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후”를 “김일제”이라고 해석하는 한국인들에게
“투후”를 “김일제”이라고 해석하는 한국인들에게
투후 상구성-반악의 서정부와 백제 흑치준 묘지명의 투후는 누구인가
투후를 김일제라고 해석하는 한국 사람들에게 나는 그들의 잘못을 한번에 깨부숴버리는 주장으로서 우선 강희자전을 즉시 펼쳐보기를 바란다. 한자옥편만 펼쳐봐도 투후 김일제라고 단정하는 사람들의 주장이 얼마나 부족한지를 바로 알 수 있다. 그런데도 그동안 왜 한국인들은 눈뜬 봉사가 되었고 코끼리 다리 만지는 장님이 되었고 귀마저 멀은 귀머거리가 되었고 벙어리 삼룡이 농아가 되었단 말인가?
“한 나라가 종교에 대한 믿음을 잃게 되면 그 문명은 국내적으로 사회적 분열을 겪거나 외부 군사적 침략의 위험에 노출되거나 경제적 식민지 노예 상태로 전락할 그럴 위험에 처하게 된다. 믿음의 상실이 가져온 결과로 인해서 문명이 쇠퇴하면 다른 종교나 다른 믿음의 체계에 의해서 고무된 새로운 문명에 의해서 대체되었다."[1]
문무대왕릉 비문의 “秺侯 祭天之胤”(투후 제천지윤)는 한왕신(韓王信)의 후손으로서 상나라 동이족 출신으로 한나라에서 무공을 세우고 고관대작을 지낸 역사적 인물로서 한서에 기록된대로 투후는 商丘成(상구성)을 지칭한다.
“秺侯 祭天之胤”(투후 제천지윤)이 적혀 있는 문무대왕릉 비문은 한민족 역사의 기원을 가르쳐 주는 가장 중요한 역사적 보물이다. 반악의 서정부에서 표현된 “秺侯之忠孝淳深”(투후 지충효순심), 백제 흑치준 묘지명 가운데 “頹當 秺侯入仕 西戎孤□”(퇴당 투후입사 서융고신)은 문무왕릉 비문은 서로 연관적으로 해석된다.
① 반악의 서정부에 나타난 “秺侯之忠孝淳深”(투후 지충효순심)
반악의 서정부에서 투후(秺侯)의 정체를 알려주는 구절은 문무대왕 비문 구절 속에 등장하는 “투후 제천지윤”의 “투후”를 설명해주는 가장 결정적인 사료에 해당한다. 서정부의 그 구절은 다음과 같다: “臨危而致勇奮投命而高節亮暨乎秺侯之忠孝淳深陸賈之優游宴喜”.
이 반악의 서정부 구절을 번역하면, “목숨이 위태로울 지경의 큰 위기 상황에서 지혜와 용기를 발휘한 사람이 있고, 아까운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곧은 절개를 드러낸 충신이 있다. 이러한 사람 가운데 나라에 충성하고 부모에 효성이 돈독했던 투후가 있고, 물러날 때를 알고서 조용히 낙향하여 말년까지 유유자적 은일의 삶을 누렸던 육가가 있다”.
여기서 투후는, 韓信(한신)과 같은 황제의 한왕(韓王)의 후손으로 동이족 출신으로서 무공을 세우고 서쪽나라 홀로된 기러기-(퇴당 투후입사 서융고신(頹當 秺侯入仕 西戎孤臣)-가 되었던 한퇴당(韓頹當)을 이어받은 사람이 상구 성이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한서에 기록된대로 秺侯(투후)는 商丘成(상구성)을 지칭한다.
[1] 토인비,“Each time a nation has lost faith in its religion its civilisation has succumbed to domestic social disintegration, foreign military attack or economic enslavement. The civilisation that has fallen as a result of the loss of this faith has been replaced by a new civilization inspired by a different faith or relig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