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에 단 며필만 머물려도 결국 떠나지 못할 거야.”
중국의 영화감독 장예모의 영화 “홍등”이란 영화의 대사 일부다.
1920년대 19살 “송련”이란 이름의 시골 처녀가 등록금이 없어서 대학을 중퇴하고 돈 많은 진씨대감의 4번째 첩으로 들어간다.
진씨대감만큼 나이가 들은 늙은 첫번째 부인과 교활한 2번째 부인, 얼굴 예쁜 오페라 배우 출신 3번째 부인들이 서로 벌이는 비밀과 배반, 음모와 질투가 뒤섞이며 서로 권력을 차지하려는 경쟁의 모습을 그린 영화이다.
진대감은 하루 밤을 함께 지내는 부인과 첩의 처소에 밤새 밝은 홍등을 내다 걸어 놓는 것이 집안대대로 내려오는 관습이다. 권력관계를 확인하는 전례가 바로 이러한 홍등을 내걸어 놓는 것이다.
권력을 쥔 대감과 잠자리를 함께 하는 사람은 또 자기권력을 행사할 수 있다.
누가 2인자 권력자인지를 알 수 있는 것은 홍등이 어느 부인의 처소에 걸려 있는지이다.
등불은 삶의 희망이 아니라 삶을 얽어매는 속박이기도 하다~~.
나이 60세 이르는 진씨대감댁에서 여자가 권력을 차지하는 일은 자식을 낳는다는 것이라는 것을 송련은 곧 알아채리고 임신이 된 것처럼 일을 꾸민다. 송련이 임신을 하게되니 송련은 진씨대감의 사랑을 독차지하게 된다. 이에 첫번째 부인은 체념하고 별로 신경쓰지 않으나 두번째 부인은 잘 생기고 어린 첩에게 애가 생긴다고 하자 질투 시기를 한다.
3번째 부인은 자기 전공인 노래로써 달래는데 그녀에겐 진씨대감댁의 가정의사가 숨은 애인이기 때문에 송련에게 애가 생겨도 별로 신경쓰지 않는다. 송련의 하인은 자기도 언젠가는 진씨대감의 부인이 되고픈 마음이 있어서 홍등을 훔쳐서 자기방에 걸어두는데 송련에게 발각된다. 여자의 속마음이 발각됐을 때 여자는 죽을 정도로 치욕을 느낄 것이다.
그러나 같은 여자로서 이해하고 그냥 넘어가는 송련이다. 그러다 송련의 하인은 송련의 팬티에서 빨간 피가 묻어나오는 것을 우연히 알게 되면서 송련이 임신한 것을 의심하게 된다. 여자가 임신을 하면 월경이 중단되기 때문에 빨간피가 나올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를 두번째 부인에게 알리자 두번째 부인은 송련의 건강을 위해서 의사의 검진을 받아야 한다고 진씨대감을 꼬신다. 의사가 검진한 결과 송련의 임신이 거짓이라는 것이 결국 밝혀진다.
송련은 자기 하인이 고자질한 것을 알고서 하인이 홍등을 내걸고 있다는 사실을 모두에게 알리는 것으로 보복하게 된다. 그러자 하인은 쳐다볼 수 없는 나무를 쳐다본 죄가 탄로나게 되고 결국 이런 치욕을 안긴 송련으로 인해 하인은 한을 품고 바로 죽게 된다.
송련의 임신 사실이 허위임이 알려지는 순간 지금까지 받아 온 특별대우와 진씨대감으로 부터 받아온 매일같은 사랑은 하루아침에 모두 박탈된다. 홍등은 한 순간에 모두 꺼지고 대신 검은 천으로 둘러싸이게 된다.
갑작스럽게 진대감으로 부터의 사랑을 잃게 되고 또 하인을 죽게 만든 죄책감으로 우울증이 든 송련은 스물상 생일날 진씨대감 큰 아들을 불러서 술을 마시고 취하게 된다. 술에 만취되어서 3번째 부인가 의사가 애인관계임을 말하게 된다.
이를 전해 들은 2번째 부인은 3번째 부인이 의사하고 정사하는 호텔방을 급습하여 잡아 오게 한다. 잡혀 온 3번째 부인은 대궐 깊숙한 곳에 자리잡고 있는 죽음의 별채에서 진대감과 그의 하인들에 의해서 살해된다. 여자가 바람을 피면 죽음과도 같았던 봉건시대 잔제가 남아 있는 시기에서 여자의 간통은 바로 죽음을 의미했다.
3번째 부인의 참혹한 죽음의 순간을 목격한 송련은 “살인자!”라고 외치게 된다. 진실을 말하는 순간 송련은 미쳐버리고 마는데 결국 미칠 수 밖에 없다. 권력을 쥔 진대감은 살인을 부인하고 오히려 송련을 미친 여자라고 만들어 버리기 때문이다.
누구나 권력의 치부와 권력이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손의 실체를 밝히는 그 진실을 말하는 순간 미친 사람으로 취급당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알아도 말하지 않으면 살아 갈 수는 있다. 그러나 대학 교육을 받은 송련은 그럴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자신은 진실을 말하고 결국 미친 여자가 되어 버린 것이었으리라! 보지 말아야 할 것은 본 송련이 말해서는 아니될 진실을 발설한 순간 그녀는 미친여자로 버림받고 편한 삶이 보장된 대궐을 떠나야 한다. 거대한 담장 속에서 권력의 진실을 밝히는 사람은 미친 사람으로 취급받고 성밖으로 내쳐진다. 그렇게 송련은 떠나고 그 자리에 또다른 젊은 처자가 진씨대감의 5번째 부인으로 들어오게 된다.
집에서 쫓겨난 송련은 담장벽으로 둘러싸인 4방이 막힌 벽을 배회하는 장면으로 영화는 끝을 맺는다. 영화에서 최종 권력자인 진씨대감의 얼굴은 처음부터 끝까지 클로즈 업 되지 않는다.
반면 여자들의 얼굴은 표정도 쉽게 알 수 있을 정도로 크게 클로즈업된다. “보이지 않는 손”=잡히지 않는 거대권력 담장을 허물었다는 인터넷 시대에서 우리 스스로 담을 쌓고서 그 담장안에서 편한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서 권력자에게 몸을 주고 스스로 갇혀사는 모습이 우리들의 모습은 아닌지??
성밖으로 내팽개쳐 진 여인네가 자기 살던 처소를 배회하는 모습~~~눈팅족으로 자기 놀던 곳을 보고 배회하는 모습이 아닐까???
“며칠 만 여기에 머물르면 결코 떠나지 못할 거야.”
“배운 여자도 별 수 없는 거야. 여잔 다 똑같아.”
막힌 벽이었지만 거기에 둘러싸여 한 번 익숙하면 결코 떠나기가 힘든 곳.
인터넷 중독??? 자유를 찾아도 자유인이 될 수 없는 여자의 운명인가?
남에게는 규칙을 강요하지만 정작 자신에게는 마음대로 방종하는 자기멋대로의 착각. 자신에게 닥치는 불행으로 우울증이 들게 되면 사람들은 모두가 귀신이 되고 만다.
사람이 사람이 아니라 귀신같은 사람들로 인해서 괴로움을 당하는 이성과 발전이 전도된 이 희한한 세상. 자연의 천재지변으로 부터가 아니라 같은 사람들로 인해서 오히려 괴로워 하고 우울증 병에 이르는 세상이 되었다!!!
공동체로 함께 어울려 행복을 추구하여야 사람들이 서로 귀신같이 괴로히는 세상의 억눌림!!!! 진실을 고발하고 자유를 찾으면 살아가기 힘들고 또한 닫혀진 담장에 익숙해지면 오히려 그게 편한한 자유가 아닐까?
속박과 자유, 권력과 행복이 혼동되는 우리의 시대가 아닐까? 암튼 답답한 우리 세상이다. 감옥에서 오히려 행복을 느끼는 우리가 아닐까? 장예모 감독의 “홍등”을 보고 난 후 느끼는 생각이다.
뱀발바닥.==> 여자의 말 마사지는 누굴 위해서 하나? 진대감의 성적 만족을 위해서? 아니면 여자 자신의 성적 만족을 위해서? 매트릭스(체제)가 시켜서? 아니면 자기 스스로 먼저 동의해서? 나는 모르겠다~~~둘 다 이겠지~~~진실은 모른다~~~ “배운 여자도 별 수 없는 거야. 여잔 다 똑같아.” “사통팔달”이 되어야 할 인터넷이 오히려 담이 되어버린 것은 아닌지 사방이 막혀있다고여겨진다.
그래서 “한 번 발을 들여 놓으면 빠져 나갈 수 없는“ “네트워크 역설”. 완장하나만 붙여주면 하인들처럼 불침번을 서는 사람들, 밤을 지새가면 자기이름불을 밝혀가랴는 사람들 암튼 가지각색이다. 대학을 나오고 배운 여자라도 별 수 없다. 벽에 갇히게 되는 순간부터 체제에 순응하게 되는 사람들 모습. 이제 발 마사지가 건강의 척도라고 뉴에이지 교양으로 자신마저 속이는 거짓향연은 이재 그만 하자. 가면이 많고 가식으로 가득한 이세상에 차라리 옷벗고 살자. 솔직해 지자. 누드처럼. 허물허물해 져도 반듯이 잘려지는 두부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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