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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한국의 학자들은 현실 문제를 해결해 내지 못하는가?

추홍희블로그 2022. 8. 18.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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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왜 한국의 학자들은 현실 문제를 해결해 내지 못하는가?

지금까지 자신을 지탱해준 지적 토대 그 기반 자체가 무너졌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학계 내부에선 아직까지도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지 않을까? Why? 왜 그럴까? 대체로 학자들은 현실 문제를 해결하는데 그 속도가 느리다. Why? 오래 전에 정립된 자기 자신들의 이론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기존의 이론과 모델과 시각으로는 현실을 해결할 수 없는 경우가 일어난다고 해도 자기들의 이론/모델/시각을 수정하는 데에 큰 어려움을 겪게 된다.

왜 그런 어려움을 겪게 되는가? 그 이유는 학자들이 적용하고 있는 이론과 모델은 도구(tools)이기 때문이다. 학자들은 도반공 목수들이 쓰는 콤파스나 잣대처럼 자신들이 쓰는데 평생 익숙해진 도구와 연장을 결코 버릴 수가 없다. 또 교실에서 배우는 학생들에게 교편만 잡는 일을 하다 보면 실제로 연구나 최신의 동향이나 실제 세상 돌아가는 실무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 경향이 크다. 그러므로 설령 학자들은 현실적인 세상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현실에 대한 이론의 응용 문제에 무감각해져도 자신들이 손실을 보는 경우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학교 선생은 연구 결과로 책임을 지는 자리가 아니라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에 대한 보답으로 교육부에서 월급을 타먹고 살아가는 부류이다. 이런 이유로 인해서 학교 선생들이나 학자들은 현실 적응 속도와 사고패턴의 변화 속도가 매우 느리다. 학계는 위기의 원인을 찾으며 고민하다가 시간만 허비하고 마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다.

케인즈의 유명한 말은 그의고용, 금리, 통화에 대한 일반 이론저서(1936)에서 언급한 다음과 같은 구절이다.

경제학자들이나 정치지도자들의 사고는, 그들이 맞거나 틀리던 간에 상관없이, 통상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더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 실제로 세상은 이들에 위해서 움직여진다. 어떤 이념에 영향을 받지 않고 있다고 자신하는 실무자들도 사실은 이미 한물간 경제학자들의 노예가 되어 있다. 스스로 이론을 창안했다고 지금 광적인 칭송을 받고 있는 학자들도 사실은 몇 년 전에는 아무런 쓸모가 없던 책에서 핵심을 베껴온 것이다.”

케인즈가 비판한 실물 경제 당국자들은 그나마 조금 나은 부류에 속한다. 왜냐면 비록 아무런 쓸모가 없던 구닥다리 책에서 베껴온 것이긴 하지만 그래도 그들은 현실 문제를 해결하려고 고민을 한 흔적은 있지 않는가? 자신의 이론이나 지식이라고 해도 그것이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것도 아니고 그 또한 어딘가에서 누군가에게서 받아온 예전의 구닥다리의 가운데서 배우고 쌓아 올린 것이다.

역사가 발전하지 않는다면, 인류의 진보와 생존이 보장될 수 있었겠는가? 

진실의 추구가 없다면 어찌 인류의 생존이 가능하겠는가?

 

 

한국의 문자-한문

한국은 한자를 썼던 고대 언어와 문화를 갖고 있고, 또 현대는 한글을 쓰고 있기 때문에, “단어를 바꾸는 것은 우리를 둘러싼 세상과 환경에 대한 생각을 바꾸는 것이라며 문헌의 본문 의미를 고수하려는 문언주의- textualism-의 사고가 적용되기 힘들 것이다. 따라서 오늘날의 한글로 이해되기 위해서는 번역이 필요한 상황이다.

요사이는통섭이라는 말이 자주 쓰이는데, 아마도 그것은 폭넓은 상식과 깊은 전문성-어찌 보면 이 둘은 상호 배타적인 성격을 갖는다-의 지식을 추구하는 경향 (통합, 융합, 통섭 등의 단어로 표현된다)을 강조하기 때문인 것 같다.

휴얼(Whewell) 1840“consilience”라는 단어를 선택한 이유가 기존의 잘 알려진 concordance 합치coherence 일관성, convergence 통합이라는 단어 대신 잊혀진 단어인 “consilience”가 오히려 희귀하여 그 의미가 훼손되지 않고 잘보전 preservation’ 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는데, 한국의 고대 사회 원형이 찾아지는 금석문을 해석할 때 휴얼의 설명이 딱 들어맞는 느낌이다.

 

사람의 본성은 창조적인 일을 남기려 하지 모방하는 일은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 나 또한 마찬가지로 입 안에서는 맴도는 잠자리처럼 수없이 맴돌다 겨우 새로운 표현을 하나 찾아내었다고 여기기도 했지만 단 한 줄의 하이쿠 표현도 제대로 해내기가 쉽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앞서간 사람들의 글을 읽고서 모방 추종하여 어떤 큰 작업 하나 이뤄내지도 못했다. 다만 풀무질만 하였고, 시간의 낚시질만 한 것 같다.

남의 텍스트를 그대로모방 copy” 하는 일을 창조적이 일이라고 내세우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또 타인이 이미 발표한 것을 모방하여 공표하는 것은 저작권법이 일부 허용하는 범위를 넘어서 허용되지도 않는다. 그 이유는 모방은 창조적인 일과는 다르고, 창조적인 일은 진짜이지만, 모방은 가짜이고, 가짜로는 인간 사회의 발전을 이룰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인간은 창의적인 존재로서 자기만의 것을 가꾸고자 하는 바램을 가지고 있다. 정치철학적인 의미로 말한다면 자유와 속박의 문제로써 자유는 창의이고, 속박은 모방에 해당된다. 모방과 창조적인 일을 비유로써 쉽게 설명하는 데 벌꿀의 예를 자주 들고 있다.

 

에라스무스- 모방과 창조

 

에라스무스는 누구인가? 서양에서 키케로(Marcus Tullius Cicero)를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키케로는 기원전 (BC 106-BC 43) 사람이니 동양의 한무제 (BC 156-BC 87) 보다 조금 늦은 시기의 사람이고 우리나라로 치면 신라 시조와 비슷한 때에 살았던 인물이다. 한편 네덜란드 사람 에라스무스(1466-1536)는 토마스 모어하고도 교류했는데 키케로의 시대하고는 약 1500여 년의 간격이 있는 인물이다. 마치 신라 진흥왕(526-576)하고 약 1500여 년의 시간적 간극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이런 시간적 간격을 갖고 있던 에라스무스가 키케로의 책을 번역할 때 어떻게 번역해야 한다고 생각했는지 그에 대한 견해를 알아보는 것은 매우 유익하다. 그의 생각은 오늘날 나의 생각에 어떤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가 없다.

 

Decorum 데코룸

 

1500년이라는 시간뿐만 아니라 그리스와 네덜란드라는 공간마저 차이가 나는데 이를 어떻게 해석하고 표현해야 하는 것이 옳을까? 키케로가 살았던 당시의 표현 방식에 맞도록 바꾸어 쓰면 될 것이 아닌가? 하지만 에라스무스는 키케로의 어휘와 문체에서 과감하게 탈피하여 현재를 담을 수 있는 언어로 수정해야 된다고 생각했다. 그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것은 키케로가 사용했던 언어 자체를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키케로의 정신(spirit)을 판단하고 모방하면 가능하다고 본 것이다.

 

에라스무스는 키케로가 당시 시대를 휘어잡을 만큼 웅변에 능했던 이유는 키케로가 언어를시의적절하게 구사했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시의적절함은 라틴어 개념 “Decorum”(데코룸)-(시대의 흐름을 거스르지 않고 당 시대가 요구하는 시대정신을 살펴서 모두가 공감하는 예의 바르고 올바른 태도를 견지하는 것)을 번역한 단어이다. 키케로의 명성이 시의적절한 언어 구사에서 나왔다면 당시 16세기 네덜란드 사람들에게 통하는 말로 재번역되어야 한다는 의미를 얻을 수 있었다.

 

1500여 년 사이에모든 것이 바뀌었다” (“video mutata omnia”)는 것인데 어떻게 그대로 전달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언어도 바뀌었고, 사람도 바뀌었는데 어떻게 그 무엇을 전달할 것인가? 정신이 살아 있다면 올바른 의미가 전달될 수 있을까? 이건 불을 전하는 인간의 지혜를 논한 장자의 이야기로 쉽게 설명된다. 

 

불을 밝히는 지혜는 어떻게 이어지는가?

 

장자에 이런 말이 있다. “指窮於爲薪 火傳也 不知其盡也”: 손가락으로 땔나무를 계속 때는 것은 한계가 있으나, 불을 전파시키는 데에는 그 한계가 없다. 하나의 장작나무는 사람의 손가락에서 의해서 지펴진 불길을 타고 불을 밝히다 재만 남기고 꺼진다. 하지만 인간은 다시 불씨를 살리는 지혜를 통해서 영원히 불을 밝혀 왔다. 형체는 없이 사라진다 해도 그 정신은 불멸의 빛으로 영원히 살아남는 것이다. 우리의 삶도 이와 마찬가지이리라.

성은 허물어졌고 사용하는 언어도 바뀌었지만 정신은 살아 숨쉬어 대대로 전해진다는영원불멸의 특성을 파악해 낸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하여 에라스무스는 키케로의 저서를 살아 숨쉬는 언어로 다시 재현해 보려고 노력했다. 그의 논리와 방법론은 한국의 역사를 해석하는데 좋은 참고가 되지 않을 수 없다.

 

벌꿀의 비유

 

에라스무스가 들고 있는 벌꿀의 비유를 읽어 보자.

“자연계에서 한 예를 보자. 벌은 벌집에 꿀을 모이기 위해서 하나의 수풀에서 재료를 모와 오는가? 그게 아니라 벌은 온갖 종류의 꽃, 잡목, 수풀 모두를 정말 열심히 날아다니지 않는가? 또 벌이 모아온 것 그것이 바로 꿀이 되는 것도 아니다. 벌은 그들이 모아온 재료를 자신의 기관을 이용하여 액으로 변화시킨다. 그리고 얼마 후에 새로운 것이 만들어진다. 이렇게 새롭게 만들어진 것은 이전의 꽃이나 수풀이 가졌던 향기나 맛은 가려낼 수도 없을 정도로 모든 재료들이 적당한 비율로 서로 혼합된 것인데 벌은 이렇게 해서 새로운 물건을 만들어 낸다. 이와 마찬가지로 암양은 한 가지 풀로 뜯어 먹고서 우유를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다. 암소는 온갖 가지 풀을 뜯어 먹고 또 풀에서 즙을 짜내는 것이 아니라 그 즙에서 변화된 우유를 생산해 내는 것이다.” (Erasumus, Ciceronianus (The Ciceronian) at 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