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 스트리트 변호사 이야기 (바틀비 스토리)
1. “월 스트리트 변호사 이야기 A Story of Wall Street (바틀비 스토리)”가 인구에 회자되는 이유
어떻게 바틀비는 정치적 저항의 상징이 되었을까?
‘월 스트리트 Wall Street’는 ‘전세계적으로 알려진 부의 상징 global symbol of wealth’이다. 그런데 왜 ‘월 스트리트’에서 ‘시위’가 벌어지는가? 2011년 9월 뉴욕에서 시위군중들이 “월 스트리트를 점령하라! Occupy Wall Street!”는 구호를 내걸고 가두시위를 벌였고, 이들은 “가이 팍스 가면 Guy Fawkes mask”을 썼다.[1] 가이 팍스 가면은 하얀 얼굴에 검은 먹으로 일그러진 눈썹에다 팔자 콧수염과 일자 턱수염을 특징으로 하는데 경계의 표정에다 꽉 다문 입가에 알듯말듯한 미묘한 미소를 머금은 듯한 캐리커쳐에서 무언가 숨어 있는 듯 이중성의 의미가 느껴진다.[2] 이 가면은 가이 팍스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 “V For Vendetta”가 2006년 상업적 성공을 거두면서 널리 알려졌고, 2008년 “금융 위기” 발발 이후 월 스트리트에서의 산발적인 시위를 벌일 때 사용되다가, 2011년 “월 스트리트를 점령하라!”의 가두 시위, 2013년 전세계 450여 개 도심 시위에서 계속 쓰여지면서 정치적 상징성을 더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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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WS 시위 (2011) |
OWS 시위 (2011) |
A M 시위 (20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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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2006) |
책 (1989) |
만화 (198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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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MM (2014) |
Anti-Rent (1844) |
가이 팍스 (1605) |
“월 스트리트를 점령하라!”의 가두 시위가 일어난 배경으로는 부가 상위 1%층에게 집중되고 나머지 99%는 생존 투쟁의 상황으로 내몰리며 극심해진 빈부격차, 정치 부패, 정부 정책에 대한 재계의 입김 강화 현상 등을 꼽을 수 있다.[3] 그런데 여기의 시위 참가자들은 단지 외양적으로 보이는 것처럼 “99%”에 속하는 사람들일까? 이러한 사건의 움직임을 뒤에서 조종하는 배후세력은 없을까? 이 세상에서 진실은 외양적인 장식으로 가려져 있고, 배후세력은 바다 밑에 흐르는 거대한 조류와 같이 장막 뒤에 숨어서 거대한 사건을 일으키는 경우가 흔하다.[4][5] 또 일이 터지고 나면 진실을 호도하는 경우가 있는데 예컨대 보수주의자들은 국가 빈곤의 문제를 ‘부패’ 탓으로 돌리는 경향이 크다.[6] 하지만 자본주의의 구조적인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국가가 행동 개시를 to launch an initiative 필연적으로 요구할 때가 있다.[7] 왜 영국 정치계에서 오늘날까지 “가이 팍스 사건”을 기념하고 있고 또 영미국에서 가이 팍스 불꽃놀이가 전통문화로 이어 내려 오는지 그 이유를 정확하게 인식한다면 자본주의의 작동 구조와 그 진실을 이해하리라.
이제 가이 팍스 가면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은 거의 없겠지만[8] 바틀비 Bartleby가 월 스트리트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은 것 같다. 금융인이나 법조인이라면 바틀비의 정체를 모르고서는 월 스트리트 전문가로서 자신을 소개하기는 힘들 것이다.[9] 바틀비는 누구인가? 바틀비는 “월 스트리트 변호사 이야기 Bartleby, the Scrivener: A Story of Wall Street” (이하 “바틀비 스토리”라 줄인다)의 등장인물이다.[10] “바틀비 스토리”는 “1%”에 해당하는 월 스트리트 변호사와 “99%”에 해당하는 임금 노동자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여기에서 바틀비는 “I am occupied.”라는 말을 사용하면서 액면 그대로 월 스트리트를 점령하지 않을 수 없었던 최초의 저항인으로 그려진다.[11] 바틀비의 정체는 누구이고 왜 바틀비의 존재가 오늘날 다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의 대상이 되었을까?[12]
왜 저항을 두려워하는가?
월 스트리트를 움직이는 두 개의 힘은 탐욕과 공포라고 말한다.[13] 사람의 행위를 불러오는 동기는 탐욕뿐만 아니라 공포와 두려움에 있기도 하다. 국가적으로 본다면 자유주의는 개인의 삶에 대한 국가의 강제적 개입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 시작되었고, 사회주의는 국가의 강제적 개입에 대한 희망을 가졌다. [14] 정부가 사람들을 스크린하고, 가림막을 치고, 담을 쌓고, 사람과 사람 사이를 격리시키고자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바틀비 스토리”에서 다음과 같은 표현이 그 이유를 설명해 준다. “내가 그와 접촉하게 되면서 내 사고 방식이 이미 심각한 영향을 받았다는 생각이 들어 내 몸이 오싹했다. 그런데 이보다 더 심각한 어떤 탈선의 징후가 나타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두려움이 들자 나는 뭔가 즉결 조치를 재빨리 취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언어와 사상과 정보는 전염병같이 순식간에 퍼져 나갈 수 있고,[15] 파급 효과가 크기 때문에 미리 “차단하는 walled” 것이다.[16] 카오스 이론의 “나비 효과” [17]가 말해주듯 미시적인 작은 변화가 거시적 차원의 엄청난 사건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점에서 두려움을 갖는다.
“바틀비 스토리”가 인구에 회자되는 이유는?
월 스트리트는 미국의 심장부
월 스트리트는 뉴욕의 현실적인 거리 이름이자 ‘부의 상징’이다. 아담 스미스가 밝힌 대로 자본력이 곧 권력이라면 월 스트리트는 세계를 제패한 미국의 얼굴이고 심장부에 해당한다. 영어와 판례법을 공유하는 영미인이 대영제국과 팍스 아메리카나를 건설하였다.[18] 영미국이 세계를 호령하는 힘과 근원은 무엇이고 또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세계 최고의 번영과 발전을 이룬 영미인의 원형 prototype은 찾아질 수 있을까?[19] “바틀비 스토리”는 월 스트리트를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과의 ‘관계 relationship’와 자본주의에 필연적으로 수반된 문제들을 다루고 있으며,[20] 개별화된 존재가 아니라 타자와의 상호관계를 통한 인식의 문제는 보편성을 확보하고 있어 국가와 민족과 시대와 장소를 초월해서 많은 사람들의 사랑과 관심을 받고 있고 또 학교와 대학에서 가르치고 배우지 않겠는가?[21] 이 책을 읽고 나면, 행간의 의미를 파고들며 진리를 탐구하는 학생과 일반인 독자는 물론 언론계 금융계 학계 법조계 정치권부의 관심 있는 전문가들은 아담 스미스의 “도덕감정론”, “국부론”, 투키디데스의 “역사”, 홉스의 “리바이던”, 로크의 “사회계약론”, 다윈의 “진화론” 등의 지식과 정보를 재음미하고, 워렌 버핏과 빌 게이츠의 독서목록[22]에 까지 관심을 가질 것으로 기대된다.
월 스트리트는 흡혈귀인가?
“돈이란 새로운 형태의 노예 제도이다. 누구나 상관없이 몰인격화하고 노예 관계에서 해방되게 만든다는 점에서 단지 다를 뿐이다.”[23] 이 말은 톨스토이가 “위조 지폐”에서 내린 분석적 결론이다. 월 스트리트 증권 회사 골드만 삭스를 두고서 “사람들의 피 같은 돈을 빨아먹는 흡혈귀”라고 비난하는데, 과연 월 스트리트는 “돈 냄새가 나는 곳이라면 어디에라도 달려가 무자비하게 빨대를 꼽아대며, 사람의 얼굴을 문어발로 감싸 질식하게 만드는 흡혈마귀인가?”[24] 혹시 이런 견해에 동조한다면 마치 가이 팍스 ‘가면’을 실제의 인물로 착각하는 것에 다름 아닐 것이다. 흔히 우리나라에는 “존경 받는 부자”가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왜 영미국에선 존경 받은 부자들이 많은가? 그 이유는 세계 최고의 부를 이룬 카네기, 게이츠, 버핏 등 월 스트리트의 기라성 같은 인물들이 “공동체 전체의 이익 interest of the community as a whole”을 위한 자선 charity과 교육 education사업을 펼치기 때문이 아닌가? 왜 영미국은 다른 나라들과 차이가 나는 것일까? 그 이유와 원천을 탐구하는 일은 누구에게나 흥미롭고 의미있는 작업이리라.
교육의 중요성
세상에 살아가는 현실의 사람들은 편견에 사로잡혀 있어 판단을 그르치고 실수를 할 가능성이 크다. “현실의 실제 사람들은 그런 실수를 “반복적으로 systematically” 하게 된다. 하지만 사람들은 교육을 통해서 그러한 실수를 줄이고 잘못을 고칠 수 있다. 사람들은 교육을 통해서 능력과 희망을 배양한다. 교육이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은 내가 나의 잘못을 시정하는 그 ‘결과’에 있다. 남에게 친절하게 대한다는 ‘kind’의 의미는 남이 나의 잘못을 꾸짖을 때 내가 화내지 않고 책망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관용’적이고 ‘열린 태도’를 말한다. 우리는 교육을 통해서 남에게 공감하여 그대로 받아들이는 열린 마음을 키워갈 수 있다.[25]
언어는 단순하지 않고 많은 뜻을 함축하고 있다. (Semantic Pluralism). “바틀비 스토리”에서 거론되고 있는 소재들을 그 속에 들어 있는 교육 철학 역사 법학 신학적인 의미를 깊이 파고들면 서로 촘촘히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또 거론되거나 암시하고 있는 역사적 사건들도 홀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한 줄에 꿰 매달아 놓은 옥구슬같이 고리로 연결되어 있고, 역사적 인물들의 사상과 사건은 실줄 날줄로 짜여 있어 월 스트리트의 발전과 번영의 조건이 무엇인지 그 속뜻을 시사해 주고 있다. (연상주의 생각의 연쇄 이론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III부 2장을 참조하라.)
월 스트리트에서 교육이 강조되는 이유는?
리야드는 “행복 경제학”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인간 사회는 다람쥐 쳇바퀴 돌기에 비유할 수 있다. 제로-섬 게임과 비슷하다. 한 사람이 올라가면 다른 한 사람은 내려와야 한다. 뒤처진 패배자는 세금 정책으로 배려할 수 밖에 없다. 또 적자생존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을 ‘교육’을 통해 가르쳐야 한다. 교육으로써 개인주의를 완화시킬 수가 있다. 이것은 아담 스미스가 공교육을 강조한 것과 맥이 닿는다.” 아담 스미스는 자본주의 경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써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인간은 자기이익 추구의 이기심을 크게 가지고 있기 때문에 교육을 통해서 순화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월 스트리트는 조사 연구 기관을 많이 거느리고 있는데 이들은 조사 연구 결과를 통해서 여론 조성 과정에 관여하고 신문 방송의 뉴스 기사를 통해 헤게모니 장악에 일정 역할을 담당한다. 시카고 학파가 당시 주류를 형성하고 있던 케인즈 경제학을 비판하면서 경제학의 주류로 올라서게 되는 과정을 살펴 보면 신문 방송 언론의 활용과 대중 교육 강연 등 치밀하고 오랜 인고의 노력을 필요로 하였다. ‘로마는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역사가 보여주는 것처럼 국가와 사람을 변화시키는 데에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분업이 진행된 복잡한 경제에서 노동자의 지식 습득 노력이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하였던 아담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자본주의의 가장 중요한 특징 중 하나인 ‘노동 분업’의 결과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진솔하게 서술하였다. “노동의 분업이 진행되면 대다수가 노동으로 살아가게 되는데 대다수의 노동자들은 매우 간단한 몇 가지 작업에만 매달리게 된다. 사람들의 지식은 그들 각자의 통상적인 직업에 의해 형성된다. 아주 간단한 작업을 하는 일에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 거의 전부가 대개는 지식을 습득할 시간이 없다. 따라서 습득할 노력을 하지 않고 인간들이 그렇듯이 대체로 어리석고 무지하게 되어버린다.”[26]
정신적 나태와 육체적 타락은 이성적인 토론을 불가능하게 만들고, 사회적 참여의 기쁨과 의무를 느끼지 못하게 하며, 나라를 부름을 받은 국방 의무와 같은 큰 국가적 문제를 판단하는데 어려움을 겪게 만든다. 자기 직업에 뛰어난 기술을 습득하는 것은 지적, 사회적, 국가적 가치를 희생함으로써 얻어진다. 이러한 상황을 더 악화되지 않게 해야 하는데 아담 스미스는 다음을 강조한다. 진보된 문명사회에서, 정부가 나서서 막아주지 않는 한 대부분의 가난한 노동자들은 그러한 상황에 빠져들고 만다. 사회가 상업화되어 감에 따라서 개인이 원자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마르크스는 사유권의 폐지와 공산주의 건설을 주창한 반면 스미스는 공교육의 역할에 대한 믿음을 가졌다.[27]
미국의 경제학자 갈브레이드는 인간이 참된 풍요로운 생활을 누리려면 교육을 통해서 잘못된 경제학의 통념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설파했다. “사람들이 더 많은 물건을 소비하는 것이 행복”이라는 생각은 옳지 않다. 사람들의 소비는 ‘의존 효과’에 의해서 생겨나기 때문에 소비자들의 자각을 통해서 잘못된 경제 문제를 해결해 갈 수 있을 것이라며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바틀비 스토리”의 작가 멜빌 Melville은 “멜빌 산업”이라고 일컬어질 만큼 많은 사람들이 논하고 있는 미국의 대문호다.[28] 그의 작품에 대한 개괄적 이해는 다음과 같은 사이트에서 얻을 수 있다.[29] 멜빌에 관련된 박사학위 논문만 해도 1980년까지 531편에 이르러 그 후로부터는 더 이상 집계하지 않는다고 말하니 지금쯤은 그 수가 얼마나 많을 지에 대해서는 가히 짐작도 하기 어려울 것 같다.[30] 연구 논문 제공 사이트인 “Jstor”에서 “Bartleby the scrivener”를 검색해 보면 관련 연구논문이 삼백여 편이 넘는 방대한 분량에 이르러 그것을 다 읽는다는 것은 거의 힘들고, 따라서 자신의 원하는 연구 분야와 방향에 따라 세부 검색 조건을 추가해야 한다.[31]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32]은 차치하고서, 대학과 학교에서 크게 논의되는 대상은 나름대로 그 이유가 충분히 있다.
[1] “The corrupt fear us. The honest support us. The heroic join us.” http://www.reuters.com/article/2011/11/02/us-usa-wallstreet-protests-money-idUSTRE7A12DY20111102.
[2] 사람들은 생존, 적응, 재창조의 과정을 이어가는데 이 과정에서 자기 필요에 따라 실제 자신의 모습을 가리우는 가면을 쓴 채 말하고 행동할 때가 있다. ‘집단 무의식 Collective Unconscious’의 정신분석학적 개념을 제시한 융 Jung (1875-1961)은 사람들은 천 개의 ‘페르소나(가면)’를 지니고 있다고 말했다. 융의 성격 유형 이론에 따르면, 퍼스낼리티(개성화)란 개인의 의식이 다른 사람의 생각으로부터 분리되고 차이를 갖게 되는 과정을 말하고, 자아란 자기의 감각기관으로 받아들인 것에서 의식적으로 선택적인 결과로 자기 견해를 형성한다. 페르소나는 자아의 가면으로써 개인이 외부 세계에 내보이는 이미지를 말하는데 이것은 개인이 사회적인 요구에 대한 반응으로써 사회적인 모습을 반영하고 있다. 페르소나에 의해 싫은 사람까지도 관용하면서 융화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사회적 기대와 요구에 지나치게 경도되면 자아가 자신의 내면으로부터 유리될 위험이 있으므로 자아와 페르소나는 긴장관계에 있기도 하다. 법에 있어서 가면 “Legal Mask”의 역할에 대해서는 Noonan, “Person and Masks of the Law” (1976).
[3] http://en.wikipedia.org/wiki/Occupy_Wall_Street#cite_note-9.
[4] http://www.nytimes.com/2011/08/29/technology/masked-anonymous-protesters-aid-time-warners-profits.html. 가이 팍스 가면이 1년에 십만여 개가 팔린다고 하는데 가이 팍스 가면의 저작권은 영화를 제작한 타임 워너 회사가 보유하고 있다. 따라서 대기업 회사의 우월적 지배에 분노를 제기하고자 가이 팍스 가면을 쓰고 가두시위에 참가하는 사람들은 결과적으로 대기업의 매출액 성장에 기여를 하고 마는 역설적인 상황이 된다. 남미 군사 정권에 대항하여 반체제의 상징적 인물이 되었던 체 게바라의 이미지를 상품화한 경우와 마찬가지로 원래의 의도와는 다른 결과가 나타나게 된다. 보드리야르의 주장대로, 문화도 경제에 편입 종속되고 만 것이다.
[5] ‘무정부주의자’를 그리는 소설이나 영화의 주된 고객 대상은 젊은 층이다. 하지만 무정부주의자들의 견해가 역사상 성공한 예는 한 번도 없었다. 그리고 대개 젊은이들은 자신들이 직접적으로 생존 투쟁의 위협을 받는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대개 젊은이들은 부모에 의해서 생존이 보호되고 있다) 그들의 분노는 시간이 가면 달라지게 된다. 1960-70년대 ‘우드스탁’ 히피 세대의 반전문화가 그러했듯이.
[6] “Blame poverty on corruption.” 남미 국가의 사례가 보여주듯이 식민지를 강탈한 외부 세력이 개입한 구조적인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인 일탈의 문제로 치부해 버린다면 근원적인 해결책을 강구해내기가 힘들 것이다.
[7] 대공황을 겪고 난 뒤 정부는 파국을 피하기 위해서 상황에 이끌려 가기보다는 선제적인 공격 preemptive strike으로써 미리 대응 수단을 강구하기도 한다.
[8] “The Guy Fawkes mask has now become a common brand and a convenient placard to use in protest against tyranny.”; http://www.dailymail.co.uk/news/article-2058020/How-Guy-Fawkes-masks-symbol-anti-greed-protests-globe.html “It’s a ‘ubiquitous image’ now: in pictures from Occupy Wall Street, the Arab Spring, …”
[9] “바틀비 산업 Bartleby Industry”이라고 칭할 만큼 “바틀비 스토리”에 관한 수많은 연구 논문들이 있다. 참고문헌 리스트를 참조하라. “The Bartleby story is a favorite in Law and Literature courses for reasons that defy complete explanation.”
[10] Herman Melville (1819–1891), “Bartleby, the Scrivener. A Story of Wall-street”, Vol.I. Nov 1853, 546–557; Vol.II. Dec 1853, 609–615, Putnam’s Monthly, New York, G. P. Putnam & Co.
[11] 바틀비를 소로우 Thoreau로 해석하는 글은 Oliver, E., "A Second Look at Bartleby." College English 6 (1945), 431-439; Parker, H., "Melville's Satire of Emerson and Thoreau: An Evaluation of the Evidence." American Transcendental Quarterly 7 (1970), 61-67.
[12] 빈곤과 경제적 불평등의 문제는 오늘날 세계 각국의 상황을 볼 때 해결은 커녕 오히려 더욱 심각해진 측면이 강하다. 사회적 문화적 자원을 사용하지 못하는 새로운 하층민이 등장한 반면 극소수층에게 부의 쏠림이 심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분배 reditribution”와 “인정 recognition”의 정의론 정치학 담론을 참조하라.
[13] “Wall Street is an avenue of avarice, where speculators feed on fear and greed.” Scheibe K, “The Drama of Everyday Life”, HUP, 2000, at 84-100.
[14] ‘두려움’에 대해서는 노직의 “최소개입국가론 the minimal state theory”과 “소유권 이론 entitlement theory”을 참조하라. “아나키, 국가, 유토피아” (1974). ‘희망’에 대해서는 보다 광범위한 국가 개입의 필요성과 정당성 주장한 “페비안 협회”를 참조하라. (Pease, “The History of the Fabian Society”, 1916.)
[15] 오늘날 교류의 시대에서 중세 시대의 성안에서의 격리된 삶은 더 이상 지속될 수 없다. 그럼애도 불구하고 오르지 못할 만큼 담벽을 높게 쌓는다고 해서 완벽한 차단을 할 수 있을까? “만리장성”이 무너졌고, 인종차별의 벽이 무너지고,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높고 두꺼운 벽을 설치함으로써 인간의 이동을 인위적으로 막을 수 없다. 이동성은 인간 본성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담벼락 wall을 쌓고 한 곳에 정주하는 지역성을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또 모든 성에는 안팎으로 통하는 길 즉 상호 교류가 존재한다. 성안에서의 지역적 폐쇄성으로 인해서 통일성과 일반성을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이동과 상호 교류가 통일성과 일반성을 유지하는 조건이다. 이것은 역설적 모순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개방 체제의 본질적 효과에 속하는 것으로 보여진다.
[16] 보드리야르 Baudrillard에 따르면 현대 사회는 모델과 코드 미디어와 정보가 지배하는 사회이다. 실재 자체가 사라져 가는 초실재 시대에는 시뮬라크르-hyper reality가 지배한다. “실재가 기호들로 대체되는” 즉 기호와 이미지를 통해 광고 뉴스 영상 상품 이런 것들을 생산해 내는 네트워크 또는 가상현실의 모습을 말해 주는 시뮬라시옹의 세계이다. 그것은 “흉내 낼 대상이 없는 이미지이며, 이 원본 없는 이미지가 그 자체로서 현실을 대체하고, 현실은 이 이미지에 의해서 지배받게 되므로 오히려 현실보다 더 현실적인 것”이다. 이러한 보드리야르의 시뮬라시옹 simulation 개념으로 보면, 시뮬라시옹의 세계는 자신의 가상성이 폭로되는 위험을 지속적으로 저지 차단하려고 한다.
[17] 마치 거미줄처럼 서로 연결된 글로벌 경제에서는 “나비 효과 Butterfly Effect”라고 부르는 연쇄 파장 효과의 결과를 미리 점치기란 매우 어려운 문제이다. 나비를 움직이게 하는 원인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람이라는 ‘외생 변수’다. 바람은 나비의 움직임에 영향을 미치지만 나비의 움직임은 바람에 영향을 주지 못한다. 그러나 카오스 이론을 개척한 미국의 기상학자 로렌츠의 1961년 세미나 발표 논문 “브라질에 있는 한 나비의 날개 짓이 미국 텍사스주에 발생한 폭풍의 원인이 될 수 있을까?”을 상기해 보자. 로렌츠는 1961년 컴퓨터에 숫자를 입력하던 중 아주 미세한 0.000127이라는 숫자 하나가 계산결과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단순하게 0.506127 대신 0.506을 입력했다. 그러나 실제 계산 결과는, 애초의 생각과는 다르게, 처음의 아주 미세한 차이가 전체적으로는 엄청난 차이를 낳는 결과를 가져왔다.
[18] 언어는 문화적 소산이다. “Languages are human creations.” 언어의 다양성이라는 특성이 그것을 분명하게 말해준다. 그리고 법 그 자체가 언어와 문화적 산물이다. 사람의 언어 사용은 사람의 생각, 감정, 신념에 영향을 준다. http://www.wsj.com/articles/SB10001424052748703467304575383131592767868.
[19] “인간은 시대나 장소를 초월해서 비슷한 점이 정말로 많다. 역사를 탐구해 보면 이런 주장이 새롭다거나 이상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역사의 효용가치 중에 첫 번째는 인간의 변하지 않는 보편적인 본성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역사는 온갖 다양한 상황과 환경 속에서 나오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고 또 우리 자신을 관찰해 볼 수 있는 그리하여 인간의 행동과 행위를 규칙적으로 불러오는 원천이 무엇인지를 알아내는 자료들을 제공해 주기 때문이다. 전쟁, 음모, 파벌, 혁명 등에 관한 역사기록들은 다수의 실험 표본을 모아 놓은 것과 같아서 이를 통해서 정치가나 인문사회학자들은 자기의 이론을 세울 수 있는데, 이것은 마치 의사나 과학자들이 식물과 광물 기타 외부 물체들의 실험 표본을 통해서 그것들의 본질을 알아 내는 과정과 흡사하다.” (Hume, “An Enquiry Concerning Human Understanding”, The Harvard Classics (1909–14), “Of Liberty and Necessity”.)
[20] 개인은 그가 속한 공동체로부터 분리되어 백지상태에서 혼자만의 삶을 설계할 수 없다. 로빈슨 크루소가 무인도에 표류하고 난 뒤 거기에도 다른 사람들이 곧 찾아오게 된다. 이야기 narrative란 타인과 결부된 사건을 말하고 이야기는 상대방에게 해석된다는 특성이 존재한다.
[21] “오래 전의 역사를 거슬러, 인문학과 과학에 관하여 미숙하나마 최초로 이론을 형성했던 원시적 형태의 인간 사회를 관찰하는 것보다 마음을 더 기쁘게 하는 것이 사실 어디 있겠는가? 통치술, 점진적으로 세련되어지는 전달의 기술, 보다 완벽한 모습으로 발전해 가는 인간의 삶에 관련된 모든 것들을 알아내는 것보다 마음을 더 즐겁게 하는 것이 사실 어디 있겠는가? 가장 번영했던 제국들의 탄생, 발전, 쇠퇴, 멸망의 흔적을 추적해 보고 어떤 요인들이 제국의 융성을 가져왔고 또 어떤 요인들이 제국의 몰락을 가져왔는지를 평가해 보는 것만큼 즐거운 일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겠는가? 간단히 말해서, 전체 인류의 삶을 그 시초부터 있는 그대로 오늘날에 되살려 재평가해 보는 것 즉 당대의 구경꾼들의 판단을 크게 혼란시켰던 모든 가식들을 제거해 버리고 난 뒤 나타나는 진정한 인간의 본 모습을 알아내는 것보다 더 멋지고 더 다양하고 더 흥미로운 일이 다른 어떤 곳에 있다고 상상할 수 있겠는가? 오감을 통해서든 아니면 상상력을 통해서든 이보다 더한 즐거움을 어디에서 찾아볼 수 있겠는가?” Hume, “Of The Study Of History” in “Essays and Treatises on several subjects” (1758).
[22] http://www.gatesnotes.com/Books.
[23] “Money is a new form of slavery, which differs from the old only in being impersonal, and in freeing people from all the human relations of the slave.”
[24] “great vampire squidwrapped around the face of humanity, relentlessly jamming its blood funnel into anything that smells like money." http://www.rollingstone.com/politics/news/the-great-american-bubble-machine-20100405.
[25] 사도 바울은 열린 마음의 자세와 태도를 가르쳤다. ‘kind’ 단어를 사용하고 있는 다른 성경 구절을 보면 ‘kind’의 의미가 무엇을 말하는지 더욱 확실하게 이해가 된다. “Let the righteous smite me; it shall be a kindness: and let him reprove me; it shall be an excellent oil, which shall not break my head: for yet my prayer also shall be in their calamities. 의로운 사람들이 내가 뉘우치도록 책망하면 그것을 기꺼이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그가 나를 비판하고 꾸짖으면 그것은 내 머리 속의 윤활유가 되는 것이지, 결코 내 머리를 상하게 하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아무튼 내가 또 원하는 것은 나쁜 사람들은 재앙을 당하고 만다는 사실이니 그것을 꼭 보여 주길 바랍니다.” (시편 141:5).
[26] Smith, “The Wealth of Nations”, (1981), 781-782.
[27] McMahon, “Happiness: A History” (2006).
[28] The Melville industry is scarily bulky.”, “Melville has become the American Shakespeare”, http://observer.com/2000/06/another-brief-and-daring-bio-teasing-tangled-melville-yarn/.
[29] http://www.melville.org/melville.htm; http://www.online-literature.com/melville/; http://melvilliana.blogspot.kr/.
[30] 각주 28.
[31] “바틀비 산업 Bartleby Industry”이라고 칭할 만큼 “바틀비 스토리”에 관한 연구 논문들이 수없이 많이 나와 있다. 참고문헌을 참조하라. 그 가운데 좋은 내용을 담고 있는 다음의 책을 추천한다. Inge, M., “Bartleby the Inscrutable: A Collection of Commentary on Herman Melville's Tale ‘Bartleby the Scrivener’”, Archon Books, 1979; Newman, L., “A Reader's Guide to the Short Stories of Herman Melville”, Thorndike Press, 1986; McCall, D., “The Silence of Bartleby”, CUP, 1989.
[32] 그람시의 ‘헤게모니’ 개념은 지배계급이 대중들의 자발적인 동의를 통해 지배 질서를 지속 유지하게 만드는 과정을 설명해 준다. 헤게모니는 고정적이고 불변적인 것이 아니다. 지배계급은 대중들의 동의와 순응을 통한 통제를 위해서 교묘하게 언어나 제도 기관을 이용하여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를 더욱 공고화하거나 끊임없는 조작을 시도하기도 한다. 이리하여 대중들은 불평등하고 억압을 받고 있는 기존의 지배 질서를 무의식적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된다. 한편 체제 내부가 취약한 곳에서 대중은 돌발적으로 사회를 전복시킬 수도 있는 힘을 지니고 있어 (식민지에서의 항거가 그 예) 무력과 억압적인 통치에 의존하는 것만으로는 일정한 한계가 있다.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지배계급은 교육과 문화적인 헤게모니 과정을 통해 지배 질서를 대중들이 암묵적으로 수용하게 만드는 소프트 전략을 취한다. 푸코가 밝힌 대로, 학교 또한 권력을 행사하는 제도적 기관이고 지배 권력 구조에 의해 움직인다. 사람들은 지배 권력에 순응하지 하지 않으면 지배적 질서 체제에 편입될 기회가 박탈되고 만다. 예를 들어서 의사, 변호사, 기술사 등 전문직업군은 전문대학원을 졸업하지 않으면 전문가로서의 직업을 가질 수가 없게 되어 있다. 전문가로써 직업을 가지려는 젊은이들에게 권력을 직접적으로 행사하는 사람은 대학의 교수들이지, 전통적인 정치 권력 개념으로써 장관이나 의원들이 아니다. 학교 선생들은 미래 세대의 순응 구조를 길러내고 유지해가려는 지배 권력에 봉사하는 역할을 담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