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무왕릉비 비문 뒷면 제5행-제19행
5행
□□□□□□□□□□□□□□□□□燒葬卽以其月十日大
燒葬 화소장
燒葬(소장)은 불탈 燒소, 연소하다의 뜻이니, 火葬 화장으로 장례식을 치르는 것을 말한다. 력도원의 수경주水經注에 “有一道人命過燒葬 燒之數千束樵 故坐火中”이라는 구절이 보인다.
燒葬(소장)은 평소 고인이 쓰던 물건을 불태우는 것-焚燒送葬物(분소송장물)을 지칭하기도 한다.
화장식 장례는 순임금, 도공의 신 범려와 서시가 그러했듯이 서주의 도교적 종교 장례 문화와 연결되어 있다. 기원전 21세기 이전의 오랜 역사에 걸친 장례식이었다. 당연히 불교가 전래되기 이전부터 존재했던 장례식 방법이다. 삼국사기에서 문무왕 유언을 전하면서 “依西國之式 以火燒葬”이라고 기술했는데, 이에 대한 국편위는 “서국(西國)의 의식에 따라 화장(火葬)을 하라”라고 번역하고 서국에 대해서 “西國은 인도를 가리키는데, 인도에서 발상한 불교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시신을 불태워 火葬하였다. 여기서 말하는 서국의 의식은 바로 火葬을 뜻한다”라고 주해를 달았다. 하지만 화장식 장례 방법은 불교의 전래 훨씬 이전부터 존재했던 고유의 장례 방법에 해당하기 때문에 인도로부터 전래된 불교의 영향만이 아니다.
“西國”(서국)이라는 단어는 ① 춘추공양전에 나오는 “周公 東征則西國怨 西征則東國怨”이라는 구절에서 보이는 뜻처럼 서쪽 지방에 분봉받은 제후를 뜻한다 ② 중국의 서쪽 지방 西域 ③ 불교 발상지 ④ 삼성퇴 유적이 발견된 그리고 제갈량과 유비의 촉한으로 잘 알려져 있는 西蜀서촉 즉 오늘날 사천성 지방에서 건설된 나라를 의미한다. 유백온의 “촉가” 즉 촉나라 상인들이라는 표현, 소식의 싯구에 “諸葛 來西國 千年愛未衰 今朝游故里 蜀 客不勝悲”이라는 구절에서 나타나듯이 西蜀(서촉)을 지칭한다. 서정주 시인의 “귀촉도” 시가 있는데 여기의 귀촉도의 구체적 역사적 대상이 촉나라이다. 오늘날 세계 최대의 댐인 삼협대가 위치한 거대한 양자강의 물길에서 삼성퇴의 문명이 일어났던 그곳을 말한다. 문무왕의 선조가 유비의 촉한과 직접적인 혈연관계로써 역사상 나타나므로 문무왕 유언에서 말하는 “서국”은 서촉 또는 서주로써 이해된다. 서주는 “徐方”(서방)으로 동해왕의 영토이었고, 상나라의 태동지였고 공자의 노나라 맹자의 추나라 그리고 도공의 범려, 또 그 이전의 동이족 백이숙제의 고죽국, 양나라 중심지 양산이었다. 서국을 단지 불교의 발상지 인도를 가르키는 인도와 동의어로 이해되어서는 아니된다.
卽以
卽以(즉이)는 遂以(수이)와 같은 뜻의 낱말로써 ‘무엇무엇에 이어서’ ‘곧바로’ 뜻이다. 유언에 따라 모년모월모일 어디에 장사지냈다는 그런 뜻으로 묘지명에 흔한 표현이다. 진자앙이 쓴 묘지명 가운데 “即以某年月日 葬於西嶽習仙鄉登仙裏之西麓 遵遺命也” 표현이 있다.
“卽以”(즉이)라는 말을 쓰면서 보다 구체적으로 장례식 장면을 설명하고 있는 비문 행의 내용일 것으로 추측된다. 따라서 遂以送王 이런 내용이 뒤따를 것 같다. 送喪(송상)은 喪家行列(상가행렬), 영구를 장지로 보내는 것을 이른다. 같은 동의어로 送殯(송빈), 送葬(송장)이 있다. 사람이 돌아가시면 즉 상을 당하면 빈소를 차리고 조의를 받다가 일정 기간이 지나면 안장식을 치르게 되는데 이 망자를 이승에서 저승으로 마지막으로 떠나 보내는 날을 送王之日(송왕지일)이라고 한다.
따라서 망자를 떠나 보내는 송왕의 장례식을 화장식으로 거행했다는 뜻이다. 화장의 장례식을 지금에서는 불교식이라고 대부분 알고 있지만 화장식은 불교가 들어오기 훨씬 이전부터 존재했었던 중국 고유의 장례법에 속했다는 사실을 참고하라. 중국 고유의 종교는 도교와 유교이다. 불교는 다신교에 속하는 힌두교가 주된 종교인 인도에서 유입된 외래종교이었다.
其月十日
“其月十日”(기월10일)이라는 문장 표현을 두고서 삼국사기에서 서술하고 있는 대로 문무왕이 서거한지 “열흘만에 장례를 치르었다”는 기사는 어처구니 없는 해석이다. 왜냐하면 문무왕릉 비문에서 분명하게 국장으로 치르었다고 “王禮”(왕례)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적고 있기 때문에, 국장을 10일 이내에 치룰 수는 결코 없으므로 그런 삼국사기의 기사는 조작에 다름 아니다. 사람이 운명하면 빈소를 차리고 염을 하고 조문객을 맞는 등 국가 예법이 존재하기 때문에 장례식 이전에 해야 될 예법대로 최소한의 적법절차를 지켜나가야 하기 때문에 국장을 10일만에 치룰 수가 없었다.
孟冬十月
여기서 “其月”이라는 표현은 결자된 부분에서 설명하고 있는 것을 전제하는 표현이다. 추측컨대 당태종의 예처럼 4월 장례식 즉 7월 달에 운명한 사람을 4개월에 걸쳐서 국장을 준비하고 안장식을 하는 것이 상식적인 시간적 개념이므로 그해 10월 달에 화장식을 거행했다는 것으로 이해된다. 그러므로 앞에서 孟冬(맹동)이라는 시간개념을 기술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맹동은 음력 10월 달을 말한다. 그래서 “孟冬十月”(맹동시월)이라는 관행적 표현으로 흔히 쓴다. 지금껏 전통으로 내려오는 조상들의 시제를 10월 달에 지내는 것을 볼 때 음기숙숙한 음력 10월달은 장례식 치르기에 가장 좋은 시기에 속한다. 맑은 하늘에 아직 눈이 내리기 전 숙연한 음력 10월의 기상을 상기해 보라. 결자된 부분에서 맹동이라는 음력 10월을 지칭했을 것으므로, “孟冬十月”이라는 반복적 표현 대신 시간 대명사 기(其)로 처리하여 “기월(其月)”-그달을 썼을 것으로 짐작된다. 맹동시월이라는 표현이 있었기에 기월 10일이라는 표현이 자연스럽게 쓰여지게 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기월10일은 문무왕이 운명한 음력 7월달이 아니라 맹동10월 즉 음력 10월 10일을 지칭한다고 해석된다.
망자의 사망시간이 중요하고 장례식 또한 길일을 택일해서 하기 때문에 이렇게 장례기일을 중요하게 취급하여 명시해 놓고 있는 것이다. 전쟁의 개시 날자도 택일을 하고-이런 의식은 진흥왕 순수비에서도 확인된다. 상량식도 택일을 하고 장례식도 택일을 하는 이유는 그것을 미신이라고 치부하기 보다는 기상조건 일기예보의 확률에 따라 예식을 치르려는 가장 합리적인 기후경제학적 요인이라고 평가하는 것이 타당하다. 물론 심리학적 요인도 있겠지만 우선 기상요건을 미리 살펴보는 합리적인 행동에 속한다.
음력 10월 달을 다른 명칭으로 “孟冬”이라 표현하는데, 당시는 농력에 따라 맹동이라는 표현이 익숙하게 쓰였지, 지금처럼 아라비아 숫자 12345678910가 익숙한 달력은 아니었다. 결자부분을 추측해 본다면, 孟冬繁霜 陰寒氣鬱寂肅清 이라는 의미의 문장이 이 부분에 들어 있을 것 같다.
구당서 본기 권5 고종하 개요원년 681년 10월 기사를 보자.
“冬十月 丙寅朔 日有蝕之 乙丑 改永隆二年為 開耀元 曲赦定襄軍及緣征突厥官吏兵募等 丙寅 斬阿史那伏念及溫傅等五十四人於都市 丁亥 新羅王金法敏薨 仍以其子政襲位”.
개요원년 음력 10월달 정해일은 농력 서기 681년 10월 22일 이를 양력으로 환산하면 12월 7일이 된다. 개요원년 동10월 정해일에 신라왕 김법민이 서거했고 그의 아들 정이 왕위를 이었다고 적혀있다. 681년 음력 10월 10일은 양력으로 11월 25일 乙亥을해일이 된다. 따라서 문무왕릉 비문의 10월 10일에 장례식을 치르었다는 구절은 구당서의 문무왕 서거일자와 거의 비슷한 날짜가 된다.
그날 눈발이 날렸다는 해석 또한 첫눈이 내리는 계절이 11월말경이 되므로 당시의 기상 기후와도 거의 일치된다. 삼국사기에서 기록한대로의 “屬纊之後十日”(속광지후십일) 즉 7월 1일 운명했으므로 7월 10일이 문무왕의 장례식이 거행된 것이 아니라 겨울철 음력 10월 10일이라고 합리적인 추측을 내릴 수 있다. 그러므로 문무왕릉 비문의 “其月十日”(기월10일)은 681년 음력 10월 10일로 추측한다.
맹동10월 즉 음력 10월 10일에 장례식을 거행했을 것으로 추측되고 또 이 날은 하얀 눈발이 흩날렸다고 당일의 날씨 상태를 추측해 볼 수 있다. 장례식 때 하얀 눈발이 날리는 날이면 상서로운 징조로 여겨진다. 사랑하고 존경했던 사람을 하얀 자작나무가 타듯이 불태우면서 저 세상으로 보낼 때의 마음 속 슬픔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하얀 눈발에 적셔지지 않을까? 뭇 사람의 사랑과 존경을 받았던 사람의 마지막 길을 어찌 하늘인들 무심할 수 있겠는가? 우공이산이요 천지가 진동한다는 셰익스피어의 희곡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 삶 속에서 직접적으로 확인될 것이다.
大
여기의 글자 판독을 일부는 “火”(화)로 판독했는데, 다수는 유희애의 판독과 마찬가지로 “大”로 판독했다. 나는 유희애의 판독을 따르고자 한다. “大”라고 판독하면 아마도 “大王”이란 지시대명사로 추측할 수 있다. 따라서 글자판독을 “火”로 하건 “大”로 하건 여기 이 문맥상의 의미 내용은 어느 정도 비슷하게 추측 가능해 진다.
火자 다음의 결자부분을 추측해 본다면 아마도, 火燒之數千束樵 또는 火焚之數千積薪 이런 내용일 것 같다. 火焚之數千積薪 이런 구절로 화장식의 구체적인 모습을 묘사했을 것 같다. ‘수천 다발의 땔나무 위에 시신을 안치하고서 불을 태워 화장식을 거행했다’. 이런 화장식의 모습은 2017년 거행된 태국 푸미폰 국왕의 화장 장례식이 어느 정도 전형에 가깝지 않나 생각된다. 유투브로 그 장면을 보면 아마도 문무왕릉 비문의 결자된 부분의 내용을 상상하고 추측하는데 도움이 된다.
5행 요약
燒葬 | 문무왕을 마지막으로 떠나 보내는 장례의식을 화장火葬식으로 거행했다 |
卽以其月十日 | 이날은 맹동시월 즉 음력 10월 10일이었다 |
大 - (火燒之數千束樵) 火焚之數千積薪) | 대(왕의 마지막 가는 길을 수천 다발의 땔나무 위에 시신을 안치하고서 불을 태워 화장식을 거행했다) |
6행
妣▨▨▨天皇大帝」
천황대제(天皇大帝)께서 …
如喪皇妣耀魄寶 天皇大帝」
수서《隋書》 禮儀장에 “五时迎氣 皆是祭五行之人帝太皞之屬 非祭天也 天稱皇天 亦稱上帝 亦直稱帝 五行人帝亦得稱上帝 但不得称天”으로 기술되어 있고, 진서 천문지에서 천황대제 자리를 “勾陳宮中一星曰天皇大帝 其神曰耀魄寶 主御群靈執萬神圖”으로 기술하고 있고, 또 661년 양형이 지은 “渾天賦”(혼천부)에 나오는 “天有北辰 衆星环拱 天帝威神 尊之以耀魄 配之以勾陳” 구절이 천황대제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이러한 천황대제의 별자리 모습은 무측천의 승선태자비에서 묘사하고 있는 모습과 거의 대동소이하다. 북극성 자리 요백보에 대해서 유교에서는 정현의 주해와 같이 “昊天上帝”(호천상제) (以為天皇大帝者 耀魄寶也)로 부르고, 도교에서는 “勾陳上宮天皇大帝”로 부른다.
妣 -如喪考妣 여상고비
考妣(고비)는 돌아가신 부모를 지칭하는 단어이다. 순임금님이 돌아가시자 백성들이 마치 자기 부모 상을 당한 것처럼 슬퍼했다는 기록이 상서 순전에 보인다. “帝乃殂落 百姓如喪考妣”. 제갈량이 유비의 죽음을 맞이하는 삼국지의 기록에도 똑같은 “如喪考妣”(여상고비) 구절이 있음을 참조하면 문무왕릉 비문에서 결자된 부분 “ 妣” 글자는 여상고비(如喪考妣)의 구절이 아닐까 추측된다. 순임금님이나 삼국지 촉한 황제 유비의 죽음 때 사람들이 보여준 것처럼 문무왕의 서거를 ‘마치 자기 부모의 상을 당한 것처럼 진심으로 슬퍼하고 애도했다’는 내용의 문장을 기술했을 것으로 보인다.
“古今圖書集成”(고금도서집성)에 곡을 하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는 문장을 읽어보면 애곡을 표하는 그 모습이 선하게 그려진다. 송서에 보이는 문장을 옮기면, “帝嗟悼之 河朔之人 多望柩而泣”, 문상한 사람들 모두가 눈물을 흘렸다. 왕도 탄식하고 애도를 표했고, 고향의 하삭 사람들 다수가 영전 앞에서 눈물을 흘렸다. 삼국유사에서의 표현과 비슷한 말로 “望柩流涕”라는 표현이 그런 애도의 표시 장면이다. “國人聞者 皆流涕”에서 유체는 눈물을 흘리다의 뜻이다. 애강남부에서의 표현인 悽愴流涕(처창유체)가 같은 뜻이다.
天皇大帝
문무왕릉 비문 뒷면 6행에 나타난 구절인 “ 天皇大帝 “에 대해서 추사는 여기의 “천황대제”의 의미를 올바로 해석해 내지 못한 결과 문무왕릉 비문의 건립 시기를 잘못 추정했다.[1]
왜 추사 김정희는 “천황대제”의 의미를 잘못 해석했는가?
여기서 “天皇大帝”(천황대제)는 종교적인 의미가 있는 종교상 어휘로써 이해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 추사 김정희처럼 관직명이거나 특정인의 시호로 이해하는 경우, 해석의 오류를 범하고 말 위험성이 크다. 추사는 문무왕릉 비문 파편이 발견된 1796년(정조 20년) 이후 조금 먼 시간이 지난 시점인 1817년에 경주를 직접 답사하고 그 때 사천왕사에서 문무왕릉 비문 하단 부분을 직접 수습했다고 밝혔다. 이후 추사는 “天皇大帝”(천황대제)라는 단어에 주목하여 문무왕릉비가 687년 8월 25일 혹은 9월께 건립되었을 것으로 주장하는 논문을 발표했다. 추사의 이 논문에 따르면 天皇大帝(천황대제)라는 명칭은 당나라 高宗(고종)의 시호이므로 당고종이 운명한 해인 683년 이후에라야 가능하다는 논리에 입각하여 684년 이후부터 신문왕 재위 기간 중 “景辰(경진) 25일”을 만족시키는 날짜 즉 일간지를 추적하여 그에 해당되는 687년 8-9월 무렵이 문무왕릉 비문의 건립 시기라고 주장한 것이다.
당 高宗(고종)은 당나라 제3대 황제로 649년부터 683년까지 삼십사년 동안 임금으로 지냈다. 책부원귀에 따르면, 묘호(廟號)는 고종이고 시호(諡號)는 天皇大帝(천황대제)이다. 추사는 유배 귀양살이로 많은 세월을 보내기는 했지만 평생 행정관료로 살아온 그의 신분과 가계의 배경으로 보아 정치행정적 용어에 보다 큰 관심을 갖고 민감하게 반응한 것일 아닐까? 추사는 그같은 자신의 출신 배경과 유교의 한계를 초월하지 못한 그의 의식 구조의 제한성 때문에 자신이 직접 답사까지 하면서까지 비범한 관심과 흥미를 갖고 추적하면서 문무왕릉 비문 해석과 관련된 논문을 발표했지만 안타깝게도 잘못된 결론에 도달하고 말았다는 사실은 유감이지 않을 수 없다. 문무왕릉의 비문에서 “천황대제”의 단어를 종교적 의미 즉 도교에서의 천황대제를 지칭하는 의미로 이해했다면 아마도 비문의 진실적 발견에 보다 근접했을 텐데 하는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천황대제"의 의미에 대해서는 진서 천문지를 읽어보면 바로 알 수 있다. 이러한 천문지 사료에 설명된 자료를 바탕으로 천황대제를 별자리 천문지식 영역에서 이해하면 결론이 도출되는데, 이에 따라서 비문에서 명시한 “천황대제”는 당고종의 시호를 지칭하는 말이 아니라 도교에서 말하는 종교적 의미 그리고 별자리 천문 지식 영역에서의 “천황대제”를 뜻한다.
천황대제와 선계 승천
천황대제가 어떤 힘을 갖고 어떤 지위에 있는지에 대해서는 백제평정비(大唐平百濟國碑銘)에서도 묘사되고 있다. 하지만 그같은 묘사는 천황대제를 바르게 묘사한 것이 아니라 왜곡되게 표현했음으로 올바른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무측천이 지은 승선태자비의 비문 구절 가운데 천황대제의 모습을 진실되게 묘사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것을 보자.
“寥廓出寰區之外 驂鸞馭鳳 升八景而戲仙庭 駕月乘雲 驅百靈而朝上帝 元都迥辟 玉京為不死之鄉 紫府旁開 金闕乃長生之地”.
이 구절을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인간세상 속세를 벗어나니 하늘은 넓고 탁 트여 광활하구나. 새들과 함께 신선의 길로 날아가네. 화려한 무지개색깔 그곳을 넘어 신선이 사는 선경에 다다르네. 달나라 수레를 타고 구름을 타고 꾀꼬리 새들(새는 천사를 의미함)을 이끌고 옥황상제를 뵈올 듯한데. 신선이 사는 그곳은 저 멀리 아득하네. 달나라는 영원히 죽지 않는 불사지향이라고 했는가? 신선이 사는 그곳으로 들어가는 문은 사방으로 열려 있다지. 신선이 사는 불로장생의 그곳 말일세.
寥廓(요곽)은 空曠(공광), 深遠(심원)하다, 널리 탁 트여 있다의 뜻이고, 寰區(환구)는 人世間(인간세상) 즉 속세를 뜻하고, 鸞鳳(란봉)은 신비스런 란새와 봉황새를 합쳐 부른 말이고, 驂馭(참어)는 몰다, 이끌다의 뜻으로, 驂鸞馭鳳(참란어봉)은 仙道飛升(선도비승)의 뜻이다. 八景(팔경)은 八景勝(팔경승) 즉 八采景色(팔채경색)의 뜻이고, 仙庭(선정)은 仙境(선경)의 뜻이고, 上帝(상제)는 天上萬物主宰神(천상만물주재신)을 지칭하고, 驅(구)는 몰다. 빨리 달리다의 뜻이며, 百靈(백령)은 百靈鳥(백령조) 즉 우리말로는 새목소리가 아름다운 종달새나 꾀꼬리에 해당한다. 玉京(옥경)은 달(月亮-월량)의 별칭이고, 紫府(자부)는 仙人居所地(선인거소지)의 뜻이고, 旁開(방개)는 廣開(광개), 四旁展開(사방전개)의 뜻이며, 元都(원도)는 神仙居所地(신선거소지)의 뜻이고, 金闕(금궐)은 仙人居所地(선인거소지), 迥(형)은 멀다의 遠(원), 먼 곳에 숨어 있다의 뜻이고, 長生(장생)은 장생불로, 영원히 사는 것을 뜻한다.
신선이 거처하는 곳은 주위로 산봉우리가 줄줄이 보이고 일출을 볼 수 있으며 아래로 구름바다가 보이는 그런 깊은 산 속 벼랑 끝이라고 말하지 않는가? 북송의 황정견이 도를 묘사하는 구절 “萬丈祝融插紫霄 路當窮處架仙橋 上觀碧落星辰近 下視紅塵世界遙”-이 구절 또한 승선태자비에서 묘사하는 선계의 모습 그것과 의미가 상통한다.
한편 백제평정비라고 말하는 그것에 실려 있는 구절의 표현을 살펴 보자. “原夫皇王所以朝萬國 制百靈 清海外而舉天維 宅寰中而恢地絡 莫不揚七德以馭遐荒 耀五兵而肅邊徼”. “대저 천자(天子)가 만국(萬國)에게서 조회를 받고 백령(百靈)을 지배하는 까닭은 해외(海外)를 맑게 해서 천유(天維)를 일으키고 환중(寰中)에 자리를 잡아서 지락(地絡)을 넓힘으로써, 칠덕(七德)을 드날려 먼 오랑캐의 땅을 어거하고 오병(五兵)을 빛내 변방을 고요하게 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여기의 백제평제비의 한글 번역은 국편위의 번역을 그대로 가져왔다).
승선태자비에서의 “百靈”(백령)은 백령조를 지칭하므로 즉 아름다운 새소리를 내는 종달새나 꾀꼬리를 지칭하는 의미로 쓰이고 있는데 반해, 백제평정비에서의 백령의 의미는 신선이 사는 곳 그런 풍류에 대한 의미는 사라지고 그와는 전혀 다른 의미로 사용하고 있음을 파악하라.
도교에서 삼청존신은 원시천존 영보천존 도덕천존이다. 도교에서 天皇大帝(천황대제)는 병권을 쥐고 있어 핵심적인 파워를 행사하는 사람이고 그러기에 높은 위치에 존재한다. “성조황고” 선덕여왕이 두모신앙, 자미신앙, 부작신앙에서 병권을 장악한 천황대제이었다. 구진상궁 천황대제는 병권을 쥐고 있는 그 파워가 말해주듯, 궁궐의 중심부에 자리잡았다. 화덕진군인 성모 두모원군에 대해서는 “太上玄靈斗姆大聖元君本命延生心經” 경전을 참조하라.
문무왕릉 비문에서 천황대제의 의미는, 장례식에 참석한 래회장자(來會葬者)들이 시신이 안치된 수천다발의 나무 쌓인 화장식 주변을 빙 둘려 쌓고 지켜보고 있는 마지막 가는 길인 송왕의 의식을 마치 천사들과 신하들에 함께 데리고 옥황상제에게 올라가는 승선의 모습에 견주어 보고 그 화장식 거행 장면을 실감나게 묘사한 것으로 이해된다. 승선태자비의 표현대로, “仙庭 駕月乘雲 驅百靈而朝上帝”의 모습으로 그리며 “群臣陪臨 佇立以泣”(군신배림 저립이읍)의 화장 장례식 거행의 모습을 묘사한 것이다.
따라서 천황대제는 추사가 잘못 파악한 대로의 당고종의 시호로써 해석하는 것은 옳지 않다. 천황대제는 정치행정적인 용어의 의미로써 쓰인 것이 아니다. 비문에서 천황대제라는 말은 화장식의 거행 장면 모습을 신선이 하늘을 노니는 승천-망자의 죽음에 대한 완곡적 표현법- 모습에 비유하는 표현 기교로 쓰였다. 따라서 결자 부분의 문장 내용은 아마도 이러한 신선의 원유 모습을 그려 내고 있는 내용일 것으로 추측된다. 신선의 원유 모습은 굴원의 초사 “遠遊”(원유)에서 잘 그려 놓고 있다. 그것을 음미해 보라. 수많은 래회장자들이 빙 둘러싸고 있는 가운데 화장식이 거행되면 나무다발에 불이 당겨지고 그러면 하얀 연기가 마치 구름처럼 피어 올라가는데 그런 엄숙한 장면에서 망자가 신선처럼 하늘나라로 구름을 타고 올라가는-가월승운하고, 그렇게 신선이 천상낙원으로 승천하는 모습이 저절로 그려지지 않는가?
耀魄寶 天皇大帝
위와 같이 천황대제를 이해하면, “ 妣 天皇大帝”의 결자 부분의 세 글자는 “耀魄寶 天皇大帝”일 것으로 추측된다. 요백보(耀魄寶)는 구진상궁 천황대제를 지칭하는 대칭어임으로 요백보와 천황대제는 같은 의미이다.
耀魄寶(요백보)는 사전에 찾아보면 별자리 天帝星(천제성)을 말하는데 이 별은 北極五星(북극오성)에 속한다. 星經(성경)의 천황조에서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天皇大帝一星 在鉤陳中央也 不記數 皆是一星 在五帝前座 萬神輔錄圖也 其神曰耀魄寶 主御群靈也”. “主御群靈”이라고 말하고 있으므로, 승선태자비의 “驅百靈而朝上帝”이라는 구절의 묘사하고 상통한다. 晉書(진서) 천문지에서도 “鉤陳口中一星曰天皇大帝 其神曰耀魄寶 主御群靈 執萬神圖”-이와 같이 설명하고 있다. 당나라 양형이 611년 지은 渾天賦(혼천부)에서 “天有北辰 眾星環拱 天帝威神 尊之以耀魄 配之以勾陳”으로 표현하고 있는데, 마찬가지로 주위의 별들을 둥근 환으로 거느린 중앙 별자리가 요백보 천황대제이다. 북극성은 북두칠성에서 기준점으로 찾아지는 별이고, 이 북극성이 후대의 문창성과 같으냐 아니면 다른 별자리이냐를 놓고 갑론을박할 필요는 없다. 하늘의 뜻을 전하는 사자 즉 천사가 문창성이 되는 거고, 그런 천사들의 별들을 거느리는 중심별이 요백보 구진상궁 천황대제이기 때문이다. 구당서 예의지를 보면, “圓丘所祭昊天上帝為北辰星耀魄寶”, 원구단에서 제를 지내는 대상 호천대제를 “요백보”라 부른다고 적혀 있다. 호천은 유교에서 부르는 명칭이고 주나라의 상징이다. 도교에서는 옥황상제라고 부른다. 北辰星拱(북진성공)이라고 말하는데 북진-북극성은 항상 제자리에 있기 때문에 뭇별들을 빙 둘러 앉은 형태로 거느리고 있다-群星環繞. 천황대제 앞에 “耀魄寶” (요백보)라는 말을 덧붙인 그 이유는 “천황대제”라는 말의 해석에 오해가 안 생기도록 특정하여 강조한 의미가 있다.
6행 요약 | |
妣 (如喪考妣) |
(문무왕의 서거를) 마치 자기 부모의 상을 당한 것처럼 진심으로 슬퍼하고 애도했다. |
妣 天皇大帝 (耀魄寶)天皇大帝 |
(화장의 장례식에서 자작나무단 위에 누어 있는 문무왕의 모습은) 요백보 천황대제는 주위의 별들을 둥근 환으로 거느리며 중앙에 위치하고 있는데, 천황대제가 천사들을 이끌고 상서로운 붉은 구름을 타고 천상낙원으로 들어가는 신선의 승천 모습 같았다. |
7행
□□□□□□□□□□□□□□□□□王禮也 君王局量
왕례(王禮)에 맞았다. 군왕(君王)은 국량(局量)이 …
“王禮”(왕례)는 국가 최고의 예우로써 장례식을 치르었다는 의미이다. 문무왕의 장례식은 왕례 즉 국장으로 치르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삼국사기가 기록한 대로 서거한 지 바로 10일만에 장례를 치르어 낼 수 없었음은 불문가지이다. 상식적으로 빠르게는 당태종의 장례식처럼 4월만에 장례를 치르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는 바, 4월장이면 7월 서거이니 장례식이 거행된 달은 맹동시월 즉 음력 10월 10일이었다.
王禮
王禮는 “天子 禮儀”를 뜻한다. 왕례는 제후왕의 禮-侯王之禮를 지칭하는 경우도 있다. 천자 예의에 대한 禮記(예기), 明堂位(명당위)에 나타나는 구절 “凡四代之服器官 魯 兼用之 是故 魯 王禮也”을 참조하라. 이 구절에 대한 정현의 주해는 “王禮 天子之禮也”라고 말하고 있다. 따라서 비문에서 왕례(王禮)는 “天子 禮儀”를 뜻한다고 해석하는 것이 옳다. 앞면에서 “투후 제천지윤”이라고 분명하게 천자7묘를 지내는 천자의 후손임을 명시하고 있으므로 상장례 의례에서 천자의 예의에 준한다는 근거는 분명하다.
從(諸)君王局 量數不可 數千萬人 來會葬者-제군왕급(級)부터 양수불가의 수천만의 수많은 사람들이 참석하였다, 즉 장례식 참가자들이 온 거리를 가득 메우고 따랐다.
천자 예의에 대한 당연한 귀결로써 “왕례야” 이후의 결자 부분의 내용은, ‘군왕급부터 수를 헤아리기 힘들 정도의 수천만인의 래방회장례 참가자들이 문상하고 장례식에 참석하여 장지까지 거리를 메우며 따랐다’는 그런 장례식 안장식의 정황을 기술했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 君王局量□□□□□□□□□□”의 결자 부분을 한자 구절로 써본다면, “從(諸)君王局 量數不可 數千萬人 來會葬者 入國聞喪 仍從會葬之禮”.
여기의 局(국)자는 당국자, 사람의 기량(器量), 도량이라는 뜻 이외에 모임, 연회, 飯局(반국)이라는 뜻이 있고 또 이외에 部分(부분), 局面(국면), 彎曲(만곡) 등의 다른 의미를 갖고 있는 낱말이다. 無量(무량)은 제한이 없는 무제한적인 것,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는 뜻, 영어로 numerous의 뜻이다.
“ 君王局” 결자부분을 ‘군왕급부터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사람들이 장례식에 참석하여 장례 행렬을 따랐고, 이들로 거리가 가득 메워지고 수많은 사람들이 왕의 마지막 가는 길을 애도했다’는 뜻으로 연결하여 “從君王局” 또는 “諸君王局”으로 메꾸어 보고 싶다.
“왕례”의 앞의 결자 부분은, “四月而葬 於西陵之原 諡為 文武 王禮也”으로 메꾸어 볼 수 있겠다. 문무왕 장례식은 4개월장 국장으로 치르었으며 서릉원에 장사를 지냈고 시호를 문무라 한다. 천자7묘의 왕례이므로 문무왕에 대한 제사는 郊祭(교제)의 대상이다. 이런 의미의 구절 표현이 결자 부분을 구성하고 있는 내용이지 않을까 추측한다.
한편 “諡為 文武王 禮也”으로 띄어쓰기를 달리해서 해석할 수도 있겠으나, 생전에 국왕이 아니었던 사람을 사후에 추증하여 왕의 타이틀을 붙여준 사람의 시호는 주문왕처럼 “諡為文王” 이렇게 왕이라는 표현을 쓰는 반면 생전에 제왕이었던 왕에게는 고조처럼 “高祖崩 諡曰高”이렇게 표현함을 감안하여, 諡為文武 시호를 “문무”라고 하였지, “문무왕”이라고 표현하지 않았을 것이므로 나는 “諡為 文武 王禮也”-이렇게 띄어쓰기 하여 그 의미로써-앞에서 설명한대로- 해석한다.
7행 요약
(四月而葬 於西陵之原 諡為 文武 王禮也) |
(장례식은 4월장 국장으로 치르었고, 북산 서릉원에 장사를 지냈으며, 시호를 문무라 한다) |
□□□□□王禮也 | 장례는 天子禮儀 천자의 예로 거행했다. 따라서 문무왕은 교외 제사의 대상이 된다. |
也 君王局量□□□- (從/諸)君王局) |
군왕급부터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사람들이 장례식에 참석하였고, 장례 행렬이 거리를 가득 메우고 왕의 마지막 가는 길을 애도했다.) |
8행
□□□□□□□□□□□□□□□□國之方勤恤同於八政
나라를 … 하는 방법에 (부합하였고), 백성들을 불쌍히 여기심은 8정(八政)의 ▨과 같았다. …
국편위는 “八政”(팔정)의 의미를 전혀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 八政(팔정)의 의미에 대해서 나는 逸周書(일주서)의 의미대로, 부부 부자 형제 군신 (夫妻 父子 兄弟 君臣)의 여덟 관계를 의미한다고 해석된다.
□國之方
경사지민 편국지방 京師之民 偏國之方 ‘수도서울 시민이나 먼 지방의 백성이나 모두 다 같이 장례식에 참석하여 슬픔과 애도를 표했다’는 표현이 전후 문맥상 옳은 것 같으므로 “□國之方”의 결자는 “偏國之方”으로 메꾸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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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식에 참석한 애도자들이 온 거리를 메우고 흐느꼈는데 그 수가 천리행렬을 이룬 것 같았다. 애도의 슬픔은 삼천리 전산야를 울리고 구름을 타고 넘었다. 行號巷哭 者數千萬 繒分塡咽 井陌千里 哀聲滿野 愁氣連雲 이런 의미의 표현이 결자부분을 형성하고 있지 않을까 추측된다.
勤恤同
同恤(동휼)은 “伍之人 祭祀同福 死喪同恤 禍災共之”(國語)으로, 이에 대한 위소의 주해는 “恤 憂也”이므로, 동휼(同恤)의 뜻은 一同憂傷의 뜻 즉 함께 상심하고 비통해 하고 근심을 나누다. 恤(휼)은 함께 염려하다 같이 번민을 나누고 동정(同情)을 표하고 동감하다는 뜻이다. 勤(근)은 근조, 勤謹(근근), 진력을 다하다, 같이 애석해하고 아파하다의 憂慮憐惜(우려련석)의 뜻이다. 勤恤(근휼)은 이와같은 뜻을 나타내는 단어이다.
八政
八政(팔정)의 뜻은 대개 3가지 의미를 갖고 있는데, 여기의 문맥상으로 통하는 해석은 일주서에서의 팔정의 의미로써 이해된다. “八政: 夫妻 父子 兄弟 君臣 八政 不逆 九德 純恪” (逸周書, 常訓). 여기서 八政(팔정)은 逸周書(일주서)의 의미대로, 부부 부자 형제 군신 夫妻 父子 兄弟 君臣의 이렇게 여덟 관계와 부류를 의미한다고 해석된다. 그렇다면 이 구절의 의미는, 그런 신분이나 계급의 차이 없이 전국민이 모두 다 함께 슬픔과 애도를 표했다는 의미가 된다. 京師之民(경사지민) 偏國之方(편국지방)- 즉 수도 왕경에 사는 시민이나 먼 지방의 백성이나 간에 그런 지리적 제약 조건을 초월하여 모두 다 함께 또 팔정(八政-부부 부자 형제 군신-)의 신분 계급의 차이나 그런 제약 조건들을 떠나서 모두 다함께 문무왕의 장례식에 참석하여 거국적으로 슬픔과 애도를 표했다는 표현이 전후 문맥상 옳다.
어릴 적 함께 자란 친구들, 문무왕과 함께 전장터를 누비고 함께 전우애를 다졌던 군인들, 궁정의 문무백관들 이들뿐만 아니라 전국민 모두가 다함께 애도를 표한 것으로 볼 때 전국민으로부터 존경과 사랑을 받은 인물이었음이 바로 확인되지 않는가?
8행 요약
□□國之方 (京師之民 偏)國之方 |
수도서울 시민이나 먼 지방의 백성이나 모두 다 같이 |
勤恤同於八政 | 부부 부자 형제 군신의 계급이나 신분의 제약을 떠나서 모두 다 함께 상심하고 비통해 했다. |
(친소관계, 지방, 출신신분이나 계급의 차이 없이 전국민이 모두 다 함께 슬픔과 애도를 표했다.) |
9행
□□□□□□□□□□□□□□□□贍歸乃百代之賢王寔千
국편위는 “돌아가시니, 참으로 백대(百代)의 현왕(賢王)이시요, 실로 천(千)(古의 성스러운 임금이셨다)” 이와 같이 번역 해석했다. 하지만 나는 글자판독을 “實”이 아니라고 보고 그 대신 “贍”으로써 판독한다. 국내의 다수의 판독자는 “實歸乃”로 판독하고 있으나, 유희애는 글자를 온전히 판독하지 않고 다만 조개 패(貝)부만으로써 판독해 놓고 있다. 나는 유희애의 판독문에 의거하여 조개패변을 갖고 있는 한자 가운데 이 구절의 의미에 합당하는 뜻을 갖는 한자를 찾아내 메꾸고자 한다. 이 조건에 맞는 글자는 넉넉할 贍(섬)이다. 贍(섬)은 貝(조개 패부)+ 詹(이를 첨; 넉넉할 담)으로 구성된 글자이다. 반면에 實은 宀(갓머리부) + 貫(꿸 관)으로 구성된 글자이다.
贍(섬)은 공급(供給)하다, 滿足(만족)시키다, 충족시키다, 보조(补助)하다의 뜻을 갖는 낱말이다. 만족시키다의 뜻으로 쓰인 예는 안씨가훈의 “儉節用以贍衣食” 구절이 있다. 贍 글자가 충족(充足)시키다의 뜻으로 쓰인 예는 묵자 절장하편 “亦有力不足 財不贍” 구절에서 찾아진다. 또 맹자 양혜왕에 “此惟救死而恐不贍 奚暇治禮義哉” 구절에서 찾아지는데, 이 구절의 뜻은, “이래서는 죽는 것을 구제하기도 힘이 모자랄 판인데 어느 겨를에 예의를 차리겠습니까?”
贍歸乃百代之賢王-이 문장은, 참으로 백년 만에 나올까 말까 하는 현명한 군주라는 판단에 부족함이 없이 넉넉하게 그 백대의 현왕의 조건에 해당한다는 의미이다. 이 구절 다음에 이어지는 문장은, ‘실로 천년 만에 나올까 말까 하는 성왕이었다’는 뜻의 문장이므로, ‘천고의 영웅인물이었다’ 또는 ‘천고의 귀감이 되는 성왕이었다’고 해석하는 것이 큰 무리가 없다. 문선 《晉紀總論》에 “今晉之興也 功烈於百王”, 건릉 술성기의 “興百王之絕典 播十紀之高躅” 표현이 나타나고 또 “懲千古之蠹源 成百王之典法”의 표현이 찾아진다. 따라서 비문의 결자 부분의 문장 내용은 아마도 이런 칭송을 묘사하는 글이라고 여겨진다.
百代賢王 백대의 현왕
경사지민 편국지방 할 것 없이 가까운 수도에 살건 먼 지방에 살든 거리의 원근 차이 없이 전국민이 또 부부 부자 형제 군신 모두 신분이나 계층 차이 없이 다함께 전국민이 다같이 나와서 거국적으로 또 제후군왕급들의 해외 조문사절이 입국 문상하고 수를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문무왕의 장례식에 참석하여 슬픔과 애도를 표하고 그 애도행렬이 거리를 가득 메우고 천리 행렬을 이룰 정도였음을 볼 때, 실로 백대에 한 명 나올까 마는 현명영명 국왕이요, 실로 천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하는 그런 성인군주였다. 이렇게 문무왕이 죽어서도 전국민적인 애도와 추앙을 받은 것은 볼 때 백대의 현왕이요 천년의 리더가 될 것임은 불을 보듯 명약관화하지 않는가?
장례식에 참석한 애도자들이 온 거리를 메우고 흐느꼈는데 그 수가 천리행렬을 이룬 것 같았다, 애도의 슬픔은 삼천리 산야를 울리고 구름을 타고 넘는 것 같았다는 이런 애도 행렬을 묘사하는 한자 구절로 표현한다면, 行號巷哭 者數千萬 繒分塡咽 井陌千里 哀聲滿野 愁氣連雲 이런 의미의 표현이 가능하다고 보여진다. 거국적인 장도(葬途)행렬로 평가해 볼 때, 실로 천고의 영웅인물이 아니겠는가?
실로 천고의 영웅 인물
“贍歸乃百代之賢王寔千□□□□” 부분의 결자는, 양나라 심약의 “齊故安陸昭王碑文”에 나타나는 구절인 “譽滿天下 德冠生民 蓋百代之儀表 千年之領袖”, ‘명성은 만천하에 넘쳤고 보통사람들에게 덕을 베풀었으니 진실로 백대의 사표가 되고 천년의 영수-지도자로 남을 것’의 의미로 새기는 것이 합리적인 해석이다.
그러므로 나는 결자 부분을 다음과 같이 메꾸어 본다.
贍歸乃百代之賢王 寔千年之領袖緬矣 |
실로 백대의 현왕이요 실로 천 년의 영수가 되리라 |
寔千年之領袖緬矣의 뜻은 寔千古貽鑑百王緬矣의 구절과 그 뜻이 서로 같다. 문무왕은 백대의 현왕이고 또 그보다도 더 높은 영웅인물 즉 천 년동안 그 백대의 현왕들이 국정에 임할 때 참고해야 될 거울-瑩鏡(형경), 태감이 될 천 년의 영수(최고영도자)가 될 것이라며 한없는 칭송을 보내고 있는 헌송의 의미가 느껴진다.
寔(식)은 실로, 緬(면)은 아득히 먼 천년까지 遙遠(요원)하다, 길이길이의 뜻이다. 백대의 현왕이요 천 년의 귀감이라는 말은 그가 후세의 모든 지도자의 귀감이 되고, 영원한 민족의 사표가 되리라는 뜻, 요즈음 말로 표현한다면, 문무왕은 “실로 천고의 영웅인물 寔千古英雄人物也”에 해당된다.
聖王 성왕
재덕(才德) 능력과 인품 덕성이 보통사람들과 정말 다르게 매우 뛰어난 사람, 거의 신의 경지에 이를 정도였다고 많은 사람들로부터 추앙받는 제왕-才德超群達 帝王을 성왕(聖王)이라고 부른다. 예기(禮記)의 “冠者 禮之始也 是故古者聖王重冠”, 좌전(左傳) 환공편의 “夫民 神之主也 是以聖王先成民而后致力于神”의 사례를 보라. 이러한 의미에서 현왕(賢王)과 성왕(聖王)을 댓구적 표현으로 연결하여 문장을 구성하는 것이 보다 자연스러운 표현이다.
贍歸乃百代之賢王
歸(귀)는 돌아가다 返回, 回到本處의 뜻뿐만 아니라, 趨向(추향), 추세 또는 結局(결국)이라는 뜻이 있는 낱말이다. 이 문장의 “贍歸乃”는 추향 또는 결국에 이르는 뜻으로 쓰였다. 원(原)은 원래, 本來(본래)라는 뜻만 있는 것이 아니라, 최초의 개시적인 最初(최초), 開始(개시)의 뜻을 갖는 낱말이다. 귀원(歸原)하면 ‘九九歸原’의 성어처럼 ‘원래의 뿌리로 돌아간다’는 뜻으로 쓰인다. 한편 이 귀원의 뜻은, 앞 문장의 “歸乃”(귀내)의 표현처럼, 미래에 대한 예측의 개념에서 결국에는 최초 개시적인 것의 의미로 쓰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천년이 지나가고 보면 결국 문무대왕이 최고의 세상을 열었구나, 그런 천고의 성웅이었네, 그런 생각을 하게 될 것이라는 미래예측적 단정의 표현인 것이다. 실제로 이제 천 년도 훨씬 넘은 일천오백년의 시간이 흘렀다. 지금 이 시점까지 한반도를 통일하여 위대한 나라를 건국한 사람은 문무왕 단 한 사람뿐이지 않는가? 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진시황처럼, 일본을 최초로 통일한 풍신수길처럼 말이다. 贍歸乃百代之賢王 이 구절은 ‘문무대왕은 백대의 현왕으로 평가받을 만큼 백대의 현왕의 조건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다’는 의미이다.
지난 2천년의 역사를 통시적으로 살펴본다면 이 문무왕릉비 비문의 기록에 쓰여져 있는대로 문무대왕 비문 기록자의 예언이 입증되는 것이 아닌가? 두번 다시 생각해 보자. 앞으로 다가올 미래 천년 동안에 걸쳐서 위대한 성웅으로 기록될 문무대왕이라면 그 문무대왕 또한 예전의 황금시대 천하태평성대를 열었던 요순우 임금님 시절로 되돌아가게 만든 중흥 군주가 아닌가? 성경의 표현대로 우리 인류는 흙에서 와서 흙으로 되돌아갈 뿐인데, 결국 미래라는 것도 부활의 개념이지 않는가? 조상 선조 부모가 있기 때문에 미래 세대 또한 존재하게 된다. 이것은 천체물리학의 이론으로도 입증이 되지 않는가? 병아리가 먼저냐 닭이 먼저냐의 돌고 도는 기원의 논쟁에서 결국 승자는 닭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으로 증명되지 않았는가? 그리고 무엇보다 빅뱅 이론을 살펴 보라.
백대의 현왕으로 여겨질 것이라는 표현은 미래 예측의 영역에 속한다. 문무왕 이후 백대가 지나봐야 사실이 가려질 일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지나온 역사를 뒤돌아보건대 문무왕의 통일 시대만큼 한반도가 황금시대를 구가한 적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백대의 현왕일 것이란 평가를 극구 수긍할 수 밖에 없다. 조선시대 초기 성왕 세종대왕의 시기가 거의 모든 분야에서 새로운 민족중흥의 역사를 쓰긴 했지만 문무대왕 때 누리던 영토까지는 회복하지 못했고 또 여진족과 왜국 등 주변국과의 정치외교적인 측면에서 평가하자면 문무대왕의 업적만큼에는 조금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9행 | |
□□贍歸乃百代之賢王 | 참으로 백대의 현왕이라고 말함에 부족함이 없다 |
寔千□□□□□□- 寔千(年之領袖緬矣) |
실로 천 년의 영수로 남아 (영원한 민족의 사표가 될 천고의 영웅인물이외다) |
10행
淸徽如士不假三言識駿」
문무왕이 백대의 현왕이요 천년의 영도자이고 길이길이 빛날 민족의 사표라면 그렇다면 우리들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길이길이 빛나게 그 무엇을 해야 될 의무가 있다고 느껴지지 않는가? 그 하나가 문무왕릉을 세워 불멸의 천고의 영웅인물을 후세에 전해야 함이 마땅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길이길이 빛나게 할 어떤 상징성 문무왕릉 충혼탑을 새기는 것이 어떻겠는가? 장례식도 그 때까지 내려온 전통에도 없는 새로운 방식인 화장식으로 장례식을 거행한 문무왕이었으니 우리들 또한 어떤 새로운 형태로 그의 고귀하고 높은 숭고한 불멸의 그 영웅에 대한 어떤 상징적인 건물을 남기고 길이길이 간직해 나가야 하는 것이 옳지 않겠는가? 이런 생각이 당시 지도층은 물론이고 거국적인 여론을 형성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 결론이 바로 문무왕릉을 상징적으로 건립한 배경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淸徽如士
淸(청)은 맑고 깨끗하다 담담하다 즉 맑은 물이 흘러내리듯 투명하고 막힘이 없다, 徽(휘)는 아름답다 찬란하다 輝(휘)의 뜻이다. 清徽(청휘)는 청미한 음성이란 뜻도 있지만 여기서는 청조(清操) 즉 고상한 절개 高尚 節操를 뜻한다. 사대부란 월왕 구천을 섬겼던 도공의 신 범려가 말하듯이, 유신이 애강남부에서 통탄하듯이, 주군이 욕을 당하면 자결하거나 깨끗이 물러나는 “君辱臣死”(군욕신사)의 절개를 지키는 것이 신하의 윤리 원칙이었다.
士(사)는 문사 무사 변사 장사 (文士 武士 辯士 壯士)를 다 포함하는 사대부(士大夫) 계층 즉 최고 지도자하고는 구별되는 학문을 직업으로 삼는 관리자 계급을 말하고 국왕을 보좌하는 신분을 말한다. 국왕은 전체를 아우르는 일을 하므로 아무래도 학문을 직업적으로 하는 사대부에는 지식과 학식이 못 미칠 수 있는 현실적 한계를 갖는다. 그래서 국왕은 때때로 신하들로부터 머리를 빌리지 않던가?
문무대왕은 어려서부터 공부하기를 즐겨 하였으며 머리가 명석하고 비상해서 少有好學 明晰秘象(소유호학명석비상) 준골천리 걸출한 준재였다. 학문을 숭상하고 배움 연마에 게을리하지 않고 꾸준히 절차탁마한 그답게 항상 지식인층을 우대하고 존경하였고, 그의 학식은 지식인층 학문하는 사대부만큼 막힘이 없이 깊고 뛰어났다-淸徽輝如士大夫, 한 마디를 말하면 세 마디를 질문할 정도로 이해력과 통찰력이 높았으며, 불과 세 마디만 말해도 전체를 꿰뚫어 볼 수 있는 혜안이 있었다-不假三言.
不假三言
三言(삼언)은 세 문장으로 끝내는 핵심 대화, 요즈음의 삼행시처럼 짧은 핵심구, 세 마디 촌평 등의 뜻이다. 전국책의 예문 구절을 보자. “齊 人有請者曰 臣請三言而已矣 益一言 臣請烹 郭靖君 因見之 客趨而進曰 海大魚 因反走”.
대왕은 세 마디만 나눠봐도-不假三言(불가삼언)- 핵심을 훤히 꿰뚫어 볼 줄 아는 학식과 지식과 통찰력이 매우 뛰어난 출중한 인재였다.
識駿嘗問(식준상문)
駿(준)은 신속하다는 뜻이고 신속하다는 뜻의 준골은 머리 두뇌 회전이 빠르다 그런 준재를 말한다. 준골(駿骨)은 양마(良馬) 천리마라는 뜻이 있지만 戰國策(전국책)에서 소개되는 고사성어로 인해서 걸출한 인재를 뜻하는 말로 굳혀진 말이다.
불치하문
시경에 “先民有言 詢于芻蕘”(선민유언 순우추요), ‘예전의 높고 어진 사람이라면 꼴베는 사람이나 나무꾼에게도 물어보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전문가에게 물어보는 태도가 국가의 최고 지도자에게는 필요하다는 현자의 말씀이다.
“驊騮識駿骨”(화류식준골)라는 말이 있다. 즉 준마가 천리마를 알아보고 천재가 수재를 알아 본다. 노자도덕경 제41장의 상사 중사 하사의 개념에 상통한다: “上士聞道 勤而行之 中士聞道 若存若亡 下士聞道 大笑之 不笑 不足以爲道”: 뛰어난 사람은 도를 듣고 나면 신실하게 행동으로 옮기려 한다, 중간치기는 진리를 듣고 나서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긴가민가한다, 하삐리는 진리를 듣고 나면 어이없게도 크게 비웃는다, 만약 하빨에게 비웃음을 사지 않는다면 그것은 진리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진리가 어떻게 나오던가? 갈릴레오에게 그랬듯이 뉴튼에게 그랬듯이 아인슈타인에게 그랬듯이. 처음엔 다들 무시당하고 비웃음을 샀지 않는가? 제눈에 안경이고, 여행도 아는 것만큼 보이는 것이며, 안목은 사람 따라 다르고, 사람은 제능력껏 알아보는 것이다.
折節下士(절절하사)는 삼국지 위지 원소전에 나오는 구절인데, 비록 자신보다 지위가 낮은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유능한 현인에게는 자기 몸을 낮추고 굽혀서 절을 하며 예를 갖추고 모신다는 敬賢下士(경현하사)의 뜻인데, 이와 비슷한 말로는 求賢下士(구현하사) 禮賢下士(예현하사) 謙恭下士(겸공하사) 등의 표현이 있다.
총명현군이 어떻게 능력있는 사람을 쓰는 지에 대해서, 사마천의 史記 원앙황착열전에 나오는 구절과 자치통감 당태종조의 기사에 나오는 구절을 참조하여, 駿骨千里(준골천리)의 개념을 확장해 나갈 수 있다. 그러면 나는 결자부분의 내용을 駿骨千里 兼聽則明 偏聽則暗 從善如流 從諫如川 上日聞所不聞 明所不知 日益聖智-이런 내용으로 제시한다.
廳訟(청송), 경청의 지혜
총명현군의 첫 번째 요건은 남의 말을 경청하는 것이고 도교 신앙이 특히 부작신앙의 제1원칙 또한 경청하는 것에 있다. 하늘의 소리를 들으려면 귀가 열려 있어야 되지 않겠는가? 성인군자들은 공자처럼 어눌하게 말을 할지는 몰라도 듣기를 잘하는 훈련된 사람들이라고 여겨진다. 불소불통의 소통능력이 뛰어나려면 일단 먼저 듣기 훈련이 중요하다. 무소불통할 정도면 얼마나 총명하고 현명해야 할까? 묻고 답하기를 잘해야 한다. 즉문즉답할 수 있으려면 머리가 뛰어나야 한다. 이러한 뜻을 배경 지식으로 삼아서 “不假三言 識駿 “ 부분의 결자를 추측해 메꾸어 본다면, “不假三言 識駿嘗問”으로 하여 “不假三言 識駿嘗問 聞所不聞 明所不知 日益聖智”, 또는 “不假三言 識駿嘗問 兼聽則明 偏聽則暗 從善如流 從諫如川” 이런 내용의 문장이 문맥상 연결된다고 보인다. 여기서 嘗(상)은 맛을 보다 辨別滋味(변별자미)의 뜻이고, 상대방의 마음을 떠볼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駿嘗問言”(준상문언)의 표현은 조조의 아들 조식의 “辯道論”(변도론)에 “劉子駿嘗問言”의 구절이 나온다.
왜 총명현군은 묻고 답하기를 즐겨 하는가?
그것은 능력있는 사람을 쓰려고 하는 욕심이 있기 때문이다. 聰明賢君 欲求取賢 能有九德. 능력있는 지도자는 부하도 뛰어난 사람을 고르려고 한다. 반면 지도자감이 못되는 하사들은 혹시나 자기 자리를 빼앗기지는 않는지 하는 두려움 때문에 자기보다 뛰어난 사람을 쓰지 않으려는 천박함을 보이기 쉽다. 제왕이 토론하기를 그치고 주지육림에 빠져들면 나라가 망할 징조이기에 공자도 그 곁을 바로 떠났다.
사마천은 굴원열전에서 이렇게 말했다. “人君無愚智賢不肖 莫不欲求忠以自爲 擧賢以自佐”: 군주는 자신이 지혜롭든 어리석든 현명하든 그렇지 못하든 간에, 충신을 기용하여 자기에게 도움이 되게 하고, 현명하고 능력있는 사람을 찾아서 자신을 보좌하게 하는 만들었다.
그런데 왜 현왕이 나타나지 못하고 나라가 어지러운가? 사마천은 그것은 군주가 충신과 불충을 구별하지 못하고 현명함이 무엇인지 판단을 제대로 못한 군주에게 있다는 것으로 그에 대한 답을 했다. 근세 조선사나 가까운 현대사를 살펴보면 사마천의 평가는 옳다는 생각이 든다.
10행 번역 요약
淸徽如士 | (그의 학식은) 학문하는 사대부 학자만큼 막힘이 없이 깊고 뛰어났다.. |
不假三言 | 한 마디를 말하면 세 마디를 질문할 정도로 이해력과 통찰력이 높았으며, 불과 세 마디만 말해도 전체를 꿰뚫어 볼 수 있는 혜안이 있었다. |
識駿(嘗問) | 준마가 천리마를 알아보고 천재가 수재를 알아 보듯, 문무왕은 판단력이 뛰어났고, 막힘없는 즉문즉답으로 상대방의 의중을 파악하는 질문능력 또한 뛰어났다. |
11행
□□□□□□□□□□□□□□而開沼髣髴濠梁延錦石以
開沼
《廣雅》에서 “沼 池也”라고 주해하고 있다. 연못 沼(소)는 안압지처럼 연못 池(지)을 말한다. 咸池함지 龍池용지 神池신지 靈沼영소와 같은 말이다. 손자병법에서 비유를 들고 있는 金城湯池(금성탕지)의 말처럼 누구도 뚫고 들어 올 수 없는 견고한 철벽 철통 방어벽의 성채를 말한다. 금성탕지의 성어 뜻에 대해서 한지 괴통전에서 설명하고 있는데, “邊地之城 必將嬰城固守 皆爲金城湯池 不可攻也” 이에 대해 안사고는 “金以喻堅 湯喻沸熱不可近”라고 주해했다. 이와 같이 물이 펄펄 끓고 있는 탕처럼 沸水(비수)가 콸콸 흘러서 누구도 감히 범접하지 못하는 견고한 성채를 말한다.
인-자애롭다는 것은 아이의 때묻은 옷을 깨끗하게 빨아주는 것이요, 의롭다하는 것은 맑은 것을 혼탁하게 만들 것에 대한 울분을 터트리고 이에 맞서는 것을 말하며, 용기라는 것은 도저히 안될 것같이 힘에 부치는 일에 있는 힘을 다해 덤비는 것을 말하고, 부드러움이란 새털보다 더 사뿐하고 가볍게 대하는 것을 말한다. 유신의 온탕비문에 등장하는 문구이다. “仁則滌蕩埃氛 義則激揚清濁 勇則負山餘力 弱則鴻毛不勝”. 온천물은 만명을 치유하는 신수의 기능을 가진다. 그래서 왕포는 穀神不死라고 말했고, 당태종은 “偉哉靈穴 凝溫鏡澈 人世有終 芳流無竭”이라며 예찬했으며, 사람들은 건릉 술성기에 적혀있는 “姬沼弗營” 구절대로, 황제가 했던 것처럼 희수 강가에 우물을 파서 분수처럼 콸콸 솟아나는 물을 먹고 살아간다. 사람은 물 없이는 하루도 살아갈 수가 없다. 물은 생명수이다. 沼(소)는 靈台(영대), 靈囿(영유), 靈沼(영소)의 개념으로 이해된다.
沼(소)는 연못 沼澤(소택), 池塘(지당)을 말한다. 관자(管子)는 말했다, “君請遏原流 大夫立沼池 令以矩游為樂”. 사대부가 연못을 여는 까닭은 물고기처럼 도약하고자 하는 의지에 있다. 현실적으로 등용문의 의지라고 보더라도 그 근원에는 개인적 도약이 완성되어야 가능한 것이 아닌가? 일본의 어린이날 코이노보리 축제에서 연어가 물을 거슬려 오르는 것을 상징적으로 가르치는 의미와 생선의 지느러미는 거꾸로 달린 것처럼, 역린의 윤리를 지키 내려는 것에 있지 않을까?
사대부가 정원을 가꾸는 것은 조선시대에 와서는 사원을 여는 것으로 꽃을 피었는데, 그 이전의 신라 시대에는 유신의 애강남부에서의 “開士林之學”(개사림지학)의 의미대로 은퇴해서 강단을 여는 것을 의미한다. 유신과 위진남북조 동시대를 살았던 육기(陸機)의 “吊魏武帝文”(조위무제문) 가운데 나오는 “佇重淵以育鱗”(저중연이육린)의 표현 즉 ‘깊은 연못 속을 내려다보며 먼 안목으로 잠룡을 길러내는 것’ 그와 같이 후세에 대한 교육을 의미한다. 사람은 은퇴하면 소일하면서 잠룡을 길러내는 것 즉 공자처럼 교육을 통해서 후세의 성인들을 길러낸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전에는 노동력이 왕성한 시기에 부모가 자녀를 낳으면 소일하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손자에 대한 교육을 책임졌다. 후세 교육에 대한 열성적인 민족의 으뜸은 유태인과 영국 특히 스코틀랜드 사람들과 중국의 객가인과 한국인으로 정평이 나있는데, 그것은 우리의 전통적인 인생관인 “人亡政息”(인망정식)[2] 의미와 직결된다. 교육은 백년대계에 속하는 장기적인 안목을 필요로 한다. 음양오행설에 따라 7대 210년를 한 국가의 흥성 주기로 삼았는데 여기에 자신의 부자 세대 30년을 합하면 240년이 되고 여기에 아홉수 10년을 더하면 사마천이 정한 국가의 흥망성쇠 반오백년 즉 250년 주기설과 거의 맞닿아 떨어진다.
연못을 만드는 일은 정원을 만드는 것과 같다. 회남자에서 천체는 기울어진 우산과 같다고 말했고 “혼천부”에서 지구는 유람하는 배-“天如倚蓋 地若浮舟”-와 같다고 비유했는데, 우리들 삶은 일엽편주로 강 위의 유람(矩游)을 하는 것은 정원 산책을 하는 것과 같은 의미가 된다. 연못은 정원의 일부이니 연못을 여는 의미는 동일하다. 정원에 대한 묘사는 사마상여의 호방한 상림부 수렵부 글이 대표적인데 사마천의 사기에 소개된 정도만 읽어봐도 충분한 상상을 하고도 남는다.
연못을 연다는 것을 정치종교적으로 해석하자면 입국대사 대업을 달성한다는 의미가 된다. 노자가 태어난 향리에 아홉 개의 우물 구정이 있으며 당나라를 개국한 당고조 이연의 이름자 연이 연못 淵(연)이다. 바람이 부는 대로 귀 기울이고, 강물의 흐름과 같이 교화되었던 向風而聽 隨流而化, 그 때의 사심없고 오로지 국리민복을 위한 정치를 한 사람,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줄 아는 도량이 넓고 마음이 확 트이고 막힘이 없는 아름다운 그 사람과 그 곳을 그리워하지 않을까?
문무왕릉 비문에서 비유한 개소, 정원의 모델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유신의 小園賦(소원부), 온탕비에서 나타나는 뜻으로 유추 상상해 볼 수 있다.
“若夫一枝之上 巢父得安巢之所 一壺之中 壺公有容身之地 況乎管寧藜床 雖穿而可坐 嵇康鍛灶 既煖而堪眠” (유신의 소원부 중).
은자의 최고수로 불리는 소부는 새처럼 나무 가지를 둥지로 삼고 살았고, 신선 호공은 겨우 몸 하나 펼 수 있는 화로 옆에 움집을 짓고 살았으며, 오로지 자기 일에만 묻혀 산 관령은 헤지고 구멍난 침대 위에서 무릎을 얹히고 직물을 짰으며, 죽림칠현의 영수 혜강은 부뚜막 화롯불을 달궈 가면서 쪽잠을 잤으니 뜨거운 열을 참고 견뎌야 했을 터.
문무왕은 어려서부터 호학 학문을 즐겨 하였고 또 두뇌가 명석해서 사대부와 토론하기를 즐겼으니 그의 살아 생전의 뜻을 존중하여 그 때와 같이 변함없이 학문과 대화를 하며 호상지락의 낙을 누리시라고 다리를 놓고, 연못을 파고 정원을 만들었는데, 아름다운 돌로 연이어 쌓아서 그 모습을 멀리서 보면 어렴풋이 마치 호수 위의 다리처럼 보일 수도 있을 지 모르겠다는 말이다. 학문 숭상과 토론하기를 즐겨 하였던 문무왕을 위하여 천정을 마련하고 빈객으로 모시겠으니 좋은 말씀 많이 들려주시기 바라는 청언이다.
학문 숭상과 토론하기를 즐겨 하였기 때문에 연못을 열어 거기에 초대를 하는 것이다. 우리의 전통적인 인생관인 “人亡政息”[3](인망정식)의 의미와 직결된다. 또 그 의미를 연장하면 태자 시절 경연하는 의미와 맞닿는다. 그러므로 개소는 開筵(개연)-연회 잔치를 열다, 강연자리를 마련하다는 뜻이니 빈객으로 초대한다는 말이다. 천정-뒷뜰 마당에서 빈객이 강연하는 자리를 마련해 놓으니 굴원 초사의 초혼의 의미에서와 같은 정황이 전개된다. 화복길흉이 같은 곳 동역에 있다고 보는 우리의 생사관처럼, 삶과 죽음은 같이 있는 것이며, 그러므로 망자는 죽어도 살아 있는 것이고 살아 있는 사람처럼 대우를 받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행동은 우리의 전통적인 생사관인 “事死如生 事亡如存”(사사여생 사망여존)의 인생관에서 나온다. 순자가 말했다. “喪禮者 以生者飾死者也 大象其生以送其死也 故事死如生 事亡如存 終始一也” (荀子, 禮論). 상례란 산 사람의 예로써 죽은 사람을 장식하고, 되도록 삶을 모방하여 죽은 사람을 송별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죽은 사람 모시기를 산 사람 모시듯 하고, 죽고 없는 사람 섬기기를 생존하는 듯이 하여, 시작과 마지막을 한 가지로 여기는 의식이다.
이렇게 보면 사람은 죽어도 다시 태어나는 불사조 화신이 아니겠는가? 부활은 화신이다. 축생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다시 사람으로 태어나는 것이다. 무덤을 집 근처에 마련하는 이유가 마치 무덤을 천정-뒷뜰 뒷마당으로 여긴다는 것, 그것은 유신이 말한대로 산자와 죽은자의 영혼은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지척으로 가까이 함께 있다는 것, “人神咫尺”(인신지척)이라는 말 그것이다. 강남 지역-양자강 이남 지역- 사람들이 흔히 쓰는 “천정”-뒷마당의 의미를 북방민족 예컨대 청나라 만주족 등은 피부로 잘 느끼지 못하고 그래서 그 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경우가 흔히 일어난다.
髣髴 방불
髣髴(방불)은 마치 무엇 무엇인 듯하다, 비슷하다, 어렴풋이 보이다의 뜻이다. 說文(설문)에는 “彷彿相似 視不諟也 諟與諦同”으로 설명하였다. 방불은 類似, 似乎, 好像의 뜻이니 仿像(방상)과 비슷한 말이 된다. 仿像, 방불, 隱約(은약)은 희미하다. 어렴풋하다, 분명하지 않다, 아련하다, 어슴푸레하다, 은은하다, 은근히 숨어 있다의 뜻이다.
비록 최근 1956년 정인보가 찬한 김유신신도비명에 나오는 구절이긴 하지만 방불의 뜻을 갖는 표현이 나타나는 곳을 찾아보면, “鉅觀史書所記 固不能萬一 然循而求之 猶有可以紬繹其髣髴者” 구절이 있는데 이는 ‘역사서의 기록들을 보면 단언컨대 진실로 만분의 일도 실려져 있질 못하다 하지만 차례차례 추구해 보면 그 髣髴(방불)한 것 즉 그와 비슷한 모양을 갖는 것의 단서를 찾아내 정교하게 술술 풀어낼 수 있다’.
조식의 “낙신부”에 어렴풋하고 희미하고 흐리멍텅한 몽롱한 그런 아리끼리한 방불의 상태에 대해서 묘사하고 있는 표현을 보자.
髣髴兮若輕雲之蔽月
飄飄兮若流風之廻雪
遠而望之 皎若太陽升朝霞
迫而察之 灼若芙蕖出淥波
엷은 구름에 쌓인 달처럼 어렴풋이 보이고
흐르는 바람에 눈발이 날리는 듯 희미하네
멀리서 바라보니 아침노을 위로 떠오르는 해와 같이 눈부시더니,
가까이서 바라보니 맑은 물 위에 피어난 부평초 같이 선명하네.
하안의 경복전부의 구절 “遠而望之 若摛朱霞而耀天文 迫而察之 若仰崇山而戴垂雲”은 조식의 이 구절과 그 의미가 같다.
뉴튼의 만유인력 중력의 법칙이든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든 모든 진리는 발견된다는 측면에서 보면 진리는 원래 숨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진리를 깨우칠 때는 긴가민가 아리까리한 경우가 많다. 처음에 접할 때 알쏭달쏭 이것인지 저것인지 반신반의하지 않는 진리가 어디에 있던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원리가 나올 때를 보라. 과학은 차치하고, 모네의 수련 그림을 감상해 보는 것이 방불의 상태에 대해서 보다 깊은 이해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濠梁之上 호량지상
무지개 다리
“하늘의 무지개를 보노라면 내 마음은 설레었지!” 이런 구절로 시작되는 워즈워드의 영시를 외우고 다녔던 나의 어린 시절이 있었다. 레인보우는 무지개 다리, 한자로 홍교(虹橋)라고 쓴다. 무지개는 유신의 싯구 “跨虹連絕岸”(과홍연절안)의 구절의 의미에서와 같이, 한 쪽에서 다른 쪽으로 이어주는 다리의 이미지를 갖는다. 다리는 한 곳에서 다른 곳을 이어주는 매개체의 개념이고 스피링보드의 역할, 항구 부두의 이미지를 갖는다. 다리는 만남과 이별의 장소가 된다.
호량지락
잘 알고 있는 장자의 “호량지변”의 대화를 잠깐 상기해 보자. 장자와 혜자가 물 위의 떠 있는 호수의 다리 난간에서 내려다 보니 물고기가 한가로이 노닐고 있었다. 장자가 이렇게 유유자적 노니는 것을 물고기의 즐거움이라고 말하자, 혜자는 당신이 물고기가 아닌데 어떻게 물고기의 즐거움을 알 수 있느냐?고 다그쳐 묻는다. 그러자 장자가 당신은 내가 아니면서 어떻게 내가 물고기의 즐거움을 알지 못한다고 단언한다는 말인가?라고 말하며 되받았다. 이에 혜자가 대답했다: “내가 당신이 아닌 것은 분명하니 당신의 마음 속의 생각을 내가 알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당신이 물고기가 아니므로 물고기의 즐거움을 알지 못할 것이라는 결론은 분명하지 않는가?” 이에 장자가 재차 답변했다. "다시 처음으로 되돌아가서 따져보자. 당신이 '어떻게 물고기의 즐거움을 알 수 있느냐?'라는 말을 했다는 것은 내가 물고기의 즐거움을 알고 있다는 것을 먼저 알고 나서 내게 물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지금 여기 호수 위의 다리 난간에서 그것을 알게 되었을 뿐인데." 비록 장자의 마지막 결론은 명가의 논리 싸움은 아니지만 가설의 전제와 결론이 결부되는 논리와 깨달음의 인식이 언제 어떻게 일어나는지를 논하는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와 같은 종교철학적인 이야기이니, 원문을 다시 살펴보고 곰곰이 한 번 생각해 보자. “請循其本 子曰汝安知魚樂云者 既已知吾知之而問我 我知之濠上也”.
濠上(호상)의 의미
여기의 濠上(호상)이란 단어 발음에서 숨겨져 있는 의미가 읽혀진다. 우리들이 부모 잃고 떠도는 처량한 아이의 신세를 두고서 기러기 인생이라고 말하는데, 기러기가 하늘을 날 때는 호숫 위에 비치는 반사되는 빛을 보고서 날아간다. 그런데 호수가 가뭄에 말라버렸으면 어떻게 기러기가 길을 찾을 수 있겠는가? 장자의 濠梁(호량)이란 말은 호수 위의 다리를 지칭하는데, 이 濠(호)는 참호 즉 성채 주위에 물이 흐르는 또랑을 파놓은 것을 말한다. 성 주위에 빙빙 돌아가면서 물이 흐르는 참호를 파 놓으면 적이 접근하기 힘들다. 접근로는 오로지 다리 하나 밖에 없으니까 호수 안의 성채는 외부의 침입자로부터 방어막이 쳐있게 되어 세상과 절연된 평화와 안전을 누린다. 유럽의 캐슬 구조에서 잘 볼 수 있고, 또 인도의 아이콘이 될 정도로 유명한 타지마할 궁전의 묘소, 캄디아의 상징과 같은 앙코르 와트 왕릉의 유적에서 보다시피 호수 위의 묘소로 통하는 길을 호량이라고 말한다. 梁(양)은 다리를, 濠(호)는 壕(호) 글자와 같은 뜻이기 때문이다. 호량은 호숫위의 다리를 뜻하는 말인데, 이는 곧 虛梁(허량)과 동의어가 된다. 虛梁(허량)은 임시로 가설한 다리를 뜻하는데 별자리 명칭에도 이 허량을 쓰고 있으므로, 진서 천문지의 설명을 보자. “蓋屋南四星曰虛梁 園陵寢廟之所也”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허량은 산소 묘소 옆에 임시로 처놓은 천막 묘옥을 지칭하는 말이다. 이를 다시 설명하면 부모 묘소를 지키며 3년상을 치르어내는 것 즉 산소 옆에 임시 묘옥을 가설하고 거기에 돌아가신 부모의 정을 되새기며 삶을 성찰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제 호량의 낱말 뜻을 알아차렸다면 장자의 호량지유의 의미에 대해서 보다 깊은 성찰을 할 수 있다.
호량지유
장자의 호량지락 비유에서 물고기는 곧 죽음이란 말과 동치되니 이는 돌아가신 부모님으로 대치된다. 물고기를 죽은 사람과 치환하여 똑같이 장자와 혜자와의 대화를 이 단어만 바꾸어서 재구성하고 다시 읽어보라. 죽음이란 것은 관념적인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 수 있지 않는가? 사람들은 죽음이란 것을 직접 경험해 보지도 않고서 그저 관념적으로만 얘기하고 있지 않는가? 하지만 죽음이란 자신이 직접 죽어보지 않고서는 그것을 알 수 없는 법이고, 장자 같은 성인이라도 죽음에 임박해서 무덤 속에 곧 들어가는 그 순간에서나 죽음이 무엇인지 알 수 있지 않겠는가? 우리들 흔히 하는 말로, 부모님 돌아가시고 나서야 부모님의 죽음에 대한 의미를 깨우치지 않는가? 비록 만시지탄이지만. 장자 같은 성인이야 죽기 전 묘소의 천막을 치고서 그렇게 도를 깨우치는 사람인거고.
이와 같이 호량에 대한 단어의 분석적 이해를 통해서 나는 장자가 말한 호량지유의 의미를 깨우쳤다. 이를 바탕으로 나는 문무왕릉비 비문 뒷면 제11행에 나오는 “髣髴濠梁”(방불호량)의 구절에 대해서 올바른 번역 해석을 도출할 수 있게 되었다.
문무왕릉비문에서의 “髣髴濠梁”(방불호량)의 의미
문무왕릉비 비문에서의 “髣髴濠梁”(방불호량)의 구절을 정확하게 해석하기 위해서 이 구절에서 “星橋”(성교)의 결론을 도출해내며, 직녀가 수레에 타고, 견우가 물을 건널 때 바라보는 相望(상망)의 星橋(성교)의 의미를 설명해낸다.
그런데 보라, 국편위는 “髣髴濠梁”을 “호량(濠梁)을 방불하였고”-이렇게 번역 해석해 놓고 있다. 이러한 국편위의 번역해석은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수준미달 또는 도저히 학자적 번역이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결론으로 국편위의 부족함과 오류를 통렬하게 비판하고, 문무왕릉비 비문에 대한 보다 올바르고 정확한 번역 해석을 자세하게 설명한다.
濠(호)는 도랑, 구덩이, 참호를 의미하는 壕(호)와 같은 뜻의 낱말이다. 濠梁(호량)이라고 하면 濠의 上(위) 즉 물 위의 梁(양)은 橋梁(교량) 즉 다리를 말하니 물 위의 다리 즉 강을 건너는 다리를 말한다. 이 호수 위의 다리를 뜻하는 일반명사 호량에 대해 장자가 물고기의 마음을 어찌 알 수 있느냐에 비유하고 있고, 그에 따라 호량지상(濠梁之上) 성어가 파생되었는 바, 장자의 비유적 의미에 따라서, ‘남의 마음속을 꿰뚫어보고 즐거움을 느끼는 그 장소’를 가르키는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 濠上觀魚(호상관어), 濠梁之樂(호량지락) 등의 성어 또한 같은 의미이다.
다리의 의미[4]
무협지 만화나 영화를 보면 대개 남녀가 다리 위에서 만나거나 헤어진다. 다리는 만남과 헤어짐의 통로 받침대가 된다. 다이빙 선수가 다이빙하듯이 발판 위에서 올라서야 점프를 할 수 있는 것이며 먼 길 여행을 하려면 배가 받는 다리 위에 나와서 배편을 기다려야 한다. 이런 이미지는 유신의 애강남부에서의 절실하게 묘사되고 있다. 또 다리 위에 올라서야 세상이 보이며 거인의 어깨 위로 무등을 타고 올라서야 저 멀리 내다볼 수 있지 않던가? 뉴튼이 큰 명성을 얻은 것은 그가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탄 덕분에 있다고 고백했지 않았는가?
장자의 추수편에 나오는 물고기와의 대화를 상기하라. 내가 상대방이 될 수 없는데 내가 물고기가 아닌데 물고기가 노니는 즐거움을 내가 어찌 알 수 있겠느냐고 반문하지만 내가 네가 아니지만 내 마음을 네가 알 수도 있지 않는가? 텔레파시가 통하듯이, 기가 막히지 않고 흐른다면 우리들은 서로 마음이 통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내가 네가 아니지만 내가 네 마음을 알 수 있지 않을까? 마음으로 듣고 마음으로 보고 있으면 그 마음을 알 수 있지 않던가? 장자의 비유 마지막 구절의 표현은 “我知之濠上也”인데, 이는 ‘내가 지금 여기-호수 위의 다리 난간에서 알았다’고 장자는 말한 것이다. 호상이라면 부모의 산소 옆에 묘옥을 쳐놓고 단식을 해가면서 잘못을 뉘우치고 돌아가신 부모님과의 대화를 통해서 삶과 죽음의 근본적 이치를 깨우치게 되었다는 말이지 않는가?
호상지락
사람들은 어떻게 남의 속마음까지 꿰뚫어 볼 수 있을까? 어찌하여 종자기는 백아의 거문고 소리만 들어도 그의 속마음을 알아차렸을까?
들꽃 중에 근심걱정을 잊을 수 있다고 해서 원추리 망우초라 하였는데 어찌하여 나는 초원의 풀 위를 뒹굴어도 근심이 가시지 않고, 장미만 쳐다봐도 영원한 기쁨을 얻는다고 했는데 어찌하여 나는 양귀비를 안아봐도 즐거움이 나지 않을까? 어찌하여 저 새들은 물 한 모금을 마시기 위하여 산속을 마다하고 저 멀리 물 위를 날아가는가? 백아가 거문고를 타면 어찌하여 물 속의 고래도 춤을 추고 올라 왔으며, 가야금의 명인 호파가 줄을 켜면 어찌하여 육마가 말구유에서 일어났을까? 이들은 금수의 본성을 잃었단 말인가?
“草無忘憂之意 花無長樂之心 鳥何事而逐酒 魚何情而聽琴” (庾信, “小園賦”).
우리들은 ‘내 마음을 아실 이 누가 있을리요’ 하며 때때로 낙담하고 실망하고 절망하고 포기하는 경우가 있지만 아름다운 호수 위에서 유유자적 한담을 나누면서 상대방과 마음이 통하는 것을 느낄 때 會心(회심)의 미소를 짓는 그 때를 경험하지 않았던가? 사람은 서로 대화를 통해서 마음과 마음이 소통하는 것을 느끼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이렇게 보면, 오늘날 하버마스의 공동체 교류 이론이 우리나라 고대사회 공동체를 지탱하는 미덕으로 작동하지 않았던가?
마음과 마음의 소통
천주교 성당이나 감리교 이런 성당 교회는 예배 볼 때 무척 엄숙하다. 그런데 요사이 시티교회나 순복음교회 힐송교회 등은 예배시에 밴드를 동원하고 소리 높여 찬송하고 통성기도를 하고 그렇게 예배를 떠들게 본다. 예배당에 젓가락을 두들기고 소리치며 충만한 기쁨으로 예배를 보는 것은 어릴 적 경험에서는 익숙한 형태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게 소리치며 밴드공연하며 예배를 보는 모습이 장자의 妻死章(처사장)에서 말한 동이 항아리 두드리며 장례를 치르는 모습과 서로 맥이 닿아 있다는 것을 느꼈다. 북경원인보다 훨씬 더 오래 된 인류의 두개골이 발견된 삼성퇴 유적이 발굴되어 전세계 고고학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는데, 삼성퇴 유물의 의미를 생각해 보라. 인류의 문화와 종교와 진화 역사를 새로 쓰게 되어 흥분의 도가니를 열어제킨 三星堆(삼성퇴) 유적이 발견되면서 장자가 말한 장례문화가 재확인된 것이 아닌가? 삼성퇴 유적이 발견된 때는 최근 1986년이었다. 그러므로 1990년대 이전에 학교 교육을 받은 사람들은 삼성퇴의 유적 발굴과 그 진실의 파장을 아직 잘 알고 있질 못할 것이다. 학교 교과서에서 배우지도 못했고 또 학교 밖에서 배우기도 벅찬 내용이 많기 때문이다.
파촉 문명이 우리 신라인 조선사람들의 원형에 가깝지 않는가? 남원의 “광한루” 누각 명칭은 한자로 “廣寒’인데 이 의미와 광한루의 성격에서 파촉 문화가 스며들어 있으며 또 이 “광한”의 의미는 지리적인 의미에서도 삼성퇴 유적이 발견된 “廣漢’임을 직감적으로 느꼈다. 삼성퇴 유물에서 발굴된 유명한 탈 그 모습은 바로 우리나라의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의 그것과 같은 의미를 갖으며 또 그와 같이 서로 직결된다는 것이다. 사진으로 상상력을 동원하여 서로 비교해 보라. 삼성퇴 유적이 발굴되어 삼성퇴 문명과 문화가 확인되었는데 조선과 신라는 선조들이 파촉에서 나왔음이 확인되는 사료적 설명을 통해서 그리고 파촉 문화는 우리나라에서 직접 발견되는 유물을 통해서도 확인된다는 놀라운 사실을 밝혀내 세상에 내놓는다.
장자의 호량지락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자.
만약 죽음 앞에 초연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어떤 삶을 살아가게 될까? 장자가 말한대로 누구도 죽음을 피할 수 없는 것 그래서 죽음을 두고서 難免叩盆(난면고분)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우리들은 누구나 죽는다는 사실은 알고 있지만 유언장을 미리 작성하고 싶지 않는 경향이 크다. 유언장이라는 것이 괜히 불길한 예감을 주기도 해서 유언장을 사전에 작성하는 것을 극구 꺼려하기도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왜? 죽음은 누구에게나 회피하고 싶고 그래서 죽음에 대한 막연하고 현실적인 두려움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장자는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으며 죽음에 대해서 용기 있는 극복이 필요하다고 말했을까?
우리 선조들의 죽음관에는 몸과 영혼이 분리된다는 “이처”관(이처의 발음은 불교를 공인받고자 순교한 이차돈의 발음과 그 한자 의미에서도 나타난다)이 자리잡고 있다. 이런 믿음은 객가인들의 핵심적인 인생관에 해당한다. 이것은 삼국유사에서도 자세하게 묘사하고 있는 죽음관이다. 기독교 성경에서도 사람이 죽으면 육신은 원래의 본향으로 되돌아가고 그 영혼은 하늘나라로 되돌아간다고 말했다.
장자는 아내가 죽자 물동이에 바가지를 엎어 놓고 두드리며 노래를 불렀다. 자기 아내가 죽어서 고통스런 이승의 굴레와 속박을 벗어 제끼고 아무것도 거리낄 것 없이 유유히 우주 여행을 즐기는 본래의 고향으로 돌아갔다고 오히려 담대하게 대했다. 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 보면 장자의 장례 모습은 젓가락으로 북을 두드리며 밴드공연을 하며 예배를 보는 오늘날의 성령 충만한 교회들의 예배 모습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우리 조상들의 죽음관을 보면, 죽음을 배에 승선하여 항해를 마치고 정박하는 항구(-테니슨이 읊은 Spit(모랫톱)이다)에 닿는 것으로 표현했다. 이런 죽음관은 유신이 절실하게 기록해 두었기에 생생하게 다시 재연 복원해 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문턱(독일어로 Schwelle)은 여러 면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말이다. 죽음의 문턱을 생각해 보라.
“충신장”의 핵심적인 무대 장면에서 해석하듯이, ‘죽음은 애벌레가 껍질을 벗고 나비로 다시 태어나 부활하고 하늘나라로 승천하는 것’ 그 이미지와 같다.
퀴블러-로스의 “죽음의 5단계 설”을 읽었는데, 인간의 삶은 육신적 죽음으로써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니며 졸업이나 마침정같이 새로운 미지의 세계로 떠나는 여행의 출발점에 해당되는 것은 아닐까?
모랫톱을 건너며 -테니슨-
해는 지고 저녁 별 빛나는데
날 부르는 맑은 목소리
나 먼 바다로 떠날 적에
모랫톱아, 구슬피 울지 말아라.
끝없는 바다로부터 왔던 이 몸이
다시금 고향을 향해 돌아갈 때에
움직여도 잔잔해서 거품이 없는
잠든 듯 조용한 밀물이 되어다오.
황혼에 울리는 저녁 종소리
그 뒤에 찾아 드는 어두움이여!
내가 배에 올라탈 때
이별의 슬픔이 없게 해다오.
이 세상의 경계선인 때와 장소를 넘어
물결이 나를 멀리 실어 간다 하여도
나는 바라노라, 모랫톱을 건넌 뒤에
길잡이를 만나서 마주 보게 되기를.
髣髴濠梁 방불호량
이제 방불과 호량의 뜻을 알았으니 “髣髴濠梁”(방불호량)은 어렴풋이 보면 마치 다리같이 보이기도 한다는 의미임을 알 수 있다.
왜 오작교이고 선교이고 성교이고 그렇게 다리가 중요한가?
세계 최초의 아치교로 알려진 조주의 安濟橋(안제교)-일명 대석교(大石橋)-는 수당 교체기인 605년에 건설되었다. 안제교는 창견식(敞肩式) 아치형 다리로 못 하나 나무 하나 안쓰고 돌로만 쌓아 만든 다리이다. 예술성이 높은 아치형 다리는 순천 선암사의 다리가 잘 알려져 있는데 안제교는 64미터가 넘는 다리이니 작은 개울을 넘나드는 선암사의 다리하고는 기술적으로 차원이 다른 얘기가 된다.
당나라 현종 때 장관을 지낸 장가정(張嘉貞)은 605년에 만들어진 안제교 다리에 대한 치밀한 묘사를 安濟橋銘(안제교명)에 남겼는데, 여기에서 “製造奇特 人不知其所以為(제조기특 인부지기소이위)”: ‘다리의 모습과 만든 기법이 기이하고 독특하지만 사람들은 그렇게 만든 이유에 대해서 알지 못한다’고 적었다. 서양에서 아치형의 다리가 나타난 때는 15세기에 들어와서 일텐데 그보다도 훨씬 빠른 당나라 시절에 그런 다리를 만들 수 있었던 당시의 건축 토목 기술의 우수성을 느낄 수 있다.
延錦石
延(연)은 연장하다 延年益壽(연년익수)의 예문처럼 어떤 것이 연이어 늘어나는 것을 말한다. 끊이지 않는 것을 이르니, 綿延不絕(면연부절), 連延不絶(연연부절)이라는 말로 바꿔 쓸 수 있다.
金石(금석)하면 철석(鐵石)같이 ‘믿다’, 磐石(반석) 위에 세운 교회당 이러한 예문과 같이 변치 않는 믿음으로 견고하게 세운 ‘金石’(금석)의 의미가 상정된다. 고인돌처럼 큰 돌하면 견고하다 흔들리지 않는다 굳건하고 오래가는 것을 의미한다. 금석은 다이아몬드 보석의 금강석의 뜻도 가지고 있다. 종교적으로 불교의 음역으로 금강이라는 말이 흔하게 이용되어서 금석의 원래적 의미가 많이 퇴색되긴 하였지만, 신라 김씨의 “金” 글자가 바로 “金”자인데 金은 여러 가지 뜻으로 쓰이고 있는 단어이다. 이러한 돌의 상징적 의미에서 변치 않는 우정을 의미하는 말로 金石之交(금석지교) 또는 金石契(금석계)라는 표현을 쓴다.
여기 비문에서 한자를 비단 금 錦石(금석)으로 썼다. 라함(羅含, 292-372)의 “湘中山水記” 중 "衡山 有錦石 斐然成文(형산 유금석 비연성문)”의 구절 표현에서처럼 錦石(금석)은 아름다운 무늬가 있는 돌 美石(미석)을 뜻한다. 그냥 돌이 아니고 아름다운 돌이니 좀더 멋진 시적 표현이 아닌가? 아름답게 표현해서 錦石(금석)으로 썼지만 이는 金石(금석)의 뜻을 그대로 담고 있는 표현이다.
이와 같이 이해하면 延錦石(연금석)은 ‘아름다운 돌로 연달아 쌓았다’는 의미가 된다. 천리장성을 축조했다는 기사에 “築長城 綿延千餘里(축장성 면연 천여리)”라는 표현처럼 면연(綿延)의 말을 쓰는데, 면연은 예기의 “連延不絶 父没子繼(연연부절 부몰자계)”-끊어지지 않고 부모가 돌아가시면 자식이 이어받는 것, 連續(연속), 綿延(면면연연), 계속 이어 내려져 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국편위는 이를 어떻게 번역 해석했는가? 국편위는 “延錦石(연금석)”을 “비단과 돌을 펼쳐”-이렇게 번역했다. 이런 빈약한 번역을 두고서 그냥 애교로 봐주고 넘기고 갈 사안인가? 아니지 않는가? 문화국가 헌법이론에 따르면 국사기관인 국편위는 문화창달과 진실 전달의 의무를 지고 있다. 비단 금자 돌 석자이니 “비단과 돌을 펼쳐”-이같이 번역한다고 해서 무슨 큰 잘못인가 하면서 반문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이 구절의 내용의 중요성을 잘 모르는 사람일 것이다.
“延錦石(연금석)”을 의미를 올바르게 이해하려면, 비단과 돌의 상징적인 의미와 실질적인 내용을 먼저 파악해내야 한다. 보석의 가치를 알지 못한다면 어찌 수주 화씨벽옥을 다듬은 화씨가 태어날 수 있겠는가? 그래서 전문가는 자기를 알아봐 주는 사람을 위해서 죽음을 받쳐서라도 보답하고자 한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진리를 알지 못한다면 어찌 구원이 있으리요, 세상은 아는 만큼 보인다. 공자는 오늘 진리를 알면 내일 죽어도 좋다고 말했다-“朝聞道 夕死可矣”(조문도 석사가의) ”(論語, 里人).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원리의 세상에서, 사마천이 예양열전에서 적어놓은 그 유명한 경구-“士爲知己者死 女爲說己者容”-를 다시 한번 상기하라. “충신은 자기를 써주는 사람을 위해서 죽음을 불사르고, 여자는 자기를 예뻐해주는 사람을 위해서 얼굴을 꾸민다.”
11행 요약
□□□□ | (학문 숭상과 토론하기를 즐겨 하였던 문무왕을 위하여 천정을 마련하고 빈객으로 모시겠으니 좋은 말씀 많이 들려주시기 바랍니다.) |
□而開沼 | (다리를 놓고) 연못을 파고 정원을 만들었는데, |
髣髴濠梁 | (돌로 쌓은 그것의 모습을 멀리서 보면) 어렴풋이 마치 호수 위의 다리처럼 보일 수도 있을 지 모르겠습니다. |
延錦石以 | 아름다운 돌로 연달아 쌓은 그것이 |
□□□□ | (수주화씨벽처럼 돌을 다듬고 서로 부지하게끔 쌓아 올려 굳건히 오래가도록 만들었습니다.) |
왜 혁명은 다리를 지나는 것일까?
전쟁은 끝났다. 정의는 실현됐다. ‘복수’는 성공했고 47인 무사들은 ‘충의’를 다했다. 그런데 조금 이상한 느낌이 든다. 왜일까? 승리의 환호는 잠시일 뿐, 목표를 달성한 순간 또 다른 미묘한 긴장감이 돈다. 긴장감의 원천은 무엇인가? 47인의 무사들은 폭력에 대해 폭력으로 응징한 수단 때문에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아코번의 47인 무사들은 폭력에 대해 비폭력무저항의 방식을 택했던 백이숙제와는 다르게 무력으로써 정의를 실현한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47인 충신장 무사들은 많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적장의 목을 베겠다는 단 하나의 목표를 성취했다는 측면에서 승리의 개가를 올린 것이 분명하다. 다시 말해 복수는 실현했다. 그것은 분명 충의에 해당한다. 그런데 왜 주군에 대한 의리의 실현이 국가에 대한 충의의 실현과는 배치가 된다는 말인가? 달리 말해서 상관의 명령에 따른 부하의 행동에 선택의 여지가 있었던 말인가? 충과 효는 의리의 직선상으로 이해한다면 분명히 서로 배치가 되지 않아야 한다. 그런데 왜 충과 효는 서로 배치된다는 말인가? 국가와 부모는 일치하지 않는가? 그건 분명이 전쟁의 시기에선 그렇게 어긋날 수가 있다. 자식이 부모를 봉양하는 자식으로서의 의무를 다하는 것을 효라고 개념지을 때 전쟁으로 인해서 자식이 부모보다 먼저 죽는다는 것은 효가 아니다. 그런데 이를 충으로 말하는 것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서 충과 효는 서로 배치가 됨을 알 수 있다.
왜 충과 효는 서로 일치가 되지 않는가? 그것은 죽음 때문이다. 죽음이 따르기 전까지는 충과 효가 일직선상에 놓여 있다. 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는 죽음 앞에서는 충과 효가 서로 일치하지 않게 된다. 죽음이 모든 것을 갈라 놓는 것이다. 우리는 죽음 앞에 책임을 져야 한다. 누가 그 책임을 지는가? 충과 의를 다했다는 무사들의 행동에 대해 충의의 불일치에 의한 책임을 묻는 이유는 어디에서 오는가? 이것은 살생을 금지한 법-자연법이든 실정법이든-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살인의 폭력은 살생을 금지한 법 그 자체를 위반한 것이니 우리들은 그에 대해서 마땅히 책임을 져야 될 이중적 운명에 처해 있다. 그래서 폭력에 대해 폭력으로 맞선 행위에 책임을 지고 47인의 무사들은 다시 죽음의 행진을 하는 것이다. 죽음은 오로지 죽음으로써 갚는다는 인류의 원초적인 원죄를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이 원초적 죄를 씻길 주체는 국가이다. 47인의 무사들의 행위에 대해서 이들을 처형할 것인가 아니면 사면할 것인가의 최종적 선택은 국가-천황이든 막부이든-에 달려 있었다. 그래서 47인의 무사들은 적장의 목을 따고 난 후 거사를 성공시킨 징표를 갖고서 거사의 명령을 내렸던 주군의 묘소가 있는 광명사로 행한다.
이에 대해 국가가 사면령을 내리든가 아니면 유죄의 경우 처형이라는 극형 처벌을 내릴 것인가 아니면 유배의 처벌을 내릴 것인지의 선고형량의 범위를 정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결국 정치적 고려에 달려 있을 것이다. 47인의 무사들의 행동은 결국 쿠데타 기도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사면이나 유죄냐 또 유죄일 경우 선고형량에 대한 불확실성이 지배하는 이 순간에, 이들 무사들의 미래는 오직 국가의 선택에 달려 있다.
화수교
충신장에서 무사들이 화수교를 건너는 모습을 묘사하며 다리 이름을 ‘화수’라고 지었는데, 여기의 ‘花水’(화수)라는 말은 불교 개념이 다분하고 또 미묘한 감정들이 교차하여 꼭 집어서 말로 표현하기 힘든 경우를 뜻하는 ‘경화수월(鏡花水月)’의 의미가 함의되어 있다. 무사들이 건넜던 다리의 실제 이름은 “永代橋”(영대교)이었다.
室鳩巣(무로 규우소우, 1658-1734)는 처형된 아코번 47인 무사들을 충의를 다한 의사들로 칭송하고, 이들이 처형된 바로 그 해에 시작하여 1703-1709년 사이에 이들에 관련된 역사적 기록들을 수집하고 赤穂義人録(아코번 의사기)를 후세에 남겼다.
47인 무사들이 처형된 바로 그 순간부터 즉시 충신으로 규정하였던 무로 규우소우가 “赤穂義人録”으로 책 제목을 달았던 뜻은 아코번 무사들의 거사가 무엇인가에 불을 당겼다는 그 행동의 목적과 취지를 살펴보면 의인으로 규정할 수 있다는 그의 결론에서 찾아진다.
충신장에서 무사들이 거사 성공 후 행진하였던 영대교 다리이름을 “화수교”로 칭하였는데, ‘화수’와 花穂’(화수)는 일본어로도 발음이 같은 동음이의어이다. ‘花穂’는 불을 당긴 스파이크 점화를 뜻하는 말이다. 47인 무사들이 무엇에 불을 당겼다고 그는 이해하였을까? 이에 대한 해석의 결과 막부는 47인의 무사들을 전원 처형하도록 하는 결정을 내렸다. 그리고 이에 대한 해석이 바로 충신장의 3인 공저자들이 기록으로 남기고자 했던 주제에 해당할 것이다.
무사들이 거사에 성공한 후 화수교 다리를 건너 광명사까지 행진하는 모습을 보면 개선장군이라기 보다는 꽃상여를 타고 가는 느낌이 든다. 이들은 전투대오를 유지하였을 뿐만 아니라 이들이 입었던 전투복장은 무지개 빛깔처럼 형형색색이었음을 함의적으로 들여다 보면 그렇다. 47인의 무사들의 행진을 떠나서 일반적으로 상여행렬을 보면 삶이 아니라 죽음을 맞이하려 가는 길이 왜 그토록 화려할까? 생과 사는 동전의 양면이고 따라서 그 경계를 확실히 하기란 무척 어려울 것이다. ‘사즉생 생즉사’라고 말하지 않던가? “길게 보면 우린 모두 죽는다.” 충신장의 주제는 죽음의 문제에 대해서다. 죽음의 문제만큼 가장 종교적이고 철학적인 단어는 찾기 어려울 것이다.
모든 혁명에는 다리가 개입되지 않았는가? 이성계가 정몽주를 압살한 개성의 선죽교가 다리이었으며, 박정희 대통령이 5.16때 한강다리를 건너서 서울을 장악했던 것이요, 후조의 석륵이 ‘천교’를 건설했던 까닭도, 아코번 무사들이 ‘화수교’를 건넌 이유도 다리의 깊은 의미에 연결된다고 볼 수 있다.
계획한 대로 승리한 전투에서 개선 행진하는 전사들이 화수교 다리를 지날 때 이루 형언할 수 없는 만감이 교차하고 미묘한 긴장감이 흐름을 알 수 있다. 이들이 지금 걷는 다리가 다시 돌아올 수 있는 자유의 다리인가? 아니면 영원히 돌아오지 못하는 다리일까?
다리는 이쪽에서 저쪽으로 저쪽에서 이쪽으로 이어주는 역할을 하는 쌍방형의 길이다. 파리의 세느강에서 장발잔이 타고 쫓기던 것처럼 시간에 쫓기며 유람선을 타 본 오래 전의 기억이 떠오른다. 다리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양쪽을 연결을 하는 통로의 기능을 한다. 이쪽에서 저쪽으로 건너가는 길목이다. 다리는 때로는 반역에 해당한다. 물결을 거스르는 역할을 하고 쌍방을 연결하는 ‘거래’를 해 주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미라보 다리”는 미라보의 이름을 간직할 만하다. 미라보는 42세로 처형당한 그의 삶이 말해주듯이 반역자이었다. 그는 자기 계급의 이해를 멀리하였고, 박터지게 싸우면서 아내하고 이혼했고, 독일과 영국의 외국 체제를 동경했고, 외국과 거래했다. 미라보의 삶이 말해주듯 혁명과 사랑이 공유한 금실타래는 배반이라는 것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프랑스 혁명의 표시였던 밤나무 아래서도 많은 사람들이 서로를 속이고 속였다. 혁명과 사랑이 공유한 한 가지는 진실은 바로 배반이라는 것이 아닐까? 인간은 모두 배반한다. 아폴리네르가 읊은 대로, 우리의 삶은 세느강처럼 길고 느리게 흘러가는데 왜 희망은 그토록 무참히 깨지고 마는 것일까?
미라보 다리
미라보 다리 아래 세느 강이 흐르고
우리들의 사랑도 흘러간다.
그러나 괴로움에 이어서 오는 기쁨을
나는 또한 기억하고 있나니,
밤이여 오라 종이여 울려라,
세월은 흐르고 나는 여기 머문다.
손에 손을 잡고서 얼굴을 마주 보자.
우리들의 팔 밑으로
미끄러운 물결의
영원한 눈길이 지나갈 때
밤이여 오라 종이여 울려라,
세월은 흐르고 나는 여기 머문다.
흐르는 강물처럼 사랑은 흘러간다.
사랑은 흘러간다.
삶은 얼마나 길고 더디던가?
그런데 삶의 희망이 한 순간에 사라질 수가 있을까!
밤이여 오라 종이여 울려라,
세월은 흐르고 나는 여기 머문다.
날이 가고 세월이 지나면
가버린 시간도
사랑도 돌아오지 않지만
미라보 다리 아래 세느 강은 흐른다.
밤이여 오라 종이여 울려라,
세월은 흐르고 나는 여기 머문다.
*[5]
12행
□□□□□□□□□之賔聆嘉聲而霧集爲是朝多□□
손님이 아름다운 소리를 듣고 안개처럼 모여 드니, 이를 말하여 아침에 많고
□□之賔
공성신퇴-동해지빈
賔(빈)은 宾(빈)과 동일한 의미의 글자로써, 손님 빈객이라는 뜻이다. 우리의 전통적인 생사관은 공성신퇴(功成身退)의 개념이다. 功成靜息 是天之道. 공성신퇴의 개념은 노자도덕경 제9장에서도 제시된다. “功遂身退 是天之道”. 공을 이루고 나면 몸은 그만 물러나는 것이다. 이게 하늘의 법칙이다. 불 같은 해도 지기 마련이고, 달도 차면 기우는 것이니, 사람이 공을 이루면 쉬는 것이 당연한 거고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굴원의 초사 구절처럼 “其生若浮兮 其死若休”-뜬 구름과 같은 삶이여, 죽음은 휴식처이로다. 죽음은 영원한 격리가 아니라 휴식의 개념이기에 죽음은 죽음이 아닌 것이다. 잠자는 수면과 같은 것이라면? 사람이 그 자리에서 물러나면 빈객이 되지 않겠는가? 그래서 망자가 되면 빈소를 차리는 것이고, 이와 같은 빈(賓)의 개념이 문무왕릉의 비문에서 서술되고 있다.
방랑객 김삿갓을 식객으로 묵게 했던 화순 동복의 정씨가문처럼 예전엔 부유한 유지들은 뛰어난 예능자들을 자기 집에 머무르게 하며 빈객으로 예우하였다. 결자 부분을 메꾸어 보려면, 나라 안의 모든 신하를 빈객으로 모셔온다는 뜻의 솔토지빈 率土之濱을 생각해 볼 수 있으나, 망자 특정인 한 사람임을 감안하면 유신이 애강남부에 나오는 “東海之濱”(동해지빈)이 지형적 여건으로 볼 때 더 잘 어울릴 표현같다. 경주는 지리적으로 동해안 해안가에 직접 닿아 위치하고 있다. 아니면 좀더 문학적인 표현에 치우쳐 “至如纓紱之士 草莱之賓”이라는 말을 생각해 볼 수 있다.[6]
纓(영)은 갓끈 系帽 带子을, 紱(불)은 인수 인끈 실크리본 훈장을 뜻하는 낱말이다. 纓紱(영불)은 冠带(관대)와 印綬(인수)를 뜻하는 말이니, 재직시에는 나랏일에 얽매여 있다는 속박을 의미하는 허리띠를 차고 은퇴후엔 참전용사 재향군인이 가슴에 훈장을 달고 다니듯이 은퇴후엔 훈장을 다는 사람 즉 관리 관직 官位(관위)에 있는 사람을 지칭한다. 이처럼 纓紱(영불)지사는 관대와 허리띠를 차고 있는 사람 즉 현직 관리의 신분을 가진 사람, 초래(草莱)는 초야(草野)에 묻혀 사는 일반 평민, 布衣(포의)를 지칭하는 말로 관리에서 평민까지 모든 사람들을 빈객으로 모신다는 의미로 쓸 수 있다. 하지만 유신의 애강남부가 문무왕릉 비문 내용에 끼친 영향이 매우 큰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동해지빈”의 표현이 적절하게 사용할 수 있을 수 것 같다. 그 뜻은 “동해안 해변가의 빈객으로 모시겠습니다”.
점필재 김종직이 표현한 “빈객”에 대한 의미는 저자의 다른 책 “첨성대 연구”에서 설명하고 있다.
봉제사 접빈객 奉祭祀 接賓客
“奉祭祀接賓客”(봉제사접빈객)의 유교 제례 문화가 엄격하게 지켜졌던 조선시대와 근대화 최근까지의 우리나라에서 물고기는 햇과일과 함께 제사상에 갖추어져야 할 필수품에 속했다. 연어 또한 어포를 만들어 가을 제사를 지낼 때 제수용으로 비싸게 거래되었다고 한다. 산과 고개가 많은 우리나라에서 교통이 불편했던 예전에 산간 내륙 지방에서는 신선한 생선을 구경하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산과 강으로 둘러싸인 산간 내륙 지방 안동에는 간고등어 요리가 잘 알려져 있는데 간고등어는 소금으로 절여 간을 들여 맞춘 장기 보관용 식품이다. 바닷가에서 멀리 떨어진 내륙지방(안동의 경우 가장 가까운 바닷가인 영덕까지는 80kn나 떨어져 있고 또 높은 산이 가로놓여 있다)에서는 시간적으로 싱싱한 바다 생선을 즐길 수가 없었고, 가을 제사 때 어포가 쓰인 이유는 물고기는 과일처럼 바로 잡을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기 때문에 생선을 잡아 말린 어포를 주로 이용하게 된 것이다. 지금은 냉동 기술의 발달로 인해서 연어 생선회가 어포보다 더 유행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지만. 안동 간고등어 얘기에 나온 김에 생각나는 박목월의 시 하나를 인용하고 싶다. “가난이 원수”였던 그때그시절 산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웠던 보릿고개의 하수상한 세월을 견디어냈던 우리들의 어머니의 과거적 현실은 이제는 역사의 한 장면으로 오래 전에 사라졌지만 초근목피로 연명해야 했던 보릿고개 시절에 부모 제사가 돌아오면 제사상에 올릴 제물이 없어 가난한 자손은 축문을 지어 본들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는 한탄이 구구절절이 느껴지는 시이다. 간고등어는 연어처럼 비싼 생선고기가 아닐텐데 그런 간고등어도 구하기 어려운 시절이 그때 보릿고개 시절이었다고 한다. 이 시에서 가난해서 배우지 못한 자식이어서인지 언문을 쓰고 있는데 반해 죽은 아버지는 어려운 한자를 쓰고 있어 세대 차이가 느껴진다. 이 시에서 시인은 만술애비의 말을 직접화법으로 표현하고 있는데, 죽은 자는 말이 없는 법이라고 하거늘 만술애비는 이미 죽은 사람인데 어떻게 직접 말을 할 수 있을까? 문학에 대한 해석과 이해는 살아 남은 사람들에게 달려 있다. 등잔불도 없던, 소금에 밥 말아먹던 그때그시절에 같은 인간으로서 베푼 인정을 보면 “굵은 밤이술”같은 눈물을 흘리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오늘날 그때그시절이 오히려 그리운 까닭은 그때그시절은 다같이 가난했던 평등의 시절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그리고 한 번 다시 생각해 보자. 비록 오늘날 보릿고개는 오래 전에 사라졌다고 하지만 지금 현재에도 ‘가난이 원수’인 것은 변함이 없는 사실이지 않는가? 인간 세상은 상대적일 수 밖에 없는 것이고, 그래서 ‘죽음 앞에 만인이 평등하다’는 사실은 더욱 의미가 부여되어야 할 것 같다. 목월 시인의 “萬述아비의 祝文” 전문을 “경상도의 가랑잎”(1968)에서 인용한다.
아배요 아배요
내 눈이 티눈인 걸
아배도 알지러요.
등잔불도 없는 제사상에
축문이 당한기요.
눌러 눌러
소금에 밥이나마 많이 묵고 가이소.
윤사월 보릿고개
아배도 알지러요.
간고등어 한 손이믄
아배 소원 풀어드리련만
저승길 배고플라요
소금에 밥인나마 많이 묵고 묵고 가이소.
여보게 萬述아비
니 정성이 엄첩다.
이승 저승 다 다녀도
인정보다 귀한 것 있을락꼬,
亡靈도 應感하여, 되돌아가는 저승길에
니 정성 느껴느껴 세상에는 굵은 밤이슬이 온다.
聆嘉聲而
聆(령)은 듣다 경청하다 聽(청)의 뜻, 嘉(가)는 아름답다 善(선),美(미)의 뜻, 聲(성)은 소리의 뜻이다. 嘉聲(가성)이란 단어는 美好聲譽(미호성예) 즉 聲望名譽(성망명예) 명성과 명예가 높다는 뜻이다. 따라서 “聆嘉聲而”(영가성이)는 ‘높은 명성을 듣고’의 뜻이다. 英聲(영성)은 훌륭한 명성(名聲)을 뜻한다. 그러므로 영성은 영가성이의 의미와 같다. 사마상여의 봉선문에 “蜚英聲 騰茂實”(비영성 등무실)의 구절이 나오는데, 이는 ‘아름다운 명성을 드날려서 풍성한 재능을 진동시키라’의 뜻이다. 진사명(晉祠銘)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日月有窮 英聲不匱 天地可極 神威靡墜 萬代千齡 芳猷永嗣” (일월유궁 영성불괘 천지가극 신위미추 만대천령 방유영사).
霧集 爲是
霧集(무집)은 운무-霧-즉 안개가 피어나는 霧氣聚合(무기취합)의 줄임말이고, 또는 안개처럼 많음-盛多-을 비유하는 단어이다.
높은 산에 올라가 안개의 움직임을 살펴보면 아무 것도 안보이는 시계 제로에서 금새 모든 것을 꿰뚫고 움직이는 듯한 안개의 무한변화의 동적 모습에 신비스런 느낌 즉 초월적인 신비함-ethereal power of fog-의 존재를 믿는 감각적 경험을 하게 된다.
爲是(위시)는 ‘혹은’ ‘또는’ ‘그렇지 않으면’ 이라는 뜻의 관계조사이다. 영어로 ‘or’, 중국어로 ‘抑或’ ‘還是’의 뜻이다.
多朝多夕
남녀의 애정관계에서 상대방을 향해 생각을 하는 것을 사념(思念), 상념에 잠긴다고 말하는데, 현실적 효율성을 중시하는 유가의 입장에서는 생각에 잠겨 있는 것을 경계하였다. 시경의 관저에 나오는 싯구, 寤寐思服(오매사복), 輾轉反側(전전반측)의 표현이 그것이다. 오매불망 전전반측은, 자나깨나 생각에 잠겨 잠못들고 몸을 뒤척인다는 뜻이다. 이러한 뜻으로 朝思夜想(조사야상), 朝思暮想(조사모상)의 표현이 있다. 이 조사모상과 같은 뜻으로 쓰인 표현이 문무왕릉비문 뒷면 12행에 나오는 “□□之賔聆嘉聲而霧集爲是朝多□□”의 구절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의 “朝多夕多” 조다석다의 표현은 주야로 성찰을 한다는 뜻이다.
아침 저녁으로 노부모님께 문안 인사를 드리는 첨성(瞻省)은 과거 세대와 미래 세대를 잇는 현재의 대화 과정이다. 朝조는 아침이라는 뜻 이외에 朝賀(조하) 즉 參拜(참배)하다의 뜻, 조회하다 모이다의 뜻 拜見(배알)하다의 뜻이 있는데 여기서는 “朝多”라고 사용하고 있으므로, “朝多□□” 결자부분을 “朝多夕多” 즉 多朝多夕-一朝一夕(일조일석)-하룻밤이 아니라 ‘다조다석-수많은 날들까지 오랫동안’ 이라는 의미를 도출해 낼 수 있다. 우리 인류의 역사와 운명은 눈 깜박할 사이 하룻밤 사이 단숨에 바꿔지지 않을 것이다. 꾸준한 노력이 필요한 것이고 만만디를 요구하지 않는가?
多朝多夕는 오매불망, 寤寐思之, 朝思夜想, 朝思暮想 등의 표현에 가까운 말이다.
“朝多□□”의 다른 두 번째 의미
춘추좌씨전에 “其朝多君子 其庸可媮乎 勉事之而後可” (기조다군자 기용가유호 면사지이후가) 구절이 나온다. 이 구절은 ‘朝廷(조정)에 君子(군자)가 많으니 어찌 가벼이 볼 수 있겠는가? 반드시 힘을 다해 晉진나라를 섬긴 뒤에야 환란을 면할 수 있을 것’의 뜻이다. 국가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 정도로 훌륭한 인재를 갖추고 있는 나라라면 주변국에서 어느 누가 그 나라를 업신여길 수 있겠는가? 이런 역사를 배경 지식으로 삼으면 비문 내용의 의미를 ‘조정에 많은 군자가 나오기를 기원하는’ 내용으로 추측하는 것은 합리적인 해석이다.
萃餐德音
동해지빈의 높은 명성을 듣고-聆嘉聲而, 안개처럼 많은 사람들이 아니 하룻밤이 아니라 수 없는 날들까지 계속하여- 霧集爲是朝多夕多, 찾아와 밥 한 술에 술 한 잔 따르며 좋은 말씀 들려주시기를 청하면-萃餐德音, 而響答影隨和- 화답해 주십시오.
아침 저녁으로 노부모님께 문안 인사를 드리는 첨성(瞻省)은 과거 세대와 미래 세대를 잇는 현재의 대화 과정이다.
이러한 령가성이향화자 개념과 표현은 한나라 채옹의 곽유도비문에 나오는 구절로써 더 깊은 이해를 할 수 있다. “于時纓緌之徒 紳佩之士 望形表而影附 聆嘉聲而響和者 猶百川之歸巨海 鱗介之宗龜龍也” (蔡邕, “郭有道碑”).
이 신도비 구절의 뜻은, 관모를 쓰고 관대를 찬 중앙 관리를 지냈고, 허리띠를 두른 향신 지역 유지였다. 뛰어난 인품과 고상한 품덕이 그에게서 저절로 우러나왔고, 높은 명성에 걸맞는 인물이었다. 모든 강이 흘러 들어가는 큰 바다에 비유되고, 바다 물고기의 지존인 거북과 용에 비견될 정도로 걸출한 인물이었다.
12행 요약
□□之賔 – (東海)之賔 |
(동해안가의 빈객으로 모시겠으니) 동해안 동해지빈의 |
聆嘉聲而 | 높은 명성을 듣고, |
霧集爲是 | 운무 안개가 밀려오듯 많이, 아니 |
朝多□□- 朝多(夕多) 朝多(君子) |
하룻밤이 아니라 수 없는 날들까지 계속하여 조정에 많은 군자들이 나타나도록 |
(萃餐德音 而響答影隨和) |
(찾아와 밥 한 술에 술 한 잔 따르며 좋은 말씀 들려주시기를 청하면 화답해 주십시오) |
비문뒷면 13행
卽入昇忘歸射熊莫返太子雞」
이에 대해서 국편위는 “묘(昴)에 들어가서는 돌아감을 잊으시고, 웅(熊)을 맞추시고도 돌아가지 않으셨다. 태자 계(雞) …”으로 해석했다. 국편위 해석에 대해서 나는 다음과 같이 비판한다.
入昇忘歸
국편위는 “昴”(묘) 글자로 판독했는데, 정확한 판독 글자는 유희애의 판독대로, “昇”(승) 글자로 판독하는 것이 옳다. 이 비문 구절을 昇의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비문 문맥상의 의미와 일치한다. “昴星”(묘성)은 별자리 28수 가운데 서방백호7수 제4성에 속한다.
만약 글자 판독을 “昂”으로 하는 경우, 昂(앙)은 높은 곳을 쳐다보다 仰,高의 뜻이니 입승(入昇)이라는 뜻에 가깝게 된다. 입승은 들어가다, 오르다의 뜻이니, 入室升堂(입실승당)-신의 경지에 다다르다-의 성어 의미를 함의하고 있다. 입승의 昇(승)자와 升(승)은 같은 의미의 글자이다.
忘歸
忘歸(망귀)는 돌아감을 잊다, 忘返(망반)이라는 뜻이다. 사랑에 빠져서 돌아갈 것을 잊어 먹어 버리는 것을 뜻하는 말로 조식의 낙신부에서 표현되는 다음과 같은 구절의 그것이다. 浮長川而忘反 思緜緜而增慕 夜耿耿而不寐 霑繁霜而至曙 큰 바다를 유람하더니 돌아갈 생각을 잊은 듯 그리움은 더해가네. 밤 깊어도 잠들지 못하고 무서리에 젖어 새벽에 이르렀네.
한 번 쏜 화살은 되돌아오지 않는 법-忘歸之矢(망귀지시)이고, 형가의 역수가에서 표현되듯이 우리 삶에서 죽음은 한 번뿐이기에 한 번 죽으면 영원히 돌아오지 않는다. “風蕭蕭兮易水寒 壯士一去兮不復還”, 소슬 바람 소리 쓸쓸하고, 강물은 더없이 차가운데, 이제 무사가 한 번 건너면 두 번 다시 돌아오지 못하리.
망반(忘返), 망귀(忘歸)는 죽음을 뜻하는 말로 죽음에 대한 완곡어법으로 쓰이는 표현이다. 초사 구가의 좌사의 오도부에서의 구절의 표현이 그것이다, “東風飄兮神靈雨 留靈修兮憺忘歸” 또 “舜 禹 游焉 沒齒而忘歸”.
그러므로 入昇忘歸[7](입승망귀)는 편히 가시라는 승천의 의미이고 따라서 죽음에 대한 완곡한 표현인 것이다. 入昇忘歸는 우리의 전통적 정서인 인망정식(人亡政息)을 말해준다. 무릇 대자연은 모양새가 있다. 태어나 뼈빠지게 일하고, 늙으면 은퇴하고 소일하며 여생을 보내고, 죽는 것은 휴식이로다: “夫大塊載我以形 勞我以生 逸我以老 休我以死” (장자, 대종사).
射熊莫返
射覆(사복)과 射虎(사호)
우리들의 윷놀이할 때 주사위를 종지기 속에 넣고서 종지기를 공중을 향해 높이 던지는데 이런 모습에서 주사위 윷놀이를 射覆(사복)이라고 한다. 예전에 텔레비전으로 방영되는 주택복권 추첨할 때 진행자가 출연자 사수가 화살시위를 당기기 직전 “쏘세요” 이런 명령을 하는데 사복의 단어 뜻이 그것인바 射覆(사복)은 윷놀이 유희의 일종이다.
2008년 경주 임해전 터에서 정육면체 주사위 발굴되었는데, 이 정육면체 주사위에 벌칙놀이의 내용이 적혀 있다. 주사위를 굴려 위로 나타난 면에 새긴 문구의 내용대로 행해야 하는 술자리 벌칙들을 적은 것인데, 이 가운데 몇 개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飮盡大笑(음진대소)-술잔을 다 비우고 크게 웃는 것, 三盞一去(삼잔일거)-술 석잔을 한꺼번에 원샷하고 마셔야 하는 것, 禁聲作舞(금성작무)-말없이 춤만 춰야 하는 것, 自唱自飮(자창자음)-노래 부르면서 동시에 마셔야 하는 것, 任意請歌(임의청가)-마음대로 노래 청하기, 衆人打鼻(중인타비)-여러 사람 코 후비기, 弄面孔過(농면공과)-얼굴을 간질거려도 참아야 하는 것, 醜物莫放(추물막방)-더러운 것을 버리지 말아야 한다는 것, 自唱怪來晩(자창괴래만)-화음있는 가곡을 부르다 뒤에 가서는 놀라 자빠지며 자지러지는 것 등의 알아 맞추기 게임 벌칙 놀이가 있다.
정월 대보름날 행해지는 민속놀이에 사복과 비슷한 알아 맞추기 게임 射虎(사호)라는 놀이가 있다. 射虎(사호) 놀이는 등불에 비추어 수수께끼 알아맞추기 놀이인 猜灯謎(시정미) 놀이를 지칭하는 말이다. 정월대보름날 행해지는 중국의 민속놀이라는데, 채색등을 내걸고 불을 밝힌 후 수수께끼를 종이에 적어 오색등에 붙이면 사람들이 수수께끼 답을 맞히는 풍습이라고 한다.
射(사) 글자는 화살을 쏘는 shooting(슈팅)의 뜻이 있는 단어이지만 射覆(사복)이나 射虎(사호)의 놀이를 뜻하는 단어들에서 보다시피 전이된 다른 뜻도 있다.
照射(조사) 放射(방사)
射(사)는 빛을 발하다는 照射(조사),放射(방사)의 뜻이 있다. 영어로 irradiate의 뜻이고, 밤중 고대마루에서 등불이 휘황찬란하게 빛나는 모습이나 등대불을 연상해 보라. 밤하늘에 빛나는 별의 모습이 그것 아닌가?
위에서 설명한대로 射覆(사복)과 射虎(사호)의 뜻을 알아차렸다면, 문무왕릉비에서의 “射熊莫返”(사웅막반)의 뜻을 보다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 射覆(사복), 射虎(사호), 射熊(사웅)의 뜻을 좀더 분명하고 확실하게 해석하기 위해서 여러 역사서에 나타나는 문구들을 통해서 알아보자. 호랑이 사냥, 곰 사냥에 이어 사슴 사냥의 뜻이 들어 있는 “射糜”(사미)의 의미에 대해서 알아보자. 여기의 糜(미) 글자는 고라니, 노루를 지칭하는 짐승 이름인데, 통상 사슴이나 또는 산양까지를 포함하는 의미를 지닌 단어이다. 시골에 가면 고라니가 차에 치여 죽는 경우를 흔히 보기도 한데 고라니 노루 사슴 산양 이런 짐승들의 공통점 하나는 토끼처럼 산 위를 향해서 달아난다는 점이다. 그래서인지 사슴은 눈이 덮인 높은 설산에 자주 나타난다.
이들 짐승은 높은 곳으로 올라가야 살 수 있다는 본능에서인지 높은 곳으로 토끼는 경향이 있다. 헤밍웨이의 소설 “킬리만자로의 눈”을 읽어보면 왜 표범이 육천미터가 넘는 그 높은 산의 정상 근처에서 죽어 있는지 왜 표범이 그렇게 높은 설산까지 올라가서 죽었는지를 의문하는 것으로 소설의 서두가 시작된다. 사슴 동물의 삶과 죽음의 본능을 이해해 보라. 높은 바위를 잘 타는 산양이나 사슴 등은 높은 곳으로 올라간 뒤 뒤돌아서서 즉 정상에서 계곡을 내려다보는 조망을 하며 자기를 죽이려 오는 사냥꾼의 동태를 살핀다. 그러므로 사냥꾼이 사슴을 보다 쉽게 사냥하려면 사슴보다 더 높은 곳에 올라가 즉 사슴의 뒷통수를 노려서 화살이나 총을 쏘는 것이 현명한 사냥술이다. 그런데 사람인 사냥꾼이 이들 짐승보다 바위타기를 잘 할 수가 없으니 어찌 사슴보다 더 높은 곳까지 올라갈 수가 있겠는가? 기껏해야 높은 곳으로 화살시위나 총구를 겨눠서 사슴을 잡는 법이고, 또 사냥개를 필요로 한다.
고려대학교와 고려시대 고려(高麗)의 의미- 射糜麗龜(사미려구)
춘추좌전에 “射糜麗龜(사미려구)”의 표현이 등장하는데, 여기서 麗(려)는 나타나다 著(저)의 뜻이다. 高麗(고려)대학교나 고려시대의 국호 高麗(고려)의 뜻이 바로 이것이다. 대개 부유한 사람들이 사는 고대광실은 언덕 위의 하얀 집이라는 표현대로 높은 곳에 쌓고 할리우드처럼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드높은 집에서 살아간다. 그것처럼 ‘고려’는 ‘높은 곳에서 나타나다’ 즉 ‘아름답게 높이 빛난다’는 뜻을 갖고 있는 단어이다. 봉건시대로 치면 귀족들을 지칭하는 말이 되겠다. 이러한 "고려"의 뜻대로 밤하늘 불꽃놀이처럼 높은 곳에서 빛나는 것은 극히 아름답지 않는가? 요즈음 나사에서 제공하는 우주천체의 사진들이 그렇게 아름답게 보이듯이 밤하늘에 빛나는 별들은 모두 아름답게 빛난다.
여기의 射糜(사미)는 麗龜(려구)의 뜻처럼 ‘높은 곳에 나타난다’는 의미이다. 깊은 바닷속에서 사는 거북이가 바다속에서 뭍으로 올라오면 얼마나 높이 올라온다는 것인가? 높은 산으로 올라가는 사슴을 우리들은 두 눈을 들어 위로 쳐다볼 수밖에 없다. 사슴은 높은 곳에서 나타난다. 사슴은 자기 방어를 하기 위해서 높은 곳의 바위틈에서 낮잠을 자다가 아침 저녁으로 허기를 채우기 위해서 물이 흐르는 낮은 곳으로 이동하는데 그렇게 사슴은 높은 곳에서 나타나기에 사냥꾼들이 사슴 사냥을 할 땐 바위 많고 산이 높고 계곡이 깊은 산 속으로 떠나지 않는가?
춘추좌씨전 선공12년(BC 597) 기사에 “麋興於前 射麋麗龜(미흥어전 사미려구)” 구절이 있는데, “노루가 갑자기 앞에 나타났다, 높은 곳으로 튀었다”는 뜻이다. 춘추 해설서에서 “此射麋麗龜 謂著其高處 故杜以龜爲背之隆高當心者”으로 정확하게 해설하고 있음을 참조하라.
위의 설명으로 알 수 있듯이, 射熊(사웅)은 射糜(사미), 射虎(사호) 射覆(사복)의 뜻처럼 ‘높은 곳에 나타난다’는 의미나 비유나 은유로 전이된 명사로 해석하는 것이 올바른 해석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射熊(사웅)은 국편위 번역처럼 동사로 쓰여서 ‘곰을 쏘아 맞추다’의 뜻이 아니라, 곰이 빛을 발하듯이 ‘죽어서 돌아오지 못하다, 하늘에 올라 캄캄한 밤하늘에도 별처럼 빛나다’ 즉 비유적인 의미로 ‘하늘에 오르다’ ‘영면하다’의 뜻의 명사로 쓰인 말이다.
서양 어린이 동요에 ‘곰 사냥을 나간다’는 “bear hunting”(베어 헌팅) 동요가 있는데 이 곰사냥은 부모가 아이를 데리고 사냥을 직접 나간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흉내 내고 묘사하며 아이들에게 용감성을 길러주는 롤 모델의 의미로써 곰을 사냥하는 이미지를 그려낸 상징성의 노래이다. 어릴 적 말맞추기 놀이를 자주 하지 않았는가? 사람들의 말에는 비유와 은유 등 사물을 의인화해서 이해하는 경우가 흔하다. 아이들이 곰사냥을 직접 할 수 없지 않는가? 사람들은 상상력으로 그려서 사물을 이해한다. 단어를 구성하고 있는 낱말 한글자 한글자의 뜻으로 쪼개고 분해해서 해석한다면 결코 문장 속에서의 쓰인 올바른 의미를 제대로 찾아내지 못할 것이다.
국편위는 “射熊莫返”을 “웅(熊)을 맞추시고도 돌아가지 않으셨다”고 번역 해석했는데, 국편위의 번역은 앞 뒤 문장의 의미가 서로 그 뜻이 통하지 않는 잘못된 번역임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지적한다. 문무왕릉 비문은 죽은 사람을 애도하는 내용의 문장이기 때문에 사냥하는 수렵의 장면 같은 뜻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射熊(사웅)은 국편위 번역처럼 ‘곰을 화살로 쏘아 맞추다’의 뜻이 아니라, 射(사)는 빛을 발사하다는 뜻의 단어로써 작은곰자리에서 빛나는 북극성 그 별이 별빛을 반사(反射)하듯이 ‘죽어서 돌아오다’, 하늘에 올라 캄캄한 밤하늘(솔처럼 송송히 나있는 새까만 곰털)에도 별처럼 빛나다의 뜻으로 쓰인 것이고, 따라서 사웅(射熊)은 비유와 은유적인 이미지로 ‘하늘에 오르다’ ‘영면하다’의 뜻이다.
莫返(막반)은 국편위가 “돌아가지 않으셨다”고 번역 해석했지만 이 국편위 해석은 틀렸다. 莫返(막반)은 사기 진본기에 나타나는 “西巡狩 樂而忘歸(서순수 요이망귀)” 구절의 의미와 같은 말이다. 즉 莫返(막반)은 忘歸(망귀)와 같은 뜻이며 그와같이 죽음에 대한 완사로 쓰인 것이다. 사람은 한 번 죽으면 결코 되돌아 살아오는 법이 없다. 죽음은 영원한 침묵, 죽음의 다리를 한 번 건너면 결코 되돌아 올 수 없다. 우주공간은 너무나 크고 넓고 광활하기에 한 번 죽음의 여행에 오르게 되면 두 번 다시 되돌아 올 수 없는 막반이다.
莫返=亡歸
“莫返” 부분 글자 판독에 대해서 황수영과 이난영은 판독 불가라고 여기고 글자 판독을 보류하였는데, 다수의 판독자들은 유희애의 판독과 같이 “莫返”(막반)으로 판독하였다. 유희애는 “莫返” 글자 판독을 “莫返”으로 판독하였는데, 莫(막)은 無, 沒有, 不, 不能의 뜻이니, 莫返은 ‘돌아오지 말라’, ‘돌아가지 않다’의 뜻으로 해석된다. 귀의(歸依)는 불교 용어로 익숙해진 단어인데 歸依(귀의), 皈依(귀의)하다는 귀래(歸來)하다, 返回(반회)하다, 돌아오다, return(리턴)의 뜻이다. 그러므로 ‘막반’이라고 하면 ‘돌아오지 못하다’는 뜻이다. 죽음이란 돌아오지 못하는 다리를 건너는 것, 막반에 해당한다. 따라서 莫返(막반)은 亡歸(망귀)하고 같은 뜻으로써 이 두 단어는 죽음에 대한 완사 유퍼미즘으로 쓰인 말임을 알 수 있다. 결론적으로 비문의 ‘射熊莫返’(사웅막반)은 ‘죽어서 돌아오지 못하다’ ‘북극성처럼 영원히 빛나소서!’의 뜻이 된다.
한나라 양웅의 長楊賦(장양부)의 “射熊館”(사웅관)의 의미로써 새긴다면[8], ‘죽은 자여! 이제 적멸보궁 같은 깊은 산 속의 사웅관에서 편히 쉬소서!’의 의미가 되겠고, 덕흥리 고구려 고분 벽화도에 나타난 “입궁”의 의미로 새긴다면, ‘혼자서도 걱정없이 편히 머무를 수 있도록 먹을 것 다 차려 놓았으니 자손들이 부귀공명을 누리도록 잘 지켜주소서!’의 의미이고, 도교적으로는 ‘신선 승천’의 의미이고, 기독교적으로는 사도신경 구절의 예수의 “하늘에 오르사”가 되고, 요즈음의 흔히 쓰이는 애도의 말로써는 “하늘에서 편히 쉬소서!”의 표현이 된다.
熊熊
熊(웅)은 동물 곰을 지칭하는 뜻뿐만 아니라 불길이 활활 타오르는 모양을 이르는 말로 쓰인다. “熊熊(웅웅)”하면 불꽃 화염(火焰)이 활활 타오르는 모양, 이글이글 불길이 매우 거세게 세차게 치열하게 타오르는 모양-火勢 旺盛을 이르는 형용사이다. 烈火(열화)같이 타오르는 불길의 모양을 웅웅(熊熊)이라고 형용하는 말이다. “웅웅”의 소리나는 발음은 벌이 “윙윙”거린다는 우리말의 소리성의 의미와 같다. 왕벌에 쏘이면 팔뚝이 산이 되도록 벌겋게 달아오르지 않던가? 웅(熊) 글자가 能(능)자와 불 炎(염)자를 조합하고 있다. ‘불을 내다’는 뜻이 아닌가? 곰은 ‘웅담’의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유용한 약재로 쓰이고, ‘곰 발바닥’은 무사의 신발(일본의 지금껏 남아 있는 사무라이의 그림에서 알 수 있듯이 무사의 신발)로 쓰였다. 그리하여 곰은 인간에게 매우 유용한 동물임이 틀림없다.[9] 곰은 그 큰 덩치로 나무타기로 잘 하고, 사람처럼 서서 직립해서 걷기도 하기 때문에 일어서서 으르렁거리는 모습이 쉽게 상상되기도 한데, 맨 처음 한자 형성이 어떤 심오한 뜻이 있는지 그것까지는 내가 다 알 수 없지만 사람이 화를 내면 으르렁거리는 불곰처럼 무섭게 보여서일까? 곰은 초나라의 시조인 웅역의 토템인데, 초나라 사람으로 불굴의 의지 곧은 절개 충신의 대명사 굴원이 더욱 유명하다. 웅녀는 먼 고대로 올라가면 모계사회의 전통을 전해주고, 초사는 곰 토템과 많은 연결성을 갖고 있다.
어라, ‘활활’ 불 타오르는 불화자가 알고 보니 새가 날개 타고 ‘훨훨’ 하늘로 올라가는 상이네!
이글이글 타오르는 횃불이 炎炎(염염), 熊熊(웅웅), 불곰(rampant bear)의 형상이었구나![10] 불이 곧 날개라는 이야기를 이제 이해하게 되었다. 왜 불의 임금 불 타오를 堯(요)자 요임금, 赤帝, 帝堯가 별자리 남방주작 익수-즉 시방새 날개 처녀자리 날개에서 빛난다는 경성, 명성인 줄 이제 알아차릴 수 있지 않는가! 왜 북두칠성에는 네모난 국자 모양이 있고 그 반대의 위치에 있는 남두육성에도 국자가 있겠는가? 좌우의 날개로 새가 날듯이, 득도하려면 즉 하늘을 날아 오르려면 날개를 타야 하는거고, 그같이 날개는 양쪽이 있어야 제 기능을 발휘한다. 한쪽이 잘못되면 추락한다. 태양까지 날아갔던 이카루스가 떨어진 이유는 무엇일까? 모든 것은 음양으로 이루어져 있고, 만물은 짝을 짓고 있다. 우주만물의 이치가 그렇다면 인간사회 또한 마찬가지가 아니겠는가? 음양 상극 좌우 조화 말이다.
설문해자 해설을 보면 “火始燄燄”이라고 하고, 燄燄(염염)은 焰焰과 같은 글자인데 孔子家語(공자가어)에서 “焰焰不滅 炎炎若何”으로 표현하고 있다. 불길이 세차게 타오르는 모습을 焰焰(염염)하다로 표현하는 유신의 등부(燈賦)의 구절 “輝輝朱燼 焰焰紅榮 (휘휘주신 염염홍영)의 구절을 상기하라.
熊熊(웅웅)은 炎炎, 燄燄, 焰焰, 庸庸, 融融 등과 같은 말로써 우리말의 불길이 이글이글 타오르다의 의미와 같다. 웅웅(熊熊)이든 웅(熊)자 한 낱말이든 불길이 타오르는 모양을 가르키는 뜻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射熊”하면 ‘빛을 발하다’를 갖는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사웅막반”의 뜻은 “죽어서 영원히 빛나소서!”
문무왕릉비문의 “射熊莫返”은 국편위가 번역한대로의 “웅(熊)을 맞추시고도 돌아가지 않으셨다”는 뜻이 아니다. 국편위의 번역은 틀렸다. 莫返(막반)은 忘返(망반), 忘歸(망귀)와 같은 뜻으로 죽음에 대한 완사로 쓰였고, 射熊(사웅)은 ‘높은 곳에서 빛나다’는 뜻으로 번역하는 것이 전후 문맥상 올바른 해석이 된다. 또 ‘신선승천’의 도가사상과 첨성대의 역사적인 의미를 쫓아서 “射熊莫返”을 해석하면, ‘하늘나라에 올라 북극성처럼 영원히 빛나라’의 뜻이다.
별자리- 왜 북극성인가? -북극성과 천연(天淵)
첨성대의 맨 위 사각형 정자가 4개가 아닌 2층 4각형 구조로 8개인 이유가 무엇인가? 망원경은 두 개의 거울로 이루어진다. 갈릴레오가 중국에서 가져온 망원경을 개량해서 천체 관측을 해냈고 그리하여 뉴튼의 우주물리학의 탄생을 알렸는데 갈릴레오의 망원경이나 우리선조들이 사용한 대나무 망원경이 그렇고, 최근의 허블 우주망원경 또한 그런 구조이다.
북극성은 곰자리에 있다. 한국인의 자양강장제로 가장 잘 알려진 약품이 “우루사”인데 이 우루사라는 단어는 라틴어 “Ursa”(우루사)로써 곰자리를 지칭한다. 북극성이 있는 곰자리에는 큰곰자리와 작은곰자리 두 개 별자리가 있다. 곰은 웅담이 말해주듯 웅장한 사내의 의미를 가진다.
28수 별자리이론, 井宿(정수) 角斗奎井(각두규정) 등으로 쉽게 설명이 된다. 도교의 경전 星經(성경)의 의미를 좇아서 설명하는 것이 첨성대의 성격을 가장 정확하게 반영한다. 첨성대의 모양은 옥정이고, 황천이고, 천정이다. 영토적으로 해석하면 하왕조를 개창한 우임금의 탄생지 곤륜산 곤지이고 한반도의 백두산 천지이고, 한라산의 백록담인데 이와 같이 하늘에 솟아 있는 연못 호숫를 성경에서는 별자리 이름 “天淵(천연)”이라고 부른다. 또한 하늘을 떠받치고 있는 여덟 개의 기둥, 4통8달의 의미, 8개의 천주가 있다는 우주관 등으로 설명이 될 수 있다.
실물감각적으로 성경에서 말하듯이, 북두칠성 근처 북극성을 찾아내는 방법은 두 개의 4각형 상자를 통해서이다. 우리는 두 개의 사각형 상자 그림을 이용해서 북극성을 보다 쉽게 찾아낼 수 있는데, 첨성대 맨 꼭대기에 놓여 있는 두개의 4각형 상자 모양은 그것을 상징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북극성은 다른 별들이 북극성을 중심으로 회전하기에 북극성은 붙잡이 별이고, 그러므로 뱃사람들의 배가 나아가는 방향을 잡아주는 키잡이 역할을 하는 별이다. 뭇별들의 중심이 되어 영원히 그 자리에서 빛나는 북극성이 영원불멸의 관념을 대변해주는 대상이 아니겠는가? 북극성은 큰곰자리와 작은곰자리의 두 사각형을 이용해서 보다 쉽게 찾아진다. 위키에서 가져온 북극성을 나타내는 곰자리 그림을 참조하라.
우리 선조들의 죽음에 대한 관념 하나는 ‘사람은 죽어서 그 영혼은 별에다 기탁한다’는 생각이었다. 근대의 서양의 유명한 생떽쥐빼리의 “어린 왕자” 소설을 읽어보면 쉽게 이해하리라. 금성에서 온 여자 화성에서 온 남자라는 책이 서점가의 인기를 끈 적이 있었는데 어찌 우리 인간의 영혼이 그처럼 가까이 머물러 있겠는가? 광할한 우주공간에서 말이다. 사람이 죽으면 저 멀리 우주 공간 속으로 날아간다. 끝없는 침묵으로 끝없는 우주공간 속으로. 저 무수한 별들의 공간 속으로.
눈은 마음의 창- 상상력과 진리 탐구
인간 영혼의 상상력의 산물이 28수 밤하늘의 별자리 이론이고, 사마천이 사기에서 대한민국의 기원을 기록해 놓은대로 기자조선의 의미, 좌청룡우백호전주작후현무의 음양오행설, 문무왕릉비문의 별자리 설명, 첨성대의 별자리 이론 이런 모든 것들이 인간 영혼은 끝없이 펼쳐지는 광할한 우주처럼 해와 달처럼 별처럼 영원하다는 인간 영혼의 불멸성을 말해준다. 이것이 조선의 참된 역사이고 오늘날까지 꺼지지 않고 면면히 이어 내려오는 영원 불멸상이다. 별은 영원한 삶으로 인내하는 불사약이고 그래서 인간은 어린 왕자가 되어 밤하늘 사다리를 타고 별로 올라가 별을 따고 영원한 우주 여행을 즐기는 영생을 얻게 되는 것이 아닌가? 오로지 “어린 왕자”의 눈으로써만 부활의 생명을 얻게 되는 법이다. 눈은 “마음의 창”이려니.
밤하늘에 스치는 별을 바라보며 마음의 창으로 죽는 날까지 한 점 부끄러움 없기를 맹세하면서 밤하늘의 유성을 쳐다본 적이 있지 않는가? 돌아가신 부모님 산소 앞에 부모님을 욕되지 않게 하겠노라고, 죽기를 각오하며 결의를 다지고 맹세하는 엄숙한 출정식의 의미가 그것이다. 문무왕릉 비문의 구절 “射熊莫返”은 ‘(문무대왕이시여 비록 안타깝게도 갑자기 세상을 떴지만) 하늘에 오르사 북극성처럼 영원히 빛나소서!’의 뜻이다.
射熊莫返
“射熊莫返”을 국사편찬위원회는 “웅(熊)을 맞추시고도 돌아가지 않으셨다”고 번역했는데, 국편위의 번역이 잘못되었음을 위에서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射熊莫返(사웅막반)의 의미는 “(문무대왕이시여 안타깝게 천수를 누리지 못하고 갑자기 세상을 떴지만) 죽어서 하늘에 올라 북극성처럼 영원히 빛나소서!”의 뜻이다.
莫返(막반)은 忘返(망반), 忘歸(망귀)와 같은 뜻으로써 ‘죽음’을 뜻하는 유퍼미즘으로 쓰였다.
射熊(사웅)은 着其高處(착기고처)의 뜻 즉 화살 시위를 공중 높이 쏘는 모습 그래서 화살이 거기에 도달하다의 뜻이다. 着(착)은 着陸(착륙)하다, 附着(부착)하다의 말에서 알다시피 ‘무엇무엇에 접촉하다’의 뜻을 갖는 글자이다. 射熊(사웅)은 곰사냥이라는 뜻에서 한무제 때 수렵하던 사냥터의 별장을 射熊館(사웅관)으로 불렀다.
또 着(착)은 연소하다, 등불에서 불을 밝히다-灯發光-의 뜻이 있는 글자이다. 着(착)은 나타날 著(저)의 뜻이고, 따라서 射熊(사웅)은 높은 곳에 매달려 있어서 바라다 보인다-懸著高處(현저고처)-의 뜻이다. 실적이 현저(顯著)하게 높은 사람은 남들이 쳐다보고 선망하지 않든가? 밤하늘의 별이 그 모습 아닌가? 밤하늘의 별은 국기봉 쳐다보듯이 고개를 쳐들고 우러러 보아야 보인다. 이러한 묘사를 이해한다면, 射熊(사웅)은 유신의 마사부에 나오는 표현인 “登百尺而懸熊(등백척이현웅)” 구절의 “懸熊”(현웅)과 같은 뜻이다. 대포를 공중 높이 쏘아 올리면 밤하늘 폭죽놀이처럼 공중에서 빛난다. 화살을 공중에 쏘아 올리면 오늘날 총을 공중에 쏠 때 불이 나는 모습과 같다. 호머의 오딧세이에서 클라이막스는 오딧세이의 아내를 차지하기 위한 화살쏘기 시합이었고, 오늘날에도 새해 마지막 날 제야의 종소리 행사의 클라이막스는 불꽃놀이이다. 화살과 폭죽이 공중에 폭발하고 빛나는 폭죽놀이의 원리를 이해하면 射熊(사웅)은 ‘높은 곳에서 빛나다’의 의미가 도출된다.
그러므로 射熊(사웅)은 ‘하늘에 높이 올라 북극성처럼 영원히 빛나라’의 뜻으로 해석되고, 따라서 射熊(사웅)과 莫返(막반)을 결합한 射熊莫返(사웅막반)의 뜻은, ‘하늘에 올라 북극성처럼 영원히 빛나소서’.
太子鷄犬昇天(태자계견승천)
28수별자리 이론 가운데 동방청룡 심수(心宿)에 三星(삼성)이 있는데, 가운데는 천왕(天王)의 자리이고 앞쪽의 별을 “태자”라고 부른다. (心三星 中天王 前為太子 後為庶子 火星也).
진서 천문지에 “抱北極四星曰四輔 所以輔佐北極而出度授政也”의 구절이 있고, 觀象玩占에 북극성 별자리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北極五星在紫微 宮中 一曰天樞 一曰北辰 天之最尊星也 其紐星天之樞也 天運無窮 三光迭耀 而極 星不移 故曰居其所 而眾星共之 其第一星 主月 太子也 第二星主日 帝王也 亦為太乙之座 為最明而赤者也 第三星主五行 庶子 第四星后宮也 第五星天樞也”.
북극성 작은 곰자리 사각형 첫째 자리에 있는 별을 태자라고 부르는데 이 태자별은 달을 주관하는 별이다. 이런 성경의 의미를 쫓아서 문무왕릉비 비문에 나오는 구절 “太子鷄 ”은 태자를 별의 동의어로 해석하여 달과 별은 밝게 빛나는데 이제 닭우는 소리가 들리니 곧 아침이 밝아올 것 같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이러한 뜻은 묘소에 밤샛동안 오랜 시간 앉아서 대화하다 보니 시간이 흘러 곧 신새벽이 되었으니 이제는 일어나야 할 시간이다. 닭 우는 소리가 들려온다는 뜻은 아침이 밝아온다는 의미인데, 이러한 뜻을 나타내는 단어로는 鷄明(계명) 또는 鷄鳴(계명)이 있다. “日月出矣 而爝火不息 其於光也 不亦難乎”, “해와 달이 돋아서 밝은데 관솔불을 끄지 않으면 그 빛은 헛된 것이 아닙니까?” 曉起(효기), 이제 떠나야 할 시간이 되었는데, 주인이 세상을 떠나서 의지할 곳 없는 닭이나 개처럼, 세상을 떠난 문무왕을 향해서 ‘지난 날의 쌓인 옛정을 생각하면 눈물을 훔치게 된다’는 의미가 전개될 것으로 전후 문맥상 그 내용을 추측해 볼 수 있다. 이러한 뜻을 나타내는 표현에는 이밀의 진정표(陳情表)의 “臣不勝犬馬怖懼之情”, 반악의 서정부(西征賦)의 “猶犬馬之戀主 竊託慕於闕庭”의 구절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부모자식간의 정을 기리며 연모하는 마음-犬馬之戀主 竊託慕於闕庭
不勝犬馬怖懼之情(불승견마포구지정)은 ‘몸과 마음을 다해 주인에게 충성을 다하지 못할까 그런 두려운 마음을 이기지 못한다’는 뜻이고, “犬馬之戀主 竊託慕於闕庭”(견마지연주 절탁모어궐정)은 ‘개와 말이 주인을 그리는 마음처럼 대궐을 그리는 마음을 억제할 수 없어 눈물을 훔친다’는 뜻이다. 농장에서 개와 닭에게 주인이 모이와 밥을 줄 때는 줄줄이 따라다니고 오로지 주인만을 알아본다. 그런 까닭에 개와 닭은 주인을 따르는 연모지정이 각별한 반려동물이다. 托慕(탁모)는 살아 생전의 정을 생각하며 추모의 정을 나타내는 것을 뜻한다.
오동나무 아래에서 살아가는 구도자의 삶의 모습을 그린 김득신의 그림 “出門看月圖”(출문간월도)를 참조하라.
太子雞 - 太子雞犬升天(태자계견승천)
“太子雞 ”의 의미에 대해서는 한편 “太子雞犬升天” (태자계견승천)의 뜻으로 해석하는 것이 전후 문맥상 큰 무리없는 도출이다.
太子雞犬升天(태자계견승천)의 출전과 의미
태자계견승천(太子雞犬升天)이란 말은 한나라고조 유방의 손자인 회남왕 劉安(유안)이 도교를 신봉하였는데 마침내 불로장생의 금단의 단약을 먹고 신선이 되어 승천하였다는 고사에서 비롯된다. 왕충(왕충은 유가로서 전형적인 무신론을 전개하였다)의 “論衡”(논형)에 나오는 구절을 인용한다: “淮南王劉安坐反而死 天下并聞 當時并見 儒書尚有言其得道仙去 雞犬升天者”.
태자는 한무제 때인 기원전 91년에 일어난 무고지화에서 변을 당한 태자 유거(劉據) 등 역사상 수없이 희생된 태자를 지칭할 수 있다. 신라의 건국과 관련된 역사를 보면 무고지화와 직접적인 연관성이 찾아진다.
升仙太子(승선태자)
열선전에 소개되어 있는 승선태자(升仙太子)는 무측천의 승선태자비문에서도 잘 소개되어 있다. 주영왕 周靈王(기원전 545년 사망)의 태자 왕자진(王子晉)을 말한다. 공자가 주나라 영왕 때 태어났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서 소개된 김수로왕의 구지산(緱氏山) 설화의 주인공이 승선태자이다. 7월칠석날 구지산 정상에 학을 타고 내려오다-“乘白鶴駐山頭”, 부구공을 만나 득도 승천했다는 승선태자는 조선의 영조 때의 사도세자처럼 희생된 사람으로, 오악 가운데 숭산(嵩山)에 제사를 지내는 대상이다. 숭산은 요임금의 장지가 있는 곳이다.
“太子雞犬升天”(태자계견승천)은 “一人得道 雞犬升天” (일인득도계견승천)의 의미와 같은 뜻이다.
一人得道 雞犬升天 (일인득도 계견승천)
이 표현은 ‘한 사람이 득도하면 그를 따르던 같은 집안 식솔들까지 승천한다’는 의미이므로, 그 의미를 좀 더 확장하면 승선태자가 신선이 되어 승천한 것처럼 문무왕이 이제 신선승천하시었으니 나머지 사람들도 덩달아 승천한다는 의미가 된다.
최고 지도자 장수 한 사람이 희생함으로써 그 휘하의 모든 부하장병들 또한 모두 승천한다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정신을 말해준다.
따라서 “太子雞 “ 태자계견승천 다음에 이어지는 구절의 내용을 추측해 본다면 아마도 “百夫決拾”, “首者倡導 其衆必起” 이런 내용이 아닐까 추측한다. “一人善射 百夫決拾”(일인선사백부결습)이란 숙어표현은 건국 시조와 관련된 전설에 자주 등장하는 개념인데, 이 표현은 국어(國語)오어(吳語)에 출전한다. “夫 申胥 華登 簡服 吳國之士于甲兵 而未嘗有所挫也 夫一人善射 百夫決拾 勝未可成也”. 한 사람이 활을 잘 쏘면 만인이 따라 한다는 뜻으로 최고 지도자의 영도력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는 말이다. 전투에서 장수가 앞장서서 나서면 사졸들은 당연히 용감무퇴의 정신을 발휘하여 승리한다는 말로써, 사회 지도층이 리드를 잘하면 인민 민중들은 필시 따라간다는 “수자창도 기중필기”의 표현과 그 의미가 같다. 최고지도층 한 사람이 잘 하면 민중들에게 파급되어 국가 사회 전체가 잘나가게 된다는 뜻이다. 리더가 잘하면 모두가 따라오게 되어 있다. 리더의 역할이 중요하다. 따라서 리더가 모범을 보여야 한다. 이런 지도층의 솔선수범론은 “一人善射(일인선사)”의 개념은 화랑의 정신으로 활짝 꽃 피었고, 프랑스의 전통적 윤리 개념으로 알려진 오늘날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과 그 맥을 같이한다.
一人善射 百夫決拾와 이순신 장군의 훈시 一夫當逕 足懼千夫
一夫當逕 足懼千夫(일부당경 족구천부)는 ‘한 명의 병사가 길목을 막으니 족히 천 명의 병사가 두려워한다’는 병가의 경구로써 이순신 장군의 일화로도 잘 알려진 구절이다.
이순신장군의 난중일기 12척밖에 안 남은 전선으로 그 열 배가 넘는 적을 마주한 중과부적의 극한적 상황에서 즉 울독목 명량해전에 앞서 병사들에게 전투에 임하는 결사적인 정신무장을 요구하며 일장 훈시를 하였다.[11] 이 때의 훈시 구절이 “一夫當逕 足懼千夫”(일부당경 족구천부)이었다. 이 말은 오기병서에 기술한 대로 최후 항전를 맞이하여 결사적인 정신으로 전투에 임할 것을 주문하며 군사들의 결기를 다지고 분전을 독려하는 전쟁터에서의 훈시에 해당한다. 오자병법의 설명대로 “一人投命 足懼千夫(일인투명 족구천부)” 즉 한 사람이 결사항전 죽음으로써 천명의 적을 당해낸다는 뜻이고,[12] 보다 쉬운 말로는 “사즉생” 즉 “必死則生 必生則死”(필사즉생 필생즉사), “죽고자 하면 반드시 살 것이고 살고자 하면 반드시 죽을 것이다."
13행 요약
卽入昇忘歸 | 하늘에 올라 (신선승천하여) 돌아올 생각은 잊으시고 |
射熊莫返 | 저 세상 하늘에 올라 북극성처럼 저 높은 곳에서 (횃불이) 활활 타오르듯이 웅장하게 빛나소서! (문무대왕이시여 안타깝게도 갑자기 세상을 떴지만) 죽어서 북극성처럼 영원히 빛나소서! |
太子雞 - 太子雞(犬升天) |
승선태자가 신선이 되어 승천한 것처럼 문무왕께서 신선승천하신다면 나머지 다른 사람들도 다함께 승천할 것입니다 |
비문뒷면 14행
丹靑洽於麟閣竹帛毀於芸臺」
丹靑 洽於 麟閣 竹帛 毀於 芸臺」
丹靑 단청
회남자에 丹靑膠漆(단청교칠)의 표현이 나오고 사마상여의 자허부에 丹靑(단청)이란 단어가 나온다. 이러한 사례에서 알다시피, 단(丹)은 丹沙, 丹砂, 朱砂라는 말에 표현되듯이 붉은 색칠을 하는 단사를 뜻하고 청(靑)은 青雘(청확)의 줄임말 푸른 청색의 염료를 말한다. 說文(설문)에 푸른 청색은 동방색, 붉은 적색은 남방색이다. 청색과 적색의 색깔 color의 배분 배치 효과를 이용하여 건물 장식을 아름답게 꾸미는 것을 단청이라 말한다.
왕연수의 魯靈光殿賦(노영광전부)에서 "圖畫天地 品類群生 雜物奇怪 山神海靈 寫載其狀 托之丹青”으로 표현했는데, 이 구절의 의미는 다음과 같다. 인간 세상의 활동을 그려 놓고, 온갖 종류의 사물, 평범하지 않고 이해하기 힘든 각종각양의 것들, 산신과 바다신령의 형상들을 그림으로 묘사하여 놓았는데 이러한 그림들을 두드러지게 보이게 하려고 단청으로 단장하니 더욱 돋보인다.
육사형(261-303)이 말하길, “丹青之興 比雅頌之述作 美大業之馨香 宣物莫大于言 存形莫善于画”. 이 구절은, “단청의 묘미는 음악으로 치면 아악-음악 연주에 가락을 넣는 것, 송(頌)-연주에 춤을 곁들이는 것-의 작품, 큰 일을 아름답게 해주는 향수 같은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실물을 설명하려고 할 때 말보다 더 대단한 것은 없고, 실체 표현을 남기려 할 때 그림 도화보다 더 나은 것은 없다.” 이와 같은 설명으로 미루어, 단청은 곧 그림 도화를 말한다.
송(頌)은 원조 시경을 거슬려 올라가면 원래 선조의 공덕을 찬양하는 내용을 노래로 부를 수 있는 성격을 갖고 있었다. 아(雅)는 사방의 풍속을 교정하고자 하는 의미의 내용이 들어 있었다. 육사형이 단청을 음악에 비유하고 있는데, 푸른 색과 붉은 색은 이와 같이 서로 대비되는 성격을 지니고 있다. 청색조와 적조의 의미 차이를 상기하라.
사람들이 지식의 체계를 완성하는 하나의 방법론으로서 왕조의 교체 시기에 따라 달라졌는데, 하우시대엔 서경을 반복해서 읽는 것-誦, 은나라 상나라 시대엔 찬송하는 것-頌, 주나라 시대엔 시경(詩經)을 입안에서 흥얼거리며 암송하는 것-詠을 우위로 치고 강조했던 반면 진시황제의 진나라는 리듬을 따라 직접 짓는 것-韻을 보다 숭상했다.
麟閣 인각사
麟閣(인각)은 한나라 때 미앙궁 궁전내에 세워졌던 국가 유공 최고 공신들의 초상화를 걸어 놓고 제사를 기리는 麒麟閣(기린각)이라는 전각에서 유래했다. 麒麟閣은 한나라 선제가 BC 51년 두연년 소무 장안세 한증 조충국 위상 병길 유덕 양구하 소망지 곽광 11명의 공신의 초상화를 걸어 놓고 제사를 지내는 사당을 건립하였는데 그 사당 이름이다. 이 중 곽광은 그 후 역적으로 몰려 처형되고 3족이 멸족되었는데, 이를 반영하여 “자치통감”에서는 곽광의 이름마저 지워지게 된다. 기린각에 11명의 공신들이 모셔졌다면, 후한 광무제는 28명의 장군들의 초상화를 걸어둔 전각 운대(雲臺)를 건립하였다.
이백의 새하곡(塞下曲)에 “功成畵麟閣”이라는 표현에서 인각이 등장하는데, 신라에서도 기린각 공신전과 같은 성격으로 국가 공신들의 초상화를 걸어두고 제사를 지낸 인각사가 존재했음은 거의 분명하다. 다만 삼국사기 등 역사서에는 등장하지 않고 있는데, 나는 일연 승이 삼국유사를 편찬했다는 곳인 경북 군위의 인각사지는 틀림없이 인각사(麟閣祠)이었을 것으로 추측한다.
洽於麟閣 흡어인각
흡(洽)은 잘 어울린다는 뜻의 낱말이니, 洽於麟閣(흡어린각) 즉 단청으로 그린 그의 초상화는 국가 최고 공신 사당-인각사-에 걸려 있을 만하다 즉 그의 초상화는 인각사에 마땅히 걸려 있어야 하고 그만큼 국가 최고 공신 영웅으로서 손색이 없다는 말이다.
麟角(인각)
麟角(인각)은 기린의 뿔-麒麟之角을 지칭한다. 조선 초기 유명한 정인지라는 이름의 재상이 있었는데, 시경에 “麟之趾” 싯구에 “麟之角 振振公族” 구절이 나온다. 이 시경의 의미를 따라서, 麟角(인각)은 종실제후 귀족의 번창번성을 가르키는 말이 되었다. 꼭 종실번족이 아니라도 훌륭한 인재나 귀한 명품을 지칭하는 의미로 쓰였다. 공자의 서수획린의 의미처럼 “獲麟角”기린의 뿔을 획득한 자는 불사의 명약을 얻은 것이 아닐까? 기린뿔은 상아이빨처럼 고래이빨만큼 오래가서일까? 아니면 분가루로 만들어서 또는 녹용처럼 잘게 잘라서 불사약으로 쓰여서일까? 인각(麟角)의 비유적인 의미에 문무왕의 이름이 적합하다.
竹帛(죽백)
죽백(竹帛)의 죽(竹)은 죽간(竹簡)을 의미한다. 죽간은 대나무를 쪼개어 대나무 막대기 거기에다 글을 새겨넣고 이를 실로 묶고 말아서 마치 책처럼 썼다. 대나무 막대기에다 글을 새겼기에 竹簡(죽간)이라고 말했다. 죽백(竹帛)의 백(帛)은 포백 즉 비단을 뜻한다. 비단 견(絹) 견사라는 말과 같다. 비단에 먹으로 글자를 썼다.
시대와 기술의 발전에 따라서 종이서적이 죽백을 대체하게 되었는 바 죽백(竹帛)은 종이책 서적을 가르키는 말이다. 삼국지 유비선주전에 “上可以匡主濟民 成五霸之業 下可以割地守境 書功於竹帛”(상가이광주제민성오패지업하가이할지수경 서공어죽백)의 표현이 나온다.
누에고치 실로 만드는 비단은 매우 귀하고 비싸서 함부로 글을 쓸 수 없었다. 비단은 사자의 무덤 속에 넣는 명정으로 쓰였고, 그만큼 귀하게 여겼다. 대나무도 오래 가는 재료이지만 글을 새기는 공간이 협소하기에 많은 글자를 쓰기에는 불편함이 따랐다. 종이가 발명되기 전까지는 죽간과 비단에다 글을 썼는데 종이 또한 양초처럼 매우 비쌌기에 글을 쓰는데 오늘날만큼 자유롭지 못했다. 글을 배울 때는 땅이나 모래사장을 글을 쓰고 또 지우는 식으로 이용했는데 이런 인류의 글의 배경으로 인해서 강가나 해안가 모래사장에 쓰는 글은 순수하고 진실한 것으로 여겼다. 대나무와 비단에 쓰는 글은 함부로 쓸 수 없고 그만큼 값진 가치가 있는 것이었으므로 竹帛(죽백)이라 말하면 “역사”를 비유적으로 의미한다. 역사에 남을 위대한 통일영웅이 문무왕이었다는 것을 강조하는 표현이다.
毀於芸臺 훼어운대
毀(훼)는 훼손되다, 닳다, 대미지(damage)를 입다의 뜻이니, 毀於芸臺(훼어운대)는 책-죽백은 ‘운대에서 닳고 헐었다’의 뜻이다. 왜 책이 운대에서 닳고 헐게 되는가? 운대는 왕립도서관을 뜻하는 말이니 도서관에서 책을 많은 사람들이 찾는 인기있는 책이기 때문에 그 책이 도서관에서 닳고 헐게 된다는 표현이 나오는 것이다. 요사이는 인쇄기술이 크게 발전해서 왠만큼 책을 많이 빌려 본다 하더라도 책이 닳고 헐 정도까지 가기는 쉽지 않을 지 몰라도 예전의 인쇄 기술을 고려할 때 도서관에 있는 책이 닳고 허는 경우는 흔히 일어났다. 문무대왕에 관한 영웅전이 도서관에서 많은 사람들이 빌려 보는 최고 인기를 끌어서 책이 훼손될 정도가 되었다는 최고의 영웅 칭송의 표현인 것이다.
芸臺 운대
중앙행정집행기구 중 尚書省(상서성)을 당나라 때에 文昌臺(문창대), 都臺(도대), 中臺(중대)로 개칭하였고, 秘書省(비서성)을 蘭臺(란대), 麟臺(린대)로 개칭하였다. 芸臺(운대)는 서적을 장서 보관하는 곳 조선시대 같으면 실록을 보관한 4대산 서고와 같은 장서 기능을 맡은 기관을 말하는데 당나라 시대엔 비서성에서 그 기능을 담당하였다. 정부 문서를 다루는 기관이 비서성이었으니 당연한 역할이다. 국학소경이 비문첫행에 등장하기 때문에, 신라시대에 운대-왕립 도서관이 존재하지 않았을 리는 만무하다.
왜 사람들은 노란 유채꽃을 보면 열광하고 사진을 찍으려들까? 유채꽃 피는 마을은 어디나 고향같다? 봄의 전령사는 핑크빛 살구꽃인가? 노란 유채꽃인가? 유채꽃의 영어와 프랑스어 라틴어 어원을 보면 이해하다시피, 새로운 지식의 세계를 접할 때는 머리가 쾅!하고 부딪히는 빅뱅!의 경험을 하지 않든가? 그 같은 충격적 세계가 새롭게 펼쳐지는 지적 전율을 이 책의 독자들이 느꼈으면 싶다.
왜 문서와 서적을 보관하고 다루는 기관을 蕓臺(운대)라고 지칭하였을까? 초학기(初學記)에 “蕓臺香辟紙魚蠹 故藏書臺稱蕓臺”(운대향피지어두 고장서대칭운대)라는 구절이 나온다. 나무에 기름칠을 하는 까닭은 썩지 않게 하려는 목적에 있다. 나무를 갉아 파먹는 좀벌레를 막기 위해서여다. 유채(油菜)를 蕓薹(운대)라고 불렀기 때문인데, 서적 보관을 하는 도서관에서 최대의 적은 책-종이 재질은 나무이니까-을 갉아 먹는 좀벌레이었다. 도서관에 들어가면 향수 같은 냄새가 나는데 그 이유는 책을 갉아먹는 좀벌레를 막기 위해서 유채를 뿌려놓기 때문이다. 책에 기름칠을 하면 책의 보존 수명이 연장된다. 또 蕓(운) 글자가 고대에선 耘(운) 글자 즉 除草(제초), 김매다를 뜻하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책은 마치 풀베기와도 같다. 그와 같이 사람의 머릿속이 녹슬고 황폐화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필요하다. 풀을 베지 않으면 황무지가 되고 만다. 따라서 책읽기를 중단하는 순간 나라가 망한다는 것은 불문가지가 아니겠는가?
丹靑洽於麟閣竹帛毀於芸臺
“丹靑洽於麟閣竹帛毀於芸臺” 이 구절의 뜻은, 문무왕의 초상화는 마땅히 인각사에 걸려 있고 그렇게 추앙받을 것이며, 또 문무왕 영웅전기는 왕실 도서관에서 열람이 자주 되어서 책이 닳고 헤어질 정도로 유명해 질 것이라는 미래 예측 선언이다. 당 장언원의 “歷代名畫記”(역대명화기) 敘畫之源流(서화지원류) 글에 이와 같은 의미의 구절이 나온다: “以忠以孝 盡在於雲台 有烈有勛 皆登於麟閣”.
14행 요약
丹靑洽於麟閣 | 문무왕의 초상화는 마땅히 인각사에 걸려 있고 |
竹帛毀於芸臺 | 문무왕 영웅전기는 왕실 도서관에서 열람이 자주 되어서 책이 닳고 헤어질 정도로 유명해 질 것이다. |
비문 뒷면 15행
餘下拜之碣迺爲銘曰」
삼가 절을 드리고, 이만 그치며 명(銘)을 쓴다.
餘下拜之碣迺爲銘曰
餘下
餘下 여하는 남는 부분 여분을 뜻한다.
碣
碣(갈)은 비석문을 이르는 말이니, (이제 나의 문장은 여기서 이만 그치며) 이 비석에 경의를 표하며 삼가 절을 올린다-拜之碣. 이하 남는 부분은-餘下 명을 인용하는 것-迺爲銘으로 이 문무왕릉의 묘지 비문을 채운다. 그 銘文(명문)은 다음과 같다-銘曰.
銘文
명(銘)은 오늘날 우리들이 흔히 쓰는 자기 ‘명함을 파다’의 뜻의 어원인 銘箴(명잠)의 뜻에서 알다시피, 망자의 일평생을 간단히 기록한 것 또는 座右銘(좌우명)과 같이 후세에게 남기는 자신의 경구 등을 써 놓아 그 뜻을 영원하게 간직하라는 永志不忘(영지불망)의 의미로 자기 무덤 속에 묻어두는 글 묘지명(墓志銘)을 말한다. 왜 글을 새겨 놓는가? 명(銘)은 그릇에 글을 새겨 놓은 정명(鼎銘), 반명(盤銘)과 같은 기능을 한다. 후세들에게 남기는 경구, 권계문(勸戒文)이다.
感念不忘 刻骨铭心 永遠不忘 마음에 깊이 간직하여 명심하다
좌전에 나오는 정명 소개문을 보자. “故其鼎銘云 一命而僂 再命而傴 三命而俯 循牆而走 亦莫余敢侮…” 사람이 지위가 올라갈수록 더욱 공손해졌으나 어느 누구에게도 업신여김을 당하지 않았다며 공손할 것을 깨우치는 경구를 매일 사용하는 기물에다 새긴 것이다. 정명과 같은 뜻인 반명 盤銘에 대해 설명하는 구절을 더 인용한다. “湯之盤銘曰 茍日新 日日新 又日新” (禮記‧大學)”; “殷有盤銘 周有欹器 或誡以辭 或警以事”(舊唐書,‧杜希全傳).
무덤은 비록 후세가 만들지만 무덤의 주인은 피장자이다. 명(銘)은 상여 행렬에 휘날리는 명정에 쓴 글들이다. 명정(銘旌)은 글자 旌(정)의 뜻 그대로 망자의 공적을 표창한다 表揚(표양) 의미이고, 무덤 속의 물건-器物(기물)의 주인임을 표시하는 것으로, 무덤 속에 부장하는 물건들을 덮고 감싸는 천 그 비단실 위에 명문을 기록한다. 그래서 비문에 명문을 옮기면서 그 하나 그 둘 그 열 이렇게 숫자를 매기는데, 이는 인용부호 역할과도 같다. 비석문은 비문찬자 급찬 김소경이 쓴 글이지만, 이 명(銘)문은 무덤 속에 관을 묻을 때 관을 둘러싼 천에 새긴 글들이기에 그것들을 이 비석문에 옮겨 쓴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비석문은 국가의 소유물이고 명문은 무덤의 주인인 문무왕의 소유물이다. 무덤 속 비단 명주에 쓴 명문들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거의 다 썩기 마련이다. 하지만 무덤 바깥에 돌로 새겨놓은 비석문은 문무왕릉 비문처럼 풍진 세월이 비껴가도 영원히 남아 있네! 고산유수, 천장지구, 영원불멸의 삶이여!
15행
餘下拜之碣 迺爲銘曰 |
이제 비문은 여기서 이만 그치고자 하오니, 경의를 표하고 삼가 절을 올립니다. 이하 부분은 명銘문을 옮겨 씁니다 |
비문뒷면 16행
侍星精 域千枝延照三山表色盛德遙傳」
侍星精
侍
侍시는 섬기다 봉양하다 伺候, 服事의 뜻이니, 侍자 한 글자의 의미에 기초하여 복시服侍의 의미로 해석하고 싶다. 그리하여 “ 侍” 부분의 문장 내용을 추측한다면, 하늘의 명령을 받을 그 때를 신중하게 기다리며 낮은 자세로 임하여 봉양하고 섬기고 있었다는 이와 같은 의미가 이 부분의 문장 내용을 이루고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결자 부분을 메꾼다면, 天運服侍 천운복시, 素心伏侍 소심복시 또는 태어날 때의 환경을 묘사한다고 여긴다면 竹林環侍(죽림환시) 등의 표현을 추측해 볼 수 있겠다.
삼국유사에서 “時公昵侍在前” 구절이 나온다. 昵侍(니시)는 안자춘추의 “隰朋 暱侍 … 弦宁 暱侍” 구절에서와 같이 昵侍=暱侍=在旁奉侍의 뜻이다.[13]
星精
성정(星精)은 별의 정기 星之靈氣를 뜻하는 말이므로 별의 정기를 받고 태어났다는 의미가 연결된다. 유신의 주태자태보보륙정신도비에 나오는 “祥符云氣 慶合星精” 구절의 의미가 이에 해당한다. 도당, 순우, 하나라와 상나라의 시조 우임금과 설 임금의 탄생설화 내용에 기초하여, 어머니가 별의 정기를 받고 아이를 낳았다는 뜻의 星精下降 黃氣祥應 感孕而生(성정하강 황기상응 감잉이생)이라는 표현이 결자 부분의 내용을 구성하고 있을 것으로 추측해 본다.
영웅전에 나오는 상투적인 어구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대권 대업은 하늘의 명령 천명에 기반하지 않으면 정통성이 결여되어 민심의 지지를 받지 못할 것이므로 정권 정통성의 문제는 정치성의 문제만이 아니라 수명천명이라는 수신제가평천하 자기수양의 득도훈련과도 연결되어 있다. 종두득두이고 수명천명인데, 진승오광처럼 천하에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느냐며 농민반란을 일으킨다면 과연 성공할 수 있겠는가? 역사상 그런 예가 성공한 적은 단 한 번도 있지 않다. 그리고 시조 신화를 천편일률적으로 답습한다고 해도 특별한 영웅이라면 과거의 영웅 코스를 답습하는 것이 아닌가? 영웅신화를 비교문화적으로 분석하여 대가 반열에 오른 조셉 캡벨의 영웅론을 상기해 보라. 영웅이라고 해도 신이 아니라 한 인간이다. 아무리 신격화된다 하더라도, 예수도 한 인간이었지 않는가?
域
光域(광역)은 吉祥之地(길상복지)를 지칭하는 단어이다. 오늘날 ‘광역시’라는 말은 빛 광자가 아니라 넓을 광자이지만, 광역(光域)은 사기 효무제본기에 “神靈之休 佑福兆祥 宜因此地光域立 泰畤壇 以明應” 구절이 설명하듯이 길상복지(吉祥福地)를 말한다.
하늘이 점찍은 三山(삼산)지형의 한반도 땅은 어떤 지역일까를 추측해 보면, 五彩光熙(오채광희)가 빛나는 복상길지라는 뜻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광미(光美)는 盛大美好(성대미호)-무척 아름답다는 뜻이 들어가는 “光美光域”(광미광역)-빛나는 땅이라는 구절의 의미로 추측할 수 있다. 빛나는 한반도 땅이라면 비단처럼 곱고 아름다운 한반도 땅 즉 금수강산과 같은 말이다.
域 千枝延照
□域 지역의 千枝(천지)를 延-연달아 비추자-照, 삼산이 반갑게 화답하고 드러내니-三山表色, 그 왕성한 기세가 저 멀리까지 전해졌다-盛德遙傳. 延照(연조)는 두루 비추다.
千枝(천지)는 나뭇가지와 나뭇잎이 무성하다는 뜻을 나타내는 단어인 천지 만엽(萬葉)의 뜻 즉 천지(千枝)는 나뭇가지가 여러 갈래로 뻗어 나가다의 뜻으로 해석된다. 萬葉(만엽)은 나뭇잎이 많다는 뜻 그리고 萬世(만세), 萬代(만대)까지 뻗어간다는 의미가 파생된 단어이므로 천자라는 큰 나무에서 여러 지파, 여러 갈래로 뻗어나간 왕성한 종족의 성장 발전 그 무한 성장력을 비유하는 표현일 것이다.
또 천지만엽은 세상 모든 것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뜻이 함의되어 있다. 큰 나무는 여러 가지와 여러 나뭇잎을 달고 있다. 수많은 가지지만 모두 한 줄기에서 나온다. 무릇 도란 계획관리 경영이고 순서와 계통이 있다. 하나를 깨우치면 온 세상을 얻게 되고 그런 득도는 수천 가지와 수만 나뭇잎을 무성하게 낳는 큰 나무와 같다. 하나의 원자에서 수 만가지 수소폭탄이 폭발하지 않는가? 이 말은 회남자의 숙진훈에 나온다. “夫道有經紀條貫 得一之道 連千枝萬葉”. 이 구절을 조금 더 인용하면, “夫道有經紀條貫 得一之道 連千枝萬葉 是故貴有以行令 賤有以忘卑 貧有以樂業 困有以處危 夫大寒至 霜雪降 然後知松柏之茂也”. 條貫(조관)은 條理(조리), 系統(계통), 질서를 뜻하고, 經紀(경기)는 계획, 관리, 경영하다의 뜻, 行令(행령)은 명령하다의 뜻이다.
연주보배 구슬처럼 보배는 실로 꿰매어 있어야 값어치가 있는 옥이 된다. 이와 같이 인간 세상에서 사람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여기기에 사람들은 “千枝延”(천지연)이란 인식을 갖고 있다. 요즈음의 천체물리학 개념으로는 무한 세포분열 이론에 부합된다.
“일인득도 계견승천” 숙어적 표현은 회남자에 나온다. 한 집에 성인이 나오면 그 집안의 개와 닭도 덩달아 그 반열에 오른다는 뜻으로 지도자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점을 일러주는 말이다. 우리들의 사회 인식의 원형은 서로가 서로를 필요를 한다는 동류의식 동지의식이었다. 또 한편으론 여기의 “千枝”(천지)는 황족의 후예를 지칭하는 단어인 “天枝”하고 음이 같아 황족의 후예를 비유하는 의미가 함의되어 있음은 물론이다.
三山表色
三山(삼산)은 비문 앞면에서의 “삼산지궐”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삼면환수-삼면이 바다에 둘러 싸인 지형을 말한다. 한반도가 삼면환수의 반도 지형이니, 당연히 한반도를 지칭하는 말이다. 비문 앞면에서의 삼산은 한반도 지형을 지칭했다고 볼 수 있으나 여기 명 부분의 삼산三山은 무릉도원이 존재하는 복건성의 무이동 계곡처럼 바다에서 내륙으로 들어간 후 삼산으로 둘러 싸인 삼산 지형을 지칭하는 것으로 특정할 수 있을 것 같다. 表色(표색)은 안색을 외부로 드러내다 표시하다 外表 顏色 뜻이니, 빛이 비추자 여기에 화답하여 삼산이 화기화색을 나타냈다는 의미가 된다. 사마천의 사기에서 진시황의 봉선 행사를 치룰 때 산 위에서와 산 아래에서 횃불로 서로 화답을 하는 것처럼 하늘에서 빛이 비추면 땅은 그에 화답을 하는 것이다. 태세 신앙은 하늘의 별의 길을 지신이 따라간다는 도교 신앙이다. 이처럼 도교 신앙은 홀로 선 단독자의 개념이 아니라 암수자웅처럼 음양의 존재와 그 역할 서로 화답 부지하는 상대방의 존재함으로써 자기가 드러남을 수긍하는 화합의 철학 그 신념 체계에 해당한다.
三山삼산은 무릉도원의 땅이고, 천지만엽의 땅이고, 광미광역, 금수강산에 해당한다.
盛德遙傳 성덕요전
盛德(성덕)은 崇高(숭고)한 品德(품덕)을 말하고 돈독한 恩德(은덕)을 말한다. 君子盛德(군자성덕)이란 말이 있다. 遙(요)는 저멀리 아득하게 요원하다의 뜻이고, 盛德(성덕)은 품행이 고상한 사람 高尚品德人, 盛德君子를 뜻한다. 盛傳(성전)은 널리 소문이 퍼져 나가다의 뜻이다. 성덕은 盛美之事 즉 착한 美善 일을 이르는 말이고, 왕성한 기세 盛氣를 뜻하는 말이기도 하다. 예기 월령가에 “盛德在木”의 구절과 공영달의 “四時各有盛時 春則爲生 天之生育盛德在于木位 故云盛德在木” 구절의 의미가 이 부분에 함의되어 있다. 봄이 오면 새싹이 돋고 여름에는 나무와 풀에 녹음방초 우거지고 가을엔 낙엽이 진다. 비문 앞면에서 天枝라는 표현을 적고 그 천지(天枝)라는 뜻은 천손(天孫) 즉 천자의 후손이고 황족의 후예라는 뜻으로써 황족의 후예이기에 별다른 특혜를 갖고 자랐다는 그런 긍지와 자부심에 대해서 적었는데, 여기서 천지(千枝)라는 나뭇가지의 표현 또한 발음이 똑같으므로 그러한 천지(天枝)의 의미가 함의되어 있음을 눈치챌 수 있다.
성경에서 아브라함의 자손이 이 지구상 끝까지 뻗어나가기를 선언한 것처럼, 자손이 성대하고 왕성하게 번창하기를 기원하고 또 그 뜻이 마땅히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소망 믿음 사랑이 우리 모든 조상과 부모님들의 공통된 황금실줄이 아니겠는가?
千枝延照 三山表色 盛德遙傳 이 구절은 수목 나뭇가지를 연달아 비추니, 삼산이 안색을 드러내며 반갑게 맞이했고, 그리하여 나무가 무성하게 뻗어가듯 왕성한 기세가 저 먼 곳까지 전해졌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16행 요약 정리
侍- (天運服侍 素心伏侍) |
하늘의 명령을 받을 그 때를 신중하게 기다리며 낮은 자세로 임하여 욕심 없이 살아가고 있었다 |
星精 - (星精下降 感孕而生) |
별의 정기를 받고 태어났다 |
域- (光美光域) |
(오채광희가) 빛나는 길상복지 금수강산의 |
千枝延照 | 울창한 수목의 나뭇가지를 연달아 비추니 |
三山表色 | (三山삼산은 무릉도원의 땅, 천지만엽의 땅, 광미광역, 금수강산에 해당한다) 삼산이 안색을 드러내며 반갑게 맞이하자 |
盛德遙傳. | 왕성한 기세가 저 멀리까지 전해졌다 |
비문 뒷면 17행
道德像棲梧 允武允文多才多藝憂入呑蛭尊」
진실로 무용(武勇)하시고 진실로 대덕(大德) 있으시고, 다재다예(多才多藝) 하였네. 아랫사람을 생각하여 거머리마저 삼키시고,…
道德像
우리들은 ‘道德도덕’이 무엇인지에 대한 이해를 마치 초등학교 시절의 “도덕” 교과서로 이해하려는 또는 그러한 윤리학이라는 개념으로 받아 들이려는 경향이 큰 것 같다. 하지만 노자의 정치철학에서의 “도와 덕”의 개념은 도덕 교과서 바른생활이나 윤리학의 개념을 넘어서는 포괄적인 뜻을 담고 있다. 시험 도덕 시험을 치는데 윤리를 시험으로 알 수 있는가? 어떤 사람이 도덕군자라는 사실을 시험을 쳐서 알아낼 수 있는가? 도덕을 4지선다형 객관식 시험문제로써 평가하고자 하는 순간 이미 도덕은 떠나간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도덕이 땅에 떨어졌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도덕을 시험문제로 맞출 수 있다고 보는가? 사람의 인간됨은 행동으로 나타나는 법인데 어찌 교실 책상 앞에 앉아서 4지선다형 시험문제 답안지로 그것을 평가할 수 있단 말인가? 소크라테스가 분명하게 밝혔듯이, 도와 덕은 시험 문제로 풀 수 있는 개념이 아니다.
道德 도덕 개념
“老君指歸曰 太上之象 莫高乎道德 其次莫大乎神明 其次莫大乎太和 其次莫崇乎天地 其次莫著乎陰陽 其次莫明乎大聖 夫道德 所以可道而不可原也 神明 所以可存而不可伸也 太和 所以可體而不可化也 天地 所以可行而不可宣也 陰陽 所以可用而不可傳也 大聖 所以可觀而不可言也” (雲笈七籤, 卷一道德部 總敘道德 서두 구절).
道와 德에 대한 개념을 이해한다면, 道德像의 부분의 결자를 ‘도덕상을 취하여’라는 뜻으로 추측하여 “就道德像”으로 해석하고 싶다. 건릉 술성기에 나오는 “隱翠柏而成象 石呈永固 柏示無凋”의 구절 표현을 참조한다면 쉽게 이해되리라. 翠柏(취백)은 편백나무를 지칭하므로 편백나무 우거진 시골에 숨어 살면서 도와 덕이 요구하는 진상을 이루기를 노력했다는 뜻이 이 문장의 내용을 구성한다.
棲梧 棲梧鳳飛 서오봉비
송 진부량의 싯구에 "嘗聞鳳棲梧 梧老鳳未棲” 표현이 나오고, 봉황은 오동나무 위에 서식한다고 알려져 있는 오동나무와 봉황의 관계를 감안해 볼 때 “棲梧 “의 결자 부분은 “棲梧鳳飛”으로 메꾸어 볼 수 있다. 장자 추수편에 나오는 대로 “夫鵷鶵[鳳凰] … 非梧桐不止 非練實不食 非醴泉不飲”, 봉황은 오동나무가 아니면 둥지를 틀지 않고, 대나무 열매가 아니면 입에 대지 않으며, 감로수가 아니면 마시지를 않는다고 한다. 오동나무는 그 잎사귀가 매우 커서 무더운 햇볕을 가려주고 나무 그늘을 크게 만들어 주기 때문에 쉬어 가기 좋고 또 거문고를 만드는 주요 자재로 쓰이는 유용성 덕분에 또 무엇보다도 “桐葉封弟”(동엽봉제)라는 숙어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제왕으로부터 작위나 관직을 수여 받는다는 의미로 쓰이는 오동나무의 상징성 때문에 은자들로부터 사랑받는 나무이다. 오동나무와 작위 관직 수여의 상징적 뜻에 대해서는 당나라 유종원의 “桐葉封弟辯”에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다. 봉황새 또한 임금과 신하와의 관계를 논하는데 있어서 상징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때를 기다리면서 고결한 삶을 유지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건릉 술성기에 나오는 “棲息三禪 巡遊十地” 서식삼선 순유십지의 표현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또 전촉세가에 “鳳凰適至 舜之史 因幷記以爲美 後世因以 鳳來爲有道之應” 표현이 있는데, 이와 같이 순임금 때에 봉황이 나타나자 사관이 상서로운 일 아름다운 일로 기록해 놓았는데 후세에도 봉황이 나타나면 태평한 세상에 대한 응답으로 여기게 되었다. 또 서문에서 설명한 공자의 春秋(춘추), 西狩獲麟(서수획린)의 의미를 참고하라.
棲梧 에서 棲(서)는 서식하다 머물다의 뜻, 梧(오)는 오동나무, 鳳(봉)은 봉황, 飛(비)는 날다의 뜻이니, 棲梧鳳飛(서오봉비)라는 표현은 ‘봉황이 나는 오동나무 아래에 머무르며’는 의미가 되는데, 이러한 글자 그대로의 뜻 보다는 비유 상징적인 의미로 해석되어야 한다.
棲梧鳳飛(서오봉비)는 나무를 둥지 삼아 야인 생활을 하며 끝내 세상 벼슬살이를 마다한 은자의 대명사 소부의 일화를 생각나게 한다. 戲樂嘉魚(희락가어) 같은 의미로 장자의 호량지유와 비슷한 뜻이고 耳聽琴聲(이청금성) 또한 이와 같다. 봉생탄금 등 다 비슷한 의미인데 곧 光風霽月(광풍제월)-인품이 고상하고 도량이 넓고 마음이 확 트인 그런 구도자의 삶을 살았다는 묘사가 들어가는 내용이라고 생각된다.
봉황은 오동나무가 아닌 곳 이외에는 함부로 둥지를 틀지 않으며, 진정한 구도자는 백 만 마리 개가 짖어도 부화뇌동하지 않는다. 아래 참조 그림은 오동나무 아래에서 살아가는 구도자의 삶의 모습을 그린 김득신의 出門看月圖.
김득신(金得臣), 出門看月圖(출문간월도), 화제: 一犬吠二犬吠 萬犬亦隨一犬吠 呼童出門看 月持梧桐第一枝, 한 마리 두 마리 개가 짖고 모든 개가 짖기에 아이를 불러 문 밖에 나가 보라 하였더니 오동나무 제일 높은 가지에 달이 걸렸단다.
允武允文
윤(允)은 허락하다는 뜻이고, 윤허(允許)라는 말로 잘 알려진 낱말로써, 진실로 마땅히 이라는 뜻의 信,實, 公平得當의 의미를 갖고 있는 글자이다. 주로 允文允武(윤문윤무) 이와 같은 순서로 문무처럼 문이 먼저 나오는 것이 통상적인 표현이긴 하지만 당태종의 帝范(제범)서문에서도 “允武允文”의 순서로 표현되었고 또 다른 여러 묘지명에서도 允武允文의 표현이 확인된다. 문무왕의 경우 문사 가문의 출신이지만 진무대제로서 무사 출신 용맹한 가문 출신 무사-화랑 출신이기에 문보다 무를 앞서 내세워 표현한 것이 자연스럽다. 그가 삼국 통일의 가장 큰 공을 세웠으니 무가 문보다 더 앞서야 함은 옳은 표현인 것 아닐까? 윤문윤무는 뒤따르는 다재다예 표현처럼 비문에 칭송의 경칭적 표현으로 흔히 등장하는 상투적인 문구-cliché이다.
允文(윤문)은 文德(문덕)이 있다는 뜻으로, 정현은 시경의 “允文 文王 克開厥后” 구절을 풀이하였다. 한나라 진림의 “允信允文” 표현이 나온다. 允武윤무는 征伐정벌을 뜻하는 말이고, 일주서 允文의 “于時允武 死思復生 生思復所” 구절에서 윤무允武 예시가 나온다. “윤문윤무”는 시경의 “允文允武 昭假烈祖”의 구절의 의미로 보아, 문예文도 능하고 무예武에도 능한 ‘문무 모두 뛰어났다’는 能文能武의 뜻이다.
多才多藝 다재다예
다재는 다방면에서 재능을 발휘한 능력이 뛰어난 사람, 다예는 예가 주로 技能기능,技術기술적인 방면에서 재능을 특출하게 발휘하는 것을 말하니 문무왕은 ‘학문뿐만 아니라 다른 예능 분야에 까지 뛰어났다’는 칭송의 표현인 것이다. 지금 시대는 전문화 교육의 영향 때문인지 몰라도 한 사람이 여러 분야에서 다재다능을 발휘하는 경우가 흔하지 않지만 예전에는 전인교육의 덕분인지는 몰라도 다방면에서 능력을 발휘한 특출난 사람들이 적지 않게 나타난 것 같다. 서경에 “予仁若考能 多才多藝 能事鬼神”의 구절이 나온다.
憂人呑蛭 우인탄질
“吞蛭”탄질에 관련된 고사성어-楚惠王 食寒葅 有蛭 恐司廚者獲罪 乃暗吞之-의 의미로 쓰인 경우가 가의 신서, 구당서 요숭전, 자치통감 당현종기사 등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吞蛭(탄질)의 고사성어 의미는 잘 알려져 있다. 왜 그렇게 잘 알려져 있을까? 아마도 한식날과 청명절의 풍습에 관련된 일화이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한식절은 차가운 음식을 먹는다. 한식은 새싹이 돋아나는 봄날 조상의 묘소를 찾아 참배하는 날이다. 踏靑(답청)이라는 풍습에 이에 해당한다. 야외로 먼 길을 걸어서 조상 묘소를 찾는 날인데 예전에는 오늘날처럼 가스레인지가 발달된 것도 아니어서 스시나 김밥 등 차가운 음식을 준비하지 않으면 안되었을 것이다. 우리들이 어릴 적 봄소풍을 갈 때 뜨거운 음식이 아니라 차가운 음식으로 도시락을 준비해서 떠났지 않았던가?
또 거머리는 야채에서 주로 발견되므로 육식이 아닌 야채 소식을 권장하는 의미가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초혜왕은 거머리가 붙어 있는 야채를 한 입에 삼켜 먹은 바람에 자신이 평소 앓고 있던 숙질이라는 병을 고치게 되었다는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얻었다고 하지 않았는가? 사마천이 백이숙제편에서 꺼내 들었던 “천도무친 상여선인” “황천무친 유덕시보”의 개념이 초혜왕이 관련된 “탄질”의 고사성어에 들어 있는 핵심개념이다.
거머리를 삼켰으면 배탈이 날 것이지만 배탈이 난 바람에 뱃속의 기생충이 빠져 나가 평소의 앓고 있던 질환이 치유되었다면, 그것은 뜻하지 않는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초혜왕이 그것을 삼킨 이유는 자기 병을 치료하려고 먹은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걱정하고 동정해서 행동을 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인간 세상에서는 좋은 뜻으로 한다고 해서 항상 좋은 결과를 낳는 것은 아니요, 또 그 반대로 설령 나쁜 의도라고 해도 뜻밖의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생물학적으로 멘델의 돌연변이도 생기는 거고, 그래서 인간 세상에서 미래가 어떻게 될 지는 어느 누가 장담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닌 것이다.
역사의 발전에는 ‘의도하지 않는 결과의 법칙’ (unintended consequence)이 작동된다는 생각을 가지면 우주만물과 우리 인생에 대해서 더욱 조심하고 겸허한 마음을 갖게 되지 않을까 싶다. 큰 권력을 쥔 천하의 제왕들이 왜 몹시 조심하고 경계하며 겸허한 자세를 유지했겠는가? 미래가 어찌될 지는 어느 누가 장담할 수 없는 영역이다. 우주만물에는 의도하지 않는 결과의 법칙이 숨어서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화라고 여겼던 것이 복이 될 수 있고, 복이라고 여겼던 것이 화를 불러 오기도 한다. 새옹지마의 고사를 상기하라. 이렇게 화복이 같은 자리에서 뒤바뀌게 되고, 번갈아 가며 일어나니 마침내 그 끝이 어떻게 될 지를 어느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미래는 알 수 없는 법이고, 화복 또한 그렇다. “禍兮福之所倚 福兮禍之所伏 孰知其極” 노자도덕경 제58장의 구절은 바로 이러한 “禍福相依” 화복동역의 인간 세상의 진리를 말하는 것이다.
憂(우)는 수심이 들다, 울적해지다, 근심하다, 번민하다, 우려(憂慮)하다, 우환(憂患)의 뜻이다. “憂人呑蛭” 부분에서 국편위는 “憂入”으로 글자판독하였다. 유희애 또한 “憂入” 입자로 판독했다. 나는 이 글자 판독을 ‘입에 들이 넣다’라는 뜻의 入입이 아니라 “人” 사람인이라고 판단한다. 사람인 人과 들어가다의 入은 육안으로 구별하기 쉽지 않는 경우가 생긴다. 그리고 人과 入의 차이점이 확인된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人과 入의 혼란은 안내 “內” 글자를 内로써 아니면 內로써 쓸 것인지의 여부, 또 우리나라 성씨 중 전씨의 사용 글자 사례에서 보여주다시피 정책적 사항에 해당되기도 한다. 全 온전할 전을 들입入+임금왕王 로 써야 하는지 아니면 사람인人+임금王 로 써야 하는지 다툼이 있다. 전씨종친회에서는 사람인人+임금王 으로 쓴다고 한다. 설문해자와 강희자전 그리고 간체자에서 쓰는 경우가 서로 다른데 이런 차이점이 있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유희애의 글자판독이 이해된다. 따라서 글자판독을 “憂人”(우인)으로 받아들이는데 어떤 어려움이 존재하지 않는다.
문맥상 의미를 살피면 거머리를 입에 삼켜 넣다는 吞(탄)자가 이미 있으므로 굳이 같은 뜻의 입入을 쓸 이유가 없다. 따라서 憂人(우인) 즉 다른 사람들을 가엽게 생각하고 우려해서- 憂慮他人, 憂思, 憂念 우려타인의 뜻으로 새기는 것이 타당하다. 그가 다른 사람의 딱한 처지를 동정하는 사람 心情憂傷人이었다는 말이 논리적으로 통한다. 실제로 “憂人”이라는 표현은 갈홍의 포박자에서 “恤急難而忘勞 以憂人為己任者 篤人也”, 공자의 논어에서 “怨天憂人” 표현 등 많은 곳에서 발견되므로, “憂人呑蛭”로 판독하는 것이 타당하다.
憂人呑蛭
憂人(우인)은 다른 사람의 처지를 가엽게 여기고 우려해서, 蛭(질)은 거머리, 吞(탄)은 입에 삼켜 넣다는 뜻이다. 憂人呑蛭(우인탄질)은 탄질의 고사를 이해하고, ‘다른 사람의 처지를 먼저 걱정하고 동정해서 보통사람들은 하기 어려운 행동들을 주저없이 실천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憂人呑蛭(우인탄질)을 역사적인 관점에서 해석하자면, 사기 상앙열전에 기술된대로, 상앙은 효공에게 이렇게 아뢰었다: “秦之與魏 譬若人之有腹心疾 非魏并秦 秦即并魏”.
“진과 위의 관계는 마치 사람의 뱃속에 질병이 있는 것과 같아서, 위나라가 진나라를 섬기지 않으면, 진나라가 위나라를 삼켜야 합니다.”
尊
“尊 “의 결자 부분을 메꿀 수 있는 표현은 문색상 의미를 살린다면,
여러 가지 의미를 도출할 수 있는 “尊” 글자 의미이다.
왕이 祭天 하늘에 제사 지낼 때 선조 제사를 함께 올리는 先祖配祭를 配天(배천)이라고 하는데, 이는 “尊祖”(존조)의 의미이다. 한서 교사지하에 “王者尊其考 欲以配天 緣考之意 欲尊祖 推而上之 遂及始祖 是以 周公 郊祀 后稷 以配天” 구절이 나온다.
尊崇王室(존숭왕실)의 표현과 같이 존경하고 숭상하는 의미의 尊崇(존숭)이라는 말이 있다. 무측천의 표현에 “尊父之敬雖週” 구절이 있다.
尊師貴道(존사귀도)의 표현 또한 가능하다. 존사귀도에 의미는 20행 귀도천신에 대한 설명 부분을 참조하라.
尊俎折沖
尊俎折沖(존조절충)은 연회석에서 술잔을 주고 받으며 담판(談判)으로써 상대방을 제압하다의 뜻이다. 尊(존)은 지위가 높은 것을 이르러, 尊長(존장), 尊貴(존귀), 존경(尊敬)하다의 단어가 있다. 俎(조)는 제사 지낼 때 제사 물건을 올려 놓는 제기를 말한다. 尊俎(존조)는 술이나 고기를 담는 그릇을 말하는 단어이고 그 확장적 의미로 술자리 酒宴(주연) 연회석을 뜻한다. 折沖(절충)은 적을 제압하고 승리하다-制敵取勝의 뜻이다. 전국책 제책齊策五에 “拔城于尊俎之間 折沖席上者也”, 안자춘추 에 “善哉 不出尊俎之間 而折沖于千里之外 晏子之謂也”의 표현이 보인다.
훌륭하다! 연회 자리를 벗어나지 않았으면서도 천리 밖의 적을 꺾어 버린다고 했거늘 재상 안자를 두고 한 말 같다. (晏子春秋, 雜上十八).
17행 요약 정리
道德像 就道德像 |
인품이 고상하고 도량이 넓고 마음이 확 트인 그런 도인같은 사람이었다. |
棲梧 -棲梧(鳳飛) |
(봉황은 오동나무가 아니면 둥지를 틀지 않고, 대나무 열매가 아니면 입에 대지 않으며, 감로수가 아니면 마시지를 않는다고 하는데), 때를 기다리면서 고결한 삶을 살았다. |
允武允文 | 문예도 능하고 무예에도 능했으니 문무 모두 뛰어난 사람이었다. |
多才多藝 | 학문뿐만 아니라 다른 예능 분야에 까지 뛰어난 재능을 발휘했다. |
憂人呑蛭 | 다른 사람의 처지를 먼저 걱정하고 동정해서 보통사람들은 하기 어려운 행동들을 주저없이 실천했다. |
尊 - (尊俎折沖) |
(연회석에서 술잔을 주고 받으며 담판談判으로써 상대방을 설득하고 제압하였다.) |
18행
九伐親命三軍 ▨威恩赫奕 茫茫沮穢 聿來充役 蠢」
아홉 번 정벌하고, 친히 삼군을 통솔하시어 … 위엄과 은혜는 혁혁히 빛나, 저 아득히 먼 옥저(沃沮)와 예(濊)까지 찾아와 역(役)을 청하였네. 잠동하던 … 국편위는 “茫茫沮穢 聿來充役”을 “저 아득히 먼 옥저 沃沮와 예 濊까지 찾아와 역 役을 청하였네”라고 번역하였는데, 이 번역은 완전히 오역에 해당하고 잘못되었다.
九伐親命三軍
九伐(구벌)은 어떤 의미인가?
九伐(구벌)은 천자가 제후의 죄악을 묻고 흐트러진 국가를 바로잡는 아홉가지 경우를 열거한 법을 말하고, 이 아홉가지 경우를 예기 대사마-법관조에서 규율하고 있다. 그것은 다음과 같다.
“以九伐之法正邦國 ① 馮弱犯寡則眚之 ② 賊賢害民則伐之 ③ 暴內陵外則壇之 ④ 野荒民散則削之 ⑤ 負固不服則侵之 ⑥ 賊殺其親則正之 ⑦ 放弒其君則殘之 ⑧ 犯令陵政則杜之 ⑨ 外內亂 鳥獸行則滅之”.
① 제후국 가운데 약소국의 이익을 침탈하는 경우 조공을 더 받치게 하거나 경제적 제약을 가한다.
② 지식인층과 백성을 해치는 제후는 토벌한다.
③ 폭정을 휘두르고 이웃나라를 능멸하는 제후는 내치고서 새 임금을 내세운다.
④ 전답이 황폐화되어 인민들이 떠나게 만든 제후는 봉지를 삭감 조치한다.
⑤ 험난한 지형을 믿고서 복종하지 않는 제후는 군사를 동원해서 침공한다.
⑥ 일가친족을 내치는 제후는 잡아 불려 들여서 정죄한다.
⑦ 나라 임금을 추방하거나 시해하는 경우 잡아다가 가두거나 처형한다.
⑧ 왕명을 어기거나 나라의 법을 무시하는 제후는 상호교류를 막고 단절시킨다.
⑨ 반란을 일으키거나 금수처럼 행동하는 제후는 즉시 처형한다.
그리고 구벌에 해당한다고 해도 천자가 직접 정벌을 단행하기 전에, 양나라 유협의 문심조룡 檄移(격이)편에서 자세히 설명한 바와 같이, 즉 무력을 동원하기 이전에 우선 먼저 군사행동을 단행하는 그 이유를 상대방이 알아듣게끔 문서로써 제후의 죄악상을 미리 고하는-奉辭伐罪(봉사벌죄) 절차를 진행하는데, 그것을 격문(檄文) 또는 露布(로포)-布告文(포고문)이라고도 부른다. 무력 동원 이전의 이 격문 절차를 “九伐先話”(구벌선화)라고 표현한다.
격문의 목적은 상대방의 기를 사전에 미리 꺾고 제압하려는 것에 있다. 전투는 정신력의 싸움이라고 말하지 않는가? 6.25 한국동란처럼 사전에 격문을 띄우지 않고 일요일 새벽에 전격전을 전개하는 사례에서도 알다시피 모든 전쟁은 사전에 미리 계획되고 준비한 상태에서 일어난다. 전쟁사를 살펴볼 때 사전에 준비되지 않는 전쟁은 없음으로 전쟁의 포성을 울리기 전에 우선 상대방의 기를 꺾는 효과를 가져오는 것이 중요한바 그런 효과를 올리기 위해서는 상대방 적에 대한 포고문 그 토벌문의 내용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 九伐” 결자부분은 구벌을 단행하는데 있어 국가의 법에 따라서 해외 원정을 단행한다는 뜻의 王略九伐(왕락구별)이란 말을 생각해 볼 수 있다.
王略(왕략)은 王法(왕법), 國法(국법)을 뜻하는 말이다. 좌전(左傳) 성공(成公)조에 “兄弟甥舅 侵敗王略 王命伐之 告事而已” 이 말이 쓰였다. 또는 정벌을 단행하는 죄악상을 미리 고하는 격문 절차의 중요성을 감안해서 “九伐先話” 즉 “先話九伐”(선화구벌)이라는 말로 메꾸어 볼 수 있다. 노자가 강조하다시피, 무력 동원은 최후의 수단이다. 도덕경 제30장의 “不以兵强天下 其事好還”, 제31장 “夫佳兵者 不祥之器”의 경구를 상기하라.
“夫佳兵者 不祥之器 物或惡之 故有道者不處 君子居則貴左 用兵則貴右 兵者 不祥之器 非君子之器” (제31장 가운데).
마왕퇴의 한묘백서 노자본에는 “佳”글자가 없고, 당나라 비본에는 “佳”글자 대신 “唯”자가 쓰여 있고, 또 제31장 문장 속에 똑같은 “兵者 不祥之器”이라는 표현이 반복되고 있음을 참조하여, “佳”글자는 단독적인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해석되는데, 굳이 한다면 아름다울 佳(가)이니 “夫佳兵”의 뜻은 ‘무릇 무기란 것은 제 아무리 아름답게 꾸미고 장식한다고 하더라도 좋은 물건이 아니다’는 불상지기의 뜻이 되겠다. 무기란 좋은 도구가 아니며 멀리하고 경계해야 할 물건이다. 그러므로 도를 추구하는 수도자는 무기를 들고 있지 않는 법이다.
“以道佐人主者 不以兵强天下 其事好還 師之所處 荊棘生焉 大軍之後 必有凶年” (제30장 가운데).
도가의 사람으로부터 보좌받고 있는 군주라면, 병력을 증강하고 무력 침공으로 천하를 장악하려는 정책을 추구하지 않을 것이다. 무기를 쓰게 되면 꼭 그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되기 때문이다. 군대가 주둔한 곳에는 가시나무가 자라난다. (즉 곤란이 따른다). 큰 전쟁이 벌어진 후에는 반드시 흉년이 든다.
親命三軍
親(친)은 친척 친속(親屬)의 뜻이 있는 글자이고 또 자기 본인 직접-(本身)의 뜻을 갖고 있는 낱말이다. 三軍(삼군)은 오늘날의 육해공군의 삼군은 아닐테고, 예전에는 주로 육군이었고 군대 편제는 上軍(상군) 中軍(중군) 下軍(하군)으로 이루어진 삼군 편제가 기본이었다. 전투 행군에 있어서 전 후방 군대는 주력 부대인 중군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므로 주력부대를 지휘하는 중군 장군이 최상위 지휘자에 속했다.
親命三軍(친명삼군)은 천자가 친히 직접 나서서 정벌에 나서 전군(全軍)을 직접 지휘했다는 뜻이다.
이릉(李陵)과 소무(蘇武)는 유자산의 애강남부에서도 언급된 인물이다. 이릉의 답소무서(答蘇武書)에 “義勇冠三軍”(의용관삼군)의 표현이 나온다.
躬擐甲冑(궁환갑주)의 성어가 출전한 춘추좌전의 “文公躬擐甲胄 跋履山川 逾越險阻 征東之諸侯” 의미가 친명삼군의 내용과 연결된다.
威恩赫奕
威恩(위은)은 위력(威力)과 은혜(恩惠)의 결합어로써 그 비유하는 의미는 인정(仁政)을 주로 하는 한편 필요할 시 형벌(刑治) 규율 체제를 집행하여 국가가 바르게 서게 만드는 국정 원칙을 말한다. 이런 국정철학은 관중에게서 나타났는데, 병행 원칙이라는 측면에서 “恩威并行”(은위병행)이라고 말하면 좀 더 쉽게 다가올 용어이다. 삼국지 오서(吳書)에 “賞善罰惡 恩威并行”의 구절이 나오는데 이 표현이 위은의 국정철학을 잘 설명한 것으로 보인다. 또 恩威이 쓰인 예는 위서 황후전에 “朝政疏緩 恩威不立 天下牧守 所在貪惏” 구절에서 보인다.
赫奕(혁혁)은 크게 빛나는 光輝炫耀(광휘현요)를 이른다. 진림의 무군부에 “光赫奕以燭夜”의 표현이 보인다. 또 현장의 大唐西域記(대당서역기)에 “遠見宮中光明赫奕 疑有火災”의 표현이 있다. 赫奕(혁혁)은 현저(顯著)하게 크게 빛나다의 뜻으로 우리말의 ‘혁혁한 공을 세우다’는 표현에서 그 뜻이 잘 나타난다.
이백의 명당부에 赫弈(혁혁)이란 단어가 등장하는데 혁혁은 ‘훤하게 빛나는 모습’을 이른다. 이선은 “赫弈 光顯昭明也”, 혁혁은 밝게 빛나는 것을 뜻한다고 주석했다.
威恩赫奕(위은혁혁)은 ‘뛰어나고 착한 사람은 상을 주고 악한 자는 벌을 주는 신상필벌의 바른 정책으로 혁혁한 공을 세웠다’는 뜻이 된다.
茫茫沮穢 망망저예
국편위는 “濊”자로 판독하였으나 이 또한 분명한 잘못으로 보인다. 沮는 습지, 穢는 황무지를 뜻하는 글자이고, “聿役”은 움직이는 모습을 뜻하는 단어이다. 따라서 茫茫沮穢는 망망대해, 망망우주와 비슷한 뜻이 된다. 茫茫沮穢(망망저예)는 ‘끝없이 펼쳐진 물가 습지나 멀고 먼 황무지이어도 이를 단숨에 달려와 충분하게 대처하였다’는 의미이다.
茫茫(망망)은 끝없이 펼쳐진 큰 바다, 한없이 넓고 넓어 아득하게 보이는 일망무제의 바다를 뜻하는 茫茫大海(망망대해)라는 표현이 우리 귀에 익숙하다. 비슷한 말로 밤하늘의 별을 쳐다볼 때 느껴지는 감인 茫茫宇宙(망망우주)라는 표현 또한 익숙하다.
沮(저)는 저지阻止하다의 뜻이 있고 또 저지대 습지 低濕地를 뜻하는 말로 쓰이기도 한다. 습지의 의미로 쓰인 예는 시경 위풍(魏風)의 “彼 汾 沮洳 言采其莫” 표현이 보인다. 이에 대한 공영달의 설명은 “沮洳 潤澤之處”이니 비 온 뒤 윤기가 나는 곳처럼 물이 풍부한 지역 운몽지택의 동정호수 같은 곳을 말한다. 沮洳場(저여장)은 중국의 대륙이 황해와 만나는 곳에 가까운 동해안가 습지 지방 지방을 이르는 말이다.
穢(예)는 더럽고 지저분하고 불결하다는 뜻의 낱말로 이런 뜻에 穢濁(예탁)이 있다. 清淨無穢(청정무예)의 단어가 익숙하다. 또 穢(예)의 뜻에는 밭 가운데 잡초(雜草)가 우거진 것 즉 황무지(荒蕪)를 뜻하는 말이기도 하다.
沮穢(저예)는 저(沮)는 저지대 습지, 예(穢)는 황무지를 말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런 곳은 평소 훈련으로 단련된 군인들이라고 해도 뚫고 나가기 힘든 지역에 속한다. 습지를 전진하기에는 많은 애로가 많고 악어나 뱀 등 예기치 않는 저항물이 많다. 군사 행동에서 한번 습지에 빠져들면 헤어 나오기 힘들지 않는가? 잡초로 쌓인 황무지 또한 군사행동을 가로막는 큰 장애물에 속한다. 이런 군사 작전의 제약 요건이 많은 저지대나 황무지 벌판이 망망대해처럼 끝없이 아득하게 멀다 해도, 聿來充役(율래충역)-단숨에 뛰어와서 필요한 임무를 신속하게 처리해 버린다.
국편위는 “茫茫沮穢 聿來充役”을 “저 아득히 먼 옥저 沃沮와 예濊까지 찾아와 역役을 청하였네”라고 번역하였는데, 역사적 국가 이름인 옥저와 동예를 끌어 와서 마치 역사성을 높인 듯 보일지 모르지만, 이런 해석은 황당무계하고 크게 잘못되었다. 또 국편위는 濊자로 판독하였으나 이 또한 분명한 잘못이고, 정확한 글자는 穢이다. 국편위가 옥저沃沮와 東濊동예를 끌여오기 위해서 글자판독을 “濊”예자로 판독했는지 모르지만, 穢와 濊는 육안으로도 쉽게 구별되고 판명되는 글자가 아닌가?
聿來充役 율래충역
“聿役”은 움직이는 모습-動貌을 뜻하는 단어이다. 송기(宋祁)의 싯구절에 “暗浮蟲聿役 閑立鷺毰毸”의 표현이 보인다. 蟲충은 蟲蝦를, 충하는 魚蝦어하 즉 큰 어류를 이른다. 鷺로는 해오라기, 백로를 뜻하고, 毰毸(배시)는 새가 날개를 활짝 편 모양을 뜻한다. 그러므로 이 구절의 뜻은 ‘물밑에선 큰 물고기가 움직이고, 습에는 해오라기 한 마리가 날개를 활짝 펴고 있네’.
聿율은 고대에서 글 쓰는 붓-筆을 뜻한 말이었고, 役(역)은 사역하다, 서비스를 담당하다의 뜻이다. 따라서 聿役하면 ‘붓을 놀리다’의 의미를 가지니, 붓 가는 대로 호방한 필체를 자랑할 때 용이 솟아 오르듯이 날렵하게 움직이는 모습이 쉽게 상상된다. 이런 유려하게 붓글씨를 모습을 떠올리면서 聿役(율력)을 날쌔게 움직이는 모습을 그리는 말로 쓰인다.
聿役율력
聿(율)은 붓이 춤추는듯이 말을 탄 무사가 빨리 달리는 모습을 표현한다. 聿追(율추)는 앞서간 선인의 덕업을 추술하는 것을 말한다.
徭役(요역)은 예비군을 동원해서 훼손된 도로나 제방을 고칠 때 무상근로를 시킬 때처럼 국가가 근로에 대한 정당한 보상 없이 북한의 강제노동체제처럼, 스탈린의 강제노동수용소처럼, 무상으로 노력 동원을 하는 것을 말한다. 군복무 자체가 요역에 해당한다. 군대에서 사병들이 딱히 할 일 없으면 잡일-잡역(雜役)을 시키는데 그 때 사역(使役)시킨다는 말을 쓴다. 사역은 ‘공짜로 부려먹는 것’을 뜻하니, 사역은 노역(奴役), 仆役(부역)과 같은 말이다. 또 역(役)은 戰役(전역)이라고 쓸 때의 전역은 전쟁을 의미하는 말로 쓰인다. 군복무를 兵役(병역)이라고도 쓰는데 이 때의 역(役)은 감옥에 갇히는 복역(服役)과도 같다. 젊은 사내들 정장들 가운데 고관대작 자식들이 군대를 가지 않으려고 병을 핑계로 이리저리 빠져나가거나 또는 돈없고 빽없는 하층민들이라면, 구시대 천주교의 면죄부가 흥행했던 것처럼, 돈을 주고서라도 양반 명부를 사들여서 군대복무 병역를 피하려는 이유가 이런 병역의 성격에 들어 있다.
充役충역의 충充은 보충하다, 만족시키다, 마땅히 채우다, 담당하다의 뜻이고, 役(역)은 군복무를 하다, 종군(從軍)하다 전쟁에 참가하다, 복무하다, 노력봉사하다의 뜻이니, 충역(充役)은 병역이나 사역이나 부역이나 요역이나 노역(勞役)이나 고역(苦役)이어도 그 맡은 바 임무를 서비스 해내는 것을 말한다. 군대 안가고 후방 지역에서 병역을 대신하는 사람을 보충역이라고 부르는데, 이런 충역(充役)의 의미가 들어있는 말이다.
따라서 聿來充役(율래충역)은 ‘와 달라고 부르면 그대로 달려와서 요구받은 일을 가뿐히 처리해 내다’의 뜻이 된다. 茫茫沮穢 聿來充役는 ‘끝없이 펼쳐진 물가 습지나 멀고 먼 황무지이어도 그것을 마다하지 않고 단숨에 달려가 맡은 바 임무를 충실하게 처리해 냈다’는 뜻이다. 임무를 부여 받으면 망망대해라고 마다하지 않고 달려 와서 맡은 바 일을 가뿐히 완수해 냈다.
蠢
蠢(준)은 어리석음 愚笨을 뜻하는 낱말이고, 蠢事(준사)는 어리석고 미련한 짓을 뜻하는 단어이고, 蠢蠢(준준)은 蠢動(준동)하는 모습 蠢蠢而動(준준이동)의 뜻이다. “蠢蠢欲動”(준준욕동)이라는 우리말 숙어 표현이 익숙하다. 따라서 “蠢 “ 결자 부분에 들어갈 표현으로는 “蠢蠢欲動 蝨蠢蠡蠧”(준준욕동 슬준려두) 이런 뜻의 구절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준준욕동은 적이 침범하려고 공격을 준비하는 모습, 불만있는 사람이 남몰래 난을 일으킬 음모와 획책을 하는 모습을 벌레가 꿈틀거리는 모습에 비유하여 생동감 있게 묘사하는 표현이다.
남북조시대 유경숙의 異苑(이원)에 “蠢蠢而動”의 표현이 나오고, 왕우칭의 싯구에 “蠢蠢戢戢如雞豬”이 보이고, 당 노조린의 五悲(오비)에 “蠢蠢翾翾 受苦受樂 可悲可憐”의 표현이 나온다. 翾翾(현현)은 참새가 나는 모습을 이른다.
오서에 준준욕동하는 왜구라는 뜻의 “蠢蠢妖寇”(준준요구)의 표현이 나온다. 또 蠻夷(만이)를 뜻하는 蠢茲卉服(준자훼복)의 표현이 있다.
따라서 聿來充役 蠢蠢欲動이라는 구절은 ‘적이 침범하려고 벌레처럼 꿈틀거리는 모습이 포착되면 망망대해처럼 멀고 힘든 길일지라도 단숨에 뛰어가서 쳐부수고 박살내 버렸다는 결연한 전사의 전투태세를 표현한 내용이다.
18행 요약 정리
九伐- (先話九伐) |
정벌을 단행하는 이유와 적의 죄악상을 밝히는 격문을 밝히고 선전포고했으며 |
親命三軍 | 대왕이 친히 정벌에 나서 전군을 직접 지휘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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威恩赫奕 | 뛰어나고 착한 사람은 상을 주고 악한 자는 벌을 주는 신상필벌의 정책으로 혁혁한 공을 세웠다. |
茫茫沮穢 | 끝없이 펼쳐진 물가 습지나 멀고 먼 황무지이어도, |
聿來充役 | (그것을 마다하지 않고) 단숨에 달려가 맡은 바 임무를 충실하게 완수해 냈다. |
蠢 - (蠢蠢欲動) (蠢蠢妖寇) |
적이 침범하려고 벌레처럼 꿈틀거리는 모습이 포착되면 (단숨에 뛰어가서 쳐부수고 박살내 버렸다). |
19행
欽風丹甑屢出黃▨鎭空 雄赤烏鳥呈灾黃熊表祟俄隨風燭忽」
19행의 국편위의 번역은, “… 풍교를 흠모하여, 단증(丹甑)이 여러 번 나오고, 황▨(黃▨)이 하늘을 진호하였도다. …적오(赤烏)가 재앙을 나타내고, 황웅(黃熊)이 우러름을 표시하니, 갑자기 바람에 흔들리는 촛불처럼 홀연히 …”
19행을 사자 띄어쓰기로 재배열하면,
欽風 丹甑屢出 黃▨鎭空 … 雄 赤烏呈灾 黃熊表祟 俄隨風燭 忽」
欽風
귀순(歸順) 항복(降服)을 뜻하는 납관(纳款)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 납관이 欽風(흠풍)과 어울린다. 역사서에 “北敵欽風而納款”, “八方小虫欽風則納款” 이런 표현들이 나오고 있으므로, 여기서 “ 欽風”의 결자 부분은 “納款欽風”으로 메꾸고자 한다. 欽風(흠풍)의 한어대사전 뜻풀이를 보면 風俗教化(풍속교화)를 敬慕(경모)하다 뜻이니, “欽風納款”(흠풍)납관은 ‘외국 이웃나라 사람들이 교화되고 귀순해 왔다’는 뜻이 된다. “納款欽風”(납관흠풍)으로 어순을 바꾸어도 똑같은 의미라고 여겨진다.
丹甑屢出
丹甑(단증)은 炊器 취사도구를 말한다. 풍년이 들면 소출되는 상서로운 신물이라고, 양나라 손유지(孫柔之)의 서응도(瑞應圖) 단증(丹甑)에 “王者棄淫污之物 則丹甑出 一曰行年豐即出”, 송서(宋書) 부서(符瑞)志에 “丹甑 五谷豐熟則出” 소개되어 있다. 屢(루)는 자주, 종종, 여러 번, 누차의 뜻이니, 풍년이 들어야 얻을 수 있는 상서로운 단증이 한 번도 아니고 누차 여러 번 나왔다고 하니 풍년이 연이어 들고 인민들은 더욱 잘 살게 되었다는 뜻이다.
鳳嘗出於舜 以爲瑞 猶有說也 及其後 出於亂世 則可以知其非瑞矣, ‘봉황은 일찍이 순임금의 시대에 출현하였으니 이를 상서로운 징조로 삼는 것은 그래도 근거가 있다. 하지만 그 후대에 이르러서는 난세에도 봉황이 나왔으니 상서가 아님을 알 수 있다’는 구절 등으로 麟鳳龜龍인봉구룡-기린 봉황 거북 용의 도교적 상서로운 징조에 대한 유교적 입장에서 비판한 구양수의 비판적인 글을 참조하라.
黃▨鎭空
鎭(진)은 진압(鎭壓)하다의 뜻, 군사상 변방요지라는 뜻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일정시간을 말하는 鎭日의 말에서 보이듯이 진일하면 하루종일, 정천(整天)의 뜻이 있다. 북두칠성을 이루는 북극4성 중 하나를 北極鎭天(북극진천)으로 부르기도 한다. 空은 일본어 そら(소라)로 더 잘 알려진 것 같은데 하늘 sky의 뜻이다. 그러므로 비문에서 鎭空(진공)은 오늘날 우리들이 매우 흔하게 쓰는 “진공 청소기”에서의 진공의 뜻이 아니라, 鎭天(진천), 天空(천공), 하늘을 지칭하는 단어임을 알 수 있다. 진공청소기의 鎭空(진공)은 한자로는 같은 글자이지만 먼지를 진압하다 제압하다는 뜻이 아닌가? 비문의 鎭空(진공)은 하늘을 뜻하는 말이므로 “黄圖天空”(황도천공)의 의미가 즉시 도출된다. 따라서 “黃▨鎭空”의 결자를 “黄道圖(황도)로 메꾸어 “黃圖鎭空”의 뜻이라고 해석된다. 黃圖황도는 《三輔黃圖》삼보황도의 책이름을 지칭한다.
황도가 하늘에 나타났다면, 그것은 좋은 징조라고 여겼다는 길흉판단의 책력 역사를 참조한다면 이 비문의 내용이 어렵지 않게 해석된다.[14] 황도진공은 “天運正中” ‘천명이 하늘에 나타났다’는 뜻이 된다. 황도진공은 양형의 싯구에 나타나는 표현인 “黃圖四海中”(황도사해중)의 의미하고 상통하고 이와 댓구적인 표현으로 어울리는 말이다.
黃圖(황도)는 靈圖(영도)를 지칭하고, 영도는 河圖(하도)를 지칭한다. 하도는 참위가가 말하는 국왕으로서 하늘로부터 수명을 받았다는 상서로운 징조를 뜻하는 天子位(천자위), 明堂圖(명당도)를 말한다.
雄
“ 雄” 이 결자부분을 메꿀 수 있는 단어들을 생각해 본다면, 태평성대를 말하는 “天下繁雄”(천하번웅)이라는 말을 생각해 낼 수 있다. 繁雄(번웅)은 繁華(번화)하고 같은 뜻이다. 춘추번로의 번로 즉 김수로왕의 수로의 뜻과 같다. 황제가 쓰는 왕관에 구슬이 많이 달린 그 모양처럼-신라 금관의 모습을 상기하라-
왕관에 버드나무 수양가지 늘어진 모양처럼 윗에서 아래로 늘어뜰어진 명주보석구슬 그모습을 상기할 때 번로, 번웅의 말이 생각난다.
당 백거이의 싯구에 “茂苑 太繁雄”이라는 표현이 그것이다. 그런데 “ 雄” 다음에 이어지는 구절이 “雄赤鳥呈灾黃熊表수俄隨風燭忽”의 표현인데 이 구절의 의미는 ‘좋지 않는 불길한 징조’, ‘상서롭지 못하다’는 의미를 지닌 표현들임을 참조한다면, 문맥상 천하 태평성대를 구가하였다는 앞 문장 부분의 내용에서 불길한 내용으로 갑자기 전환되는 극적인 반전의 내용을 담고 있는 표현이 와야 문맥상 의미가 통하고 적절하다. 이러한 내용을 담고 있는 표현이 사료문헌들에서 찾아볼 수 있을까? 굴원의 초사, 가의의 복조부를 읽어보면 그 표현이 찾아진다.
호사다마(好事多磨)라고 했던가? 좋은 일에는 방해가 끼기 마련이다는 그런 표현. 나는 그 표현을 “禍福雌雄”(화복자웅)으로 찾고 싶다. 새들도 암컷 숫컷이 함께 놀듯이, 우주만물은 요철묶음 음양이 있다. 화복(禍福) 또한 그 같은 암수자웅(雌雄之理)의 이치와 함께 하지 않을까? 우리들의 인생관을 지배하는 숙어 가운데 하나가 새옹지마이다. 한 때 불의의 사고가 다음에는 오히려 행운으로 변하기도 하기에 미래의 재앙과 축복이 어떻게 일어날 지 미리 알기 힘들다-“夫禍福之轉而相生 其變難見也”는 의미의 塞翁之馬(새옹지마) 고사성어 말이다. 새옹지마의 고사성어가 회남자(淮南子)에서 출전한다. 말을 잃어버린 화가 뒷날 복이 될 줄 미처 알지 못했다는 “塞翁失馬焉知非福”(새옹실마언지비복)의 새옹지마의 고사성어는 회남자 人間訓(인간훈)에 나온다. 화라고 여겼던 것이 오히려 복이 될 수 있고, 복이라고 여겼던 것이 화를 불러 오는 원천이 되기도 한다. 禍福相生(화복상생)이라고 화와 복은 같은 자리에 있다는 뜻의 화복자웅은 재앙과 축복이라는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고 돌고 도는 변화의 개념에 속하는 것이니 재앙이 닥쳤다고 해도 용기를 잃지 말 것이며 또 축복을 받았다고 해도 그것이 언제 사라질 지 모르는 일이므로 조심하라는 의미이다.
세상은 변화하고 상생 상극하면서 발전한다. 易(역)경은 만물은 쉬이 변화한다는 變易(변이) 轉變(전변)의 개념에 기초한다. 이렇게 화복이 같은 자리에서 뒤바뀌게 되고 번갈아 가며 일어난다면 마침내 그 끝이 어떻게 될 지를 어느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미래는 알 수 없는 법이고, 화복 또한 그렇다. “禍兮福之所倚 福兮禍之所伏 孰知其極” 노자도덕경 제58장의 구절은 바로 이러한 禍福相依(화복상의)라는 인간 세상의 진리를 말하는 것이 아닌가?
화복상의, 규명과 실체에 대해서 좀 더 자세한 개념을 제시하는 장자의 말을 인용한다.
“陰陽相照 相蓋 相治 四時相代 相生 相殺 欲惡去就 於是橋起 雌雄片合 於是庸有 安危相易 禍福相生 緩急相摩 聚散以成 此名實之可紀 精微之可志也 隨序之相理 橋運之相使 窮則反 終則始 此物之所有 言之所盡 知之所至 極物而已 覩道之人 不隨其所廢 不原其所起 此議之所止” (장자, 則陽).
음과 양이 서로 비추어 주고, 서로 가려 주고, 하면서 서로를 관리해 나간다. 4계절이 교대로 반복되고, 상생과 상극을 한다. 나쁜 것을 버리고자 또는 취하고자 하는 욕망이 일어나고, 암컷과 숫컷이 교배하는데 이것은 평범한 일상에 속한다. 안전하다는 것과 위험한 것은 서로 쉬이 바뀌고, 재앙과 축복이 같은 곳에서 생기며, 완만함과 조급함은 서로 맞물려 돌아가며, 모이고 흩어짐 또한 이와 같다. 규명과 실제를 꿰뚫는 실줄이 있으며, 심오한 뜻을 알아낼 수 있다. 자연 질서를 따라서 서로 다스려지며, 사물의 변화와 운동에 따라서 서로를 부리는데, 끝까지 갔다 싶으면 되돌아오고, 다 끝났다 싶은 그 극점에서 다시 시작된다. 이러한 성질은 우주 만물이 갖고 있는 현상이다. 말로써 다 규명할 수 없는 것이 있고, 지식은 그 한계점에 도달하기 마련이다. 사물의 발전에는 극에 달하는 극점이 존재한다. 도가 무엇인지 보고 듣고 깨우친 사람은 사물이 다하는 극점을 알려고 하지 않고, 또 그것이 생겨나는 근원을 따지지 않으며, 다만 지금 처해 있는 현재 실정과 현실을 따지는 것이다.
세상 만물은 변화한다. 변하지 않는 것에 무엇이 있는가? 사마천이 가생의 복조부 등을 읽고 나서 굴원이 자기 몸을 던져 희생한 그 이유를 이해하게 되었다고 고백했는데, 당신은 죽음의 의미에 대해서 얼마만큼 알고 있는가?
萬物變化兮 固無休息
斡流而遷兮 或推而還
形氣轉續兮 變化而蟺
沕穆無窮兮 胡可勝言
禍兮福所依 福兮禍所伏
憂喜聚門兮 吉凶同域 (가생의 “복조부” 중에서).
세상 만물은 변화무쌍하네! 결코 고정되어 있지 않고 멈추는 법이 없음이여!
휩쓸려가는 소용돌이여! 다시 밀려서 돌아오네!
서로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는 형체와 그 속을 흐르는 에너지여!
지렁이가 허물 벗듯이 변화하네!
정미하고 심오하며 무궁한 세상만물의 이치여,
어찌 말로써 다 설명할 수 있겠는가?
화는 복 가운데서 꿈틀대며, 복은 화 속에 숨어 있네!
하나의 문으로 모이는 근심과 기쁨이여,
길하고 흉한 것은 같은 곳에서 일어나네!
모든 일은 지나고 나서야 알 수 있다. 키에르케고르는 우리 인간이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과거를 음미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말했는데, 사실 그 같은 지혜는 헤겔이 말한 “미네르바의 부엉이”의 지혜에 다름 아닐 것이다. 인간의 삶은 죽고 나서야 깨닫는 것! 어머니께서 남기신 유언의 의미를 거꾸로 해석하여 후회 막심한 눈물만을 흘리는 “불효자는 웁니다”의 “청개구리 우화”에서 알 수 있듯이, 사람의 일은 항상 그 일이 지나고 나서야 본 모습을 제대로 알 수 있는 법인가? 사람은 죽을 때가 되어서야 죽음의 의미를 알게 되고, 인생은 나이가 들어서야 이해가 되고, 사람들의 이야기는 끝까지 다 듣고 나야 서로 얽히고 설킨 사건들이 비로소 이해가 된다. 인구에 회자되는 헤겔의 말을 상기해 보자, “Die Eule der Minerva beginnt erst mit der einbrechenden Dammerung ihren Flug.”,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이 깃들 무렵에야 비로소 날기 시작한다.” 헤겔이 말한 미네르바의 부엉이의 지혜인가? 사마천은 말했다. 모든 것은 죽고 나서야 밝혀질 것이라고. “書不能悉意”-글로써는 속에 들어 있는 모든 생각을 있는 그대로 다 들어내 쓸 수 없고, 그래서일까? “死日然後是非乃定”: 내 죽은 후에나 옳고 그름이 가려질 수 있을 지 모르겠다.
赤鳥呈灾
국편위는 “赤烏”(적오)로 글자 판독을 하였으나, 나는 유희애의 판독을 따라서 “赤鳥”(적조)가 올바른 판독이라 여긴다. 적오(赤烏)는 붉은 까마귀를 말하는데, 까마귀의 색깔은 새까만 색이고 그래서 이글거리는 태양에 반사되어 그 색깔이 붉게 타면 상서로운 징조로 여겨지는 반면, 빨간 색의 赤鳥(적조)는 상서롭지 못한 불길의 액운을 주는 대상으로 알려져 있기에, 불길한 징조를 열거하는 이 구절의 의미에 적조가 보다 적절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적오는 金烏(금오) 즉 태양, 해를 가르키는 말이기에 상서로운 서조(瑞鳥), 길조라고 여겨진다.
사기 周本紀(주본기)에 나오는 “白魚赤烏”(백어적오)의 이야기가 말해주듯-“武王渡河 中流 白魚躍入王舟中 武王俯取以祭 既渡 有火自上復于下 至于王屋 流為烏 其色赤 其聲魄云”- 赤烏(적오)는 상서로운 징조-祥瑞之兆를 가져오는 심볼로 알려져 있다. 적오가 상서로운 징조를 가져오는 상징이라는 것은 여씨춘추, 상서대전에도 쓰여진다. 烏(오)에 대해 건릉 술성기에 “爲慈孝之鳥 複是太陽之精”으로 적었다. 반면 赤鳥(적조) 붉은 새가 불상징조(不祥之兆)의 흉조라는 상징은 좌전(左傳) 애공편의 “是歲也 有云如眾赤鳥 夾日以飛三日”, 삼국지 위지 관로(管輅)별전의 “赤鳥夾日 殃在荊楚”의 예문으로도 확인된다.
呈(정)은 빛깔을 띠다, 나타내다 顯出,露出(노출)의 뜻이고, 灾(재)는 불행, 조난, 재앙을 만나다, 招灾惹禍의 뜻이니, “赤鳥呈灾” (적조정재)의 뜻은 ‘붉은 새가 불길한 징조를 띠고 나타나고’.
黃熊表祟
국편위는 글자판독을 높을 “崇”(숭) 글자로 판독하였으나, 나는 유희애의 판독대로 “崇”(수) 글자로 판독한다. 崇와 祟 이 두 글자는 육안으로 보기에는 거의 비슷한 글자같이 보이지만, 뜻이 다른 글자이다. 祟(수)는 재앙 재화(災禍)를 불러오는 사악한 악귀 evil spirit, 행동이 음흉하다는 뜻이라는 글자이고, 崇(숭)은 높을高(고)의 뜻이어서 문맥상 의미로도 분명한 차이가 보인다. 黃熊(황웅) 또한 악귀로 알려져 왔다. 黃熊은 우임금의 부친인 곤이 우산에서 사형당할 때 황웅으로 변신해 연못으로 들어갔다는 전설을 좌전에서 소개하고 있고 또 당나라 양형이 쓴 신도비문에 “晨占赤烏 夜辨黃熊”의 구절이 나타나는 사례 등을 통해서 보면, 악귀로 여겨진다. 祟(수)는 밤에 숨어 다니면서 해를 끼친다는 귀신을 말하는데 려귀(厲鬼 將會無法安息而爲祟)라고도 말한다. 관자에 鬼神骤祟(귀신취수), 장자 천도에 “一心定而王天下 其鬼不祟”, 전국책에 “寡人不祥 被于宗庙之祟”의 표현이 나온다. 孤魂祭(고혼제) 망제는 이런 악귀신 려귀를 달래는 제사를 지내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黃熊表祟”(황웅표수)는 ‘좋지 못한 불길한 일이 일어날 징조’를 알려 주는 말로 쓰인다. 황웅표수 다음에 ‘아니나 다를까 갑자기 바람 앞에 촛불이 꺼지고’의 뜻인 “俄隨風燭”의 표현이 이어지는 것을 볼 때 이것은 논리적으로 정연한 문맥상 연결이다.
俄隨風燭
俄(아)는 금새, 갑자기의 뜻이고, 隨는 따라가다, 곧 이어서 무슨 일이 따르는 隨即의 뜻으로 수반(隨伴)하다는 우리말이 그 한 예이다. “風燭”(풍촉)은 바람앞에 촛불 그래서 곧 꺼질 것 같은 風中之燭易滅의 뜻으로 임종이나 곧 사라질 지도 모를 어떤 것을 비유하는 의미로 쓰이는 말이다. 왕희지의 글에 “或恐風燭奄及 遺教子孫耳”, 위장의 싯구절 “池塘春草在 風燭故人亡” 등이 그 예이다. 그러므로 俄隨風燭(아수풍촉)의 뜻은 ‘갑자기 바람 앞에 촛불이 꺼지고’.
忽
忽 이 결자 부분을 메꾸어 본다면, 바로 앞의 구절이 俄隨風燭(아수풍촉)-갑자기 바람 앞에 촛불이 꺼지고-이라는 표현이었으므로 이를 이어받는 의미를 생각해 보면, ‘별이 떨어지더니 운명하시고 말았다’는 의미가 문맥상 적절하다. 이를 한자로 표현해 보면, 忽星殞墜 忽然殂落 忽若影滅 忽若三命凝涸.
비문 19행 요약 정리
欽風 丹甑屢出 黃▨鎭空 雄 赤鳥呈灾 黃熊表祟 俄隨風燭 忽
외국 이웃나라 사람들이 교화되고 귀순해 왔다.
풍년이 들어야 얻을 수 있는 상서로운 단증이 누차 나왔고 풍년이 연속되었으며,
천명이 하늘에 나타났다.
(하지만 호사다마好事多磨라고 했던가?) 화복禍福 또한 암수자웅雌雄之理의 이치와 같이 함께 하는 것인가?
붉은 새가 불길한 징조를 띠고 나타나고,
좋지 못한 불길한 일이 일어날 징조를 알려 주는 황웅 귀신이 나타나더니,
갑자기 바람 앞에 촛불이 꺼지고.
홀연히 (별빛이 떨어지더니 그만 운명하셨다).
(納款)欽風 | (외국 이웃나라 사람들이) 교화되고 귀순해 왔다. |
丹甑屢出 | 풍년이 들어야 얻을 수 있는 상서로운 단증이 누차 나왔고 풍년이 연이어 들었다. |
黃(圖)鎭空 | 뛰어난 도서 저작이 세상에 나왔다. |
(禍福雌)雄 | 호사다마好事多磨라고 했던가? 화복禍福 또한 암수자웅雌雄之理의 이치와 같이 함께 하는가? |
赤鳥呈灾 | 붉은 새가 불길한 징조를 띠고 나타나고. |
黃熊表祟 | 좋지 못한 불길한 일이 일어날 징조를 알려 주는 황웅 귀신이 나타나더니. |
俄隨風燭 | 갑자기 바람 앞에 촛불이 꺼지고. |
忽 | 홀연히 (별빛이 떨어지더니 그만 운명하셨다). |
[1] “The meaning of the word is its use in the language” (단어의 의미는 그 언어가 어떻게 사용되느냐에 달렸다)라고 말한 비트겐슈타인의 언어이론을 참조할 필요가 있다. 비트겐슈타인은 어떤 단어가 무슨 의미를 갖고 있는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논리적 구조에서 그 단어가 어떻게 정의되는지 보다, 오히려 그것은 언어를 사용하는 공동체 사회 보통사람들의 일상적인 삶에서 그 용어가 어떻게 사용되는지가 더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It is more important how the term is used in the common life of the community of speakers, rather than how it is defined in a logical system.”) “천황대제”가 당시 언어 사용자(competent speakers) 가운데는 별자리 점성학의 생생한 살아 있는 의미로 쓰였겠지만 유교 사회의 최정점기 조선 후기 그것도 관료사회의 직업적 배경이 매우 강했던 추사로서는 신라 당시의 도교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을 것이다.
[2] 예기 중용의 “文武之政 布在方策 其人存 則其政擧 其人亡 則其政息”, 사람은 그가 죽으면 그의 정치도 끝난다. 죽으면 다시 빈객이 되어 유유자적 길 위의 삶 나그네 삶을 이어가는 것이고, 정사에 실제로 참견하는 것이 아니다.
[3] 예기 중용의 “文武之政 布在方策 其人存 則其政擧 其人亡 則其政息”, 사람은 그가 죽으면 그의 정치도 끝난다. 죽으면 다시 빈객이 되어 유유자적 길 위의 삶 나그네 삶을 이어가는 것이고, 정사에 실제로 참견하는 것이 아니다.
[4] 당태종의 《賦得浮橋》 “曲岸非千里 橋斜異七星 暫低逢輦度 還高值浪驚 水搖文鷁動 纜轉錦花縈 遠近隨輪影 輕重應人行”; 왕포(王褒)의 《和庾司水修渭橋》 “東流仰天漢 南渡似牽牛 長堤通甬道 飛梁跨造舟 使者開金堰 太守擁河流 廣陵候濤水 荊峽望陽侯 波生從故舶 沙漲湧新洲 天星識辨對 檢玉應沉鉤”; 유신(庾信)의 《在司水看修渭橋》 “大夫參下位 司職渭之陽 富平移鎖柱 甘泉運石樑 跨虹連絕岸 浮黿續斷航 春舟鸚鵡色 流水桃花香 星精逢漢帝 釣叟遇周王 平堤石岸直 高堰柳枝長 羨言杜元凱 河橋獨舉觴”.
[5] (Le Pont Mirabeau by Guillaume Apollinaire, The Mirabeau Bridge Translated by Foreman.) 프랑스의 수도 파리에는 세느강이 흐르고 있어 다리가 많이 있다. 그런데 수 많은 다리 중에서도 왜 유독 “미라보 다리”가 유명할까? 아폴리네르의 시로 유명해진 이름일 것이다. “미라보”는 장소명이 아니라 사람 이름이다. 프랑스 혁명 (1798년)이 일어나기 직전 그는 구체제를 청산하고 영국처럼 입헌군주제를 채택하여 개혁을 부르짖었던 귀족이었다. 모든 귀족들이 기득권을 고집하고 부패하여서 프랑스 혁명을 불러온 것은 아니다. 사람 사는 곳에는 보수와 진보의 두 이념적 흐름이 뚜렷이 형성되어 있다. 일본이나 한국의 정치 체제가 금전정치 파벌 정치로 인해서 보수세력이 절대다수로 정치를 장악하고 있긴 하지만 이것은 세계적인 흐름 속에서 예외적인 현상에 불과할 것이다. 프랑스는 혁명 이후 귀족 체제가 타파되어 평등 사회가 강조되었다. 미라보 de Mirabeau는 (1749-1791) 프랑스 혁명기를 생각나게 하는 이름이다. 그런데 아폴리네르는 혁명가는 전혀 상관없이 개인적인 사랑의 시로 미라보 개인적인 사적인 이미지로 변형시키고 만다. 대부분이 그렇듯이 시간이 흐르고 나면 제 아무리 핏빛 선연한 무서운 혁명이었다고 해도 혁명은 잊혀지고 남녀간의 사랑만이 부각된다. 세월이 가고 시간이 지나고 나면 치열했던 혁명의 열기와 배경은 사라지고 만다. 그리고 역사는 반복된다. 과거가 다시 밀려 올 때 희망은 사라진다. 과거의 반복은 희망의 종말일까? 울프의 견해에 따르면 아마 그럴지도 모른다.
[6] 동해지빈 솔토지빈의 빈은 빈객(賓客)과 같은 말이다. 빈(賓)은 주인과 상대되는 말로 찾아온 손님, 客人(객인), 來賓(래빈), 貴賓(귀빈)과 같은 말이다. 춘추전국시대에선 빈과 객의 대우 수준이 달랐지만 그 후 민간 부문에서는 빈객의 구분선이 무의미해졌다. 여기서 객가인에 대한 짤막한 코멘트를 남기고 싶다. 객가(客家)인의 대표적인 사람으로 맹모삼천지교의 맹가와 사기의 저자 사마천을 들 수 있다. 그 이유는? 바로 사마천의 이름자가 이리저리 옮겨 다닐 遷(천)이지 않는가? 그의 선조 몇 대 때부터 타의에 의해서 떠돌아다녀야 했던 피란민에 해당했다. 나라 안팎의 질서가 무너지고 혼란이 극심했던 춘추전국시대엔 유랑민이 많이 생길 수 밖에 없었다. 나라가 수도 자체를 다른 곳으로 옮겨야 했던 전쟁과 천도의 시기였기에 궁정관리로 근무하면서 나라의 녹봉을 먹고 살았던 그의 선조라고 해도 다녀야 해도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옮겨 다녀야 했다. 인류사에 불멸의 영웅들은 이름 자체에까지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고, 자신의 불리한 환경과 정체성을 극복해낸 사람들이다. 객가인이란 낱말 뜻 자체가 말해주듯 자신들은 주인이 아니라 손님이라는 것 즉 ‘인생은 나그네 길’ 잠시 머물다 가는 손님이라는 겸손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다. 사마천이 사기열전에서의 첫 번째 인물로 실은 백이숙제 또한 대표적인 객가인이다. 백이숙제가 고사리 캐 먹다가 아사한 수양(首陽)산은 바로 산동성의 양산을 말하는데, 고죽국의 본향이 양산이다. 노자 공자 묵자 노반 맹자 등 천하의 제자백가들의 본향이 이곳이고 조선과 진국 신라인의 본향이 이곳 양산이다. 옮겨 다닐 운명의 추나라 사람인 맹자와 맹모삼천지교의 맹가 어머니 또한 객가인이고, 역사상 수많은 영웅들이 바로 객가인들인데, 고죽국 사람들 또한 피란민의 삶, 객가인이 주류였다. 오늘날 등소평이 객가인이요, 현재 대만총통 채영문도 객가인이다. 신라 김씨가 객가인이었다. 그의 후손인 추사 김정희도 객가인이지 않겠는가? 추사는 귀양살이로 살다 갔으니 어찌됐든 객가인이었음에 틀림이 없다. 민족적 종족적 종교적 분류의 개념은 차치하고 객가인을 지탱하는 정신적인 지주의 개념으로 설명한다면 객가인은 교육과 전통을 중시하고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현하는 사람들이다. 경주최씨 첨성대가 있는 교동에 경주최씨의 고택이 있는데 경주최씨는 한국판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대명사로 알려져 있다. 경주최씨 이전의 먼 신라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오늘날에는 김유신가로 잘 알려진 재매정 가계가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모토로 살았던 객가인의 전형을 보여준다.
[7] 당태종의 “제범”에 “登暉璇極” 표현이 나온다. (梁簡文帝 謝爲皇太子表曰 臣以 毓慶雲霄 憑暉璇極 璇極 謂寳位也 登 升也 暉 顯也).
[8] 한서, 양웅(揚雄)전에 소개되어 있다. “長楊賦”에서 “張網置罘 捕熊豪豬狖玃狐兔麋鹿 載以檻車 輸長楊射熊館” 그리고 “羽獵賦”에서 “於是禽彈中衰 相與集於靖冥之館”의 구절이 설명하다시피, “사웅관”은 “정명관(靖冥館)”을 지칭한다. 불교적으로 말하면 덕흥리 고분이 전해주듯 “용궁”이 되겠고, 유불선으로 말하면 “지령인걸”로 표현된다. “지령인걸”의 의미를, 굴원의 초사 “국상(國殤)”의 구절로 가져오면, “身既死兮神以靈 子魂魄兮爲鬼雄”이다. 각자 어떠한 종교를 가졌든 (즉 그곳을 단테의 깊은 심연이든, 불료적 용궁이든, 도가와 기독교의 저 높은 하늘 나라로 생각하든) ‘죽은 자’는 말이 없고, ‘영원한 침묵’을 하고 있으며 또 죽음이란 꼭 무엇이라고 꼬집어 말하기 어려운 개념인데 그것을 흔히 순수 알갱이, 고갱이, 정신, 혼백 등으로 말하든 여튼 눈에 보이지 않는 그 무엇의 형체로써 우리들 마음속에 영원히 살아 있지 않는가?
[9] 사천성의 “팬더 곰”은 지금 동물원에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어서, 그 옛날 오왕 합려를 망하게 한 경국지색의 서시가 사람들 몰려 있는 시장통에서 잘 생긴 자신의 미모를 보여주는 얼굴 값으로 사람들에게 입장료를 징수하여서 세상의 돈을 다 쓸어 모았던 그것처럼 말이다! (돈벌기 참 쉽죠? 잉??- “펜트하우스” 도색잡지로 돈을 다 쓸어담는 원리가 그 오래전 옛날부터 전해오는 것이 아닌가?)
[10] 사람들이 “불곰”이라는 표현을 흔히 쓰는데 곰은 이렇듯 불과 연관이 있다. 요사이의 유행어에 “불금”이 있는데, 이 “불타는 금요일 밤”의 의미에 대해서는 각자 처한 상황에 따라서 달리 해석될 수 있는 다중적 의미를 담고 있는 표현이지 않겠는가?
[11] 난중일기를 참조하라. 9월 15일 [양력 10월 25일] 계묘일, 날씨는 맑았다. 이순신 장군은 명량해전 전날 밤 우수영에서 휘하의 장수들을 모아놓고 이와 같은 내용의 사즉생의 전투자세를 주문했다.
[12] 죽음을 각오한 도적 한 명이 벌판에 숨어 있으면 그를 쫓아간 천 명 모두가 겁을 낸다. 비록 한 명이지만 그 한 명의 도적이 갑자기 자신에게 달려들어 자기를 해치지나 않을까 두렵기 때문이다. 이것이 한 명이 목숨을 던질 각오를 하면 천 명을 두려움에 떨게 할 수 있다는 말이다. 臣請率以當之 脫其不勝 取笑於諸侯 失權於天下矣 今使一死賊伏於曠野 千人追之 莫不梟視狼顧 何者 恐其暴起而害己也 是以一人投命 足懼千夫.
[13] 건릉 술성기의 “侍臣銜涕敦勸” 구절 표현으 뜻을 참조하고, 안자춘추의 “隰朋 暱侍 … 弦宁 暱侍” 구절에서와 같이 昵侍=暱侍=在旁奉侍.
[14] 별자리로 길흉을 점치는 黄曆황력 책력의 역사는 오래 전부터 내려온다. 청나라에서 18세기초에 간행된 “協紀辨方書” 책에 자세한 내용이 실려 있는데, 별자리 천문학이나 점성술에 대한 내용은 2천년 전 이전에 나온 상서나 사기 천문지에도 실려 있다. 한서 천문지에 “日有中道 月有九行 中道者 黄道 一曰光道”의 황도黄道 설명이 나온다. 黄道황도는 光道광도라고도 부르는데, 공전하는 태양이 지나가는 하늘의 길을 이른다. 공전하는 태양계 행성들 또한 이 황도를 지나간다. 수성 금성 화성 목성 토성 행성들은 밝기 광도가 크다. 황력에 밤하늘 천체의 황도를 가르는 12개 별자리 12궁을 분류해 놓고 있는데, 黄曆之中 青龍청룡(子),天德천덕(巳),玉堂옥당(未),司命사명(戌),明堂명당(丑), 金匱금궤(辰)이 육성은 길일에 해당하는 黄道吉日황도길일이라고 하고, 반면 白虎백호(午), 天刑천형(寅),朱雀주작(卯),天牢천뢰(申), 玄武현무(酉),勾陳구진(亥) 이 육성은 흉한 것으로 여기는 黑道凶日흑도흉일로 분류한다.
세성간지세차설, 음양오행설, 팔괘학설, 12신도, 28수, 구성술, 육요, 황도흑도, 풍수감여, 팔자산명술 이들 천문술에 대해서 그 제목만 열거해도 머리가 아파올 정도인데, 주역 점성술의 대가로 알려진 사람이고 명나라를 건국할 때 장자방의 역할을 하였던 유백온의 역서를 읽어봤지만 사기의 천문지도 아직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남반구 밤하늘 천체를 바라보며, 북반구에서는 볼 수 없는 마젤란 운하를 보고, 오로라를 보고, 생떽쥐빼리의 어린왕자처럼 황도를 쳐다보고, 그와 같이 상상력을 동원하고 마침내 문무왕릉의 비밀의 문을 열게 되었고 또 그간 2천년 동안 묻혀 있던 역사의 비밀을 풀 수 있게 되었으니, 밤하늘의 별을 쳐다보고 미래를 점친다는 점성술이 단지 허무맹랑한 미신이라고 치부할 수 없음을 수긍하게 된다. 인류의 역사를 새로이 쓴 코페니르쿠스, 갈릴레오, 뉴튼, 아인슈타인 이 위대한 과학자들의 발자취를 보라. 이들은 모두 밤하늘의 별을 쳐다보면서 천지를 진동시킨 새로운 우주천체이론을 발견하지 않았는가? 모르면 탐구하고, 찾고 두드리면 마침내 참깨의 문이 열리지 않을까? 마태복음의 역사가 증명하리라.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이 마태복음의 구절에 대한 영어 WEB 번역을 보자. "Ask, and it will be given you. Seek, and you will find. Knock, and it will be opened for you. For everyone who asks receives. He who seeks finds. To him who knocks it will be opened.” 이에 대해서 누가복음이 부연한 구절을 옮긴다. “너희 중에 아버지 된 자로서 누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 하는데 생선 대신에 뱀을 주며 알을 달라 하는데 전갈을 주겠느냐?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누가 11:1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