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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전에 프로이트가 사랑이란 환영에 불과하다all romantic love is like that — unreal and hallucinatory

by 추홍희블로그 2015. 7. 9.

100년전에 프로이트가  낭만적인 사랑이란 실재하는 것이 아니고 환영에 불과하다all romantic love is like that — unreal and hallucinatory.고 말했다.

 모든 사랑은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환영 환각 hallucination으로 주장한 프로이트가 현명한 것은 분명하다.  

사랑은 기껏해야 몽상 공상 망상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love is an illusion.


우리는 자신 마저 속이는 존재가 아닌가?  죽을려고 하면 무슨 짓이들 못할소냐는 말이 있지만 사실 사람이란 살려고 발버둥치는 존재이고 살자고 살인까지 저지르는 존재가 아니던가? 

We make up stories — about gods and about the people in our lives and about ourselves — to help us make life bearable.


사람은 거짓 증언 하거나 심지어  증거 조작까지 한다.  자기 잘못 모면할려고.  더욱이 남에게 덮어씌우려고 하는 무고까지 저지르는 존재가 아니던가?   자기방어를 위한 대처 수단이라거나 자기 방어를 위한 무의식적 욕구 또는 방어기제라고 말하며 이를 학문적으로 정당화하지 않는가?  


한 밤중에 깨어나 앞 마당 감나무 나무가지에 걸린 하얀 비닐봉지를 보고서 처녀귀신으로 여기면 착각illusion이라고 말하고 반면에 한 밤 중에 깨어나 아무도 없는 방안에 하얀 소백을 입은 처녀귀신이 앉아 있다고 말하면 "환시 visual hallucination"라고 환각에 빠졌거나 정신이 돌았다고 말하는데 "착각"과 "환영"의 차이란 외부의 자극의 유무에 따라 구별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마음 속의 자극의 존재라는 개념으로 보면 둘 사이에 아무런 차이가 없는 것이 아닌가?  


음식이나 약에 독이 들어 있다고  food is poisoned 믿을 때 그것이 근거가 없는 경우 그런 착각을 "망상 delusion"이라고 정신병자로 치부할 것이다.  그런데 그런 의심의 근거의 합리성을 누가 판단하는가?  

감옥에 갇힌 죄수는 교도서에서 주는 밥에 불평을 할 수 밖에 없다.   꼭 독이 아니더라도 교도소 콩밥에 벌레가 얼마나 많이 자주 발견되던가?   교도서 콩밥의 독성을 부인하지 않는다면 왜 돈 있는 죄수들은 사식을 들여 오는가?  교도소 콩밥에 독이 들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은 그렇듯 누구에게나 합리적인 의심일 수 밖에 없다.  그런데 그런 죄수들을 망상으로 정신병 취급을 하지 않는가?  이건 사회적인 작용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갱년기 여성들에 효용이 크다고 소문나서 주가가 천정부지로 솟았다가 그 소문난 회사 제품에 우엽피가 섞여 있다고 난리가 나서 주가 거품이 푹꺼진  "내추럴엔도텍"의 사태가 말해주다시피,  약의 독성이나 약의 효능을 "사회 집단적"으로- 좋게 말하면 "한방치료제"라는 등으로- 평가하며 광기를 나타내지 않는가?  

정력에 좋다면 해삼에다 뱀술, 곰쓸개까지 싹쓸이해 가면서~~~~  이런 사회적 상황을 볼 때 합리성의 기준은 어디에 있는가?


사회가 비정상적일 때 방어적 수단은 공격적 수단과 별반 차이가 없게 된다.


그리고 자극 stimuli의 종류와 강도를 도입하면 착각과 환각의 차이는 없어지는 것이 아닌가?  푸코가 정신병의 역사에 대해서 고고학적으로 잘 분석한 것으로 이해되듯 정신병의 기준과 진단은 개인 병리적이고 임상적인 현상이 아니라 사회적인 작용의 결과이다.  국가가 치매 환자릃 양성하듯이 정신병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군대 생활할 때에는 지금처럼 정신병 관리병사 제도가 없었지 않았던가?  단지 데모하다가 끌려왔다면 시국사범 또는  열외병사-"고문병"-으로 낭만적으로 취급하지 않았던가? 


지금의 세상은 세기말 현상인가?  세기초 현상-1차 세계 대전-인가?

세기말 현상이든 세기초 현상이든 "죽음의 무도"가 진행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