙 |
|
형법 86조1항6 등 |
표1. 자유 민주주의 기본질서[134]
9.4.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우리나라 판례에서 외국법 원용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위해를 준다 함은 모든 폭력적 지배와 자의적 지배 즉 반국가단체의 일인독재 내지 일당독재를 배제하고 다수의 의사에 의한 국민의 자치, 자유·평등의 기본원칙에 의한 법치주의적 통치질서의 유지를 어렵게 만드는 것으로서 구체적으로는 기본적 인권의 존중, 권력분립, 의회제도, 복수정당제도, 선거제도, 사유재산과 시장경제를 골간으로 한 경제질서 및 사법권의 독립 등 우리의 내부체재를 파괴·변혁시키려는 것이다.” (헌재 1990. 4. 2. 89헌가113).[135]
“헌법 8조4항은 ‘정당의 목적이나 활동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될 때에는 정부는 헌법재판소에 그 해산을 제소할 수 있고, 정당은 헌법재판소의 심판에 의하여 해산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정당의 해산에 관한 위 헌법규정은 민주주의를 파괴하려는 세력으로부터 민주주의를 보호하려는 소위 '방어적 민주주의'의 한 요소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헌법 스스로가 정당의 정치적 성격을 이유로 하는 정당금지의 요건을 엄격하게 정함으로써 되도록 민주적 정치과정의 개방성을 최대한으로 보장하려는 것이다. 즉, 헌법은 정당의 금지를 민주적 정치과정의 개방성에 대한 중대한 침해로서 이해하여 오로지 제8조 제4항의 엄격한 요건하에서만 정당설립의 자유에 대한 예외를 허용하고 있다. 이에 따라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부정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제거하려는 조직도, 국민의 정치적 의사형성에 참여하는 한, '정당의 자유'의 보호를 받는 정당에 해당하며, 오로지 헌법재판소가 그의 위헌성을 확인한 경우에만 정당은 정치생활의 영역으로부터 축출될 수 있다.” (헌재 1999.12.23. 99헌마135).
“우리 헌법은 정당에 대하여도 민주적 기본질서를 해하지 않는 범위내에서의 정당활동을 보장하고 있다. 즉 헌법 8조2항 및 4항에 ‘정당은 그 목적•조직과 활동이 민주적이어야 하며…’, ‘정당의 목적이나 활동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될 때에는 … 헌법재판소의 심판에 의하여 해산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따라서 어떠한 정당이 외형상 민주적 기본질서를 추구한다고 하더라도 그 구체적인 강령 및 활동이 폭력적 지배를 추구함으로써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반되는 경우 우리 헌법 질서에서는 용인될 수 없는 것이다.” (헌재 2001. 9. 27. 2000헌마238).
위와 같은 우리나라 헌법재판소의 판결문에서 독일헌법재판소의 판결문을 직접적으로 인용하였음을 판례 참조에서 명기하고 있지는 않지만 문언 표현상으로 독일판례들을 인용하였다는 것은 쉽게 짐작된다.
10. 미국의 정치와 법의 역학 관계
10.1. 왜 미국 헌법은 정당 해산 규정을 두고 있지 않을까?
민주주의 정치 체제의 조건
정당 해산 제도는 민주주의 체제의 개방성과 정치적 정통성에 대해서 이율배반적인 결과를 가져올 위험이 있고 또 필연적으로 자유로운 정치 활동의 기본적 권리인 정치적 표현의 자유와의 사이에 긴장관계를 불러일으키게 된다. 사실 미국 영국 등 판례법 국가들에서는 헌법상 정당 해산 제도가 존재하지 않는다. 이들 국가들은 헌법에 정당 해산에 대한 규정이 존재하지 않으므로 정당을 강제로 해산시키고자 할 경우 개별적이고 구체적으로 특별 법률을 제정해야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정당 금지에 대한 특별 법률을 제정한다고 해도 최고 대법원이 법률의 위헌 여부에 대해 최종적으로 심사할 권한을 갖고 있으므로 정당 금지, 해산, 또는 이에 관련된 모든 법률 문제는 궁극적으로 최고 대법원의 사법적 판단에 달려 있다.
국민의 자기 결정권과 다수결의 원칙에 기반하는 민주주의 정치 체제는 누구라도 자유롭게 정치적 의사형성의 과정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을 기본적인 가치로 여기고 있다. 자유로운 의사결정권을 가진 국민이 자유로운 선거를 통해서 결정하는 정부의 구성 문제에 대해서 정부가 미리 앞서서 어느 한 정치 세력을 정치적 의사 형성 과정에서 강제로 축출할 수 있다고 한다면, 어떤 문제가 일어나는 것일까? 만약 정당의 자유를 보장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정당을 해산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면 이것은 서로 어긋난다는 생각이 바로 들지 않을 수 없다.
민주주의 체제에 도전한다고 해서 그것을 금지한다면 그것은 민주적인가? 어떤 정당이 민주주의를 반대한다고 해서 정당을 선거에 참여하는 것을 원천 봉쇄한다면 그것이 민주주의 원칙에 합치하느냐의 문제 즉 민주주의 국가 체제에서 반민주적인 조치를 취할 수 있느냐의 문제는 딜레마의 상황에 해당한다. 자기결정권을 국민에 의해 선출된 입법부가 다수결로 정한 행위에 대해서 비선출된unelected 제3부인 사법부가 다시 판단한다면 그것은 민주주의 정통성에 부합되지 않는 것이 아닌가 하는 물음이 제기된다. 다수의 독재 tyranny of the majority 를 방어한다는 목적에서 국민 다수의 의사 the will of people를 위반할 수 있느냐 문제를 낳게 된다.
자유 민주주의 국가 체제에서는 정치적 의견의 표현과 정치적 결사의 자유가 국민 기본권으로써 보장되고 또 국민주권의 원칙에 따라 선거권을 가진 국민이 선거에 참여하여 다수결의 투표로써 정권을 탄생시킨다. 이 과정에서 모든 자유 민주주의 국가의 정치적 현실은 선거일 이전에 정당을 조직하고 정당을 통해서 선거에 참여하게 된다. 이러한 민주 정치의 이론과 현실에서 정당의 설립과 또 정당 활동이 제약을 받아서는 아니된다는 결론이 쉽게 도출된다.
토마스 제퍼슨을 비롯한 미국 헌법 기초자들은 민주주의 다양성과 개방성에 대한 자신감을 나타냈고 따라서 정당의 자유를 당연한 것으로 인정하였다. 아마도 이러한 사상에 기초하여 미국의 헌법 기초자들은 정당 조항을 헌법 조문에 넣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18세기 미국의 독립 당시부터 미국의 유권자들은 정치적으로 양진영으로 나뉘어져 서로 대결적인 상황을 보여주었다.
민주적인 다수의 참여를 달갑지 않게 여겼던 연방주의자들은 대립하는 조직을 필요악이라고 인식하였고, 반면 민주 국가에서 다양성을 인정하는 진영은 대립하는 집단의 존재는 정치의 기본적인 단위라고 인식하여 보다 호의적으로 받아들였다. 개방성은 공익을 추구하는데 선한 도구로 작용할 수 있다고 말한 토마스 제퍼슨의 견해가 이를 대표하였다: “만약 미합중국의 해체를 원하거나 공화국 체제를 바꾸기를 원하는 사람이 있다면 타당한 이유들이 자유롭게 경합할 수 있는 곳에서는 그같은 잘못된 의견도 관용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안전의 기념비로써 그들이 방해 받지 않도록 합시다.”[136]
또 정당에 대한 태도를 정치이념적으로 굳이 구분한다면 개인을 우선시할 것이냐 아니면 집단을 우선시할 것이냐의 차이로 좁혀질 수 있다. 개인의 자유 측면을 강조하는 미국 헌법 기초자들은 개인의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신성시하여 수정헌법 제1조에서 명시적으로 규정하여 그것을 보호받게 만들었다. 수정헌법 제1조의 중요성을 재강조하는 의미에서 조문을 인용한다: “연방 의회는 국교를 정하거나 또는 자유로운 신앙 행위를 금지하는 법률을 제정할 수 없다. 또한 언론, 출판의 자유나 국민이 평화로이 집회할 수 있는 권리 및 불만 사항의 구제를 위하여 정부에게 청원할 수 있는 권리를 제한하는 법률을 제정할 수 없다.”[137]
위임의 법적 성격과 현명한 판단의 조건
대의제 민주주의 정치에서 의원의 개념을 보면 의원은 자신을 선출해준 선거구민의 이익에 봉사하는 대리인이 아니라 의원 자신의 독자적인 현명한 판단을 하여야 하는 양심적인 존재로써 인식된다. 다시 말해 의원은 공익을 위해서 “성숙한 판단 mature judgment”[138]을 내려야 한다고 인식된다. 여기에서 의원은 자신의 양심에 따른 독자적인 판단을 하는 존재라고 말하는데 의원의 “성숙한 판단”은 어떻게 내려지는 것일까? 의원이 독자적으로 현명한 결론에 도달할 수 있는 원천은 자유로운 정보의 교환과 완전한 “토론”에 달려있다. 다수의 대표자들이 모여서 만들어 내는 “다수의 지혜”는 타인으로부터 정보와 의견을 얻음으로써 생겨나는 과실에 해당하는 것이다. 과일은 나무 가지에서 열리므로 과일을 맛보기 위해서는 먼저 나무와 그 뿌리가 존재해야 한다. 의원에게 면책특권을 보장하는 이유와 민주국가에서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는 근본적인 전제조건이 여기에서 나온다.[139]
의원이 의사결정을 내리는 과정은 영미국 국민들이 일상적으로 재판과정에 참가하는 배심원 제도의 모습과 거의 비슷하다. 판례법 국가에서는 12명의 배심원들이 한 자리에 함께 모여서 “심의 deliberation”[140]의 과정을 통해서 나타난 배심원 Jury 제도가 정치와 법 제도의 기초를 이루고 있다. 배심원 제도란 의사결정권자(판사) 한 명의 판단 보다는 공동체 구성원 다수가 심의의 과정을 통해서 보다 현명한 판단을 도출할 수 있다는 가정에 기반한다. 배심원제도는 “다수의 지혜 wisdom of the mulitide”를 존중하는 법적 장치인 것이다. 다수의 지혜를 얻기 위해서는 심의의 과정이 거의 필수적으로 개입된다. “심의 deliberation”는 각자 반대 의견을 가진 다수가 함께 모여서 토론하고 심사숙고하는 과정을 통해서 하나의 일치된 결론으로 이끌어내지는 과정을 말한다.[141] 인간 공동체 사회에서는 반대의견들이 언제나 존재하는 경향 때문에 교황선출제도와 같이 한 방에 몰아넣고 거기서 하나의 일치된 결론이 얻어지기까지 생각을 거듭하면서 하나의 결론을 수렴해 가게 만드는 것이다. 심의의 과정에는 완전한 “토론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 일치된 결론을 얻어내기 위해서 한 방 room에 들어가 토론한다는 것은 들어가기 전에 이미 반대의견이 존재한다는 것을 당연한 사실로써 받아들이는 것이다. 반대의견이 존재하므로 토론의 자유가 큰 의미를 갖는다. 다수의 배심원들이 토의의 과정을 통해서 하나의 일치된 결론에 도달하는 배심원 제도에서의 심의의 과정과 마찬가지로, 의원들이 현명한 판단을 내리기 위해서는 완전한 토론의 자유를 보호하는 것이 필수적으로 필요하다. 다시 말해 다수의 지혜는 타인과의 자유로운 정보와 의견의 교환을 통해서 얻어지는 “열매”에 해당한다. 각자의 이해관계를 가진 다수의 다른 각자가 각자의 의견을 내세우고 심의의 과정에서 자유롭게 토론함으로써 공동체 전체의 이익을 고려하여 현명한 판단을 내릴 수 있게 되는 이러한 공동체 의사 결정 구조는 민주 정치 제도의 기초를 이루고 있다.
정당의 자유와 국민의 정치적 기본권
정당은 개별 당원들이 모여서 구성되지만 당원 각자 개인들과는 별개인 독립적인 단체이다. 정당은 개인 구성원과는 별개의 그 무엇이고 또 개인으로부터 독립된 단체라면 정당의 의도를 어떻게 판단할 수 있을까? 정당의 위법성을 판단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에는 정당 운영을 책임지는 정당 지도부의 의도를 찾아내 그것을 정당의 의도로 간주하는 연계적 이음 방법[142]이 있다. 이 방법은 정당 대표자의 일거수일투족이 모두 정당을 대표하는 것은 아니더라도 정당은 정당 운영에 관한 내부 규율에 따라 움직이고 있으므로 정당 지도부의 활동과 행동을 정당의 의도로 동일시할 수 있다고 가정한다. 다시 말해 각자 사람의 인격과는 별개의 그 무엇 thing인 정당은 사람의 뇌 같은 의사를 정당 스스로 가질 수는 없다고 해도 각각의 사람들이 모여서 만든 정당인 사실에 비추어 정당을 움직이는 지도부의 행위들을 마치 상수도관의 연결 작업과 같이 서로 이어진다고 보면 그들의 의사가 곧 정당의 의사로 간주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즉 정당을 움직이는 지도부의 행위들을 통해서 정당의 행위를 판명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러한 이론에 의하면, 한 정당의 의도 intent는 정당 지도부 각자에게서 발견되는 구체적인 행위를 채널적 방법으로 서로 이어보면 파악될 수 있다.
한편 정당의 지도부가 인격을 가진 개인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에서 또 다른 문제점이 존재한다. 모든 국민은 각자 태어날 때부터 정치적 표현의 자유와 집회 결사의 자유 등 정치적 기본권을 천부적으로 가지고 태어난다. 정당의 활동은 정당의 지도부를 통해서 나타난다고 볼 때 정당을 강제적으로 금지하거나 해산하게 된다면, 이들 구성원의 정치적 기본권을 제약하는지 여부가 문제될 수 있을 것이다. 정당은 개인과는 별개의 단체이므로 강제적으로 정당 해산이 가능하다고 해도 다른 한편으로는 정당을 구성하는 당원은 별개의 각자 개인 인격체이므로 각 개인의 정치적 기본권과 충돌될 가능성이 나타나게 된다.
정당 활동은 정당을 구성하는 당원의 인격적인 개인의 활동을 통하여 나타나므로 단체인 정당의 활동을 금지하거나 제약시키는 경우 당원 또는 지지자들이 갖고 있는 정치적 기본권과의 충돌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점은 1950-60년대 미국 사회를 강타했던 반공산주의 매카시즘의 광풍 속에서 일어난 사례들에서 잘 설명되고 있다. 이러한 문제점에 대해서 미국연방대법원은 어떠한 판결을 내렸는지 보다 자세한 내용을 다음 장에서 설명한다.
11. 의원의 정부 비판 발언 내용과 의원 자격 상실-본드 의원 케이스
11.1. 헌법 준수 의무와 의원 자격 심사-본드 의원 사건의 개요
줄리안 본드 Bond는 흑인이고 당시 인권 단체 소속 직원이었다. 그는 평화주의자로서 전쟁반대론자이었다. 1965년 의원 선거 이후 본드는 소속 인권단체가 미국의 베트남전쟁 정책과 전쟁 파병 군인 징병제를 비판하는 것을 지지했다. 본드는 흑인이 백인에 비해서 “차별받는 열등 시민”[143]으로 취급되는 한 전쟁에 참가할 이유도 없고 또 자신은 전쟁반대론자로서 당연히 베트남전쟁 등 모든 전쟁을 거부하는 명분을 가지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헌법 준수 의무에 위반된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에 대해 조지아주 하원은 본드가 주헌법과 연방헌법을 진정으로 준수한다는 것을 선서할 수 없다는 것[144]을 보여주는 것임으로, 따라서 본드는 의원 자격이 없다고 그의 의원 취임을 거부했다.
이에 대해 본드는 지방법원에 입법부의 취임 저지 행위를 무효로 돌리는 소를 제기했고, 지방법원이 이를 거부하자 법률 규정[145]에 따라 연방대법원에 곧바로 항소를 제기했다.
연방대법원은 본드의 의견 표명 행위는 법률로 금지하고 있는 징병제 반대 “선동 incitement”에 해당되지 않으므로 주 하원의 의원 자격 박탈 조치는 본드에게 주어진 수정헌법 1조가 보호하는 표현의 자유 기본권을 침해하여 위헌 무효에 해당된다고 판시했다.[146]
이 본드 사건은 의원으로 취임하기 이전의 행위가 법적 쟁점의 대상이었으므로 의원의 면책특권 적용의 문제는 검토되지 않았다. 본드 사건에서 연방대법원은 의원의 언론 자유를 제한할 수 있는 입법부의 제정 법률이 일반 국민이 누리는 표현의 자유 수준보다 더욱 엄격한 기준을 적용해서는 아니된다고 판시했다.[147] 입법부가 의원 자격 기준을 정할 자유는 가지고 있지만, 의원이라고 해서 일반국민들이 누리는 언론 자유 수준보다 더 제한할 수는 없다고 연방대법원은 말했다.
연방대법원은 입법부가 의원 자격 기준을 별도로 마련할 수는 있겠지만, 의원의 정부 정책 비판에 대해서는 어떠한 제한을 두어서는 아니된다고 판시했다.[148] “공공 정책에 대한 토론은 무제한적이고, 활발하고, 완전히 열려 있어야 한다”[149]는 뉴욕 타임즈[150] 판례에서 확인한 언론 자유의 기준을 재확인해 주었다.
판결 이유
웨렌 대법원장 판결 이유[151]
“본안 사건의 쟁점은 조지아주 하원이 하원의원에 정식으로 당선된 상고인 본드를 그가 행한 발언과 그의 기고문이 베트남에 대한 연방정부 정책과 징병제 법률을 비판하였다는 사실을 이유로 그의 의원자격을 박탈하는 것이 헌법상 허용되는지 여부에 있다. 법정 소송에 이르게 된 사정을 정확하게 이해하려면 연방대법원에 상고하기 까지 그간의 사정과 기록들을 모두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
(판결문에는 본드 의원의 정부 비판 발언의 구체적인 내용과 언론 인터뷰 발언 내용 등을 장황하게 있는 그대로 담고 있다. 분량이 많아서 그대로 전부 옮기기에는 지면관계상 어려움으로 그의 정부 비판 발언 일부를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우리는 자유 선거를 보장할 미국 정부의 능력이나 또 그럴 의도라도 있는지를 의문시한다. 우리는 전세계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미국정부의
구호는 미국의 냉전 정책의 실시에 따르지도 않고 또 따르기를 거부하는 해방 운동을 분쇄하려는 위선적인 가면에 불과하다고 믿는다.
… 나는 전쟁을 정당화할 수 없다. 전쟁은 세계 공산주의(누구나 아는 다른 어떤 표현이든)를 저지하는 것이기 때문에 나는 어떠한 이유에서든 서로 싸우는 전쟁에는 본질적으로 반대하게 되었다. …세계 공산주의를 저지하기 위해서 싸우고, 국제 공산주의를 신장시키기 위해 싸우고, 또 어떤 이유에서든. 나는 베트남 전쟁에 개입한 미국을 반대하는 만큼 그와 똑같이 베트남에서 전쟁을 벌이는 베트콩을 반대한다. 나는 단지 미국에서 태어나 살고 있을 뿐이다. 만약 내가 북베트남에서 산다면 미국의 언론 자유와 동일한 정도를 누릴 수 없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북베트남에서 사는 것이 아니고 난 지금 여기 미국에 살고 있는 것이다. ……”
….
주 정부가 의원들에게 일반 국민들보다 더 높은 충성 의무 기준을 정하는 것이 헌법상 정당화된다고 주장하면서
주정부가 수정헌법 1조에서 보호하는 자유권을 제약하려면 만약 이러한 발언들이 일반 국민에 의해 행해졌다면
허용될 수 있을까를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물론 주정부는 일반 국민들에게는 요구되지 않는 것이지만 의원들에게는 헌법을 지지한다는 선서를 요구할 수 있다는 것은 헌법상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문제의 차이점은 비록 주정부가 의원들에게 정부 헌법 제도에 대한 충성 선서를 요구하는 것이 일리는 있을지 모르나 분명한 것은 그 선서가 주정부
또는 국가 정책에 대한 견해를 피력하고 토론할 의원의 자격에 제한을 가할 수 있는 마땅한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대의제 정치 체제에서 수정헌법 1조의 명백한 기능은 의원들이 정책 문제에 대한 의견 발표를 하는 것을 가장 크게 자유 반경으로 허용한다는 점이다.
수정헌법 1조가 지켜내고자 하는 핵심은 뉴욕타임즈 판례 판결이유에서
설명하고 있는 바대로 “공공 정책에 대한 토론은 무제한적이고, 활발하고, 완전히 열려 있어야 한다”[152]는
점이다.[153] 본드의 발언들은 헌법상 보호 영역의 바깥에 해당된다고 하는 주장에 대해서는
뉴욕타임즈 케이스에서 확립된 법원칙이 해결해 준다고 판단한다. 언론 자유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숨쉴 공간[154]이
필요하므로 잘못된 발언도 마땅히 보호되어야만 하는 것처럼 공공 정책을 비판하고 밑받침하는 발언은 마찬가지로 보호되어야 마땅하다.
주정부는 국가 운영에 관한 자유 토론을 장려하는 법정책은 단지 국민이 정부를 비판하는 경우에 한해서 적용되어야 할 것이기 때문에 뉴욕타임즈
케이스의 법원칙이 의원의 발언에까지 연장되어야 할 것이 아니라고 반론을 펼쳤다. 하지만 뉴욕타임즈 케이스나 또는 다른 판례와 구별될 마땅한 이유가 존재한다고
보이지 않는다.
정부 비판에 대해서 의원보다 국민을 더 크게 보호한다고 해서 공공 정책의 완전 토론에 대한 일반국민의 관심이 더 기대된다고 보기 힘들다. 의원들은 논쟁의 대상이 될만한 정치적
문제들에 자신의 입장을 취할 의무를 지고 있는데 이로써 지역구 유권자들은 의원들로부터 완전하게 정보를 제공받을 수 있는 것이고 또 의원들이 의원직을
잘 수행할 자격이 있는지를 판단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이다. 또한 의원들은 자신들을 대표자로 선출한 사람들로부터 국가적 토론사항에
대해 의견을 위임받을 수도 있는 것이다.
따라서 주정부가 본드 당선자에게 그의 발언을 문제삼아 의원 자격을 박탈하려는 것은 수정헌법 1조에서
보호하는 언론 자유의 개인적 기본권을 침해했다고 판시한다.
12. 공적 관심사에 대한 토론의 자유와 공직자에 대한 비판의 자유-뉴욕타임스[155] 케이스
사실 개요
뉴욕타임스 대 설리반 사건은 1960년 3월 29일 미국개신교지도자협의회가 인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법정투쟁 자금을 마련하기 한 모금운동의 일환으로 뉴욕타임스 신문 사설 “Heed Their Rising Voices 그들이 외치는 목소리에 주목하라” 제목의 기사를 인용하며 뉴욕타임스 신문에 전면광고를 게재한 결과 일어난 명예훼손 소송에 대한 판결이다. 뉴욕타임스에 실린 광고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평화적인 대규모 시위 운동이 날로 늘어나고 있는 모습은 남부 지역에서 새로운 현상이고, 나름의 이유가 있다. …의회는 그들이 외치는 목소리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그들의 요구는 마땅하기 때문이다.”- 1960년 3월 19일 토요일 뉴욕타임스 사설-
그들이 외치는 목소리에 주의를 기울이라
이제 전세계가 다 알다시피, 수많은 남부지역의 흑인 학생들이 대규모의 비폭력 시위 운동을 벌이고 있다. 미국의 헌법과 수정헌법에서 보호하고 있는 인간 존엄성을 누리며 살아갈 권리를 재확인하려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이다. …
앨라배마주 몽고베리에서 학생들이 앨라배마주 의사당 계단에서 “나의 조국이여, 영원하라”의 노래를 부른 후 학생 지도자들은 학교에서 제적되었으며 소총과 최루탄으로 무장한 경찰을 실은 장갑차가 앨라배마 주립대학 캠퍼스를 에워쌌다. 전체 학생회가 등록하기를 거부하며 주당국에 항의하는 도중, 그들을 굶주리어 그만 포기하게 만들 의도에서 학생 식당은 자물쇠로 채워졌다. … 계속하여 남부의 무법자들은 킹 목사의 평화적인 항의집회에 대해 협박과 폭력으로 응수하고 있다. 그들은 킹 목사의 집에다 폭탄을 던져 그의 아내와 자녀를 거의 죽일 뻔했다. 그들은 킹 목사 사람에게 폭력을 행사했다. 그들은 킹 목사를 “속도 위반”, “부랑죄” 또 이와 유사한 “형법 위반”을 이유로 일곱 차례나 체포했다. 이제 그들은 킹 목사를 징역 십 년에 처할 수도 있는 “위증”죄로 기소했다. … 의로운 마음씨[156]를 가진 미국인들은 학생들의 창의적인 대담성과 루터킹 목사의 차분한 지도력을 칭찬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와 같은 내용의 뉴욕타임스 신문에 실린 유료 광고(광고료 $4,800)에 대해서 앨라배마주 몽고메리 시의원으로서 경찰 업무를 관장한 설리반 Sullivan이 경찰에 대한 허위 기술이 포함되어 자신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주장하고, 광고주와 광고의 정확성 여부를 확인하지 않은 언론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이 10개의 문단으로 이루어진 광고문안에는 경찰관 이름을 누구도 특정되지 않았으나 이 중에서 3번째와 6번째 문단에 “경찰 police”이라고 언급된 문언-“소총과 최루탄으로 무장한 경찰을 실은 장갑차”-으로 인해서 자신의 명예가 훼손당했다고 주장한 것이다. 설리반은 경찰이 캠퍼스를 에워싸고 식당을 자물쇠로 채움으로써 학생들을 굶어 죽게 하려 하였다는 내용은 그러한 행동이 경찰이 자행했고 따라서 경찰에게 책임이 있다는 의미를 전달하고 또 의견광고문 문단중에 들어 있는 ‘체포 They have arrested’는 경찰의 임무이므로 ‘그들은 They’이라는 지시어는 ‘경찰’을 지칭하고 따라서 그 문단의 의미는 체포를 집행하는 경찰을 책임지고 있는 자신을 비난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해당언론사에게 기사 정정을 요구하였다. 이후 설리반은 뉴욕타임스와 광고주 중 4명의 목사를 상대로 명예훼손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피고들은 광고문안 중에 부정확한 사실이 포함되었다는 것을 인정했다. 식당을 자물쇠로 채웠다는 표현은 사실과 달랐지만 ‘전체적으로 거의 사실인 것 substantially correct’으로 밝혀졌다. 주법에 따르면 언론사라도 사실 보도에 잘못이 들어난 경우 명예훼손죄의 책임[157]을 지게 되어 있었다. 이에 따라서 지방법원의 배심원재판의 결과는 뉴욕타임스에게 50만 달러의 손해배상금을 평결했다.[158] 이에 대해 뉴욕타임스는 연방대법원에까지 상고하였다.
법률 쟁점
본안 사건의 쟁점으로 들어가기 전 먼저 절차적인 쟁점에서 문제가 된 두 가지가 있었는데 그 하나는 사인간의 문제인 명예훼손 사건이 헌법상 보호받는 언론 자유의 기본권에 대한 헌법 재판의 대상이 되는가의 여부이고, 두 번째는 유료 “상업” 광고도 명예훼손적인 허위 사실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헌법상의 보호로부터 배제될 수 있느냐의 여부이었다. 이 사건은 사인간의 민사소송이기 때문에 수정헌법14조가 적용되지 않는다는 반론에 대해서 대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공법과 사법의 판단의 기준은 주의 권한이 적용된 법의 형식에 구애받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법이 행사되었는지에 따라서 결정될 문제라고 판단했다.” 반역, 모독, 불법행위 선동, 평온 침해, 외설, 변호사 사칭의 사건에서 연방대법원은 표현의 자유 문제를 다루고 그러한 행동을 금지시켰는데 명예훼손 또한 헌법상의 표현의 자유권의 대상이 되고 따라서 연방대법원의 권한에 들기 때문에 소적격성은 문제가 되기 않는다고 판단했다. 또 이 전면 광고에는 신문 사설이 들어있고, 또한 일반대중에 의해 형성된 의견, 제기된 불만, 권력 남용에 대한 항의, 취지와 목표가 공익과 공적인 관심사인 운동 단체의 재정지원을 구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단순한 상업광고도 아니었다고 보고 따라서 유료 여부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헌법 재판의 대상이 되는 것은 분명하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에서 법리 판단에서 주요 쟁점은 공직자의 공무 수행에 대한 비판에 대해서 주법상의 명예훼손 위반에 될 때 이것이 수정헌법 1조와 14조에서 보장하는 언론 자유의 기본권을 침해하게 되는지 여부이었다. ‘간주 명예훼손 libelous per se’[159]에 해당될 경우 피고인이 표명한 발언과 의견에 대해서 완전한 진실 truth이라는 것을 입증하지 못하면 손해 배상 책임을 지게 되어 있는 주명예훼손법이 연방헌법상 보장되는 기본권 보호 규정에 합치되느냐 여부이었다. 대법원은 판결문애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 사건은 공직자가 자신의 공무 수행에 관한 비판에 대해서 제기한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 소송에서 손해배상을 규정하고 있는 주의 권한을 언론과 출판 자유의 연방헌법 보호 규정에 의해 제한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헌법 판단을 구한 사건으로 이는 역사상 처음이다.”
법원 판단
연방대법원은 앨라배마 주대법원의 판결을 파기 환송하는 결정을 내렸다. 연방대법원은 공인의 공적 행위에 관한 보도에 대하여 손해배상책임을 묻기 위해서는 헌법상 보호되는 언론 자유의 원칙에 의거하여 해당 보도가 “실제적인 악의”[160]를 가졌거나 “허위라는 사실을 알았을 경우” 또는 “사실 여부 확인을 무모할 정도로 무시”한 채 보도를 감행했다는 사실까지를 피해자가 “명백하게 입증”[161]해 내는 경우에 한다고 판시했다. 공무원이 허위 보도임을 입증하였다고 해서 손해배상소송에서 승소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판결한 것이다. 이로써 언론사는 수정헌법 1조의 언론 자유의 기본권에 의하여 명예훼손으로부터도 보호받는다는 선례를 만들었다.
연방대법원은 이 사건과 같은 [공인에 대해서 그리고 공공 관심사에 대한 언론의 비판을 가지고서 비판 대상의 해당공무원이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고 한다면] 이런 명예훼손 소송이 허용된다면 향후 정부 공무원을 향한 비판들을-설령 그것이 정당한 비판일지라도-막는 “위축 효과(겁주기 효과) chilling effect”를 가져올 것이라고 말했다.[162] 연방대법원은 언론사가 자기 검열이 하게 되면 결국 침묵을 낳게 만들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163] “공적 비판의 목소리를 전달하려는 사람들에게 공포와 두려움의 장막을 둘러 씌우는 것은 언론 자유가 살아 남을 수 없는 환경이 될 것이다.”[164]
연방대법원은 공직자와 공적인 일에 대해서 자신들의 의견을 있는 그대로 말할 ‘숨쉴 공간’을 필요로 한다고 판결했다.[165] “자유 토론에 있어서는 실수를 포함한 진술이 불가피하게 발생되는데 만약 표현의 자유가 살아 나갈 ‘숨쉴 공간 breathing space’을 필요로 한다면 그런 공간도 보호되어야 한다.”[166] “공적인 문제에 대한 토론은 무제한적이고, 활발하고, 광범위하게 열러 있어야 한다. 또한 그것은 정부와 공직자에 대해서 격렬하고, 신랄하며, 때로는 유쾌하지 못한 날카로운 공격을 포함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167] 표현의 자유에는 숨쉴 공간이 필요하게 되는데 이 공간도 보호되어야 할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언론 자유의 영역에서는 간혹 부정확성은 피할 수가 없기 때문에 공익을 견지하기 위해서 실수는 어느 정도까지 관용되어야 한다는 것을 대법원은 여러 앞선 판례들을 인용하며 헌법원칙을 천명했다.
판결 이유[168]
1964년 1월 6일 변론, 1964년 3월 9일 판결
“이 사건은 공직자가 자신의 공무 수행에 관한 비판에 대해서 제기한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 소송에서 손해배상을 규정하고 있는 주의 권한을 언론과 출판 자유의 연방헌법 보호 규정에 의해 제한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헌법 판단을 구한 사건으로 이는 역사상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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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직자는 예나 지금이나 공적 자산에 속한다. 토론을 없앨 수는 없으며 비판은 권리이자 의무이므로 토론을 억압해서는 아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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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국민의 의사에 응답하도록 또 적법한 수단을 통해서 정부의 교체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자유로운 정치적 토론의 기회를 제공하고 유지하는 것은 국가의 안전을 위해서도 꼭 필요한 기회이며 이것은 미국 헌법 체계에서 가장 기초가 되는 원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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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독립을 이룬 건국영웅들은 공적 논의는 정치적 의무이고 또 이것이 미국 국가 통치의 근본 원칙이라는 것을 믿었다. 모든 인간 조직은 종속되기 쉬운 위험성이 있다는 것을 건국영웅들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법질서는 질서를 위반하면 바로 처벌된다는 위협을 통해서만 확보될 수 없고, 생각과 희망과 상상력을 억제하는 것은 해로운 일이며, 공포는 탄압을 낳고, 탄압은 증오를 낳으며, 증오는 정부의 안정을 위협하며, 국가의 안전을 도모하는 길은 불만과 제시된 해결책에 대해 자유롭게 논의할 기회를 주는 것에 있으며, 나쁜 조언에는 좋은 조언으로 응수하는 것이 보다 적절한 대책이라는 것-이런 진리들을 건국영웅들은 터득하고 있었다. 공적 토론 과정에서 나타난 이성의 힘을 신뢰함으로써, 건국영웅들은 법에 의해 강요된 침묵-이건 가장 최악의 형태인 힘의 논리에 따른 것이다-을 경계했던 것이다. 건국영웅들은 간혹 다수결에 의한 독재가 나타남을 인지하고서 수정헌법을 제정하고 언론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보장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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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적 신조와 정치적 신념의 영역에서는 큰 견해차가 흔히 나타난다. 정치와 종교의 마당에서 한 사람의 신념체계가 반대편의 사람에게는 가장 터무니없게 보일 수도 있다. 법관들은 알다시피, 청구인은 자신의 견해를 남에게 설득시키기 위해서 때때로 과장을 하고, 교회나 정부의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을 비방하고, 심지어는 허위 진술을 하며 호소하기도 한다. 하지만 언론과 출판의 자유는, 과도함과 남용의 가능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민주주의 체제의 시민들이 깨어있는 의견과 올바른 행동을 나타내는 것에 필수적이라는 것을 미국 사람들은 역사를 통해서 확립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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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적인 문제에 대한 토론은 무제한적이고, 활발하고, 광범위하게 열러 있어야 한다. 또한 그것은 정부와 공직자에 대해서 격렬하고, 신랄하며, 때로는 유쾌하지 못한 날카로운 공격을 포함할 수 있다. 이 원칙을 충실하게 집행하는 것은 국가적 의무에 해당한다. 따라서 이러한 원칙에 반하는 것이라면 대법원은 받아들일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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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적 비판의 목소리를 전달하려는 사람들에게 공포와 두려움의 장막을 둘러 씌우는 것은 언론 자유가 살아 남을 수 없는 환경을 만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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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디슨이 말한 대로, 검열 권한은 정부에 대하여 국민에게 존재하는 것이지, 국민에 대하여 정부에 있는 것이 아니다. 만약 공직자의 행동에 대한 비판이 공무원에게 부여된 면책특권과 동등하게 취급 받지 못한다면, 공복인 공직자가 그들이 섬기는 국민보다 더 우월하다는 옳지 않은 생각을 가질 우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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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직자가 공무수행 중의 외연적 범위 안에서 이루어진 어떠한 언사도 절대적으로 면책된다고 하는 면책특권이 인정되었다. 그렇다면 일반시민도 고위공직자와 똑같은 종류의 면책을 가진다고 볼 수 있고 따라서 공직자를 비판할 절대적 자유를 가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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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공직자의 정치적 행동을 부정확하게 보도한 언론 기사에 대해서 손해배상 책임을 묻는 것은 ‘백성들은 관리를 비판할 수 없다’는 그런 이미 폐기된 옛날 이론을 끄집어내는 것과 같다. 이 사건에서 공익이 개인의 사적 이익에 비해서 보다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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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국민은 자신의 생각을 말할 수 있으며, 모든 신문은 공공의 관심사에 관한 문제에 대해 의견을 피력할 수 있고, 발표된 말이나 글이 정부를 맡고 있는 공직자들이 생각하기에 어리석거나, 불공정하거나, 거짓이거나, 악의가 있다고 해서 말을 못하게 하거나 또는 출판을 금지하게 할 수 없다-이것이 바로 미국의 헌법 이론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를 통틀어 국민을 위한 일자리를 맡은 공직자들은 자신의 공무 수행에 대한 의견이 나타나고 또 비판을 받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한다. 그러한 비판에 대해 공직자가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으로 소송을 걸고서 법원을 통해 그러한 비판을 막을 수도 없을 것이고 저지할 수도 없을 것이다.”
13. 미국 대통령 선거 개표 소송-법과 정치의 경계선은?
13.1. 사실 개요
2000년 11월 7일 실시된 미국대통령선거에서 개표 결과는 공화당의 부시 후보와 민주당의 고어 후보 사이에 손에 땀을 쥐는 근소한 차이로 어느 누구도 승자인지를 내다보기 어려운 상황으로 전개되고 있었다. 2000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고어 후보가 전체 투표자로부터 받은 유효투표수는 부시 후보보다 54만여 표가 더 많았다(지지율 48.4% 대 47.9%). 최종적인 개표 결과가 말해주듯 마지막 순간까지 고어 후보가 선거인단 수에서도 267대 246으로 앞서가고 있었다. 미국 대통령 선출법상 50개주와 1자치특별구의 전체 538 선거인단의 단순과반수(absolute majority)인 270표만 넘으면 대통령에 당선된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에 선거인단 25표가 걸려 있는 플로리다주의 개표 상황에서 문제가 발생되었다. 플로리다주의 개표만을 남겨 놓은 상황에서 플로리다 선거인단 25표를 부시 후보가 확보하게 되면 선거인단의 단순과반수를 넘어 271표로 고어후보를 역전할 수 있게 되었다. 미국 대통령 선출법상 각주에서 승리한 후보가 각주의 선거인단 표를 모두 차지하게 되어 있다 (승자독식의 원칙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플로리다 주에서 부시 후보가 1표라도 이긴다면 부시가 대통령에 당선되는 결과를 가져온다.
투표일 다음날 공개된 플로리다 주의 첫 번째 개표결과는 부시 후보 2,909,135 표, 고어 후보 2,907,351 표 표차는 1,784 표에 불과하였다. 표차가 0.5%이내였으므로 주선거법상 자동적인 기계 재검표 automatic recount 대상이었고, 11월 10일 전체 18개군 county 한 개 군 county을 남겨 두고서 재검표 결과는 327표차로 줄어들었다. 주선거법상 수검표를 허용하고 있었던 바 이에 고어 후보는 전통적으로 민주당 지지세력이 강한 4개 군에만 걸쳐 수검표 manual recount를 요청하였다. 플로리다 주선거법상 선거일 7일 이내에 개표결과가 주국무장관에게 보고되어야만 했다. 플로리다 순회법원이 7일 이내 개표결과 공시 조항이 강제조항 mandatory이라고 선언한 가운데 선거법상 11월14일 오후 5시까지 개표결과가 이루어져야 했다. 수동재검표가 이루어진 4개 군 중 한 개 군이 14일 오후 5시까지 개표결과를 보고하고 나머지 3개군이 아직도 수동재검표가 이루어져 있었다. 하지만 주국무장관 (2003년-2007년 공화당 하원의원을 역임하였다)은 이 데드라인을 넘기자 다음날 오후2시까지 연장 접수에 대한 조건을 명시해 놓고 전체 67개 군의 개표결과를 받은 것으로 공표하였다. 4개 군이 국무장관이 제시한 요건대로 기한 연장 사유서를 제출하였지만 주국무장관은 기한연장 요청 사유를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말하고, 11월 18일 부시 후보의 승리(537표차[169])를 공포하였다. 이같이 최종 개표 결과 final determination를 두고 연방대법원까지 대통령 당선자 확정에 대한 소송이 일어나게 되었다.
주국무장관이 기한연장을 거부하자, 이에 대해11월 16일 고어후보는 긴급 심리를 플로리다 주법원에 요청했다. 플로리다 주법원은 주국무장관이 재량권 행사를 남용하지 않았다[170]고 고어 후보의 요청을 기각했다. 고어 후보는 즉각 항소하였고 주대법원에 넘겨졌다. 플로리다 주대법원은 국무장관에게 11월 26일까지 기한연장과 수검표 결과를 반영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에 대해 부시 후보는 연방대법원에 상고하였다. 연방대법원은 12월1일 구두변론을 열고 12월4일 전원일치의견으로 플로리다 주대법원의 결정을 파기환송하는 판결을 내렸다.[171]
플로리다 주대법원에 대선에 관련된 여러 건의 소송이 진행 중에 있었다. 12월 8일 플로리다 주대법원은 고어 후보의 플로리다 전체의 수동재검표 요청을 4대3 다수의견으로 받아들였다.[172] 이에 대해 부시 후보는 연방대법원에 신속하게 항고하였다. 대법원은 12월11일 구두변론을 열고 신속하게 그 다음날 12일 5대4의 다수의견으로 플로리다 주의 재검표를 중지시키는 명령을 내렸다. 12월 12일은 연방법률에 따라 선거인단의 개표결과를 보고해야 할 법정기한이다.[173] 이로써 대선 선거일 후 35일이 지났어도 대통령 당선자를 가려내지 못한 분쟁은 종식되게 되는데 그것은 대법원 판결을 받아들이고 판결 다음날인 12월13일 대선 패배를 선언한 고어 후보의 정치적 결단에 따른 것이었다.
13.2 법적 쟁점과 판결 이유
대법원에서의 법적 쟁점은 개표시한을 연장시킨 주대법원의 결정이 헌법에서 정한 대통령 선출 방법 조항에 위배되는지 여부 그리고 각 개표소마다 수동재검표에 대한 통일적인 판정기준이 없는 standardless manual recounts 상태에서 주전체의 재검표를 하는 경우 수정헌법 제14조의 평등 원칙 Equal Protection 과 적법절차 Due Process 의 헌법상 원칙을 위반하는지 여부이었다.
연방대법원은 5대4의 가까스로 다수의견으로 플로리다 주대법원의 결정이 위헌임을 확인하였다. 하지만 연방대법원의 재검표 중단을 명한 대법원의 판결은 가까스로 5대4의 결정이 보여주듯 법정의견의 법리가 완벽한 것은 아니었다. 판결이유에서“상황을 신속히 해결하려는 의도가 평등보호 원칙을 무시하는 구실로 작용해서는 안된다”[174]고 말하고 있으나, 대통령을 결정해 내지 못함으로 인해서 오는 정치적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서 신속하게 개입을 할 수 밖에 없었던 대법원의 원치 않은 의도를 숨길 방도는 없었을 것이다. 이 판결의 법정의견에서 그것을 알 수 있다. “대법관들은 사법부 판결에는 결정적인 한계가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고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고 또 대통령 선출에 대해서는 입법부를 통한 국민에게 그리고 정치권에 위임한 헌법의 의도를 따르는 것에 막아 설 대법관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분쟁 당사자들이 법원 소송을 통할 경우에는 연방대법원은 사법부가 해결을 떠맡게 된 연방과 헌법 관련 사안들을 해결해야 할 원하지 않은 책임을 지게 된다.”[175]
법정기한인 12월12일 까지 재검표를 끝낼 수도 없을 것이고 또 그리하여 혼란만 가중시킬 구제수단은 타당하지 않다[176]는 이유로 재검표를 중단시킨 대법원의 판결이유에 대해서 개표 기한을 다음해 1월4일까지 연장했던 1960년 대선의 사례도 있었음을 지적하며 재검표를 허용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소수의견의 반론이 강력했다. 다음과 같은 소수반대의견을 참조하라.
13.3. 법원에 대한 국민의 신뢰감이 중요한 이유
“부시 후보가 플로리다주 선거 절차에 관하여 연방법을 들이대고 공격한 배경에는 만약 재검표가 계속될 경우 중요한 결정을 내리게 될 주법관들의 공정성과 능력에 대한 무언의 신뢰감의 결여가 자리잡고 있다. 하지만 그 같은 견해는 전적으로 고려할 만한 가치가 없다. 다수의견이 그 같은 입장을 손들어 준 것은 이 나라 전체 법관들의 일에 대해 매우 냉소적으로 평가하는 시각에 더욱 힘을 실어주게 될 것이다. 사법 제도를 집행하는 사람들에게 갖는 신뢰감이 바로 법의 지배의 진정한 척추에 해당한다. 오늘의 판결로 인해서 입게 될 바로 그 신뢰감에 대한 상처는 오랜 시간이 흘러서야 아물어질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오늘의 결정으로 인해서 올해 대통령 선거에서의 승자가 누구인지를 분명하고 확실하게 알 수 없게 되었을지는 모르지만, 패자가 누구인지는 명백하다. 패자는 ‘법의 지배 rule of law’의 공정한 수호자로서의 재판관에 갖고 있는 국민의 신뢰감이다.”[177]
다수의견 또한 법정의견이 법리의 옹색함이 존재한다는 한계를 인식하고서 이 판결이 다른 사건에 원용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이 판결은 이번 사건에만 적용된다 Our consideration is limited to the present circumstances”는 대법원 판결의 한계를 미리 판결문에다 밝혀 두고 있다. 이 판결을 두고 식자들마다 의견이 서로 엇갈리는 그런 종류의 결정이었음은 부정하기 힘들고, 실제로 5명의 다수의견에 섰던 오코너 대법관은 은퇴 후에 "연방대법원이 플로리다 재검표 사건 관여했어야 했는지는 의문이 든다"고 말했을 정도로 이 판결은 대법원이 정치 영역에 개입하였다는 인식을 준 흠결있는 판결인 것으로 보인다. 또한 연방대법원의 판결이 확정판결이 아니고 “파기환송 the case is remanded for further proceedings not inconsistent with this opinion”이었으므로 법기술적으로는 고어후보가 다시 한번 법정소송을 이어갈 수 있는 여지가 남아 있었다. 하지만 고어후보는 대법원 판결에 즉각 깨끗하게 승복하고 대선 패배 연설을 하였다. 미국 같은 판례법 국가에서는 선거일 투표가 끝나고 개표가 진행되는 도중 승패의 우열이 거의 가려지게 되면 패자는 승자에게 전화를 걸어 축하를 건네고 난 후 자기 지지자 진영을 향해서 선거 패배 연설을 하게 된다. 패자의 패배 연설이 있고 나서 승자는 선거 승리 연설을 하게 되는데 정치세계에서는 패자가 있기에 승자가 존재한다는 역동적인 정권 창출의 제도와 역사를 겸허하게 인정하는 이들의 정치 관행을 주목하여야 할 것이다.
13.4. 사법부 판결이 최고 최종적인 권위를 갖는다-고어 후보의 대선 패배 연설
고어 후보가 전체 투표자로부터 받은 유효투표수는 부시 후보보다 54만여 표가 더 많았다는 사실과 그리고 미국의 복잡다기한 선거법이 대통령 당선자를 즉시 가려내기 힘들게 만들었다고 볼 수 있는 이러한 어려운 정치적 법적 상황에서 대법원의 결정을 최종적인 권위를 가진 것으로 받아들이고 깨끗이 승복한 고어 후보의 정치적 결단을 높이 사야 할 것이다. 이 사건은 미국은 사법부가 입법부와 행정부에 대해 보다 우위에 서서 헌법상 최종적인 권위를 갖고 있음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증표라고 말할 수 있다. 이렇게 위기의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은 결국 사법부가 최종적인 헌법의 수호자라는 위치를 역사적으로 확보해 왔기 때문에 가능하다. 어떤 측면에서는 법정의견보다 고어 후보의 대선패배선언 연설(2000년 12월13일)이 보다 의미가 있을지도 모른다. 고어후보의 패배선언 연설[178]을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저는 조금 전 조지 부시 후보와 전화 통화를 하고 그를 제43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 것을 축하하였습니다.
당선 축하를 다시 철회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나는 가능한 빠른 시간에 그를 만나서 선거운동으로 인한 분열과 이제 막
끝난 대결로 입은 상처를 치유하자고 제의했습니다.
약 150년 전, 스티븐 더글러스
상원의원은 대통령선거전에서 패배하자 경쟁자였던 링컨대통령에게 즉시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파적 감정보다 애국심이 우선입니다. 저는 대통령을 돕겠습니다. 신의
가호를 빕니다.” 네, 저도 똑같은 심정으로
부시 대통령 당선인에게 이제 당파적 싸움 partisan rancor의
응어리를 제쳐놓고, 이 나라를 이끌어갈 그에게 신의 축복이 있기를 바란다고 전합니다. 두 후보 모두 이렇게 길고 험한 길을
미처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물론
두 후보 모두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일은 벌어졌고, 이제
끝나고 해결되었습니다. 소중한 민주주의의 제도를 통해서 해결되고 말았습니다. 유명한 로스쿨의 도서관에 “사람이 아니라
신과 법의 아래서 Not under man but under God and law”[179]라는
격언이 새겨져 있습니다. 그것이
미국의 자유의 확고한 원칙이고, 민주주의 자유권의 원천입니다. 저는 지난 5주간 동안 일어난
복잡한 쟁점들에 대한 미국법원의 심리 deliberations에서
요청된 그 격언을 저 또한 저의 법정 소송 내내 지침으로 삼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이제 연방대법원은 판결을 내렸습니다. 저는
이 판결에 대해서 분명히 동의하지 않지만, 판결을 받아들인다고 확실하게 말합니다. 저는 다음주 월요일 선거인단의 인준을 받게 될 결과가 종국적 효력 finality을 갖는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그래서 오늘
밤, 저는 우리 국민의 단결과 민주주의 힘을 위해서, 선거
패배를 인정합니다 I offer my concession. 저는
또 새 대통령 당선인을 존중하고, 또 그가 미국 독립선언문에서 명시하고 또 미국 헌법이 확인하고 보호하는
위대한 비전을 실현함에 있어서 미국인들을 모두 함께 단결시키는 것을 돕는데 가능한 모든 것을 다할 책임을 받아들이고 그 책임을 무조건 이행하겠습니다. … 이번 선거는 매우 예외적인 상황의
선거 extraordinary election 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측할 수 없는 신의 뜻에 따라서, 이렇게 뒤늦게 해결된 난국은 우리에게 새로운 공통분모를 제시해 주었는데 그것은 결과를 알 수 없는 백중세로
인해 우리들이 공통의 역사와 공동의 운명을 지닌 하나의 국민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준 것입니다. 실제로 역사에서는 대중의 의도에 반해서 뜨겁게 논쟁을 벌이고, 치열하게 싸웠던 대결의 사례를 많이 볼 수 있습니다. 해결에 도달하기까지
몇 주일이나 걸렸던 논쟁도 있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승자와 패자는 모두 결과를 평화적으로 그리고 화해의
정신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우리도
그렇게 합시다. 저를 지지했던
많은 사람들이 실망하고 있다는 것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저 역시 실망이 큽니다. 그러나 우리는 실망을 애국심으로 극복해야 합니다.
세계 공동체의 다른 국가들에게 말한다면, 이번 법정소송을 미국의 취약성을
보여주는 징후로 받아들여서는 아니될 것입니다.
미국 민주주의의 힘은 난관을 극복해 내는 것을 통해서 가장 분명하게 나타납니다. 이번 선거의 이례적인 특성이 차기 대통령의 업무수행에 지장을 주지 않을까
우려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나는 그렇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믿습니다. 부시 대통령 당선인이 크고 많은 책무를 수행해 나가는데 있어서 그를 도와줄
태세가 되어 있는 국민을 가진 나라를 물려받을 것입니다. 저 자신 그가 무엇이든 시키는 대로 따르겠습니다. 저는 미국인 전체에게
특히 그동안 우리를 지지해 준 사람들에게 모두 차기 대통령 아래 함께 단결해줄 것을 요청합니다. 이것이
미국입니다. 이해관계가 크게 걸려 있는 때는 심각하게 싸우지만, 대결이
끝나면 대열을 정돈하고 단결하는 것입니다.
서로간의 해결하지 못한 차이점을 토론할 충분한 시간이 있겠지만, 지금은 우리를
단결시키는 것이 분열시키는 것보다 더 위대하다는 사실을 인식할 때입니다. 우리는 계속 대립되는 신념 opposing beliefs
을 가지고 있고 또 그것을 포기하지 않겠지만, 우리에게는 정당 political party에 대한 의무보다 더 높은 의무 higher duty가 있습니다. 이 나라는 미국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나라를 정당보다 우선시합니다. 우리는 새 대통령의 리더쉽 아래 단결할 것입니다. …누가 제게 어떤 유감이 없느냐고 물었습니다만 제가 가진 하나의 유감은 앞으로 4년 동안 미국인을 위해서 계속 남아 싸울 기회를 갖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특히 무거운 짐을 덜어주고 장벽이 치워지기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 특히
자기들의 목소리가 반영되지 못하고 있다고 느끼는 사람들을 위해서 말입니다. 저는 여러분의 목소리를 들었고 또 결코 잊지 않을 것입니다. … 전투는 오늘 밤으로 끝나게 되는데, 저는 패배로 인한 손실이
아무리 무겁다고 해도 패배는 승리와 마찬가지로 인격을 형성하고 또 영광을 가져올 수 있다고 말한 아버지의 조언을 다시 상기합니다. …이제 정치적 투쟁은 끝났습니다. 이제는 자유의 대의를 위하여 우리에게
리더십을 기대하고 있는 온 세계 사람들과 모든 미국인들의 공동 선 the common good을 위한 끊임없는 투쟁에 우리가 나서야 합니다. … ‘동해안에서 서해안까지
모두 형제애로 공동 선을 이룹시다.”[180]
국회
의원을 심판하다!
정통성 legitimation과 정당성 justification
저자 소개
추홍희
고려대학교 법과대학 졸업
고려대학교 경영대학원 졸업 (경영학석사)
뉴 사우스 웨일즈 대학교 로스쿨 졸업 (JD)
뉴 사우스 웨일즈 대학교 법학석사 졸업 (LLM)
COL 사법연수원 졸업 (GDLP)
KATUSA, LG 투자증권, Clyde & Co
호주법무법인 오스틴하워드 변호사
세계법제연구원 이사(현)
“인수합병 M&A업무 한국시장 도입에 관한 연구”(석사논문)
번역서: “The Politics of Happiness”
저서: “월 스트리트 변호사 이야기 A Story of Wall Street”
email: 21wallst@gmail.com
서지 정보
국회
의원을 심판하다!
정통성 legitimation과 정당성 justification
발행일 2015년 8월 15일 제1판제1쇄 발행
저자 추홍희
발행처 세계법제연구원
주소 경기 부천 원미구 부일로 205번길 46 (윌타운 601)
등록번호 제 387-2013-00005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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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가 23,500원
ISBN 9791195137923/03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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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홍희 2015
[2] "[D]ebate on public issues should be uninhibited, robust, and wide-open." New York Times v. Sullivan, 376 U.S. 254, at 270.
[5] “Bond could not in good faith take an oath to support the State and Federal Constitutions.” Bond v. Flyd 385 U.S. 116 (1966).
[7] 독일은 연방헌법재판소에 의하여 독일헌법 21조2항2문에 의하여 정당이 위헌으로 선언되면, 심판청구(연방헌법재판소법 43조)와 심판의 선고(46조) 사이에 그 정당이나 정당의 부분 조직에 소속되어 있던 의원은 연방의회의 의원직을 상실하고 비례대표후보명부상의 후순위자는 의원직승계기대권을 상실한다. 제 1문에 의하여 의원직을 상실한 의원이 지역구에서 선출된 경우에는 해당 지역구에서의 지역구의원의 선거가 4조2항에서 4항을 준용하여 다시 치뤄진다. 이 경우 1항에 의하여 의원직을 상실한 의원은 후보자로 출마할 수 없다. 1항에 의하여 의원직을 상실한 의원은 후보자로 출마할 수 없다. 1항에 의하여 의원직을 상실한 의원이 위헌으로 선언된 정당 또는 정당의 부분조직의 주 비례대표제명부에 의하여 선출된 경우에는 그 의원직은 승계되지 않는다. 그 밖의 사항에 대해서는 48조1항이 적용된다. 헌법재판소, “정당해산심판제도에 관한 연구” (2004), 267쪽.
[8] 의원의 지위가 정당의 “대리인 agent”으로서의 지위인가? 아니면 “전체 국민의 대표자 representatives of the entire people” 지위인지 여부는 법적으로 확실하게 단언하기 힘든 어려운 영역에 속한다. 이에 대해서 독일 기본법은 명시적으로 규정하지 않고 있고 다만 38조에서 “의원은 전 국민의 대표자이며 위임과 명령에 구속되지 않고, 오직 그의 양심에 따른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의원의 지위가 대리인인지 아니면 단순한 대리인이나 아니라 전체 국민의 대표자인지 또 아니면 별개의 제3의 지위에 있는지 문제에 대해서는 단정적으로 결론 내리기가 쉽지 않다. 독일연방헌법재판소는 전체 국민의 대표자로서가 아니라 정당의 대리인으로 파악한 결과 의원은 정당해산과 동시에 의원직을 상실한다고 판시한 것 같다. 트러스트 법적 전통과 문화가 존재하지 않은 대륙법 국가의 사고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비례대표제의 문제점은 다이시가 비판한 대로, 의원의 책임성이 먼저 전제되어야만 본래의 기능을 제대로 반영할 수 있을 것이다.
[9] 독일 기본법 38조1항의 규정: “독일연방의회의 의원은 보통, 직접, 자유, 평등, 비밀선거로 선출된다. 의원은 전 국민의 대표자이며 위임과 명령에 구속되지 않고, 오직 그의 양심에 따른다. Members of the German Bundestag shall be elected in general, direct, free, equal and secret elections. They shall be representatives of the whole people, not bound by orders or instructions, and responsible only to their conscience.”
[10] “When by a judgment of the Constitutional Court a political party's ideas are found to fall short of the prerequisites for participation in the formation of the popular political will, the mere dissolution of the party's organizational apparatus, which was meant to further these goals, cannot truly implement the court's judgment. Rather, it is the intent of the Court's sentence to exclude the ideas themselves from the process of the formation of the political will.” 영어 번역: Franz P, Unconstitutional and Outlawed Political Parties: A German-American Comparison, 5 B.C. Intl & Comp.L.Rev. 51(1982), http://lawdigitalcommons.bc.edu/iclr/vol5/iss1/3, at 58. 판결문 독일어 원문 at 73: “Die SRP ist somit verfassungswidrig im Sinne des Art. 21 II GG. Die gesetzlichen Folgen dieser Feststellung ergeben sich aus § 46 III BVerfGG. Die Partei war mithin aufzulösen. …… Ein stärkerer Verstoß gegen die demokratischen Grundsätze für die innere Ordnung einer Partei ist kaum denkbar, als wenn die Entscheidung über die Existenz einer politischen Partei überhaupt, die ihrer Bedeutung nach von einem möglichst großen Gremium getroffen werden müßte, in das freie Belieben einer autoritären Spitze aus wenigen Funktionären gestellt wird. Auch eine von dieser autoritären Spitze eingeholte Zustimmung der Parteimitglieder zu einer so verfügten Auflösung vermag die sen Mangel nicht zu beheben. Eine solche "Akklamation" ohne Diskussion ist keine demokratische Abstimmung. Die näheren Umstände der angeblichen Selbstauflösung der SRP bedürfen daher nicht der Klärung.”
[13] 코덴 Cobden (1804-1865)은 곡물법 Corn Laws을 폐지하는데 동의하기만 하면 토리당이나 휘그당을 가리지 않고 지지하였을 것이다. 오코넬도 아일랜드와의 합병법률을 폐지하는 데 동의하는 수상이라면 당적을 묻지 않고 하시라도 지지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오코넬은 좀더 특수한 입장에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오코넬은 영국의 정치에 상당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영국 내의 정치활동에도 매우 적극적이었다. 그는 벤담주의자 자유주의자였으며 한 때는 휘그당과 공조체제를 유지하기도 하였다.
[14] to represent the cause of anti-vaccination. 반종두법주의자들은 신기술에 대한 저항과 우려를 나타냈다. “프랑켄슈타인”의 소설 출간(1818년)이 유명해졌던 사례가 말해주듯이 급속한 변화의 시대에서 변화의 결과에 대한 저항과 우려 또한 적지 않았다.
[15] 밀이 활약하던 시기에 비례대표제는 소수대표제로 알려져 있었다. 명칭이 바뀐 것은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1870년의 소수대표제는 무지한 다수의 아우성에 식견을 가진 소수자의 가냘픈 속삭임이 쉽게 무시되는 현상을 타파한다는 취지로 소수 지식인들의 발언권을 보장해 주는 데 주된 목적이 있었다. 1914년의 소수대표제는 국민의 진정한 의사가 대변되어야만 한다는 취지에서 주로 논의되고 있다. 그러니까 과거에는 민주주의를 적절히 통제하기 위한 장치였으나 오늘날은 민주주의의 진정한 의미를 되살리는 최신의 방법으로 주장되고 있는 것이다.
[18] “If there be any among us who wish to dissolve this union, or to change its republican form, let them stand undisturbed, as monuments of the safety with which error of opinion may be tolerated where reason is left free to combat it."
[19] “incommensurability of value”, 가치의 통약불능성은 다양한 가치를 하나의 잣대로 평가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한다. 사람들은 같은 물건 같은 사건 같은 관계라고 해도 각자가 받아들이고 평가하는 방식이 다르다는 것을 의미한다.
[20] 축구 경기 시작할 때 양 진영을 결정할 때 동전던지기를 하는데 여기서 동전 자체는 아무런 내용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누구든지 동전던지기 등 제비뽑기 방식에는 동의를 할 것이다. 결과가 실망스러울지라도 그런 동의를 이끌어내는 절차를 모두가 의심없이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동전던지기가 정당하기 때문에 결과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다.
[21] 다양한 물건들을 갖춘 경쟁 시장에서의 소비자의 자유로운 선택에 따라 상품의 운명을 결정짓는다는 믿음이 자유시장질서체제라면 믿는다면 마찬가지로 다양한 가치를 가진 개인들 모두를 존중하고 자유로운 사상의 시장에서 자유로운 토론을 통해서 다수에 의해 결정되는 정치적 합의를 이루는 것은 한국에서도 가능하다. 굳이 한국의 정치 질서에서는 이질적인 것으로 치부되어야 할 한국적 특수성이 강조될 이유를 찾기란 힘들 것이다. 1990년 동독과 서독은 통일 조약을 맺고 독일 전체 국민의 자유로운 선거를 통해서 공산당일당독재체제를 거부하고 자유민주주의헌법 체제를 재확인했다. 어느 누가 강제력을 동원하지 않았어도 두 정치체제 중에서 독일의 전체 국민들은 자유로운 각자의 의사에 따라서 자유민주주의헌법 질서를 선택했다.
[22] 예컨대 낙태에 관한 문제같이, 가치를 계량할 수 있는 유일한 척도는 존재하지 않지만 가치 사이의 비교 형량은 가능하다는 것은 선스타인 Sunstein의 통약불능성의 개념에 따라서 헌법재판의 결정이 이루어진 이후에도 전체적인 동의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독일의 경우 해산 명령 후 대체 정당의 설립으로 헌법재판소의 판결의 실효성 enforcement이 담보되지 못했다.
[25] “good people do not need laws to tell them to act responsibly, while bad people will find a way around the laws”; “Oh judge! Your damn laws! The good people don't need them, and the bad people don't obey them.” Troester, Rosalie Riegle (1993). Voices from the Catholic Worker. Temple University Press. p. 114.
[26] 롤스도 의견불일치의 존재가 인간 사회의 역사적 현실적인 조건이라고 파악했다. 민주주의 사고, 정치적 공통적 합의의 세계, john rawls the idea of democracy, the domain of the political and overlapping consensus.
[27] disagreements about justice, rights and the common good, Waldron, J. Law and Disagreement, Oxford University Press, 1999.
[28] 드워킨의 “평등하게 존중받고 배려받을 권리는 원칙의 문제이다. A right to equal respect and concern, is an argument of principle.” John Rawls’s idea of justice as fairness. Rawls raises two principles of justice which he believes would be chosen in the original position: First: each person is to have an equal right to the most extensive basic liberty compatible with a similar liberty for others. Second: social and economic inequalities are to be arranged so that they are both (a) reasonably expected to be to everyone’s advantage, and (b) attached to positions and offices open to all. A Theory of Justice, 1971, at 60.
[30]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영미판례법 국가의 사람들과는 다르게 회의에서 다른 의견을 말하면 “여기 싸우려 왔냐?”고 힐난하는 경우가 종종 나타난다. 의견이 다르지 않다면 왜 회의에 참석했단 말인가!)
[31] “consensus exclude the necessity of politics”, Waldron, J. The Dignity of Legislation.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9. Waldron, J. Normative (or Ethical) Positivism. In: Coleman, Jules (Ed.). Hart’s Postscript: Essays on the Postscript to The Concept of Law, Oxford University Press, 2001.
[32] 우리나라 근대사를 예로 들어보면 쉽게 이해가 될 것이다. 쿠데타로 집권한 군사정권이 아무리 실질적으로 정의 실현을 내세운다 해도 국민들에게 지지를 받지 못한 이유는 쿠데타 정부는 정권의 정통성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정권이라는 단어를 법으로 환치하면 법의 ‘정당성 justification’과 법의 ‘정통성 legitimation’에 대한 개념이 보다 쉽게 이해될 것이다. 일당독재 북한체제에서 정권의 정통성은 과거 조선 왕조체제처럼 왕조혈통을 지녔느냐에 달려 있는 반면 자유민주국가체제 대한민국에서 정권의 권위는 선거를 통해 당선되었느냐에 달려 있다.
[33] ‘선량한 관리자 trustee’는 법적 의제 legal fiction로써 ‘수탁자’로 주로 번역되지만 영미법상의 트러스티 trustee 법개념은 독일법의 ‘선량한 관리자’ 개념보다 법적 의무와 지위가 보다 높고 강하며, 사람 사이의 의무관계를 뛰어넘을 만큼 고도의 도덕적 의무와 법적 의무를 동반하는 신탁의 의미를 갖는다.
[34] 독일과 미국은 여러 면에서 큰 차이를 나타낸다. 경제적인 측면에서 비교해 보면 미국은 1930년대 대공황을 경험했고, 독일은 살인적인 초인플레이션의 경제 파국을 경험했다. 대공황이 미국인들의 공황 공포 심리를 만들어 낸 반면 초인플레이션이 독일인들의 경제공포 심리를 만들어냈다고 한다. 국가 경제가 무너진 현상은 같아도 디플레이션과 인플레이션이라는 반대적인 경제 원인이었다는 점에서 미국인과 독일인의 경제 공포 심리는 서로 다르다고 한다.
[35] “독일연방의회 의원은 보통, 직접, 자유, 평등, 비밀선거로 선출된다. 의원은 전 국민의 대표자이며, 명령과 지시에 구속되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양심에 책임을 진다. Members of the German Bundestag shall be elected in general, direct, free, equal and secret elections. They shall be representatives of the whole people, not bound by orders or instructions, and responsible only to their conscience.”
[36] 우리나라에서 의원의 전체 국민의 대표자로서 의원 지위에 대한 개념이 강하지 않는 이유는 대의제 민주주의 정치를 실현한 영미국만큼 오랜 의회 민주주의 전통이 존재하지 않았고 또 트러스트 trust 법원칙도 존재하지 않았다는 점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러한 요인은 국가 전체 이익에 봉사하는 전체 국민의 대표자라는 개념보다 선거구민의 대리인으로 이해하는 개념이 보다 강한 이유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37] “Certainly, Gentlemen, it ought to be the happiness and glory of a Representative, to live in the strictest union, the closest correspondence, and the most unreserved communication with his constituents. Their wishes ought to have great weight with him; their opinion high respect; their business unremitted attention. It is his duty to sacrifice his repose, his pleasures, his satisfactions, to theirs; and, above all, ever, and in all cases, to prefer their interest to his own. But, his unbiassed opinion, his mature judgment, his enlightened conscience, he ought not to sacrifice to you; to any man, or to any set of men living. These he does not derive from your pleasure; no, nor from the Law and the Constitution. They are a trust from Providence, for the abuse of which he is deeply answerable. Your Representative owes you, not his industry only, but his judgment; and he betrays, instead of serving you, if he sacrifices it to your opinion.”
[38] “Parliament is not a Congress of Ambassadors from different and hostile interests; which interests each must maintain, as an Agent and Advocate, against other Agents and Advocates; but Parliament is a deliberative Assembly of one Nation, with one Interest, that of the whole; where, not local Purposes, not local Prejudices ought to guide, but the general Good, resulting from the general Reason of the whole. You choose a Member indeed; but when you have chosen him, he is not Member of Bristol, but he is a Member of Parliament.”, The Works of the Right Honourable Edmund Burke. 6 vols. London: Henry G. Bohn, 1854-56.
[39] 1945년 광복 이후 한반도를 두고 미소간에“신탁 통치 Trust”가 논해지고서 있을 때 한국인들은 해방 정국에서의 “신탁 Trust”에 법적 성격에 대해서 이해가 크게 부족했음을 나타냈다.
[40] 2001년 유럽의회 결의 참조. De Waal, “In search of a model for introduction of the trust into a civilian context”, Stellenbosch Law Rview vol 12 2001, at 71. 프랑스 경우 2007년도에야 도입됐다. 한국, 일본, 프랑스, 독일은 비교적 최근에야 영미법상의 Trust 법제를 도입하게 되었고, 아직까지는 금융 및 상업적인 영역에서의 부분적 제도 도입에 머물고 있다. 일부 부분적인 도입만으로 트러스트 법체계와 트러스트 법원칙들이 바로 근본적으로 정착되기 어려울 것이고 오랜 시간을 요구할 것이다.
[42] “My worthy Colleague says, his Will ought to be subservient to yours. If that be all, the thing is innocent. If Government were a matter of Will upon any side, yours, without question, ought to be superior. But Government and Legislation are matters of reason and judgement, and not of inclination; and, what sort of reason is that, in which the determination precedes the discussion; in which one sett of men deliberate, and another decide; and where those who form the conclusion are perhaps three hundred miles distant from those who hear the arguments?” 1775 Burke speech.
[43] "All government—indeed every human benefit and enjoyment, every virtue and every prudent act—is founded on compromise and barter.", Burke, Speech on Conciliation with America, 1775.
[44] “Our democracy has to become militant if it is to survive…” Manmheim, “Diagnosis of Our Time: Wartime Essays of a Sociologist”, at 7. 1942년 5월 20일, 강의, Institute of Education. ‘전투적 민주주의’ 개념과 전략을 처음으로 제시한 자료는 뢰벤슈타인의 1937년 논문이었다.
[46] 방어적 민주주의 wehrhafte Demokratie를 영어로 설명하는 판례를 인용하면 “The principle of a "democracy capable of defending itself".
[49] Loewenstein, K,“Militant Democracy and Fundamental Rights, I” The American Political Science Review, Vol. 31, No. 3(1937), 417-432; “Militant Democracy and Fundamental Rights, II”, The American Political Science Review, Vol. 31, No. 4(1937), 638-658.
[50]“ Fascism a World Movement. Fascism is no longer an isolated incident in the individual history of a few countries. It has developed into a universal movement which in its seemingly irresponsible surge is comparable to the rising of European liberalism against alsolutism after the French Revolution.” Loewenstein, at 417.
[51] 뢰벤슈타인은 논문에서 프랑스어 표현을 삽입했다. “Ote-toi de la, que je m’y mette” 이말의 영어 번역은 ‘Get out of the way, so I can take your place’으로 정치변혁이 권력자 사람만 바뀌는 것에 머무르는 것을 냉소적으로 비유하는 말이다.
[55] “Fascism is the true child of the age of technical wonders and of the emotional massage.” Loewenstein, at 423.
[57] Loewenstein, at 431. 뢰벤슈타인은 민주주의가 본질적인 취약점을 갖는 이유로써 민주주의는 타협을 통해서 이뤄지는데 이것은 위기시에는 무기력을 낳고, 또 민주주의는 적대세력도 허용하는데 이로써 적대세력의 비난과 공격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고, 또 적대세력은 언론자유를 통하여 자신들의 목표를 극대화하며, 또 민주주의는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적대적인 정당도 허용하고 있다는 것을 들었다. 뢰벤슈타인은 이러한 점들로 인해서 민주주의 체제는 본질적으로 내재적인 취약점을 갖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런 상황 인식에 따라서 뢰벤슈타인은 민주주의의 취약점을 극복할 수 있는 법적 조치들을 열거하였다.
[60] “gravest mistake of the democratic ideology, proportional representation”, Loewenstein, at 424. 뢰벤슈타인이 독일의 정당 비례대표제를 크게 비판한 점을 특기할 필요가 있다. 뢰벤슈타인은 파시즘을 막기 위한 방안으로써 입법부 의원특권 정당특권을 남용하는 것을 방지하는 방안(5)을 자세하게 거론하였다. 대의제 민주주의 원칙이 엄격히 지켜지는 미국 영국에서는 소수당이 난립하지 않지만 정당비례 대표제를 실시하고 있는 독일에서는 소수당이 난립한 문제점이 있다.
[62] Loewenstein, at 430-431. 정당의 역할과 활동 보장의 필요성이 인정하면서 다른 한편으론 정당 결사 단체를 금지하는 경우 이는 정치적 표현의 자유와의 충돌이 불가피하게 일어날 것이다. 이런 쟁점은 독일헌법재판소에서나 미국의 연방대법원에서의 헌법재판에서 핵심적으로 토의 분석되고 있다.
[67] 뢰벤슈타인의 ‘질서있는 권위주의 체제” 개념은 만하임이 주장했던 자유방임주의도 전체주의도 아닌 새로운 “제3의 길 The Third Way” (1951)과 맥을 같이한다.
[68] 독일 공무원에게 무슨 일이 있더라도 기본법의 의미에 따른 자유 민주적 기본질서를 수호할 것을 맹서하게 하고 적극적인 수호 의무를 부과하는 것은 ‘공무원이 헌법과 민주주의의 수호자 the civil service is the guarantor of the Constitution and democracy’라는 개념에 기초하고 있다. ‘민주주의 그 자체를 방어할 능력을 갖는 민주주의’전투적 민주주의 원칙의 기초를 이루고 있다.
[69] 최후의 헌법 수호자의 지위에 대한 미국연방대법원과 독일헌법재판소의 판결을 참조하라. “민주주의 그 자체를 방어할 능력을 갖는 민주주의” 전투적 민주주의 이론에서 공무원의 충성의무를 강조한다. 뢰벤슈타인은 제아무리 법률을 잘 정비해도 법을 집행하는 국가 공무원이 법을 지킬 의지가 없다면 법은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는 점을 옳게 지적했다. 뢰벤슈타인은 행정부관리의 자의적 권력 행사의 위험성이 크다는 점을 정확하게 인지하지 못한 것 같다.
[70]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서 민주주의에 도전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고 그 도전 세력에 대해 전쟁을 선포할 수 있는지 여부의 문제-이를 “민주주의의 역설 democratic paradox”이라고 부른다- 즉 민주주의는 누구나 자유롭게 정치적 의사 형성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것을 보장하는 제도인데 선거에 참여하는 것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정당의 강제 해산 조치가 과연 민주주의 원칙과 양립하느냐의 의문을 낳게 된다. 정권의 정치적 정당성은 국민 주권과 국민 자치 원칙에 따라 실시되는 선거를 통해서 획득되는데 국민의 정치 의사 형성을 막는 것 자체가 민주주의 원칙을 위반하게 된다는 생각을 말한다. 민주주의 체제란 국민 자치 원칙에 따라 누구라도 국민의 지지를 받으면 정권을 획득하는 것이고 또 국민의 정치 의사 형성 과정이 민주적인 방식에 의존해야 한다면 어떤 정당- 심지어는 반민주적인 체제를 옹호하는 정당까지라도 누구에게나 개방되어야 하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국민의 정치 의사를 형성하여 선거를 통해 (다수결 원칙에 따라) 잠재적인 정권을 획득하려는 하나의 정당인 이상 특정 정당을 배제하는 것은 민주주의 원칙을 부정하는 것은 아닌가의 의문을 말한다.
[72] 미국의 브랜든버그 케이스를 참조하라. “society must be open to all political ideas.” 1917년 아브라함 케이스에서 홈즈 대법관 반대의견 참조.
[73] Abrams v. United States 250 U.S. 616 (1919). 홈즈대법관 반대의견, “But when men have realized that time has upset many fighting faiths, they may come to believe even more than they believe the very foundations of their own conduct that the ultimate good desired is better reached by free trade in ideas -- that the best test of truth is the power of the thought to get itself accepted in the competition of the market, and that truth is the only ground upon which their wishes safely can be carried out. That, at any rate, is the theory of our Constitution. It is an experiment, as all life is an experiment.”
[74] 영미국의 판례법 국가의 헌법에는 정당 해산 제도를 별도로 마련해 두고 있지 않다. 소수파를 강제적으로 배제한다는 것은 미국의 토마스 제퍼슨 같은 미국의 건국영웅들이 잘 파악했다시피 정치적 소수파를 배제하는 것은 정권의 정통성이 의문시되는 반민주주의적 사고에 해당한다. 미국 헌법 제정 당시 정당 금지 제도를 주장하기 어려웠던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행정부의 자의적 행사의 위험성이 크기 때문에 정당 해산의 결정권을 행정부가 아니라 사법부에 맡겨 두고 된 것이다. 독재의 위험성이 거의 없는 사법부에 의한 사법적 판단에 따라 정당 해산의 문제를 판단하게 함으로써 엄격하고 신중한 이중적 절차를 마련해 놓은 것이다.
[75] 이 표현은 후쿠야마의 대담한 선언이었던 “역사의 종언”에 대비해서, Kagan R, "The Return of History and the End of Dreams", Vintage Books, 2009 책제목에서 가져온 표현이다.
[77] 후쿠야마, “the end point of mankind's ideological evolution and the universalization of Western liberal democracy as the final form of human government.”
[78] “Not to decide but to persuade”, 설득의 시기에는 합의를 도출하는 절차적 과정이 중요하게 여겨진다. 반대 의견에 대한 관용의 중요성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81] “Art. 21 Abs. 2 GG schütze eine Partei in ihrem Bestand und vor Behinderungen ihrer politischen Tätigkeit, solange das Bundesverfassungsgericht ihre Verfassungswidrigkeit nicht festgestellt habe.”, NPD 판결문,
[82] 그동안 한국에서 이런 측면의 연구는 질과 양에서 거의 황무지에 가깝다고 보여진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에는 2003년의 NPD 판결문에 대해서 자세한 소개마저 거의 되어 있지 않는 형편이다. 이러한 낯선 법 환경에서 이 책이 정당 해산 존재에 법적 타당성을 근본적으로 탐구하고 해답을 찾는데 작은 도움이 되기를 기대한다.
[83] 정당국가가 민주정치 대의정치 정당정치의 근본적 가치를 잘 구현할 수 있다고 해도 우리나라 같이 소선거구제도와 대통령제를 함께 결합한 대통령제 권력구조 형태에서는 소수지역정당에 머무는 제3의 소수당으로서는 정권교체를 이뤄내기가 쉽지 않다는 현실적인 결론을 독일의 정당 해산 심판 사례들에서도 파악된다.
[84] 독일연방헌법재판소의 판결문을 통해서 우리나라 문제를 비판적으로 분석할 수 있도록, 정확한 정보와 지식을 전달하고자 한다. 저자는 있는 그대로의 지식과 정보를 정확하게 전달하는 역할에 머물고 독자들을 어떤 정해진 결론으로 이끌려는 예단적 목적은 가지고 있지 않다.
[85] ‘엽관제도 spoils system’는 승자독식의 미국식 대통령제도의 전형적 폐해로 잘 알려져 있고 한국과 같은 전제적 대통령제도의 가장 큰 문제중의 하나로 부각되어 있다. 정당국가의 후원자 제도 patronage system문제하고 연결되는 개념이다. 또한 내부 부패로써 횡령과 배임의 문제 또한 정실주의 문화의 결과일 것이다.
[86] “Not to decide but to persuade”, 설득의 시기에는 합의를 도출하는 절차적 과정이 중요하게 여겨진다. 반대 의견에 대한 관용의 중요성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는 제러미 월드런의 법철학을 참조하라.
[93] BVerfGE 2, 1 at 39. 다른 정당도 SRP와 유사한 잘못이 있는데 유독 SRP만 차별한다는 항변 논거는, 예컨대 다른 음주운전자들도 많이 있는데 왜 자신만 특별히 처벌하는 것은 억울하다고 반박하는 예처럼, 법적으로 뛰어난 반론이 되지 못한다. 하지만 SRP같이 하나의 정당인 경우 현실적 정치적 과정에서 강력한 논리가 될 수 있다. 어떤 한 정당을 정권 획득의 과정에서 강제로 배제할 수 있다고 한다면 다른 어떤 정당 또한 배척할 수 있다는 현실 정치적 논리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다른 정당들도 나치당원을 가입시켰기 때문에 SRP정당만 차별하면 안된다”는 반론에 대해서 헌법재판소는 SRP정당은 나치당원을 가입시킨 것은 나치당의 이념을 유지하고 선전할 목적이었기 때문에 위헌정당이 된다고 판시했다.
[94] 자유주의 민주주의 국가 체제에서 정당의 가치와 그 평가는 헌법재판소의 법적 판결에 의해서가 아니라 선거를 통한 국민의 정치적 결정에 따르는 것이 보다 타당하다는 비판이 존재한다. 여기서 누가 최후의 심판자의 역할을 담당하는지에 대한 설명이 필요할 것이다. 판결문에 따르면, 정당 해산에 대한 남용의 위험성을 제거하고자 헌법재판소가 위헌성 여부를 판단하게 하고 또 위헌정당에 대한 사실확인에서부터 법리 판단까지 헌법재판소가 맡도록 해 놓은 것이다.
[97] 나치 일당독재 국가전체주의 정권을 경험한 뼈아픈 역사를 가진 독일과는 다른 정치 제도와 법문화를 가진 영국의 한 언론 주간지가 SRP 사건을 바라보는 기사를 참조해 보면 정당해산 심판이 민주주의 원칙에 어떻게 충돌하는지 그에 대한 관점을 생생히 파악할 수 있다. The Spectator, “Germany’s New Democracy” 1952.7.25. 기사 참조.
[99] 정당 해산과 동시에 의원직도 상실된다는 판결주문은 1956년 KPD 판결 주문과는 조금 약간 다르다. 왜냐면 당시 SRP는 의원을 보유한 반면 KPD는 정당 해산에 따라 의원직 상실 문제가 걸려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독일공산당은 1949년 총선에서 의석을 확보한 것을 제외하고 이후 한 번도 의원을 당선시키지 못했다.
[101] BVerfGE 2, 1 at 10. “Da die Vorschriften über die Besetzung der Gerichte nicht in erster Linie dem Interesse der Prozeßbeteiligten dienen, sondern dem rechtsstaatlichen Anliegen einer geordneten Rechtspflege schlechthin, ist die nicht vorschriftsmäßige Besetzung eines Gerichts immer ein wesentlicher Mangel des Verfahrens.”
[102] “[Political Parties] are also integral parts of our constitutional structure and our constitutionally political life.” 1 BVerfGE 208, 240-41 (1952).
[105] “Ob dieser Schluß berechtigt ist, muß im Einzelfall geprüft werden.” “Die gleichsam "abstrakte" Feststellung einer demokratischen Grundsätzen nicht entsprechenden inneren Ordnung würde für sich allein jedoch nicht genügen.” 정당이 자유 민주주의 체제를 거부할 때에라도 그 자체만으로는 위헌정당이 되지 않는다. 정당을 위헌정당으로 판단하기 위해서는 정당이 자유 민주주의 기본질서를 철폐하려는 시도가 구체적인 증거로 확인되어야 가능하다. BVerfGE 2, 1 at 13-14.
[106] BVerfGE 2, 1 at 13-14. “오로지 정당이 헌법에 구체화된 자유 민주주의 기본질서에서 가장 중요한 기본적인 가치들을 철폐하려고 기도하는 경우 eine Partei nur dann aus dem politischen Leben ausgeschaltet werden darf, wenn sie die obersten Grundsätze der freiheitlichen Demokratie ablehnt.”
[108] BVerfGE 2, 1 at 40. SRP의 당 내부질서와 운영은 나치당과 판박이로 판명되었다. “Diese Praxis folgt genau dem Verfahren in der NSDAP:” at 44.
[111] Franz P, Unconstitutional and Outlawed Political Parties: A German-American Comparison, 5 B.C. Intl & Comp.L.Rev. 51(1982), http://lawdigitalcommons.bc.edu/iclr/vol5/iss1/3, at 55-56.
[112] 독일어 표현은 “eine wertgebundene Ordnung.” 이 말은 가치중립적인 질서가 아니라 일당독재 체제에 반대되는 개념이라고 헌법재판소는 설명했다. “Dieser Grundordnung liegt letztlich nach der im Grundgesetz getroffenen verfassungspolitischen Entscheidung die Vorstellung zugrunde, daß der Mensch in der Schöpfungsordnung einen eigenen selbständigen Wert besitzt und Freiheit und Gleichheit dauernde Grundwerte der staatlichen Einheit sind. Daher ist die Grundordnung eine wertgebundene Ordnung. Sie ist das Gegenteil des totalen Staates, der als ausschließliche Herrschaftsmacht Menschenwürde, Freiheit und Gleichheit ablehnt.” BVerfGE 2, 1 at 12.
[113] 독일어 원문은 “freiheitliche demokratische Grundordnung”. 영어 번역 “liberal-democratic constitutional order” 또는 “free democratic basic order”으로 표현된다.
[114] “an order that establishes public powers that are bound by the rule of law and that exclude any violence or arbitrariness, and that are based on the self-determination of the people according to the will of the majority as well as freedom and equality. The foundational principles of this order include at least the following: the respect for the human rights established in the Basic Law, above all the right to life and free development of personality, popular sovereignty, the division of powers, government accountability, the subjection of administrative powers to the law, the independence of judges, the principle of party pluralism and the equality of chances for all parties and their right, within the limits of the constitution, to the formation and exercise of an opposition.” BVerfGE 2, 1 at 12. 영어 번역은 Capoccia, Militant Democracy, Oxford, at 211. 이와 같은 개념 규정은 1956년 KPD 케이스 (BVerfGE 5, 85 (1956) at 139)에서 재확인하였다.
[116] ‘헌법 질서 Verfassungsmiissige Ordnung’라는 말은 기본법 9조2항에나온다: "Organizations which have goals or activities running counter to the criminal laws, or which direct themselves against the constitutional order, or against internationally acknowledged principles are prohibited."
[118] 헌법재판소는 사법부의 고유 권한으로서 집행 명령을 내릴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헌법재판소의 명령은 사법부의 본질적인 고유권한에 따라 즉시 효력을 발휘하고, 헌법재판소가 추상적 법률도 위헌이라고 선언할 수 있는 권한을 가졌다면, 법률에 근거가 미비하다는 이유로 법의 효력을 부정할 수 없다고 본 것이다.
[120] “Seite soll aber der Abgeordnete, der doch in aller Regel über eine Partei sein Mandat erhält, als Vertreter des Gesamtvolkes und nicht als Repräsentant seiner Partei.”, “das besondere Spannungsverhältnis erkennbar, das in der Doppelstellung des Abgeordneten als Vertreters des gesamten Volkes und zugleich als Exponenten einer konkreten Parteiorganisation liegt.” BVerfGE 2, 1 at 72. 의원의 지위가 정당의 대리인 agent인지 아니면 전체 국민의 대표자 representatives of the entire people로서의 지위를 가졌는지에 대해서는 단정적으로 결론을 내리기가 쉽지 않은 영역이다. 기본법은 다만 38조에서 “의원은 전 국민의 대표자이며 위임과 명령에 구속되지 않고, 오직 그의 양심에 따른다”고 규정하고 있다. 독일연방헌법재판소는 전체 국민의 대표자로서가 아니라 정당의 대리인으로서 파악한 결과 의원은 정당해산과 동시에 의원직을 상실한다고 본 것 같다.
[121] 기본법 38조1항: “독일연방의회의 의원은 보통, 직접, 자유, 평등, 비밀선거로 선출된다. 의원은 전 국민의 대표자이며 위임과 명령에 구속되지 않고, 오직 그의 양심에 따른다. Members of the German Bundestag shall be elected in general, direct, free, equal and secret elections. They shall be representatives of the whole people, not bound by orders or instructions, and responsible only to their conscience.”
[122] “When by a judgment of the Constitutional Court a political party's ideas are found to fall short of the prerequisites for participation in the formation of the popular political will, the mere dissolution of the party's organizational apparatus, which was meant to further these goals, cannot truly implement the court's judgment. Rather, it is the intent of the Court's sentence to exclude the ideas themselves from the process of the formation of the political will.” 영어 번역: Franz P, Unconstitutional and Outlawed Political Parties: A German-American Comparison, 5 B.C. Intl & Comp.L.Rev. 51(1982), http://lawdigitalcommons.bc.edu/iclr/vol5/iss1/3, at 58. BVerfGE 2, 1 at 73:
[123] 독일연방공화국 기본법 (Grundgesetz für die Bundesrepublik Deutschland), http://www.bundestag.de/bundestag/aufgaben/rechtsgrundlagen/grundgesetz/gg.html.
[124] 영어 번역은 독일 정부, Article 146 [Duration of the Basic Law] “This Basic Law, which since the achievement of the unity and freedom of Germany applies to the entire German people, shall cease to apply on the day on which a constitution freely adopted by the German people takes effect.”
[125] 기본법에서 “헌법재판소 Verfassungsgericht” 설치를 규정하고 헌법의 규범성을 지키게 하고 있다. ‘기본법’을 해석하는 기관 이름을 ‘헌법재판소’라고 부르고 있다. 헌법재판소 헌법소원 같은 용어 사용에서 보듯이, 헌법이라는 용어의 사용은 자연스럽다.
[126] 히틀러 나치 독재 체제하의 실정법만능주의를 나타내는 것으로써 “법은 국가의 필요에 따라 법은 유효하다 Recht ist, was dem Staat nützt.)”의 당시의 표현이 있다.
[128] 19조2항. 79조3항: “An amendment of this Basic Law affecting the basic principles laid down in Articles 1 and 20 is inadmissible.”
[129] 79조3항 ”An amendment of this Basic Law affecting the basic principles laid down in Articles 1 and 20 is inadmissible.”
[130] 우리나라 헌법을 예로 들어 보면 대통령제에서 내각제로 헌법 개정을 하는 것은 민주주의 방법과 절차를 따르는 한 얼마든지 가능하지만 헌법 개정에 있어서 기본적 인권 규정을 본질적으로 침해하는 헌법개정까지 허용되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135] 우리나라 헌법재판소는 왜 독일연방헌법재판소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개념을 정의한대로 그대로 직접 인용하지 않았을까? 재판의 공정성과 투명성 제고의 측면에서도 원문 인용은 정확하게 밝히는 것이 타당하다. 법관도 다른 일반인과 마찬가지로 저작권법에 구속된다. 여기에서 우리나라 판결문 양식을 논할 의도나 지면은 없는 관계로 다음과 같은 간단한 질문적 글로써 대신한다. 우리나라 헌법 103조 규정: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 우리 민법 1조 (법원legal sources) 규정: “민사에 관하여 법률에 규정이 없으면 관습법에 의하고 관습법이 없으면 조리에 의한다.” 그런데 우리 민법전의 기초 자료가 된 스위스민법 규정은 다음과 같다: 스위스 민법 “제1조 ① 이 법은 문자상 또는 해석상 이 법이 규정하고 있는 모든 법 문제에 대하여 적용된다. ② 이 법에 규정이 없는 경우에는 법관은 관습법에 따르며, 관습법도 없는 경우에는 그가 입법자라면 제정하였을 법칙에 의하여 재판하여야 한다. ③ 그에 있어서 법관은 검증된 학설과 선례에 따른다.” (1조 (Application of the law) 1.1 The law applies according to its wording or interpretation to all legal questions for which it contains a provision. 1.2 In the absence of a provision, the court shall decide in accordance with customary law and, in the absence of customary law, in accordance with the rule that it would make as legislator. 1.3 In doing so, the court shall follow established doctrine and case law.” 영어 번역은 스위스 정부의 번역을 그대로 가져옴, http://www.admin.ch/ch/e/rs/210/a1.html.) 법관이 판결할 때 법관이 보이지 않는 그 무엇을 따른다고 말하는 그것은 올바른 설명이 아니다. 법관이 판결을 내릴 때는 과거의 앞선 판례 ie 선례를 따른다 (선례를 비교 분석하고 맡은 사안에 적용한다). “법관은 검증된 학설과 선례에 따른다”는 것은 대륙법 체계에서 나타나는 현상이고, 반면 영미법 국가의 법관들은 앞선 “판례”를 따르므로 영미법 판례법국가들에서는 “학설”이 법원 판결에서 차지하는 경우란 미미하다. 법원의 법관이 판결문으로 다루지 않는 탁상공론에 불과한 학설은 판례에서 어떤 영향을 주기 힘들다. “어려운 사건이 나쁜 법을 만든다 Hard cases make bad law”는 법언이 있는데, 난제 사건에서 주요 원천 소스에서 답을 찾아 내지 못한 경우 법학 학술 논문 등을 참조하는 경우가 많다. 법해석 문제에서 교과서나 학술 논문 등을 참조할 때 이를 “2차적 소스”라고 부른다. 스위스 민법전에서는 “학설과 판례를 따른다”고 규정한 것은 대륙법에서는 법학자들의 영향력이 강한 교육 풍토이기에 “검증된 학설”을 거론한 것이다. 반면 판례법국가들에선 법학자의 영향력은 미미하고 법관들의 권한이 막강하므로 오로지 법원의 판결문인 ‘판례’를 따른다. 또 만약 학설이 법관이 사안을 내릴 때 참조해야 한다고 규정하게 되었다면, ‘검증된 학설’인지 여부를 놓고서 뜨거운 논쟁을 벌일지 모른다. (조선시대 때 주자가례 해석을 놓고서 사색당파가 각기 다른 주장을 펼친 예송논쟁의 역사를 보거나) 또는 창조론이냐 진화론이냐의 미국연방대법원 사건(Edwards v. Aguillard 482 U.S. 578 (1987))의 예처럼 또 다른 분쟁의 씨앗을 낳는 일이 되었을 지도 모른다.
[136] “If there be any among us who wish to dissolve this union, or to change its republican form, let them stand undisturbed, as monuments of the safety with which error of opinion may be tolerated where reason is left free to combat it."
[139] Dryzek의 “Deliberative democracy and beyond”을 참조하라, 하버마스 Habermas (“Theory of Communicative Action” 1981년 독일, 1984년 영역본 출간)가 주장하는 “토론 민주주의 discursive democracy”의 개념을 참조하라.
[140] 이 책에서 심의審議는 심의 熟議하고 동의어로 쓰고 있다. 배심원 제도의 특성을 좀더 강조하는 별도의 어휘가 찾을 수가 없어서 심의 또는 심의라는 단어를 쓴다. 대륙법제도에서의 재판 심리 구조는 배심원 제도하고는 차이가 크게 난다. 배심원 제도는 판결에 영향을 받는 공동체의 다수 관계자들로부터 서로 다른 반대의견을 청취하고 토론하면서 일치된 하나의 의견에 합의하게 되는 의사결정 제도다. 반면에 “심판”은 결정권자 단독으로 한 방에서 들어가 모든 것을 낱낱이 파헤쳐 진실을 찾아내는 단독적인(이해관계자들의 반대의견을 청취하고 토론하는 행위가 없이) 행위의 과정을 뜻하는 것 같다. 배심원 제도는 모든 쟁점을 낱낱이 살핀다는 측면은 대륙법의 심판구조와 동일하나 배심원제도에서는 의사결정 과정에 참가하는 사람들이 다수라는 점에서 차이가 난다. “심의 민주주의 deliberative democracy”는 자기 결정권을 가진 자유 시민이 동등한 지위에서 각자의 의견을 말하고 서로 토론을 통해서 합의에 이르는 의사결정의 과정을 가르킨다. 유럽대륙국가들은 히틀러의 나찌 정권을 경험한 뼈아픈 역사가 있다. 유럽대륙에서의 전제 국가 authoritarian state의 역사는 다수가 자유토론을 통해서 합의에 이르는 “심의 민주주의” 전통이 부족한 것에 그 원인이 있을지 모른다.
[141] “Deliberation is participating in the process of reasoning about public action.” Ferejohn & Pasquino, “Constitutional Courts as Deliberative Institutions: Towards and Institutional Theory of Constitutional Justice”, In Constitutional Justice, East and West, edited by Wojciech Sadurski. Kluwer Law International, 2002.
[142] 배관 파이프 conduit를 연결하는 것에 비유된다. 회사 같은 집단 의사 결정 이론의 모형에서 “참가자의 계약 관계에 의존한다 nexus for contracting relationships”는 젠센 Jensen의 이론을 반박하는 이론들이 최근 들어 점증하고 있다. 이해관계자 stakeholder 이론 또는 Constitutional Corporation 이론을 참고하라.
[144] “Bond could not in good faith take an oath to support the State and Federal Constitutions.” Bond v. Flyd 385 U.S. 116 (1966).
[149] “Thus, we consider this case against the background of a profound national commitment to the principle that debate on public issues should be uninhibited, robust, and wide-open, and that it may well include vehement, caustic, and sometimes unpleasantly sharp attacks on government and public officials." [D]ebate on public issues should be uninhibited, robust, and wide-open." New York Times v. Sullivan, 376 U.S. 254, at 270.
[152] "[D]ebate on public issues should be uninhibited, robust, and wide-open." New York Times v. Sullivan 376 U.S. 254, at 270.
[153] “공적인 문제에 대한 토론은 무제한적이고, 활발하고, 광범위하게 열러 있어야 한다. 또한 그것은 정부와 공직자에 대해서 격렬하고, 신랄하며, 때로는 유쾌하지 못한 날카로운 공격을 포함할 수 있다.”
[156] 여기서 “의로운 마음씨 Decent-minded”라는 말의 표현과 2003년 독일헌법재판소의 독일 NPD정당해산 심판건의 배경이었던 극우 신나찌주의에 반대하며 궐기한 20만 명의 베를린 시위를 가르켜 “양심의 궐기 Aufstand der Anständigen”라고 칭한 것을 참고하라. 독일어 Aufstand der Anständigen은 영어 "Uprising of the Decent"으로 번역된다.
[157] 명예훼손 간주 libelous per se. 언론사의 면책 사유에는 진실 보도, 공평한 논평 fair comment privilege, 공정한 보도 fair report privilege가 있다. 명예훼손의 요건으로 ‘악의 malice’에 대한 입증은 뉴욕타임스가 광고를 ‘무책임 irresponsibility’하게 실은 정도이면 인정된다.
[158] 앨라배마주 몽고메리시는 1960년대 민권운동이 전국적으로 펼쳐질 당시 인종차별이 심했던 미국 남부 주에 위치한다. 이 뉴욕타임스 재판에서 12명의 배심원은 모두 백인 남자들로 구성되었다.
[159] 미국에서 명예훼손은 우리나라처럼 형사처벌이 민사상 손해배상소송tort이므로 명예훼손 소송 제기자(원고)가 공표된 말이나 글로 인해서 직접적으로 손해가 발생했다는 사실을 입증해야 한다. 하지만 예외적으로 ‘간주 명예훼손 libelous per se’에 해당되는 경우-즉 사실 보도가 아닐 경우-에는 손해 발생에 대한 입증 책임 없이 명예훼손에 따른 손해배상을 요구할 수 있다. 예컨대 피해자의 직업 business or profession, 횡령이나 사기같은 도덕 파탄죄 crime of moral turpitude, 여성의 정조, 성병같은 고약한 질병 등을 거론하면서 사실이 아닌 거짓 정보를 퍼트린 경우에는 명예훼손으로 인한 피해의 정도가 회복 불가능할 만큼 매우 중대한 성격에 해당하므로 ‘간주 명예훼손’으로 엄중히 처벌하게 된 것이다.
[160] 실제적인 악의 actual malice에 대한 입증기준은 민사상 고의에 대한 입증기준으로써 이는 과실에 대한 입증기준보다 조금 더 단계가 높다. 피고가 자신의 표현이 거짓 falsity임을 알고 있었던 경우 또는 상식적인 선에서 주의를 다하였으면 허위라는 의심이 들고 따라서 사전에 막을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막무가내 무시하고 reckless disregard as to the truth 언론에 공표했을 경우가 이에 해당할 것이다.
[161] clear and convincing evidence. 입증 책임의 종류와 증명력의 정도에 대해서는 ‘beyond reasonable doubt’ 설명 부분을 참조하라.
[162] “The opinion of the Court conclusively demonstrates the chilling effect of the Alabama libel laws on First Amendment freedoms in the area of race relations.” New York Times Co. v. Sullivan 376 U.S. 254 (1964), at 300-302.
[163] “The vigorous criticism by press and citizen of the conduct of the government of the day by the officials of the day will soon yield to silence if officials in control of government agencies, instead of answering criticisms, can resort to friendly juries to forestall criticism of their official conduct.”, at 304.
[164] “the pall of fear and timidity imposed upon those who would give voice to public criticism is an atmosphere in which the First Amendment freedoms cannot survive.”at 278.
[165] The prized American right "to speak one's mind" about public officials and affairs needs "breathing space to survive." at 299.
[166] “That erroneous statement is inevitable in free debate, and that it must be protected if the freedoms of expression are to have the "breathing space" that they "need . . . to survive." at 272.
[167] “Thus, we consider this case against the background of a profound national commitment to the principle that debate on public issues should be uninhibited, robust, and wide-open, and that it may well include vehement, caustic, and sometimes unpleasantly sharp attacks on government and public officials.”, at 271.
[170] The court ruled that the Secretary, after “considering all attendant facts and circumstances,” “had not acted arbitrarily and had exercised her discretion in a reasonable manner consistent with the court’ s earlier rul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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